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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8
    힘들어도 아파도, 시키면 일해야 돼! 또안
    없는데요
  2. 2009/04/21
    국가가 온 국민에게 월급을!
    없는데요
  3. 2009/04/14
    내 안에 너 있다는데
    없는데요
  4. 2009/03/31
    대형마트는 그녀들에게 의자를 왜 주었을까! (2)
    없는데요
  5. 2009/03/24
    도서관에 24시간을 투자해도, 1백대 1의 경쟁일뿐!
    없는데요
  6. 2009/03/17
    월급봉투 바겐세일이 경제를 살릴까!
    없는데요
  7. 2009/03/10
    눈 먼 돈
    없는데요
  8. 2009/03/03
    며느리 늙은게 시어머니
    없는데요
  9. 2009/02/24
    진정 간절히 원하는것이 무엇입니까!
    없는데요
  10. 2009/02/18
    판정은 언제나 찬송가
    없는데요

힘들어도 아파도, 시키면 일해야 돼! 또안

 

힘들어도 아파도, 시키면 일해야 돼! 또안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또안’. ‘병원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병원에 보내주세요’  메모지를 내게 보여주면서 그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또안’은 한국말이 몹시도 서툴렀다. 대화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단체의 도움을 받아 알게된 그의 사연은 이랬다. 우선 그는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을 원했다. 그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오창에 있는 육가공업체. 따뜻한 기후에서 살다온 그에게 차가운 냉동창고 같은 근무환경 자체가 힘겹게 느껴졌다고 했다. 거기다가 반복적으로 손목을 사용해야 하는 작업공정의 특성상 그는 근골결계 질환을 얻게되었다. 손목의 통증으로 더 이상 이 일을 하기엔 어렵다고 느낀 그는 그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됐다. 사장이 그의 퇴사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문제가 터진것이다.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또안’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동부 종합고용지원센터’내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지원’부서를 찾았던 것이고, 그 앞에서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들은 나는 분개했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순 없지만, 반면 노동자가 퇴사를 원하면 사용자는 조건없이 이를 수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른바 ‘강제노역’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안’을 상담했던 관련 공무원을 찾아갔다. ‘노동자가 퇴직을 원하면,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인데 왜 그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나요’라고 따져 물었다. 담당 공무원이 동문서답한다. ‘그 회사 사장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취업비자가 몇 개월후면 종료되는데, 지금 여기서 나가면 아마 불법체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사장은 여기서 몇 달 더 일하고 귀국시켤려고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사장님에게 병원치료를 권했던 거에요’.  불법체류를 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근기법상의 자유롭게 퇴사할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그 공무원과 한참을 실갱이 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분명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상 그냥 그면두면 그만인데 왜 해당 사업장의 사장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의문은 하루만에 풀렸다. 사장이 퇴직을 인정하지 않고, 법무부에 ‘사업장 무단이탈’로 신고하는 순간, 이 외국인 노동자는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강제노역’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인권선언일 같은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금 속으로 웅얼거린다. 어글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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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온 국민에게 월급을!

 

국가가 온 국민에게 월급을!


노동법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인권사상’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면 당연히 가지는 권리다. 이른바 양도할수 없는 천부적인 권리다. 인권 따로 ‘노동기본권 따로’가 아니다. 한 몸통이기에 ‘노동인권’이다.


인권은 최후에 남는 권리다. 다양한 권리가 제약 혹은 박탈되어도 최후까지 남아있는 권리다. 그래서 최후의 보루인 이것마저 뺏기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노동인권의 첫 출발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 생존의 조건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문화, 예술, 여가등 자아실현의 영역으로 나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구조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소수와 가지고 있지 못한 절대다수로 구분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취업’ 즉 일자리가 생길때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노동인권의 첫 출발점인 바로 이 지점에서 심각한 중증장애가 발생했다.


대학 도서관에 넘쳐나는 실업대기 노동자인 청년들로 넘쳐난다. 노동부 청주종합고용지원센터에는 실업급여를 수급하기 위해 모여든 실업노동자들로 넘쳐난다.


노동인권의 첫 출발인 노동할 권리에서 배제된 사람들, 즉 인간이 아닌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라님이 내놓은 정책은 별반 볼것이 없다.


오히려, 나랏님이 나서서 그나마 있는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10%씩 줄이고 있다. 참담하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피곤할 때, 유럽에서는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국가가 온 국민에 월급을 준다’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란다.


소득이 많거나 적거나 일을 하건 하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국민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소득을 누릴수 있는 권리(소득권)을 주자는 게 요지다. 이 토론을 이끄는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회계연도에 8조원의 매출을 거둔 기업 데엠(dm)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독일 기업가 괴츠 베르너이다.


요즘, 일주일에 3회 이상을 청주종합고용지원센터에 나간다. 우리나라의 실업노동자가 평균적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이 4개월이다. 노동자의 34%만이 실업급여에 가입해 있을 뿐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실업노동자에게 호소한다. 그리고 제안했다. 국가가 온국민에게 월급을 주지는 않더라도 현재의 실업급여의 문제점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냔고... 그래서 5월 1일 노동절에 ‘실업노동자대행진’을 함께 해보시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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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너 있다는데

내 안에 너 있다는데

 

우리에게 ‘대망’(야마오까 소오하치 작)으로 번역된 소설에서는 이렇게 전했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때까지 기다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고민이 ‘울지 않는 두견새’를 두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꼭 그꼴이다.

 

내게 ‘두견새’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양극화, 실업문제이다. ‘울지 않는 건’ 도무지 도서관을 뛰쳐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고, 실업문제에 대해 사회와 국가의 책임에 침묵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왜 나오지 않을까! 왜 침묵이외의 반응은 보이지 않을까! 현 정부의 실업대책을 신뢰해서 일까! 아니면, 노무현 패밀리의 사기극의 충격때문일까!

 

도서관에 답이 있을까! 누누이 이야기 했지만, 도서관에 있는 백명의 학생중에서 공무원이 될수 있는 학생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현정부의 정책은 그나마 있는 공무원 인력을 감축하고, 공기업의 10프로를 구조조정 하는 거다. 즉, 양질의 일자리는 더더욱 줄여버리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서 말이없다.

 

유럽의 어떤 기업가(노동자가 아니다)는 국민들 전체에 일정액의 월급을 주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재원은 기업과 일하는 노동자가 같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몽상처럼 들릴 이야기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공론화(사회적 의제)가 된다고 한다.

 

말이 없다. 하루 천여명이 찾는 다는 청주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노동자 권리를 홍보하는 홍보물을 기꺼이 뿌리치는 노동자들!

 

우리나라, 속담에 ‘우는 아이에게 젓 물린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나는 이 속담에 우리사회에서는 진리에 가깝다고 본다. 떼법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 걸 알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을 입증하는 사례는 결단코 없다.

 

울어야 할 두견새가 있다. 그런데 울지 않는다. 자문한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해법을 자문한다.

김치만두와 고기만두가 있었다. 만두의 김치속과 고깃속이 서로 싸운다. 내가 더 맛있다고.

이를 지켜보던 만두피가 말했다. ‘내 안에 너 있다’고.

 

사실, 따져보면 경제위기, 실업대란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실업, 노령실업 따질 것 없다. 굳이 구분해볼 필요도 없다. 우린 모두 하나의 만두피 속에 있는 내용일뿐 우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 안에 너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울어볼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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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는 그녀들에게 의자를 왜 주었을까!

 

대형마트는 그녀들에게 의자를 왜 주었을까!


지난 주말의 일이다. 우와! 정말로  가경동의 모 대형마트 매장 계산대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비록, 내가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이라는 켐페인의 성과물이니 자뭇 흐뭇하다.


고른 물건을 바퀴달린 바구니에 싣고서 계산대를 다시 둘러보는데 막상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없다. 한결 같이 의자를 두고 서서 일한다.


계산대에 있는 여성 노동자에게 살짝 물었다. ‘의자는 두고 왜 서 있어요’. 여성 노동자가 대답 대신이 그냥 웃고 만다. 다시 한번 물었더니, ‘의자에 앉으면, 혼나요. 손님들이 싫어 한다고 그냥 서서 일하래요’


 ‘쇼를 하자’던 모 회사의 핸드폰 광고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왜 의자를 놓았대요’.  ‘그러게요’ 라구 맞장구 치는 여성노동자.  그 여성노동자가 한마디 더한다.


‘낮 시간에 한가할 때 앉아보기도 했는데, 기분 나빠하는 손님도 있어요’


백화점이 대형할인유통매장에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은 고통스럽다.  우선 감정을 통제당한다. 무조건 웃어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상태인데도, 겉으로는 고객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웃는 얼굴과 밝은 목소리를 강제당한다. 수시로 감정불일치 상태의 스트레스에 빠진다.


마음도 괴롭지만 몸은 더 괴롭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유통·서비스업계 근로자 14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 비정규직 차별 및 노동권 실태조사’ 보고서는 이들의 몸상태를 통계로 말한다. 이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허리 질환(58.4%), 산부인과 질환(52.7%)을 앓고 있었다. 혈관계 질환(하지정맥류·47.4%), 비뇨기과 질환(방광염 등·39.6%) 등으로 고통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의자는 놓였는데 아직, 그녀들은 의자에 앉지 못한다. 그 연유를  결단도 못하면서 시늉만 내는 대형 할인 유통 매장 측의 전적인 탓으로만 돌릴까!


그러기엔, 무언가 허전하다. 계산원이 앉아 있으면 불쾌해 하는 손님들도 일부 있다는 그 여성노동자의 한마디를 무심코 지나치기엔 뭔가 석연찮다.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어주자. 우리들의 누이일수도 있고, 어머니일수도 있는 이 여성노동자들이 의자에 앉을수 있도록 하자! 마지 못해, 의자를 내놓은 대형할인유통매장의 실제로, 의자를 제공할수 있도록 하자! 나 아닌 타인이 더 많은 기본권을 확보할수록 나의 노동기본권도 늘어가는게 순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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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24시간을 투자해도, 1백대 1의 경쟁일뿐!

도서관에 24시간을 투자해도, 1백대 1의 경쟁일뿐!

 

프랑스 노동자들은 현 사르코지 정권의 경제위기대책과 구조조정대책에 맞서, 지난 3월 19일 2차 연대총파업을 진행했다. 1월의 연대총파업 250만명보다 훨씬 더많은 300만명이 참여했다.

 

붉은 복면을 한 학생이 펼침막을 들고 있다. 펼침막에는 “작은 것을 양보하면 큰 것마저 잃는다”(CEDER UN PEU C'EST CAPITULER BEAUCOUP)라고 써있다.(출처:경향신문,3.24)

 

8%대의 실업과 경제위기 상황속에서 프랑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액, 일자리 보장 등을 요구했다.  2003년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위때 정부정책이 철회됐던 것처럼, 외신은 이번 총파업으로 ‘사르코지호’가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고 전했다. 그리고, 여론 조사 결과 프랑스 국민 80%가 이번 총파업을 지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 우리 민주노총은 청주 실내체육관 앞에서 약 1천2백여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노동자대회를 진행했다. 프랑스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자 감세 중단, 구조조정 중단, 실업대책 마련’등을 촉구했다.

 

집회를 준비하는데, 지나 가던 노인어르신께서 혀를 차며 한마디 하신다. ‘미친XX들! 경제가 어려운데 뭔 지랄이야’. 물론, 이날 집회에는 학생들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어제, 청주종합고용지원센터를 방문했다. 관계자를 만났고, 실업급여 수급현황에 대해서 물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2008년 10월 1천여명에 불과하던 실업급여 신규수급자가 올 1월에는 2천1백여명, 2월에는 2천 9백여명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전체 수급대상자가 2008년 10월 5천명 선에서, 현재 1만명 가까이로 배이상이 늘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실직노동자나 청년 구직자나 다들 표정은 침울했다.

 

노무현 정부때 처음 이말이 나오더니, 현 정부 들어선 ‘떼법’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집회및 결사의 자유’를 제한 하는 법을 ‘떼법 방지법’이라고 주장했다.

 

‘떼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떼법’ 없이 우는 사람 달래준 적이 있던가! 요구없이 정치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책을 내놓은 적이 있던가. 대학교 도서관에서 하루 18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1백명당 1명만 공무원이 될수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던 적이 있던가!

 

주장해야 한다.

 

권리에 대해서 주장해야 하고, 실업과 경제위기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다들 도서관에만 있다.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는 사이, 경제위기는 심화되고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어나고, 부자 감세 정책이 활개친다. 어디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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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봉투 바겐세일이 경제를 살릴까!

월급봉투 바겐세일이 경제를 살릴까!

 

말만 ‘잡 쉐어링’이지 실은 ‘월급봉투 바겐세일’이다. 나눠지는 일자리는 온데 간데 없고, 월급봉투만 얇아진다. 직격탄은 88만원 세대가 맞았다. 애면글면 노력해, 수백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의 첫발을 내딛자마자 첫월급을 내놓으라는 기성세대. 도대체, 이들 젊은이들이 무슨 잘못이길래 모든 책임을 이들이 져야 하는가!

 

지난 주, 일본 발 뉴스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렌고’(일본노총)가 조합원 4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도쿄 도심 한 가운데에서 집회를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렌고’가 외친 구호는 단순했다. ‘임금 인상이야말로 진정한 경기부양책’이라며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참고로 ‘렌고’는 조합원이 6백만명이, 우리나라의 한국노총보다도 더 보수적이고 더 우익적인 단체이다. 이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부활에 찬성하며, 이를 위해 군대보유를 금지한 일본의 평화헌법을 폐기하자고 주장한다. 지난주에는 ‘엔고(엔화강세)인 상황에서 이기회에 제주도를 사버리자’고 대화를 나눈 당사자이기도 하다.

 

‘렌고’가 어떤 단체이든간에 근본적으론 노동조합단체이다. 그래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더 많은 투자와 고통분담이 경제를 회생시키는 원동력이 아니라, 보다 많은 임금이 침체된 경기를 부양시키고 이속에서 기업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바라본다.

 

반면, 기업주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를 바꿔 본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주 뿐만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까지 기업주의 입장에서 유난을 떤다. 앞장서서 ‘임금삭감’을 외쳐대는 사람은 기업주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이 대세였다. ‘정리해고와 파견법(비정규노동자양산법’을 노동계가 수용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한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전사회가 이런 분위기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파견법에 의해 비정규노동자로 전락했고, 노동시장의 50%이사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외환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구조조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은 ‘임금삭감’이 대세다. 직설적으로 임금삭감을 요구하기엔 뭔가 떨떠름 했던지, 교묘하게 ‘잡세어링’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하위직 공무원들, 군인들은 싫다는 내색조차 못하고 월급봉투에서 일괄 공제하고, 잡세어링에 대한 동참으로 선전된다.

 

요즘, 웬만한 제조업의 노동자는 월급봉투가 반토막, 혹은 1/3이 줄어들었다. 잔업과 휴일근로가 없다보니 월급이 그렇게 줄어들었다. 그러니, 아껴쓴다. 그러자,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이다. 매달 10만개가 넘는 자영업이 문을 닫는다. 악순환의 반복인 셈이다. 과연, 잡세어링으로 포장된 임금삭감이 경제를 살릴지 두고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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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돈

눈먼 돈

 

해남군 모 읍사무소에서도 10억원대의 복지보조금 횡령사건이 적발됐다. 서울 양천구청과 용산구청에 세 번째다. 주역은 사회복지담당 7급 공무원이다.

이 돈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야될 몫이였다. 그래서 더 파렴치하다.

 

작년부터 이상하게, 사회복지시설의 상담이 부쩍 늘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근로조건이 아니였다. 거의 시설의 비리문제에 대한 상담이 주를 이뤘다. 이들 상담자들의 주장을 액면그대로 옮겨 보면, 지자체의 보조금을 유용하는 행위, 후원금을 유용하는 행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급여를 부풀여 타내는 행위등이다.

 

이들의 주장을 듣다보면, 거론된 사회복지시설은 ‘복지의 탈’을 쓴 도둑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비리를 저지른 재단이 ‘법의 단죄’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법의 단죄’는 없었다. 오히려 단죄는 엉뚱한 사람이 받았다. 내부비리를 공개한 ‘내부고발자’가 단죄되었다. 시설에서 쫓겨나고, 아예 이 분야에서 쫓겨났다.

 

비리의 몸통은 온전했다. 단지 재단의 이사회, 아니 시설의 대표 명의가 본인의 이름에서 ‘처’의 이름으로 바뀔 뿐 그들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사업가로서 존대받는다.

 

그 재단은 여전히 도내에서 십여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난다.

 

감독기관은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고, 관련 법률이 미비하다고 어물쩍 넘어간다.

 

질러 대봤자, 응답이 없고 질러 댄 자가 손해본다는 역전된 현실은 DNA에 똑똑히 박혀 버린다.

 

그래선가! 이제는 무덤덤하다. 시설의 비리 문제에 분기탱천해 있는 상담자를 앞에 두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고 강변한다. 당신의 생각과 달리 당신이 받을 불이익의 규모가 크다고 강변한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그냥 놔두면, 사회복지 시스템이 구멍난다. 쥐꼬리 만한 사회복지재원조차 눈먼 돈이 되어버린다. 가장 취약하고 가장 가난한자에게 가야 될 국민의 세금이 엄한 사람 치부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혼자 하긴 힘들다. 오히려 그 사람만 낭패본다. 그래서 집단적으로 노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할라 치면, 색안경을 들이댄다. ‘불순한 사람’들의 ‘불온놀이’로 치부한다.

 

그래서 한숨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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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늙은게 시어머니

며느리 늙은게 시어머니

 

‘며느리 늙은게, 시어머니’라 했다. 어제의 처지를 잊고, 오늘 처지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을 빗댄 속담이다. 요즘, 한나라당의 행태가 꼭 요모양이다. 불과 1년전만해도 소수야당이던 그들이다, 지난 몇 년동안 셀수도 없을 만큼 많은 날들을 국회를 점거했던 한나라당 아닌가!

 

이제, 다수당이 됐다고 야당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야박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를 제명처리 하겠다고 하고, 국회 농성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말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다행인것은 언제까지 한나라당이 ‘절대다수당’일리는 없다는 거다. 그때 가면 현재, 자신들의 행위가 미래의 ‘자승자박’의 포승줄로 될것은 자명한 거다.

 

요즘, 주변사람들 중에서 YS의 정치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정치력이 그립다고도 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민주당에 대한 조롱이다. 민주당의 무능과 무기력에 대한 조롱이다.

 

YS 같았으면, 의원직 총사퇴를 내걸고 단식투쟁이라도 했을 거라는 것이고, 그런 결단력과 정치력 없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다.

 

잔치는 끝났다. 미디어법등 이른 바 ‘MB 악법’은 한나라당에 대한 민주당의 항복으로 극적으로 끝이났다. ‘극적’이 아니라 ‘비극적’이라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 민주노총 소속의 언론노조 총파업도 잠정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민주당의 무기력과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르다는 것이다. 언론노조의 ‘MB악법저지 총파업투쟁’은 오징어 뒷다리처럼 질기고 질긴 투쟁이다.

 

이 질기고 질긴 투쟁을 MBC 노동자들이 선두에서 이끌었다. 이것을 빗대, 혹자는 이번 MB 미디어악법저지 투쟁을 ‘MBC발’ 파업이라고 했다.

 

신뢰의 위기에 빠진 민주노총이 지난 주말, 여의도에서 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성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결과는 3만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모였다.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임금삭감과 해고의 불안감, 절대 위기에 빠진 민주노총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절박하게 모였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말했다. ‘강력한 노조, 강력한 노동운동이 없으면, 중산층이 존재할수 없다’고 말이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만큼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소중한 존재다. 노동운동의 분배투쟁이 없다면, 1%의 부자와 99% 가난한 자로 세상을 바뀔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할중에 한가지가 더있다. 노동운동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것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민주당 보다도 언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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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간절히 원하는것이 무엇입니까!

진정 간절히 원하는것이 무엇입니까!

 

영동에 있는 한 공장에, 그와 함께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을 들러서,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나눠 마실때쯤, 노조 간부 한분이 잠깐 사무실 밖으로 나오란다.

 

그 노조간부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저사람(같이 동행했던 그 사람) 노무사 맞아요’. 홍두깨 같은 질문에, 간단하게 ‘네’라고 답했다. ‘왜요’하고 내가 다시 되물었다.

그가 답한다. ‘그래도 노무사인데 옷차림이 왜 그래요. 신발은 창이 벌어져서 양말이 다보이고...’

 

나는 그냥 웃었다. 그 노조간부의 지적대로 같이 동행했던 노무사의 차림새가 꼭 그랬다. 양복도 입지 않고, 옷차림은 허름하고 신발은 창이 벌어지고......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상담을 마칠때쯤, 그 간부가 그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청주로 오는 차안에서, 그가 난감한 표정이다. 아까, 그 노동조합 간부가 벌어진 구두 밑창을 접착제로 붙여주었는데 양말이 늘어 붙었단다.

 

어느날, 호죽노동인권센터 사무실에 있는 그의 옷에 청테이프가 붙어있다. 찢어진 부위에 청테이프로 임시 처방을 한것이다. 그때, 그는 20일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였다. 그리고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이기도 했다. 거대기업으로부터 왕따, 집단차별에 의해 해고된 한 여성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서면’을 작성하는 중이였다.

 

그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의 집념은 20일 넘는 밤샘 작업을 통해 400여페이지(거의 소설책 분량이다)의 서면을 완성했다. 그리고 노동위원회로부터 그녀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 결정이 나오고 나서, 그는 3일간의 휴가를 내고 겨울 지리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또 다른 노동자의 문제를 가지고 언제나 그렇듯 씨름하고 다닌다.

 

40대 중반의 그도, 한때는 직원을 고용하며 번듯한 사무실을 운영하며 일정이상의 소득을 올렸던 개업노무사였다. 그랬던 그가 ‘회의와 고통’을 느꼈다 했다. ‘타인의 고통’을 바탕으로 소득을 올리는, 그리고 소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물질만능주의’적인 삶에 커다란 회의를 느꼈단다.

 

그리고, 40대의 나이에 가진것을 버리고, ‘호죽노동인권센터’에 새둥지를 틀었다.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풀어제끼니 훨씬 더 많은 자유가 왔다고 했다.

 

어느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당신이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그가 물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것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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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은 언제나 찬송가

최근 두 달 사이에 자영업자 40만명이 몰락했다. 임시 일용직 노동자 누계가 처음으로 700만명 이하로 줄었다. 대졸 취업생들의 비중이 50%를 넘지 못한다. 귀족 노동자라고 그렇게 손가락질 하던 자동차 업계 노동자들의 월급봉투가 130만원으로 쪼그라 들었다.

'비정규직 해고대란'을 언급한다.

2007년 7월1일 발효된 비정규관련법안이 2009년 6월30일자로 해고대란을 만든다고 비정규법을 정조준한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던 그 법률의 고삐를 풀자고 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우선 93만명의 해고를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이건 완전 사기극이다. 그 법이 통과될 때, 그 법을 통과시켰던 사람들은 비정규노동자들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준다고 호들갑을 떤 사람들이다. 이제, 입장을 바꿨다. 더 일할 사람이 이 법 때문에 해고되는 (노동자의 해고를 부추기는) 악법이란다. 그래서, 4년으로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쪽으로 바꾸자 한다.

우리(민주노총)가 그렇게 주장했다. 정규직 전환은커녕, 그 기간만큼 비정규 노동자들을 양산하는 쪽으로 갈 거라 했다. 철저히 무시당했다.

2년 전만해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법률이라고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의 목소리만 대서특필되더니, 이제는 똑같은 법률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만 보태는' 법률이라고 떠드는 정부, 여당의 목소리만 대서특필된다.

똑같은 경우로, 청년실업대책이 있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잘라서 공기업 청년인턴 2만자리를 만든다고 할 때, '2만개의 일자리'로 호도된다. 시간이 지나면 결과는 나온다. 심판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심판도 바뀐다.

아니 심판은 그대로인데 '룰'이 바뀐다. 판정은 언제나 '찬송가'다.

1년 전만해도 큰소리 치던 사람이 있었다. 경제는 '747' 비행기를 타고, '주가 3000' 고도 비행을 장담했다. 믿었다. 적어도 1년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 믿음은 딱 1년 만에 '속았다'라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 사람을 뽑았던 '손목'을 원망해도 때는 늦었다. 앞으로 4년을 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더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심판관은 언제나 찬송가다. 위대한 대한민국 보수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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