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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6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6/24
    사우스 마운틴 이야기 / 존 에이브램스
    ninita
  2. 2006/06/14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3)
    ninita
  3. 2006/06/06
    lovers in rose / chagall(3)
    ninita
  4. 2006/06/03
    가장 가까운 바다 / 까뮈
    ninita
  5. 2006/06/02
    라스트 데이즈 / 구스 반 산트
    ninita
  6. 2006/06/01
    낯설다.(5)
    ninita

사우스 마운틴 이야기 / 존 에이브램스

사우스 마운틴사의 창립멤버이자 이 책의 저자인 존 에이브램스는, 지역밀착형 기업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할지 지난 30년 동안 실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지금까지 소소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그의 회사가 갖추게 된 여덟 가지 원칙 - 민주적인 직장 만들기, 성장이라는 불문율에 도전하기,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기, 마서즈 비니어드 섬에 전념하기, 장인 정신을 지키기, 지역 주민을 보호하기, 지역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기, 성당을 짓는 사람처럼 생각하기 - 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우리는 지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고,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과 실험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과 '다른' 세상은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한다.



 

사우스마운틴사 건축물의 특성 중 하나.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한 기둥. 심지어는 강에서 떠내려온 목재를 활용하기도 한다.

 

얼마나 더 많이 성장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성장하는가. 회사를 유지하고 구성원들과 나누는데 적절한 이윤인지, 모두에게 충분한 급여인지, 일의 중요성에 걸맞게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규제와 고민거리가 지나치지는 않는지... p.33

 

아마도 사회단체들로서는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들일 터. 새로운 문제의식은 아니지만, 정리된 누군가의 경험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일종의 성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즐거웠다고나 할까. '자본주의'의 대안이 뭐냐? 라는 공격적인 질문들에 대해, 자본주의 안에 존재하지만 '더 나은' 세상이자 '다른' 세상일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사례들을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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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나는 걸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나는 걸었다. 나는 천천히 가로등이 밝아오던 거리를 정처없이 쏘다녔다. 나는 모든 걸음이 어딘가를 향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걸음은 언어의 심연, 내가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뿐이었다. p.143

 

언어는 매우 자의적인 것으로 때로 그것은 함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희의 수단이기도 하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에게 언어는 그러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은유와 의인법을 사용하는데, 특히 관념어에 신체성을 부여한다. '삶' '현실' '마지막 순간' 같은 것. 탁자 아래로 떨어진 '현실'을 부여잡으려 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우습게도 '실존'하는 것이다. 내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랑'으로 인해 갈비뼈가 눌리고 내장을 찌른다는 상상. 잠들기 위해 불러낸 하얀 양떼의 첫 번째 양이, 죽어도 울타리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아 그것을 몽둥이로 내려쳐 죽이고야 잠에 드는 주인공.. 아이러니하게도 상상으로 가득찬 그녀의 표현들은, 때로 섬뜩하게 우리의 삶을 묘사해 낸다.

 

그것이 페리 로시가 생각하는 단편소설의 책무이며 묘미인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인용해 둔 독일의 소설가 노발리스의 잠언, 진정한 단편소설은 예언적, 즉 이상적인 동시에 전적으로 필수적인 재현이어야 한다.

 

p.s 책날개를 보니 작가는 여성이며 좌파고 동성애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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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in rose / chagall

 

안긴 자와 얼굴을 묻은 자. 위안의 교차.


 

DJ soulscape - Love is a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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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바다 / 까뮈

 

두통이 끊이지 않는다. 탐색하기 쉬운 자아, 불량스럽게도 상처를 잘 받는.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후 바다를 잃어버리게 되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후부터 나는 기다리고 있다
돌아 오는 선박들이며 물의 집들 청명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긋이 견디며 있는 힘을 다해서 예의 바르다
사람들은 내가 아름답고 정교한 거리들을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 고
나는 경치에 감탄하고 모든 사람들 처럼 갈채하고 손을 내미는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나는 조금 꿈을 꾸며 모욕을 받아도 놀랄까 말까다
그러고 나서 나는 잊어버리고 나를 모욕 하는 자에게 미소짓고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나치 게 공손히 인사한다
내가 단 하나의 이미지에 대해서 밖에 기억이 없으니 어찌 하겠는가?
남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라고 재촉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오...>
내가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장례식에서다
나는 정말이지 탁월해진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고철들이 꽃피듯 널려있는 변두리 동네를 걸어
써늘한 땅구멍들로 인도하는 시멘트 나무들을 심어놓은 대로로 접어든다
거기서 하늘의 붉게 물들었을까 말까한 붕대 아래서
대담한 녀석들이 내 친구들을 깊이가 3미터나 되는 곳에다가 매장하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그
때 흙 묻은 어떤 손이 내게 내미는 꽃을
내 가 던질 양이면 꽃은 영락없이 구덩이 속에 떨어진다
내 신앙심은 정확하며
감동은 어김 없고 목은 편리하게 숙여진다
남들은 내 말솜씨가 적절하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나는 잘난 데가 없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실수를 해 서 성공을 놓친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때 나는 혼자인 것을 그리하여 밤중에 잠이 깨어
선잠결에 파도소리가 물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완전히 잠이 깨면 그것이 잎가지 사이의 바람소리와
인적 없는 거리의 불행한 웅얼거림 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나면 내 비탄을 감추거나
그 비탄에다가 유행하는 옷을 입히기가 내재간으 로는 벅차다
또 어떤 때는 그와 반대로 남의 도움을 받는다
뉴욕에서 어떤 날들에는 수백만의 인간들이 헤매고 다니는
돌과 강철의 우물들의 깊은 밑바닥에서 길을 잃은 나는
그 끝을 찾지 못한 채 이 우물에서 저 우물로 쫓아다니다가 지쳐버린 나머지
마침내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는 사람들의 더미 밖에는
몸을 떠받쳐 주는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숨이 막히고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를 판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예인선이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마른 웅덩이같은 그 도시가 하나의 섬이라는 것을
나의 세례의 물이 속이 빈 코르크들로 뒤덮이고 시커멓게 썩은 채
배터리 공원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내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며
재산을 남에게 주고 내 모든 집들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나는
그래도 바라기만 하면 만족을 얻고 어느 때고 출범 준비를 하니
절망이 내겐 아랑곳 없다 절망한 자에게는 조국이 없는법
나로서는 바다가 내게 앞장서고 뒤를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광기가 내게 있다
서로 사랑하면 서 헤어진 자들은 고통 속에서 살지 모르나
그것이 절망은 아니다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에 눈물 없이 이 귀양살이를 참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기다린다 어느 날이 와서 마침내

 

가장 가까운 바다 _ 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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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 구스 반 산트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앵글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의 삶에서 사라진, 아무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그러므로 실상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마지막 며칠을 담기로 결심했다. 시적인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엘리펀트>의 누이 같은 영화. 사실 나는 그닥 좋지 않았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상상했을지, 그것이 궁금해서 찾아간 극장. 당연히 <도어스>를 바랬던 것은 아니다.

 

오프닝은 아주,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선택적으로 농도를 달리하는 앰비언트 사운드와 낮은 웅얼거림, 보일 듯 말 듯 나뭇가지 사이로 흔들거리는 걸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단 말이다. 컷이 바뀌고 나서 반대편 기슭에 있던 그가 이편으로 건너와 뒷태를 보이는 움직임까지도.

 

그런데 확실히 나는 낯선 것에 호의를 베풀지 않는 사람. 생경함을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의 몰입은 끝이 나 버렸고, 오프닝에 이어 두 장면 정도 - 창가에서 원경으로 빠지는 장면이랑 it's the long lonely journey from death to birth 부르던 장면 - 를 제외하곤 떨떠름해 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커트 코베인 같던 블레이크가 마이클 피트로 보이기 시작한 것도 문제. 난 마이클 피트가 싫다. 어른이 되다 만 애 같은 얼굴이 정말 꼴사납다. 유난히 싫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가리워진 마지막 순간을 이토록 표현해 낸다는 것, 그것은 인정이다. 예를 들어 기형도의 죽음 같은 것, 개인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의 시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오롯이 빚어낸 영화는 어떤 느낌일 수 있을까. 고정희의 죽음. 예민한 이들의 죽음들. 최승자가 죽고 나면 뭐라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권력을 창의적인 발상의 실현으로 연결 지으며 변방의 아웃사이더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아웃사이더로서의 예술가로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그의 모습과 주변 현실이 상업주의의 최전방인 미국에서 목격되는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보며 실험이란 젊은이의 특권이란 것이 허상임을 깨닫는다. 삶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있어서도 실험은 성숙의 결과물로 제시될 때 더 감동적이다." - 김영진, 필름 2.0


 

후후...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고, 훗날 한숨을 쉬며 말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 앞에는 모호한 길이 놓여 있었구나. 이제서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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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너무도 낯선 그들의 현재,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을까?

눈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

 

애저녁에 나는 거리를 두고 돌아가기를 택하고 만다.

 

- * -

 

후아.. 나 따위는, 이라고 안 하느라 땀뺐다.

솔직히는 그렇지만 그랬다간 더 복잡해진다.

 

- * -

 

입술빛이 납빛이 되도록.. 아픈 일은 더 없어야 하는데.

니 월급 세 달 치니까 빼먹지 말고 먹어. 엄마가 이런 식으로 돈얘기를 하지는 않는데.

얼마나 큰맘 먹고 보낸 걸까. 이번만큼은 꼭 꼬박꼬박 챙겨먹어야지.

뭐, 내 위기감이 증폭된 이유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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