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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다카지마 노동자들의 투쟁

시공간을 초월한 다카지마 노동자들의 투쟁

 

 

작년 오뉴월,  철강도시 포항을 뜨겁게 달군 건 뜨거운 초여름 햇살이 아니라 나이 예순, 칠순의 토목노동자들이었다. 세계 제일의 제철소 포스코, 그리고 그 포스코의 설비를 새로 짓거나 개보수를 담당하는 하도급업체의 노동자. 젊은 혈기도 엄두를 내기 힘든 포스코 본사 점거투쟁을 진행했던 예순에서 칠순사이의 이들 늙은 노동자.

 

무엇이 그들을 투사로 만들었나! 이 질문에 그들은 간단히 답했다. 바로 다단계 하도급, 즉 중간착취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이 중간착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포스코의 도급단가 계산에서 노동자 일당이 '품셈(인건비'으로 11만 7천원이면 십장(하도급) 체제에서 반장 한사람이 밑에 도급으로 붙으면 11만원이 되고, 그 밑에 또 팀장이 붙으면 10만원이 되고, 결국 A급 일꾼은 9만 5천원, B급은 9만원, C급은 8만5천원이 된다.

 

같은해, 현대자동차의 한 사내하청업체의 중간착취 실태가 폭로되었다. 단지, 사무실 운영하고 노무관리 하는 것이 전부인 이 업체의 사장은 일용공들의 노동에 기생해 월간 약 2천여만의 순이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일용노동자와 현대자동차 중간에 기생하는 이 중간착취기업(용역,파견)만 없에고 그 둘이 직접 계약한다면 이 일용노동자들의 일당은 하루 3만4천원에서 4만4천원으로 올릴수 있다 한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100여년전의 일본으로 가보자! 일제하 우리 선조들의 강제징용지로 악명을 떨쳤던 100여년전의 다카지마(高島) 탄광.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살아있는 노동자들과 환자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주검을 함께 섞어 해변에서 불태워 버렸던 다카지마 탄광, 바로 거기서 1872, 1878,1880, 1883년에 노동자들의 폭동이 연이어 터진다. 진압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사살당하고 고립당했다. 그러나, 이 폭동의 최후의 승자는 다카지마 탄광노동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싸운 대상은 무었이었으며, 이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이들은 바로, 현대의 중간착취 용역·파견격인 '나야가시라'(納屋頭)라는 인력청부업자들을 대상으로 싸웠고, '나야가시라'라는 제도의 철폐였다.

 

그 시기에 '나야가시라'는 일본만의 존재였을까! 아니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화된 영국은 그 일찍이 이런 노동청부업자들이 존재했었다. 옆나라 중국에서는 '바오궁터우(包工頭)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어떻게 없어졌는가! 바로 다카지마 탄광노동자들의 경우처럼, 벼랑끝 반란에 의해서, 그리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이란 이름으로 없어져 갔다.

 

다시 100년후인 현재로 귀환해보자. 그들 선배노동자들의 투쟁덕분에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중간착취의 배제'라는 문구를 통하여 '다른 노동자의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노동자들의 기본권으로 명문화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야만적인 중간착취라는 유령는 '아웃소싱', '파견노동', '비정규보호법'등의 명목으로 더욱더 되살아 나있다. 이를 두고 무어라 해야될까!  '야만'의 귀환인까! '제다이의 귀환'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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