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가볍지 않은 명절 스케치..

그래도 명절인데 말야...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쓸쓸하고 조용한 명절이기도 하니 포스팅 한개 정도는 해줘야 하는거 아냐, 라면서 몇자 적는다..

 

나는 명절의 시작되는 빨간날의 첫날이 되면 괜히 '긴장'부터 바짝하게 된다.  음식을 거창하게 만드는것도 아니지만, 그 몇가지 안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나혼자 미리부터 장을 봐야 하는것과 그것에 들어갈 비용까지 계산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산을 하지 않고 장을 보는 날에는 매월 지출되는 카드의 한계를 초과해 버리는 불쌍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에 두번 밖에 안되는 명절인데, 결혼한 사람들은 다 치루는 일이기도 한데 나는 그날만 되면 괜히 짜증이 나고 일이 하기 싫어진다.  



밖에서 열라 놀다가 늦게 들어왔는데도 내가 해야 할 일(음식장만)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다 해치웠다. 비몽사몽간이지만... 명절이면 어김없이 겪는 일인데도 여전히 하기 싫은 이유가 뭔지 그러면서도 어느덧 다 해놓고나면 어찌나 나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한지 그건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역시 이번 설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하기 싫어서 겨우겨우 세가지의 전을 부쳐 놓고, 나물을 삶아 놓고는 집에 있던 캔맥주를 홀짝 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맥주의 양은 늘어 나고 있었으며, 기분은 알딸딸해져 갔다.  결국에는 한숨만 자고일어 나서 나머지 일을 해야지 하고는 누웠는데, 도저히 일어나고 싶지가 않은거다.  에라, 모르겠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불속에서 개기다가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다. 잠깐 눈을 떠보니 새벽3시인가 하더라.  여기서 일어나서 부시럭 거리며 일을 하느니 차라리 조금 더 개기다 일어나자 했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혹시라도 잠이 깊이 들면 다 하지 못한 일을 언제 할까싶어서...잠도 못자고....참, 내~ 나도 어지간한 인간인가 싶다.  잠까지 제대로 못자가면서 명절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살다니...

 

그러다가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억지로 억지로 일어 났다.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떡국만 끓이면 차롓상은 대충 차려질 것이다.  물론 상차림을 하는데는 또다른 수고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상차림은 끝났다.  하지만, 상차림이 끝났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다 끝난것은 아니다.  먹고 남은 음식을 차곡차곡 다른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 일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다 끝내놓고서야 비로서 한시름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잠 푸욱 잔다.  자고 일어나니,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인거다.  이번 설에는 어쩌다가 틀어진 엄마와의 사이 때문에 안움직여도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멀리 있는 남동생이 출현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틀어진 엄마와의 관계를 원상복귀해야 하는 설정이 되고 말았다.  원상복귀 하는것 까지는 좋다고 치자.  내가 피곤했던 이유는 틀어질 이유도 없는것 때문에 틀어졌다는거며, 나이 먹으면 다 그렇게 된다고 자신의 논리를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는 엄마를 설득시키기에 이미 나는 '괴상한 사고 방식을 가진 년'으로 찍히고 만 후였으니까. 

 

사실, 나는 엄마에 대한 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생고생하며 우리를 키운 사람은 아빠인데, 이제와서 내가 너희를 낳았으니 엄마 대우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라는건 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우를 받고 싶으면 대우 받을 짓을 하라는 말이 딱 생각나는 즈음 이었다.  물론, 나중에 희연이가 나에게 이런식으로 따지고 든다면 나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나는 낳아 주기는 했지만, 내 인생의 80%이상을 너에게 걸어 가며 희생 또는 투자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인생은 각자의 길이 있는거고, 언젠가는 자신이 선택한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때가 오는 법,  누구 누구 때문에 이지경이 되었다는 비겁한 변명 따위는 하지 말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결국 엄마에게 조금도 책임을 물어서는 안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군..ㅎ)

 

하튼, 뭐 그렇게 막내만 빼고 온식구가 다 모였다.  실로 몇십년만에 아빠를 뺀 엄마와 함께 상차림 자리에 앉아 보는 형제들인지 모르지만 시끌벅적한 그 분위기는 그냥 명절의 진부한 초상에 불과할 뿐이다.  술이 몇순배씩 돌고 돌면서 반복되는 얘기들만 빠지면 훨씬 정갈한(?)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지만 어차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싶어서 술이 취했다는 핑계로 다른 방으로 건너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큰소리가 나기전에 거기서 빠져 나오는게 목표이기도 했고..결국 목표는 이루어졌다.  남편과 희연과 나는 집으로 간다고 도망치다시피 일어났으니...모두가 의리 없이 나만 빠진다고 얼굴을 붉혀가며 한소리씩 하는걸 생까고 일어서는 나도 독하긴 독한 인간이란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독할때가 따로있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있고 싶지 않은 자리에 남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가며 굳이 있고 싶은 마음은 없다.  친구들과 술마시면서 유쾌한 얘기를 하면서도 내가 가야 할때가 되면 한치의 미련도 없이 일어서고 마는게 나이기도 하니깐.  어쨌든, 명절이 끝났다.  남들은 유난히 짧은 명절 연휴가 아쉽다고들 하는데, 내겐 단 하루의 명절이라도 정말이지 너무 재미 없다.  차라리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영화를 보던지 화끈하게 술판을 벌이고 신나게 춤이라도 추는 그런 자리가 훨씬 명절 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족의 '끈'이란 때때로 뒤통수에 붙은 껌처럼 웬지 쉽게 떨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을 얼룩자국인지도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