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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삭제하는 도시

수원구치소에 있을 때 그런 그런 생각을 했다.

절대로 아파트에는 살지 않겠다고...

아파트에 살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 주제에ㅋㅋ

그 당시는 아파트형 수원구치소가 정말이지 너무도 답답했다.

그리고 구치소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가 창살넘어로 보이는데

갑자기 그 창살이 구치소의 것인지 아니면 그 아파트의 것인지

헤깔리기도 했다. 내가 갇혀 있는 것처럼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갇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튼 난 아파트가 싫다.

특히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삐죽삐죽 솟아있는 주상복합형

고급아파트들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 세운 바벨탑이 생각난다.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의 작가 홍은택씨는 부자들이 많은 땅을

차지하지 않고 하늘 위로 올라가면서 지들끼리 모여사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지만 난 부자들이 우리네 하늘까지

빼앗아 간 것 같아서 너무 싫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쫓겨서 자꾸만 하늘과 가까운 동네로 모여들었는데

저 하늘의 달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부러웠는지

부자들은 하늘 가까운 그 땅마저 빼앗아버리고서는

마치 저 하늘의 달과 별을 잠자리채로 따기라도 할 것처럼 하늘높이

그 천박한 돈냄새나는 탑들을 쌓아올렸다.

 

오늘 친구네 집을 다녀오던 길


 

이런 것이 있었던 곳에

 

 

이런 것이 들어서 있더라.

 

안그래도 아파트 안좋아하는데, 뭐랄까 익숙한 좌표에서

전혀 익숙치 않은 풍경을 만나고나서는 괜시리 마음이 서글퍼졌다.

부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함께 쌓았던 그 높았던 골리앗이 있던 자리에

골리앗은 상대도 안될 거대한 시멘트덩어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골리앗만이 아니었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던 골목길의 풍경도, 오르락 내리락 하던 언덕길도 사라져버렸다.

대신 일정한 넓이의 아스팔트가 깔리고, 마치 당구다이와도 같은 평평한 땅덩어리가

있었다. 이상하게 예전보다 더 넓어진 풍경과 공간앞에서 난 숨이 막혀왔다.

그 새벽 골리앗에서 수다떨며 보내던 날들과 갑자기 쳐들어왔던 용역들과 싸우던 일들

후배들앞에서 무섭지 않은척 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내 모습도 사라져버렸다.

새벽공기 마시며 마을 한바퀴돌고 모두함께 둘러앉아 먹던 국밥도 사라져버렸다.

땅과 함께 뿌리내리고 바람과 함께 여행을 하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사라져버렸다.

내 젊은날의 한 귀퉁이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라는 곳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모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대체 공간과 시간을 이렇게 통제로 삭제해버리는 무식한 도시라니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일까?

 

아파트가 왜 그리도 싫었는지 이제 알겠다.

대체 얼마나 많은 기억들과 역사들과 생명들과 추억들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밑에 묻혀있는 것일까?

그 거대한 무덤위에 사람사는 집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기억이 이렇게 삭제되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냥 이렇게 잊어버려도 좋은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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