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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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과 남조선괴뢰당국의 반공화국심리모략책동의 돌격대가 되여 동족간에 불신과 대결을 야기시키는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다름아닌 짐승만도 못한 인간쓰레기, 악질《탈북자》놈들이다.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이 떠드는것처럼 이자들은 그 어떤 《정치적망명자》나 《난민》이 아니며 그 무슨 《인권투사》는 더욱 아니다. 하나와 같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냥 두어서는 안될 범죄자들, 한쪼각의 량심과 도덕의리마저 모르는 추악한 배신자, 인간오물들이다.
삐라살포를 비롯하여 반공화국《인권》소동에 미쳐날뛰는 이자들의 추태를 보면서 온 겨레와 국제사회계가 쓴웃음을 지으며 묻고있다.
《탈북자》, 너는 누구냐?
김영순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민족은 산설고 물설은 이역땅에 쫓겨가 망국노의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며 슬픔과 눈물속에 죽지 못해 살았다. 김영순의 부모들도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중국 동북지방으로 갔으며 소작살이로 겨우 연명하였다.
일제토벌대놈들에게 아버지와 맏오빠를 잃고 제 나라, 제땅도 아닌 남의 나라 땅에서 유복녀로 태여난 김영순은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눈물속에 자랐다. 조국의 광복은 김영순과 그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재생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해방과 함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그는 인간의 진정한 삶을 누릴수 있었으며 자기의 꿈과 재능을 활짝 꽃피우게 되였다. 나라에서는 자그마한 싹에 불과한 그의 무용소질까지 헤아려 예술학교에 입학시켜 장학금까지 주면서 마음껏 희망의 나래를 펼치도록 하였으며 졸업후에는 조선인민군협주단의 배우로,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한 성원으로 내세워주었다.
어제날 부엌데기소녀가 당의 영예로운 문예전사로!
사랑이면 이보다 더 큰 사랑, 믿음이면 이보다 더한 믿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랑과 믿음에는 보답이 따라야 한다. 바로 그렇게 하는것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다. 망국노의 설음을 가셔주고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줄수 없었던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받아안았으면 응당 어머니조국을 위해 보답의 한길을 걸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오직 저 하나의 안락과 편안, 돈밖에 몰랐던 김영순은 보답이 아니라 부화방탕하고 너절한 생활만을 추구하면서 인간으로서, 녀성으로서 상상도 못할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다.
김영순은 협주단배우로 있으면서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다. 며느리로서, 안해로서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공대를 잘하여 사회의 세포인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나가야 하겠으나 시간이 없다는 핑게를 대면서 응당 해야 할 가정일마저 집어던지고 여기저기를 돌아쳤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옷차림과 몸단장을 사치하고 불건전하게 하였는가 하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갖은 교태를 부리며 꼬여냈다.
한번은 공연준비로 저녁에 퇴근하지 못한다고 한 안해에게 남편이 밤참을 가져다주려고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공연준비니, 야간훈련이니 하는것은 다 거짓말이였다. 어디 들렸다가 늦어오는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은 어느 한 공원의 음침한 곳에서 낯모를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안해를 보게 되였다. 사연인즉 안해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그 남자에게 처녀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유혹한것이였다. 이러한 일은 그의 일상생활이였다. 남편이 애타게 타이르고 깨우쳐주었지만 퇴페적인 날라리풍에 물젖고 자기의 더러운 욕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김영순은 리상이 맞지 않는다느니, 뒤떨어진 인간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남편과 시부모와 엇서나갔으며 오히려 제편에서 리혼을 선포하고 집을 뛰쳐나갔다.
그후에도 김영순은 재혼과 리혼을 밥먹듯하고 여러 남성들과 불건전한 교제를 가지며 부화방탕한 생활만을 추구해 사회적물의를 일으키군 하였다. 결혼하고 리혼한 수가 사람들에게 알려진것만도 무려 5번이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추잡하고 더러운 색녀인가.
이것은 그가 변태적으로 색욕이 강한데도 있었지만 중요하게는 썩어빠진 부르죠아생활양식과 라태한 생활에 쩌들어 무위도식을 위한 돈을 벌자는데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녀성의 존엄도 서슴없이 집어던지는 너절하고 추악한 인간이였던것이다. 오늘도 그의 더러운 과거생활에 대해 알고있는 당시 협주단의 한 배우는 《김영순은 밤마다 고양이처럼 나다니기를 좋아했다. 그가 로골적으로 말했듯이 쉽게 버는 돈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음날에 출근해서는 제일은 하지 않고 구석진 곳에 틀어박혀 잠을 자기가 일쑤였다.》고 증언하였다. 마을사람들도 《돈밖에 몰랐던 수전노》, 《짐승도 무색케 할 화냥년》, 《일은 하지 않고 대가만 바라는 건달군, 협잡군, 모리간상배》라고 하면서 상기하기조차 구역질이 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있다. 추잡하고 부화방탕한 생활로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군하는 그에게 조직과 동지들이 충고도 하고 개진의 기회를 여러번 주었지만 그는 계속 불건전하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았다.
늘쌍 《돈을 물쓰듯 쓰고싶다.》고 하면서 뭉치돈을 벌 요행수만 노리던 김영순은 불량행위도 모자라 반국가적범죄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협주단 무용배우로 있던 1962년~1967년기간 밀수업자들, 무직건달자들을 비롯한 일부 불건전한자들을 집에 끌어들여 부화한 관계를 가지면서 국가적으로 엄금하는 물자들을 빼내다가 비법적인 거래를 하였으며 나중에는 국가비밀, 군사비밀을 루설하는 범죄행위까지 저질러 기소되였다.
결국 김영순은 온갖 너절하고 추잡한 과거행적과 밀수밀매행위, 군사비밀루설죄를 비롯한 엄중한 범죄로 하여 더는 공화국에서 머리를 들고 살수 없게 되자 남조선으로 뺑소니친것이다.
그러나 세살적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 더러운 본성이야 어디에 가겠는가.
남조선으로 도망간 이년은 그 나이에 그 어떤 남성도 가림없이 매춘행위를 일삼았다. 돈이라면 그 무슨짓도 가리지 않는 년이기에 괴뢰패당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을 위해 가소롭게도 그 무슨 《체험자》니, 《증언자》니 뭐니 하며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의 앞장에서 날뛰였고 제년이 우리 공화국에서 저지른 온갖 추잡한 행위와 각종 범죄를 정당화, 합리화해보려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발악하였다. 지어 《탈북자》놈들을 규합하여 군사분계선일대에까지 나와 삐라살포와 풍선날리기 등 반공화국심리모략책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은 범죄자, 배신자, 인간쓰레기인 김영순의 더러운 행적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길가의 막돌처럼 굴러다니며 천대와 멸시속에 살아오던 자기에게 재생의 삶을 안겨준 고마운 조국을 한생토록 받들지는 못할망정 악랄하게 중상모독해온 추악한 배신자, 추울세라 더울세라 보살펴주고 내세워준 어머니조국을 배반하고 자기만의 향락과 부귀를 바라고 반역의 길을 택한 변절자.
나라에 보답은 못할지언정 역적은 되지 말라고 하였다.
추악한 인간쓰레기 김영순은 력사와 후대들앞에 변절과 배신의 대명사, 저주와 규탄의 대상으로 불리워지게 될것이다.
덕을 악으로 갚고 사랑과 믿음에 배신으로 대답하는자는 제명을 살지 못한다.
아울러 김영순과 같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추물들을 끼고돌면서 그 무슨 《부위원장》이니 뭐니 하는 감투를 씌워주고 반공화국모략질에 여념이 없는 미국과 남조선괴뢰패당의 운명도 다를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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