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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ac

 

삐삭은 마을 뒷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유적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오얀따이땀보만큼이나 훌륭하다던데... 글쎄, 끝까지 올라가보지 않아 모르겠다. 대개 성스러운 계곡 투어 시, 생기없는 민예품 시장에 1시간 들르는 게 전부인데, 가이드는 삐삭의 유적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않는다.

 

오얀따이땀보에 기차 타러 가기 전, 시간이 많이 남아 삐삭에 들렀었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냥 중턱까지만 올라가서 쉬다 왔다. 그래도 너무 좋더라는...



물루의 인테리어는 훌륭하다. 그리고 커피값은 비싸다.

나는 점심을 먹는 대신 이 곳 커피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또 다시 편치 않은 생각으로...

 

에꽈도르에서는 꾸스꼬나 마추삐추만한 스타 관광지가 없어서 못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페루 남부로 내려오니, 이 곳이 정확히 두 세계로 나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꾸스꼬나 마추삐추 마을인 아구아 깔리엔떼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스러운 계곡에 속한 허름한 마을들 사이사이에도 관광객들의 투어 코스인 곳에는 어김없이 고급 - 서구식 메뉴로 빼곡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트렌디한 까페들도 참 많다. 내가 좋아라 하는 홍대 분위기의 까페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문득, 지금의 여행은, 너무도 잘 닦여진 관습적인 길을 따라 끝없이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에 오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탐험이었던 시절은 어땠을까. 물론 난 탐험을 할만한 인간은 못 된다.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고. 하지만 첨예하게 나뉘어 있는 두 세계를 나 편할 대로 오가면서, 하긴 오가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서 현지인들에 섞여 2.5솔 짜리 점심을 먹는다고 내가 그들의 삶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무슨 얘길 하려 했더라... 아마 어딜 가도 이렇게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 거라는 건 확실하다..

가끔 배낭여행자 까페에 들른다. 싼 숙소 정보를 알아보려는 의도가 제일 큰데, 남미여행을 계획하며 루트를 봐달라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론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에콰도르는 적도탑만 가면 그만, 페루는 나스까에서 경비행기 투어, 마추삐추 투어 아니면 잉까 트레일, 와까치나에서 샌딩보드, 띠띠까까 투어, 볼리비아는 우유니 사막 투어, 뽀또시 광산 투어, 루레나바께 정글 투어, 다 이런 식이다.

나라고 다를까? 다르지 않다. 남미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아직은 낯선 곳이니까 우와.. 하지만, 여기 여행하는 사람들 대개는 이동, 투어, 이동, 투어, 이동, 투어, 이게 다다. 다만 그걸 개별적으로 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이라 하며, 뭔가 ´여행´을 한다는 감상에 빠져 있는 것일 뿐.

정말 배낭을 메고, 길을 찾아서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이거 봤어 저거 봤어, 나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갔는데 여기는 이것만 보면 되고 저기는 저것만 보면 돼, 거기 갔으면서 그걸 안 봤어? 왜?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이들을 보면, 아무리 여행을 많이 했든 오래 했든 다양한 곳을 섭렵했든, 별로 부럽지 않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여행이 그런 여행이었다. 남들이 뭔가 볼거리라고 하는 것을 따라 가는.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서는 자꾸, 여행이 뭘까.. 난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여행도 크게 보면 다를 바 없이 끝나겠지만.... 작지만 빛나는 순간들에 고마워하기... 너무 크거나 많은 것을 바라지 말기...

 

요즘 슬럼프인가 보다. 이런 생각만 자꾸 드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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