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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6
    민주노총 혹은 남성들의 변명... 그리고 성폭력범 K교수(5)
    와라

민주노총 혹은 남성들의 변명... 그리고 성폭력범 K교수

1. '사실' 그리고 '성폭행 미수'라는 언어

   불과 2,3일 전의 일이다. 민주노총 간부에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것이.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민주노총은 "사실 관계에 대해 피해자 확인 및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확인도 없이 보도된 내용은 전부 허위 사실"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입장 표명을 할 때 그들은 이 일을 '간부의 성폭행 미수 사건'이라고 지칭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언어들 속에는 가해자 (주로)남성의 자기 정당화 논리/변명들이 스며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가해나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인정받는다. 사건에는 사실을 뒷바침하는 물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에서 물증이란 무엇인가. 성폭력 사건에서 물증이 제시된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것일까. 물증이 쉽게 제시될 수 없다는 것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거기에는 물리적, 육체적 흔적이 아닌 정신적 상처가 기입된다. 민주노총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며 사용한 '사실', 혹은 '허위 사실'이라는 언어들 속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남성들의 절대적 무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남성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폭력적 구조가 바로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는 타인에 대한 통제와 배제를 통해 유지되는 전형적인 남성적 향유의 산물이다.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공식적인 확인도 없이 보도된 내용"은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확인(보통은 이것을 검열이라고 한다)도 없이 보도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탄원자의 목소리이다. 그들이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탄원자 (주로)여성의 목소리이다. 

   '성폭행 미수'라는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왜 그것을 미수라고 표현하는가. 우선 그것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그들의 지칭이다. 그러나 방금 언급했듯 성폭력 문제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다. 때문에 이 사건은 계속 '미수'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미수'는 남성적 권력이 한 여성을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수행되지 못했음을 지칭하는 언어이다.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별 것아닌 사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공하지 못한 성폭력은 죄질도 가벼울 것이라는 논리가 숨어 있는듯 하다. 그러나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이 정신적 외상으로 각인되는 '과정'은 성폭력이 '결과'적으로 성공했는지 여부와는 필연적 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미 상처받은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설피보면 사실이나 미수라는 언어가 객관적, 중립적 기술 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관계의 확인이나 미수라는 언어는 확인(성공)되지 않은 것들을 가리키는 법적 용어이다. 그 법적 용어 속에 객관적, 중립적 기술이라는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성폭력 문제는 법에 기입되어 있는 언어들이 결코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환상을 폭로한다. 오히려 그 언어들은 가부장적 질서의 표상체일 뿐이다. 성폭력 사건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두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건이 발생하는 조직(혹은 사회)의 감성과 지성 자체가 가해자를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에서 객관적, 중립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하나의 윤리적 입장만이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변명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개관적-중립적 언어라는 환상의 외피를 통해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윤리적 입장을 배제하려는 가해자의 논리이다.

2. '언론보도=2차 가해'라는 변명

   민주노총은 또한 언론보도가 있자마자 '언론보도는 2차 가해'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이 더 이상 공론화 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의 성폭력 사건에서 사건의 공론화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진다. 탄원자에게 부과될 수 있는 타인들의 편견에 찬 시선이나 접근을 막고, 심리적 상처를 상기시킴으로써 탄원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또 다른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조직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이런 목적 하에서 이루어진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조직의 배려를 확인하고 탄원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언론보도=2차 가해'라는 주장은 조직 보존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오히려 탄원자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고 이 사건 자체를 은폐 시키려는 반치유의 과정이며 2차 가해의 과정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2차 가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는 성폭력 사건을 공개하는 행위도 2차 가해에 해당하지만, 성희롱 및 성폭력 발생시 사건을 방관하는 행위, 신고자의 신고를 방해하거나 위증하는 행위,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의 구체적인 진술을 강요하는 행위, 그리고 사건을 은폐 축소 시키려는 행위 이 모든 것들이 2차 가해가 되는 것이다. 

3. 개인책임이라는 변명

   이번 사건에서도 민주노총 일부에서는 개인책임론이 등장했다. 특정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빠짐 없이 나오는 주장 중 하나가 성폭력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심할 경우에는 책임 추궁이 가해자가 아닌 탄원자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의 범인을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예외적 개인으로 규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무크지 문화사회 3호, 최철웅의 글 참조).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는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안정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을 스캔들화 시키는 것은 이미 사회가 성폭력 문제에 극도로 둔감한 야만상태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저지전략처럼 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가 성폭력의 야만상태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감추는 일이 허다하고, 용기내어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탄원자는 상처 투성이가 되기 쉽다. 법정에 가도 재판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며 끝나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 언론보도에 대한 입장 발표가 있던 2월 5일 오전 중앙대에서 제자에게 성폭력을 행하여 고소된 K교수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K교수는 사건이 있은 직후 탄원자에게 전화해 돈을 줄테니 합의하자고 하며 통장으로 돈을 입금했다가, 성폭력 사건이 죄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점과 자신의 권력이 학교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한 이후 입금한 돈을 지불중지시켰다. 이 사건의 진실은 누가봐도 명백한 것이었지만, 법정에서는 K교수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K교수는 사건 직후 태도를 바꾼 이후 집요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며, 비열한 사적 수단과 친분을 이용해 탄원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학교와 사회의 무책임한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결코 어느 한 예외적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폭력은 성폭력 행위를 묵인, 방치, 은폐해 온 단체나 조직 나아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성이 아닌 조직과 사회의 (성)문화의 일부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은 일정정도 문제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성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구성원 모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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