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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

8명의 마을 이장들은 몇 번이고 칼로 손가락을 그어댔다.

 

뷰파인더로 클로즈업 된 손만 보고 있으니, 그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내 머릿 속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을에서는 꽤나 젊은 축에 속할 이 분들, 어려서부터 동무였겠지..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며 구슬도 치고 딱지도 치고, 몰려다니며 함께 놀던 사람들 아닐까.. 시골을 잘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유치한 장난치며 놀던 동네 개구쟁이들이, 이제 다 커서, 우리 마을 지키겠다고 제 손으로 피를 짜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은 아이고, 아이고, 아파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미.군.기.지.이.전.반.대, 였던가. 새하얗던 피씨천은 한 글자, 한 글자 붉게 물들어 갔다. 내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는 "잘 찍어, 이게 현실이야, 잘 찍어야 돼", 그러셨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대로 못 찍었다.. 젠장.. ㅡ.ㅡ

암튼...

 

글자 하나씩 앞에 두르고 삭발식이 진행됐다..

농민가가 흘러나오고... 잘려나가는 검은 머리칼.

 

하얀 보자기에 머리카락을 모아 담았다. 항의서한을 낭독한 후,

이장단은 K-6 정문을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도 이장단을 맞이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나올 거냐,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의 다소 경직된 목소리가 정문을 타고 넘어갔다.

되돌아온 건, "미8군으로 보내세요" 하는 들으나마나 한 소리.

 

결국 머리카락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고,

들고 간 서한은 구겨서 정문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주 당황스럽게도, 안에 있던 한국군인이 그 서한을 정문께로 도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내 목까지 육두문자가 치밀어 오르는데, 마을이장들은 오죽했을까.

 

집회 순서가 다 끝나고, 마을 어른들은 어느 새 그림자도 챙겨 돌아가셨다.

서울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전경버스도 사라진 깨끗한 거리로 K-6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정문을 열던 두 명의 군인 중 한 명은 문 열리는 속도가 빨라질 때쯤 아이처럼 문에 매달려 공기를 저었다.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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