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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의 실종

박원순 시장을 조준했던 이른바 ‘서울시공무원 간첩’ 사건이 오히려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조작’ 사건으로 바뀌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을 쫓던 국정원이 이제는 국가보안법 상의 무고 날조 혐의로 고발을 받았다. 세상만사가 새옹지마라지만 호사가의 이야기로 그칠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유일하게 폭력의 행사를 허용받은 존재다. 설사 상대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고 자기 마음대로 보복하는 것은 금지된다.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국가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대신 국가는 주먹을 휘두를 때 법을 따라야 한다. 이게 법치주의다. 권력자가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어르고, 이에 따라 곤장을 치는 사회는 사극에서나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법치주의자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한 번 실패했던 대선에서 내놓은 정책 기조는 ‘줄푸세’였다. 여기서 ‘세’가 법치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노동조합이 ‘떼를 써서’ 정부 정책을 바꾸고, 대규모 시위대가 도심을 휩쓰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법치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치란 시민이 법을 잘 지키는, 다른 말로 하면 고분고분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법치는 박 대통령이 지금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권력을 쓸 때 법이 정한대로 해야한다는 의미다. 권력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국가가 나서서 징계한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이럴 때 대개 국가는 무맥하다. 이걸 경계해 법의 지배를 가르친다.

노무현 정부 때 일이다. 여의도에서 시위를 벌이던 농민 두 사람이 경찰 기동대에 맞아서 결국 숨을 거뒀다. 대통령은 직접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한 말은 이렇다. 

"공권력도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라 자칫 감정이나 혼란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한 것임에도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벌어진 일 들 중에 이런 ‘책임감’을 갖고 처리된 일이 단 하나라도 있었을까?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한 일의 뒤처리, 국정원장의 독단으로 이루어진 NLL대화록의 공개, 프락치를 동원한 내란음모 사건, 사생활을 뒤져 채동욱 검찰총장 쫒아내기, 아무도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았던 진보정당에 대한 해산 청구, 이제는 증거 위조를 통한 간첩만들기까지. 하나같이 음습한 공작과 제 멋대로 식 권력 행사다.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마저 권력의 질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법은 가진 자의 편이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었고, 그 결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는 법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법치주의를 입에 달고 다녔던 보수주의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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