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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2/13
    또 한가지 홍콩관련...
    모험가
  2. 2005/12/13
    홍콩에서 1
    모험가
  3. 2005/12/09
    [펌] 황우석 의혹 총정리
    모험가
  4. 2005/12/02
    동감입니다.
    모험가
  5. 2005/11/28
    고 전용철 농민을 애도함(2)
    모험가
  6. 2005/11/27
    배추를 다듬어 절이면서(2)
    모험가
  7. 2005/11/26
    쌀개방관련...
    모험가
  8. 2005/11/20
    친구와 청계산을 갔다.
    모험가
  9. 2005/11/08
    페터 슈라이어 공연을 보았다.(2)
    모험가
  10. 2005/10/26
    하나로텔레콤노동조합 이야기(1)
    모험가

또 한가지 홍콩관련...

여기와서 보니 한국에서 민중가요와 율동을 배운 동남아 활동가들이 아주 많았다.

공식 무대에서 몇 몇 동남아 단위들이 한국에서 이런 노래를 배웠고 저런 율동을 배웠는데 한 번 해보겠다고 하고 시연을 해보였다.

 

지금 회의를 하려고 하고 있는 여기 사무실에서도 대만 노동자들이 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투쟁의 세계화가 한국민중운동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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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1

개막집회와 행진을 했다.

행진에 홍콩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최첨단 금융도시에 각국에서 온 농민 노동자들이 북, 꽹과리 등 타악기를 두드리고 행진을 하니 신기할 수밖에.

같이 행진을 한, 중국 전문가 백승욱 교수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구경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그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죽느냐 사느냐 절박한 순간에 있는 한국의 농민 등 전세계 소농, 노동자, 위기에 처한 공적 서비스 등의 문제에 그들이, 그리고 세계시민들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는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할텐데...

 

농민들은 결국 컨벤션센타가 있는 바다로 결국 뛰어들었다. 약 100여명이.

처음 관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지만 약간 우려가 되기도 했다. 우선 불상사가 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약간의 치기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경해 열사 건도 있고, 홍콩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도 있고 해서 전농으로서는 심한 물리적 힘이 동반되는 투쟁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택가능한 전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사무총장 얘기로는 달리 방법이 별로 없어서 고심끝에 선택한 전술이란다. 투쟁대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농이 선택한 전술을, 그리고 성격상 내놓고 논의할 수 있는 방안도 아니어서 나를 비롯한 다른 단위들은 잘되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처음에 약간 머뭇머뭇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결국 하나 둘 물속으로 뛰어들어 약 100여명이 뛰어들어 보기엔 괜찮았다.

 

그러나 시위대들이 일정한 관심과 환호를 보이긴 했지만 엄청난 환호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았았다. 이종회선배는 무척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발언권이 별로 없긴 선배나 나나 뭐...

 

암튼 물 속으로 뛰어든 전농동지들, 그리고 일부 학생들 수고를 많이 했다고 할밖에.

 

그리고 컨벤션센타 앞에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고 최루까스가 뿌려졌다.

 

그런데 최루까스가 경찰과 심하게 싸우는 사람들 개인들 개인들에게만 뿌려졌다.

시위진압의 신자유주의적 판본(^^;;)이랄까. 거칠게 싸우는 사람들 개인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내가 참석한 기자회견 화면이 현지 텔레비젼에 반복해서 방영됨으로써 무려(!) 두 명의 현지인이 나를 알아 보았다. 전에 1회사회포럼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헌데 우리단체 게시판을  보니 국내 9시뉴스까지 나왔다니 원.

화면값을 위해서도 열심히 투쟁을 해야겠는데 워낙 싸우는데는 소질이 없어 놔서... 결정적인 순간만 빼고^^;;

 

연좌집회 때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한국사람들만 한국말로 비슷비슷한 발언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집회가 계속되는 것을 내 제안으로 비아캄페시나 전 의장 라파엘을 발언을 시켰고, 그 이후 다른 외국인 발언도 좀 이어졌고, 한국인 발언도 영어통역이 진행되게 되었다. '대외협력'의 역할을 아주 쪼끔 한 셈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회의가 곧 시작될 예정.

그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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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황우석 의혹 총정리

프레시안 게시판에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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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의혹 총정리(비전문가용)
진실만이 살 길 / 2005-12-07 오후 4:55:51
추천 11, 반대 4


BRIC(과기부산하 생물학연구정보센터) 게시판: 펌


제가 사실 과학에 그다지 연관 없는 이 사이트에서 왜 할일 없이 열 내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진짜 엉터리 언론의 말만 믿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서 글을 씁니다....

황 교수의 논문은 뭐 최첨단 기술이라 같은 생물하는 사람도 검증하기 어렵다는 정근모의 말..그야 말로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사태를 덮고 싶은 맘은 이해가지만, 진짜 해도 해도...

제가 황교수 논문에 대해서 자세하게!!!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은 2004년 논문과 2005년 논문이 있습니다.
2004년 논문내용을 아무 전문적이고 고차원적으로 요약하면

"나 줄기세포 만들었다"

이거 한 문장입니다. 아인시타인 논문이나 페르마의 정리처럼 두껍지도 않고 읽는데 어려운 논문 결코 아닙니다. 줄기세포 만들어서 확인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논문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성과이지요. 왜냐면 그동안 줄기세포 만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이게 왜 힘드냐면, 난자 핵 치환 과정(황 교수팀은 젓가랏질의 기운을 받아 극복하였다는)이 어렵고, 줄기세포의 배양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고, 결정적으로... 이게 성공률 자체가 워낙 낮기 때문에 수많은 난자가 필요한데 이렇게 난자 대량으로 구할 연구팀이 황 교수밖에 없었습니다.
2004년 논문에서 황교수는 242개의 난자로 한 개의 줄기세포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니까 외국 연구팀이 비웃습니다. 나도 난자 200개 주면 하나 정도는 만든다. 없어서 못만들지 그게 뭐 대수냐??? 라고 하니까 2005년에 다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합니다.

"나 줄기세포 11개 만들었다. 이번엔 환자 자체의 세포를 이용하였고, 난자도 180개 밖에 안 썼다.
진짜 대단하지 않냐? 이제 진정한 줄기세포 시대의 개막을 선포한다"

2005년 논문은 양이 좀 많아서 두 줄입니다.

자, 그럼 이것을 어떻게 검증하느냐? 보통 다른 실험 같으면 딴 쪽에서 재현테스트를 하는데, 이건 난자가 없어서 못합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황교수가 만든 줄기세포를 확인하면 됩니다.
줄기세포 확인은 이미 수없이 거론된 DNA fingerprint로 하는데 이건 일반인도 1주일 배우면 하는 방식입니다.

2005년 논문은 2004년 논문에서 이어지는 것이므로 특별히 논리적으로 모순될게 없다고 판단이 되어 사이언스에서 검증기간도 극도로 짧게 가지고 특종 보도를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PD수첩의 조사 같은 게 흘려지고 난 후에 황교 수가 논문 정정을 요청합니다.

"나 줄기 세포 만들었다는거 중에 4개가 아직 정확하게 확인 안 된다. 7개 만든 거로 정정해다오"

사실 줄기세포 확인절차인 DNA감식을 국과수에 야매로(!) 한번 한 거 밖에 없다는 게 의아스럽지만,
뭐 이 정도의 수정은 그렇다 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줄기세포 사진 자체가 중복된 것이 5쌍이나 등장합니다. 아울러 DNA noise pattern이 같은 것도 있고요... 단지 사진의 실수라고 하는데, 만약 이게 실수가 아니ㄹㅏ면?
황 교수의 2005년 논문은
"나 줄기세포 2~3개 만들었다. 환자 거에서 나온 세포인지는 확실치 않다" 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러면 이 논문 당연히 퇴짜 맞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PD수첩이 내보자 제보로 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황 교수의 줄기세포가 3개 이하라는 의심... 혹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할까요?
간단한 것은 '거 줄기세포 좀 구경합시다.' 입니다.

이거 연구 방해하는 거 별로 아니고요, 줄기세포 자체는 분양이 가능하므로 조금 띠어져도 상관없는 겁니다. 그래서 PD수첩이 구경하려고 줄기세포 가져갔는데, 그게 줄기세포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결과가 학계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줄기세포 좀 봅시다!!! 실험해서 만들었다는데 그거 좀 구경시켜 주면 안 될까요?"

그 어렵게 만들었다는 줄기세포, 한 번 분양받아서 DNA돌려서 줄기세포의 아름다운 패턴을 보고 싶은 소박한 요구사항일 뿐인데... 처음에는 사이언스가 싫어할 거라는 핑계, 그 다음에는 과학자의 자존심,... 그 다음에는 그 소중한 줄기세포가 아예 11개 모두 손상되었다!!!! 라는 답변...

결국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어서 보여주겠다고 하는군요. 2004년 논문이 잘못 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황 교수팀은 줄기세포 만들 능력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2005년 논문 자체가 바보 논문이 되어버리는 거죠.

황 교수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겠다는 게 아니라 2005년 논문에서 나왔던 11개, 아니 수정해서 7개의 줄기세포를 한번 눈앞에서 세어보고 싶다는 건데... 학자적 자존심이 용납 안되어서 그 중요한 샘플을 한꺼번에 소각장에 넣었다는 얘기인 가봅니다.

뭐, 의혹은 의혹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단한 요구 사항을 갖은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는 것은 의혹을 증폭 시킬 뿐 아니라, 과학자의 기본자세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벌써 여러 번 거짓말 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고요.
(대표적 거짓말 : 난자 매매는 결코 없었다. 연구원 기증 없다. 줄기세포는 DNA검증이 어렵다. 가끔은 DNA가 변한다. 포름알데히드 쓰면 DNA검증 안 된다. 사진 수정은 이미 사이언스도 아는 사항이다. MBC덕에 일본애들이 논문 더 먼저 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저 진짜 줄기세포 구경하고 싶습니다. 제가 줄기세포 만들 능력은 당연히 없어서 논문은 못 쓰지만, 줄기세포 주면 그게 줄기세포인지 '검증'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PD수첩도 PCR 분석 전문가도 아니지만......

줄기세포를 안 보여주기 때문에 줄기세포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 물음이 남는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 상태를 보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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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보라돌이님의 [증언자를 만나다] 에 관련된 글.

저도 촛불집회를 마치고 오면서 든 생각입니다. 농민들의 자살, 음독, 분신, 마침내(?!) 경찰에 의한 살해 뒤에도 사람들은 너무 차분한 것 같더라구요. 오늘 촛불집회에도 불과 100여명이 참석했거든요. 어제 파업집회와 광화문에서의 밤늦은 연좌가 있어서 오늘부터는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서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강도가 점점 엷어지는지, 아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바삐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그러는지, 더 나아가 산 사람도 거의 죽음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권력에 의한 민중살해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걱정이네요. 이런 죽음을 계속 경험하면서도 저항다운 저항도 못하고 살아갈 우리들의 마음이 시멘트같이 굳어있을 게 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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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용철 농민을 애도함

글을 안남길 수가 없군요.

노동자로 살다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셨군요.

시골에서 방을 세 얻어 살고 월세도 밀릴 정도로 생활이 어려우셨군요.

어려서는 부모님 없이 자라셨고요.

 

44세,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도 못하고 청년으로서

마을 굳은 일은 도맡아 하셨고,

주로 봉사부장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긴 머리가 고단한 당신의 삶을 얘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 밀려오자 당신은 무모하게도 양팔을 휘저으며 경찰을 막고자 했다지요.

그런 당신에게 경찰은 방패로 가슴을 머리를 내리찍고 밟고 지나갔다지요.

 

그리고 집앞에서 쓰러져 머리를 다쳤다고 발표를 했지요.

 

일만 열심히 한 당신을 죽인 자들, 그리고 그 죽음을 왜곡한 자들,

이자들을 어찌 해야 하나요?

 

부디 모든 것 잊고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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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다듬어 절이면서

"속이 꽉 찬" 이란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알았다. 이 표현은 배추에서 나온게 틀림없어 보인다. 속이 꽉 찬 배추는 크고 단단했다.

부실한 배추와 속이 꽉 차 크고 단단한 배추, 확실히 비교가 되었다.

부실한 배추를 다듬다 속이 꽉 찬 배추를 발견해 다듬게 되면 그 기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김장을 도우면서  생생한 표현 하나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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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개방관련...

 

자살, 음독, 급기야 경찰폭력에 의한 타살까지 농민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신도 있었습니다. 지역농민들의 쌀비준 반대투쟁은 갈수록 그 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전용철 농민이 경찰방패에 찍혀 돌아가시게 된 계기가 된 11월 15일 시위를 보십시오. 아마 작년말이나 올초에 전농 지도부가 예상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농민들의 투쟁이 이렇게 격렬하게 진행되는 이유는 쌀추가개방을 기정사실화하고 추곡수매제를 없앤 뒤 시장 쌀값 폭락이 현실화하면서 농민들이 '살농정책'의 미래의 모습을 바로 지금 목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 기준가와 시장가격 차액의 85%를 보상해준다고 하나 그 보상수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고, 설령 보상이 지속되다하더라도 추가개방으로 쌀값폭락이 더욱 가속화한다면 보상이 안되는 15%도 적지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많은 농민들이 조그만 땅뙈기를 재산삼아 갖고 있으며 여차하면 땅을 팔아 빚도 갚고 할 생각이었겠으나 땅값마저 하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상공업용지로 전용이 가능한 땅들(이런 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의 가격은 오르고 있으나 논가격은 떨어진다고 합니다. 전농 출신 한 간부에 의하면 2-3년 전에 5만원 정도인 어떤 논이 3만원-3만5천원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논값은 앞으로 일거에 더욱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쌀 추가개방이 지속되고 관세화와 관세인하가 이어진다면, 이런 사태가 비록 장기에 걸쳐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역전 불가능한 방향이라고  판단한다면 농민들의 농업포기와 논팔기는 급격히 진행될 것이며, 논값 하락 역시 일거에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번 쌀 비준을 되돌리고 오는 12월 홍콩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에서 농업협상을 전면적으로 파탄시킬 어떤 실마리를 마련해내지 못한다면 농민들의 안타까운 죽음(구조적 타살)의 행렬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모두의 각성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전농과 민주노총은 전용철 농민의 폭력경찰에 의한 살인과 비정규법안을 묶어 전면적인 대정부투쟁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 길만이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여기 펀글은 제가 작년 12월 20일자 사회진보연대의 '사회화와 노동'에 쓴 글입니다. 부족하나마 참고로 다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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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추가개방에 맞선 농민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쌀 추가개방을 위한 정부의 쌀협상에 맞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외로운 반대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협상시한이 9월말이라고 엄포를 놓다가 이 시한을 넘기자 이제는 "12월 23일까지는 협상결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한다", "올해 안에 관세화유예가 안 된다면 자동관세화가 된다"며 으름장을 놓는 정부와 협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쌀협상이 거의 끝난 것인 양 보도를 해대는 제도언론들 모두 쌀 추가개방 불가피론에 입각해 농업죽이기-농민살해에 공모하고 있다.

사실 영농기술이 아무리 좋고 농민들의 노동력가치를 아무리 낮춘다 해도, 미국 등 토지가 풍부한 나라들에 비해 농지가가 10-20배가 넘는 상황에서, 한국의 농업이 자유무역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를 이유로 한국의 역대정부는 지속적으로 농업을 축소시켜 왔다. 그래서 이제 곡물자급률은 25% 남짓하고(이것은 그나마 쌀이 보호되어 있어서이지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5%내외라고 한다), 농민들, 특히 농업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업으로 생각하고 아직 농촌에 남아있는 젊은 농민들은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아 언제 파산을 선언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한국 농업의 이런 위기는 미국과 세계무역기구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7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주도 세계경제와 미국경제는 과잉축적 이윤율 저하로 구조적 위기에 처한다. 80년대 초반 쌍둥이적자에 시달린 미국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던 농업과 서비스까지 '자유무역'의 의제에 포함시켜 우루과이 라운드를 설치해 협상을 타결했고 세계무역기구를 출범시켰다. 꼭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국은 90년대 장기호황을 구가하였다. 반면 한국농업은 지속적인 축소·쇠락의 길을 걸었다. 농민들의 자살은 잇달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국과 세계무역기구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렇게 기진맥진해 있는 한국의 농업에 쌀 추가개방이라는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미국은 자산계층의 과소비로 현재 또다시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희생양 중의 하나가 한국의 농민이 될 판이다.


소농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농업은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이는 이번 협상에서 최소시장 접근물량을 8%가 아니라 설령 7%나 6%로 낮춰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농업이 WTO의 협상의 의제가 되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는 한 이번의 쌀 추가개방 및 시판허용 이후에도 관세화, 관세인하 등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으로 농민들에겐 추가적인 어려움에 닥칠텐데, 그것은 토지의 문제다. 여전히 토지의 수익에 비해 높게 형성되어 있는 농지가가 폭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혹 아직 논밭을 팔고 나면 빚은 갚을 수 있는 농민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것이 앞으로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내다보고 도시민들에게 소규모 농지를 구입하게 하여 농지가의 급격한 하락을 방지하고자 하나(연착륙 시도), 논농사로밖에 이용될 수 없는 토지 가격의 급격한 하락과 그로 인한 농민들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쌀 추가개방으로 이한 정부의 탈농정책은 국민경제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농민들이 '경쟁력이 없는' 농업을 떠나서 보다 생산적인 산업에 종사하여 한국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비교우위론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 고령인 농민들은 농업을 포기하고 아예 농촌빈민으로 남을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즉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정부의 추가적인 탈농정책은 비용은 비용대로 들이면서 효과는 없는, 그리고 그 이익은 주로 미국계 초국적 곡물메이저가 가져가는 반민족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쌀농업의 축소·쇠락 이후 식량은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우선 쌀의 국제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오를 것이다.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국적 곡물 메이저들의 독점의 횡포 또한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앙(이들에 의하면 향후 40년 내 지구 기온이 5-8도 오르고 이는 경작가능농지를 30%나 축소시킬 것이라 한다)이 겹친다면 아무리 높은 가격을 주어도 쌀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교우위론에 의하면 '자유무역'에 참가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은 이익을 얻는다. 그리고 환율의 변동을 통해 무역수지도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계속 심화되는 각국간의 무역수지 불균형, 개도국의 지속적인 금융위기, 국가간 및 일국 내에서의 빈인빈 부익부 현상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론' 의 허구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과잉축적-이윤율 저하로 구조적 위기에 빠진 현재의 세계자본주의에서의 농업과 서비스까지 포함한 '자유무역론'은 미국 등 선진제국과 초국적 자본의 논리일 뿐이고, 이에 입각한 쌀 '추가개방론'은 초국적 곡물 메이저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그래서 이번 농민들의 쌀 추가개방 반대투쟁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도, 전국민의 이해가 걸려있는 식량주권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극히 정당하다.

농민들은 그동안 2002년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 농민들을 포함하여 '30만'이 참가한 농민 시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 최근의 농기계 반납시위 등 숨가쁘게 달려 왔다. 그리고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 5차 WTO 각료회의에서 자신의 온 몸을 내던져 농업과 소농을 지키려 한 이경해 열사가 있다(부침 자료 참조). 이들 모두를 무위로 돌릴 수는 없다. 농민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가 절실한 이유라 하겠다.



- 부침자료: 이경해 열사가 제네바 WTO 정문 앞에서 1달간 단식투쟁을 하면서 뿌린 성명서 -


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나는 56세, 한국에서 온 농민이며, 젊은 시절 희망을 가지고 동료들과 농민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보자 노력하였던, 그러나 결국 실패만을 거듭한 많은 농촌지도자중 하나이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가 끝나고 곧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더 이상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나약하게도 수백년 대대로 살아왔던 우리의 고향 농촌이 큰 파도로 붕괴되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그 큰 파도의 근본과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제 그 결론에 도달함에 여기 제네바 WTO 정문 앞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온몸으로 절규한다.

"누구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인가 너희들 자신인가? 이제 허구적 논리와 외교적 수사로 가득 찬 WTO농업협상은 그만 하라. 농업을 WTO체제에서 제외시켜라!"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고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험한 산간토지를 개간함으로써 스스로 낙농농장을 개척한 젊은 농군이었다. 계곡 아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에 쌀 농사도 지으면서. 나의 소중한 직업 - '농사'를 지으며 다른 동료들과 같이 단체를 만들고 이로써 우리 마을, 우리 지역사회와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새벽부터 달이 뜰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였고 혁신적인 영농기술과 경영을 배우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고 이를 다시 재투자하여 농사를 키워나갔다. 더욱이 영농후계자로서 우리는 식량안보와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역할에 자부심을 가졌다. (지금은 어떠하냐고? 내 낙농 농장은 빚으로 문을 닫았고, 논만 좀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순박하고 작은 가슴들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가져다 줄 충격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한 순간 들끓는 두려움 속에 싸이고 말았다. 우리는 밤잠을 잘 수 없었고 WTO에 와 아더 던켈 사무총장을 만나기로 하여 결정, 여기에 온 적이 있다. 그에게 우리는 우리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게 전하였다. 물론 우리의 요구는 외교적 수사와 함께 일축되었고, 우리의 작고 희미한 목소리로는 우리 앞에 선 '커다란 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중략)


일찍이 농사짓기를 포기한 농민들은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하였고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고자 끝까지 노력했던 농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로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 운이 좋은 사람들은 더 갈 수 있지만 종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는 하룻밤 새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나버린 친구의 낡고 오래된 빈집을 돌아보고 그저 돌아오기만 바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한번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비관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집에 달려간 적이 있었지만 역시 그 부인의 울부짖음 소리만 들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중략)


나는 지금, 인류는 지금 극소수 강대국과 그 대리인인 세계무역기구(WTO)와 이를 돕는 국제기금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상업적 로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반인류적이고 농민말살적인,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인 세계화의 위험에 빠져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즉시 이를 중단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 허구적인 신자유주의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농업을 말살시킬 것이며, 이로써 모든 인류에게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나는 단호히 말하건대, 우루과이라운드는 몇몇 야망에 찬 정치집단들이 다국적 기업과 외눈박이 학자연하는 자들과 동조하여 자기들의 골치 아픈 농업문제를 다른 나라에 떠넘긴 한 판 사기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2004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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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청계산을 갔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러기아빠인 이 놈이 주말이 길다해서, 술 마실려면 언제고 부르라 했더니,

등산을 가자고 전화가 왔더랬다.

 

"임금님귀는 당나귀귀다",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것같다.

이 놈 얘길 들어준 나는,

오늘  좋은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았나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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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슈라이어 공연을 보았다.

지난 주 토요일 구동독 출신 테너의 슈베르트 가곡 독창회를 친구2, 친구부인1과 같이 보았다. 페터 슈라이어는 시인이자 고전음악에 조예가 있는 김정환이 명반 150을 해설해 놓은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테너다. 올해가 70세, 은퇴순회공연이라서 말 그대로 다시 없는 기회여서 약간 호기를 부렸다. 마눌님하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된다 했다가 안된다고 해서 친구들을 불렀다. 당연히 돈을 더 쓰게 되었다. 친구들도 좋아라 했고, 친구 부인도 너무 좋아했다. '모처럼만의 문화생활'... 파바로티처럼 불러제끼는 대중적인 테너와는 다른류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몸을 정교한 악기로 만들어 놓은 테너같았다. 독일리트에 어울리는? 원래 모차르트 전문이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50세가 되어서 불렀다고 한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이라는 표현을 많이 평소에 들었는데 이것이 괴테의 시라는 것을 알았다. 노래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연 관람 뒤 압구정동까지 진출해 '오래된 정원'이라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물론 친구가 술값은 냈다). 새벽 2시에 다른 친구(부인)에게 2만원을 택시비로 받아 집에 왔다. 연말에 기회가 되면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한번 들으러 가 볼까? 그런데 내 카드가 감당해낼지 그게 의문이다. 운동진영으로 보면 민주노총 사태, 비정규직들의 힘겨운 투쟁, 농민들의 쌀투쟁 등 많은 일들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노동조합 연구 프로젝트로 바쁜 와중에도 인생, 가을 등의 단어들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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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텔레콤노동조합 이야기

다음은 하나로텔레콤노동조합 파업관련 어느 신문 기사다.

하나로텔레콤노동조합은 엘지와 외국계 투기자본이 경영권 경합을 벌였을 때 우리사주를 가지고 외국계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기억으로는 일년도 안된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외국계 투기자본이 무지막지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서 파업을 한단다. 기간통신사업자 하나로통신을 초국적자본으로부터 방어한다고...

 

엘지가 경영권을 쥐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믿을  게 따로 있지...

 

초국적자본도 재벌도 아닌 노동자민중적 개입과 통제, 참여연대 노선도 대안연대 노선도 아닌 노동자민중적 길이 절실하다 하겠다.

 

어디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조나 운동단체가 어디 하나로텔레콤노조뿐이던가.

 

잘못을 깨우친 하나로통신노동조합이 제대로 투쟁하길 기대해 본다. 비록 한국노총 산하 사업장이고 노조홈페이지에 외부인이 전혀 접근할 수 없도록 해 놓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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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신문 2005년 10월 26일

 

하나로텔레콤 노동조합이 회사측의 감원 방침에 대응하기 위해 파업을 결의했 다.

하나로텔레콤 노조는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전체 조합원의 94%인 1161명이 투표에 참가해 이 중 85.4%의 노조원이 파업에 찬성 했다고 26일 밝혔다. 파업을 반대한 조합원은 14%에 불과했다.

하나로텔레콤 노조 집행부는 곧 바로 파업에 들어가지 않고 이날 사측에 요구 한 7차 단체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파업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계획이다. 파업 결의를 노사 협상 교섭력을 높이는 카드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파업시기를 집행부에 일임했다"며 "7차 협상이 결 렬되면 쟁의발생 신고 등 합법적인 파업 준비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 다. 이에 대해 회사측 관계자는 "현재 25% 감원 계획을 당분간 유보했다"며 " 노조와 협상을 계속해 다각적인 비용절감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하나로텔레콤은 윤창번 사장 사퇴 이후 전체 임원의 약 50%를 감원한 데 이어 직원 1500명 중 25%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노조가 강력하게 반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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