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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위대한 걸까.

저녁엔 서울역에 갔었다.

 

지난 7월, 철도공안의 폭력에 의해 (거의 확실시) 숨진 일시적 노숙자(혹은 부랑자) 문 모씨 사건을 계기로 대책모임을 꾸린 노숙인 지원단체들(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등)과 노숙인 당사자들이 준비한 추모문화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철도공안에 의한 폭력 피해 당사자 인터뷰를 어떻게 할 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한 노숙인이 특유의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나 맞았어요. 할 말 있어요."

 

노숙인들이 부당하게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 분노하며 이 자리에 왔다손 치더라도,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노숙인들이 문득 말을 걸어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익숙치 않은 내게 당연한 일인 듯 싶다.

어설프게나마 한 분 한 분 알아가면서 그런 문제는 옅어져간다 해도.

 

그 분은 얼굴 모자이크 처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원하시는대로 꼭 해드리겠다, 몇 번이고 다짐을 해도 기어코 명함을 달란다.

마음 속으로 살짝 갈등이 인다 - .. 간단치 않은 마음이다.

 

TV 보다가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니고 그저 잠을 잤을 뿐인데, 공안실로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살아나가려고 빌고 또 빌었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에는, 이미 너무 큰 분노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 하는 그들이지만,

분명 그들은 철도청에서 좋아하는 '시민'이고,

대통령이 좋아하는 '국민'이고,

무엇보다.. '인간'이다..

 

IMF 이후 하던 사업이 망하고, 아내는 자살하고, 아이는 누나에게 맡겨진 채 홀로 노숙생활을 한다는 권 모 아저씨. 그는 건대 84학번이다.

가슴을 치다가 눈물을 흘리다가 목이 메어 '미안해요''미안해요' 하다가..

마지막엔 '노숙인 무시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내게 어느 학교를 나왔냐고 물으면서, 자신이 대학 교육까지 마쳤음을 재차 강조하고도 싶어했다.

 

그와 인터뷰를 마쳤을 때, 천지인의 '청계천 8가'도 끝나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럴까.

인간 취급 못 받으며 살아도, 산다는 것은 위대한 것일까.

끈질기고 비루한 인간들의 삶, 단지 산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것일까.

 

오늘도 살기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속상함을 달래주는 건 술 밖에 없고,

공안 단속에 잠은 깊이 들지 못 하고, 자꾸만 여기저기 아파는 오고, 이렇게 시간은 가고, 나이는 들고..

 

노숙인들은 '청계천 8가'를 무척 좋아했다. 박수소리는 힘찼고, 그들은 앵콜을 외쳤다.

 

그들은 분명, 믿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라고.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다가 손바닥에 코끝을 대보았다.

오늘만 해도 여러 노숙인과 악수한 이 손.

 

문득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듯도 싶다.

술냄새..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몸냄새.. 고단한 숨냄새..

그건 고통스런 삶의 냄새였고,

나로써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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