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9/12/09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2/09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무화과
  2. 2009/12/09
    지하철에서 지지리궁상(2)
    무화과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망루를 불태운 것은 우리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가치들을 내던지고 '뉴타운'과 '특목고'를 삶의 이유로 박아들인 우리 모두가 한 일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따우가 무슨 소용인가. 그것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괴물이었으므로 괴물같은 정부가 탄생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자융와 민주의 공화국이 낳은 기형아가 아니라 자본과 속물의 제국이 낳은 우량아다. 그들은 무자비한 재개발 사업을 밀어 붙였고 무고한 사람 6명을 죽였으며 그 후로도 당당했다. 우리는 원고인인 동시에 피고인으로서 말한다. 이명박 정권은 살인 정권이다.

 

그 죽음은, 우리 모두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무치는 경고였다. 그분들을 잊는 일은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 일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2009년 여름부터 용산으로 갔다. 유족들의 슬픔과 신부님들의 헌신 앞에서 문학은 한없이 무력했지만, 그 뼈아픈 자각 속에서 1인 시위를 했고 글을 썼다. 정의를 믿었고 희망을 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28일 용산참사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희생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해 고인들을 두 번 죽였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의는 승리할 것이고 희망은 배반되지 않을 것이다 .

 

'6.9 작가선언-이것은 사람의 말'에 이어 이 책을 낸다. 다급하고 절박한 현실이 이 글들을 쓰게 했고 우리는 무능력과 죄책감의 힘으로 겨우 썼다. 추천사를 써주신 문정현님, 조세희님, 한명숙님, 홍세화님, 표지를 만드신 정은경님, 그리고 실천문학사 여러분들의 힘이 이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름들 이전에, 분노와 슬픔을 담아 거명해야할 이름들은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위정자들과 치안관계자들에게 이 책의 가장 차가운 부분을, 망루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과 지금도 용산을 지키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바친다.

 

비정한 나라에 무정한 세월이 흐른다.

이 세월을 끝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용산에서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헌정식이 있어서 다녀왔다. 작가선언 6.9에서 준비한 행사인가보다. 우리도 1월에 책이 나오면 행사를 해야할텐데, 어떻게 하는지 한 번 보려고 했다.

 

날은 몹씨 추웠고, 뒤에 행사들이 많았던지 재빠르게 진행했다. 마지막 순서로 선언문을 낭독했다.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선언문이 굉장히 문학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겉 멋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글들과 진심이 담긴 글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선언문이 감동을 준 것은 진심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한 껏 멋을 부린 글이기도 하다. 뭐 글 쓰는 작가니까 당연한 일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고 멋만 부린 글이 문제일뿐이다. 작가라면 응당 읽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글을 써야한다. 그 즐거움은 단순한  흥미와 재미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시 예전의 꿈을 다시 꿔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저렇게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다. 아직은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하는데, 혹은 부족해도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바라봐야 하는데 나는 아직 아니다. 문학이 한없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1인 시위를 나섰고, 힘겹게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이 작가들은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아직 좋은 삶을 살지도, 혹은 내 삶이 비겁한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나도 사람의 말을 하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하철에서 지지리궁상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이계삼 선생님의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다가 눈물이 나 챙피해 죽는 줄 알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계삼 선생님이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는 대학때는 연극에 빠져 공부 안해서 선생님 못하다가 뒤늦게 30줄이 넘어서 기간제 교사를 하게된 친구다. 그런데 계속 기간제가 끝나고 정규직 채용에서는 탈락을 했다. 전교조 쪽으로 싹수가 보인다는 이유였다. 어렵사리 다른 학교 정규직 임용 공채에 합격해서 수업과 담임까지 배정받았는데, 며칠 뒤 또 탈락 통보를 받았다. 그 학교에서 전 근무지로 연락을 해본 모양이다.  그 사이 아이는 태어나고, 결국 다른지역에서 다시 기간제교사 2년 동안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스스로를 배반하며 살았다고 한다. 헌데 이번에도 정규직 임용에서 탈락을 한다. 친구의 아내는 돈을 안써서 그런거라고 추측하고 학교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핑계를 대고. 하지만 이계삼 선생님은 다른 부분에서 확실한 물증을 잡았다. 일제고사 때문이었다. 친구가 맡은 반 아이들 몇 명이 첫날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친구분은 시험을 치지 않은 아이들을 불러서 점잖게 그래도 시험을 치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아이는 끝내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친구분은 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기간제가 담임하는 학급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아이가 나온 꼴을 학교가 견딜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친구분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이계삼 선생님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있잖아, 나 진짜 말 못하겠더라. 그 한 아이한테, 억지로라도, 꼭 치르라고, 그 소리는 정말 못하겠더라."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이라는 고문을 행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 보다도, 징계사유도 안되는 일을 꼬투리잡아 선생님들을 짜르는 이 정부에 대한 분노보다도, 그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2년동안 그 지저분한 꼴을 다 견디고 살아냈을텐데, 그래도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양심 한 자락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 양심 한자락의 대가에 대한 분노는 슬픔이 지나간 후의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그것도 출근길 지하철 2호선에서 궁상맞게 시리 눈물이나 질질짜고 있었으니.

요새 들어 책 보며 부쩍 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티재하늘 보면서도 울고, 용산참사 만화책 원고 보면서 교정교열은 안하고 그냥 울고 있고, 이계삼 선생님 책보면서 울고... 울음이 너무 헤퍼졌다. 게다가 책 읽은 공간이 거의 지하철 혹은 사무실인데,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서 책보고 울고 정말 지지리궁상을 떨고 있다. 원래 못난 놈들이 궁상떠는 법인데, 갈수록 못난 놈으로 살고 있다는 자책때문인지 암튼 오늘도 창피해서 혼났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