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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 들이댄 ‘외부세력’ 프레임, 세월호·매향리·용산참사때와 ‘판박이’

지긋지긋한 ‘외부세력’론이 또 나타났습니다. 이번 무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대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입니다. 이번엔 “성주에서 태어났어도 외부에 살면 외부세력”(강신명 경찰청장)이라는 엄격한 기준까지 제시됐습니다. 국가의 강제 토지수용 대상 지역이나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곳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이 ‘외부세력’론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국가와 수구세력이 불온하게 그려대는 ‘외부세력’은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특정 이슈의 물꼬를 돌리려는 목적에서 잉태된 ‘프레임 전쟁’에 가깝습니다.

새누리당과 조·중·동 및 경제매체 등 보수 세력이 걸핏하면 ‘외부세력’론을 제기하는 목적은 간단합니다.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연대를 막음으로써 해당 지역주민들을 고립시켜 저항을 약화하고 국가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함입니다. 단결권을 옥죈다는 이유로 노동계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노조법상 ‘제3자 개입금지’ 조항도 10년 전 법에서 지워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3자와 외부세력은 쌍둥이입니다. 보수 세력이 외부세력론으로 시민들의 저항에 물타기를 시도한 장면 5개를 추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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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빠른 외부세력, 성주에 침투?

이번에도 프레임 설정에 총대를 메고 나선 건 조·중·동이었습니다. <중앙일보>가 15일 “사드 반대하지만 외부 시위꾼 개입 용납 안 해”라는 김항곤 성주군수의 인터뷰 보도를 내면서입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를 찾았다 계란과 물병 세례를 받은 직후부터 외부세력론은 급격히 팽창합니다. <조선일보>는 18일치 3면에 ‘성주 사드저지투쟁위 위원장 “15일 폭력사태에 외부인 개입”’, ‘성주 투쟁위 “시위꾼들이 마이크 잡고 선동… 주민 뜻 왜곡했다”’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1면에 ‘사드 투쟁위 “총리 감금 때 외지인 가세”’ 보도 등으로 외부세력론에 군불을 땠습니다. <조선일보>는 옛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개입했다는 보도를 내면서도 근거는 대지 않았습니다.

성주 외부세력론이 불붙은 배경에는 “폭력사태에는 외부인이 개입한 것도 한 원인인 것 같다”는 성주사드배치저지투쟁위원회 이재복 공동위원장의 언론 인터뷰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투쟁위는 기자회견에서 “본뜻이 와전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외부세력의 실체는 확인할 수도 알 수도 없다”며 군민들의 뜻을 왜곡하려는 시도에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이 공동위원장도 “외부세력이란 사드 설명회 당시 투쟁위에 속하지 않고 상관없이 움직인 성주군민과 타 지역민 등을 지칭한다”고 해명했습니다.

조·중·동의 칼춤에 경찰도 용춤을 추고 나섰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성주군민 외에 타지에서 그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신원특정 중인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이 성주에 가는 게 불법이거나 처벌해야 하는 죄는 아닙니다. 보수 세력이 얘기하는 대로 ‘자유 대한민국’이니까요.

사드 배치는 성주 만의 일이 아닙니다. 당장 사드의 타격 목표인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과의 군사·외교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입니다.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성주군민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외부세력 운운하는 논리는 한가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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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주군 농민회장 “세월호 때 그분들이 이렇게 당했구나”

외부세력론은 세월호 참사 때도 어김없이 제기됐습니다. <채널에이(A)> 보도가 시작점이었습니다. 4월20일 100여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 실내체육관을 나서 청와대를 향해 수백 킬로미터 도보 행진에 나섰다 경찰에 저지당한 직후입니다. <채널에이>는 한 실종자 가족 인터뷰를 인용해 “진도대교 도보 행진은 외부인이 부추겨 벌어진 일”이라며 “실종자 가족도 아니고 단원고 학생도 아닌 학생들이 선두에 서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행진은 부모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동아일보>는 23일치 사설에서 “국가적, 국민적 참사마저 반정부 선동과 갈등에 악용하려는 일부 세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허위 사실 유포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주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해 4월에도 보수 세력의 외부세력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번엔 세월호 유족 옆에 나타난 광우병 선동 세력들’이란 제목의 사설을 썼습니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추모와 폭력시위는 구분해야 한다’, <동아일보>는 ‘시위꾼 집결장 된 세월호 추모제, 내년에도 이럴 건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시민사회의 연대를 불온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감없이 드러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8일 “(사드 배치 성주에도) 정부의 결정에 대한 집단적 반발 움직임에 대해, 전문(직업) 시위꾼들이 개입한 결과라 폄훼하는 보도가 어김없이 등장했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등장한 프레임으로, 투쟁 그 자체와 투쟁에 있어서의 연대를 폄훼하고, ‘폭력사태’를 부각하는 한편, 투쟁에 나선 이들을 ‘평범한 일반 시민’과 분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도 18일 정의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세월호 때 그분들이 이렇게 당했구나’라며 언론에 대한 분노도 많이 있다”며 “지상파 3사 등 주요언론에서 관련 내용들을 보도하고 있는데 현장의 목소리와 전혀 다르게 뭔가 의도된 듯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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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사기지 문제에 등장한 외부세력론

외부세력론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주요 지역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곳입니다. 미군이 필요로하는 폭격장이나 사격연습장, 주둔지, 항구와 연관된 곳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50년 가까이 미군의 폭격장으로 사용되면서 주민들의 극심한 스트레스, 오폭 및 불발탄으로 인한 주민 사망과 신체 절단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경기 화성군 매향리 사건 때도 외부세력론이 제기됐습니다. 2000년 당시 이광길 국방부 군수국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매향리 주민으로부터 ‘우리 문제인데 외부인들이 와서 될 일도 안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6년 뒤 주한미군 기지 이전 대상지로 지목된 경기 평택 대추리 사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3월17일치 <문화일보>는 ‘평택 제2 부안이 돼선 안 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반미단체나 환경단체들이 이런 분쟁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국책사업의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반미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실은 무책임한 불청객이라는 부안의 경험이 대추리에도 빨리 알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국가는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제3자가 개입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007년부터 본격화한 제주 해군기지 사건 때도 보수 세력은 외부세력을 문제 삼았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은 7월17일치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로 42개월 지체…제주 해군기지, 외부세력 개입으로 14개월 표류’ 기사에서 “평화와 환경 이름을 앞세운 외부세력이 개입하면서 강정마을 민심은 갈렸다. 공사는 14개월이 지연돼 지난 2월 준공식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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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지수용 현장에도 등장

2009년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불에 타 숨졌습니다. 용산참사입니다. 1월에 참사가 난 뒤 1달여 지난 2월 조진형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제3자 개입금지’를 부활시키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조 의원은 “뉴타운, 재개발 등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양에서 질 위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모든 것은 조합장이 하는 것인데, 저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들이 개입을 하면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고압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한전과 극심한 갈등을 빚은 경남 밀양 사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매일경제>는 2013년 5월20일치 ‘밀양 송전탑 이제 건설 강행이 답이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주민대책위는 송전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만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고 고집했다. 지중화에는 2조원이 필요하고 건설 기간도 10년이나 걸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한국전력 측 설명이다. 반대 측이 이를 알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이는 외부세력에 의한 ‘원전 반대’라는 이념싸움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매일경제>는 ‘사라져야 할 외부세력의 주술’이란 제목의 최근 18일치 기자 칼럼에서 “한국 사회에서 유사 갈등이 발생할 때 정치색을 띤 제3자의 개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그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숱하게 지켜봤다”며 “당사자 간 ‘토론’은 사라지고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기회비용’만 늘리는 파괴적 결과 말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주민 뜻을 무시한 채 무리한 공사를 강행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수인 지역주민과 연대한 시민사회 세력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입니다.

5. 노동현장의 좀비 ‘제3자 개입금지’

이른바 외부세력론이 법제화한 계기는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정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입니다. 1980년 노조법에 ‘제3자 개입금지’ 논리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기업별 노조 형태가 강한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노사 분쟁에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와 사용자가 아닌 이들은 개입하지 말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노동자나 사용자 모두 결사의 자유를 제한없이 누려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 등 국제기구들한테서 “독소조항”이라며 폐지를 요구받았습니다.

노동자의 단결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법률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 시절인 1987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인을 규명하려다 ‘제3자 개입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해당 조항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 노동법 개정 때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피를 이어받은 좀비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해 노동사건을 다루는 사법부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벌인 크레인 고공농성에서 시작된 ‘희망버스’ 물결 때 경총은 이런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사내하청노조의 불법투쟁 배후세력으로 사노위(사회주의 노동자정당건설공동추진위원회), 노건투(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현장투쟁위원회), 비없세(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다함께(노동자연대 다함께) 등이 추정된다. 특히 현재 외부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비정규직 희망버스’는 법원으로부터 퇴거명령까지 받은 불법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불법행위를 응원하고 조장하는 것으로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연대를 가로막는 외부세력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 이상 외부세력이 개입했냐 아니냐는 보수 세력의 프레임에 말리기보단, 고립을 강요당하는 주민들을 위해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게 ‘휴머니즘’이요, 민주시민의 덕목이라는 반격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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