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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30
    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1)
    ninita
  2. 2004/08/30
    팽성읍 할머니, 할아버지들..
    ninita

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

8명의 마을 이장들은 몇 번이고 칼로 손가락을 그어댔다.

 

뷰파인더로 클로즈업 된 손만 보고 있으니, 그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내 머릿 속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을에서는 꽤나 젊은 축에 속할 이 분들, 어려서부터 동무였겠지..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며 구슬도 치고 딱지도 치고, 몰려다니며 함께 놀던 사람들 아닐까.. 시골을 잘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유치한 장난치며 놀던 동네 개구쟁이들이, 이제 다 커서, 우리 마을 지키겠다고 제 손으로 피를 짜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은 아이고, 아이고, 아파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미.군.기.지.이.전.반.대, 였던가. 새하얗던 피씨천은 한 글자, 한 글자 붉게 물들어 갔다. 내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는 "잘 찍어, 이게 현실이야, 잘 찍어야 돼", 그러셨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대로 못 찍었다.. 젠장.. ㅡ.ㅡ

암튼...

 

글자 하나씩 앞에 두르고 삭발식이 진행됐다..

농민가가 흘러나오고... 잘려나가는 검은 머리칼.

 

하얀 보자기에 머리카락을 모아 담았다. 항의서한을 낭독한 후,

이장단은 K-6 정문을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도 이장단을 맞이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나올 거냐,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의 다소 경직된 목소리가 정문을 타고 넘어갔다.

되돌아온 건, "미8군으로 보내세요" 하는 들으나마나 한 소리.

 

결국 머리카락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고,

들고 간 서한은 구겨서 정문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주 당황스럽게도, 안에 있던 한국군인이 그 서한을 정문께로 도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내 목까지 육두문자가 치밀어 오르는데, 마을이장들은 오죽했을까.

 

집회 순서가 다 끝나고, 마을 어른들은 어느 새 그림자도 챙겨 돌아가셨다.

서울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전경버스도 사라진 깨끗한 거리로 K-6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정문을 열던 두 명의 군인 중 한 명은 문 열리는 속도가 빨라질 때쯤 아이처럼 문에 매달려 공기를 저었다.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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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읍 할머니, 할아버지들..




참 치사스러웠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힘없는 노인네들, 그동안 고생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 땅 내놓고 나가란다. 한 할머니 말마따나 억만금이 문제랴.

 

28일엔 캠프 험프리 (K-6) 정문 앞에서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주민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평택에 다녀왔다. 집회의 첫인상은 '전국노래자랑'... '우리나라'와 '희망새'가 공연할 땐 정말정말 그랬다! 제일 어려뵈는 얼굴이 40대였고, 300여 주민들은 모두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함정리, 도두리, 신대리, 대추리..

 

이름부터 참 촌스럽고 귀여운.. 자그만 시골마을일 터였다.. 땅 일궈먹기를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그 분들께, 미군 기지 이전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예닐곱 분의 대답이 다 다른 듯 똑같은 걸 보며, 모두 한마음이구나, 싶었다..

 

- 벼농사 짓다 이 땅에 묻히는 게 소원이여.
- 나는 흙을 사랑하다 죽으면 흙으로 갈껴.

- 사람이 입으로 먹는 건 다 땅에서 나온겨. 땅을 지켜야 뎌.
- 현금 억대로 준대도 못 가고, 내 손으로 만든 땅, 내가 지킬껴.

 

시끄러운 집회장 뒷쪽으로 빠져나와 인터뷰 시도를 했을 때, 마이크를 한사코 거절하던 한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젊은 사람은 하나 없어. 무슨 상관이여. 우리가 다 죽으면 되는 거여. 그쟈? 우리만 죽으면 다 뎌."

 

순간 가슴이 애렸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이 어떻고, GPR이 어떻고, 하는 게 다 필요없었다.

이건 명백한, "생존"의 문제인 걸.

지금 당장 이 곳을 떠나면 어디로 갈텐가.

땅을 일궈먹지 않으면 달리 무슨 일을 할텐가.

아파트가 무어냐, 보상금이 무어냐.

 

이런 타는 속내는 아랑곳않고, 반대편에서는 "미군 기지 이전 적극 지지" 등 상인연합회 명의의 배너가 걸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미군을 환영하며, 너희는 빨갱이니 북으로 올라가라. 소주와 먹거리들이 한상 차려져 있었고, 필리핀 여성들이 있었다. "미군이 떠나면, 이 아가씨들도 가야 돼. 우리한테 잘 해 주고 있는데", 이런 말도 언뜻언뜻 들려왔다.

 

벌써 흉흉한 소문은 동네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가겟집 계단에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는 땅을 치고 있었다. 보상금을 얼마를 받아처먹었다더라, 그러고도 더 받아먹을라고 저 지랄들이라더라, 아이고 속터져, 아이고 분해.

 

<아름다운 시절>이 떠올랐다. 이런 거구나,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구나.. 반대편의 사람들은 대책위 방송차가 지나가는 것도 독을 품고 막아섰다. 지칠대로 지친 난 음료수를 마시며 그 광경을 힘없이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340여만 평의 땅. 미군을 위한 그 너른 땅에는 공원이 두 개, 뭐가 몇 개, 또 뭐가 몇 개 들어설 거랜다.

그 땅은 그저 '평택 미군 기지'라고 불릴 땅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진 땅이다.

 

그 곳의 이름을 불러본다. 함정리, 도두리, 대추리, 신대리, 내리, 동창리...

들판 이름도 불러볼랜다.. 흑무개들, 도두리들, 신대리들, 내리들...

 

그 정겨운 이름들이 사라져간다.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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