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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인의 질문

와우북페스티발 갔다가 2만원어치 이상 사면 사은품을 준다는 상술과 30% 세일에 확 넘어가서 책 몇권을 샀다. 요새 들어 부쩍 책 사는 일이 많다. 안읽고 쌓여가는 책을 보면 괜한 허영심에 나무들만 희생시키는 건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만다. 그 때 샀던 책들중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서경식이 쓴 49인의 초상이다. 한 권의 책에 49명의 이야기를 담으려니 깊이있게 들어가지는 못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솔직히 재미없고 너무 수박겉핥기같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만 좋은 자료가 되는 것 같다. 별로 어려운 책은 아닌데 출근시간에만 읽다보니 은근히 오래걸린다. 어렵지는 않지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나는 전쟁의 책임이 위대한 사람들과 정치가, 자본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책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싫었다면 너도나도 들고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어야지요.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안네프랑크 편

 

세상의 많은 부조리들이 정치가들과 권력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면, 나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떠나지 않는 질문을 안네 프랑크가 나에게 묻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빅토르 하라는 스타디움에 연행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타를 집어들고 인민연합 찬가 <벤세레모스>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화를 내며 그의 기타를 빼앗았다.

하라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계속 이어갔다. 화가 치밀어 오른 군인들은 소총 개머리판으로 그의 두 팔을 짓이겼다. 그래도 하라는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러자 군인들이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마치 그가 되살아날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수십발의 총탄이 그의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그 때 한 군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디 한번 계속 불러봐. 이래도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야기 히로요, <금지된 노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빅토르 하라 편

 

저항은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희생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만들어진 이미지다. 세상의 상식으로보자면 희생인 것들중에 그 상식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살면 아무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런데 이건 그래도 우리 사회가 '상식'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의 공통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두 손이 박살나는 시대가 아니기때문이다.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다면 나는 어느 정도의 저항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어느 시대고 끔찍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다만, 끔찍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누어져 있을 뿐이다. 2009년의 한국은 충분히 끔찍하지만 그래도 나는 큰 부족함없이 살아가고 있다. 시대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하라보다 더 편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결국 49인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저항을 계산하는 것은 비겁한 일인가? 나는 무엇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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