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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30
    감정노동.(3)
    동치미
  2. 2006/12/20
    법률원 이야기.
    동치미
  3. 2006/12/18
    주말엔 온세상이 눈이 왔었데.
    동치미
  4. 2006/12/15
    이런 날씨엔.(2)
    동치미
  5. 2006/12/15
    따라하기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동치미
  6. 2006/12/12
    거위의 꿈.
    동치미
  7. 2006/12/11
    바닥 찍고 하이킥!!
    동치미
  8. 2006/12/08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노동과 정보통신 2006년 11월 30일 14:40
    동치미
  9. 2006/07/29
    타맘 알 아크할
    동치미
  10. 2006/07/29
    독립영화 - 양성평등
    동치미

감정노동.

아마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쩌면 평생을 감정노동을 하며 살아갈꺼다.

그게 노동이 아니라 사랑 혹은 기쁨이 될 경우(본질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는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마 연애는 감정노동의 최전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아닌 타인과 일체감도 느끼고 싶고 뭐 같이 놀고도 싶고

서로 평생을 떨어져 살던 인간들이 살 부비부비

마음 부비부비 사실 그게 보통 일이겠나 생각해보면.

뭐 연애없이 살수 없다는 숱한 연애추종자들도 대단하신 분들이다. 빠샤!! =D

 

어쨌든 고이고이 연애를 어찌어찌 하고 있는 나로써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분이 나와 새해를 처음 맞이하시는 분이라 모르셨을까.

31일에 뭐할까? 하는 나의 해맑은 표정을 정면으로 압박하시는 한마디.

우리 그날 만나야되?

 

갑자기 심장이 벌컹벌컹 혈압상승 뇌에 산소수치부족 아 그렇구나 하고 저 사람을 이해하고

다시 뭐 여러 교신을 시도, 결국 만나는게 당연한 듯 세뇌를 시켰지만 약간 서운한 건 왜일까ㅡ.ㅡ

 

그러나 나 또한 심각하고 자유롭게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자인지라.

지하철에서 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그 분 내리신 후.

 

뭐 바쁘면 오지 마. 라고 도무지 마음에도 없는 문자를 보내버리고 심하게 우울해하며

아 나는 왜이럴까를 천번쯤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어쩌지. 단순감정노동일까 여튼 그걸 반복하며 정리삼아 글을 쓰고 있다.

역시 연애는 어렵다. 휴우~ =======<

 

결국 우린 내일(31일) 만나고 있을까?

 

큭.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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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원 이야기.

법률원의 아침은 주로 상담전화로 시작한다. 특히나 월요일엔 주말을 꽁꽁 참아두었는지 9시 땡하면 전화가 오곤 하지만, 상담을 할 변호사나 노무사는 잘 없다. 다들 주말늦게까지 서면쓰는 기계로서의 업무(서운해하겠군 크크)에 충실하기 때문에 사실 약간 늦게 출근하는 까닭이다.

그렇게 상담으로 시작하는 곳이라 다양한 상담이 많기도 하다. 헌데 이런 상담들도 내용이 정세를 따라간다. 비정규법안이 통과된다 싶은 분위기면 갑자기 상담이 많아지고, 파견법으로 씨끄러울 때도 그랬고... 뭐 여튼 해고 상담이 많아진다. 요즘 경기법률원 쪽으로는 하루에 세내번정도 정리해고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젠장스럽다는 말밖에.. 사실 내가 상담을 하는게 아니라서 잘은 모른다. 크크...

 

이렇게 상담내용을 듣다보면 간혹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참 많다. '아오~ 저런 내용은 투쟁으로 풀어가야지 왜 법적인 부분으로 풀려고 할까?' 대충 그런 아쉬움이다. 그러고 보면 노동법도 투쟁을 통해 개선되고 만들어가는거지, 어디 웃으며 협상해선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이 돌아온 적이 있던가? 그래서 법의 한계속에 갖혀있는 법률원에서도 투쟁의 절실함을 느끼곤 하는가보다. 투쟁 투쟁이다. 그래도 가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전화나 상담이 꼭 필요한 전화들을 받을 때, 함께할 변호사나 노무사나 상담하는 사람이 모자르는 건 속상하기도 하다.

 

나는 유독 집회나가는걸 참으로 좋아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족이겠거니 늘 자책하며 살고있다. 여튼, 습성이 그러한데 법률원에 오고나서는 연행자 파악하랴 기타 등등의 이유로 집회를 잘 못나가게 되었다. 언젠가 한번 투덜거렸더니, 노동자들과 떨어져있지만 법률원도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곳이라는둥 여기서나 잘하라는 둥 구슬림(?)을 듣고는 얌전하다. 그러하다보니 특히나 이번 민중총궐기때는 좀이 쑤시면서도 연행자가 속속 생기니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얌전히 전화통만 붙들고 있다. 꿈틀 꿈틀~ 결국 많은 동지들이 다치고 연행되었지만... 연행동지가 생기면 경찰서 체크하고 영장청구, 영장실질까지 신경쓰다보면 또 하루가 간다. 하여간 머리 안계신!! 검찰 양반들이 영장을 재청구 하고 있지만 계속 기각되니 우리로써는 오랜만에 기쁜 소식 들어 법률원이 약간 즐거운 적도 있기도 있었다(약간;;). 이왕이면 전국에 있는 동지들이 다 풀리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서울만 기각되는 것이 광주에선 영장실질 들어간 변호사 파견보내 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언제쯤 가진놈들 멋대로 바꿔지는 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까?

오늘아침,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계신 정광훈의장님을 만났다. "이제 곧 헌법은 없어질껴~", "네????!"

"이젠 헌법 필요없잖여~ 자본주의법만 있으면 되지 헌법 뭐해?" 요로코롬 말씀하시며 담배 뻑뻑~  

얼마전엔 우리도 싸파티스타투쟁처럼 해야되~ 이러면서 쉬릭 사라지시더니 ㅋㅋ

나도 따라 담배 뻑뻑이다~ 언제쯤 담배를 뻑뻑 안피고 맛있게 피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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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온세상이 눈이 왔었데.

어렸을 때...

밖에서 뛰어 놀고 있는데 첫눈이 오는거야.

너무 기분좋고 날아갈 듯 이 기뻤어.

그래서 그만 집으로 막 달려와서 펑펑 울기 시작했지.

너무 좋아서.

 

엄마는 나보고 참 이상한 아이라고 했어.

 

내 감수성은 그때부터 이상했나봐 ㅋㅋ

 

어쩄든 결국 이번 주말에 내린 눈을 나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송년회 휴우증으로 내내 누워만 있었으니... 아쉽군.

 

삼실 밖에 있는 공원이 눈으로 쌓여있어서 그나마... 흔적은 있네.

다행이야.

 

나이가들수록 사라져가는 내 감수성...

아 그리워라 감수성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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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씨엔.

어디엔가 몸을 기대고 앉아.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실 난 어디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게 정말 나의 이야기인지.

 

내가 평소에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들을 누군가와 함께 정말 이야기하는지.

 

헷갈릴때가 많다.

 

 

오늘은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앉아.

 

스물스물 내리는 먼지같은 빗방울을 바라보며.

 

끊었던 담배 한가치를  꺼내어 문다.

 

결국 나는 담배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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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기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달에서 온 사람
http://www.quizdiva.net/bt/moon.jpg" alt="달에서 온 사람" style="margin-bottom:5px;"/>
주기를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달과 함께 하는 당신.

당신은 감정 표현력과 육감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풍부한 상상력과 끝이 없는 기억력이 있습니다.

극도의 섬세함을 갖춘 당신은 누구와 어디에 있던지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훌륭한 치유자인 당신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http://heygom.com/blogthings/planet/index.html">너 어느 별에서 왔니?

 

 

사람들이 늘, 너는 외계인이야 -_-+

 

너 어디서 온 인간이야?

 

인간맞아?

 

이따위의 말들을 아주 진지하게 물어보곤 했는데...

 

난 달에서 왔구나 ~~ 아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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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의 꿈.



♪ 거위의 꿈 ♪

 

그 모든 꿈은 현실이 있어야 가능한거야.

 

아 노래 좋다~~

 

블로그 홈에 있는 걸 낼름 주워왔다. 역시 난 뭐든 줍는건 잘해

 

그래도 좋은 걸 줍는 건 아주 기분좋은 일이야 깔깔깔~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현실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나를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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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찍고 하이킥!!

어디까지 내려가야 끝일까?

어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곳이 저 바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사회는 노동자들더러 저 바닥을 콕! 콱! 찍으라고 요구하고 몰아대고 있다.

점점 몰이를 당하면서도 우리는 어쩜 그리도 그 몰이를 안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못하거나

남들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파견법이 통과하고 로드맵이 통과하고 민생현안이 쌓이고 쌓였는데 뭘 그리 요 법안들은 잘도 통과시키는지

어짜피 국회를 희망으로 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말로는 노동자가 희망이오 길이오 진리오 생명이오ㅡ.ㅡ 하지만

여튼 이거이 통과되도 우리는 아직 총파업준비중이다.

 

바닥을 찍어보면 정말 하이킥은 할 수 있을 꺼라고 믿어야지.

 

수배자도 늘고 구속자도 늘고 폭력이 난무하고 개쌩x랄쳐도 우리는 아직 남일인가보다.

 

떨쳐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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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노동과 정보통신 2006년 11월 30일 14:40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 이 글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현장에서 미래를> 12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종간호가 될 예정'이라는 12월호에 글을 준비해달라는 쪽지를 받고는 착잡한 기분으로 한동안 무엇을 쓰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한국을 떠나서 베네수엘라를 거쳐서 현재 캐나다에 머물면서 품어온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먼저 현재 세계를 자극하고 있는 남미와 베네수엘라의 혁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혁명은 그야말로 세계 각국의 활동가 사이에서 관심의 촛점입니다. 제가 만나본 한 캐나다 활동가는 베네수엘라에 다녀온 뒤 ‘혁명의 사우나’에서 몸을 정화시키고 오는 기분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더군요. 베네수엘라에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네수엘라에 펼쳐지는 혁명에 자극받은 남미의 민중들은 현재 대륙 전체를 흔들면서 좌파 도미노 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차베스의 정책을 연구하거나, 최근베네수엘라와 남미 상황에 대한 기사나 글들이 발표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런 연구와 글들은 ‘차베스’와 ‘차베스 정권’에 머물고 말더군요.

그런데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솔직히 그런 연구가 도대체 현재 한국의 민중운동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왜 민중을 입에 달고 사는 운동가들이 베네수엘라를 민중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차베스의 관점에서 보려 하는 걸까? 왜 차베스 정권을 만들기까지의 민중들의 투쟁을 보지 않고, 현재의 차베스 정책에만 관심을 가지는 걸까? 지금 우리에게 차베스가 없어서 운동이 질곡에 빠져 있는 건가? 아니 차베스가 한국에 오면 현재 베네수엘라와 같은 혁명이 가능하기나 한가? 베네수엘라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책들이 한국에서 대안으로 적용가능한 것인가?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 민중적인 시각이 아닐 뿐더러, 베네수엘라 현실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착각일 뿐입니다. 오히려 차베스 정권 그 자체가 기나긴 베네수엘라 민중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베네수엘라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물론 차베스 정권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차베스의 영광이 아니고, 차베스 정권을 만들어 낸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기나긴 투쟁과 운동의 역사였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도 계속 아쉬울 따름입니다) 겉에서 보면 차베스의 정책에 대해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네수엘라 민중들과 운동진영은 차베스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우리’의 말을 듣는 대통령이 나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여당(차베스의 정당)이든 야당(우파 정당)이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혁명을 지지한다" 즉, 민중들이 차베스 정권을 선택한 것이지, 차베스가 민중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들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 민중 운동 진영은 약 20여 년 전부터 빈민들과 농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교육하고,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베네수엘라 혁명에서는 바로 그들 민중이 혁명의 주체 세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활동가’라는 말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민중과 활동가를 구별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이 기존의 좌파적 전통과 달리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 버리고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은 민중공동체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보다는, 기존의 권력을 급속히 해체하고, 민중들을 공동체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이 혁명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활동가와 일반 민중이 구별되지 않는 현재 상태를 낳은 것입니다. 이제 한세대를 넘어가는 역사를 갖는 지역 공동체들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민중을 위한 위대한 혁명가가 되는 꿈을 꿉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지금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혁명가이자 활동가라고 봐도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것은 차베스가 정권 초기 헌법 개정을 할 때 민중들에게 스스로 혁명 헌법을 만들도록 맡길 수 있었던 자신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200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당시, 좌파 활동가들은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를 떠올리며 도망가기 바빴는데, 민중들은 자발적으로 봉기하면서 이 군사 쿠데타를 무력화 시켜버렸습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인식하고, 혁명의 주체가 된 민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차베스는 다음날 "여러분들 민중이 스스로 민중권력임을 입증한 날이었다."고 연설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요. "가난을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난한 자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그 민중들은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민중들은 우파들의 공격에 맞서서 차베스 정권을 사수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차베스 정권의 권력집중이나 그 관료들에 맞선 투쟁을 지금도 계속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혁명 속의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번에는 예전에 차베스 정권과 닮은 꼴로 많이 비교되는 칠레의 아옌데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후 3년 내에 약 10%의 인구가 줄어들었습니다. 최저 약 3천 명에서 3만 명이 암살당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대규모 망명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아옌데가 집권할 당시 1천만 명이었던 칠레 인구가 3년 내에 90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그 100만 명이 모두 활동가는 아니었겠지만, 활동가였거나 최소한 적극적 지지자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로 치자면 현재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니까, 약 500만 명이 활동가거나 혁명의 적극적 지지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바로 그 정도의 두터운 활동가층이 있었기 때문에, 아옌데의 선거 혁명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터운 활동가층이 있었음에도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세력에게 전복당하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우리 상태를 한번 보죠.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가 2006년 6월 현재 76만 명이랍니다. 이 중에 활동가라고 볼 수 있는 건 몇 %정도 될까요?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당원 숫자가 약 8만, 그리고 그 외 다른 정치조직을 다 합치면 엄청나게 뻥튀기 해서 약 1만 명 될까요? 그럼 한번 계산해 봅시다. 이 사람들 중에 겹치는 사람이 없다고 치고, 그 인원을 전부 다 '활동가'로 봐도 겨우 100만 명을 넘지 못 합니다. 전체 인구의 2%가 안 됩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심지어 NL 주사파까지 활동가라고 쳐도 남한의 활동가 숫자는 채 5만 명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전체 인구의 0.1%도 안 됩니다. 그런데 만약 좌파 활동가만 계산한다면?

왜 활동가의 숫자에 그렇게 집착하냐고 따지고 싶은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민중이 주체가 되지 못했던 '혁명'이 어떤 말로를 겪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민중들을 믿지 못해 혁명의 대열에서 민중을 소외시키고,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시킨 채 몇몇 '지도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그 혁명은 끝내 부패한 독재권력으로만 남아 결국 민중들에 의해 다시 한 번 거부당하는 운명을 맞이했었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너무도 깊기만 합니다.

이번에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잘 알고 있는 사실처럼,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의 끝은 레닌과 볼세비키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혁명을 과연 레닌이나 볼세비키의 혁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레닌은 당시 십 수 년을 외국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가 노동자 봉기 소식을 들은 후 러시아로 돌아왔고, 볼세비키는 당시까지도 혁명 진영 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진행 중인 혁명의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볼세비키는 소비에트 내에서 다양한 혁명진영 중 한 그룹에 불과했습니다. ‘노동계급 독재’라는 개념은 레닌이 복귀한 이후 제창된 것이었고, 최종적으로 ‘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으로 그 혁명의 성격이 결정된 것은 레닌과 볼세비키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인 1918년 1월이었습니다.
 
조금 앞으로 돌아가 보지요. 우리가 보통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이야기 할 때 그 출발선으로 1905년 1월 겨울궁전 앞에서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되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떠 올리고, 당시 인민 봉기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찍었던 오데사의 전함 포템킨 수병들의 봉기를 쉽게 떠올립니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 그 시위대열을 이끌었던 것은 볼세비키가 아니었고, 그 피의 학살 직후 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한 것 또한 주로 멘세비키였습니다. 나중에 레닌이 '러시아 혁명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던 포템킨호의 봉기를 이끌었던 수병들이 실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포템킨호에서 노동자위원회 대표로 뽑혔던 마뚜센꼬는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조직 혐의로 오데사에서 체포되어 1907년 사형 당했습니다. 또한 볼세비키와 멘세비키는 당시 오데사의 수병들과 인민들의 봉기를 사수하기 위한 행동을 전혀 조직하지 못 했었습니다.

그럼 더 앞으로 가보기로 하지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기 3년 전 1902년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탁월한 문건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발표했을 당시 러시아 노동자의 60%가 그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 문건이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 ‘레닌’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글을 참 많이들 읽고, 인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 문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 글 자체의 내용보다는 ‘노동자의 60%가 읽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배경을 빼고 나면 그 글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레닌이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혁명을 기다리던 숫한 노동자들이 이미 거기에 존재했기에 그 글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당시 그렇게 준비된 노동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탁월한 글이라고 할지라도 그 글은 그냥 꿈속에 사는 좌파의 의미 없는 선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상황이라면 레닌은 아마도 전혀 다른 글을 썼겠지요.

저는 그 문건이 러시아 혁명의 시작이라고 생각지 않으니, 조금 더 앞으로 가봅시다. 잘 알다시피 레닌의 볼세비키가 소속되어 있던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은 겨우 1898년에 조직된 신생 정당이었으며, 1903년 볼세비키와 멘세비키로 나누어질 때 볼세비키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멘세비키를 누르고 다수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신생 정당이 그 광대한 대륙의 노동계급을 그 단시간 내에 그렇게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건 대단한 오해거나, 승자의 과장된 포장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이전 오랜 기간 러시아 민중운동의 성과를 레닌과 볼세비키가 수확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지금 우리의 상황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 수확할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면, 레닌이 펼쳤던 당시의 전술이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80년대에 가졌던 그 커다란 착각을 지금까지 계속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이후 과연 우리에게 노동계급의 60%가 혁명적 문건을 찾던 시기가 있었던가요? 전체 인구의 10%가 활동가였던 때가 있었던가요? 러시아와 칠레는 그럼에도 실패했습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의 사망 이후 광범위한 대중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촛불시위를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2002년 촛불시위에 도달하기까지 배경이 되었던 다양한 투쟁들과 사건들, 선전과 소통, 대중적 참여는 다 사라지고, 촛불만 남은 모습을 우리는 FTA 반대 투쟁에서 봅니다. 당시 촛불시위의 의미는 '촛불'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현재 민중운동 진영은 오로지 촛불만 기억하고, 그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2002년 이후 아무런 반성 없이 운동 조직의 관료화와 비민주적인 운영, 소수 명망가 중심의 집회문화는 그대로 둔 채 촛불만 켜면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만저만 심한 착각이 아닙니다. 좌파진영에게 있어서 꼭 레닌과 볼세비키가 그런 촛불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혁명적 고양기도 아니고, 20세기초 러시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던져졌던 레닌은 우리의 착각만 크게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됩니다. 80년대 간절히 혁명을 원하던 우리는 그 시기를 레닌의 눈을 통해 20세기 초 러시아의 혁명적 시기라고 착각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민중운동의 성과를 수확하는 시기가 아니라, 아직 젊디 젊은 우리의 운동이 이제 막 던져진 씨앗을 파릇파릇 새싹으로 가꾸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중운동의 결과물을 수확하는 레닌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잡초를 솎아내고 오랜 기간 그 속에서 함께 할 활동가들입니다. 우리는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이 등장하기 이전의 러시아 민중운동을 살펴봐야 합니다. 민중들이 계급정당의 탄생을 요구하게 된 과정을 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레닌의 막판 뒤집기가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민중운동일 것이며, 차베스 이전의 베네수엘라 민중운동 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가졌던 '혁명적' 착각에서 벗어나 왜곡된 운동 진영의 구조를 개편하고, 새롭게 인식한 상황에 따른 전망과 이에 걸맞는 활동가 재생산 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만약 레닌에게 배워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항상 주장했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선전을 바탕으로 조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상황을 한번 돌아보지요. 좌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사회과학 서점과 출판사가 문을 닫고, 민중문화 단체가 하나둘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건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입니다. 과연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요? 현재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다면, 그 '소위' 좌파는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재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문화를 포기했습니다. 이는 '싸움'은 있더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투쟁들은 과거의 축적된 운동을 소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은 현재의 운동뿐만 아니라, 미래의 투쟁까지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노정연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더 착잡합니다.

아직도 '커리큘럼'이라는 게 있는 곳들을 뒤져보면, 80년대 만들어진 학습 과정이 버젓이 버티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만들어진 19세기의 이론으로 21세기를 바꾸겠다고 주장하는 건 한마디로 코메디입니다. 이건 '운동'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꿈속에나 있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그건 활동가가 아니라 몽상가겠지요.

현재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안에서 그 '권력'을 쥐고 벌이는 주사파들의 삽질은 말 그대로 그냥 삽질일 뿐입니다. 그 삽질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조직 내 권력 싸움에 매몰되어서, 민중들로부터 이탈되고, 고립된 그런 삽질 권력다툼에 같이 동참해봐야 남는 건 '먼지구덩이'일 뿐입니다. 제발 이제라도 그 삽질에 동참하는 것을 중단합시다. 이는 그 조직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직 내에서 우리의 활동방향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좌파는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해야 합니다. 다시 학습과 토론 시스템을 세우고, 대중과 조직 내에 좌파적 요구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조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게 안 되니까 그 쪼그마한 운동권내의 권력싸움에 뛰어드는 겁니다. 가장 쉬우며, 가장 빨리 망하는 길이 운동권 내 '권력 잡기 놀이판'을 펼치는 것입니다. 조직 밖의 98%의 민중들을 만나지 않고 2%도 안 되는 조직원 내에서 '권력 잡기' 놀이를 펼치고 거기에 역량을 투여하는 겁니다. 도대체 지금 그 안의 권력투쟁이 왜 중요할까요? 내일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이후 혁명의 진행에 필수적인 상황인가요? 저에게는 오히려 거기에 발목 잡힌 상황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최소한 30년을 준비하는 좌파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자. 이게 기본입니다. 현재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각 조직에서는 헤게모니 싸움에 역량을 소비하기 보다는 2-3년 앞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의견으로 '조직내 조직활동'을 전개해 나갑시다.

제가 한번은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에게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전면적인 경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차베스 정권 이후 무료 의료 등 여러 가지 복지제도가 들어섰지만,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구형 복지국가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겠느냐. 왜 현재 차베스는 전면적인 경제 혁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냐. 만일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차베스는 '포퓰리스트'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 것이다.” 그러자 그 활동가는 “네 말이 다 맞다. 아직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전면적인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을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모든 혁명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버려라. 베네수엘라에는 베네수엘라에 맞는 혁명이 있는 거야. 만일 너희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건 또 다른 혁명이겠지. 우리는 러시아가 경제 체제를 먼저 변경하고, 정치 혁명을 진행하는 것과는 반대로 진행이 되었어. 우리는 먼저 정치 혁명이 일어난 후 경제 혁명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는 거야. 차베스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혁명에 있어서 그의 역할을 썩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혁명은 차베스가 하는 게 아니야. 바로 우리 민중들이 하는 거지."

우리는 이제 우리의 혁명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혁명은 '우리' 활동가의 혁명이 아니고, 민중과 노동계급의 혁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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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가 지나간 생각들 from:The Dispossessed /2006/11/30
NeoScrum님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에 관련된 글. - 우파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돈계산만 잘하면 된다. 주사파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지도자 동지 말씀만 잘 따라가면 되니까. 하지만 좌파는 공부해야 된다. 민중이 믿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인가? from:붉은 그녀처럼 /2006/12/01
NeoScrum님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에 관련된 글 中 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혁명적 고양기도 아니고, 20세기초 러시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던져졌던 레닌은 우리의 착각만 크게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SPAN>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인가? from:붉은 그녀처럼 /2006/12/01
NeoScrum님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에 관련된 글 中 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혁명적 고양기도 아니고, 20세기초 러시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던져졌던 레닌은 우리의 착각만 크게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SPAN>
아직도 기억나는 논쟁(?) from:The Dispossessed /2006/12/01
NeoScrum님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에 관련된 글. 그걸 논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베네수엘라에서 막 캐나다에 왔을 때 연달아 두 번의 논쟁을 치뤘는데, 그 상대가 나중에 알고보니 둘 다 IS 그룹이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베네수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레닌인가? (NeoScrum) from:새벽길의 그냥그저그래2 [사회공공성 강화!] /2006/12/08
민주노총에서 정보통신을 담당했던 최세진 동지(블로그 아이디 NeoScrum)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담아왔습니다. 제 블로그에 자주 들리는 분들에게도 귀담아둘 내용들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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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맘 알 아크할





타맘 알-아크할Tamam Al-Akhal



팔레스타인의 전통Palestinian Heritage, 1984



예루살렘에서From Jerusalem, 1984


칸 유니스 대학살The Massacre of "Khan-Younis", 1963


맷돌Grinding Stone, 1986


점령당한 자파, 나의 집My Occupied Home In Jaffa, 1988

 

올리브랑 오렌지Olives and Oranges, 2004

 

유산Inheritance, 1992



 

http://www.shammout.com/

두 부부 화가의 싸이트로 남편 이스마엘 샤모우트 씨가 얼마 전에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두 부부의 그림을 나란히 퍼오려고 했는데 타맘 씨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ㅠ_ㅜ 다 퍼올 뻔 했음;

남편 분은 다음 기회에, 혹은 싸이트 가서 구경하세요~_~

 

타맘 씨는 1935년에 팔레스타인의 도시 자파(지금은 이스라엘에 완전 귀속)에서 태어나 48년(이스라엘 건국된 해;1차 중동전쟁)에 강제 추방 당해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갑니다. 베이루트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83년에 이스라엘의 베이루트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82년에 침공) 또다시 쿠웨이트로 이주합니다. 92년에는 걸프전쟁으로 인해 다시 독일로 이주했다가 94년 요르단의 암만에 정착한 이후에는 이동이 없는 것 같네요.

 

연도별로 스타일이 많이 변하는데 다 좋네요. 그림에 카피라이트 표시도 없고 싸이트에도 없고 퍼감방지태그도 없고 해서 냅다 퍼왔어효. 참 좋으신 분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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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 양성평등

읏. 생각해보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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