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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원에서, 이일재 선생을 보내드리며

국화원에서, 이일재 선생보내드리며

 

어제(3.26.) 밤 대구의료원 국화원에 잠깐 들러 이일재 선생을 뵈고 왔습니다.

물론 영정에 인사드렸습니다.

90세였다고 합니다.

오래 사셨습니다.

그것도 해방 이후부터 60여 년간, ‘혁명적 노동자’로.

한국 현대사의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사셨습니다.

 

기억합니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토론회가 있을 때마다

이일재 선생께서는 멀리 대구에서 힘 든 몸을 이끌고 와서는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토론하시곤 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할 때 이일재 선생이 얘기하신 전평의 경험은 소중한 나침반이 됐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노동운동이론정책연구소가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래서 에버트재단에 지원을 요청할 지에 대해 논의를 할 때, 강하게 반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에버트재단은 사민주의 재단인데 그 지원을 받게 되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자신의 고유한 이념과 정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다는 요지였습니다.

그 약속을 한노정연은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래서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물론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결국 문을 닫기는 했지만.

 

이제 이일재 선생은 우리들에게 ‘기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80년 이후 자생적 운동으로 발전했지만, 멀리 일제하와 해방 직후의 운동과는 단절되어 있는데, 끝내 그 실마리를 이어줄 분을 우리는 이제 떠나보내야만 합니다.

이제 그 과제는 온전히 우리 몫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 사반세기간의 양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또 그 발전의 결과로 ‘개량화’되고 ‘관료화’되는 현실은 어쩌면, 해방 직후 노동운동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제대로 된 교훈을 끄집어내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국화원을 뒤로 하고

심야 버스를 타고 올라오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난번 사고서는 읽지 못하고 서가에 꽂혀있는 이일재 선생의 <노동자평의회와 공산주의의 길>을 읽어야겠다고.

거기서부터 선생님을 다시 추모해야겠다고.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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