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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

그러고보니 내가 가장 오래 버틴 직장이라면 000이야,하고 남편한테 말하고나니 조금, 아니라 왕창 쪽팔렸다.

 

평생을 살고나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 버틴 직업은 000일이었어.라고 말하게 되면 나는 정말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다.

 

그 000이란, 내가 아주 하는 수 없이, 내 똥구녕을 내 손으로 닦아야하는 자존심처럼, 이 정도의 밥벌이는 해야겠기에 붙어있었던 마지노선의 직장이었다.

 

그것보다 0.00000001 mg이라도 밥벌이 이상의 가치, 예를 들어 일하는 재미의 가치라든가, 대의명분의 가치, 내 삶의 의미의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박차 버릴 곳이었다.......고 항상 생각해왔지만, 나는 죄다 버리고 000을, 결국은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보면 000은 나에게 최고의 직장이었다.

 

우선 그곳은 출퇴근이 없다.

나는 나에게 월급주는 상사의 얼굴을 끝끝내 한 번 안 봤다.

그리고 그곳은 나름대로 조정할 수 있는 하루 한두어시간이 근무시간의 전부다.

 

아아,  이것이 내게 있어 최고의 근무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부라니, 정말 가련하게 게으른 인생인 것이다.

 

 

남편의 말이 딱 맞다.

"영접까지 했으면서 약발이 오래 안 가네."

 

영접이야 했을지 모르나, 출퇴근은 노 땡큐, 하루 여덟시간 근무, 오 제발, 노노.

이런 나의 기질을 무어라고 말해야하나.

처음엔 배가 불러 세상 모르고 쉽게 놀고먹으려는 못돼먹은 철딱서니 덜 떨어진 병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를 마구 다그쳐야한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의심에서는 자유롭지 못 하다.

며칠 전 밤 꿈엔, 꿈에서도 이 고민을 막 하다가 뭘 봤는지,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먹고 사는 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남들도 다 그렇다."라고 탄성(?)을 질렀다.

그게 어찌나 생생하던지, 자고 일어나니 밤새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근데 어떻게해서 그 탄성을 지르게 되었는지, 뭘 봤길래 그랬는지가 기억에 비어있으니 깨달음은 무효다.

 

매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그 일에 왜?하고 결국은 묻게 되는 것이다.

이 물음은 원래 답이 궁할 때만 나오게 되어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어느새 십여 년이 풀쩍 지나버린 지금껏, 나는 애초부터 답이 궁한 일만 하였다. 처음 3년은 분명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장이었다는 구실이 있었는데, 그 분명한 목적을 잃어버린 1997년 후, 최소한의 밥벌이만이 내 직장의 준거라며 나는 호시탐탐 그 이상의 비상을 꿈꾸는 양 굴었으나, 사실 밥벌이만큼 명백하고 준엄하고 분명한 목적이 또 무엇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더이상 나를 철이 덜 들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제와서보니 나의 밥벌이라는 준엄하고 분명한 목적이 매일 출근/하루 여덟시간 이상 근무/일년 일해야 얼마 휴가 따위의 조건과의 맞바꿈이더란 말이지.

내용물(무엇을 일하냐)은 조건의 다른 표현이다.

그야말로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의 대물성/분자성/부속성이 공자왈, 맹자왈이 아니라, 내가 그렇다.

물자 노릇, 분자 노릇, 부속의 노릇, 안 해 먹어야지.

 

 

그래도 애비로드가 있었다.

내가 애비로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철마다 추가된다.

그리운 애비로드, 그러나 네게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아.

 

저녁밥을 꿀 발라놓은 듯 달게 먹느라 어느새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줄도 몰랐다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맨밥을 꾸역꾸역 넘겨도 안되고, 빵을 꾸역꾸역 넘겨도 안되어, 오바이트를 할까,하고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가 눈물 콧물만 나오고, 이럴 때 쓰라고 지식검색이 있지 하며, 인터넷에 들어와 생선가시를 쳐보니 별별 것들이 다 올라온다. 날달걀을 삼키라길래 해봤는데도 안됨. 인터넷의 마지막 결론은 병원이었는데, 그건 인터넷 지식검색 안해도 안다. 역시 인터넷은 쓰레기가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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