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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잘못 찾은 오픈프라이머리

열린우리당이 대선후보를 오픈프라이머리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어제 김선동 사무총장이 당의 대선계획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고 당 게시판에는 비판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그간 국회의원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이 부분에 대해 실험을 한 바 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 경험을 안고 있다. 울산의 경험을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제3회 지방선거 울산 시장선거, 2004년 총선에서 이러한 실험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었다. 중앙당은 이를 오픈프라이머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중앙위원회의 결의로 외부인사 영입을 승인하는 조건을 다는 당규개정을 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선거승리라는 지상과제의 대세에 밀려 났었다.

그런데 또 다시 대선기획단에서 이와 같은 논의를 하고 있고 더 나아가 확고한 당내 제도화를 논의하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친구가 시장간다니까 따라가는' 형국이라 아니할 수 없고 '친구따라 강남 가는' 꼴이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개방형 국민경선제를 통해 성공을 했다. 민주당이 이 방식을 채택한 것은 정권재창출 위기론이 확산되면서 정치적 흥행이 필요했고 노무현이라는 다크호스는 흥행대박의 주인공이 된바 있다. 그후 정치권에서는 개방형 국민경선제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고 심지어 한나라당에서 조차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정치제도의 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운영에 있어서의 '보스중심주의'가 일정정도 허물어지는 효과를 낳기도 했지만 올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여전히 과거의 '낙점에 의한 공천'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은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가 도입되었지만 정당 후원회 제도가 사라지면서 정당의 돈 줄이 막혔고 이를 대신하기 위해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특별당비라는 명목으로 공천자금을 받으면서 당원협의회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개방형 국민경선제에서 오픈프라이머리로 개방성을 한 발더 내딪으려는 현재의 열린우리당의 내년 정권재창출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선택은 지난번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오픈프라이머리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이를 따라하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의미있는 득표를 하지 못했고 17대총선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제4회 지방선거와 2005년 10월 울산 국회의원선거의 참패는 당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던져주기에 충분한 사건이 되었다. 열린우리당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이 위기의식의 결과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가능성 논의라고 보아진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노동당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더 따져 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당의 정체성 문제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평소 당에 대한 지지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기때문에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후보보다는 대중적 인기 혹은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후보로 결정될 수 있고 이후 선거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을 심대히 흔들어 놓을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현실에서 대중화 된다는 것은 우경화와 직결되고 인기영합적 정치로 빠져들게 된다. 더 이상 진보정당이라는 타이틀을 방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당의 존립의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류의 사람들이나 일부 우파쪽 인사들은 '민주대연합이니 진보개혁연합'이니 하면서 반한나라당 전선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가 가까워 올 수록 이러한 요구는 더욱 집요하고 공개적으로 이루질 것이 뻔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른바 국민들의 손으로 혹은 범진보진영이라는 '대중'에 의해 선출된 후보는 그러한 당 외부요구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결과는 대선만이 아니라 곧 이어질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당은 존립의 위기에 빠져 들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대선기획단에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 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

 

대선과 총선, 연이은 선거가 당의 이후 일정에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겠지만 이를 미리 두려워 한 나머지 악수를 두어서는 않된다. 지금까지 당은 조직 존폐의 위기를 경험한 바가 없다. 2000년 총선은 아쉬웠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는 나름의 희망을 보았고 2004년 총선에서는 놀라움을 경험했다. 그후 2005년 10월 울산 국회의원선거과 2006년 지방선거의 패배는 아픔이 되었지만 당의 심대한 위기, 존립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유럽이나 남미의 좌파정당들은 그런 위기를 수 없이 겪으면서 살아 남았고 정권도 잡았다. 그 기간도 수십년이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10년도 안 되었다. 한번쯤 고통을 겪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당의 위기는 선거결과보다 내부의 정체성을 지켜내고자하는 의지와 그 결행에 의해 돌파할 수 있는 것이고 외부의 조건에 의해 붕괴된 조직은 일어날 수 있어도 내부의 정체성 상실로 무너진 조직은 다시 일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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