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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잡지팀으로 옮기고 바로 마감 시작해서 10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근하고, 어제 새벽까지 인쇄소 가서 인쇄 보고, 드디어 내가 참여한 첫 잡지가 나온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다. 편집자들은, 아무리 거지같은 책이라 해도,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작업해서 다시는 표지도 보고 싶지 않은 책이라 해도, 막상 책이 나오면 기분이 좋고 뿌듯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갓 태어난 자식이 부모에게 이뻐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가 만든 첫 잡지가 꼴도 보기 싫다. 아직 인쇄소에서 잉크도 안 말랐을, 아직 제대로 태어나지도 않은 책이 정말 미치도록 싫다. 회사 인트라넷에 올라온 글 때문이다.
 
대표이사가 인트라넷에 올린 글은 여러가지 사항이 있는데, 그 가운데 잡지와 관련된 것만 보자면,
 
그동안 매 달 두 권씩 나눠주던 것을 한 권씩 주되  적어도 일 년에 한 명 이상 정기구독자를 만든다는 약속 문서를 쓰라는 거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두 권씩 주던 것을 한 권으로 줄일 수도 있고, 아예 안 줄 수도 있다. 월급 안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회사 사정 어렵다는데 책 안받으면 어떠냐. 그리고 직원들에게 정기구독자 늘리는 일에 열심으로 나서달라고 해도 괜찮다. 회사가 잘 나가야지 내 월급이 오를 건덕지가 많아지니까. 그보다도 내가 애써 만든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는데 그것보다 더 값진 일이 어디있겠나.

 

그런데, 정기 구독을 시키겠다는 약속문서를 내라니. 아무리 봐도, 이건 각서 쓰라는 이야기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그냥 책 안받고 말지, 정기구독자 만들어 오겠다는 각서는 죽어도 안쓸거다.

 

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야근하고 애쓰며 잡지를 만들었나. 내가 왜 일을 열심히 해야하나... 에이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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