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팀원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동 통일에 관해 의견을 나누다가, 끝까지 이라크에 남겠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이르렀다. ........ 어려운 문제였다. 거의 모든 팀원들은 마지막 결단을 뚜렷이 내보이는 것을 주저했다. 아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네?" "기범씨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저는, 전쟁이 안났으면 좋겠어요." 어처구니없게도 내 대답을 그랬다. - p19
마음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코에 대고 무언가 만지는 시늉이 바로 꽃향기를 맡아보라는 뜻이었다. 꽃에 코를 갖다 대었다. 숨을 크게 들이켜 그 향기를 맡았다. 고마워, 고마워, 네자르 고마워. - p66
제발 다시는 이라크로 돌아오지 말라며 두 손을 모아 말하는 하이달 앞에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히려 하이달은 나를 위로했고, 자기도 나갈 테니 나도 꼭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하이달은 나갈 수 없다. 아니, 나가지 않을 것이다. - p91
그런데, 문득 내 태도가 자칫 거만한 외국인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잘 모르겠다. 어떤 쪽도 싫었다. 몰려드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은 왠지 더 잘사는 나라의 외국인이 보이는 우월감이나 동정 같아 싫었고, 몰려드는 아이들을 무덤덤한 눈길로 보는 것 역시 우월감의 또다른 모습인 것 같아서 싫었다. - p192
울진으로 내려오면서 신문 한 부를 샀다. 바그다드호텔에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열명쯤 죽고 서른명쯤 다쳤다고 한다. ....... 얘들아, 너희는 괜찮은 거니? 우리, 그 앞을 걸어다니며 놀고 그랬잖아. 내가 거기 머물 때는, 매일 그 앞에 밥 먹자고 기다렸잖아. 응? 괜찮은거야? 하싼, 쎄이프, 레이스, 하이달... 맞아, 그랬어. 그때도 나는 너희가 보고 싶어 그 쏟아지는 폭격 속에서 국경택시를 탄 거였는데.... 괜찮아? 응? 괜찮은 거냐고? - p246
전세계에서 모인 운동선수 몇천명, 그리고 관객 십여만명이 모여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불꽃을 터뜨릴 때에도 나자프에서는 그 불꽃 수만큼이나 되는 마사일의 불꽃이 죄 없는 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질 것이다. 폭죽의 불꽃과 미사일의 불꽃, 축제의 환호와 피범벅의 절규. 이것이 바로 온 세계가 똘똘 뭉쳐 내걸고 있는 '평화'라는 이름의 본 모습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사는 나라가 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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