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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 김애란

'진담의 세계이며, 凡人들의 세계에다가, 오해의 세계이기까지' 한 이 곳에 대한 명랑우울한 해석과 무한한 상상.

 

예전에 소설가란 세상의 환부를 잘 드러내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 환부를 고치는 방법을 일러주기보다는, 이것 봐라, 이만큼 곪아터진 게 네가 발붙인 공간이다, 얼마간은 무책임하게, 얼마간은 답답하게, 체념한 듯.

 

그 때 난 어렸고, 소설가들은 어른이었다. 어른들은 그렇게 무책임하고 답답한 존재들이었다. 이제 난 어설픈 어른이 되었고, 나어린 80년생 소설가의 첫소설집을 들고 피식피식 웃고 있다.

 

쉴새없이 재재거리며 삶의 틈새를 부지런히 비집고 나오는 엉뚱한 환상이 즐겁다....... 이미지가 좀더 잡히는 이것은 소설이다. 엇비슷한 문화경험을 전면에 드러내니 그또한 정답다..... 이것은 추체험이다. 부모는 더이상 무겁고 크고 완벽한 존재라기 보다는, 회상 속에서도 현재도 불완전하게 나이 먹은 아이일 뿐이다. 화자가 10대이건 20대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아비의 부재가 굳이 슬픈 트라우마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슬퍼하지 못 하게 한다. 슬퍼할라치면 차라리 웃기고 만다. 아비의 존재는 거추장스럽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이 냉정하지만은 않다. 차갑다가도 따뜻해지고 그러다가 우울하고. 이래저래, 맘에 드는 구석을 많이 발견했다. 시나리오를 읽듯 중성적이고 비교적 간명한 문장까지.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p.180)

 

상처는 이내 꿈이 된다. 김애란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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