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타를 본국으로 보내는 일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다음주 화요일 밤에 비행기로 가게 된다. 그때까지 서울의 한 장례식장 영안실에 누워있을 것이다. 일이 좀 정리되니까 며칠간 있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의 임종을 지킨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의사의 급한 호출로 중환자실에 들어가면서도 난 사만타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도 지금껏처럼 고비를 넘길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만타는 이미 몇 번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맥박이 50이하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침대주변은 인공적으로 심폐소생을 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피들로 얼룩져있었다. 갈비뼈도 대부분 부러져서 가슴이 쪼그라들어보였다. 의사는 앞으로 30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사이에도 맥박이 제로가 되기도 하였다. 의사가 급히 가슴을 치고 약을 좀더 투입해서 다시 30~40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다시 맥박이 제로가 되었다. 의사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심장이 멈췄음을 알리는 기계신호가 삐-익하고 길게 울렸다. 사망을 하였지만 사만타의 가슴은 인공호흡기때문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찔하는 듯한 움직임도 없었다. 체온도 아직 그대로였다. 사만타의 손을 세게 잡아주었다. 왠지 그렇게해야할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의 몸을 만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불운했던 그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슬펐다.

 

중환자실은 엘리베이터로 바로 영안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중환자실은 지하1층이고 영안실은 지하2층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겨우 한 층밖에 되지 않았다. 영안실 직원들은 밝고 친절했다. 산 자를 다루는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들보다 얼굴이 훨씬 밝았다. 혹시 영안실 측에서 일부러 그렇게 교육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는 게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하긴 영안실 직원들이야 업무상 아무리 큰 실수를 해봤자 뭐 더 나빠질 것이 없으니까. 의사들이 폭주를 즐기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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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4 18:17 2006/12/24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