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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달에, 대한항공에서 지적(정신지체, 발달, 정신 등) 장애인 탑승 거부 사건이 있었죠.
오늘(28일) 위드뉴스를 보니깐, 국가인권위 진정을 받아들여 '철회'하겠다고 했다고 나오던데요.
그런데, 당시 이 사건이 촉발이 되어, 인터넷 다음에서 꽤나 논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반응을 나름대로 분석해서 보고 있는데, '장애인-비장애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지난 6월 즈음에 다음 아고라에서 '장애인-비장애인' 논란이 있었더군요.
저도 '장애 운동가'랍시고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썼는데, '왜 일반인/정상인을 일러, 비장애인이라고 해야 하느냐' 라는 문제제기는, 타당성 여부를 떠나 검토할 필요는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헤아려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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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비장애인’ 논란을 지켜보며
드는, 몇 가지의 생각들. .
‘장애인’이라는 용어는 1981년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1990년에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될 때,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장애자의 ‘자(者)’라는 글자가 ‘놈 자’라 하여 인격을 비하하고 일본식 표기이므로, 이를 ‘사람 인(人)’자로 바꾸어주라고 요구함으로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공식적인 법적 용어로 자리 잡았고, 다수 사람들은 ‘병신’이나 ‘불구자’, ‘비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으로 호명했다. 물론 ‘장애인’이라는 용어 역시 임의적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존재 규정의 측면에서 볼 때, 진일보했다 할 것이다. 이는 지난날 ‘장애를 가진 사람’을 규정했던 용어와 대비해서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애인’을 일컬었던 단어를 나열해보자면, ‘병신, 불구, 폐질자, 앉은뱅이, 절름발이, 절뚝박이, 반신불수, 찐따, 쩔뚝이, 난쟁이, 곰배팔이, 외다리, 외발이, 외팔이, 장님, 맹자, 소경, 봉사, 애꾸, 외눈박이, 벙어리, 아자, 귀머거리, 백치, 정신박약아, 정박아, 미치광이, 정신병자, 미친 사람, 조막손, 육손이, 곱추, 꼽추, 곱사등이, 문둥이, 나병환자’ 등 정신/신체적 결손에만 주목한 호명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단어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장애를 가진 존재’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범위 내에서 저와 같은 부정적 용어는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년 전부터 이른바 진보적인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정상-비정상’의 구도를 탈피하고, ‘장애’를 기준으로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구도로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소수자였던 장애인이 다수자를 규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비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제기되자 장애를 가지지 않은 일련의 사람들이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동의/공감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곧잘 제시한다. 내용인 즉, 비장애인은 ‘장애’를 기준으로 제시된 용어이고, ‘비(非)’라는 용어가 대체로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일반인’ 혹은 신체/지적 기능에 있어 ‘장애’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여 ‘정상인’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의 반대어/개념은 비장애인이 아니라 일반인 혹은 정상인이라는 것이다. 이들 주장을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장애가 없는 자신들을 정의하는데 있어 ‘장애가 없는 상태’에 주목해야지, ‘장애가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정의/언어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장애인과 대비되는 차원이 아니라, 본래적 속성에 주목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이란 인터넷 싸이트에는 ‘아고라’ 라고 불리는 게시판이 있다. 장애인-비장애인 논쟁은 이 게시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민아’라는 아이디를 쓰는 어느 (여)학생이 “‘비장애인’이란 말 쓰라고 강요하지 마세요”라는 글에서 촉발되었는데, 내용인 즉, 장애인 행사(이 말도 쓰고 나니, 이상하다.)에 자원 봉사하러 갔는데, 인사말을 하던 중 ‘저희 같은 정상인.... 어쩌구 저쩌구’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장애인이 인상을 쓰면서 ‘정상인은 잘못된 말이다. 비장애인이 맞는 말이다’ 라고 하여 ‘과연, 그런가?’라고 반문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장애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고 한다.)
‘민아’라는 이의 주장은 ‘정상인/일반인을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제시하는 두 가지의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정상적인 사람들은 ‘정상인’ 또는 ‘일반인’이고, 신체적/정신적 기능에 ‘장애’가 있는 비정상인 사람들은 ‘장애인’이다. 띠라서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 또는 ‘일반인’이다. 그러므로 ‘정상인/일반인’을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② 그리고 장애인을 염두에 두어 배려의 차원에서 비장애인으로 부르거나 혹은 장애인이 일반인을 일러 비장애인이라고 부르기를 원한다고 해서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다 (따라서,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장애인을 동정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①번의 근거는 이후 점검하기로 하고, ②번의 근거는 실제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내용이다. 인용문을 보자
“민아님, 당신처럼 정상인과 장애인과 벽을 두는 우리 정상인을 때문에, 그들의 살 권리, 살아갈 용기를 잃는 장애인을 위한 최대의 배려입니다.. 그래도 님아..정상인이라는 말을 굳이 써야겠습니까?” (떠나자, 민아님!! 답변해 주세요) “비장애인이라는 말은 장애인에 대한 자그마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좋을듯 싶습니다.”(제트, 말에는 어감이라는게 있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는 호칭사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몸이 남들보다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거죠. 이러한 장애인들의 특성을 이 글쓴 님처럼 비장애인이라는 단어가 국어문법상으로 잘못된 말이고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며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장애인들은 육체의 결함과 함께 정신적 결함도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 이다라는 말은 통용이 안되는 거죠?”(문경지교) “그거 한 가지만 가지고도 굳이 자연 법칙상 10%나 차지하는 신체장애(본인들이 원해서 된 것도 아닌데)를 자존심 상하게 할 거까진 없지 않아요?(ttzkldf)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장애' 즉 이른바 '비정상'이 사회적 표준이 되어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전제되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에 의해 상처받는 우리의 이웃을 조금 더 생각 했으면 합니다.”(햇빛아래)
인용한 글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주장이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해 쓸 수 있는/쓰는 용어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아’들은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비장애인이라는 우월적 처지에서 장애인을, 이른바 봐준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동정’과 ‘배려’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정상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반감 차원에서 비장애인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기도 하다.) 적어도 저 위의 인용문에서 등장하는 일련의 진술들을 통해서는 ‘배려’와 ‘동정’에 대한 명확한 구별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여기에서 ‘배려’와 ‘동정’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 배려 :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는 것
* 동정 :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을, 또는 그런 사람의 어려운 사정을) 알아주고 마음 아파하는 것, 또는, 그런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
사전적 의미 차원에서 볼 때 위의 진술들은 ‘동정’에 가깝다. ‘배려’가 실천적 의미에 가깝다면, ‘동정’은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고자 함(마음 씀씀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동정’이 나쁘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요는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비장애인이라고 부른다고 할 때, 이 호명의 조건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동정에서 기인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마음 씀씀이와 실천이 간단하게 분리될 수 있을까? 여기에 ‘동정’과 ‘배려’를 객관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즉 누군가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를 두고 그것은 ‘동정’이니 ‘배려’이니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장애인의 입장에서 비장애인으로 부르는 것은 어떤 내용을 의미할까. 이는 장애여성인 김효진의 글 <장애인 관련 용어에 대한 고찰>에서 적절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사회적 약자로서 범주화되는 장애인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장애를 기준으로 한 장애인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인데, “힘 있는 다수의 의도적인 편가르기나 분리와는 달리” 사회적 약자가 자신을 정체성을 구축하고 저항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즉 사회적 약자 운동의 차원에서 장애인-비장애인 구도는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로서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던 구체적 경험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기에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환자로부터 시작하여, 절름발이, 병신, 불구, 장애자, 그리고 비정상인이라는 개념 규정을 '당해왔고', 이는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기 존재가 어디인가 결핍되거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부정적인 용어들로 이루어져왔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장애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장애가 없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장애’의 유무라는 일부의 차이로 인해 ‘병신’이나 ‘불구자’로 언어화 되었다. 하지만 이들 용어는 언급했듯이 장애인 스스로를 규정한 말이 아니라, ‘차이’ 나는 상황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그처럼 규정화한 것이다. 그리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운동적 실천을 모색했고 그 결과 ‘장애인’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또한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장애를 가지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을 비장애인이라는 용어로서 규정했다.
이는 앞서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비장애인’으로 규정화한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표면적으로는 ‘비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쓰는 의도는 다르다는 말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동정 차원에서 스스로 비장애인으로 규정하여 ‘정상-비정상’이라는 언어 구도에서 비켜서고자 하는 반면, 장애인은 저항적 도구 차원으로 비장애인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은 각각 일견 타당한 대목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런 물음이 가능하다.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라는 인간 존재의 하나의 특성에 주목하여 규정화한 것이다. 그런데 비장애인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짝개념으로서만 성립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가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을까.
언급한 두 가지의 근거, ‘약자의 정체성 구축을 위한 저항적 차원으로서 쓴다’는 것과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쓴다’는 것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두고 ‘비장애인’이라고 부를 만한, 불러야 한다 라는 주장의 필요조건은 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한편 이 두 가지의 주장과는 또 다르게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비장애인’으로 불러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장애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해결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들의 주장은 앞서 두 가지보다 (과학적 사실에 바탕한다는 점에서) 좀 더 설득력을 지닌다. 다음 글을 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장애인 숫자는 2000년의 145만 여명에서 215만 여명으로 약 70만 여명이 늘어났다. 매년 평균적으로 약 14만 여명이 증가했는데, 이 중 89%가 각종 질환이나 사고 등에 의한 후천적 요인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산업재해로 ‘장애’를 갖는 숫자가 매년 35,000여명이고, 교통사고로 임시 혹은 영구적 장애를 갖는 인원이 매년 100,000여명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노동부, 2002; 건설교통부, 2004). 게다가 이러한 사고 말고도 내외부 신체 기관의 질환 등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는 비율이 전체 장애인 중, 약 52%에 이르고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5년). 이러한 일련의 수치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 중 어느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즉 ‘장애’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박용민, 2006)
이 글에 따르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도 언제나 ‘장애를 가질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저항적 수단’이거나 ‘배려의 차원’보다는 (과학적 차원에서) 좀 더 설득력이 높은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과학적 사실이 있다 해도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장애인의 짝개념으로서 비장애인이지, 이것이 ‘일반인이 아닌 비장애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의 충분한 근거가 되기에는 미흡하다는 점이다. 즉, 사회적 차원에서 장애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과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일러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만약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도 장애인이 될 노출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면, 이는 ‘비장애인’이기보다는 ‘예비/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표현/언어화하는 것이 좀 더 적절/설득력이 높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인간언어의 특징이 대상/사물 현상을 기술하고 특성을 포착하여 이론화/명제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비장애인이라는 명제어는 장애인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정리한, 개념의 내포와 외연에 주목해보자)
정리하자면,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장애인의 짝개념으로서 쓸 수 있는 말이지, 어느 상황에서나 비장애인이라고 말하기에는 곤란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어떤 언어 상황 앞에서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자리한다면 그 때에는 비장애인이라고 쓸 수 있고 또한 써야 한다고 (심정적으로, 혹은 과학적 이유로) 생각하지만, 장애가 없는 상황에서 비장애인이라고 쓰는 것은 얼마간 어색하다는 것 정도이다.
이 긴 글의 너무 시시한 결론 같다. 이는 글에서도 드러나듯이 ‘장애’라는 용어의 근본적인 한계/부정성에서 기인한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애인-비장애인’ 구도는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용어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적어도 운동적 차원의 방식으로는 썩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일 수 있을까? 어려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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