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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노동자신문 10주년 기념토론회

2003년 11월 노동자대회에서 첫 준비호를 발간했던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이 어느새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창립 10주년을 맞아서 그동안 사노신이 함께 해온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평가하고, 앞으로 전망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조촐하게 가져보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동지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 10주년 기념 토론회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발제 :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토론 : 이형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시간 : 2월 22일 토요일 오후 5시
장소 :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5층 중회의실
문의 : 010-7647-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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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신 연속 워크샵 <맑스주의 논쟁의 열쇳말> # 두번째 가사노동 논쟁과 사회재생산~

  • 분류
    교육
  • 등록일
    2014/02/12 11:22
  • 수정일
    2014/02/12 11:2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은 2014년 상반기를 맞아 한달에 한번 최근 한국에서 맑스주의에 관하여 이루어진 주요한 논의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열쇳말로 인지자본주의, 가사노동, 적녹보라, 프레카리아트, 기본소득을 꼽았습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혁명 전략을 모색하는데 있어 페미니즘, 생태주의와의 상호영향이 어떤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지, 맑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경향의 해석과 새로운 운동전략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 워크샵은 각 주제 관한 충분한 검토를 목표로 하진 않습니다. 이 논의들이 맑스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두번째 가사노동 논쟁과 사회재생산

함께 읽을 글 :

* 실비아 페데리치, '부엌에서의 대안', <혁명의 영점>
* 정성진, '가사노동 논쟁의 재발견', <마르크주의 연구> 10권 1호
* 고정갑희, '가부장체제의 생산-노동 비판', <마르크스주의 연구> 10권 1호
* 윤자영, '사회재생산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마르크스주의 연구> 9권 3호
* 실비아 페데리치, '세계경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과 끝나지 않은 여성주의 혁명', <혁명의 영점>

---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논문들을 마르크스주의 연구 홈페이지 자료실(http://nongae1.gsnu.ac.kr/~issmarx/spboard/board.cgi?id=downloads)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2월 20일 목요일 저녁 7시
노들장애인야학 멀티미디어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문의 : 010-7647-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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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노동자신문 연속 워크샵 <맑스주의 논쟁의 열쇳말>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은 2014년 상반기를 맞아 한달에 한번 최근 한국에서 맑스주의에 관하여 이루어진 주요한 논의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열쇳말로 인지자본주의, 가사노동, 적녹보라, 프레카리아트, 기본소득을 꼽았습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혁명 전략을 모색하는데 있어 페미니즘, 생태주의와의 상호영향이 어떤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지, 맑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경향의 해석과 새로운 운동전략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 워크샵은 각 주제 관한 충분한 검토를 목표로 하진 않습니다. 이 논의들이 맑스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첫번째 인지자본주의와 맑스의 가치론

읽고 오실 글 :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 9권 1호 특집 : 인지자본주의론의 쟁점 중 조정환, 전희상, 박현웅, 김공회의 글 (* 자료는 모두 마르크스주의 연구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1월 23일 목요일 저녁 7시
민주노총(경향신문사) 16층 사무금융노조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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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능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환구단에서 투쟁하고 있는 전국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유명자 동지

출처 : 유명자 동지 페이스북
 

재능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최근 보건복지개발원 투쟁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고 있는 것처럼 장기투쟁에 지친 주체들 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상급단체가 합의를 종용하고,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모습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몇몇 기사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소수의 조합원들과 연대단위들에 의해 투쟁이 이어지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현실에서 의사결정 방식이나 투쟁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노신은 투쟁을 계속하는 주체들이 있는 한 재능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투쟁사업장의 목소리가 묻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지난 11월 6일 환구단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유명자 동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유명자 동지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편집자]


현재 투쟁을 하고 있는 핵심적인 쟁점은 무엇인가요?

 

2007년 4월, 이현숙 집행부가 현장교사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는 수수료제도를 회사와 잠정합의하면서 투쟁을 시작했어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대교를 필두로 다른 학습지회사들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모두 실패하거나 유보해야 했어요. 당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동지들이 투쟁에 나선 것도 있지만 현장교사들의 반발이 엄청났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재능교육은 노동조합이 합의를 해주는 바람에 말도 안 되는 수수료제도를 쉽게 도입하게 된 거죠. 결국 노동조합이 현장 교사들을 사지로 내몬 꼴이 됐고, 이에 맞서 조합원들과 현장교사들이 수수료제도 개악에 반대하며 회사에 보충협약을 요구했어요.

 

회사는 유효기간이 2년인 단체협약을 노동조합과 합의했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새 수수료제도를 밀어붙이고 위탁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지 않는 교사들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 즉 해고하겠다고 협박을 했죠. 이 때 조합원은 물론 많은 현장교사들이 회사를 떠났어요. 똑같이 일을 하는데 임금이 수십만 원씩 삭감되자 버티지 못한 거죠. 그런데도 회사는 수수료제도 개선을 위한 보충협약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2008년 11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당시 지부장이었던 저와 사무국장을 해고했죠. 2010년 8월부터는 불매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를 들어 조합간부들을 하나둘씩 해고하더니 그 해 말까지 노조탈퇴를 하지 않은 모든 조합원들을 해고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이 두 가지가 주요 투쟁요구가 됐어요. 쌍차의 5대 요구안이나 현대차 비정규직 8대 요구를 세세히 외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우리 투쟁에 연대하는 동지들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이라고 바로 이야기 할 정도로 우리의 요구안은 분명했죠. 우리는 요구안 어느 하나를 양보하면서 다른 것을 따내지 않겠다고 수도 없이 공언했고, 내부적으로도 '선(先)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을 하나로 묶어 반드시 관철한다는 결의를 모든 회의 결정사항으로 명시했어요. 그래서 '단체협약 불가, 해고자 선별 유예복직' 안이 뼈대였던 2011년 3월 안은 말 할 것도 없고, '해고자 전원 동시 일괄복직, 후(後) 단체협약 체결' 안을 내세운 2012년 4월, 2012년 8월 안들을 모두 거부했어요.

 

하여튼 2012년 4월부터는 회사가 해고자 전원 동시 일괄복직 안을 제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선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핵심쟁점이 됐고, 투쟁 전개과정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싸움의 시작이 잘못된 단체협약이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지점 역시 단체협약 원상회복인 거죠.

 

그런데 노동조합 투쟁, 특히 최근의 비정규직 투쟁이 다들 현장에서 계약해지 되고, 계약직이 현장에서 밀려나서 복직투쟁 하는 것이 태반이잖아요. 우리 싸움은 이와 달리 해고가 된 상태에서 투쟁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고자 복직투쟁으로 일반화 시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더욱이 재능교육지부 투쟁에서 단체협약 원상회복의 의미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쟁취하는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인데도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이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내팽개치고 2012년 4월 안보다도 못한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종탑 쪽의 행동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따라서 재능교육 시청사옥 앞에서 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다시 원점에서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핵심쟁점으로 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거지요.


구체적으로 단체협약 원상회복의 내용을 말씀해주세요.

 

단체협약 체결 직후인 2007년에는 이현숙 집행부와 회사가 합의한 개악된 수수료제도에 대한 보충협약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거부했죠, 그런데 대다수 교사들의 임금이 회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삭감되면서 교사와 회원이 모두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전혀 회복이 안 되자 1년 만에 수수료제도를 다시 일방적으로 바꿨어요. 기존 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꾸긴 했는데 지독한 독소조항이 3개 있었어요. 그래서 이때부터는 3대 독소조항 폐지를 요구했어요. 그 중 하나는 회사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얼마 안 가서 슬쩍 없앴는데 나머지 두 개의 독소조항은 아직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요.

 

하나는 미수회비 자동충당제도라는 건데 말 그대로 회원으로부터 회비를 받지 못했는데도 회사가 임의로 교사들의 임금에서 그 액수만큼 자동으로 공제해서 가져가는 제도예요. 다른 하나는 마이너스 월별정산 이예요. 매달 새로 시작하는 회원보다 그만 둔 회원이 많을 경우 1과목당 7천 원씩 임금에서 차감하는 제도로 그만두는 회원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즉시 전가하는 제도예요. 이 두 조항은 재능교육에만 있거나 가장 악랄한 내용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교사들에게 매달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폐지시켜야 하는 핵심중의 핵심이죠. 그래서 2008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었어요.

 

다른 임금성 주요 요구사항으로는 현장교사들에게 복리후생조로 현금으로 지급했던 휴가비가 있어요. 다른 학습지회사에는 없는 것으로, 1999년 33일간의 총파업 투쟁을 통해 2000년부터 단체협약으로 쟁취한 것이죠. 이것 역시 회사가 2008년에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2009년부터 지급하지 않고 있어요. 이밖에도 그때 없어진 게 엄청 많아요. 어린이날 선물, 회원서비스, 장기근속년수에 따른 현물 지급 등등.

 

노동조합 운영과 노동조건 관련해서도 핵심조항이 여럿 있어요. 위탁계약서에 우선해 단체협약이 적용된다는 조항, 노동조합원에 대한 불이익처우 금지, 조합 전임자 배정, 노조사무실 제공 및 관리유지비 지급, 그만두는 회원에 대해 회사와 교사가 공평하게 책임지는 제도, 원거리 교실 관리교사에 대한 교통비 지급, 경조금 지급, 조합원 교육시간 및 신임교사에 대한 노동조합 소개시간 배정, 노동조합 홍보활동 보장 및 현장지국 사무실 내 노동조합 게시판 설치 등등.
 

출처 : 유명자 동지 페이스북


많은 이들이 단체협약이 원상회복 된 것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회사와 종탑 쪽이 지난 8월 26일 서명한 합의문에는 ‘(주)재능교육과 재능교육지부는 2008.10.31.자로 해지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라는 문구가 있지만 지금 재능교육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단체협약 조항은 단 하나도 없어요. 이것만 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게다가 핵심사항인 미수회비 자동충당제도는 '합의서 체결일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개선한다.', '마이너스 월별정산과 휴가비는 우선 논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만 봐도 뭐 하나 원상회복된 게 없다는 것이 도리어 분명하잖아요. 이것이 어떻게 ‘단체협약 원상회복’일 수 있겠어요?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연대했거나 관심을 갖고 지켜본 동지들 대다수는 이러한 사정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만하면 됐다거나 아쉽지만 현장에서 다시 노조를 일으켜 세우자고 해요. 최근 몇 년 동안 요구사항 전부를 관철하고 이긴 사업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만 해도 그게 어디냐라고 쉽게 생각하는 거죠. 어느새 양보와 후퇴가 타성이 되어버린 거죠. 더 좋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입장이 투쟁을 회피하고 양보안을 강요하는 세력들의 기반을 다져주는 데 있어요.

 

앞에서도 밝혔지만 재능교육지부 투쟁 요구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것은 단체협약 원상회복이에요. 또 우리가 양보하지 않았으면 충분히 선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을 모두 쟁취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종탑 쪽에 분노할 수밖에 없어요. 종탑 쪽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안이었기 때문에 합의하고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전혀 생각이 달라요. 종탑농성이 한계에 다다르자 내려오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거예요. 종탑 쪽도 종탑농성을 하면서 줄곧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주장했거든요. 수많은 회의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함께 많은 논의를 했고 노동조합의 핵심요구가 뭔지 가장 잘 아는 자들이 우리가 회사에 요구했던 내용의 핵심이 단 하나도 없는 합의문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잖아요. 그들은 직접 회사와 교섭을 하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봤을 것이고 그들 역시 회사에 다 보여줬을 텐데 회사와 종탑 쪽이 그 합의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담고 무엇을 뺐는지 몰랐겠어요? 종탑농성이 힘들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내려와서 다시 싸우면 됐어요.

 

더 황당한 것은 종탑 쪽이 낸 입장서예요. 입장서를 보면 2008년 10월 재능교육사측의 단체협약 일방파기 후 2012년까지 농성투쟁을 5년 넘게 진행하면서 삭발, 단식 등의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단체협약은 교섭석상에서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고 하고 있어요. 완벽한 거짓말이에요. 종탑 쪽이 자신들의 입장서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2012년 4월, 재능교육이 먼저 '복귀 후 단체협약 체결' 안을 제시했어요. 믿지 못하겠다면 공증도 받을 수 있고, 늦어도 2012년 안에 반드시 체결한다고도 했죠. 또 2012년 5월부터 진행된 교섭에 노동조합이 응했던 것도 기존의 회사 입장, 즉 '단체협약 불가, 선별복직' 안에 대한 입장변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노동조합 교섭간사였던 유득규가 회사 측 교섭간사에게 노동조합의 이러한 교섭개시의 전제조건을 전달한 후 회사의 입장변화가 있음을 노조 중앙위에 정식으로 보고했고 중앙위 결의를 거쳐 교섭이 시작됐어요. 그때 이미 회사는 모든 교섭위원들의 노동조합 직책을 명시해서 공문을 보내왔고, 1차 교섭에서 회사 대표교섭위원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이야기 하자는 지부장 발언을 100% 인정한다. 노측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어요. 11차례의 공식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교섭위원이었던 유명자, 유득규, 오수영 모두 단체협약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고 교섭회의록을 상호회람하며 수정까지 했으며, 노동조합 회의를 거쳐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단체협약 갱신체결이 포함된 노동조합 공식요구 안을 회사에 제시하기까지 했는데 단체협약은 교섭석상에서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종탑 쪽의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기만이자 사기예요.


사노신에서 쓰기도 했지만 이번 재능투쟁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도 있었다는 점인데요. 이에 대한 말씀도 듣고 싶네요.


우선 종탑 쪽에서 지적하는 '노조 민주주의'는 종탑에 올라간 시점의 전과 후가 있어요. 사노신 기사를 보면 ‘오만과 독단’이라는 표현이 있던데요. 그 내용은 제가 2012년 9월부터 재능지부 회의를 해소시킨 것이더라고요. “지부장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조합원과 소통을 해야 하나 재능지부 회의를 하지 않았다.”라는 비판이죠.
 

저는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왜 유명자가 회의를 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그들이 솔직하게 말했으면 해요. 학습지노조는 정말 종탑 올라가기 전까지, 투쟁하는 5년 동안 노조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를 지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어요. 그 중심이 강종숙 위원장이었고요. 위원장은 워낙 사소한 것 하나도 신경을 썼고,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도록 신경을 써왔어요. 일반적으로 투쟁사업장, 특히 장기투쟁사업장에서 투쟁 중에 선거를 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보궐선거까지 수차례의 선거를 진행했어요. 우리 사업장은 총파업 사업장도 아니고 해고자만 조합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각기 회사도 다른 현장 조합원들이 있는 노조예요.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소수 간부들 위주의 투쟁이었고, 재능교육의 끊임없는 도발 때문에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선거 총회를 무시할 수 없었던 거죠.
 

첫 번째 임기를 마칠 때가 되었는데도 투쟁이 끝날 기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조합원 전원 해고 등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었죠. 그 즈음 솔직히 두려웠고 도망갈 생각을 많이 했어요. 투쟁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하겠지만 지부장은 더 못하겠다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때 저는 투쟁이 어려웠던 것보다 지부장의 이름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계속 투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이미 당시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상태가 최악이었거든요. 우리의 요구는 제 첫 번째 임기 막바지에 해고된 이들까지 해고자 12명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이었는데 정작 투쟁에 전면적으로, 전임으로 결합하는 이들은 서너 명 뿐이었죠. 솔직히 저는 지부장으로서 과외 등 알바하는 것을 조직적으로 하지 말 것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았죠. 위원장도 해고자회의를 소집해서 당시 재정이 모두 소진되더라도 해고자 전원에게 1/n로 지급할테니 해고자 전원이 전면적으로 투쟁에 결합할 것을 제안했지만 역시 거부됐고요. 지부회의 할 때 역할 분담도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근근이 1주일에 1번 야간 농성하는 정도였죠. 주간, 주말농성도 수시로 이런저런 이유로 바꿔달라거나 할 수 없게 됐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그만이었어요. 그나마 천막농성 할 때 철농 한 번 안했던 해고자가 3명이나 돼요. 매주 금요일 진행했던 정기집회에도 언제나 해고자 일부만 참여했지요.
 

재능교육이 용역깡패들을 고용해서 본사 앞 집회신고를 하는 바람에 노동조합이 본사 앞 집회를 하려면 집회신고 대기 장소에서 대소변 보고 밥 먹어가면서 며칠씩 노숙을 해야 가능했죠. 그래서 집회신고는 남성들만 가능했어요. 남성 조합원들만으로는 모자라서 연대동지들까지 집회신고를 위해 혜화경찰서 앞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어요. 마침 그 때 오수영은 급성패혈증으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고요. 농성장 지킴이 한 명, 혜화서 집회신고 대기자들 오줌통 비워주고 밥 갖다 주는 사람 한 명, 농성장 교대자 한 명이 필요했는데 이현숙이 문자로 농성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2007년 단체협약을 체결해서 이번 투쟁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지만 해고자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갔는데 당시 상황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문자로 앞으로 농성에서 빼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러자 다시 농성하겠다고 농성장에 나타났고 저는 가라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고 그 때부터 지부장이 폭언폭행을 했다며 모든 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회의 진행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도저히 제대로 된 회의를 할 수 없었어요. 그 와중에 오수영은 7월, 유득규는 8월에 각각 지부 사무국장과 본조 사무처장 직을 사퇴했어요. 교섭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죠. 자신들의 책임은 다 내려놓은 상태에서 저만 무슨 광대도 아니고 결의사항조차 지켜지지 않고 회의를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 몇 달째 되풀이 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회의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한 번 묻고 싶어요.
 

이밖에도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요. 이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사노신이 재능지부 해고자들과 함께 하는 회의를 하지 않았던 것을 ‘오만과 독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회의를 할 수 없었던 과정과 맥락이 있다는 말씀인거죠.


그렇죠. 그래서 저는 그때 재능교육지부 해고자회의를 해소했던 것이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어요. 투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계속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속이다 사퇴요구를 받고도 악착같이 8개월 동안 버티다 천막농성 8일 만에 총사퇴를 한 자들이 종탑 쪽에 4명이 있어요. 자신들이 해고되기 전까지는 아예 투쟁에 결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때마다 문제제기를 하고 노조 지침을 거스르기까지 했지요. 해고된 후에도 농성과 집회에 제대로 결합하지도 않았고요. 그러던 자들이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게 노조 민주주의 인가요? 그런 자들과 야합하고, 투쟁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이현숙 집행부를 지지하며 우리 투쟁에 결합하지 않다가 말도 안 되는 양보안을 들고 와서는 그 안을 강요하다 안 되면 다시 사라지고 투쟁의 발목을 잡던 서비스연맹과 한 편이 된 자들이 노조 민주주의를 말 할 자격이 있나요? 한진과 쌍차의 기업노조가 다수이니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노조 민주주의라는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거지요.
 

종탑에 올라간 이후는 더 했어요. 자신들도 동의한 투쟁계획마저 모조리 폐기시킨 채 오로지 지도부 교체에 올인 했지요. 그나마 그것도 노조 규약, 규정을 모조리 어겨가면서요. 중재도 일체 거부했지요. 오히려 중재에 나섰던 동지들을 비난하고 겁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어요.
 

합의 시점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지요. 학습지노조는 산별노조예요. 교섭권과 교섭체결권 모두 당연히 본조에 있지요. 위원장이 산하 조직의 교섭단위에 교섭권을 위임할 수 있지만 여전히 교섭 체결을 위해서는 본조 중앙위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해요. 그런데 잠정합의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교섭권을 재능교육지부에 위임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황창훈이 이렇게 말했어요. "전 위원장인 강종숙 당신이 하지 않았냐?"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강종숙이 "언제 어느 회의에서 했냐?"라고 되묻자 "본인이 교섭 한 번 안 들어가고 한 게 교섭권을 위임했다는 증거 아니냐?"라고 황창훈이 답을 했죠. 그렇다면 제가 교섭권을 위임받았다는 건데 저는 그런 적이 없거든요. 11차례 교섭 때마다 위원장에게 보고를 했고, 당시 교섭간사였던 유득규도 재능교육지부 해고자 신분이 아니라 본조 사무처장 자격으로 교섭위원으로 임명된 거였고요. 황창훈의 말을 뒤집으면 결국 재능교육지부에 교섭권을 위임조차 하지 않은 거예요. 교섭체결을 위한 본조 중앙위 사전 승인도 엉터리고요.


당시 종탑 쪽의 주장대로 해도 중앙위원이 황창훈과 오수영 뿐이었어요. 게다가 오수영은 종탑에 있었고요. 재능교육지부 총회를 한다는 날에서야 부속합의서(검토) 안을 들고 온 황창훈이 그 날 종탑에 올라가서 중앙위를 했다고 하는데 시간상으로도 전혀 앞뒤가 맞지도 않아요. 백번 양보해서 중앙위를 했다고 쳐도 문제는 남아요. 학습지노조 역사상 이번처럼 졸속으로 절차를 진행한 예는 없거든요. 같은 날에 중앙위와 지부 총회를 하다니요? 2007년에 이현숙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2천일이 넘는 투쟁, 그것도 타 지부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의 힘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투쟁을 진행했는데 달랑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자 두 명이 30분도 채 안 되는 동안 본조 중앙위를 해서 통과시켰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요?

 

재능교육지부는 전국사업장이기에 잠정합의안에 가서명하기 전에 그 안을 들고 전국에 있는 조합원들을 직접 찾아가서 설명회를 개최했어요. 대의원대회를 통해서나 지회, 분회 집체 설명회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조합원 설명회를 하고 의견수렴과 조율을 한 후, 추가로 교섭할 것이 있으면 하고, 결렬해야 할 것 같으면 결렬하고 했죠, 2007년에 이현숙 집행부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것도 잠정합의하고 설명회도 거치지 않고 바로 총투표를 강행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조합원들이 납득할 수도 없는 안을 내놓고 당일 곧바로 찬반투표로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이게 바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고 조합원들을 거수기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투쟁 내내 전 집행부를 문제 삼았던 거예요.
 

또 있어요. 투쟁이 장기화되고 서비스연맹이 노골적으로 양보안의 수용을 강요하다 투쟁에서 철수하기를 반복하면서 내부에서도 계속 동요가 있었어요. 이현숙을 중심으로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해서 결국은 종탑 쪽이 모두 한 통속이 된 거죠. 그래서 교섭이 한창 진행되던 2012년 6월에 있었던 학습지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선(先)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이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재론하려면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 또는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라고 대의원 만장일치로 결정까지 해야 했어요. 이번 합의는 이러한 대의원대회 결의사항을 정면으로 뒤집은 거예요. 본조 하급 단위인 재능교육지부 해고자 몇 명이 '재능교육지부 총회'를 통해 본조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내팽개친 거죠. 저들이 말하는 노조 민주주의의 본질이 이런 식이예요.


출처 :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홈페이지 (gonan.or.kr)


앞으로 환구단 농성장은 유지하고 월요일 1인 시위, 목요일 기도회, 금요일 집회가 투쟁계획의 축인데요. 이후 투쟁전술의 변화라던가, 환구단 농성장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은데요.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신지요.

 

방금 말씀하신 투쟁들은 지난 2천여일 동안 해오던 투쟁들이에요. 물론 다른 투쟁사업장들도 비슷하고요. 지금 자본에게 알맹이까지 다 보여준 우리 상황에서 기존과 다를 바 없는 투쟁만으로 요구안을 쟁취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지난 9월 30일 기한 내에 재계약서를 안 쓰고 농성투쟁을 계속 이어간다고 결정하기까지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있었어요. 투쟁을 지속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투쟁하는 방식에 대해서요. 결론은 여전히 지금까지 해 왔던 투쟁들을 중심에 놓고 투쟁을 더 확장해 나간다는 것이었어요. 이미 공정위와 국세청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내부 일감몰아주기 처벌촉구 투쟁이 진행 중이에요. 투쟁장소도 재능교육 시청사옥 농성장을 벗어나 혜화동 본사는 물론 타워팰리스, 가산동 사옥 등으로 확대해 나갈 거고요. 회사는 이미 우리가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 굴리고 압박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대단위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2월 종탑농성이 시작된 이래 우리들의 투쟁에 등을 돌린 수많은 단위와 개인들 모두에게 우리 투쟁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설득하고 투쟁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에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작은 변화가 감지되기도 해서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아요. 특히 지난 6년 가까이 음으로 양으로 지지하며 함께 해 오고 있는 동지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함께 굳건하게 싸워나가고 있어서 더 힘을 내기도 해요.
 

사노신에게도 조만간 투쟁에 동참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될 거예요.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텐데요.


솔직히 투쟁해 오면서도 “이렇게 싸우는 것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지난 6년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일단은 몸이 너무 힘들죠.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힘든 것은 과연 지금 우리를 투쟁사업장으로 인정하는 곳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예요. 가끔 우리가 운동사회에 짐이 된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재능교육은 제 청춘을 모조리 바친 회사이고 노동조합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친 곳이에요. 학생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던 제가,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고가의 사진기를 마련할 돈을 벌려고 들어왔던 재능교육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33일 간의 총파업에 앞장서고, 노조 간부를 거쳐 지부장을 하면서 삭발에 단식까지 하며 2천일 넘는 거리농성을 하도록 내몬 것이 있어요. 인간의 양심과 상식에 도전하는 재능교육이라는 괴물에 대한 분노, 함께 노동조합원이 돼서 싸웠던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그 희망, 단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앞서 싸웠던 열사와 동지들, 민주노조에 대한 자부심…….
 

아마 강종숙, 박경선 동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별다른 이견 없이 자연스럽게 저들의 거짓 합의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게 됐죠. 쉽지 않은 결심이었지만 서로를 확인하며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고 더 열심히 투쟁하자고 결심한 거라고 생각해요.


환구단 농성에 결합하는 단위가 줄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동지들의 투쟁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많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면요.


항상 얘기했지만 투쟁이 장기화되어서 끝나면, 사실은 그 주체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주체들도 서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생기고. 너무 심신이 피폐해져서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지다보면 연대단위가 하고 싶은 말들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반대로 민주노조 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분명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몇 년 전부터 우리 집회 때 얘기한 것이 “동지들이 여기 우리 투쟁에 연대를 한다면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에도, 조합원들이 양보를 하거나 후퇴를 하거나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그것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갖고 말해 달라.”였어요.
 

종탑농성을 할 때에도 종탑에 있는 여성노동자 2명이 부담스러워서, 이들이 다른 생각할까봐 입장을 못 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한테도 그랬어요. “그렇게 계속 저 쪽을 건드리는 입장서 내다가 그들이 혹시나 잘못 생각하면 (어떡하냐).” 그 얘기 듣고. 우리를 지지하는 연대 동지가 열 받아서 이렇게 말했대요. “땅 위에서는 못 죽나?”라고. 저는 운동진영이 종탑농성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어야 했던 때를 8월 23일 잠정합의안이 나왔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 아니 모두 침묵했어요.
 

특히 원칙을 고수하고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 방향을 제시한다고 자부하는 사회주의 세력들, 선진활동가 세력들이 침묵하거나 종탑을 옹호했어요. 비단 이 때만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투쟁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침묵 속에 숨어버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많이 절망스러웠어요. 말 따로 행동 따로. 민주노총이나 산별연맹들의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그들의 타협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일삼던 세력들이 정작 그들과 손잡고 단위사업장 현장투쟁을 자본에게 갖다 바친 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거나 오히려 그들 편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한심스럽고 암담했죠.
 

그래서 재능교육지부 투쟁은 절대로 이렇게 끝나서는 안돼요. 재능교육 시청사옥 농성자 3인은 물론 다수의 침묵을 뚫고 투쟁에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은 투쟁 요구 쟁취를 위해 질기게 투쟁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 사태의 문제점과 그 교훈에 대해 운동진영 전체가 공론화하고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투쟁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의 투쟁을 바라만 보지 말고 더 많은 동지들이 힘을 보태주실 것을 부탁드려요. 저희들도 지난 6년여의 투쟁을 밑거름 삼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대신 할게요. 투쟁!


인터뷰 : 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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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말하기와 공감이 우리의 희망이다

  • 분류
    여성
  • 등록일
    2013/11/21 14:57
  • 수정일
    2013/11/21 14:5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북콘서트 하늘을 덮다>에 다녀와서



지난 9월 6일 저녁 7시,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북콘서트, 하늘을 덮다>가 진행되었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북콘서트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운동 사회 내에서 백서가 단행본 형식으로 정식출간된 것도 드물다. 지금까지 접해온 사건들 중에는 대책위원이나 피해자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이 소진되면서 백서발간이 유야무야되는 일도 상당수 있었다. 원 사건이 ‘터지고’,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가해자 옹호와 피해자 비난, 사건진위에 대한 의심이 줄줄이 이어져왔다. 그것들을 2차 가해로 명명하고, 항의하면서 일정정도 ‘처리’ 혹은 ‘해결’과정을 통과한 이후에는 다들 사건을 다시 되짚어볼 여력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민주노총 김00사건의 백서 역시 완성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백서책을 북콘서트에 가기 전에서야, 찬찬히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보니 그 전보다 더욱 무게감이 느껴졌다. 북콘서트를 앞두고 다시 마주한, 피해생존자 선생님이 쓰신 그날의 일들은 글로만 읽어도 버거웠다.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 피해자지지모임’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지지하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을 함께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과 그 이후 일련의 일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멈출 수 없던 이야기들


이번 북콘서트는 크게 2부로 진행되었다. 제 1부는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에 촛점이 맞춰졌고, 제 2부에서는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일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제 1부에서는 민주노총 김00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의 구성원들이 10개의 키워드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까지 5년째 이어져왔던 투쟁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빨간 코트라는 키워드는 지지모임이 결성 전부터 당시 전교조 집행부의 사건 무마 시도에 맞서 1인 시위를 했던 이향원 선생님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비례대표라는 키워드에서는 2012년 유달리 비가 많이 오던 봄의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그때 신림동에 있던 이정희 사무소 앞에서 매일같이 1인시위를 했던 전교조 조합원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목소리를 높이던 희망광장 동지들, 잡년행동의 여러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키워드 중 하나는 ‘김변(호사)’라는 키워드였다. 사건 초기의 일이라 잘 알지 못하던 일이었는데, 이번 북콘서트를 통해서 가해자의 변호사였던 ‘김변(호사)’가 가해자를 옹호한 논리와 합의를 시도한 경과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열 개의 키워드를 둘러싼 이야기는 주어진 시간을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짧게 끝내달라고 눈치를 줘도 소용이 없었다. 각 키워드에 담긴 내용들은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엮이기도 반복되기도 하면서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희망과 의지를 전했다.
 

또다른피해자모임(2차 가해자)의 천막농성, 천막의 문구는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이
운동의 분열로 여겨지고 배척되어왔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운동사회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기


2부에서는 대리인, 대책위, 진상조사위 등을 통해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1부가 길어지는 바람에 2부에서는 쟁점에 대해 토론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2부 발언자의 발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운동사회의 성격과 성폭력 사건해결 과정에서의 특수성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발언자에 따르면 운동사회는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내부를 동질적이라고 가정하는데, 성폭력 사건 제기는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행위로 운동사회에서 배척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문제제기 과정에서 피해자는 많은 경우 그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상실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을 되돌아보아도, 발언자가 지적한대로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기존의 관계에서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하는 경우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고, 민주노총 김00사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비교적 짧은 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2부에서는 통합진보당 이00, 충남대련 김00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소개와 공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획단계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날 제기한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에 대한 내용은 이 사건이 당면한 문제에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특히 이 사건은 2차 가해자들의 적극적인 반발이 두드러졌다. 이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2차 가해로 매도당해 명예가 실추되고 인권이 유린되었다며 ‘또다른 피해자 모임’을 꾸려 민주노총 충남본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선전을 진행했다. 이 사건을 들으며 마음이 착잡했다. 단지 충남에서만 벌어지는 일 같지 않았다. 최근 들어 명예훼손을 이유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제소하는 일들이 자주 들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피해자가 고소를 하면 ‘어떻게 부르주아의 사법기관을 믿느냐’며 반발했던 소위 운동세력들이 이제는 ‘부르주아 사법기관’에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막아달라고 제소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콘서트 자리는 단순히 민주노총 김00성폭력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공유되는 장이 되었다.


어설프고 투박했을지라도...


<북콘서트, 하늘을 덮다>의 진행은 매끄럽거나 세련되지는 못했다. 행사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고, 무대에서의 발언 역시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계획된 주제를 벗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발언자들의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에 다 담아내려 한 기획 자체가 욕심일지 모른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발언자들이 성폭력 사건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분노와 의지, 회의 등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번 북콘서트는 단순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에 한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사회 성폭력에 저항해 온 목소리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열었다.

특히 운동사회 내에서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는 와중에 마련된 자리라서 더욱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러한 역풍에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고,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의 북콘서트는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논쟁과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후에도 다양한 주체들이 고민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이어졌으면 한다. 각자의 머리 한 구석에 박혀있는 다양한 경험들이 공유되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성폭력과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응하는 방식들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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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고] 여름부터 지금까지, 기아차 화성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3/11/20 07:55
  • 수정일
    2013/11/20 08:0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 기아차 화성공장 KD외주화 저지 투쟁 평가
 

이동우 (기아차 화성공장 해고노동자)


지난여름부터 투쟁하는 동지들의 SNS상에 간헐적으로 올라오던 기아차 화성공장 KD외주화저지 투쟁이 최근 마무리되었다. 2008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강제해산과 기아차지부 사내하청분회로의 편제 이후, 간헐적인 해고자복직투쟁과 임단협 소식 이외에는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현장투쟁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던 기아차 화성공장이었다. 게다가 연초 비극적인 故윤주형 열사의 자결과 장례투쟁의 이야기들 속에서 전국의 투쟁하는 동지들이 이후의 현장투쟁을 많이들 걱정하던 터에 들려온 투쟁 소식이다.

특히나 대공장 관료주의와 조합주의 하에서 비정규직투쟁(1차 하청)이 독자적이며 자주적으로 펼치기 어려운 조건이기에 기아차 화성공장의 KD외주화 저지 투쟁은 주목할 만하다. 천막농성 58일/민중광장 옥상농성 25일을 전개하며 끈질기게 싸웠던 KD외주화저지 투쟁을 돌아본다.


KD공장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부품을 수출해서 현지에서 조립,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주로 자동차의 수출에 이 방식이 취해진다. 완성차를 수출하는 것보다도 관세가 싸게 먹히고 현지의 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가 있다는 점 때문에 유리 - 매일경제

KD공장은 완성차의 부품을 포장하는 일을 하는 공정이다. 화성공장에서는 정규직 70여명, 비정규직(1차 하청과 계약직 포함) 13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소수의 계약직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아차지부의 조합원으로 조직되어 있다.

사실 기아차 사측은 어느 공정, 어느 공장에서나 원가절감을 이유로 외주화 공격을 시도했으며 KD공장도 물량과 부품을 빼내는 외주화를 수시로 감행했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 노동조합은 부분적인 외주화를 용인하고 특근과 장기적 고용을 보장받는 방식의 타협이 이뤄졌다. 사측 또한 파국적인 전면외주화보다 주고받는 식의 부분외주화를 통해 노동조합의 반발을 무마하고 기회비용을 줄이면서 서영과 글로비스로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을 택하곤 했다.
 

본관 항의방문



KD공장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지회로 조직되기 전, 기아 원청사측이 특히나 고령의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했던 공장이 바로 KD공장이다. 화성공장 전반이 타 완성차 공장보다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KD공장은 평균치를 상회한다. 원청사측은 정규직 정년을 넘긴 고령노동자들을 고용해서 그야말로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것은 다반사에 연월차 사용을 막고 특근, 철야를 강요하며 불만을 표하면 해고로 위협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조 건설의 열망이 더 컸던 것 또한 사실이다. 비정규직지회가 건설되기 전의 업체 노동자회가 건설된 몇 안 되는 곳이 바로 KD공장이었으며, 비정규직지회 건설과 사수의 핵심 업체 중 하나였다. 이러한 현장투쟁의 활성화는 투쟁의 성과로 남기도 했다. 비정규직지회 단협 체결 당시 이미 합의했던 정년 회의록이 단협을 상회함에도 사측에 의해 인정받은 것이 좋은 예이다. 당시 정규직 내에서도 자신들의 정년보다 훨씬 높다라면서 이야기되곤 했는데, 원청사측에게 고령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부려먹은 것에 대한 응징과 보상의 측면으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지회 건설 이후 원청사측에게 핵심 업체로 찍혀 여러 가지 공격을 받기도 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모범사례이겠지만 사측이 보기에는 조직력을 와해시켜야 하는 눈엣가시기 때문이다. 이에 원청사측은 130여명의 한 업체로 조직되어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두 개의 업체로 쪼개는 분사화 공격을 단행했고 아쉽지만 막아내지 못한 아픔도 있다.

1사1조직 강제통합이 있은 후 분회 차원에서의 현장투쟁이 아쉽기만 했던 지난 6년 동안 KD공장에서는 소중한 현장투쟁을 만든 기억도 있다. 2012년 계약직 정직 전환 투쟁이 그 예일 것이다.

그간 기아 원하청 사측은 정년자 자리에 2개월 안에 1차 하청 신규 채용하라는 단협 조항을 번번이 어겨왔다. 그리고는 계약직을 채용, 사측에 순응하는 계약직을 중심으로 임단협 합의 이후 정직으로 전환하는 꼼수를 부려왔다. 지부, 지회, 분회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했고 한 술 더 떠서 계약직 노동자들의 노조로의 가입을 막아오곤 했다. 우연적이긴 했지만 소수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의 불만을 이유로 조합원 가입원서를 제출했지만 공식적인 이유조차 없이 반려되거나 무시되었다.

이렇듯 사측은 인력운용의 완충지대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노동자들을 채용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조합주의의 한계에 갇혀 조직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 계약직 노동자! 비정규직 내의 비정규직인 계약직 노동자들의 정직전환 투쟁에 KD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한 것이다. 물론 즉각적인 정직전환의 요구가 아니라 임단협 이후 합의된 정직전환 인원에서 하청사측이 근속을 무시하고 가려 뽑으려는 시도에 대한 투쟁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도 하지 못했던 연대의 목소리를 냈던 투쟁이었다.

 

 

소문에서부터 시작된 투쟁

사실 화성공장에서 2013년에 외주화 공격이 있을 것이란 소문은 활동가내에서 횡행했었다. 도장과 플라스틱, KD공장이 그 중 하나일 것이란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지금까지의 경험상 사측의 공격으로 기정사실화되곤 했다.

연초 이러한 소문이 현장에서 돌기 시작하자 KD공장 대의원들은 지부와 지회 대의원대회를 통해 집행부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또한 사측의 외주화 공격이 사실이라면 지부 차원의 공동 대응을 결의해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당시 22대 기아차지부 지부장은 지회 대의원대회에서 확인하고 문제를 풀 것을 요구했고 지회장은 확인된 외주화 계획은 없으며 만약 시도가 있다면 지회 차원에서 막아낼 것임을 공언했다.

그런데 이러한 투쟁 결의와 공언을 그야말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휴가를 다녀온 직후인 8월초 기아 원청사측은 KD물량이 줄어들고 있으며 수익성 하락을 이유로 KD외주화 강행이라는 여론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부서장 명의의 홍보물과 대자보가 현장에 나돌았다. 관리자들과 사측 조합원들이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고용이나마 보장받아야 한다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사측은 아예 외주화를 동의하는 서명까지 조직하면서 공세적으로 나왔다.

현장조합원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측의 외주화 서명을 거부하고 투쟁을 결의한 것이다. 투쟁 초기 200여명 정규직/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외주화가 고용불안을 전제로 하기에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함께 할 것을 결의하고, 지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함을 지회에 요구했다.

8월 중순 부터는 현장 집회, 선전전, 대자보 부착, 홍보물 배포 등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투쟁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9월 초에서는 KD공장 앞에 정규직/비정규직 천막이 두 동 세워졌다. 비상시기니 만큼 현장조합원들이 먼저 비상한 각오로 투쟁할 것을 주문하고 실천에 돌입한 것이다.


내 일터는 내가 지킨다!


천막 농성에 돌입한 이후부터 조합원들이 매일 아침 출투, 중식 및 퇴근장 선전전을 했다. 공식적으로 외주화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다시금 재천명하지 않는 화성지회에 대한 항의방문도 이어졌다. 임단협 투쟁 과정에서 불거진 KD외주화 공세가 임단협 교섭에 묻히지 않도록 조립공장 현장순회도 꾸준히 이어갔다.

10년 넘게 투쟁하고 노동하면서 지냈던 KD공장에서 하루아침에 공장 이곳저곳으로 찢어지고 노동조건이 후퇴시키는 사측에 대한 분노도 표출됐다. 9월 3일 화성공장 본관 진입 및 로비 점거 투쟁은 이러한 조합원들의 분노를 보여준 자리였다. 외주화 시도에 항의하는 본관 앞 집회를 기아 원청사측은 문을 걸어 잠그고 모르쇠 했고, 이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공장장을 만나 따지겠다면서 로비로 진입, 연좌농성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의 물리적 충돌을 빌미로 사측은 담당대의원을 비롯한 3명의 조합원에게 고소고발을 자행했다.

 

화성지회의 입장변화, 투쟁하는 조합원
 
이러한 조합원들의 분노는 사측과 더불어 화성지회에도 향하게 됐다. 연초에 공언했던 화성지회의 입장이 임단협 마무리 국면을 맞이하면서 변화된 것이 이유였다. 조합원들은 교섭이 한창인 소하리로 몰려갔다. 20~30여명의 조합원들이 조퇴와 월차를 쓰고 교섭장으로 달려가 지부장과 지회장에게 KD외주화를 함께 막자고 호소했다. 그 시간 화성 공장에서는 비정규직 조합원 한 동지가 고용불안과 투쟁하지 않는 노동조합에 대한 답답함으로 음독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부장, 지회장과 상집간부들은 임단협 교섭을 빌미로 면담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이에 거칠게 항의하는 조합원들에게 당시 지부와 지회 상집간부들은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며 교섭을 방해하는 것이냐며 비난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교섭장 앞에서 면담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지회장은 조합원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 심사숙고하겠다는 두루뭉술한 약속만 했다. 끝내 외주화 자체를 막겠다는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연일 교섭장 상경과 봉쇄투쟁이 이어지고 지회 항의방문과 공청회가 진행되었다.

이 속에서 화성지회의 입장은 “기 합의된 엔진공장 신설을 KD공장을 허물고 할 수 밖에 없다, KD외주화는 그룹본사 차원의 정책이기에 더 큰 투쟁과 희생이 요구된다”라며 사실상 외주화 수용입장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입장 선회는 200여명의 KD조합원들에게 큰 혼란으로 다가왔다. 투쟁 초기 담당대의원이 공석이 된 정규직 조합원 70여명은 교섭권을 지회에 일임하고는 제일 먼저 투쟁에서 후퇴했다. 두 개의 업체로 나눴던 비정규직 대오에서도 이탈이 발생했다. 그나마 현장투쟁력이 상대적으로 나았던 업체의 조합원들은 정규직 대오의 이탈을 예상하면서 투쟁의 의지를 다졌지만, 다른 업체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그러지 못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전적동의서에 서명하면서 사실상 지회에 교섭권을 위임한 것이다.


김남규 동지의 공사강행 저지투쟁


“심정은 이해하나, 고뇌에 찬 결정”


결국 임단협 잠정합의가 이뤄진 새벽, 화성지회는 KD외주화를 합의하는 고용소위원회 회의록을 작성했다. 회의록은 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한 고용보장 내용이 담겨 있으나,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일자리는 오리무중이었다. 여기에 45세 이하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는 정규직 채용의 자격을 부여한다고 했다. 다른 업체로 전적하는 고령노동자들의 정년문제나 계약직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는 빠진 회의록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가르고, 45세 이하 젊은 노동자와 나머지 노동자를 가르고, 고령노동자와 계약직은 배제된 전형적인 투쟁대오 갈라치기 회의록이었다. 그리고는 10월에 공사를 진행한다는 합의.

다음 날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와 더불어 23대 임원선거에 대한 공고가 게시됐다. 통상 다음 집행부 선거가 공고되면 현 집행부의 임기는 종료된 것으로 보는 관례에 비추어 22대 지회 집행부의 KD외주화 회의록은 임기 종료 하루를 앞두고 졸속적으로 조합원의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규 엔진공장 증설과 KD공장 외주화 저지를 함께 가져갈 수는 없었는지, 새로운 집행부와 KD조합원들이 외주화 저지 투쟁을 할 수 있게 차기로 넘길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나 회의록은 체결되었다.

이후 진행된 화성지회장 항의면담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10년 넘게 KD공장에서 일한 조합원들의 반발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집행부의 고민과 고뇌에 찬 결정을 이해해달라는 이야기뿐이었다. 지부, 지회, 분회가 외주화를 용인한 가운데 결국 외주화 철회와 고용안정을 위해 투쟁하는 수십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에 연대하는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남은 것이다.

화답하듯 사측은 KD조합원 200여명에게 10월 공사 유급 휴무를 공고했다. 정규직은 내년 6월까지, 비정규직은 올해 말까지. 계약직 노동자들은 해고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연일 포클레인과 구사대를 동원해서 공사강행을 시도했고 저지하는 조합원들을 몸으로 밀어냈다. 사진채증을 하며 업무방해 고소고발 협박과 비아냥거림도 서슴지 않았다.


고립된 투쟁, 완강한 저항


이미 임단협이 종료된 9월 중순부터 기아차지부는 지부 7개 팀, 지회 8개 팀이 참여하는 선거전에 돌입해 있었다.(분회 선거는 지부, 지회 선거가 마무리된 이후 진행) 그렇지만 투쟁하는 조합원이 있고 고용불안에 떨고 있음에도 KD외주화문제는 쟁점화되지 못했다.

당시 화성지회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정 선거를 빌미로 공장 안 집회와 선전전을 하거나 개별적인 유인물 발행과 현수막 게시를 자제를 요청했다. 다수의 활동가나 현장조직들이 선거전에 뛰어든 마당에 이러한 선관위의 입장표명은 공장 안의 연대를 위축시키고 선거전에 KD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 여기는 단위들에게 좋은 핑계거리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KD조합원들은 사측의 공사휴무에도, 공사강행 탄압에도, 선거전에 묻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투쟁을 이어갔다. 강제 휴무 전, 계약해지를 당한 계약직 노동자 중 한 동지가 본격적으로 KD외주화 투쟁에 결합했다. 아침/중식/퇴근장 선전전을 매일 진행했다. 조를 나눠 천막농성장을 지켰다. 사측과 KD외주화를 용인하는 세력들의 유언비어와 비난이 담긴 문자가 전공장적으로 돌아도 흔들리지 않았다. 공장 안의 연대 대오는 비정규직 지회장 후보를 내세운 동지들을 비롯한 소수였지만 집행부가 합의하면 끝이라는 패배의식을 뚫고 완강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 속에서 조합원들이 훨씬 많은 안 공장(조립/도장)으로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민중광장 옥상농성이 계획되었다. 백 명이 넘는 구사대의 공사강행 침탈에 수십의 대오가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공사를 저지하고는 있지만 선거 국면이 지나가면 직접적인 침탈이 예상되기에 더 수위가 높은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10월 6일 새벽 한 동지가 민중광장 옥상에 올라 몸에 줄을 묶고 “조합원 다죽이는 KD외주화 반대! 고용안정 쟁취하자!!”란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선거운동 한 달 동안 KD외주화저지 투쟁은 이렇게 계속되는 선전전과 사측의 공사침탈 저지투쟁, 조합원들과 지회, 분회에 투쟁을 촉구하는 옥상농성으로 이어졌다. 물론 계속되는 투쟁에 대한 SNS상의 선전과 연대호소도 병행되었다.



지역 연대의 조직과 투쟁의 마무리


옥상 농성이 9일을 지나고, 노동조합의 외면 속에서 고립된 싸움으로 이어지는 KD투쟁이 알려지면서 지역 연대의 흐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지역의 정치단체와 정당, 전국의 투쟁하는 사업장의 동지들과 활동가들이 KD투쟁을 지지/연대하기 위한 실천을 시작했다. 급박하게 지지유인물을 찍어 공장으로 달려왔다. 함께 선전전을 하고 간담회를 통해 연대의 방안을 모색했다. 이에 연대동지들은 지원모임을 결성, 주중 퇴근장선전전에 결합해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지지현수막을 보내줬다. 또한 사측의 공사침탈이 있을 때마다 공장으로 달려와 함께 할 것을 찾거나 연대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SNS상으로 상황을 전파했다.

이렇게 지역연대가 조직되기 시작했지만, 공장에서의 투쟁은 투쟁대오의 점진적인 유실과 더불어 지난하게 진행되었다. 기존 본관 투쟁 건을 포함해서 공사 저지, 옥상농성을 이유로 기아 원청 사측은 총 4명의 동지(담당 대의원과 옥상농성을 하는 동지, 조합원 2명)들을 고소 고발했다. 휴무에 들어간 조합원의 가정으로 두 번이나 가정통신문을 보내 KD외주화 투쟁을 비난하고 징계협박했다. 휴무중임에도 천막농성장을 계속 찾는 조합원들에게는 경고장을 보내고 핵심동지들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노동조합이 외면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사측의 탄압은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했다.

그래도 투쟁대오 내에서는 마지막까지 물러설 수 없는 투쟁요구가 있었다. 외주화 자체는 우리 힘이 모자라 막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기존의 정년 회의록이 외주화로 휴지조각이 돼버리는 고령노동자들,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노동조합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계약직동지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 각 업체로 찢어지면서 그 곳에서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밀어내는 방식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명확했다.

화성지회 신임 지도부가 들어선 가운데 외주화 철회가 아닌 고용에 관한 보충협의가 진행되었다. 사측은 다시 한 번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백여 명의 구사대를 동원해서 저지하는 조합원을 끌어내고 (정규직)천막을 침탈했다. 계약직 해고자에 대한 공장출입을 불허하고 징계위 협박을 다시금 자행했다. 마지막 회의록을 작성하면서까지 탄압은 지속되었다.

결국 KD외주화 저지 천막농성 58일차, 민중광장 옥상농성 25일차 아침 40여명의 조합원들과 옥상농성을 했던 동지는 기간 투쟁의 성과와 우리의 한계를 함께 이야기하며 회의록을 작성했다.

 


하지 못한 것, 우리에게 남은 것


외주화는 당사자들의 고용불안 뿐만 아니라 공장 밖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를 확대하는 자본의 노동정책이다. 수익성 운운하며 경영합리화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외주화를 단행한다. 그렇기에 우리 노동자들은 외주화를 반대한다. 멀쩡히 일 잘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들 마음대로 여기 저기 찢어 놓고 기존의 노동조건, 투쟁성과를 무로 돌리려는 시도이기에 반대했다.

그렇지만 KD외주화를 저지하지 못했다. 지부, 지회, 분회가 안 될 일이라고 투쟁조차 시도해보지 않았고, 고립되는 정세 하에서 분투했지만 투쟁 대오의 유실 속에서 결국 외주화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현장 조합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직권조인하면 현장투쟁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관료주의와 노동조합을 욕하고는 뿔뿔이 흩어지는 관행을 끊어내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주체의 힘으로 돌파하지 못한다면 연대 대오의 구축과 투쟁을 통해 시도해야 했음에도 소극적이었던 모습 또한 아쉽기만 하다. 200여 조합원 중에서 정규직과 투쟁에 소극적인 비정규직 일부가 투쟁조차 하지 않거나 시늉만 낼 것이라는 것이 예상되었고 선거 국면 속에서 더욱 고립될 것 또한 예측되었다. 그 속에서 더욱 과감한 공장과 지역의 연대 전선 구축을 더 빨리 고민하고 조합원들과 함께 만들었어야 되지 않았을까?

또한 마무리 총회 국면에서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던 투쟁했던 동지들-고소고발자와 징계자-의 문제가 향후 투쟁과제로 미뤄진 것에 대한 평가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특히나 대공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문제는 늘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축소되어 나중 과제로 미뤄지고 있다. 그 속에서 소수의 당사자들만이 다시금 고소고발과 징계문제로 투쟁을 이어나가는 악순환을 금번 KD외주화 투쟁은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KD외주화 투쟁이 마냥 한계만을 보여준 투쟁이었는가?

기간 관료주의와 조합주의에 찌든 대공장 운동에서 노동조합이 합의하면 욕하면서 뒤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현장조합원의 힘으로 투쟁을 밀어나간 소중한 경험이 바로 KD외주화 투쟁일 것이다. 또한 1차 하청 조합원에 한정된 고용보장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내의 비정규직인 계약직 노동자,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과 함께한 싸움이었다.

비정규직지회 건설과 사수 과정에서 정규직의 배신과 실망 속에서 현장투쟁을 이어가지 못했던 패배주의나 우리조합원 고용만 지킬 수 있으면 된다는 식의 조합주의로는 희망을 볼 수 없다. 우리 고용을 지키기 위해 더 열악한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방식의 투쟁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KD투쟁의 경험에서처럼 내 옆에 있는 더 열악한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통한 투쟁, 지역과 사회를 향한 연대를 통한 투쟁으로 희망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관료주의, 조합주의에 갖혀 우리 조합원만 챙기는 것이 아닌 공장 담벼락을 넘나드는 더 낮은 곳을 향한 노동자연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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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내란음모’ 공안탄압, 머뭇거릴 수 없는 문제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3/11/15 16:30
  • 수정일
    2013/11/15 16:3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진출처 : 참세상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를 통과시켰다. 법무부는 지난 2개월 동안 위헌정당단체관련대책 태스크포스를 가동시켜 통합진보당의 해산 가능성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 태스크포스는 "위헌 정당뿐 아니라 반국가·이적 단체 등 위헌 단체 문제까지 함께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 또한 ‘종북’을 잣대로 한 ‘반국가단체 강제해산법’을 발의하겠다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석기의 ‘RO’→ 통합진보당 → 전체 진보ㆍ좌파진영으로 ‘종북’의 범위, 제거대상의 범위를 확장해나가려는 것이다.

출처 불명의 ‘녹취록’으로 시작된 구속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내란음모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있는 통합진보당 인사는 이석기, 홍순석, 이상호 등 총 7명이다. 11월 13일 첫 공판이 예정되어 있고 이에 앞서 녹취록 증거인정 여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이 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정원이 지칭한 ‘RO’에 대한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건이 있은 후 각계에서 다양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까지 나온 이 마당에도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청구가 종북세력의 척결을 위한 정부의 정당한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마녀사냥식 정치공작의 소산이었는지를 헌법재판소가 그 어떠한 정치적 편견도 없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줄 것을 기대하며 지켜볼 것"이라고 하고 있다. 공안탄압이 짜놓은 종북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문제는 처음 이 사건이 시작됐을 당시부터 정의당을 포함한 일부 진보ㆍ좌파진영 또한 이와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에 대한 방어보다 진보진영 내 친북적ㆍ민족주의적 경향에 대한 폭로가 더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방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출하더라도 실제로 적극적으로 방어 전선을 형성했다고 보기 힘들다.

 

낡지 않은 종북 프레임


그동안 종북 프레임은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도 국정원이 케케묵은 공안사건을 터트리고 있다는 표현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다시피 이번 사건을 통해 얻어낸 것은 기존에 벌어졌던 공안탄압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의 공안사건들은 국정원의 조작 여부를 떠나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몇 차례 남북의 군사적 마찰이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긴장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이와는 달리 국민들 사이에서 전쟁은 눈앞에 닥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종북 운동권’들이 북한 정권을 위해 활동을 한다는 혐의는 구체적인 군사적 대립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해 못할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그림은 달랐다. 이석기를 포함한 통합진보당 인사들을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세력’으로 느끼게 했다.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8/29), “RO, 습격 목표인 통신ㆍ유류시설 답사”(8/30), “이석기, 전작권ㆍ미군기밀 빼내려했다”(8/31)라는 헤드라인을 보면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떠나 이들이 구체적인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파괴계획을 추진하려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종북 운동권’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종북 테러리스트’의 이미지에 가깝다. 게다가 그 주도자가 주요 국가정보에 접근 가능한 입법기관, 즉 국회의원인 것이다. 더 이상 단순한 정치사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공안정국 형성은 성공했다.


이렇게 ‘녹취록’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모든 것은 국정원이 짜놓은 프레임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실제로 어떤 수준의 논의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됐다. 국정원과 언론이 그리는 그림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고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정치사찰에 대한 비판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통합진보당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의 불법유출과 언론의 보도로 녹취록은 세상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의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과 사실관계의 공정한 확인을 위한 조치로, 국정원에 왜곡 편집되지 않은 동영상 전체의 공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작 녹취록의 원본인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분별한 여론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위법수집증거를 공개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 영역을 완전히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법절차에서 사건 관계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극히 부당합니다. 오늘 제가 녹취록에 관하여 말씀드리는 것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는 관련자 각자의 방어권이 완전하게 행사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비상사태인양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탄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문제제기는 정당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통합진보당 측 변호인단은 녹취록의 내용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수사기관원이 아닌 민간인에게 녹음·청취를 맡긴 점과 감청허가서에 명시된 사람은 그 모임에 일부일 뿐인 점 등 현행법을 위반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 사실이 받아들여진다면 녹취록은 법적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여론몰이’ 먼저 수용한 일부 진보ㆍ좌파

 

문제는 이러한 ‘여론몰이’가 진보ㆍ좌파진영에도 먹혔다는 것이다. 진보ㆍ좌파진영이 취한 태도는 사실상 둘로 나뉘었다. 녹취록 자체가 불법적이기에 국정원의 불법적 사찰과 증거수집을 통한 여론몰이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가 한편에 있었다면, 녹취록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비판하며 ‘종북’이 아닌 진정한 진보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는 태도가 다른 한편에 있었다. 검찰마저도 “수사중에 진위를 떠나 각종 보도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다”며 우려를 표할 때 일부 진보ㆍ좌파진영이 ‘여론몰이’를 적극 수용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세력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완전히 체제 내로 들어가 정치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급진적 자유주의자들보다도 더 움츠러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의당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성 당론을 결정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 헌법에 의해 그 활동을 보호받고 있는 공당의 국회의원과 그 당의 주요 간부들이, 헌법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상식으로부터 심각하게 일탈한 구상과 논의를 한 것에 대해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이런 입장을 냄으로써 정의당은 국정원이 진보진영에 바란 바를 정확히 수행했다.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의 방어라는 원칙

 

통합진보당은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긴장 국면이 높아졌을 당시 분명하게 ‘전쟁반대’와 ‘평화’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10만 명 정도의 당원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이다. 강령에서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RO’ 혹은 이와 비슷한 조직이 통합진보당 내에 존재하면서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배치되는 활동을 한다면 이는 당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처리할 문제다.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떳떳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들을 속이면서 지지율을 확보하여 공직ㆍ당직에 당선된 것이라면 이를 비판하고 부여된 권력을 빼앗아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의 내용상에 문제가 있다면 당 안팎을 떠나 사회적인 토론을 통해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실제로 폭탄을 제조ㆍ설치하여 어떤 시설을 파괴하려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테러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국가권력의 개입에 의해 허용되어야 할 정치세력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경계해야 한다. 정치노선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국가권력에 의해 탄압받는다면 함께 맞선다는 것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지 않았는가. 

헌법을 뜯어 고칠지 뛰어 넘을지,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결정을 할지 말지, 새로운 민주주의를 정립하기 위한 시도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들이 선택할 문제다. 국가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 새로운 사회를 위한 행동을 가로막을 권한은 없다.

 


저들의 ‘민주주의’에 힘으로 맞서는 것이 민주주의


지금은 정치의 자유를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제약할 때가 아니다. 공안탄압과 함께 사용되는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단어들은 탄압의 도구일 뿐 진지한 논의를 동반한 것이 아니다. 이런 괴이한 공안탄압용 ‘민주주의’에 힘으로 맞서는 것이 차라리 민주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공안탄압에 대한 투쟁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진영 내에서 공안탄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면서 촛불집회에서 마저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를 주저했다. 예민한 문제는 피해가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는 입장을 제출한 조직들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적극적으로 연대를 조직했는지를 따져본다면 그리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음을 보여주는 사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데모당>이라는 단체가 자신의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다른 참가자들이 항의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 조직의 이름이 집회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체제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은 일부 진보ㆍ좌파 단체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국가보안법, 내란음모, 내란선동이 적용되거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제약이 진전된다면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후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완전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기본적 원칙이 시민사회운동 혹은 진보ㆍ좌파진영 내에서 흔들리는 것 또한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후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교조 설립취소,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등은 사회를 전반적으로 극우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의 시작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 정권 스스로가 처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어떤 민주주의가 살아남을지는 결국 힘의 대결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선 투쟁,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지금이라도 적극 나서야한다.

 

-국가보안법, 내란음모, 내란선동 적용 반대한다. 통합진보당 해체 시도를 중단하라.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서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진보ㆍ좌파운동을 방어하자.

-국정원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자!

 

김사자 (saja-kim@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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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고] “투쟁하지마!”

투쟁하는 조합원 징계하는 민주(?)노조

 

서울일반노조에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보낸 징계위 출석요구서
[출처: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공대위 공식페이지]

 


최근 들어 민주노총 소속 상급단체들에서 장기투쟁 사업장의 투쟁을 조속히 정리하기 위해 불충분한 사측 안에도 불구하고 긴 투쟁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의견 불일치를 이용해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노골적으로 분열시키고 투쟁을 지속하려는 조합원들을 소수로 몰아 소위 “조합민주주의”를 내세워 배제하는 경우가 연달아 생기고 있다. 사실 이런 일들이 하루 이틀의 일이겠냐만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 발 더 나아가 투쟁을 계속하는 조합원들을 “조직의 논리”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아예 징계․제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월8일 강행될 예정인 서울일반노조의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봉혜경 조합원께서 사노신에 그 동안의 상황을 정리한 기사를 기고해주셨다. 우리는 이 투쟁을 지지하며 기고를 허락해 주신 봉혜경 동지께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봉혜경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조합원)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 2012년 12월 28일자로 계약해지통보를 받고 쫓겨나 원직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조합원 봉혜경입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사회복지 및 보건의료업무의 정보화를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곳으로 복지공무원, 사회복지시설, 보건소, 보육시설, 사회서비스(바우처)등이 사용자입니다. 근무했던 상담센터는 전산시스템운용에 관한 전반적인 상담을 하는 곳으로 상담원 전원이 계약직(비정규직)입니다. 그동안 입사일 기준으로 만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에 들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는 작년 연말에 140여명의 상담원 중 42명을 무더기로 해고하였습니다. 해고당한 상담원 중 8명만이 남아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에 가입하고 복직투쟁을 시작한지 벌써 10개월째입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복직투쟁을 사수했습니다. 그런데 5명의 조합원이 투쟁을 이탈하더니, 기어이 사측과 개별 접촉하여 8월 1일자로 회사에 ‘신규채용’ 형식으로 복귀하였습니다. 3명의 조합원은 ‘근속․경력인정 없는 신규채용 합의안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계속 투쟁을 진행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에서는 ‘조직이 투쟁을 접기로 결정했는데 그 결정사항에 따르지 않는다.’고 투쟁하는 조합원 3명을 징계한답니다.
 

징계사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명서 발표 건’이고, 또 하나는 ‘조직에서 중단하기로 결정한 투쟁을 계속한다.’는 이유입니다.
 

투쟁을 그만두라 종용하고 조합원들의 분열을 유도하는 상급단체 
 

7월 7일, 고용노동청의 최종합의안은 ‘신규채용 1년 계약직’이었습니다. ‘근속․경력인정이 되지 않아 3명의 조합원은 합의안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의견조율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7월 10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위원장 이화민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용석정이 출근투쟁을 진행하는 조합원들 앞에 나타나 “서울일반노조의 결정사항이다. 첫째, 서울일반노조는 7월 4일 합의안을 무조건 받는다. 둘째, 조합원들이 합의를 하지 못하면 5명의 조합원을 데리고 회사에 복귀한다.” 라고 통보하고 사라졌습니다. 같은 날 극동빌딩 앞 집회에서 여는 발언을 통해 용석정 수석부위원장은 음주상태로 “조합원이 합의안을 두고 5대 3으로 나뉘었다.”라고 사측과 정보관에게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조합원 8명은 그동안 용석정 수석부위원장에게 쌓인 불만과 집회에서의 발언을 문제 삼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결정했고, 다음날 아침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와 서울일반노조 상근자 책상위에 성명서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성명서 발표를 이유로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는 “이후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분회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유보한다.”고 했습니다. 5명의 조합원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가 원하는 해명서를 내주기로 결정, 방법과 절차상의 문제를 인정하고 내용의 진위파악은 추후에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가 원하는 문구대로 해명서를 발표하여 성명서 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성명서와 해명서 발표 후, 조합원 5명은 연락을 끊고 투쟁에도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입장을 용석정 수석부위원장에게 전달하였다”고 말하며 더 이상 합의안에 대한 의견조율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합원 5명은 7월 30일 회의에 나타나 ‘노조를 탈퇴하고 신규채용으로 복귀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울일반노조는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를 조합원투표에 붙였습니다. 당연히 8월 1일부터 출근할 것이기 때문에 5명의 조합원은 투쟁을 접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투표결과에 따라, 서울일반노조도 투쟁을 접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3명의 조합원은 근속․경력, 민주노조 인정이 없는 합의안을 받을 수 없기에 계속 투쟁하기로 하였습니다.
 

8월 1일,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 용석정 수석부위원장과 박문순 사무처장이 ‘노동청 협력관 황명진과 사측관계자를 만나기로 했다.’며 극동빌딩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조합비 자동이체를 해제했으나, 아직도 5명은 조합원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이에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기위해 사측 관계자를 만나 읍소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측과 노동청 협력관 황명진과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는 노동조합을 탈퇴하고자 조합비 자동이체를 해제하고 회사에 개별 복귀한 조합원들은 보호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합의안을 인정하지 못해 계속 복직투쟁을 하는 조합원은 징계하려고 합니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조합원 내부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상급단체가 먼저 결정하고 그 결과를 따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투쟁했던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투쟁을 접으려는 조합원 5명은 상급단체가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3명의 조합원들과 의견을 조율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잠수를 타버린 것입니다. 그마저도 기간이 유야무야 길어지니까 견디지 못하고 민주노조마저도 버리고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정당한 투쟁을 가로막는 “조직의 논리”
 

그러나 3명의 조합원들을 배신하고 복귀한 그들에게는 미움이 없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를 통해 ‘민주’노조 활동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몸소 겪으며 체득한 결과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만약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가 반조직적 행위를 문제 삼는다면 복귀조합원 5명의 반조직적인 행위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민주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나머지 조합원 3명의 투쟁을 문제 삼아 제명시키려 합니다.
 

정리해고를 자행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행태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점입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잘못된 현실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원칙을 지키는 투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는 이것이 조직의 논리에 위배된다고 합니다. 1년짜리 신규채용에 응해 복직하여 내부투쟁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일 년을 투쟁해서 얻어낸 것이 고작 ‘신규채용’이라면, 현장 노동자들을 민주노조 활동으로 조직하기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현장에 복귀한 5명의 (전) 조합원들조차 민주노조 활동에 회의적인 상태였기에, 1년 신규채용에 응하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이라고 무시당하고, 투쟁의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해고를 당하고, 그 부당함에 항거하기위해 ‘조직’의 힘이 필요해서 민주노총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다시 ‘노동자에게 조직의 논리가 우선이니, 조직의 결정을 따라 투쟁을 그만두라’고 합니다. 그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민주’노총 산하의 서울지역본부, 그리고 산하 조직인 서울일반노조에서 발생된 일이기에 서울일반노조 만의 문제인지 묻고 싶습니다. 앞서 이야기되었던 문제들이 정말로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조’ 만의 문제입니까? 정말 우리의 투쟁이 정당하지 못한 것입니까? 그래서 정말 투쟁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겁니까?

 

*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참고 링크

1. [제안서] “복직투쟁 300일.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투쟁사업장 및 연대단위 합동간담회 참석요청 및 제안서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46716&page=1

2.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는 투쟁하는 조합원에 대한 징계시도를 중단하라
- 굽힘없이 투쟁하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분회 3인 동지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
-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46658&page=1

3.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분회' 투쟁하는 조합원에 대한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의 징계시도 강행 관련 사실관계 상황정리.
-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46677

4.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해고자 복직투쟁 경과과정 보고 
-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분회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46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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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세계 노동자들이 반격을 위해 나아가야 할 험난한 길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3/10/01 10:48
  • 수정일
    2013/10/01 11:4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이 기사는 좌익공산주의계열의 국제조직
ICT(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596 기사참조) 의 영국조직인 CWO(공산주의노동자조직)에서 지난 8월에 낸 기사이다. 특히 유럽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경제위기와 국제적인 투쟁 상황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번역했다. 번역기사의 입장은 사노신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둔다. [편집자]


깊어가는 위기
 

이른바 “대불황(Great Recession)”이 6년째 계속되고 있다. 자본가계급마저 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위기는 지금 비록 안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세계 주식시장의 격렬한 동요는 시장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여전하며 자신감이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 연준 의장이 미국경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에 화폐 발행을 줄이겠다고 공표한다면 곧바로 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현재 세계 금융이 겪고 있는 혼란을 명확히 드러낸다.
 

“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전략은 수요 확대에 근거한 것이든 긴축과 균형재정에 근거한 것이든 모두 경제성장을 유일한 탈출구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매우 힘든 목표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경제가 2.2%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인도의 높은 성장률 덕분이다. 영국경제는 2007년에 비해 사실상 3.9% 위축되었다. 유러존 전체는 2013년 성장률을 0.5%로 예측한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예상치 도 달성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
 

균형재정을 이루기 위한 시도들도 별 성과가 없었다. 유럽연합은 모든 회원국에 재정적자를 GDP의 3% 내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영국의 재정적자는 현재 GDP의 8.2%로, 2008년 이후 가장 높다. 재정균형을 달성하는 목표 시한은 2015년에서 2018년으로 미루어졌다. 구제금융을 받은 모든 유럽연합 국가들에게 적자를 줄일 시한의 연기가 허용되었다.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상환기간은 각기 7년씩 연장되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GDP의 6.5%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자신들이 입안한 “긴축과 균형재정” 전략의 효과를 의심하고 있다. IMF는 초기에 시행된 구제금융 조치, 특히 그리스의 경우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환자에게 약으로 부채를 처방한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정반대의 전략을 시도했다. 20년 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은 막대한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화폐는 매달 GDP의 1% 비율로 시장에 풀려나왔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시행한 최대치의 두 배나 되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물가가 2% 상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성장률을 높이려 했다. 현재 일본의 세수로는 정부지출의 46%밖에 감당하지 못한다. 이 정책은 국가채무를 더 증가시킬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45%에 도달해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정책은 상황이 절망적임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전반적인 부채 증가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 7천억 파운드였던 영국의 국가채무는 1조4천억 파운드로 두 배 증가했으며 2015년에는 GDP의 85%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지 국가채무일 뿐이다. 기업과 개인의 부채까지 더한 총 부채규모는 7조5000억 파운드로 GDP의 500%에 이른다.
 

이런 현실은 “대불황”에서 빠져나올 길을 전혀 찾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계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2008년의 수십 배 이상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규모의 금액은 국민국가의 능력을 벗어난다. 자본가계급이 그때 어떻게 나올지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 키프로스처럼 부채를 상각하고 은행예금을 몰수하거나 1990년 아르헨티나처럼 연금기금을 국유화하는 조치, 혹은 통화팽창을 통해 부채의 가치를 절하하는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거대한 금융 위기와 “자신감”의 상실을 불러와 다시 사회적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런 교묘한 금융적인 술책들과 함께 위기의 부담을 노동계급에게 전가시키는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그런 전략들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가 나타나고 있다. 키프로스 구제를 위해서 부르주아인 대형 예금주들이 이른바 “베일-인(bail-in)”1)을 실시한 것은 이를 암시한다. 6월 말 유럽연합이 취한 조치들은 향후 위기 상황에서 은행 주주들과 채권자들의 “베일-인”이 취해 질 것을 명확히 했다. 이는 아직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의 전략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능력이 없음에도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들은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는 건 고사하고,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배계급은 그것들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노동계급에게 긴축재정을 부과하려는 지배계급의 시도는 전반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는지 고찰해보기 전에 우리는 노동자들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는 짐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단하게 그려보려 한다.
 

2008년 이래 임금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사회적 복지를 통한 간접적인 공격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져 왔다. 많은 통계수치들이 이런 공격들의 심각성을 말해 주지만, 아마도 가장 극적인 것은 그리스의 경우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 평균 가계수입은 2007년에 비해 38% 줄어들었다.
• 임금과 연금은 35~50% 줄어들었다.
• 실업률은 28.6%에 이르고 젊은층의 40%가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 단체협약이 폐기되고 있다.
• 연금개시 연령이 67세까지 올라갔다.
• 부가가치세가 27% 올랐다.
• 그 결과 37%의 아동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 영아 사망률이 40% 증가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도 이보다는 덜 하지만 직접임금의 5~10%가 삭감되는 유사한 공격이 있었다. 최저임금도 비슷하게 삭감되었다. 영국 재정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ies)는 2008년 이후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임금이 각기 4.8%와 9.9%의 삭감되었다고 보고했다.
 

동시에 유연성이 더욱 강제되어 노동자들은 휴가와 상여금 같은 예전의 혜택을 포기하고 고용주와 개별 계약을 맺거나 시간무제약고용(zero hours contracts)2)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복지와 서비스의 축소를 통해 사회적 임금의 삭감이 강제되었다. 영국의 경우, 장애급여(disability benefit)가 삭감되고 침실세(bedroom tax)3)가 도입되었다. 연금개시 연령의 상승, 연금지급액의 삭감 등과 함께 사실상 무임 노동을 의미하는 워크페어(workfare)4)가 부과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의 구조조정과 효율화가 시행되었다. 이는 당연히 대규모 실업을 불러왔다. 유럽연합 전체 실업률은 12%이지만, 몇몇 나라들은 더욱 심각하다. 실업률 12%는 노동자 188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음을 나타낸다!
 

자본가계급에게 이는 노동비용의 순 감소로 결과한다. 그리스에서 이 수치는 약 14%에 이른다. 노동계급이 이런 모든 사태에 저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대체 무엇 때문인가?
 

 
올해 5월 그리스 교사들의 파업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저항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국가, 특히 유럽, 미국, 일본에서 노동계급은 이런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자본가계급은 원하는 대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데 대체로 성공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요소는 “세계화 (globalisation)”의 깃발 아래 수행되고 있는 세계자본의 재조직화이며, 두 번째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조합의 우리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화는 선진국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이끄는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에게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유연성과 노동계급의 저항을 조정할 능력을 주었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리처드 프리먼은 중국, 인도, 구(舊) 소비에트권이 세계경제로 진입한 결과로 고용 가능한 노동력 수가 14억7천만 명 늘었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 노동력 규모는 거의 두 배인 약 30억 명으로 증가했다. 노동자의 수가 늘어난 데 비해 자본은 거의 증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본 대 노동의 비율은 그렇지 않았을 경우의 예상치 보다 55%에서 60% 줄어들었다. (리차드 프리먼, “노동시장의 불균형”, Harvard University paper)
 

리처드 프리먼은 핵심을 명확히 제기한다.
 

“자본/노동 비율은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자본이 얻는 보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노동자당 자본비율이 높을수록, 생산성과 임금 지급은 높아진다. 세계차원에서 자본/노동 비율이 하락하는 것은 시장에서 힘의 균형을 자본에게 유리하게 이동시켰다. 자본에게 고용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Richard Freeman theglobalist.com)
 

선진국의 자본가계급은 새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 지역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수출함으로써 새로이 창출된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이로 인해 자본은 값싼 노동력을 대규모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과 인터넷의 발전이 이 새로운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 것은 명확하다. 전세계적인 자본의 활동으로 창출된 잉여가치의 많은 부분은 선진국에 되돌아갔고 일부는 수출이 불가능한 그 지역의 서비스업에 재투자되었다
 

선진국 노동자들에게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노동계급을 파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대공장들은 전세계적 생산과정의 일부를 구성하는 더 작은 단위들로 찢어지거나 폐쇄되고 생산은 주변부 국가들로 이동한다. 80년대 노동계급 저항의 보루들을 패배시킨 후 선진국 자본가들은 유연화라는 명목 아래 노동조직의 많은 부분을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노동자들을 보다 작은 단위로 노동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건설노동자들은 “인력도급” 업체(“labour only” subcontractors)에서 일하거나, “개인사업자(self-employed)”로 일하거나, 혹은 악명 높은 “시간무제약” 고용 같은 유연화된 고용제도 하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작은 단위들로 분열되었다.
 

대규모 생산과 노동자들의 집적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는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1955년 영국 경제의 40%를 차지하며 8백만 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했지만, 지금 그 비중은 영국 경제의 10% 이하로, 250만 명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다(<가디언>, guardian.co.uk). 1947년 국유화될 당시 노동자 47만 명을 고용했던 영국의 탄광산업은 1984년 광부 파업 시기에 이미 대략 절반인 20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현재는 6천 명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감소는 철강 산업도 마찬가지다. 1951년에는 철강 산업에 45만 명이 일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18500명뿐이다(<파이낸셜타임즈>, 2013년 5월13일). 다른 산업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수치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산업들은 교훈을 준다. 쓰라린 파업의 경험 후에 대량학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파업은 공장폐쇄나 수입으로 대체된 생산 축소를 막는데 실패했다. 이는 60년대와 70년대 승리를 거두었던 투쟁방식을 가지고는 더 이상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철강, 자동차 및 제조업 전반은 국제적인 자본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지역의 수익성이나 파업에 대응하여 생산을 세계 다른 곳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 생산의 세계화는 자본가계급에게 예전의 투쟁방식을 무력화시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특히 제조업의 축소 때문에, 대체로 다른 산업 분야에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전용하는 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결국 세계화였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업은 현재 영국 노동자의 81%를 고용하고 있다(ons.gov.uk). 공무원, 보건·교육 노동자, 운송, 여행 등이 “서비스업”에 포함된 분야들이다. 명성이 자자한 금융 분야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는데, 영국 노동자의 17%를 고용한 이 산업은 2008년까지만 해도 영국 자본주의의 구세주로 생각되었다. (런던의 시티는 영국 GDP의 9%를 생산했고, 정부세금의 27%를 조달했다.) 금융 분야는 기생적인 것이 명백하지만, 이 분야들이 전부 다 가치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비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많은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노동이 상품생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이 부문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공격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중요물자들이 해외에서 수입되는 탓에 이 부문들에서 파업 행위는 제조업·탄광·철강 분야에서보다 더 어렵고 덜 효과적이다.
 

선진국에서 효과적인 반격을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은 투쟁들이 대부분 노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세계화와 함께 이 체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단계에서 70년대 초에 시작된 위기들로 옮겨 오면서 자본주의 이윤율에 더욱 전반적인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노조를 둘러싼 환경 역시 변화했다. 전후 노조들은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과 임금에 어느 정도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2차 대전 동안 자본의 파괴로 초래된 이윤율의 증대 덕분에 성장의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삭감해서 이윤을 확보하려고 했다. 변화된 환경에서 노조의 주요한 활동은 그저 정리해고, 구조조정, 노동조건의 악화를 협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노조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임노동제도에 전혀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전혀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노조는 스스로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 위치시키고 있고 따라서 그 일부로 기능한다. 노조의 주요 과제는 자본이 노동력에 지급하는 비율을 교섭하는 것과 그 유효성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는 체제 내에서 협상이며 노조는 자본주의의 전와 조건을 수용한다. 따라서 노조는 그에 따른 이윤추구 경제의 필요성과 그 논리를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유연화,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등과 같은 것들을 인정한다. 노조는 건전한 국민경제를 지지하며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전망은 완벽하게 국가화(statified)된 경제, 즉, 완전한 국가자본주의 체제이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자본주의의 대리자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체제 자체에 맞선 효과적인 투쟁을 사보타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국 노동자들은 전세계 임금율을 서서히 평준화시키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로 말미암아 반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 공격은 2008년의 금융위기로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는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런 공격들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동시에 대개의 경우 여전히 노조가 저항을 통제하고 있으며,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자본가들의 공격에 굴복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져서 주변부 국가의 노동자들의 수준으로 노동조건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조언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선진국에서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들에게 퍼붓고 있는 공격의 물결을 멈추는데 실패하고 있는 배경이다. 

 

주변부 국가들에서 저항
 

2010년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의 투쟁


주변부 국가들의 상황은 대체로 선진국과 반대이다. 여기서 우리는 19세기 맨체스터를 방불하게 하는, 그러나 그것을 몇 배나 능가하는 대공장에 거대하게 집중된 노동자들을 발견한다. 아마도 가장 명확한 사례는 대만 전자회사 폭스콘일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서버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세계적으로 백 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세 개의 생산시설은 약 7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파이낸셜타임즈> 2013년 4월1일). 가장 큰 심천(深圳) 공장에서는 39만 명이 일하고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브라질, 남아프리카 등 다른 주변부 국가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중이 발견된다. 많은 노동자들이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묘사한 것과 유사한 노동조건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 약 2억5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에 1달러 이하를 벌고 있으며 7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 노동자들이 주당 6~70시간 일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파이낸셜타임즈> 2005년 9월12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은 공장에 감금당한 채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임금에서 떼이고 있다. 쥐꼬리만큼의 임금에 비해 그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위험하기로 악명 높다. 2012년 11월 공장 화재로 117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다. 같은 해 공장 한 채가 붕괴해서 1100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다. 이런 예들은 자본주의가 주변부 국가들에 건설한 “멋진 신세계”의 노동조건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혁명가들이 분노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대부분의 주변부 국가들에서 노조의 역할은 선진국에서처럼 자본주의 기구로 완전히 고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노조가 국가에 통합되어 있는 중국은 예외적인 경우다. 이는 많은 계급투쟁들이 노조의 통제 밖에서 벌어짐을 의미한다. 파업과 비공인파업은 일정정도 양보를 얻어내는 경우도 많지만 흔히 유혈사태라는 대가를 치른다.
 

주변부 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계급투쟁의 이전 전통을 가진 바 없는 노동자들의 첫 번째 세대이다. 계급투쟁이 터져 나올 때 그것은 흔히 지역에서 광포한 폭력사태로 비화되어 경찰과 폭력적인 충돌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공식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매년 수만 건까지는 아니라도 수천 건의 파업이 발생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모두 비공인파업들이다. 이런 투쟁들은 최근 군경과 충돌로 비화되어 사상자들을 낳고 있다. 주변부 국가에서 노동자투쟁에 대한 폭력탄압의 가장 잔혹한 사례 중 하나는 201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리카나 백금 광산에서 파업이 발생했을 때 나타났다. 경찰은 파업에 참여한 광부 34명을 총으로 사살했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의 노동자들이 야만적인 착취에 맞서 투쟁하고 있으며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작은 양보들을 얻어내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다. 이 투쟁들은 지역에 국한되어 있으며 국가의 탄압에 갇혀있다. 그럼에도 이 투쟁이 자본주의 자체에 맞선 전체 투쟁의 일부라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화된 저항
 

세계화가 자본가계급에게 지역적 혹은 심지어 전국적 차원의 노동자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부여한 한편 또한 맑스가 <공산주의자 당선언>에서 예언한 대로,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의 토대를 놓는 단일한 세계노동자계급과 세계적 차원의 생산체제를 창출했다. 자본가들이 하나의 공장, 혹은 하나의 나라에서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된 반면, 많은 산업들에서 일반화되거나 국제적이 된 파업들은 패배시킬 수 없다.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 당 선언>이 선언한 방식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은 명확하다. 이는 당장의 경제적 요구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획득한 경제적 성과를 오래가지 못하게 만든다. 자본가계급은 항상 그런 성과물을 다시 빼앗거나 자신들이 양보한 것을 벌충할 다른 변화를 도입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은 그 착취적 본질 때문에 세계를 재앙으로 몰고 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이다. 그래서 진짜 논의해야 될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를 코뮤니즘 체제5)로 대체하는 것이다. 미래의 투쟁에 그 목표로 가는 지향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하는 물음은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노동할 수 있는 능력밖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무산계급이며 따라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 노동력의 판매야 말로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서 있는 기초이다. 이런 조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동계급은 임노동 관계를 철폐해야 하며, 이는 물론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혁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가 노동계급을 “근본적인 사슬”에 묶여 있는 계급이라고 묘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체제 전체를 철폐하여 생산과 사회를 전세계적으로 재조직하지 않고서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오로지 두 가지 무기에만 의존할 수 있다. 자신의 의식과 자신의 조직.


노동자들의 의식
 

현재 노동계급은 맑스가 <도이치이데올로기>에서 지적한 대로 자본가계급의 관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배계급의 관념들은 모든 시대에서 지배적인 관념들이다. (칼 맑스, <독일이데올로기>)”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위기가 현 체제가 작동하는데 일시적인 정체일 뿐이며 그것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선택으로 보이는 것은 지금 있는 거라도 꼭 부여잡고 머리를 푹 숙인 채 지배자들이 늘 약속하는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맑스는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 운동해 왔던 기존의 생산 관계들 혹은 이 생산 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칼 맑스,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문>)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약속된 영광의 미래가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결국 노동자들의 의식을 규정할 것이다. 이는 물론 자본가계급이 미디어와 교육, 이데올로기 기구들을 통해 선전하는 사상들과 직접적으로 상충된다. 더욱 광범위한 계급투쟁과 국제적 투쟁의 사상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이다.
 

노동계급의 “사회적 존재”는 맑스가 이야기한 대로 물론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존재에 얽매여 있다. 위기의 현 단계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을 낳고 있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개인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으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는 주변부와 중심 국가들에서 대중투쟁을 목격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봉기, 그리스·스페인·미국·영국 등지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광장 점거운동, 뒤이어 일어난 터키, 브라질, 그리고 다시 이집트에서의 사회운동. 이 운동들은 어떤 선명한 목적이 없는 다계급적인(interclass) 운동이긴 하지만, 그것들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정당과 노조 같은 자본주의의 공식적인 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개인으로 참여하는 부르주아적 관념들에 대한 초보적인 도전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CWO는 앞에 인용한 문단에서 맑스가 사용한 의미 그대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족쇄라고 주장한다. 2차 대전 이후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성장이 전쟁이 초래한 대규모의 가치증발(devaluation)과 불변자본의 파괴에 의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전에 생산된 부에 대한 이러한 파괴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낳는 축적체제 자체의 문제 때문에 자본주의의 생존에 본질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되어왔다. 현대 자본주의가 세계전쟁을 통해 주기적으로 부의 전반적인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자본주의 사회 관계가 생산력에 “족쇄”라는 것은 진실로 명백해 진다. 현재 우리는 전쟁을 통한 불변자본의 전반적 파괴가 자본주의가 봉착한 난국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는 단계에 있다. 그러나 전면적인 전쟁의 조건들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난국은 노동계급에 대한 점증하는 공격으로 특징화되고 있다.
 

이것이 노동계급의 현 상황에 물질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문제들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제기하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삶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현재 이슈는 노동자들이 지금 눈앞에 문제점들을 직면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그것들은 반드시 더욱 근본적인 역사적 질문들을 던지는 데까지 나아가고야 말 것이다. 1871년의 파리코뮌과 1905년,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민족주의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결국 세계 역사적 과제로 나아갔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2011년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월스트리트 점거투쟁


조직화


 

노동계급이 승리를 위해서는 목전의 투쟁들이 일반화되고 국제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의식하게 될 물질적 조건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 자동 방아쇠 같은 건 없다. 현재 노동자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진 희망은 자본주의가 좀 더 “공정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가 계속 증대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함에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돌파해야 할 필연적인 단계이다. 계속되는 착취 과정에서 더 광범위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가 창출한 난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체제가 더 이상 인류의 미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창출하고 있는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6)). 노동계급의 투쟁들은 더 광범위해지고 더 집단적이 될 것이다. 가두의 투쟁들은 인상적인 반자본주의 대중을 더욱 두드러지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미래의 대중파업이 될 것이다. 낡은 생산체제를 마비시켜야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다. 투쟁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아랍의 봄”에서, 특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지역 노동계급의 파업들이 정부기관들의 항복을 얻어내는 데 필요한 힘을 제공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자본가 정부기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게 진정한 힘이 노동계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의 투쟁들은 대체로 노조에 장악되어 있으며, 앞서 주장한 대로 노조는 노동을 통제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따라서 미래의 투쟁들이 승리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노조의 수중에서 노동자의 조직을 빼앗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투쟁들은 노동자들의 총회를 통해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총회는 파업위원회를 선출하고, 파업위원회(strike committees)는 파업과 투쟁을 다른 공장 및 가능하다면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임무를 부여받을 것이다. 파업위원으로 선출된 대표들은 오로지 총회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소환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체제를 패배시키는데 부족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의식이 높아져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것이지만 하나의 국제적인 당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당은 노동계급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부의 당이 아니라 국제공산주의의 확산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노동계급 속에서 활동하는 노동계급의 당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조직은 노동계급의 투쟁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야 있다. 그것이 이 조직이 투쟁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정치적 목적 없이는 가장 단호한 노동자들의 투쟁조차 결국에는 혼란과 패배로 끝날 것이다. 그런 조직의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현 시기 계급투쟁의 역사적 교훈과 현 정세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혁명가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어떻게 노동자들의 투쟁에 개입해서 혁명적 방식을 전면적으로 선전할 것인가 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전과제이다. 
 

2013년 8월 3일

CP

번역 : 이정인

 

각주 ----------------------------------------------------------

1)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은행에 대해 채권자들이 보유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채권의 일부를 상각해 파산을 막는 것을 말한다.

2) 이 고용방식은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필요한 시간에 데리고 와서 그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노동자들이 지금 일하러 오라고 휴대폰 문자로 통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12년 영국에서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 방식으로 고용되어 있었고, 그중 10만 명은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일했다. 이 제도는 의사, 엔지니어, 강사, 기자 등 전문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작년에만 25% 증가했다. 이는 노동비용을 낮추고 고용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식의 전형적인 예이다. 수치는 2013년 8월 4일자 <파이낸셜 타임즈>

3) 영국정부가 올해 3월부터 발효한 복지 개혁안 중 정부 제공 복지 주택의 주거자 가운데 쓰지 않은 침실, 즉 여분의 침실을 가지고 있는 세입자들에게 생활 보조금을 깎는 정책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여분의 침실 한 개를 가지고 있으면 복지 수당을 14%, 두 개를 가지고 있으면 25%를 깎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 복지사가 충분한 장애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판정하지 않은 아이를 가진 부모는 여분 침실 세를 내야 한다. 독방을 아이가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 병으로 일찍 죽은 딸의 방을 그대로 놔두고 싶은 부모도 세금과 수당 축소를 감수해야 한다. 비인권적 법안이라고 하여 노동·시민사회운동 진영 뿐아니라 종교계로부터도 격렬한 반대를 받았다. 

4)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 일(work)과 복지(welfare)의 합성어로 'welfare to work'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개념은 영국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당시 복지제도의 남용으로 인해 각종 사회 안전망들이 개인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려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초래됐다. 영국에서는 실업자가 실업수당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실업기간 중 새로운 능력을 학습하거나 기존의 능력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소득지원은 직업의 유무와 관계없이 최저생계비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급된다. 실직자는 직업센터를 찾아가 일자리를 찾고 있으며 일자리가 생기면 즉시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들은 직업센터가 요구하는 직업훈련을 거부하거나 면담이나 직업계획 프로그램에 불참하면 수당이 중단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공적인 부조를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적당한 취직처가 없을 때 시영 신체장애자센터나 도서관 등에서 일정 시간 (주 24시간)의 무료봉사가 의무화되어 있다.

5) (필자주) 우리가 코뮤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이루어지는 생산을 가리킨다. 거기서 생산은 사회화되고 사회는 개인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도록 조직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러시아·중국 등지에서 존재했던 국가자본주의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6) (필자주) 이 점에 대해서는 마우로 스테파니니가 쓴 우리의 소책자 <자본주의와 환경 (Capitalism and the Environment)>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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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맞서 실종된 정치‧사상의 자유를 쟁취하자!!

- 내일 있을 해방연대 선고공판에 부쳐


지난 8월27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노동해방실천연대(준)(이하 ‘해방연대’)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성두현·김광수 회원에게 징역 7년, 최재풍·이태하 회원에게 징역 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8·90년대 반정부·반체제 운동에 대한 탄압에 무차별적으로 활용되던 국가보안법은 2000년대 들어 대표적인 반민주 악법으로 존폐 위기를 겪으며 정부가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북한 체제와 연계가 의심되는 통일운동 단체들로 그 대상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면서 국가변란선전선동목적 단체결성이라는 낯선 죄명이 판례로 내려졌다. 이는 국가보안법을 좌파나 사회주의 운동세력으로 확대해서 적용하는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해방연대의 경우에도 이 죄목이 적용되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그중에서도 특히 7조 찬양·고무 관련 항목들은 정치·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 왔다. 따라서 7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만든 국가변란선전선동목적 단체결성이라는 죄목은 그동안의 국가보안법 축소 적용의 경향을 거슬러 더욱 확대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후퇴의 가시적인 징표였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을 통한 반체제·반정부세력의 탄압에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노련 사건의 경우도 오히려 여론의 역풍만 맞았을 뿐 실제로 사회주의자들을 감옥에 집어넣기 까지는 못했으며 아직 대법원에 상고되어 있다.
 

국가보안법이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약발을 잃는 듯하자 이제 정권과 공안기관은 조선시대 역모죄를 연상시키는 내란음모예비죄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다. 해방연대 조사 및 재판 과정에서도 검찰은 해방연대가 꾸준히 사회주의 학습을 하는 위협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며 폭력혁명, 무장봉기이라는 말을 썼는지 안 썼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검사는 “자유의 적에게 자유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체제의 변화를 말하고, 체제의 변화가 무장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래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세력은 단지 그런 단어를 말하고 썼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국가보안법을 넘어 내란음모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물론 일부 운동진영마저도 “합리적인 진보”나 “헌법 밖 진보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공안기관의 장단에 영합하고 있다. 허나 정치·사상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일반적인 원리에도 위반되는 일이다. 예컨대 행동만 고발될 수 있으며 말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대 로마시대에도 법의 원칙으로 인식되던 것이다. 인민의 혁명과 지배계급의 타협의 산물인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사상의 자유가 모든 정치·사상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많은 나라에서는 이를 넘어 인민의 저항권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처럼 무장권을 헌법에 보장한 국가도 있다.
 

이런 마당에 말과 글의 자유를 실제 행동의 자유로까지 확장시켜야 마땅할 이른바 진보 운동세력이 무조건적인 정치·사상의 자유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위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은 모든 것의 자유로운 경쟁이며 그것은 정치·사상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말을 하고 글을 썼다는 이유로 처벌한다면 그것은 이미 스스로 자신의 체제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의 기본정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바로 그들인 것이다. 
 

빨갱이에 대한 마녀사냥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공안기관의 색깔몰이와 국가보안법에 맞서 정치·사상의 자유를 옹호하고 민주주의의 역류를 막는 투쟁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해방연대 재판투쟁이 가지는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방연대 동지들은 무죄다!!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정치사상의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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