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세상 모든 곳이 천성산

 

"지율스님의 소망은 천성산 내원사의 바느질꾼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바느질 솜씨는 빼어나다. 스님들 옷을 뒤에서 짓는 일, 그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빈다. 지금 지율스님의 단식기도는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옷을 짓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해 본다."

 

개발의 미친 시계가 이제 그만 멈출 수는 없을까.

자연이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는 일, 이제 그만할 수 없을까.



지율을 정녕 죽일셈인가...
〈김택근 편집국 부국장 wtkim@kyunghyang.com〉

청와대 앞 단식 40일째. 지율스님은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다.
스님은 1인 시위라기보다는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맑고 표정은 밝았다.
그 맑고 밝음이 더 아팠다. 스님의 메마른 손을 차마 잡을 수 없었다.

천성산, 예쁘고 깊은 산. 원효가 그 품에서 용맹정진했고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린 산.
그 산의 생명붙이들에게 너희들만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도롱뇽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양서류의 인간에 대한 권리요구’라는 호기심으로 쳐다봤다.

스님은 ‘천성산에 도롱뇽이 없다’는 학자의 증언은 역사가 꼭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소송은 6개월 만에 기각되었다. 지금은 다시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생각하면 울음이 나온다. 매일 산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스님은 내원사의 비구니로 산의 가르침을 받던 천성산의 딸이었다. 그러나 길이 뚫리면 길가 700m 안쪽의 생명붙이들이 겨울잠을 자지 못한다고 해서 절을 뛰쳐나왔다. 이제는 천성산 온갖 생명붙이들의 어미가 되었다.
하지만 저 천성산을 저승으로 가져가야 할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어-


함께 흐느끼던 비구니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시민단체들도 은근히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다들 떠나갔다. 청와대 사람들도 조계종단과 시민단체와 얘기가 잘되었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적당히 하라는 것인가.
스님은 고속철 터널구간공사를 중단하고 천성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라며 세번째 단식에 들었다. 산에 구멍을 뚫으면 산에서 물이 빠져나가고, 그러면 계곡이 마르고, 그러면 강물이 마르고, 그러면 심성(心性)이 마른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러면서도 산을 파괴하는 것은 천성산을 뚫는 6조원의 돈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천성산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고향의 정기를 끊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지 않겠다던 대통령 후보 노무현, 도지사 김혁규, 장관, 시장 그리고 지난해 단식기도 때 대통령의 뜻을 믿어달라며 손을 잡아주던 수석비서관 문재인. 그들은 왜 말이 없는가.


스님은 정부가 ‘지율 하나 정도는 죽어도 좋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 일순 햇살이 뒤집히는 듯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이제 청와대에서 답을 얻기는 틀린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스님은 육신을 버리러 왔단 말인가. 절망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작금의 청와대의 침묵은 정녕 무엇인가.

지율스님이 딱 한가지 믿는 게 있다. 도롱뇽의 친구들이 늘어나 1백만 소송인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권력도, 금력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천성산을 뚫으면 22분 빨리 간다고 한다. 그러나 22분이 늦더라도 예쁘게 보존된 천성산을 가리키며 전설 하나를 이야기해주는 훗날이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저 산을 지키기 위해 이름없는 비구니가 어느날 온 몸을 던졌단다. 그때는 개발논리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때였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거야. 그 용기와 정성이 온 나라에 녹색 공명을 일으켰지. 푸른 울림이 퍼져나갔다는 얘기다. 그리고 저 예쁜 산을 지켰단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현명한 일인지 모른단다. 산은 한번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거든.”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정녕 지율을 죽일 작정인가? 지율을 향한 저 거대한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상은 모든 곳이 천성산인데 지율은 혼자이다.

-세상 모든곳이 천성산-

지율스님의 소망은 천성산 내원사의 바느질꾼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바느질 솜씨는 빼어나다. 스님들 옷을 뒤에서 짓는 일, 그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빈다. 지금 지율스님의 단식기도는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옷을 짓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해 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