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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희망의 버스 -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2차 희망의 버스’에 다녀와서

 

2011.7.09.(토) 19:00~7.10.(일) 15:00

 

 

희망은 ‘만남’입니다.

 

결국 85호 크레인에 있는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국에서 희망의 버스, 희망의 자전거, 희망의 비행기, 희망의 천리행군을 통해

1만 여명이 넘게 모여 폭우를 뚫고 행진했지만,

결국 경찰벽에 막혀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정리해고를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와 ‘김진숙을 살아서 내려오게 해야한다’는 바람으로 부산역에 모여, 영도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막힌 경찰벽에 몸을 던져 부딪혔지만,

결국 물대포와 최루액에 밀려 그냥 주저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벽을 뚫어 85호 크레인까지 가서 김진숙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폭우 속 부산역에서, 영도에서 ‘희망’을 만났습니다.

살고 있는 동네 아줌마들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첫째 애 친구 엄마와 둘째 애 친구 아빠도 뜻밖에 만났습니다.

20여 년전 함께 노동운동 하다가 헤어졌던 후배도 만났습니다.

고향에서 노동조합 활동하는 후배도 만났고, 지금은 조금 서먹해져버린 교수도 웃으며 만났습니다.

김진숙은 정리해고자와 생존자를 이어주는 오작교일 뿐 아니라,

이렇게 오랜 동안 헤어져 있던 사람들을 오직 가슴 하나로, 분노 하나로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살아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같은 바람과 같은 분노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이것 역시 솔찮게 반가운 ‘희망’입니다.

 

아마 다들 비슷한 심정, 비슷한 생각, 비슷한 판단이었을 겁니다.

1차 희망이 버스가 2차 희망의 버스에 1만명이 넘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면,

3차 희망의 버스는 ‘경찰벽을 실직적으로 뚫어내는’ 희망의 버스여야 한다는 그런---.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떨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김진숙이 85호 크레인 위에 여전히 있고,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의 버스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희망의 버스가 분노와 바람을 모으는데 멈추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찰벽을 뚫고, 정리해고가 당연하다는 막힌 생각들을 뚫어야 한다는 것.

 

이제 희망은 막힌 벽을 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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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주, 그는 어디에나 빠지지않고 있습니다.

조희주, 그는 어디에나 빠지지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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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안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10여 년간 - 적어도 제가 안 지 -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해고로 '학교' 현장을 빼앗긴 후, 그의 현장은 항상 '거리'였습니다.

 

그 거리는 쫒겨나거나 빼앗긴 자들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 결의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들이 노동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농민, 철거민, 노점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학교는 '투쟁의 현장', '투쟁의 거리'였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 철거민, 노점상, 농민들과 '거리'에서 함께 하면서

그는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소통하고, 주먹을 움켜쥐고, 또 그들로부터 배우고 ---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리는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다가 새하얘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젊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올해 ‘환갑’이라는 걸 인정하길 싫어합니다.

“아직 한참인데 ---”

요새 ‘환갑’ 정도에는 노인 취급을 안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후배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뭔가 한 ‘매듭’을 짓는 건 필요하지 않냐”는 깊은 생각과

이를 빌미로 “‘거리’말고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보는 건 어떤가”는 얄팍한 생각이

서로 버무려지면서,

두 눈 딱 감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6월 8일(금요일) 오후 6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계원예술대학교’ 야외마당에서

조희주와 아는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놀아보기로 했습니다.

잘 놀아야 잘 싸울 수도 있습니다!

4팀의 공연도 자발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희주, 그는 언제 어디서나 투쟁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번 쯤 우리가 그를 위해, 그와 함께, 빠지지 않고 있어야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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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心3日’에서 자연과학을 열공하며

‘作心3日’에서 자연과학을 열공하며

 

아마 올 초에 번역/발간된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였을 거다.

작심하고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죽었다면 너무 억울했을 거다.”

 

 

무엇보다도 즐겁다.

우주에 대해, 지구의 역사에 대해, 생물에 대해, 인간의 기원에 대해 ‘새롭게 아는 것’이 일단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즐겁다.

그리고 가슴이 뛴다.

 

 

사실 우주와 지구와 생명과 인간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5~6년 전이었다.

우연히 BBC와 NHK의 과학 다큐멘타리를 접하면서 눈이 확 뜨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대 과학이 여기까지 왔구나! 이걸 모르고서는 ‘21c 현대’에 살아간다고 할 수 없겠구나!

 

그 후 지금까지 각종 과학 다큐멘타리를 모으고, 틈틈이 과학 서적도 읽고 --- 그리고 남몰래(?) 나 자신만의 프로젝트도 하나 만들었다.

‘나는 내가 궁금하다’프로젝트!

 

 

나이가 들면서 그런 건가?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10대 때는 문학과 신학을 통해서, 20대부터 지금까지는 철학과 사회과학을 통해 대략 나의 존재에 대해서 나의 삶에 대해서 이해왔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이해한 만큼 살아왔다.

 

 

비어있었다.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가 철학의 영역까지 밀치고 들어와 우주와 지구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관까지 뒤흔들고 있었다.

20대 이후 내가 가지고 있었던 철학적 기반(변증법과 유물론)에 대해 다시 재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자연과학‘만’이 이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의 성과를 모르고 ‘세계관’을 말할 수는 없다.

 

마침 ‘작심3일’에서 2011년에 자연과학책 읽기에 도전하자는 제안이 있어 적극 동의했다.

 

아직은 첫걸음이다. 첫걸음인 만큼 한 권 한 권 책읽기가 설레인다.

20대 초반에 맑스주의에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가슴떨림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들 소박한 수준이지만 함께 읽고 토론하는 것 역시 좋다.

 

 

물론 이러한 나의 관심은 ‘작심3일’ 일정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앞으로 평생 공부해 나갈 주제라 생각한다.

 

그래서 몇 가지 방향을 잡고 있다.

 

 

1) 우주의 역사에서부터 지구, 생명, 인간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통사적인 정리 --- 흐름을 꿰어나갈 수 있는 ---

2) 최근의 자연과학적 성과에 바탕한 철학, 세계관(변증법과 유물론)의 재구성

3) 자연과학적 방법론 이해: 어떻게 연구하는지, 어떻게 논쟁하는지, 어떻게 실험하고 검증하는지, 법칙은 어떻게 법칙으로 되는지 등

4)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 능력

 

 

여전히 ‘나는 내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궁금함이 끝없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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