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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민주주의: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②

선거와 민주주의: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②
다시 화두가 된 “민주주의”
 
전주시내 한 초등학교 전교회장 선거 입후보자 포스터
오늘날 선거와 참정권 운동은 과거에 비해 대단히 활성화 되었습니다.

저희 공부방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만해도 전교회장 선거로 떠들썩합니다.
홍보물, 유세 그리고 선거운동원 까지 정말 대단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린 시절부터 선거와 투표행위에 익숙한 세대들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갈수록 젊은 층의 투표 참여율은 저조해지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확장이 참정권의 확장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선거와 투표행위 자체만을 두고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 권력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습니다. 1원이 1표인 자본주의 하에서는 돈과 권력이 없는 한 선거 참여조차 어렵습니다.


선거, 중앙집권적인 권력 집중의 정당화
현재 미국의 헌법은 독립혁명 당시의 헌법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최초 헌법은 13개연합국의 연합 규약으로 되어있었는데 13개 연합국의 주권을 뺏고 강력한 중앙정부를 설립하기 위해 엘리트들이 헌법을 개정하였고 당시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들을 연방주의자라고 하였으며 이를 반대하던 민주주의자들은 반연방주의 운동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결국 지배 엘리트로 구성된 연방주의자들이 승리하였고 이러한 법안이 현재 미국의 헌법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연방주의자들은 다수의 지배층을 설득할 때 이 제도는 유럽의 국왕제도, 귀족제도는 아니지만 과반수의 민중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세밀히 배려하고 있기 때문에(선거에서 엘리트밖에 선출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는 따위) 안심하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중앙집권적인 연방주의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지금의 정부형태는 주의원들이 가까이 살고 있어 불평거리가 있으면 의원 중 어느 집으로 가서 현관을 두드려 직접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부가 커지면 그것도 불가능해집니다.

지금은 바로 가까이에 있어서 여기에 권력이 있지만, 권력이 모두 중앙으로 옮겨가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현재의 선거는 선거로 국왕을 뽑는 제도이지요.


▲전주시내 한 초등학교 전교회장 선거 입후보자 포스터
선거 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정치 활동이 문제
어린 시절부터 선거와 투표에 익숙한 세대의 투표율 저조는 무엇 때문일까요? 권한을 위임하는 연습은 하더라도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에는 익숙치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어온 선거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거기다가 그 선거의 결과가 자기 생활과 어떤 연관도 될 수 없다는 회의주의가 확산되면 사회문제나 정치에 냉소적으로 변하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면 대의제를 보완하기 위한 것을 민주주의의 실현방법으로 모색합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권력유지를 위하여 대의제 정도는 다분히 형식적 절차로 여깁니다. 민주주의자들은 권력기관을 감시함으로써 권력 감시 운동 등으로 대의제를 감시하지만 다분히 한계적입니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위한 직접 행동들입니다.
87년 민주항쟁은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개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민주적 권리가 확장된 결과가 훨씬 더 중요한 전진이었습니다.

노동자, 학생, 농민이 시민권을 획득 하였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획득된 시민권을 자본이 제 포섭한 결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권리는 돈과 권력에게 자리를 내주고 노동운동은 관료화되고 학생들은 경쟁과 취업에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방향을 찾고 있는 요즘 대의제와 국가 폭력의 한계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의 직접 행동은 바로 사회 모든 분야의 민주적 권리를 다시금 회복하고 확장하는 것입니다.

학교의 민주화, 일터의 민주화, 지역 공동체의 민주화로부터 민주주의의 확장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생략된 선거 일정 중심의 정치는 선거로 국왕을 뽑고 그 국왕에 정당성을 주는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니고 일상 속에서 공동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지 않는 정치 활동인 것입니다.

일상 활동의 회의(해도 안 돼)로부터 정치세력화라는 귀결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 활동의 끊임없는 활력의 결과로 정치세력화가 논의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참고 자료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생평론사/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이반 옮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주]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진행형인 촛불 시위를 두고 제 2의 민주항쟁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민주항쟁” 사람들은 무엇을 두고 제 2의 민주항쟁이라 말하는가? 촛불을 든 민중들의 민주적 요구들은 무엇이며 어떤 요구들이 억압되었기에 이토록 장시간 끈질기게 분출되고 있는가? 저는 “촛불은 무엇이다”라고 규정하고자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미 규정된 것으로 촛불을 규정하기보다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우리가 한계로 느끼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상상력이 보이지 않을까하는 바램에서 이 연재를 합니다. 저 조차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았으며 현재 진행형입니다. 연재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할 예정이고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연재글 순서
①이명박vs아고라
②선거와 민주주의
③세계화시대 민주주의는 있는가?
④민주주의의 대안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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