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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16
    길상사에서 - 시와(6)
    무화과
  2. 2006/07/15
    침묵
    무화과
  3. 2006/07/13
    기막힌 우연(1)
    무화과
  4. 2006/07/12
    감옥에 가는 일(3)
    무화과
  5. 2006/07/12
    감기
    무화과
  6. 2006/07/12
    평화행진후
    무화과
  7. 2006/07/05
    평화행진(1)
    무화과
  8. 2006/07/04
    새벽비
    무화과
  9. 2006/07/04
    평화야, 걷자! - 마지막 공지사항!!!
    무화과
  10. 2006/07/03
    바닥(1)
    무화과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1 언어수업 교재를 슬며시 들춰봤다.

오랫만에 보는 반가운 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림의 목계장터,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심훈의 그날이 오면, 조지훈의 승무

서정주의 숨막힐 듯 대단한 구절들, 김영랑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아름다운 시어들,

김춘수의 꽃과 백석의 여우난 곬족, 이형기의 낙화, 유치환의 깃발

교과서에서 보았던 시들이 갑작스레 한꺼번에 기억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온다.

더불어 교과서 밖에서 보았던, 김남주 박노해 김지하들의 시도 함께...

그리고 바로 보이는 것은 시들 밑에 나와있는 문제들.

시의 주제 소재 등등을 가지고 만들어낸 문제들.

 

난 고등학교 다닐때 문학수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를 좋아했지만, 시의 주제와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외우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난 한용운의 님이 조국과 부처가 아닌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만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시와 소설들의 주제와 소재등을 외우지는 않았지만

시험점수는 괜찮게 나왔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에서 시에 대한 수업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더 자유롭게 시를 만나고 시를 만들고 시를 노래했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창의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잘난 입시교육 덕분에

나에겐 시가 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처음 시를 만난것이 학교가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言)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거기에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입은
이름 부를 줄
몰랐고,
나는 눈멀었었다.
그런데 무언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이,
그 불에 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갔다.
그리고 난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이,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순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혹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만신창이가 된,
구멍 뚫린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내 자신이 심연의
순수한 일부임을 느꼈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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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웹자보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박래군 탄원서쓰고 뚝딱뚝딱 만든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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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석방을 위한 탄원서

 

인권옹호자 박래군에 대한 부당한 구속을 당장 철회하라



지난 7월 9일 새벽 연행된 박래군에게 검찰을 기어코 영장을 청구했다. 우리는 박래군의 구속이 단 하나의 정당성이나 적법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연행의 빌미가 되었던 9일 새벽 평택경찰서 앞의 항의집회가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신고되지 아니한 불법집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는 긴급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열리는 긴급집회라고 생각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항의할 권리는 이미 대법원의 판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집시법이라는 것이 집회를 못하게 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하나의 장인 집회 및 시위를 보다 원활히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법이라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야간에 일어난 긴급한 상황에 대한 항의를 일반적인 집회신고의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은 항의를 하지 말라는 것이며, 집회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날의 가장 큰 불법행위는 바로 경찰에 의한 무리한 연행이었다. 당시 박래군은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발적으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설득해서 나오게 하고 심각한 욕설을 퍼부으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던 경찰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했고, 또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안좋아지자 자진해산할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경찰은 박래군을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을 적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심각한 수준의 폭력행사와 욕설을 곁들여 연행하였다. 연행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특히 박래군은 집회참가자들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길 건너에 있는 것을 표적으로 삼고 쫓아와 연행하였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연행이 과연 법적 타당성이 있는지, 피의자의 인신을 구속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날의 집회가 불법집회이고 연행과정에서 경찰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연행 자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치더라도 박래군의 구속은 부당하다. 박래군은 구속 수사의 전제인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행진단은 서울에서 평택까지 내려오는 동안 비폭력을 원칙으로 했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의 타당성 뿐 만아니라 행동의 정당성 또한 굳게 자신한다. 우리는 절대 비굴하거나 비겁할 이유가 없다. 이는 그 동안의 과정이 여실히 보여준다. 한 점 부끄럼 없는 행동이었고, 행진단의 일정과 논의들은 이미 다 공개된 내용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숨기려고 하거나 우리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평화행진단의 단장이자 일원이었던 박래군 또한 자신의 주장과 행위에 떳떳하며 그 어떤 책임도 질 용의가 있음을 검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자를 구속수사 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적인 구속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박래군의 구속은 사회공동체의 크나큰 손실이다. 국가가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이상 국가의 의한 인권침해는 언제나 존재한다. 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해도 모자랄 판에 국가가 막대한 권력으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때, 이를 막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권활동가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박래군이 있다. 오히려 국가는 자신이 못하고 있는 그렇지만 꼭해야만 하는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박래군을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을 보호해야만 한다. 그것이 국가가 현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낳은 미래를 약속하며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검증하는 것이다. 박래군의 구속은 안그래도 취약한 한국의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다. 국가권력을 잘못된 폭주를 막아내고 견제할 사람들을 보호는 못할 망정 잡아가두는 것은 국가가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상 박래군의 구속의 부당함을 역설하였다. 지금이라도 법원은 현명한 판단을 내려서 박래군을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법원칙을 지키는 일이며, 재판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며, 우리 사회의 인권신장에 한걸음 다가서는 일이다.



                                     

                                                               2006년 7월 19일 평화행진단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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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서 - 시와

길상사에서        -    시와

 

이렇게 앉아있는 이 오후에도

나무사이로 보인 하늘 아름다운 것들을

가만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가지들 흘러가는 저 물소리도

어쩌나 두고 떠나기는 아쉬워

한걸음 입맞추고

돌아서네요

 

촛불문화제와 행진단 뒷풀이에서 시와가 불렀던 노래.

길상사는 성북동이 있는 절이라고 한다.

괜찮아...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이 한마디.

언제 한 번 조용한 걸음으로 길상사를 찾아가 봐야지

내려오면서는 낙산공원에 들릴까 싶다.

 

♪ 길상사에서  -  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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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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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우연

야만의 시대에 들려오는 소식들은 온통 슬픈소식들이다.

사람은 원래 자기의 죽을 자리와 죽음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침해당하는 것은 살아가는 것을 침해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런 야만의 시대에 재미있는 우연이 있다.

인터넷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몇가지의 단어가 나의 눈을 스쳐갔다.

부천... 거부... 이용석...

아니 난 최근에 병역거부로 인터뷰한 적도 없는데 왠 내이야기?

하고 살펴보니 내가 아닌 나였다.

 

부천 상동고등학교의 이용석이라는 선생님이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때문에

중징계를 당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마침 한겨레21을 보니 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인터뷰가 실려있다.

부천의 이용석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국기에 대한 격례거부 뿐만아니아 채식,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등등 나의 생각과 굉장히 많은 부분이 비슷하였다.

음... 그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군대와 군사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을 이야기한 것과 이순신을 비롯한 국가전쟁영웅들의 우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평화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심한 전율로 일체감을 느꼈다.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일본에서는 히노마루를 숭배시 하거나 기미가요를

강제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시 되고 있다.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하면서 이선생님을

볼아붙이는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만약 일본 학생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연병장과 흡사한 운동장에서 일본국기에 일사분란하게 격례를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같은걸 외치는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부천에 사는 채식을 하는 평화주의자이며 양심에 따른 거부자인 이용석.

이 기막힌 우연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이용석을 위해 무언가를 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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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는 일

유치장에 들어가기 전 오리와 통화하면서 그랬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이 또 있을텐데 뭐."

 

야만의 시대에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사실은 감옥에 가는 일이다.

누구도 감옥에 가고 싶지 않고

억지로 감옥에 가야할 필요도 없고

감옥에 가야하는 결의가 필요한 운동은

잘못된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이상

언제든지 연행되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항의를 하고

무언가를 봉쇄하고

무언가를 저지하는

직접행동을 할 뿐이다.

 

그렇게 때문에

가능한한 잘 도망쳐서 최대한 감옥에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끝끝내 지키다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감옥에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며

되도록 가지 말아야 하겠지만

활동가로 살아가면서

앞으로도 여러번 연행이 되고

유치장에 가고 때로는 구속이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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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후두두둑

장마비, 장대비를

우산도 없이 쫄딱 맞고

마음에 감기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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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행진후

이제사 집에 들어오니 평화행진이 끝난 듯 하다.

연행되어 있는 사이 남은 사람들이 행진을 잘 마무리했다니 다행이다.

사람들도 힘 받고, 대추리주민들에게도 많은 힘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래군이형만 나오면 정말 퍼펙트한 행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 나에게는? 나는 왜 그렇게 걷고 또 걸었을까...

 

행진내내 해결하지 못했던 몇가지 고민들이 채 해결되기도 전에

그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유조차 사려져버렸다.

 

평화행진, 무념무상의 발걸음과 페달질은 나에게

더욱더 검게 그을린 피부와

발등위에 점처럼 자국남은 햇볕의 흔적과

이마위의 작은 상처와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그 구멍이 내 마음의 숨구멍인지,

아니면 눈물구멍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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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행진

길위에서 결국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럼에도 나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걷는 것은.

 

걷는 것 속에서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할 수 있다.

나의 것 뿐만아니라, 황새울의 것까지도...

그럼에도 그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내 발자욱 걸음걸음마다 뿌려진 씨앗과 같은거다.

꽃없이 열매맺는 무화과 같은거다.

 

내가 걷게될 지, 자전거를 타게 될 지, 실무팀에서 주로 있게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걷고 있는 것이다.

대추리를 지나서... 저기 어디 해남이나 강진쯤일까...

아니면 아무도 날 부르지 않는 그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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