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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 폴 오스터 / 열린책들






폴 오스터는 시드니 오어의 이야기를,
시드니 오어는 닉 보언의 이야기를,
닉 보언은 실비아 맥스웰의 <신탁의 밤>을 이야기 하고,
<신탁의 밤>에는 르뮈엘 플래그의 이야기가 있다.

시드니 오어에게는 존 트로즈라는 친구가 있고,
존 트로즈는 플리트크래프트 일화를 얘기해 준다.
시드니 오어는 돈벌이를 위해 보비 헌터가 영화화하고자 하는
타임머신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시드니 오어가 파란 공책에 써내려가는
존 트로즈와 그레이스, 자신과의 삼각관계에 대한,
실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들이 제멋대로 살아났다 사라지는 통에 정신이 없다. 이 소설은.

내가 궁금했던 건, 바르샤바의 전화번호부를 보면서 독방에 갇혀 버린 닉 보언이 어떻게 되는가, 였는데..
어느 순간 오스터는 시드로 하여금 닉에 대한 얘기는 더이상 하지 않게 만들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제이콥의 이야기로 성급하게 끝을 냈다.

그래, 나는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시드와 존이 나눈 대화를 떠올려 보니..

결국 폴 오스터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언제나처럼 우연과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고,

글쓰기가 현실을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파란 공책의 망령이
정말 '정말'일거라고 믿어버리게 하는 게,
이 소설의 맡은 바 임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말을 해 놓고 믿어버리고,
글을 써 놓고 믿어버리는 거.

사실 오스터가 이렇게 정신사나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역설하지 않았어도,
늘 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난 말이지.

 

p.s. <달의 궁전> 이후 한 5, 6년 만에 다시 집어든 폴 오스터다.
한 때 오스터가 유행일 때 그의 모든 소설을 섭렵한 선배들은,

이제 더이상 오스터를 거들떠 보지 않는 듯한데 - 비슷해서 지루하다 -

그런 중간 과정 없이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은 난,

그저 신나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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