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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만든 그녀들

나는 방바닥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취방과는 달리 햇살이 방 안쪽까지 깊게 침범하는 방이었다는 거. 일어서면 넓은 창밖으로 물결에 햇살 조각이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는 거. 

그러니까 나는 휴가랍시고 엄마랑 부산 송도해변에 있는 모텔 같은 호텔에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텔레비전 앞에 퍼져 리모콘을 조작하던 중 홈에버 점거 투쟁 장면을 보았다. 그러나 여느 투쟁과 달리, 연극 중이었다는 거. 잠깐이나마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 갔다. 등장인물은 엄마, 남편, 아이들 두  명. 부당해고에 투쟁하는 엄마와 그녀의 가족들의 상황을 투쟁 현장에서 간단하게 재연하고 있었다. 특히 초등학생 아이들 역할을 맡은 두 어머니의 연기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빨간 볼 분장에 귀여운 말투. 본인들도 쑥스러움을 참지 못해 대사 중간중간 웃음이 나왔더랬다. 남편에게 그녀가 이 일로 집을 오래 비우는 것에 대해 협조를 구하고 아이들에게 엄마가 투쟁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고 있었다. 정말 누가 봐도 와 닿을 듯 지혜롭게 전달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연극이 말미에 엄마가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이 있었다.

"엄마는 그냥 다른 직장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건, 이런 억울한 일이 너희들이 자라서 또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너희들에게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란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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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죽이 힘없이 늘어나는, 엄마의 늙은 손을 잡고 20년 전 내가 살던 부산 동네를 걸으며,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는데, 여기에도 우리 엄마 같은 어머니들이 계시구나, 싶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기회가 있다면 투쟁을 지지하러 가고 싶고, 불매운동도 꼭 할 테다.

이런 농성장 모습도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고, 어머니(꼭 결혼하고 아이 낳은 어머니가 아니어도)들은 역시 휴머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아줌마'를, 그리고 여성 노동자를 우습게 보는 사회와 기업에게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했다.

그녀들의 너른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라. 세상을 키운 것은 결국 그녀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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