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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30
    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1)
    ninita
  2. 2004/08/30
    팽성읍 할머니, 할아버지들..
    ninita
  3. 2004/08/27
    학교는 다다
    ninita
  4. 2004/08/12
    21세기의 상식을 위하여
    ninita
  5. 2004/08/11
    <인터내셔널가, 역사와 전망> 인트로(2)
    ninita
  6. 2004/08/11
    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2)
    ninita
  7. 2004/08/11
    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1)
    ninita
  8. 2004/08/10
    세상 모든 곳이 천성산(2)
    ninita
  9. 2004/08/04
    지금 네이버나 다음에 접속하면,(7)
    ninita

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

8명의 마을 이장들은 몇 번이고 칼로 손가락을 그어댔다.

 

뷰파인더로 클로즈업 된 손만 보고 있으니, 그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내 머릿 속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을에서는 꽤나 젊은 축에 속할 이 분들, 어려서부터 동무였겠지..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며 구슬도 치고 딱지도 치고, 몰려다니며 함께 놀던 사람들 아닐까.. 시골을 잘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유치한 장난치며 놀던 동네 개구쟁이들이, 이제 다 커서, 우리 마을 지키겠다고 제 손으로 피를 짜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은 아이고, 아이고, 아파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미.군.기.지.이.전.반.대, 였던가. 새하얗던 피씨천은 한 글자, 한 글자 붉게 물들어 갔다. 내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는 "잘 찍어, 이게 현실이야, 잘 찍어야 돼", 그러셨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대로 못 찍었다.. 젠장.. ㅡ.ㅡ

암튼...

 

글자 하나씩 앞에 두르고 삭발식이 진행됐다..

농민가가 흘러나오고... 잘려나가는 검은 머리칼.

 

하얀 보자기에 머리카락을 모아 담았다. 항의서한을 낭독한 후,

이장단은 K-6 정문을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도 이장단을 맞이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나올 거냐,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의 다소 경직된 목소리가 정문을 타고 넘어갔다.

되돌아온 건, "미8군으로 보내세요" 하는 들으나마나 한 소리.

 

결국 머리카락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고,

들고 간 서한은 구겨서 정문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주 당황스럽게도, 안에 있던 한국군인이 그 서한을 정문께로 도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내 목까지 육두문자가 치밀어 오르는데, 마을이장들은 오죽했을까.

 

집회 순서가 다 끝나고, 마을 어른들은 어느 새 그림자도 챙겨 돌아가셨다.

서울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전경버스도 사라진 깨끗한 거리로 K-6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정문을 열던 두 명의 군인 중 한 명은 문 열리는 속도가 빨라질 때쯤 아이처럼 문에 매달려 공기를 저었다.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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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읍 할머니, 할아버지들..




참 치사스러웠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힘없는 노인네들, 그동안 고생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 땅 내놓고 나가란다. 한 할머니 말마따나 억만금이 문제랴.

 

28일엔 캠프 험프리 (K-6) 정문 앞에서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주민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평택에 다녀왔다. 집회의 첫인상은 '전국노래자랑'... '우리나라'와 '희망새'가 공연할 땐 정말정말 그랬다! 제일 어려뵈는 얼굴이 40대였고, 300여 주민들은 모두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함정리, 도두리, 신대리, 대추리..

 

이름부터 참 촌스럽고 귀여운.. 자그만 시골마을일 터였다.. 땅 일궈먹기를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그 분들께, 미군 기지 이전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예닐곱 분의 대답이 다 다른 듯 똑같은 걸 보며, 모두 한마음이구나, 싶었다..

 

- 벼농사 짓다 이 땅에 묻히는 게 소원이여.
- 나는 흙을 사랑하다 죽으면 흙으로 갈껴.

- 사람이 입으로 먹는 건 다 땅에서 나온겨. 땅을 지켜야 뎌.
- 현금 억대로 준대도 못 가고, 내 손으로 만든 땅, 내가 지킬껴.

 

시끄러운 집회장 뒷쪽으로 빠져나와 인터뷰 시도를 했을 때, 마이크를 한사코 거절하던 한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젊은 사람은 하나 없어. 무슨 상관이여. 우리가 다 죽으면 되는 거여. 그쟈? 우리만 죽으면 다 뎌."

 

순간 가슴이 애렸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이 어떻고, GPR이 어떻고, 하는 게 다 필요없었다.

이건 명백한, "생존"의 문제인 걸.

지금 당장 이 곳을 떠나면 어디로 갈텐가.

땅을 일궈먹지 않으면 달리 무슨 일을 할텐가.

아파트가 무어냐, 보상금이 무어냐.

 

이런 타는 속내는 아랑곳않고, 반대편에서는 "미군 기지 이전 적극 지지" 등 상인연합회 명의의 배너가 걸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미군을 환영하며, 너희는 빨갱이니 북으로 올라가라. 소주와 먹거리들이 한상 차려져 있었고, 필리핀 여성들이 있었다. "미군이 떠나면, 이 아가씨들도 가야 돼. 우리한테 잘 해 주고 있는데", 이런 말도 언뜻언뜻 들려왔다.

 

벌써 흉흉한 소문은 동네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가겟집 계단에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는 땅을 치고 있었다. 보상금을 얼마를 받아처먹었다더라, 그러고도 더 받아먹을라고 저 지랄들이라더라, 아이고 속터져, 아이고 분해.

 

<아름다운 시절>이 떠올랐다. 이런 거구나,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구나.. 반대편의 사람들은 대책위 방송차가 지나가는 것도 독을 품고 막아섰다. 지칠대로 지친 난 음료수를 마시며 그 광경을 힘없이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340여만 평의 땅. 미군을 위한 그 너른 땅에는 공원이 두 개, 뭐가 몇 개, 또 뭐가 몇 개 들어설 거랜다.

그 땅은 그저 '평택 미군 기지'라고 불릴 땅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진 땅이다.

 

그 곳의 이름을 불러본다. 함정리, 도두리, 대추리, 신대리, 내리, 동창리...

들판 이름도 불러볼랜다.. 흑무개들, 도두리들, 신대리들, 내리들...

 

그 정겨운 이름들이 사라져간다.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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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다다

 

훗..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 노래

(mms://mms.plsong.com/plsong/jkj/bulrayng/01.wma)

 



미소.

썸머힐.

핑크 플로이드 - 더 월.

서태지.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 노래.

모던 타임즈.

시험문제들 - 늘 귀여운 만화가 그려져 있던. 최민식 인물 사진.

에포케.

기독교 좌파.

레이몽 아롱.

고개 숙인 멕시코 농부 인형 - 멕시코 혁명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교직원 회의 땐, 울보였다고, 말하던 기억.

뚜껑을 열면 작은 인형이 또 나오고 또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뜨로쉬까를 보여주며,

내 안에는 너희들이 모르는 또다른 내가 있어, 라고 말하던 '선생님'

 

그리고, 작은 영화광이었던 내게 선물해 준 '헐리우드 키드' - 어렸을 땐 정말 '헐리우드 키드'였다. ㅡ.ㅡ 볼 수 있는 게 주말의 명화 뿐이었으니.

 

책들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책세상 카드.

 

넌 신경 안 써줘도 잘 하는 아이니까, 그 말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기엔 '아이'였던 내게 아직도 섭섭한 그 말.

 

...........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누군가 <학교는 다다>를 북 폴더에 올려둔 걸 보았다..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한 번도 빼놓은 적 없는, 몇 안 되는 선생님 중의 한 분, 의 책.

 

중고등학교 6년을 가르친 우리들이 졸업할 때,

사표를 냈고,

이듬해 나온 책이 <학교는 다다>, 우리 동네에선 베스트셀러다..

 

문득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해서 독일 수도 있지만.

 

20061231.

일다 인터뷰에 실린 선생님 기사
http://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6122700006&art_menu=1&art_su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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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상식을 위하여

토리님의 '평균인'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지금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 '현실적'으로 이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뭐, 당연한 이야기라고 여겨질 지 모르나,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들에 적용할라치면, 그다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얘기다.

 

이를 테면, 경제성장, 경제발전론은 우리 시대의 거부할 수 없는 '선'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고, 이제 제로성장을 이야기할 때라고 말한다면,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라는 말을 금세 듣게 될 것이다.

 

천성산 개발을 막자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현실적'인 이야기가,

지극히 '비상식적'이며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위해, 지율 스님은 땡볕 아래 스스로의 생명을 내어놓고 계신다.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머릿말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21세기의 상식을 위해서

 

1775년에 토마스 페인이 그후 그가 쓴 것 가운데서 가장 유명해진 책을 집필하였을 때, 국왕제를 부정하고 미국 독립을 옹호하는 그 책의 중심적 주장은 소수파의 견해였다. 책의 내용은 당시의 상식에 거꾸로 된 것이었지만, 그는 감히 그 제목을 <커먼센스 common sense>라고 불렀다.

 

실제, 페인은 그 시대를 정확하게 읽었다. 책 출판 당시, 미국의 상식은 대전환의 한가운데 있었다. <커먼센스>는 수십만부나 팔리고, 미국 독립혁명의 사상선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상식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변화하는 것도 있다.

 

지금 우리는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상식의 대전환, 즉 대다수 사람들이 '비상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주류의 상식이 되는, 새로운 상식을 위한 대변혁 직전의 단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변혁에 조금이라도 공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는 처음에 이 책에 <21세기의 커먼센스를 위해서>라는 제목을 붙여볼까 생각하였다.

 

-------------------------------

 

평균인이란 결국, (아룬다티 로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상상력이 결핍된, 기성 체제가 제시해 준 것 이외의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없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우리는 힘이 있다 http://blog.jinbo.net/toiless/?pid=4

살아남기로서의 활동 http://blog.jinbo.net/toiless/?pi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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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가, 역사와 전망> 인트로


 

세계 각국의 인터내셔널가 모음 : http://plsong.com/bbs/view.php?id=minjung_album&no=103



 

제목 :인터내셔널가, 역사와 전망 The International
상영시간 :30분
제작년도 :00년  
- 제작 : 피터 밀러
- 감독 : 피터 밀러
- 편집 : 에이미 캐리 린튼
- 배급 : 피터 밀러 필름 주식회사 (Deboutles@aol.com)

- 작품 소개 :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의 기원과 노래가 각 역사적 시기의 투쟁과 맺은 관계, 그리고 그 현재적 의의를 다룬 작품이다. 미국, 중국(1989년 천안문 광장), 소련, 이스라엘, 필리핀, 스페인등 세계각지에서 각 시기에 인터내셔널이 불리워진 실제 자료와 피트 시거, 빌리 브랙을 비롯한 노동 가수들의 해설이 결합된다. 특히, 천안문과 스페인의 반파시즘 투쟁, 현재의 반지구화 투쟁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20세기 전체에 걸쳐 대중들의 함성에 실려 불리워진 동서 고금의 인터내셔널가를 노래의 각소절을 이어서 연속적으로 편집한 프롤로그가 인상적이다.

 

(4월 정기상영 때도 상영했는데, 또 놓쳤다. ㅡ.ㅡ 비디오를 사야만 할까. 어쨌든 이제 8월이니 노동영화제도 슬슬 준비에 들어갈 시기일텐데... 올 노동영화제도 목빠지게 기다리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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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2)

(우리 동네다. 나는 고층아파트에 살지만,

고층아파트는 12동 뿐, 나머지는 5층 이하의 나즈막한 아파트들이다.)

(여기도 우리 동네다. 옛날에는 고위직 가족들이나 

외국인 기술자 가족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문득 87년이 떠오른다. 포항에서 광양으로 이사온 지 2년 째, 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없는 형편에 그래도 남들 다 하는 거라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해엔 인신매매단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테레비에선 서울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연일 데모하는 소식이 나왔고, 같이 테레비를 보던 엄만 "너 대학교 가서 데모질 하면 다리몽댕이 분질러버린다"라고 위협하곤 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외부 사람들(포스코 사원들은 주택단지 내에 살고 있었고, 그래서 단지 외의 사람들을 '우리'는 '외부 사람들'이라 불렀다.)이 데모를 하는 바람에 광양 장에 나갈 수 없었던 일이다.

원래 광양은 김양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김양식이 대한민국 최초로 시작된 곳으로 알고 있다.) 그 바다는 제철소가 들어설 곳으로 낙점됐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바다는 땅이 되었다.

그로 인해 강제이주를 당해 삶터를 잃어야만 했던 원주민들이 동네로 들어가는 길목 - 전남동부건설노조가 얼마 전에 막았던 - 을 막은 것이었다. 장날이라고 버스 타고 광양에 나갔다가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씩씩대며 걸어들어온 엄마의 말에 따르면, 외부 사람들이 퇴비더미로 길을 막았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 퇴비를 던져대는 통에, 그거 피해서 걸어들어오느라 고생바가지를 썼다는 거다. 어디 나갈 때 포스코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 회사에서 보상금은 아쉽지 않게 줬을텐데 왜 저 난리들인지 몰라.

그게 어디 단지 보상금만의 문제였으랴. (아쉽게 줬는지 아쉽지 않게 줬는지는 알 수 없다.) 어부였거나 농부였던 그들이 생소한 지역 혹은 생소한 직업군으로 내몰리며 겪었을 어려움과 고통을, 억만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었을까.

우리 동네는 참 예쁘고 깨끗하고 조용하다. 어른들은 그래서 살기 좋다고들 한다. 학교 앞엔 오락실도, 떡볶이 장사도, 뽑기도, 만화가게도 없다. 그래서 애들 교육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하지만 코딱지만한 동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해서 별별 소문이 다 도는 동네, 아빠들은 똑같은 작업복, 애들은 똑같은 교복을 입지만 집전화번호부터 아빠들의 직위가 들어있고, 누구네 아빠는 차장, 누구네 아빠는 부장, 아빠 직책 따라 애들 씀씀이도 달라서 계급의 차이가 더 잔인하게 드러나던 동네. 아빠의 대학 나온 직속상관 딸과 한 반에 있어서, 죽어도 그 애는 이겨야만 했던 고졸 주임 어린 딸래미의 오기.

난 우리 동네를 죽도록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1년이면 두세 번도 찾아가지 않는 우리 동네,
잊고 살고 싶은데, 이렇게 또 내게 가슴 아프게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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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1)

 

저 멀리 보이는 포스코 표지.

우리 동네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이고 예쁘게 가꾸어진 우리 동네에서 어디든 오갈 때마다 보게 되는,

익숙하디 익숙한..



그 표지 앞 널따란 도로에, 전경과 노동자들이 한가득. 생소한..

 

익숙한 그 곳의 생소한 풍경. 묘한 기분. 씁쓸한 기분.

 

우리 동네는 원래 어디에도 없던 곳이었다. 바다를 메꿔 만든 땅.
70년대 개발의 신화가 아직도 전설처럼 떠도는 곳.

(누가 새벽을 불태우는가, 따위의 책들이 집집마다 있다. 그걸 보는 사람이 있는지는 미지수.)
박태준은 신이요, 개발은 선인 곳.

 

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은,
나의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동네 어른들에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관련기사]
"그냥은 안내려간다, 2선 준비 중이다"
총파업 27일차 플랜트노동자 포스코 2차 상경투쟁
시청점거, 광양제철소 완전 봉쇄에 이어 분노한 조합원 다시 서울로

 

비정규직이 뭔지, 하청업체가 뭔지, 건설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의 일이 1년 365일 안정적인지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그들이 현재 일당 6-8만원이 모자라 50% 인상해 달라고 데모한다고, 그렇게들 생각할 뿐이다.

 

특히 동네 엄마들에게 포스코는, 좋은 회사고, 포스코에서 하는 일은 모두 옳고, 포스코는 누구에게나 정당한 대우를 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건 불경스런 일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싫다.
우리 동네가..

 

예전부터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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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이 천성산

 

"지율스님의 소망은 천성산 내원사의 바느질꾼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바느질 솜씨는 빼어나다. 스님들 옷을 뒤에서 짓는 일, 그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빈다. 지금 지율스님의 단식기도는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옷을 짓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해 본다."

 

개발의 미친 시계가 이제 그만 멈출 수는 없을까.

자연이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는 일, 이제 그만할 수 없을까.



지율을 정녕 죽일셈인가...
〈김택근 편집국 부국장 wtkim@kyunghyang.com〉

청와대 앞 단식 40일째. 지율스님은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다.
스님은 1인 시위라기보다는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맑고 표정은 밝았다.
그 맑고 밝음이 더 아팠다. 스님의 메마른 손을 차마 잡을 수 없었다.

천성산, 예쁘고 깊은 산. 원효가 그 품에서 용맹정진했고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린 산.
그 산의 생명붙이들에게 너희들만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도롱뇽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양서류의 인간에 대한 권리요구’라는 호기심으로 쳐다봤다.

스님은 ‘천성산에 도롱뇽이 없다’는 학자의 증언은 역사가 꼭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소송은 6개월 만에 기각되었다. 지금은 다시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생각하면 울음이 나온다. 매일 산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스님은 내원사의 비구니로 산의 가르침을 받던 천성산의 딸이었다. 그러나 길이 뚫리면 길가 700m 안쪽의 생명붙이들이 겨울잠을 자지 못한다고 해서 절을 뛰쳐나왔다. 이제는 천성산 온갖 생명붙이들의 어미가 되었다.
하지만 저 천성산을 저승으로 가져가야 할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어-


함께 흐느끼던 비구니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시민단체들도 은근히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다들 떠나갔다. 청와대 사람들도 조계종단과 시민단체와 얘기가 잘되었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적당히 하라는 것인가.
스님은 고속철 터널구간공사를 중단하고 천성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라며 세번째 단식에 들었다. 산에 구멍을 뚫으면 산에서 물이 빠져나가고, 그러면 계곡이 마르고, 그러면 강물이 마르고, 그러면 심성(心性)이 마른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러면서도 산을 파괴하는 것은 천성산을 뚫는 6조원의 돈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천성산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고향의 정기를 끊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지 않겠다던 대통령 후보 노무현, 도지사 김혁규, 장관, 시장 그리고 지난해 단식기도 때 대통령의 뜻을 믿어달라며 손을 잡아주던 수석비서관 문재인. 그들은 왜 말이 없는가.


스님은 정부가 ‘지율 하나 정도는 죽어도 좋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 일순 햇살이 뒤집히는 듯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이제 청와대에서 답을 얻기는 틀린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스님은 육신을 버리러 왔단 말인가. 절망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작금의 청와대의 침묵은 정녕 무엇인가.

지율스님이 딱 한가지 믿는 게 있다. 도롱뇽의 친구들이 늘어나 1백만 소송인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권력도, 금력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천성산을 뚫으면 22분 빨리 간다고 한다. 그러나 22분이 늦더라도 예쁘게 보존된 천성산을 가리키며 전설 하나를 이야기해주는 훗날이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저 산을 지키기 위해 이름없는 비구니가 어느날 온 몸을 던졌단다. 그때는 개발논리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때였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거야. 그 용기와 정성이 온 나라에 녹색 공명을 일으켰지. 푸른 울림이 퍼져나갔다는 얘기다. 그리고 저 예쁜 산을 지켰단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현명한 일인지 모른단다. 산은 한번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거든.”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정녕 지율을 죽일 작정인가? 지율을 향한 저 거대한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상은 모든 곳이 천성산인데 지율은 혼자이다.

-세상 모든곳이 천성산-

지율스님의 소망은 천성산 내원사의 바느질꾼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바느질 솜씨는 빼어나다. 스님들 옷을 뒤에서 짓는 일, 그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빈다. 지금 지율스님의 단식기도는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옷을 짓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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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이버나 다음에 접속하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LG정유 노조원 최종 복귀 시한 8월 6일 오후 5시까지" 라는 플래시가 떠있다.

 

 

 




파업 중인 노조원들이

마치 탈영병이나 대단한 범법자라도 되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나온다.

 

상업포털이라 돈이면 다 좋은 모양이다.

돈 많은 기업이라 이런 식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 범죄자 취급하기도 쉬운 모양이다.

 

허위 의식을 유포하는 일은, 돈이면, 이렇게 쉬운 거구나 싶다.

교섭이나 제대로 하지, 돈이나 써서 혹세무민하고 명령인가.

정말로 무서운 세상이다.

LG에서 한 번 써먹었으니, 돈 있는 회사들은 다 따라하겠다.

 

자본에 의해 이용당하는 미디어의 범주가 이렇게 넓어져만 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일간지에 전면 광고가 나갔다는데,

어젠 시내 한복판 전광판에서 봤는데,

이제는 인터넷까지.

 

광고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면,
광고를 의뢰한 자 뿐만 아니라 광고를 실은 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 같은 거 없나?

 

무슨무슨 위원회 많기도 하잖아,

이런 거 그냥 놔둬도 되는 건가?????

 

LG정유노조의 파업과 외국 자본의 성격 / 하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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