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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고속, 전주시내버스 노동자 상경 농성장 방문

전북고속, 전북시내버스 노동자 40명이 서울 광화문 앞 열린광장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실 바로 앞에서.

호남의 여당인 민주통합당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기 위한 투쟁이다.

4월 7일(토)에 세미나를 마치고 남구현 교수, 정윤광 선배, 그리고 한신대 대학원생 둘과 함께 농성장을 방문했다.

그날 4시에 의원실과 면담을 진행했는데, 아직 그 결과는 확인하지 못했다.

힘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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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22,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 대한문 옆

STOP22!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대한문 옆에 분향소를 차렸다.

경찰이 텐트는 물론 분향대를 놓을 수 있는 탁자도 놓지 못하게 했다.

4월 21일은 '4차 포위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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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원에서, 이일재 선생을 보내드리며

국화원에서, 이일재 선생보내드리며

 

어제(3.26.) 밤 대구의료원 국화원에 잠깐 들러 이일재 선생을 뵈고 왔습니다.

물론 영정에 인사드렸습니다.

90세였다고 합니다.

오래 사셨습니다.

그것도 해방 이후부터 60여 년간, ‘혁명적 노동자’로.

한국 현대사의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사셨습니다.

 

기억합니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토론회가 있을 때마다

이일재 선생께서는 멀리 대구에서 힘 든 몸을 이끌고 와서는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토론하시곤 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할 때 이일재 선생이 얘기하신 전평의 경험은 소중한 나침반이 됐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노동운동이론정책연구소가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래서 에버트재단에 지원을 요청할 지에 대해 논의를 할 때, 강하게 반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에버트재단은 사민주의 재단인데 그 지원을 받게 되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자신의 고유한 이념과 정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다는 요지였습니다.

그 약속을 한노정연은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래서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물론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결국 문을 닫기는 했지만.

 

이제 이일재 선생은 우리들에게 ‘기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80년 이후 자생적 운동으로 발전했지만, 멀리 일제하와 해방 직후의 운동과는 단절되어 있는데, 끝내 그 실마리를 이어줄 분을 우리는 이제 떠나보내야만 합니다.

이제 그 과제는 온전히 우리 몫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 사반세기간의 양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또 그 발전의 결과로 ‘개량화’되고 ‘관료화’되는 현실은 어쩌면, 해방 직후 노동운동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제대로 된 교훈을 끄집어내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국화원을 뒤로 하고

심야 버스를 타고 올라오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난번 사고서는 읽지 못하고 서가에 꽂혀있는 이일재 선생의 <노동자평의회와 공산주의의 길>을 읽어야겠다고.

거기서부터 선생님을 다시 추모해야겠다고.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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