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틱스(Otto Dix. 1891~1969)라는 독일 화가는 전쟁을 직접 알고, 가능한 한 가장 사실적 방법으로 이를 전달하기 위해 전쟁에 자원 참전하여 벨기에와 프랑스 전선에서 포병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이후 그 경험은 이 화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강박관념이 되었다. 이리하여 신객관주의파에 대표되는 당시 40대의 오토 딕스의 창조적 상상력은 전쟁이 몽땅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 신객관주의- 실제의 사실, 당시의 사회학적 현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1923년부터 독일에서 미술, 문학 방면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
그는 군인과 학살 장면의 모습을 번갈아 다루었는데 전장에서 그렸던 생생한 생생한 스케치의 뒤를 이어 오랜 시간에 걸쳐 고심하고 공들인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1920~1923년에 그렸던 작품 <참호>에서는 군인들이 진흙탕 속에 틀어박혀 있는 두더지처럼 묘사되었다. 이 그림은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켜 작품을 구입했던 쾰른의 박물관장은 이를 팔았던 화상에게 도로 돌려주기까지 했다. 이후 그는 반전 운동의 일환으로 군인의 인상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 후 몇년간은 자신의 아이들 초상화를 주로 그리며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그는 다시 전쟁의 악몽에 사로잡혀 뒤러와 중세미술의 영향을 받은 3부작 <전쟁>을 발표했다.
<전쟁> 2년 동안 작업해 온 이 작품은 성당의 제대를 장식하는 중세 성화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 이 대규모 3부작은 실제로 3부분이 아니고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편에는 이른 아침 안개 속에서 군인들이 출발하는 장면이 자리잡고 있고, 가운데는 참호 속에서 벌어진 학살 장면이, 오른쪽엔 오토 딕스 자신이 군인으로서 부상당한전우를 구하기 위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이 그림은 각각 크기가 2m가 넘는 대규모이다. 마지막 가운데 그림 밑부분에 길이 2m에 높이는 60cm밖에 안되는 그림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군인이 보내는 하루의 마지막 단계인 전투를 치른 사람들이 기운회복을 위해 수면을 취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대작이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데생과 수채화가 그려졌다. 그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작업하였고 여기에 묘사된 것은 군인의 수난기와도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전쟁은 한 군인이 체험한 그대로 내부로부터 보여져 미치광이와 같은 폭력과 파괴의 세계로 표현되고 있다.
1930년대 독일에서 민족주의가 세력을 만회하고 나치군이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던 시점에 오토 딕스는 전쟁의 실체 그대로를 그려내어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잔인한 것이며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는 어리석은 것임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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