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이다.

from 아무그리나 2006/08/15 23:22

아침부터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하라고 방송을 한다. 짜증이 밀려왔는데 티브이를 켜니 고이즈미가 야스쿠니신사참배를 강행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더 짜증. 마지막으로 우익들이 8.15 집회를 한다는 소식. 결국 결정했다. 갈까말까 망설이던 8.15자주평화통일대회 참여하기로!

 

1200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다와갈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다행히 소형접이식 우산 하나 챙겨왔지만 막판에 슬리퍼에서 갈아 신고 온 운동화는 금새 물바다가 되어버렸다. 조금 있으니 우산마저도 비가 새기 시작한다.

광화문 우체국 앞 집회장에는 두터운 경찰버스 장벽이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한다. 그 뒤로 4~5천은 되어 보이는 대오가 쏟아지는 빗속에 그대로 앉아 있다. 독한 사람들이다.

핸펀을 놓고 와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정경화 부위원장 등 지역위 동지들, 그리고 고파지구협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동지들도 많았다. 아마도 이 대오의 대부분은 13일부터 연세대에서 지내며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집회는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평택대책위에서 문정현 신부님 등이 올라와 9월24일 서울에서 있는 집회참여를 호소하였고 한미FTA를 막아내자는 결의발언 등이 있었다.

이번 집회는 그동안 참여해 온 8.15행사 중에서 통일에 대한 구호 특히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 등의 구호들이 가장 적게 외쳐진 행사가 아닌가 싶었다. 아마도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가 반영된 것 같다. 대회의 내용도 통일보다는 평택과 한미FTA쪽에 무게가 더 실려보였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대열 뒤에서부터 한 노동자대오가 행진을 해오더니 경찰버스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포항건설노조 동지들이었다. 이대로는 내려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아주 작정을 하고 온 듯이 보였다. 1조, 2조, 3조로 나누어 아주 조직적으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불법집회가 명백한 이들의 투쟁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멈춰서 집회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다 어쩌다보니 대열한가운데로 가게 되었고 그 순간 경찰의 침탈이 시작되었다. 그다지 공격적인 침탈은 아니었는데도 수십 미터를 밀렸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지고 온 선글라스가 없어졌다. 아마도 동지들의 발에 밟혀 박살이 났겠지...

 

집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집회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교보문고를 가로질러 가는데 집회참여자보다 더 많아보이는 수많은 인파들이 매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지하세계 같았다. 우리는 정말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맞는가? 언제나 집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 드는 의문이 오늘도 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8/15 23:22 2006/08/15 2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