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장애인 '인권' 은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까?

경북 봉화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70살 가까운 할머니가 있다. 그 할머니는 50살 전후 정신지체장애인 남성과 함께 산다. 그 남자가 15살 전후로 살았다 하니, 약 30년 전후 가까이 산 것이다. 할머니 집에서 그 남자는 자기 방에서 혼자 생활한다. 할머니는 그 남자에게 자질구레한 일을 시킨다고 한다. 어느날, 그 남자의 동생이 나타나 형을 모시겠다고 했다. 할머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남성이 떠나기 전날, 할머니는 그 남성 명의로 되어 있는 통장 안에 들어가 있는 돈 1천만원을 인출해서 자기가 가졌다. 말인 즉, '지난 30년 시간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값'이라는 것이다. 동생은 형의 통장에서 1천만원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할머니에게 전부 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할머니도 '만약 자기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죽었을 것이다'고 주장하며, 그 돈은 지금까지 자신이 수고한 값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동생은 1천만을 받으면 자기 집 근처에서 전세를 얻어 형을 모시겠다고 했다. 현재 형은 '기초생활수급권자'로서 매달 정부로부터 약 40만원 정도의 돈이 나온다. 동생은 끝내 할머니가 돈을 주지 않으면 고소할 것이라고 했다.


이상이, 경북 봉화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생은 연구소에 도움을 청했고, 연구소는 현장 조사 결과 위의 사실들을 확인하였다. 이런 일은 대체로 '장애인 인권 침해 사례'로 분류된다. 그런데 구도(할머니-가해자, 형,동생-피해자)를 이렇게 간단하게 세우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동생의 말을 들어보자.


"형이 평생 남의 농사를 했는데, 월급은 커녕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고 지금은 몸에 상해를 입원 병원에 입원하였다. 우리들은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는 바람에 삼형제가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비장애인 형제들은 성인이 되어 고아원을 나왔지만, 형은 지적장애1급이라 갈 곳이 없어 십대 중반에 고아원 원장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을 하러갔다. 그러다 농장이 문을 닫자 형은 경남 청도에 있는 원장의 형네 집에 보내져 농사를 지으면 살게 될 것이다. 고아원 퇴소 이후 형과 소식이 끊겼다고 최근 연락이 닿아 형을 찾아갔는데 사는 꼴이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 옷과 방에선 악취가 진동했고 반찬은 삭아빠진 김치가 전부였으며, 부뚜막 옆 처마 밑에서 형이 쭈그리고 밥을 먹고 있었다."


동생은 형을 그 곳에서 데리고 나와 병원에 입원시켰고 형은 현재 중이염, 심장 신부전증, 팔다리와 허리 통증에 대한 진단을 받았다. 동생은 "형이 그 동안 일한 댓가를 받아내, 내가 사는 근처에 전세를 얻어 돌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말인 즉,


"동생이 그 동안 형 얼굴 보겠다고 드나들었는 줄 알어? 십수년 전에 한 번 와서 김씨를 데리고 갔다가 며칠도 안 돼서 못 보겠다고 다시 데려다 놨어. 그 뒤로는 연락처까지 바꾸고 소식을 끊는 통에 내가 전화도 못했다니까.... 동생도 못 보겠다고 여기다 떠넘기고 갔어. 그런데 얼마 전에 불숙 찾아와서 김씨를 데리고 가서 내보고 돈을 내놓으라는거야. 내가 여태껏 치다꺼리 하는데 내 돈 들여가면서 했는데... " 라고 주장한다. 현재 할머니가 빼간 돈 1천만원은 약 2년 동안의 생계비인데 이전 생계비는 통장에는 따로 기록이 없는 상태이다.


즉, 할머니는 지적장애인을 돌봐준 댓가로 (형의 돈을) 가져간 것이고, 동생은 오히려 지금까지 형에게 일을 시킨 댓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동생은 형의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형'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동생 말처럼 형을 자신의 집 근처에 모신다고 상상해보자. 지적장애가 있을 뿐더러 도시 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형으로선 먹는 것도 그렇거니와 일상 생활 자체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동생이 형의 일상생활을 지도하고 교육한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형이 해 온 방식대로 생활한다면 동생이 형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게다가 동생 댁이 사는 것도 팍팍하다고 했던 바, 형에게 신경쓸 수 있는 계제가 충분치 않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형은 집에 처박혀서 텔레비젼 보고 살아가는 게 전부일 개연성이 높다.


그런데, 과연 이 형은 이런 삶이 행복할까?


다음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경우이다. 현재에도 형은 정신요양병원에 있다. 지병이 있기 때문에 요양병원에 들어갈 개연성이 가장 크다.  병원 생활은 말 그대로 시설 생활이다. 정해진 일과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니 먹는 것과 자는 것은 해결된다. 아니 적어도 청도 마을에 있을때보다는 좀 더 깨끗하고 좀 더 맛난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동생이 형을 들본다는 것(형을 모시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집 근처에 형의 집을 전세로 얻어 형을 돌보겠다는 것이다)보다는 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이 형은 이런 생활의 삶이 행복할까?


지금 나는 형을 그 할머니에게 보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형은 동생과 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장애인 '인권'을 보장한다고 할 때,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가 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설 생활이 인간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하는 것인지는 그 곳에서 경험해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 물론 모든 시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고, 모든 시설 생활인들도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생활하는 시설 생활인들의 삶의 모습이 다수며, 형의 삶도 이런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비록 사람들에게 놀림 당하고 해꼬지를 당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사회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게 좀 더 나은 삶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 대다수가 삶에 대한 생산성을 스스로 개척/마련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형과 같은 모습과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살아가는 장소가 형은 시설이고, 나는 바깥 사회라는 점만이 차이가 날 뿐.


요는 장애인 인권 확보를 위해 운동을 한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사건 앞에 유념해야 할 태도가 무엇일까 라는 점이다. 적어도 동생 요청으로 형의 '돈'만을 받아주는, 그런 모습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