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징병제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8/29
    군 복무기간 연장? 징병제 폐지는 어때?(3)
    와라

군 복무기간 연장? 징병제 폐지는 어때?

군 복무기간 연장? 징병제 폐지는 어때?

 

얼마 전 EBS 수능 대비 강좌에서 언어영역 담당 강사가 강의 도중 남자는 ‘군대 가서 사람 죽이는 것’을 배운다고 말 했다가 군대비하 발언이라며 강한 질타를 받았고, 방송 출연 정지 및 공식적인 사과까지 해야 했다. 당시의 강의는 다시 보기가 중지된 상태다. 웃기는 일이다. 무엇이 군대 비하란 말인가? 군대는 전쟁을 대비하는 곳이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곳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적의 섬멸을 위한 살인 기술까지 포함되어 있다. 군대에서는 제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서 군인들은 총검술과 사격을 배우고, 살생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갖가지 방식으로 학습한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숨겨진 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특작부대 출신의 군인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군인들이 그렇게까지 화려하고 잔혹한 전투 기술을 배우지는 않지만 군대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살인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EBS 강사의 말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군대가 사람 죽이는 것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군대는 복종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망나니가 군대 다녀와서 사람 된다는 말을 (아직도!) 흔히 듣는다. 그것은 군대가 사회의 질서에 순응할 수 있는 덕목으로서의 복종을 배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발언을 한 강사의 말이 잘못됐다면 그것은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절반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틀린 말이 아님에도 해당 강사가 그렇게까지 심한 질타와 과도한 처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군대라는 곳이 아직도 일종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 성역은 국가의 비밀이 감춰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들의 트라우마가 감춰져 있는 공간이다.

 

대체로 약 10여 년 전부터 이 성역에 도전해온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병역거부자들이다. 물론 한국에서 병역거부는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 사회적인 공론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병역거부자들은 많은 곳에서 군 복무를 회피해온 이들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무엇인가를 회피해 온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공간이 지닌 정치적 진실과 그리고 지금까지 은폐되어온 한국사회(특히 남자들)의 트라우마와 대면하고 싸워온 이들이다. 한국의 남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몇 몇 예외를 제외한다면) 병역의 의무를 부여 받는다. 태어나자마자 삶은 정치적 임무와 동일시 되며, 그 임무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는 원천적으로 말소되어 있다. 여기서 그들은 단순히 하나의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유한 정치적 구조와 결부되고 있다.

 

징병제가 처음 실시된 서구 유럽에서는 과거에 병역의 의무가 정치적 시민권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투표권과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기능했다. 그것은 국가의 영토적 경계와 국민/민족(nation)을 만들어 내는 핵심적 장치였다. 그러나 현대적 정치체가 어느 정도 안착된 당대에 와서 징병제는 그 정치적 기능을 상실했으며, 점점 폐지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징병제를 실시하던 대표적 국가 중 영국은 1963년에, 프랑스는 2001년에, 폴란드는 2008년에 그것을 폐지했다. 스웨덴 역시 지난달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폐지했으며, 이달 23일에는 독일이 징병제 폐지를 포함하고 있는 국방개혁안을 마련했다. 장기적으로 이런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내년에는 세르비아가, 우크라이나와 알바니아는 올해 말 징병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국가 간 군사적 긴장이 충만한 대만 역시 2015년에 징병제를 폐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은 이런 흐름과 반대로 가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서 18개월로 단축되는 군 복무 기간을 24개월로 늘리자는 의견이 제시되어, 국방부와 의견 조율 중이라고한다. 한국에서는 왜 아직도 징병제의 유지, 나아가 확대를 주장하자는 흐름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상황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정적으로 제시되기보다는 추측될 수만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징병제의 유지가 결코 북한과의 휴전 상황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징병제의 유지 및 확대의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북한이라는 카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아가 미래에도 정치적 내분을 조율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것이다. 이때 위협적인 존재로서의 북한은 실재한다기 보다는 효과의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지 않고 고려한다면 징병제의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 좀 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징병제가 폐지된다면 군대 조직 체계의 개편과 함께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수많은 특권을 누려오던 영관급, 장성급 군인들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며, 여전히 그 특권을 유지하던 이들이 몸담고 있는 군대의 위상도 지금과는 다른 수준으로 수정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군대 조직은 오랫동안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운용해 왔다. 당연히 관련 산업의 규모도 엄청날 것이다. 때문에 징병제 폐지나 군대 조직 규모의 축소는 필연적으로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 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과 함께 고려된다면 징병제의 폐지, 나아가 군대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이번에 국방 개혁안을 마련한 독일의 경우 징병제 폐지안은 재정적자의 축소라는 기조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것은 이제 신성함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 속에서 평가되고 판단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사실 지금까지 군대자체가 상당히 기형적으로 유지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를 하러 간 군인들이 방위(공익), 전투경찰,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며 국방의 의무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군대에 대해, 징병제에 대해(징병제의 확대가 아니라 폐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

미디어스 기고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