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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누군 좋아서하나?

 

  투쟁.. 투쟁.. 단.결.투쟁... 민주노조 깃발아래... 하는 80년대 노래를 지금도 집회같은데서 인쇄된 가사를 보며 갱신히 따라 부른기억이 납니다. 

  '투쟁.. 너무 심들어요. '

  '회식.. 좋아요.'

  심든 투쟁을 하는걸보고 어떤분들은 원래 저렇게 투쟁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잘못된 생각을 갖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조끼를 입고 점심시간에 요즘 옻이올라 다니고 있는 회사앞 피부과를 갔더니.. 접수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잔뜩 긴장?을 하셨습니다.한때 '노동자 풍'이란 현상수배 전단이 버젓이 붙기도 했는데요..  이러저러한 잘못된 생각 들이 주변 곳곳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배가압류로 희망을 찾을 수 없어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는 이제 별 관심조차 없어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프레임 속에 노동조합 활동을 가둬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문들을 외우죠. 마치 나는 하층민인데.. 중류층이라 생각하며 안도하듯이요. 

   벌어먹으려고 뻐리적거리며 일한 댓가로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나는 노동자 입니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인데요.. 이 얘기가 왜 중요하냐면.. 이렇게 솔직히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 드럽고 심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회사를 걍.. 조용히 관두게 되죠. 노조고 뭐고 먼가 방법을 찾지 않게 된다는 얘깁니다.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는 계약직들이 누구나 다 노동부 민원실가서 체불임금(해고예고, 연장근로, 퇴직금 등) 서류만 작성하여도 이런 황당한 범죄들은 분명히 자취를 감출겁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갖은 물건과 같이 내가 제공하는 노동행위는 내가 가진 유일한 재산입니다. 

    음.. 그 누구도 투쟁 자체를 좋아하는 노동자는 없습니다.  분노만 가지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설령 가능하다해도 상대편은 멀쩡한데 분노로만 살아가는 자신은 피폐해지고 망가지며 병이들게 됩니다.  분노는 시작점, 도화선이 될지 몰라도.. 행위의 지속이나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을 보자면. 

   

  마트에서 큰소리 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돈벌어 내가 대우받으며 쓴다는데 어쩔래? 니들 이 정도 써비스를 요구하는게 머가 잘못됐니? 하는 겁니다.  다 그런 사람만 있는건 아니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마트만 오면 돌아버리는 이런 사람들이 결핍된 것은 자존감과 공감능력입니다.  내가 벌어먹고 살고 있듯이.. 실수한 계산원도 벌어먹는 노동행위 중이며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한 가정의 어머니고 아버지라는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물건이나 돈을 집어던진다던지 쉽게 쌍욕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느냐의 척도입니다.  요즘..안타까운 윤일병사건.. 왜 저 때에도 한따까리가 없었던건 아닌데요.. 군 시스템이 잘못된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때릴 수 있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요즘 세대젊은이들에게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냐는데에는 결국 사회 근간을 이끌고 맨들어가는 어른세대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김광석의 진정성 있는 사랑노래에 공감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구사대 역할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고민하며 회사지시에 소극적일 것이며..  마트서 물건을 계산원에 집어던지지 않을 것이며.. 누굴 죽을 정도로 때리지도 못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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