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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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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3
    계란말이 대실패기 (3)
    무화과
  2. 2008/05/23
    무제
    무화과

계란말이 대실패기

점심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뿔사 반찬들을 아침에 다 먹어버렸다

야채실을 열어서 브로콜리를 데치고

오랫만에 만만한 계란말이나 할까

갖은 재료들을 준비한다

 

아따 그놈 속이 꽉 찬 양파를 썰다가

계란말이 만큼이나 세상이 만만해보였던 나의 20대가 저물었음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눈물이 울컥 참을 수 없어서 애꿎은 양파에게 화풀이를 한다

도닥도닥 칼질이 양파를 내리친다

 

쪽파도 썰어넣고 마늘다진것도 넣고

계란을 풀고 물을 살짝 타준다

예전엔 미쳐 몰랐다 계란말이에 물을 타면 더 잘 익고 부드러워지는것을

세상사는 일은 결국에 물을 얼마나 타는것이냐에 달려있다고

물을 타면서도 잃지 말아야할 모습이 있다고

계란말이에 물타는 법을 가르쳐준 친구가 내게 말을 거는듯하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져진 양파와 쪽파 마늘에 계란을 풀고 소금간을 해서 살짝 흘러보낸다

이제부터는 맛보다는 디자인에 신경을 쓸 차례다

김밥이 그렇듯 계란말이 또한 말려진 두께와 전체적인 모양새가 중요하다

예쁘게 말린 계란은 못생긴 놈보다 2.9배 맛있다

 

그런데 아뿔싸

익기도 전에 타들어 간다

후라이팬 바닥에 붙은 계란이 본분을 망각하고 후라이팬과 일체가 되려고 한다

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기름이 부족했던 것일까? 후라이팬이 덜 달궈졌었던 걸까?

어쩔수 없이 첫장은 스크램블로 급 변신을 시도한다

이제 기름도 넉넉하게 두르고 후라이팬도 여유있게 달구고 불도 살짝 줄이고

그런데 두 번째 장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결국 4장의 계란말이 대신에 한 접시 가득쌓인 스크램블이 완성됐다

동생이 나무란다

 

후라이팬이 문제였다. 오래된 후라이팬은 더이상

계란말이나 부침개를 지쳐내기에는 삶이 버거운 녀석이었다

힘들어하는 녀석에게 괜한 노동을 시켰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계란말이에 물타는 법을 배웠건만

그렇게 쉬운 계란말이를 대실패했다

세상에 만만한 것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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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살다보면 나무의 색깔이 빠뀔때마다 한 번 정도씩은 갑자기

마지막 술잔처럼 삶이 버거워질 때가 있다

밤새 흘린 눈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시간이 무거워질때가 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고 해도 그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마냥

내 인생이 꼬여있는것도 아닌데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더라도 구질구질하게 가난한것도 아닌데

무작정, 한숨조차 버거워질 때가 있다

외로운 마음이 저혼자 달아나버린 순간이 있다

 

과거는 지지리 궁상맞고

미래를 불안하고 초조해서

어쩔수 없이 현실에 머무르는 각도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하늘을 높이 올려다보고

아무생각없이 페달을 저으며

바람에 대고 크게 소리치고

그러다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다음 계절에나 어쩌다 다시 한 번 찾아오는

그냥 그렇고 그런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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