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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 천운영

1.

천운영은, 내게는 낯선 작가다.

 

그녀가 등장한 새천년 즈음부터 소설 읽기에 게을러진 탓이려니 한다.

어디선가 스치듯 들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밤샘 끝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갈을 견디지 못해 서점에 갔을 때, 도둑질 하듯 그녀의 첫 단편집을 집어들었다.

 

천운영의 소설이 새로운 것은, 두 가지 지점에서였다.


 



2.

하나는, 육식성과 폭력성을 갖춘 '추한' 여자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였다.

그러나 육식성도 추함도 '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야생성.. 여자들은 야생의 초원이거나 동물, 그 양자다.

월경 越境..하는 여자들..

 

3.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건만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좀체 일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일상에 대한, 역시, 세밀한 묘사.

문신은 어떻게 하는지, 소 머리는 어떻게 가르는지, 곰장어 껍질은 어떻게 벗겨내는지, 박제는 어떻게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일반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는 일이건만, 치밀한 묘사 자체가 아름다움이 되어버린다.

 

4.

여기에 덧대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랑, 성애, 가족의 이야기는 잔혹하고 처연하다.

어느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단편이 없다.

동물적인 자극이나 피비린내 나는 충격 따위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그런데 어쩐지 천운영의 소설들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월경>, <등뼈>는 베스트, <포옹>은 시점을 바꿔가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야기의 종횡무진이 마음에 드는 작품.

 

그러나 명확한 것은, 소설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다.

영화라면, 몸서리치게 싫어했을 것 같다.

 

5.

소재에 강하게 기대는 그녀의 작품들이 과연 어디까지 변주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소설이고 영화고 간에 동어반복이라고 생각한다.

주제에 있어서건 형식에 있어서건 반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면, 그를 작가라 칭할 수 있을 거다. 천운영이 독특하고 강한 소재에 천착한다 해도, 세상으로부터 그 소재를 선택하고 이끌어낼 줄 아는 시각은 이미 그녀만의 스타일이다.

 

조만간 두 번째 소설집인 <명랑>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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