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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과거의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전후세대가 이미 일본 전체 인구의 8할을 넘었으며 그들에게 사죄의 숙명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쟁 책임의 상속을 거부하며 그 시효가 다했음을 주장하는 이 논리는 언뜻 강력해 보인다.
잘못을 사죄하는 보상적 정의는 자원을 나누는 분배적 정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사적인 차원의 논리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당사자로서 살아 있을 때 보상의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죽고 없을 때, 따라서 내가 보상을 해 줘야 하는 가해자도 아니고 내 이웃이 보상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도 아닐 때 이른바 ‘상속된 책임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사적인 보상이 사회적 차원의 문제가 되고 그 책임이 상속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 피해자가 입었던 사회적 손실이나 가해자가 얻었던 사회적 이익의 영향 아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침략전쟁은 가해자나 피해자의 후손 모두에게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위안부 동원 등의 전쟁범죄는 피해자에게 지금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가해자는 식민지 수탈을 기반으로 이룩된 사회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책임이 상속되기 위한 두번째 조건은 이와 같은 역사적 궤적을 밟아온 정치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현재의 개인들이 부정적 유산의 부담까지도 감수하려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안보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시위는 일본이 전쟁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전쟁의 유산을 둘러싼 정체성 확립을 위해 아직도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 보수진영이 전후세대의 책임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범을 추모하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통해 과거 전쟁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전후세대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모순적 행동이다.
사회적 손실 및 이익의 영향력과 공동체에 대한 개인들의 정체성 공유 여부라는 두 가지 조건에 비춰 보자면 일본 전후세대의 사죄 의무 없음 주장은 아직 이른 결론이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침략전쟁으로 인해 누적된 유산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그 유산을 물려받은 정치공동체의 운명에 책임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약해질 것이다.
아베 총리의 담화는 보상적 정의의 이러한 성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보상적 정의의 개념을 물리적 시간의 게임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고 정치공동체가 집단으로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일본 시민이 사적인 유죄의 감정을 가져야 하는 의미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전쟁 책임의 상속을 거부하는 아베 담화는 더 근본적으로 불행한 과거에 대한 사과 요구를 회피하고 아시아를 우회하여 서구와 직접 상대하려는 일본의 탈아시아 정책과 맞닿아 있다. 일본은 다시 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아시아를 향한 전쟁 책임의 상속을 거부하고 심지어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 개헌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헌법 9조 역시 일본만의 국내 헌법이 아니라 전후 질서 재편과정에서 아시아 이웃 국가와의 약속을 담은 국제적인 조항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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