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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강동균 마을회장 등 3명 체포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강동균 마을회장 등 3명 체포

해군측, 주민 14명에 2억 8천만원 손해배상 청구

 

글쓴이 | 박주영 (나눔문화 연구원)

http://www.nanum.com/site/171508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품은 바다와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세워지는 제주 해군기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될 중대한 사안이지만 지난 5년간 언론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소리 없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매일 맨몸으로 포크레인 앞에 서는 마을 주민과 현장의 긴급한 소식을 전합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 3분이 강제 연행되었습니다.

7월 15일 새벽 7시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 자택에 사복 경찰 20여명이 찾아왔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고권일 강정마을회 반대대책위원장, 송강호 시민활동가도 체포되었습니다.

 

제주서귀포경찰은 해군기지건설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강동균 마을회장을 비롯한 3명에게 조사를 위해 출석요구를 3차례 요구했지만 이에 불응해 연행했다고 합니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동부경찰서 유치장으로 긴급후송 되었고, 송강호 활동가와 고권일 위원장은 구속되어 법원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강정마을 주민들이 경찰서와 법원으로 달려갔지만 변호사조차 출입을 통제했다고 합니다.

현재 서귀포경찰서는 정문을 잠그고, 전경들을 배치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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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도청앞으로 달려간 강정마을 주민들 

 

제주도와 경찰, 해군의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탄압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틀 전, 해군은 주민 14명에 2억 8천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그동안 공사현장에서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저지로 공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생업도 포기하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건 사람들에게 ‘돈’으로 주민들의 손과 발을 묶으려는 것입니다!

 

해군이 마을주민들을 고소,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죄목은 업무방해죄!

하지만 이 땅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짓는 것이 400년 이어온 강정마을의 '중대한 업무'였습니다.

고향 땅에서 평생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는 해군이 업무방해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도가 '전쟁의 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도전할 만큼 주목받고 있는 천혜의 자연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두고볼 수만은 없던 강정마을 주민들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는 꼭 지켜야 할 것을 지킨 정당한 행동입니다.

이 아름다운 땅을 마음 깊이 사랑해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있었기에 지난 5년간 이 땅을 지켜올 수 있던 것입니다.  

제주서귀포경찰은 연행된 강동균 마을회장, 고권일 대책위원장, 송강호 활동가를 석방해야 합니다!

강정마을 주민 14명에게 청구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 소식을 널리 알려주시고, 제주 서귀포 경찰서에 항의전화와 항의글을 남겨주세요!

 

064-760-0112 | 제주 서귀포 경찰서 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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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희망의 버스 -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2차 희망의 버스’에 다녀와서

 

2011.7.09.(토) 19:00~7.10.(일) 15:00

 

 

희망은 ‘만남’입니다.

 

결국 85호 크레인에 있는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국에서 희망의 버스, 희망의 자전거, 희망의 비행기, 희망의 천리행군을 통해

1만 여명이 넘게 모여 폭우를 뚫고 행진했지만,

결국 경찰벽에 막혀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정리해고를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와 ‘김진숙을 살아서 내려오게 해야한다’는 바람으로 부산역에 모여, 영도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막힌 경찰벽에 몸을 던져 부딪혔지만,

결국 물대포와 최루액에 밀려 그냥 주저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벽을 뚫어 85호 크레인까지 가서 김진숙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폭우 속 부산역에서, 영도에서 ‘희망’을 만났습니다.

살고 있는 동네 아줌마들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첫째 애 친구 엄마와 둘째 애 친구 아빠도 뜻밖에 만났습니다.

20여 년전 함께 노동운동 하다가 헤어졌던 후배도 만났습니다.

고향에서 노동조합 활동하는 후배도 만났고, 지금은 조금 서먹해져버린 교수도 웃으며 만났습니다.

김진숙은 정리해고자와 생존자를 이어주는 오작교일 뿐 아니라,

이렇게 오랜 동안 헤어져 있던 사람들을 오직 가슴 하나로, 분노 하나로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살아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같은 바람과 같은 분노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이것 역시 솔찮게 반가운 ‘희망’입니다.

 

아마 다들 비슷한 심정, 비슷한 생각, 비슷한 판단이었을 겁니다.

1차 희망이 버스가 2차 희망의 버스에 1만명이 넘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면,

3차 희망의 버스는 ‘경찰벽을 실직적으로 뚫어내는’ 희망의 버스여야 한다는 그런---.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떨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김진숙이 85호 크레인 위에 여전히 있고,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의 버스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희망의 버스가 분노와 바람을 모으는데 멈추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찰벽을 뚫고, 정리해고가 당연하다는 막힌 생각들을 뚫어야 한다는 것.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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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주, 그는 어디에나 빠지지않고 있습니다.

조희주, 그는 어디에나 빠지지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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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안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10여 년간 - 적어도 제가 안 지 -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해고로 '학교' 현장을 빼앗긴 후, 그의 현장은 항상 '거리'였습니다.

 

그 거리는 쫒겨나거나 빼앗긴 자들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 결의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들이 노동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농민, 철거민, 노점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학교는 '투쟁의 현장', '투쟁의 거리'였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 철거민, 노점상, 농민들과 '거리'에서 함께 하면서

그는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소통하고, 주먹을 움켜쥐고, 또 그들로부터 배우고 ---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리는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다가 새하얘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젊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올해 ‘환갑’이라는 걸 인정하길 싫어합니다.

“아직 한참인데 ---”

요새 ‘환갑’ 정도에는 노인 취급을 안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후배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뭔가 한 ‘매듭’을 짓는 건 필요하지 않냐”는 깊은 생각과

이를 빌미로 “‘거리’말고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보는 건 어떤가”는 얄팍한 생각이

서로 버무려지면서,

두 눈 딱 감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6월 8일(금요일) 오후 6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계원예술대학교’ 야외마당에서

조희주와 아는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놀아보기로 했습니다.

잘 놀아야 잘 싸울 수도 있습니다!

4팀의 공연도 자발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희주, 그는 언제 어디서나 투쟁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번 쯤 우리가 그를 위해, 그와 함께, 빠지지 않고 있어야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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