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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얼마 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워낭소리>를 봤다. 워낙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서 거의 완벽한 스포일링을 당하고 간 상태였지만, 영화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처럼 봉화의 아름다운 풍경들에 감탄하고, 할아버지와 소의 애틋한 사랑에 동감한 것은 아니다. 물론 소가 죽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슬픔에 잠겨 있는 장면에서 나 또한 눈시울을 적셨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 한켠을 붙들고 흔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등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다 늙어서 일만하는 소가 뭐가 부럽냐고? 그러나 내가 부러운 것은 소의 '살아생전'이 아니라 죽어서 '흙'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소는 죽고 산 언저리에 묻혔다. 그리고 그 위엔 풀이 자라났다. 그리고 수 십년이 지나면 소의 육체도 미생물들을 만나 변형되면서 풀이 되고, 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어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이산화탄소를 내뿜어대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육중한 도시에는 내가 흙이 되고 풀이 되고 꽃이 될 수 있는 조그만 땅 뙤기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저 먼 중동 땅에서 왔을 법한 석유 찌꺼기들만이 온 도시를 뒤덮고 오직 흙 한줌의 숨통조차도 조여매고 있다.
괜히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불교에선 전생과 내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죽어서 흙이 될 수 없고, 풀이나 꽃이 될 수 없는 이 도시중심적 사회에서도 전생과 내세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석가모니가 생각한 전생과 내세는 단순한 정신 또는 영혼의 순환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관념은 철저히 서양 근대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육체와 자연의 순환까지 포함하는 언어였을 것이다. 어차피 하얀 가루가 되어 조그마한 항아리 안에 담겨질 육체라면 내세도 기약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물론 어차피 벌써부터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2.

예전에 <<블루골드>>(모드 발로 & 토니 클라크 저, 개마고원, 2006)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 사유화의 문제를 다룬 꽤 두꺼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물 사유화를 추진하는 초국적 기업들을 '현대판 봉이 김선달' 정도로 표현하기에는 2%, 아니 20% 정도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선달은 대동강물은 멀쩡히 놔두고 양반댁에 물을 길어다 날라주는 짐꾼들에게 동전 몇 닢 받는 걸로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여 대동강 물을 4천냥을 받고 한양 상인에게 판 정도였지만, 21세기의 봉이 김선달들은 아예 육지에 있는 물을 고갈시켜서 그 희소성을 증대시키는 악질적인 방식을 택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육지에서 담수(淡水)를 보관할 토양을 없애버린다는 점이다. 도시화로 인해 농업을 위한 경작지는 점점 파헤쳐지고, 그 위에 곧게 뻗은 길과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그 위는 전부 시멘트와 석유 찌꺼기일 뿐인 아스팔트가 덮어버린다. 그리고 도시 생활에 적합한 하수도 시설이 갖춰진다. 그런데 예전엔 비가 오면 빗물을 토양이 잡아두어 지하로 흐르면 그 물이 저수지 등으로 흘러 사람들이 쓸 수 있었는데, 시멘트와 아스팔트는 빗물을 전부 하수도로 내다 버린다. 하수도로 흘러간 물은 대부분 강을 거쳐 바다로 직행한다. 이런 토양의 손실, 그리고 온갖 오염의 원인으로 인해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물의 사용도 온갖 댐 건설, 관개시설 정비를 통해 전적으로 공업적 시설을 비롯한 자본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된다. 그렇게 해 놓고 사람들이 몸을 씻고, 목을 축이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물은 비싼 값에 사서 쓰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봉이 김선달은 초국적 기업들로 집단화 되어 있으며, 좀 더 뻔뻔하고 노골적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 문제의 열쇠는 '흙'에 달려 있다.
3.

그리고 최근에 읽은 <<이윤에 굶주린 자들>>(프레드 맥도프 외, 울력, 2006)에서는 토양의 획득과 이용이 오로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agribusiness)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토양에 대해 자본의 논리가 들어서게 된 것은 세간의 이해와는 다르게 그리 최근의 현상만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인 엘런 우드의 '농업 자본주의의 발생'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농업 문제를 논의의 바깥으로 밀어낸 기존의 인식에 대해 반성을 요구한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산업혁명의 신화에 반대해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상업'에서 찾으려 했다면, 오히려 그는 그 반대편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그는 노동을 통해 재산소유권이 형성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진 로크의 이론은 꼼꼼히 살펴보면 논점이 노동 자체가 아니라 생산적이면서 이윤을 낳는 토지 이용인 '토지 개량'이 소유권을 형성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토지를 개량하는 적극적인 지주(↔봉건적 지주)는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이 아닌, 자신의 토지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생산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립한다. 개량되지 않은 토지, 임대되지 않아서 이윤을 낳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였고, 이러한 토지를 전유하는 것은 개량하는 사람들의 권리이고, 심지어 의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의 토지 개량에 대한 이런 관점은 식민지 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토지 강탈을 정당화 했고, 이는 인클로저와 같은 토지 소유권의 재정립 가져왔다.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의존해 왔던 공유적 관습적 토지 이용권이 소멸되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량의 비농업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갖는 농업 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의 산업 자본주의가 출현 할 수 있었을까? 영국의 농업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임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는 무산대중이 존재했을까?
자본주의적으로 개량된 농업은 이제 도시의 무산 대중에게 공급될 식량 생산이나 목양, 원예, 과일 등 고부가가치 농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 중심에 농업생태체계의 신진대사를 교란시키는 단종경작(monoculture)이 자리잡고 있다. 존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는 독일의 토양화학자 리비히와 마르크스의 논의를 빌려와 단종경작이 중심이 된 영국의 집약적 농업이 농촌에서 도시로 식량과 섬유의 원거리 수송을 필연화하는 반면, 질소, 인 칼륨 등의 영양물질을 재생시키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주변부의 농촌은 토양의 영양분을 박탈당하고, 중심부의 도시는 쓰레기와 공해로 환경이 훼손된다. (거름이 되지 못해 길거리에 뿌려진 똥 때문에 하이힐이라는 뛰어난(!!) 패션 상품을 만들어낸 프랑스 파리를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농업은 또 한번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탈곡기, 수확기 트랙터 등의 기계가 발명되고, 질소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 화학적 투입물이 대량 생산된 것을 배경으로 농업과 공업의 '수직적 통합'이 단행된다.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에서 수행하는 영농에서부터 생산물의 수송, 가공,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배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수직적 통합을 잘 설명해 준다.
"계약 영농의 본질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특히 계약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육계broilers(식육용으로 사육되는 닭)생산에서 볼 수 있다.(... ...)
육계 생산은 타이슨(혹은 유사한 다른 지방 기업들)과 4년 계약을 맺고 생산되는데, 이 계약에 따라 타이슨이 사육할 병아리, 사료, 그리고 수의학 서비스의 독점 공급자가 된다. 타이슨은 공급되는 병아리의 유형, 공급량과 공급 빈도의 유일한 결정자이다. 타이슨은 7주 후에 자신들이 정한 날짜와 시간에 다 자란 닭을 수집한다. 타이슨은 사육되는 닭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공급하고 닭을 싣고 갈 트럭을 제공한다. 농민은 노동, 사육장, 사육장이 세워지는 토지를 제공한다. 사육에 필요한 투입재와 사육 방식에 대한 엄밀한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생산자(농민)는 사료, 수의약품, 제초제, 농약, 살충제, 쥐약 등 회사에 의해 공급되거나 그 회사의 문건에 의해 승인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물품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에 서명해야 한다." 더구나 농민은 회사의 "육계 사육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집중 관리" 대상이 되어 타이슨의 "육계 관리 및 기술 자문관"의 직접 감독을 받게 된다."
- 167-8pp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토지는 농민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농민은 '토지 소유자'이다. 즉 요즘엔 옛날처럼 소작농이 없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지주인가? 그렇지도 않다. 지주치고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너무 없다. 농업에 투입되는 비료 및 사료, 농약, 농기계, 생명공학 등의 대부분의 투입물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농의 출발점이 되는 종자에 대한 정보와 기술은 생명공학기술을 독점한 초국적 종자기업(몬산토, 노바티스, 듀퐁 등. 이들은 미국에서 제약회사 다음으로 높은 이윤율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다.)은 종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끊임없이 강화하려 한다. 그래서 생명공학적으로 조작된 종자를 도입하는 농민은 작물에서 생산된 다음 세대의 종자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계약을 종자 생산자와 맺어야 한다. 이를 어기고 농민이 농사를 지어 얻은 종사를 다른 농민에게 팔거나, 다음해 농사를 짓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된 2세대 종자를 다시 파종하는 행위는 '해적질'로 매도된다. 그럼에도 영농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비용, 즉 자연재해, 병충해, 농민 건강 악화, 생태 파괴 등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농민이 부담해야 한다. 왜? 농민이 땅 소유자니까....
4.
내 주변에는 숨 쉬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그냥 '땅'들만이 가득하다. 제작년까지 우리집이었던 곳의 뒷 마당에는 엄마가 상추, 고추, 고구마 등을 심어서 우리집 네 식구 먹을 거리는 해결했는데, 그나마 그 땅도 이제 아파트 만든다고 다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숨 쉬고 있는 땅이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여온 비료며 종자기술로 생을 연명하는 땅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그렇게 많은 땅의 숨통을 틀어 막아놓고는 그나마 숨쉬고 있는 좁은 농촌의 땅과 농민들을 무한히 착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착취한 결과가 엄청 풍요로운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생물종의 절반 가까이가 멸종해 가고 있다니 따지고 보면 먹는 우리가 먹는 것의 종류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오로지 비만과 당뇨병을 재촉하는 것들 위주로 말이다.
그런 모습들에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닭가슴살과 고구마만을 먹었다는, 얼마 전에 '스타킹'에 출연했던 몸짱의 얘기가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그 때 옆에서 강호동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 울린다. "그러다 죽어요!"
그렇다. 그러다 진짜 죽는다. 근데 죽어도 그 근육으로 단단했던 몸은 풀도 못되고, 꽃도 못된다. 그냥 흰 가루일 뿐이다. 뭐하는 짓이니 대체...
원래 한 달에 2-3편 정도의 서평을 쓰는게 나름 목표였는데, 이래저래 꼬이다 보니 계획이 헝클어졌다.
부족하지만 서평대신 요즘 읽는 책들에 대한 간단한 감상이나 적어볼란다.

백승욱, <<문화대혁명>> (살림, 2007)
원래는 큰 맘 먹고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방대한 분량과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사건들이 머리속에 질서있게 정리되질 않아서 하는 수 없이 1권의 3/4 정도만 읽고 포기하고, 아주 슬림하게 문화대혁명을 정리한 이 책을 읽었다.
사실 모리스 마이스너의 책에서 내가 읽은 부분에선 문화대혁명 관련한 내용이 아직 시작도 안되었지만, 그걸 읽고 백교수의 책을 읽으니 나름 이해도 빨리되고 도움도 꽤 됐다. <<문화대혁명>>은 2007년에 사서 읽어보다가 중국관련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사건 전개가 잘 이해가 안됐었는데, 마이스너의 책을 통해 문화대혁명 전사(前史)를 훑어주고 나니 요 책도 흥미롭게 읽히더라. ㅎㅎㅎ
백교수가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근대사는 일국의 역사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본주의 근대 역사의 뒤엉킨 모순을 가감없이 간직한 역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문화대혁명은 바로 그 정점에 서 있는 사건에 해당한다. 대중의 지식에 대한 권리와 통제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외형상 당의 지도에 의해 시작되었음에도 대중의 운동은 당의 통제를 넘어서기 일쑤였고, 결국엔 그 운동이 당에 의해 무참하게 진압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은 이 운동은 결국 세상 사람들에겐 마오와 그 반대파가 권력을 잡기 위해 벌인 피의 난투극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중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급격하게 몰입하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문화대혁명의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 내도록 하고 있단다.
뭐 그건 그렇고, 덤으로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에 대한 평도 간단히 덧붙이자면, 난 다른 건 둘째치고 마오가 소비에트의 길과는 다르게 농민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농업이 공업에 의해 예속하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점이 꽤 신선하게 다가오더라. 마오의 대중노선도 중요하지만, 그의 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곱씹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임승수 외,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시대의 창, 2006)
표지 사진에서 느껴지는 저 포스!! 성조기를 휘어잡고 석유방울을 튀기는 대갈장군(!!) 아저씨의 카리스마!! 그러나 나는 이런 찬양조의 표현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이 책을 읽고도 결국 차베스에 대한 호감을 높이지는 못했다. 처음엔 차베스에 대한 좌파적 비판자들이 하는 말들에 대해 좀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비판들이 나름 근거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표지 사진이 쪼끔해서 잘 안보이는데, (그리고 도서관에서 저 책을 빌려볼때도 유심히 보진 않았지만) 차베스가 붙잡고 있는 성조기 아래 쪽에 줄지어 서 있는 기구 모양의 물체는 석유 시추 장치이다. (일껄??)
책에서도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바이지만, 차베스는 세계 최고의 석유 생산량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 그렇게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 내에서 수행하고 있는 많은 복지 정책들도 사실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의 이윤에서 나온 것을 사회적으로 분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초국적 에너지기업들이 자행하는 자원약탈을 차단하고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이루기 위해서는 석유회사의 국유화가 필수적이겠지만, (사실 이러저러한 정황을 봤을 때, 국영석유회사의 국유화 말고 뭐 다른 대안이 있을까도 싶다. 여기에는 몰락한 현실 사회주의가 범했던 국유화론에 대한 비판이 끼어들만한 여지는 별로 없어보인다) 차베스의 전략이 국유화를 넘어서 더 높은 지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ALBA와 같은 대안적인 무역체제를 만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얼마간 사실상 천연자원을 무기로 미국에 대항하는 지역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했을 때, 차베스가 추구하는 대안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적인데, 그런 노력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기껏해야 OPEC의 다른 국가들을 추동해서 석유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시키려는 것 정도?? 물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에 그친다면 자원 민족주의에 불과하지 않는가?

고미숙, <<이 영화를 보라>> (그린비, 2008)
그 동안 영화 평론하는 책을 보고 싶긴 했는데, 대부분의 것들이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안 유명한 거나 아니면,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SF영화를 대상으로 해서 싸이버 문화가 어쩌구 저쩌구, 미래 테크놀로지 사회가 어쩌구 저쩌구 요따구 지랄들을 해대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요책은 고런 답답함을 말끔하게 해결해 준 책이다.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대한민국 사람 중에 웬만한 사람이면 이 6편의 영화중에 2편 이상은 봤을 것이다. 나도 괴물과 라디오스타는 극장에서 봤고, 황산벌, 음란서생, 밀양은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봤으며(근데 음란서생은 재미없어서 중간이 그냥 꺼버렸다.) 서편제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줬다(그러나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그 시간에 수학문제 풀고 있었다. ㅋㅋㅋㅋ).
이 책에서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압권은 괴물에 대한 분석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괴물을 단순하게 '반미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봤다. 한강에다가 포름알데히드를 대량 방사하는 미군놈을 나쁜놈, 거기에 꼭 달라 붙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니 감염되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송강호 잡기에 나선 한국 경찰. 내 눈에도 이 영화는 단순한 '진영론'으로만 분석되는 수준이었다. (단, 어떤 사람들처럼 가족애를 다시금 생각한다든지 뭐 그딴 말도 안되는 감상은 받지 않았다. 고미숙의 말처럼 이런 사람들을 보고 가족애를 느끼기에는 너무 콩가루 집안 아닌가?)
그러나 고미숙은 과감하게 여기에 '위생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9.11테러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빈라덴 같은 극렬 테러범만 때려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시의 단순 무식한 사고방식는 괴물을 없애기 위해서는 괴물의 바이러스만 제거하면 된다는 위생관념에 그대로 복사되어 있다. 지저분한 것은 못참는다는 미군 장교의 뛰어난 위생관념은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게 했고, (한강은 넓고 넓으니까 괜찮다는 아주 '상식적인' 사고방식에 의해서!!) 그것은 괴물을 낳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매일매일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쓸려내려가는 똥은 재생되지 못하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내려가고, 우리의 '위생적인' 생활을 위해 쓰인 공업용수들은 온갖 중금속들을 함유한 채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생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바이러스, 세균만 잡으면 된단다. 유오성인가? 한놈만 잡아서 패게??
이런식의 분석 방법을 최근 광우병 사태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시키는 저자의 사고의 폭에 그저 놀랄 뿐이다. 브라보~~!!
하나하나 다 얘기할라 치면 말만 길어질테고,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길.
근데 서편제, 음란서생, 라디오스타에 대한 분석에서는 좀 갸웃해지는 대목도 꽤 되더라. 요건 나중에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1장. 농업 자본주의의 발생
소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더욱 체계적으로 이론화되었는데, 그 중 로크의 [통치론 제II논고Second Treatise of Govermen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의 제5장에는 개량의 원리를 기초로 해서 소유 이론의 고전적 견해가 서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자연"권으로서의 소유권에 대하여 로크는 대지의 생산성을 높여서 이윤을 낳도록 개량하는 것을 신성한 명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노동이 재산권을 형성한다는 것이 로크의 소유 이론에 과한 전통적 해석이지만, 로크 논문의 소유권에 관한 장을 세밀하게 읽으면, 그의 논점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생산적 이면서 이윤을 낳는 토지 이용인 토지 개량이 소유권을 형성한다는 것이 명확하다. 토지를 개량하는 적극적인 지주는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이 아닌, 자신의 토지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생산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립한다. 개량되지 않은 토지,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지처럼) 임대되지 않아서 이윤을 낳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였고, 이러한 토지를 전유하는 것은 개량하는 사람들의 권리이고, 심지어 의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개량에 대한 이러한 가치관 때문에 식민지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토지 강탈이 정당화되곤 했다. 이것이 인클로저라는 가장 유명한 소유권의 재정립을 가져왔다. 종종 인클로저는 예전의 공유지나 영국 농촌의 일정 지역을 특징지었던 "개방 경지"를 사유화하고 울타리 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인클로저는 (토지를 물리적으로 인클로저 하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의존해 왔던 공유적 관습적 이용권의 소멸이라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55-6 pp
이러한 특유한 패턴이 가져온 장기적 결과는 분명하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화"된 경제로 발전해 간 것과 농업 자본주의 간의 연관성을 충분히 해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몇 가지 점은 자명하다. 대량의 비농업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갖는 농업 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의 산업 자본주의는 출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농업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임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는 무산대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지를 강탈당한 비농업 노동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영국의 산업화 과정을 추진한 대중 소비 시장, 즉 식품이나 의복같이 값싼 일용품을 판매하는 시장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의 확대를 꾀하려는 새로운 동기 -- 영토 획득이라는 낡은 형태와는 다른 동기 -- 와 함께 부의 증대가 없었다면, 영국 제국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읭 원동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분명히 더욱 논쟁적인 이야기이지만), 영국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종류의 잔본주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국, 특히 산업화된 영국에서 비롯된 경쟁 압력으로 인해서 다른 나라들의 경제도 자본주의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 63-4pp
5장. 자본주의적 농업의 성숙
일반적으로 말해, 상업적 종자 회사들이 동종 교배 방식을 통해 투입재인 종자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제한된 것이었다. 첫째, 동종 교배 방식은 콩이나 밀 같은 중요한 작물이나 대가축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다. 둘째, 동종 교배 방식은 일반적으로 생산량의 증가에는 성공적이었지만,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성,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 유지 종자의 유지 함량 증가 같은 많은 중요한 특성들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들은 다른 육종 방법을 통해 도입되어야 했다. 셋째, 농업 경영상 중요한 작물들에 도입된다면 바람직할 것 같은 특성들이 있지만, 이러한 특성은 현재 경작되고 있는 작물과 교배되지 않는 작물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예는 콩과 식물처럼 뿌리를 질소 흡착 박테리아가 서식하기 좋도록 만들어서 공기 중에서 질소를 흡착할 수 있는 옥수수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성공했다면, 질소 비료 시장은 축소되고 질소 공급은 종자 기업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종자 기업이나 종자 기업의 파트너 혹은 소유주인 화학 기업에게 이윤을 제공할 만큼 농업 경영상 중요한 작목들을 변형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바로 1970년대에 이르러 자본의 농업 침투가 명백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농업 생산에서 새로운 형태의 중요한 기계 도입은 종말을 고하였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연료비의 급격한 변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공급됨으로써 농업 노동자의 조직화가 지연되었기 때무닝었다. 비료와 살충제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 대중의 인식이 점차 커지고, 살충제와 제초제 살포의 유해성으로부터 농장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OSHA(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규정이 만들어져서 이미 사용 중인 화학 물질 사용을억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화학 약품 사용을 억제했다. 더구나 비료와 살충제는 이미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어서, 농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적정한 수준 이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975년 이후에는 비료 사용이 늘어나지 않았고, 1980년대 초반 이후에는 합성 살충제 사용도 증가하지 않았다. 투입재의 공급자와 산출물의 구입자들이 농업으로부터 더 많은 잉여를 전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 요인, 즉 1)농업 경영상 중요한 작묵들에 대해 근본적인 생물학적 변형을 가하는 것, 2) 변형된 특성을 보유한 생물체가 계속 자신들의 소유와 통제 하에 있도록 보장하는 것에 의해 경정 되었다. 더구나 투입재 생산 부문과 영ㅇ농 후의 생산 부문(구매, 가공, 유통)의 집중이 심화됨으로써 거의 독점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잉여의 전유는 더욱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생명 공학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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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교배법을 통해 확보하였던 재산권의 보호는 몇 개의 유기체와 몇몇 농경적 특성에 한정된 것이었다. 생명 공학은 동종 교배법이 적용되지 않는 바로 그러한 사례들에 도입되어 왔다. 그렇다면 육종자는 결정적인 물질, 즉 유전자를 제공하면서 어떻게 더 많은 잉여를 전유할 수 있는가? 그 해법이 육종자의 손에 쥐어졌는데, 그것은 법적 무기와 생물학적 무기가 결합된 것이었다. 식물 종 보호법Plant Variety Protection Act과 뒤이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법적 무기가 육종자에게 제공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농산물의 원천을 정확하게 밝혀 주는 표준 DNA "지문fingerprint"을 사용함으로써 육종자의 권리가 보호된다. 생명공학적으로 조작된 종자를 고입하는 농민은 작물에서 생산된 다음 세대의 종자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계약을 종자 생산자와 맺는 것이 이제는 표준이다. 농민은 농사를 지어 얻은 종자를 다른 농민에게 파는 것 "brown bagging"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더욱더 혁명적인 것으로서, 다음 해 농사를 짓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2세대의 종자를 다시 파종하는 것도 금지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댖두 종자를 구매하는 모든 농민들 혹은 유지 함량이 낮은 "담백한" 감자 칩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몬산토의 특별 품종 씨감자를 구매하는 모든 농민들은 같은 품종을 계속 생산하려면 계약 조건에 따라 다음 해에 다시 몬산토에 가야 한다. 몬산토가 그러한 계약을 강행할 수 있는 것은 작물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작물 확인은 식물 한 포기 혹은 종자 한 알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유전자 조작 품종의 DNA가 유전 공학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주입된 독특한 유전자 배열을 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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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영농의 본질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특히 계약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육계broilers(식육용으로 사육되는 닭)생산에서 볼 수 있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 닭고기를 공급하는 주 공급자는 사우스캐놀라이나 주의 타이슨 팜즈이다. 타이슨 닭고기는 타이슨 "농장"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100에이커 정도의 농지를 소유하고 연간 평균 25만 마리의 닭을 생산하는 소규모 농민들에 의해 생산되는데, 이들의 연간 총소득은 약 6만 5천 달러이며 순소득은 1만 2천 달러 정도이다.
육계 생산은 타이슨(혹은 유사한 다른 지방 기업들)과 4년 계약을 맺고 생산되는데, 이 계약에 따라 타이슨이 사육할 병아리, 사료, 그리고 수의학 서비스의 독점 공급자가 된다. 타이슨은 공급되는 병아리의 유형, 공급량과 공급 빈도의 유일한 결정자이다. 타이슨은 7주 후에 자신들이 정한 날짜와 시간에 다 자란 닭을 수집한다. 타이슨은 사육되는 닭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공급하고 닭을 싣고 갈 트럭을 제공한다. 농민은 노동, 사육장, 사육장이 세워지는 토지를 제공한다. 사육에 필요한 투입재와 사육 방식에 대한 엄밀한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생산자(농민)는 사료, 수의약품, 제초제, 농약, 살충제, 쥐약 등 회사에 의해 공급되거나 그 회사의 문건에 의해 승인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물품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에 서명해야 한다." 더구나 농민은 회사의 "육계 사육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집중 관리" 대상이 되어 타이슨의 "육계 관리 및 기술 자문관"의 직접 감독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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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세계의 식량정치
미국의 농산복합체는 농업 부문에서 특히 심각했던 1930년대의 대공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양차 대전 사이에 실시된 농업 관련 조정 장치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1935년의 농업 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 개정으로 국내 가격을 세계 시장 가격보다도 높게 설정하는 미국 농무부의 가격 지지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농무장관은 농산물 수입을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신중상주의적인 수입 관리 정책은 결국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농산물 수출 계획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농가 보호로 생산 과잉을 가져왔고, 미국 정부는 이 영어 농산물을 공법 480호(농산물무역개발원조법으로서 1954년 7월에 제정)에 의거해서 원조 물자로 해외에 처분했다. 처음에는 무상 원조로 시작해 나중에는 상업에 기초한 가격으로 유통시킨 이러한 식품 체계 속에서 카길이나 콘티넨탈 같은 거대 곡물상들은 부를 축적했다. 이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가족 농장이 생산한 곡물을 거래했고, 식량 원조 계획이라는 보조금을 받는 수출을 통해 매혹적인 시장을 획득해 갔다.
값싼 농산물에 더해서, 미국의 농업 관련 기업의 기술 수출도 해외 원조 계획 기관을 통하여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마셜플랜Marshall Plan과 제3세계의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 포함되었다. 이 두계획은 유럽과 일본, 멕시코에 이르는 지역에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미국식 농업을 모방한 근대적인 농업 부문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4개의 현지 기업이 미국의 (랄스톤 류리나와 카길을 포함하는) 농업 관련 기업과 합작 기업을 설립하여 한국의 식품 체계에 전문 기술과 마케팅 지식을 도입했다. 1970년의 PL480호 연차 보고서에는 이들 기업이 대응 자금을 획득하여 "근대적인 가축용 배합 사료 공장과 가축 및 가금 생산 싯설, 육류 가공 공장의 건설이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설을 완전히 가동학 ㅔ되면, 사료 곡물과 기타 사료용 원료 시장이 실질적으로 확대될 것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2년 후에 발간된 연차 보고서에는 "이들 기업은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의 한국 내 도입을 촉진하고, 미국산 옥수수, 대두박, 종축 및 기타 농자재/농기구의 대 한국 수출 급증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
흥미롭게도 1970년대 초에 미국 정부는 미국이라는 제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특히, 베트남 전쟁에 의해 발생한 비용)의 상승으로 발생한 국제 수지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서 농산물 수출이라는 "식량 무기green power" 전략을 채택했다. 1970년대까지 미국의 농업 정책은 국내 농업 부문의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졌기 대문에 수출과 식량 원조는 자국의 잉여 농산물 관리의 부산물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1973년 농업법'을 통하여 생산 제한을 해제하고, 상업에 기초한 수출을 장려함으로써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대한 미국 농업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1970년대 초부터 미국 농업은 수출 지향적으로 되어, 수출 시장을 겨냥한 값싼 기본 농산물(밀, 옥수수 및 대두)이 전체 경지의 1/3이상에서 재배되었다. 식량 무기 전략은 세계의 가족농업경영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수출 지향 생산을 강화하여 해외 시장 그중에서도 특히 제3세계의 중소득 국가, 중국, 구소련, 동구 등으 ㅣ대외 식량 의존도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농업 정책을 모방하여 미국과 마찬가리조 과잉 생산문제를 야기했던 서우럽도 유력한 곡물 수출국이 되었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중의 하나이다. 원인은 뇌의 전두엽의 이상이 오는것 때문으로 알려져있으며 이 증상을 앓고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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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도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 하길래 뭔가 해서 한번 찾아봤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난 요즘 스스로 사회성(=사교성)이 부족하고, 성격이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그럼 나도 사이코패스? 헉, 근데 정말 경악스러운 것은 그런 장애가 뇌의 장애 때문이라고?? 뇌의 심각한 장애 때문에 강호순이가 그렇게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의 공상과학영화 스러운 이야기를 언론들이 그렇게 목이 찢어져라 하고 있었던 거라니... 헐~
뇌 심리학의 전문가들께서 지껄이신 소리라서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무례한 짓거리인줄은 아나 한마디만 하자. 옛날에 뇌에 도파민의 과도 분비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인 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는 한 어린이가 어린 동생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집어던져서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과잉행동장애, 미국의 수영 영웅 펠프스도 어릴적에 겪었던 질환이다. 그럼 어릴적 펠프스도 살인자로서의 잠재력이 농후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제 만난 친구가 전해 준 이야기는 더욱 입이 벌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중앙일보의 싸이코패스 '신드롬' 만들기 놀이에 놀아나신 그 친구 아버지는 약간만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모두 싸이코패스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단다. "과속하는 놈들은 다 싸이코패스야!" 뭐 요런 식으로...
바야흐로 불안과 공포의 시대다. 경제위기가 목을 서서히 졸라오니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악마 때려잡기에 나서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는가? 살인 충동을 느끼는 특별한 뇌 구조를 가진 인간만 세상에서 제거하면 된다는 식의 참주선동은 (게다가 보너스로 그의 가족들도 낯짝 못 들고 다니게 해야 한다는!!!) 대공황 이후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유태인들에게 돌리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파시즘의 얼굴과 다를게 뭔가? 이런식의 집단 심리 구조는 조만간 강호순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서 집단 매도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옛날에 그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에서처럼 눈동자를 감식해서 잠재적 범죄자를 식별하고 미리 잡아 가두는 법도 서서히 등장하겠지... 허허허...
그래 다 좋다. 그렇게 할 테면 해 봐라. 근데 하나 제안한다. 일단 80년 광주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을 지시했던 전두환의 뇌 구조부터 검사해 보자. 그리고 얼마전 용산 참사를 불러온 살인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서울시경 간부들의 뇌구조, 그리고 이명박의 뇌구조부터 검사하자. 그들에게서도 사이코패스 증상이 나오면.... 그땐 암말 않고 인정하겠다. 진심으로!!!!
20세기 중반까지 중국 농촌지역에 전(前)자본주의적 사회경제관계와 신사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근대중국사의 흐름 속에서 부르주아 혁명운동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번성할수 있느 조건을 만들어내는 역사적 임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유재산 폐지를 목표로 하던 공산당에게 주어졌다. 물론 이런 역사적 역설이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부르주아 정당들의 실패로 농촌의 부르주아 혁명은 볼셰비키가 주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소련역사의 첫 10년은 자본주의적 농민의 등장과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서 농촌의 부르주아 경제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으며, 농촌의 부르주아 혁명을 완수했던 바로 그 정권이 다시 부르주아 소유권을 파괴하는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갖는 아이러니의 하나는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부르주아 혁명운동의 좌절이 오히려 사회주의에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부르주아 혁명이 이전에,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이 권좌에 오를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조성되기 전에 성공했다면, 두 나라의 농민은 자신의 작은 자작농지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보수세력이 되어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1789년 혁명에서 보여주었던 프랑스 농민의 급진주의는 이후 한 세기 이상 정치적 보수주의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 왕조는 농민왕조다"라는 냉소적인 논평을 했다. 이에 반해 토지혁명이 늦어져 사회주의 혁명과정과 동시에 또는 그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의 경우, 새로 탄생한 농민 소지주는 스탈린 정권의 집단화에 저항할 만큼 강한 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중국혁명의 경우 그 정치적 이득은 훨씬 컸다.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달리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으며 농촌사회 깊숙이 조직적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집단화과정에서 중국농민의 저항은 아주 미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인 사회개조를 적극 지지했다. 중국에서 농업의 사회주의화는 소련과 현저히 다르게 진행되어갔고 그 사회적/정치적 결과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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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나죠ㅋㅋㅋ근데 너무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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