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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8/30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4)
    schua
  2. 2005/07/03
    작업...(6)
    schua
  3. 2005/04/25
    빈곤화와 이주여성(7)
    schua
  4. 2005/04/10
    우열(22)
    schua
  5. 2005/04/03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12)
    schua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일다에 쓴 원고입니다.

일다에 나간 기사는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art_menu=1&art_sub=1&idx=2005081500013&op_idx=&BBS_idx=

로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비자로 들어오는 이주여성이 결국에는 다 같은 처지에 있고

자본주의 남성중심사회에서 이주여성은 여성이 갖는 모든 모순을 극렬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연대하자!

정도로 썼는데 뭐...역시나 시간 없이 급하게 써서 넘 아쉽고 아쉬운 글이 되었고

기사로 나가면서 변하게 됐지요. 그래도 일다 기자님이 이래 저래 기사에 맞게 코멘트를 주셔서 그나마 사람들이 읽기에 거북하지 않은 글이 된 듯도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것은 제목!!!

제가 처음 쓴 제목은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거거든요.

아쉽다. 이 제목.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그리고 연대하기 위해서

주현숙(다큐멘터리 감독)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주여성 관련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관련 주제나 소재로 머리가 꽉 차 있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머리 속은 온통 이주여성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슨 말을 꺼내도 이주여성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주여성과 관련한 사건들은 하나 같이 충격적인 일들이라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당시 최대 고민은 ‘ 이주여성의 어려운 상황을 널리 알리면서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란 느낌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가’(‘이주여성의 특수한 조건을 여성 전반의 조건으로 환원하여 보여줄 것인가?’)였다. 


세뇌를 당하다


그렇게 고민에 푹 빠져있을 때였는데, 우연히 상식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를 하게 되었다. 난 역시나 자연스럽게 전날 만난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60대 남자와 만난지 이틀만 결혼해서 한국에 온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이 많이 때린 이야기, 남편의 거짓말로 임신중절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난 그 사건을 들을 때도 심장이 떨렸지만 말하는 순간에도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난 약간은 흥분한 상태였고 그러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어쩌면 좋을지 답답한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이러는 거 아닌가, “한국에 국제결혼 해 들어오면 맞는다는 거는 다 알고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이라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맞을 줄 알고 결혼을 한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얘진 머릿속에 이러저러한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번쯤은 봤음직한 영상들, 어눌한 말로 남편에게 혹은 남편의 식구들에게 맞은 이야기를 하는 이주여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올랐다. 너무 빨리 영상들이 떠올라 숨이 가빴다. 하지만 각 영상들 속에 이주여성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모습이었고 반복된 모습이 날 울렁거리게 했다. 그 친구에게 난 아주 조그맣게 “맞을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여서 들리지 않았을 거다. 


우린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이야기를 계속 반복 하여 들으면 그것이 처음에 줬던 충격은 어느새 날아가고 무뎌지는 경험, 가끔은 그 무뎌지는 것이 도를 넘어서 처음에는 이상했던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경험. 그런 것을 세뇌라고 해야 하나? 대중매체에서 볼 수 있는 이주여성은 너무나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의 모습, 대중매체의 단편적이고 반복적인 이주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결국 이주여성은 ‘맞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게 만들었고 이제 이주여성은 ‘당연히 맞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나 알고 있는 ‘진실’을 당사자인 이주여성만 모르고 한국에 왔을 리 없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무서운 일이다. 이 세상에 당연히 맞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맞을 것을 알면서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린 그렇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


이제 슬슬 뇌를 세척해야 될 때가 왔다.


이주여성의 본국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은 거대하다. 사회적으로 국제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이 한국에 와서 맞아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본국의 식구들에게 전할 수 없다. 심지어는 남편의 폭력에 맞서 이혼을 해도 본국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살 수도 없다. 주변의 눈이 무서운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가면 맞는 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조금만이라도 이주여성의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다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알아가는 것. 그래야만 다른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에 현재 결혼하는 10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한다. 작년만 해도 25만 명이 결혼을 했는데 그 중 2만 5천이 국제결혼이었다. 국제결혼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이주노동자 또한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는 ‘이주의 여성화’라고 해서 세계적인 추세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든, 관광비자나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으로 2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성산업으로 들어오든, 이주여성을 가장 옥죄고 있는 것은 체류 문제이다. 체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모든 문제가 왜곡되고 모순은 증폭된다.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은 체류와 관련해서 가장 힘든 것은 한국국적을 얻기 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98년 국적법 개정 이후로는 결혼을 해도 2년 동안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2년 동안, 6개월에서 1년씩 체류를 연장해주는 데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남편이 부인이 맘에 안 들면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2년 동안은 남편이 부당한 대우를 해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이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이혼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 더 이상 체류 할 수 없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국인 여성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어려운 판국에 체류신분이 불투명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가 남편의 귀책사유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할 테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혼을 하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 본국에서 조금이라도 살림의 주름을 펴줄 것이라고 기대됐던 딸이, 누나가, 언니가 빈손으로 이혼녀가 되서 돌아온다면 가족들은 외면하거나 주변에 그러한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에 이혼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본국으로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다짐을 한다 쳐도 아이가 있으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아이를 데려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방황하다 다시 남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2차 산업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도 체류문제로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이주여성은 한국에 90년대 초반에 온 분인데, 한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 다니던 공장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불법체류 신분에 경찰서에 갈 수도 없고 사장이 소문내면 나라로 돌려보내겠단 말에 두려워서 아무 대응도 못하고 다음날 조용히 짐을 싸서 공장을 옮겼다고 했다. 그때는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준 5 백만 원만 생각했다고 했다. 미등록 체류 문제로 고통 받기는 여성이나 남성,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주여성은 성폭력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는 그러한 고통을 호소할 곳도 많이 생겼지만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은 남성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그녀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남성이주노동자에 의지해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체류문제와는 다르지만 그녀들은 또 다른 문제로 괴로움을 겪는다. 다름 아닌 가족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길게는 12년 짧게는 몇 년을 지내다 보니 가족 사이에서 그녀들은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가끔씩 그녀들은 내게 하소연한다.  “거기(본국)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쓰고 남는 돈을 보내는 줄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 해서 그 돈을 버는 지 그걸 몰라. 그래서 답답해. 나랑 전화통화만 하면 돈 달라 그래. 누가 결혼해. 누가 아파. 누구 학교 가야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갑갑하다. 그녀들이 그 관계에서 소외당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막막해 온다. 난 가끔 한 마디 거들기도 한다. “언니, 이제 돈 보내지 마요. 그냥 언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요.”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답답해진다. 


우연이었을까? 내가 만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맏이이거나 아니면 어찌 되었든 집안의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가야하는 동생이 줄줄이 있어서 뒤를 돌봐줘야 하는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맞고 살았어요?” 라는 속없는 질문에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 보려고 했지. 내가 언닌데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언니가 되서 이혼하고 그러면 동생들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말이다. 적어도 우리 엄마, 이모 정도의 나이의 여자들이라면 저런 이야기를 했을 법도 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왔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것이 벗어지는 것이었던가? 벗어지는 게 아니라 더 깊고 넓게 번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이는 들고 한국 땅에서는 계속 미등록이고 결국 그녀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가난할 그녀들, 혹은 어떻게든 버텨서 한국국적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그녀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제 빈곤은 여성의 한 특징이란 생각까지 든다.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난 이주여성을 만나면 만날수록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역할의 극렬함을 본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결혼은 매매일 뿐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혹은 다양한 이러저러한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그렇지 결혼은 매매일 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제결혼의 시스템은 그렇다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한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어서, 밭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노모를 모실 사람이 없어서, 그 노골적인 국제결혼을 하게 된 남편들의 이유들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순수하다. 가족을 위해서 작업장의 성폭력도 참아냈을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면 그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하지만 정말 이러한 일이 이주여성들만의 일인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남성중심 사회를 사는 모든 여성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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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오랜만에 청소를 했더니 오래 결렸다.

장장 5시간

.

청소라기 보다는 내다 버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도저히 정리가 안돼서 평소에는 거의 하지 않는 짓을 했다.

 

평소에는 청소를 할라치면 나중에 사용할 텐데 싶어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만 놓는다.

그러다 문득 일년이 지나도록 안쓰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의미해...라고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잘 둔다.

근데 막상 그것이 필요할 때는 어디 있는 지 몰라 또 산다. ㅜㅜ

정말 큰 맘 먹고 갔다 버렸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마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전히 이런 저런 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하나씩 정리하는 중이고...

다큐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보니...기운이 나나 보다.

 

작업을 할 때는 면민해지는 것 같다.

모든 상황을 느끼고 정리하고 촬영하고 이야기 만들고..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하고 또 동시에 집중해야 하는 작업.

여전히 세상에 대한 이해를 잘 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뭔가를 이해했다고 느꼈을 때....

기쁨이다.

 

하지만 매 순간 순간은 여럽다.

지금도 한가지 고민에 빠져 있는데

다큐는 솔직한 작업인 지...아님 내가 순진한 것인 지..

내가 이해 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일 촬영이 있어서 이만 자야 한다.

포스트 쓰는 것을 또 놓칠까봐 우선 써 놓는다.

고민을 정리해서 올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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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화와 이주여성

"빈곤화와 이주여성"....최근의 화두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점점 더 가난하게 만들면서 이주하는 인구 중에 여성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가난은 여성의 삶을 구속했다.

 

왜 그런 상황 말이다...집안이 가난해지면 제일 먼저 여자아이의 학업을 중단하는 상황, 혹은 여자아이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상황....그래서 여성은 가난해지고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는 상황....어쩌면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맏이인 엄마가 동생들을 위해서 학업을 중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리고 나서도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양계장을 했던 것 처럼 말이다.

 

이번 다큐를 보고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엿 같다'(여기서 '아시아'는 가난한 나라의 은유이다. ) ......그리고 여성이주의 특수한 한 형태인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의 삶을 보면서 좀더 보편적인 질문이 모든이의 가슴속에 남길 바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같이 공유했으면 한다.

 



이제 슬슬 기획서를 구체화시켜야 하는데 민망할 정도로 드라마를 못 만들겠다.

다큐 작업이 픽션 작업과 다른 것이 아마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픽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되는 데 (물론 무지 어렵지만 말이다^^;;) 다큐작업은 우선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감동도 있어야 하고 또 그 안에 입장을 들어내는 메시지도 있어야 한다. 휴우~~~~~~~~~

 

요즘 제일 고민이 되는 부분이 드라마이다.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는 대략 정리가 된 것 같은데...그 주제를 어떤 사실을 통해서 들어낼까? 요거이 매우 고민이 된다.

 

걱정도 된다. 국제결혼이란 매우 특수한 소재를 통해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 이럴때 내공이 필요한 데...내가 그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어찌 보면 사람의 생활은 다 특수한 어떤 것인데...그 안에서 보편적인 것을 찾기 위해 우린 통계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기획서를 쓸때 가장 힘든 것이 아직 있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상상하고 소설을 쓰며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 아마도 사전 조사가 모자라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조급하다.

 

잘 할 수 있을까? 자꾸 이런 질문이 머리를 맴돈다. ㅠㅠ

그래서 죽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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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

* 이 글은 동동이님의 [매맞는 여성] 에 관련된 글입니다.

 

라디카 언니가 전화를 했다.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의욕이 떨어진 언니를 보고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언니 목소리는 매우 가라 앉아 있었고 '뭐 하나 물어볼께요'로 말문을 연다. 언니는 가끔 존댓말을 사용한다. 그럴때는 나는 예민해진다. 뭔가 우리 둘의 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언니가 투영하는 것 같아서 긴장하게 된다.

 

언니왈, 언니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건너 건너 아는 젊은 네팔 여자가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21살 정도 됐는데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지 3~4개월 정도 됐고 임신을 한 상태인데 남편이 자꾸 때린다는 거다. 전화를 거는 지금 집을 나왔단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말도 할 줄 모르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단다. 경남 어딘것 같은데 서울에 언니가 있는 곳으로 오고 싶다고 했단다. 언니는 올 수 있겠냐고 하니. 잘 모르겠다고 했단다.

 

나는 빨리 가방이 있는 방으로 가, 가방 안에 있는 자료집을 찾아 이런 저런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그리고 넘 흥분하지 말라고 언니 걱정하지 말고 다시 전화 오면 여기 전화번호 알려주고 서울에 와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이주여성에 관한 다큐를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둘러 보는 중이어서 여성이주관련한 단체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 넘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전화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경남쪽은 비가 오나...비는 피하고 있나? 꼬리에 무는 질문을 억누룰수가 없다.

 



자료조사 때문에 여성관련 인권센터에서 낸 토론회 자료집이며 신문기사들을 보고 있는데 정말 참 다양한 상황에서 맞는 여성들이 있다. 말도 하기 싫다. 맞는 여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고 많은 이들이 연구했고 논문도 수두룩할 거다. 하지만 참 숨막히는 것은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는 거대한 먹구름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자라면서 '여성이기 때문'이란 인식 없이 자랐던 것 같다. 그러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다란 것을 알게 되면서 참 이상했다. 왜 평등하지 않아. 평등한데 당연히 평등한 존재들인데 그런 막막한 답답함이 있었다. 물론 이런 저런 책도 읽으면서 정말 왜 그러한 사회가 됐는지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정말로 여성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저 평등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올드패션이고 그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고 뭔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요즘 점점 무게를 느낀다. 역사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불평등했던 아니 더 구체적으로 존중 받지 못했던 그래서 항상 열등한 존재로 인식됐던 여성들의 역사가 느껴진다. 그래서 끔찍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답답함은 조금씩 가신다)

 

'여성이 열등하다'라는 이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생각들...

난 가끔 르귄의 <빼앗긴 자들>에서 읽은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 대목을 읽을 때 난 소설인 줄도 잊고 줄을 쳤다.

(<빼앗긴 자들>에 대해서는  달군님의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 을 읽어보시길)

 

그는 왜 우주선 안에 여자가 없느냐고 물었고 키모에는 우주 화물선을 움직이는 것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키모에가 물었다. [쉐백 박사님, 그쪽 사회에선 여자들이 남자와 완전히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면서요. 사실입니까?] [여자를 남자 취급하다니, 그건 좋은 장비가 있는데도 써먹지 않는 꼴이겠는데요].....키모에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아뇨. 성적인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당신은, 그들은...., 그러니까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 말입니다][지위라는 건 계급과 같은 건가요?]..........[남자들이 하는 일과 여자들 일 사이에 아무 구분이 없다는 게 정말이냐고요][그야 없지요. 아주 기계적인 데 기반을 두고 노동을 구분하는 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사람은 흥미, 재능, 힘에 따라서 일을 선택하오...., 성별이 무슨 상관인가요?][하지만 남자들이 육체적으로 더 강하잖습니까][그야 종종, 넓은 범위로는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기계가 있는데 그게 뭐 중요한가요? 게다가 기계 없이 삽으로 땅을 파거나 등에 짐을 걸머질 때에도, 덩치 큰 남자들이 더 빠르기는 할지 몰라도 여자들이 더 오래 일하잖아요......, 난 종종 내가 여자들만큼 강인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는걸요]키모에는 충격을 받았는지 공손함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그를 응시했다.[하지만 그런 손실을, 여성적인 것을 다, 우아함이라든가, 그런, 거기다 남성적인 자기 존중을 잃은다면, 아니 당신 일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척할 순 없잖습니까?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그런 지적인 분야에서요? 자신을 계속 그들 수준으로 낮춰줄 순 없잖아요?].............[그다지 그런 척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카모에][물론 저도 고도로 지적인 여성들을 알기는 합니다. 남자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여자들 말입니다]

 

우열이라는 문제는 우라스의 사회 생활에서 중추적인 일임에 분명했다. 키모에가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인간 종의 절반을 열등하게 여겨야 한다면, 여자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존중할까. 그들 역시 남자들을 열등하게 간주해야 하는 걸까?

 

난 정말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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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이번에 시작할 작업은 '여성이주'에 대한 것이다.

여성에 관한 것,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만났던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주노동자이고 그리고 대부분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농후한 사회의 출신들이다 보니 '강고한'(?) 연대의식으로 무장한 나의 카메라를 멈추게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때면 '내가 모잘라서 그런 거다' 하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했지만...힘든 시기를 보낸 것은 확실하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주노동자의 관계 때문이다. 같이 하면 즐겁고 끊임 없이 줘야 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나눌 수 있는 관계, 가끔은 비숫한 고민을 나눌 수도 있고...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관계였다. 그래서 입버릇 처럼 '난 다음에는 꼭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작업을 할거야.'하고 다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는 와중에 이주여성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제작을 부탁하는 전화였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온 한 언니가 임신을 했는데 그 언니의 신원을 보증해줄 남편은 교도소에 있고 배속에 있는 아기의 상태가 안좋다고 그 언니의 상황이 국제결혼한 여성의 한국에서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촬영을 의뢰했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는 와중에 그런 부탁이 오니...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그 언니가 촬영에 찬성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생판 얼굴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자신의 매우 사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그 언니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혹은 그녀의 불행을 좋은 기회다 하면서 촬영을 부탁한 센터를 믿을 수 있는지..그리고 좀더 근복적인 문제인데....그 언니의 고통을 내가 동요 없이 카메라에 담아 낼 수 있는 지....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스위스 갈때 봤던 태국여성이 생각났다. 비행기를 태국에서 갈아탔는데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장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반 이상이 유럽남성과 태국여성 커플이었다. 나이도 대부분 유럽남성은 나이가 많고 태국여성들은 매우 젊거나 혹은 그 남성들 보다는 어려보였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마치 성매매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것 같아 약간은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붙들고 뭐라 해야하는데 하는 마음이었던 듯 하다. 계속 불편했던 정신이 결론을 내렸다. 제국주의 커플...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커다란 성매매 굴레 아래에서 오랫동안 숨죽여 살아왔다는.... 

 

여성이주센터에 계신 분을 만나니 그 분 왈, "이주란 상황에서 가정(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셨다)으로 들어오든 2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3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다르지 않다고 본국을 떠나서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혹은 미래를 위해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라는 것이다. 다른 분이 이야기해주신 국제결혼 실태는 정말 놀라운 것인데....잘못하면 그 분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 지금은 적지 않겠다. 나중에 나의 생각이 정교히 정리되었을 때 올리도록 하겠다.

 

처음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작업을 하려 했을 때는 여성노동자에 중심이 맞춰졌다.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여성이주노동자들도 같이 겪는다는 것 단지 이주라는 것 때문에 한번 더 차별 당하고 억압 당하고 소외당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같은 굴레를 공유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글로 쓰니 진부하네요. ^^;;) 그래서 국제결혼해서 이주해온 여성이주분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넘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성이주센터에 계신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이주라는 것 안에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것을 들어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제결혼은 여성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이주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서글프다.

 

내게 힘들때 위안과 소통으로 편안함을 주었던 이주언니와의 이야기는 어쩌면 사적 다큐가 될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언니와 나의 관계가 나타나는 촬영을 할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가 정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지..성찰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언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물론 작업을 하다 보면 국제결혼을 해서 들어온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조금은 그 언니들과 함께 가정이라는 굴레가 아닌 좀더 넓은 공간에서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놀고 싶어졌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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