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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서울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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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집 실험은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서울의 변혁에 대한 나의 사고는 많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꽤 낙관적이었는데, 지금은 분명 비관적이다.
 
여기에는 서울이 점차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보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서울 전반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서울을 바꾼다면 다른 지역을 바꾸는 게 용이하겠지만, 이 전략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오히려 그 역량을 다른 지역에 쏟는 게 낫다. 확실하게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서울에서도 지역에 따라 진보세력이 파열구를 낼 수 있는 곳도 있겠지만, 그 효과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누가 내 생각 좀 다시 바뀌주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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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마포 민중의집…'붉은 서울'을 꿈꾼다 (프레시안, 선명수 기자, 2009-08-28 오전 10:08:07)
[토론회] 한국사회포럼 : 서울에서 '진보 정치' 가능할까?
 
#사례 1. 서울 마포구에는 '성미산 마을'이 있다. 이곳은 공동 육아부터 시작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라디오 방송국 <마포 FM>까지 만들어낸 '풀뿌리 공동체'의 현장이다. 주민들은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위해 유기농 반찬 가게 등의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그 아이들이 좀 더 자라자 대안 학교 성미산 학교를 세웠다. 주말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배우고, 밴드를 만들고, 자전거를 타는 등 작은 축제를 즐긴다. 그들에게 풀뿌리 시민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곧 '생활'이다.
 
#사례 2.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자리한 '민중의 집'은 2008년 7월 이탈리아 민중의 집(casa del popolo)을 본따 세워졌다. 마포구 주민들은 매주 화요일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화요 밥상'에 참여하고, 토요일에는 민중의 집 '쪽방 극장'에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본다. 단돈 1000원으로 인문·사회·어학 강좌를 들을 수도 있다. 동시에 민중의 집은 지역 주민과 함께 대안 시민 세력을 만든다. 민중의 집 사람들은 지역 내 저소득층의 생계비 지원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식당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실태 조사를 하는 등,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서울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경제·문화 권력이 집중된 거대한 공간, 서울. 이곳에서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진보적 도시 운동'은 가능할까. '성미산 마을'과 '민중의 집' 사례는 하나의 도시 운동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서울의 도시 운동과 도시 진보 정치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열렸다. 한국사회포럼의 제1세션으로 열린 이 토론회는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과 서영표 성공회대 교수를 비롯해, 오관영(함께하는시민행동), 최준영(민중의집), 홍기돈(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씨 등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은 "1991년 지방자치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시 행정부의 관료 체제가 독립성을 가지기보다는 중앙정부로부터 권위주의적 하향 통치를 받거나, 자본 집단과의 '성장 연합'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은 또 "현재 서울시의 도시 정치는 '성장 연합'의 권의주의 행정과 그에 저항할 수 있는 시민 세력의 부재로 요약된다"며 "특히 200년 대들어 서울시는 권위주의 행정을 보여주기 사업으로 은폐하고 있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세훈 시장 특유의 엘리트주의로 인해, 서울에서의 시민 참여와 소통이란 서울시의 홍보와 안내를 받는 '시민 고객'이 (서울시 행정에 대해) 점수를 매기거나, 다산콜센터에 연락해 안내를 받는 것으로 제한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나 도시 정치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자율성'"이라고 강조하면서 "진보 운동 세력 역시 중앙 정부와의 대결에 몰두한 채, 서울의 도시 정치가 갖는 의미에 대해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이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홍기돈 의정지원부장은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확대는 요원한 상황"이라며 그 원인으로 △제왕적 단체장 제도와 후견주의 피라미드 △지방의원의 과잉 대표와 부패의 네트워크 △지방 공무원의 성과주의와 정실주의 △토호 세력의 영향력 강화 △일당의 지배 구조와 지역 정책의 부재 △지역 시민단체의 침체를 들었다. 홍 부장은 또 "서울의 지방선거 투표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낮은 등, 서울은 특히 지자체에 있어 취약하다"며 "'중앙=서울'이란 등식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고, 과도한 노동시간 탓에 노동자들이 지역 정치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갖기 어려운 구조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지역 운동', '풀뿌리 시민운동'이 도시 운동의 새로운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운동 진영에게도 '동원의 대상', 혹은 '사회 변혁을 위한 단순 거점'으로 여겨졌던 지역을, 시민들이 생활 정치를 펴는 구체적 정치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오관영 사무처장은 "관료화된 운동에서 벗어나 '시민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운동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며 2008년 촛불 집회를 시민이 주체가 된 생활 정치의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촛불 집회가 "199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대변형 시민운동'의 한계를 보여줬던 계기"라며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지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사회 운동은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전국민적 의제가 된 것은 먹을거리의 문제도 전국적인 투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반면, 시민단체에게는 의제 설정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서영표 성공회대 교수는 1981년 런던의 좌파 정부의 사례를 들며 "운동의 담론부터 상당히 추상적이고 이념 지향적인 한국과 달리, 런던은 주택·대중교통·교육·보건의료·에너지·상하수도 등 일상적 문제와 결부된 투쟁의 공간이었다"며 "이는 우리의 현실에도 일정한 방향타와 지향점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 교수는 "지역 정치는 보수적 권력 관계가 구조화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급진적 정치가 발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조건 또한 제공한다"며 "평화운동, 여성운동, 지역운동 등 1960년대 이후 축적된 풀뿌리 사회운동의 힘이 없었다면 급진적 런던 시의회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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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8 18:14 2009/08/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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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들 해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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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은 아닌데... 
새 학교에 강사자리를 얻긴 했는데, 얼마나 오래 갈까. 일단 빨리 학위를 따는 게 급선무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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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2만여명 새달 해고 위기 (서울, 이경주기자, 2009-06-03  9면)
 
대학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의무전환 시점인 7월을 앞두고 2년 이상 근무한 시간강사를 정규 교원으로 전환하는 문제 때문에 고심에 빠졌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재정 형편상 시간강사의 정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법조항을 들어 시간강사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내다본다.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007년 7월1일 이후 임용된 대학교 시간강사는 2009년 7월1일 이후에는 2년이 경과해 정년을 보장받게 된다. 다만 박사학위 소지자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령 3조에 따라 2년이 지나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현재 전국의 대학교 시간강사 수는 5만 5000명 정도이다. 이들 가운데 박사학위 미만 시간강사는 2만 2000명가량이다. 2만 2000명의 시간강사가 해고 위험에 놓여 있는 셈이다. 4년제 H대학 등은 시간강사 임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이미 2년이 지난 시간강사와는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
 
해고에 따른 사회적 비난·소송 등 각종 문제를 염려하는 대학들은 오는 2학기 교원 계약에 반영할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K대학은 시간강사에게 주당 5시간 이내의 수업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주당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2년이 경과되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고등법원 판례에 따르면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은 강의 준비시간을 포함해 강의 시간의 3배로 산정된다. 2년제인 M대학과 4년제인 G대학은 현재 연속으로 임용할 경우 계약서에 ‘1~12월’로 표기하는 계약 기간을 ‘3~8월, 9~12월’로 나누어 표기할 방침이다. 대학 관계자는 “실제 시간강사는 1년간 연속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4개월간만 일을 하기 때문에 이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정원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의무 전환 시점이 다가오면서 4~5년씩 일을 하던 시간강사가 계약이 안되는 억울한 경우가 생길 것으로 보여 이번 주말부터 대응책 논의에 들어간다.”면서 “노조가 직접 나서 각 대학을 상대로 시간강사의 정규직 전환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7년 10월 전국의 시간강사 가운데 성균관대, 성공회대, 대구대, 영남대, 경북대, 조선대 등 6개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정규직 교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받고 있다며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했으나 패소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임종호 노무사는 “아직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후 2년을 초과해 근무한 시간강사가 정규직으로 신분이 전환될지, 아니면 예외가 인정돼 비정규직보호법의 보호 범위 밖에 방치될지에 대한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은 없다.”면서 “7월 이후에 시간강사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의 대학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노동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정부안(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이달 국회 상정이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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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전국 대학에서 '곡소리'…거리로 쫓겨난 강사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2009-08-20 오후 3:05:01)
고려대 88명, 성공회대 8명 등 시간강사 집단 해고
   
올해로 5년째 고려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를 진행해온 김영곤(61)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고려대 분회장. 그는 지난 11일부터 서울 안암동 고려대 후문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손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점심식사를 위해 오가는 학생과 교직원은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는 왜 1인 시위를 하고 있을까?
 
고려대는 지난 12일, 시간강사 88명을 해촉했다. 4학기(2년) 이상 강의를 한 자, 박사 학위를 소지하지 않은 자, 55세 이하인 자 등이 대상이었다. 해촉 이유는 비정규직보호법. 고려대 교무처 관계자는 "2년 이상 강의를 맡기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을 해촉했다"고 밝혔다. 성공회대도 지난 5월, 고려대와 동일한 기준을 내세워 시간강사 8명을 해촉했다. 성공회대 교무과 관계자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미연에 막고자 재계약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영남대 역시 지난 7월 22일 시간강사 100여 명을 해촉하려다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2학기 강의를 주당 5시간 이내로 줄이는 선으로 조치를 철회했다.
 
이밖에도 수많은 대학에서 비일비재하게 대량해고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수치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규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서울 지역의 경우 국공립대를 빼고 사립대는 거의 대부분 4학기 이상 강의를 한 시간 강사들을 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학교가 개인별로 해촉을 통보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대학교의 시간강사 수는 5만5000명. 이들 가운데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박사 학위 미소지자는 2만2000명 수준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피하려는 학교들이 이들을 대거 길거리로 내쫓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김영곤 분회장은 "비정규보호법은 빌미일 뿐"이라며 "학교에서 시간강사들을 해고할 법적근거는 사실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보호법에는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근로자는 2년이 경과되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시간강사의 강의는 적으면 주 3시간, 많아도 주 9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에 이 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하는 이유는 법정 분쟁에 휩싸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03년 고등법원은 "시간강사의 근로 시간은 강의 시간의 3배로 산정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영남대가 시간 강사와 강의를 주당 5시간 이내로 배당하기로 합의한 것 역시 이 판례를 근거로 한 판단 때문이었다. 주당 5시간이니 세 배를 한다 해도 비정규직보호법에 적용될 수 있는 시간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판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법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고등법원 판례가 된 사건에서는 강사가 1년 단위로 학교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학기별로 계약을 맺는 시간강사와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대학 측은 "우려의 소지가 있다"며 일방적으로 해촉을 강행하고 있는 것.
 
김영곤 분회장은 "학교는 강사들에게 한 학기를 쉬면 다음 학기에 강의를 배정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매 학기마다 강사 해고를 되풀이하는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사는 교권이 없어 학교가 부당하게 해고해도 아무 소리 못 한다"며 "강사가 88명이나 해고됐는데 아무 소리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박규준 사무국장은 "박사 학위를 따지 못하고 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자른다는 것은 연구 인력에 대한 배려도, 자신의 학교 출신 학자에 대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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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의 문제, 해결되어야 한다 (2008/10/11 15:17)
 
시간강사 혹은 외래교수(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 연구 용역을 하면서 공공노조에서 나의 직위를 외래교수로 쓰는 것에 적극 만류하지 못했더니 쪽팔림만 남았다)의 문제는 주기적으로 제기된다. 언론에서도 그렇고, 국회에서도 그렇다. 아마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의원 한 명쯤은 시간강사 문제를 언급할 것임에 틀림 없다. 물론 이와는 무관하게 국회 앞에서는 비정규교수들의 천막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저번 학기에는 강의 하나를 했지만, 이번 학기에는 논문 준비를 한답시고 강의를 맡지 않았다. 하지만 학위 논문을 다음 학기로 미루다 보니 이번 학기에 강의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생계에도 보탬이 되고, 뭐하냐고 물을 때 그럴 듯하게 내밀 수 있는 직함인데 말이지. 이것은 시간강사가 우리들이 보통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별 볼 일 없음을 말해준다. 학위를 딴 뒤에도 몇년간 시간강사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그것만으로 먹고 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보자면 시간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비정규 교수임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했고, 또한 당연히 처우개선 요구는 꺼내지도 못했다. 아직 학위가 없다는 것도 제약요인이지만, 임용 자체가 인맥과 개인적인 요청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처우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더욱이 학위가 있는 이들은 자신이 정규직 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임용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활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아마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이 이러한 개념을 머리 속에 담고 있는 까닭에 비정규 교수노조 활동은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활성화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래서 처우개선 투쟁에 나서는 이들을 대하면 시간강사를 하지 않는 지금에도 미안함이 앞선다.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에 관심이 있다면, 양질의 교육여건을 고민하는 이라면 시간강사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다 아는 사실이라 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비정규직 교수생활만으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 이들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겨레신문 오늘자에 시간강사에 대한 기사가 나온 김에 올해 나왔던 시간강사와 관련된 기사들을 담아놓는다.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많다. 물론 중복되는 얘기도 있지만, 시간강사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잘 말해주는 기사들이다.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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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사, 그들은 왜 절망하는가…서울大만 3명 자살 (경향, 박수정기자, 2008년 03월 08일 03:00:19)
‘강단의 비정규직’ 소외 위험수위…학교측은 나몰라라 
  
“비정규직 교수 문제,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교수신문, 2008년 03월 17일 (월) 09:55:02 박상주 기자)
특집기획_ 위기에 선 시간강사 
 
[논픽션]‘우리의 삶을, 살아서 증명하자’ 어느 시간강사의 고민과 삶 (2008년 03월 17일 (월) 11:11:41 교수신문) 
 
교양 64% 짊어진 교육 중추 … 그래도 삶은 핍진하다 (교수신문, 2008년 03월 17일 (월) 11:05:53 박상주 김봉억 기자)
시간강사 강의부담율 및 인원통계 
  
시간강사 처우개선책 경과 (2008년 03월 17일 (월) 10:53:46 교수신문)
 
‘죽은 대학강사의 사회’… 교원지위를 달라 (2008년 03월 24일 (월) 13:41:12 교수신문, 김동애/ 비정규교수노조·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장)
긴급기고 : 위기의 시간강사,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연구공간 없는 게 제일 불편하죠” (교수신문, 2008년 05월 06일 (화) 14:55:49 김유정 기자)
강사 위한 편의 시설 뭐가 있나 
  
겨우 1천원 인상이라니 … 강사들 더 배고프다 (교수신문, 2008년 05월 06일 (화) 10:13:23 김유정 기자)
전국 30개 대학 시간강사료 현황 조사 
  
‘2만원대’ 지급 대학 수두룩 … 시간강사 이래도 외면하나 (교수신문, 2008년 05월 13일 (화) 12:19:57 김유정 기자)
시간강사료 실태 추가 조사 
  
17대 국회, 시간강사 처우개선 ‘나몰라’ (교수신문, 2008년 05월 13일 (화) 12:16:19 김유정 기자) 
 
[야!한국사회] 시간강사는 없다 (한겨레,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2008-08-13 오후 09:06:45)
  
[오피니언] 대학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해야 할 10가지 이유 (교수신문, 2008년 08월 25일 (월) 17:50:56 강수돌 고려대·경영학)
  
‘토종 박사’ 활용 뒷전으로…“시간강사 문제 악화될 것” (교수신문, 2008년 08월 25일 (월) 16:54:23 김봉억 기자)
MB 고등교육정책, 교수임용에 미치는 영향은 
  
대학교육과 시간강사 (2008년 09월 06일 (토) 18:01:30 대학신문, 변현태 교수(인문대 노어노문학과)) 
  
“시간강사 평균연봉 999만원…보험도 보장 안돼” (경향닷컴, 2008년 09월 15일 14:26:30)
  
시간강사 20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한겨레, 송경화 기자, 2008-10-11 오전 10:18:26)
2~3과목 맡아도 생계 빠듯…교수자리는 요원
대학교육 대부분 담당 불구 ‘4대 보험’에서 제외
  
 

 

2009/03/17 21:53
서울대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평의원회 연구팀이 현행 시간강사제도를 강의교수제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나마 진전된 제안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서울대에서부터 이러한 내용이 법제화되어 시간강사가 최소한 강의교수의 대접을 받게 된다면 다른 대학에도 확산될 것이고, 더욱 개선된 방안이 제출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강읙교수라고 해봐야 연봉제라서 정확하게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에 불과하다. 비정규교수노조에서 아직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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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연봉제 강의교수’ 전환 제안 (대학신문, 2009년 03월 08일 (일) 02:27:44 김아람 기자)
서울대 평의원회 연구팀 연구결과 공개
학부 교양 교과목 61% 담당, 처우는 미흡

 
서울대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평의원회 연구팀(연구팀)이 현행 시간강사제도를 강의교수제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연구팀은 서울대 시간강사 현황과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결과 지난해 시간강사(전임대우 강의교수 포함)는 전임교수 인원의 64% 수준인 1,270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최근 5년간(2003~2007년) 학부에 개설된 교양 교과목의 61%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 교양 교과목의 경우 시간강사가 담당한 강좌 수가 전임 교수가 담당한 강좌 수의 2배에 해당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시간강사가 대학교육에서 기여하는 정도는 큰 데 비해 이들이 받는 처우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1977년 교육법이 개정된 뒤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시간강사들은 적은 액수의 강사료, 불안정한 강의수급, 부족한 연구공간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팀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계약제 강의교수제의 제도화를 적극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강의교수제를 통해 현행 시간강사들에게 교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이들을 존중해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에 참여한 김인걸 교수(국사학과)는 “서울대 시간강사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안을 제언해보자는 것이 이 연구의 취지”라며 “본 연구가 서울대 시간강사제도의 비합리성을 개선하고 교육을 질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인걸 교수를 책임자로 한 이 연구팀에는 변현태 교수(노어노문학과), 배은경 교수(사회학과), 우희종 교수(수의학과) 등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교무처, 기초교육원, 중앙전산원 등의 협조를 받아 통계자료를 분석했으며 교수, 시간강사, 행정직원, 조교 등과 집단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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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원회 연구팀 시간강사제도 개선안 제안 (대학신문, 2009년 03월 07일 (토) 23:16:28 김아람 기자
연봉제, 안정적인 강의기간을 보장하는 강의교수제 도입해야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교원지위 확보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김인걸 교수(국사학과)를 책임자로 한 평의원회 연구팀(연구팀)이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연구팀은 연구결과보고서에서 서울대 시간강사의 현황과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 등을 분석하고 강의교수제 도입을 제언했다.
 
◇서울대 현황은?=  『2008년 서울대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강의를 담당했던 시간강사(전임대우 강의교수 포함)는 1,270명이다. 이는 1,984명인 전임급 교수(기금교수 포함)와 비교했을 때 전임급 교수 인원의 약 64%에 해당하는 수치로, 117.5%에 달했던 2002년에 비하면 많이 낮아진 수치다.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간강사가 지난 5년간(2003~2007) 개설된 학부 교과목 전체의 52.5%, 대학원 교과목 전체의 15%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강사에 대한 수요는 전공과목보다 교양과목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개설된 전공과목의 경우(대학원 포함) 약 20~30% 정도만 시간강사가 담당한 데 비해 교양과목은 강좌 수의 45%를 시간강사에게 의존했다. 전공과목의 경우 전임교수가 연구년 등으로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될 때 시간강사가 해당 학기만 강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에 단대별 특징도 나타났다. 시간강사 수가 전임교수 수보다 많은 단대는 음대, 미대, 인문대, 사범대, 생활대 순으로 음대는 전임 대비 시간강사 비율이 무려 550%에 달했다. 연구팀은 “예체능계열의 경우 서울대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것이 레슨 등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수치가 높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부 교양과목은 일반교양수업을 많이 개설하는 인문대, 사회대, 음대, 미대, 사범대에서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비중이 높았다. 김인걸 교수는 “단대마다 시간강사 의존도에 큰 차이를 보여 시간강사 문제가 대학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한다”며 “이것이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고 말했다.
 
◇시간강사들, 못살겠다!= 시간강사들이 토로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시간강사가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행 고등교육법 14조에 따르면 시간강사는 교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하우영 위원장은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가 인정돼야 시간강사도 안정된 신분을 보장받으며 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고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원 일부는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획득을 요구하며 지난 2007년 9월부터 현재까지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 지나치게 낮은 강사료도 문제다. 국고에서 나오는 국립대 시간강사료 수준은 지난해 전업시간강사가 시간당 3만5천원, 비전업강사가 2만7천원이었다. 전업시간강사의 경우 주당 3시간씩 세 과목을 강의 할 때 보조수당을 포함해 월 135만원 정도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는 2008년도 최저생계비가 대략 월 126만원임을 고려해볼 때 낮은 액수이다.
 
김용태 강사(국사학과)는 “시간강사의 안정적인 교원지위가 보장되지 않고 시간당 강사료를 지급받다 보니 수업 질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꺾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2~3개의 강의를 안정적으로 수급받고 방학 때도 보수를 받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강사들이 강의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대안은?= 시간강사들이 겪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연구팀은 계약제 강의교수제로의 일원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강의교수제란 시간강사의 안정적인 강의기간을 보장하고 보수를 연봉제로 지급하는 제도로 현재 서울대에는 전임대우 강의교수 39명이 있다. 김남두 교수(철학과)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좋은 대안”이라며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강의교수제와 같은 제안이 실현되면 시간강사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하우영 위원장은 “연구팀의 개선안이 현행 시간강사제도에 비해 한걸음 전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처우개선에만 매달리다 보면 교원지위의 법적 보장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묻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현태 교수(노어노문학과) 역시 “시간강사 문제의 핵심은 시간강사가 교원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배제돼 있다는 것”이라며 “시간강사가 당당한 교원으로 인정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의식 아래 지난해 8월 자유선진당의 이상민 의원이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이상민 의원실은 “국민과 국회의원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시간강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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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3 02:21 2009/08/2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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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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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18 03:54
한겨레의 이 기획이 2주에 한 차례씩 연재된다면 이 서문적인 글에서 언급된 이들만 대충 해도 올 한해 내내 기사가 나올 것 같다. 그 동안 새롭게 등장한 진보 지식인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물론 기사가 충실하다는 전제하에서이지만...
 
그런데 소개된다는 이들 중에 내가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지난 10여년간 정말 공부를 하지 않은 게 틀림 없다. 이들의 이론을 아는 게 나에게, 세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의욕이 솟는다. 
 
아직은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내가 아직은 젊구나 하면서 스스로 자위하게 된다. 물론 내 본업이라도 충실히 한 다음에 할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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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다시 쓰는 ‘미래’ (한겨레,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09-01-16 오후 07:02:55)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2주에 한 차례씩 연재될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기획에 소개할 이론가를 선정하고 기획하는 과정에 도서출판 길과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 등 국내 소장학자들이 도움을 주었다. 또 이들은 이 시리즈의 주요 집필자로 나서 진보 사상의 지도를 그린다.
 
① 연재를 시작하며
 
20세기 세계 진보 사상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벽두의 진보 사상은 확실하지만 낡은 답변을 되풀이하기보다,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며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함한 근대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 마르크스주의 이후 어떤 진보 사상인가?
20세기 세계 진보 사상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들머리 진보 사상은 역사적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이냐란 화두와 마주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진보 사상은 근본적으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다룰 지식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더는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유일한 지배 원리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 누구도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일한 ‘역사의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극단적 폭력을 수반하는 고도의 과학기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포함한 근대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모두 확실하지만 낡은 답변을 되풀이하기보다,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 새로운 진보 사상의 주역은 누구인가?
우리가 이번 기획에서 다룰 진보 지식인들은 20세기 후반기를 풍미했던 진보 사상의 대가들을 잇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경우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을 계승하고 있는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장뤼크 낭시, 브뤼노 라투르,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이번 기획의 주인공들이다. 바디우와 발리바르,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지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사상의 성좌에 새겨 넣고 있다면, 낭시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마르크스,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의 유산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여 ‘무위(無爲)의 공동체’라는 독자적인 사상 경지를 이룩했다. 라투르와 스티글레르는 각각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인간적 삶의 형식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지, 또 비자본주의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길은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와 카를오토 아펠 이후 독일 비판이론의 전통을 계승한 악셀 호네트와 한스 요아스가 이번 기획의 핵심 인물들이다. 그리고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비판이론을 독창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사상 지평을 열어가는 크리스토프 멩케도 주요 인물로 소개될 것이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종말>이란 책으로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엘마 알트파터나 <히스테리>로 독창적인 여성 연구의 새 차원을 보여준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도 <한겨레> 독자들을 만날 것이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진보 지식인들 소개다.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배출한 이후 20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는 탁월한 진보 지식인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세계 사상의 흐름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다소 때 이른 전망을 낳고 있다. 그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번 기획에서 다룰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 잔니 바티모는 이미 독자적인 사상 영역을 개척한 21세기 사상의 선구자들이다.
 
영·미권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 프레드릭 제임슨,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진보 이론의 최전선에서 작업하는 지식인들이 이번 연재 기획의 중추를 이룰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현대 문화연구 창시자의 한 사람인 스튜어트 홀이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와 급진 민주주의의 제창자로 잘 알려진 샹탈 무페가 포함돼 있다. 또 탈근대 사회의 모순적인 삶의 양상들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게 될 이론가들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가장 주목받는 세계체계론 연구자인 조반니 아리기와 생명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내재한 정치철학적 함의를 추적하고 있는 니콜라스 로즈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식인들이다. ‘정보시대 3부작’으로 잘 알려진 도시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와 비판지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하비의 작업에서도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인물들은 이른바 ‘북쪽’, 곧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진보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 이래 우리가 깨닫게 되었듯, 21세기 진보사상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는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주의의 청산이다. 우리가 서양 바깥의 진보 지식인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중에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인도의 지식인들이다. ‘현존하는 인도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라나지트 구하는 소수 전문가들 외에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지하고 가난한 대중을 지칭하는 서발턴(subaltern)에 관한 연구로 20세기 후반 진보 사상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 놓은 역사학자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에서 영감을 얻은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 연구에 비판적으로 동조하면서 탈식민주의 여성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제창한 ‘센코노믹스’도 21세기 진보 사상의 중요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와 인접한 동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돼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대안을 구상하는지 살펴볼 것이며, 중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인 왕후이가 제창하는 ‘아래로부터의’ 동아시아 연대에 관한 구상을 들을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좀더 많은 인물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서구 형이상학의 대안을 제시하는 해방 철학의 대가 엔리케 두셀은 우리에게 남아메리카 진보 사상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 또다른 진보의 세기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도 카지노 자본주의의 거대한 도박 노름에 민중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마치 시곗바늘을 30여년 전으로 되돌린 듯 공안통치의 칼날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정권의 기세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반동의 역풍이 거셀수록 진보의 나무는 조금씩 희망의 싹을 틔울 것이다. 우리가 독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진보의 세기가 시작될 수 있고 또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의 씨앗을 뿌리려고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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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가 쫓아낸 ‘진리’를 다시 불러오다
(한겨레, 서용순/세종대 초빙교수·철학, 2009-01-30 오후 09:49:14)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②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
 
알랭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 라바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1968년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식인이었고, 1970년대에는 마오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며 옛 스승이었던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70년대 말 마오주의 운동의 쇠퇴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집합이론과 여러 탈근대 철학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1988년 <존재와 사건>을 집필했다. 이는 새로운 진리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철학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였다. 이후 <철학을 위한 선언> <윤리학> <조건들> <메타정치 소론> 등에 이어 2005년에는 <존재와 사건>의 2권인 <세계의 논리>를 출간한다. 이 밖에도 바디우는 현실의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는 <정황>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고, 옛 동지들과 결성한 ‘정치 조직’(Organisation Politique)을 통해 ‘당 없는 정치’를 기치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펴고 있다. 

■ 사르트르·알튀세르·마오를 거쳐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요일 저녁. 이미 일흔을 넘긴 노교수의 강의가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쥘 페리 대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에서부터 현직 교수, 교사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젊은 학생들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강의실을 채우고 있다. 시간이 되자 백발의 노교수가 천천히 강의실로 들어온다. 곧이어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200여명의 청중은 정적 속에서 강의에 집중한다.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이 강의의 주인공은 알랭 바디우(72)라는 프랑스 철학자다.
 
바디우는 그의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견줘 국내에서 그다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대표작인 <존재와 사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이래 끊임없이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프랑스 철학의 많은 거장들이 타계한 지금, 바디우는 오늘날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력은 복잡다단하다. 장폴 사르트르를 추종하던 젊은이였던 그는 파리고등사범학교 시절 루이 알튀세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 1968년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70년대 마오주의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80년대에 들어와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유를 추구하게 된다. 그 결실이 바로 <존재와 사건>이다. 이 저작에서 바디우는 집합이론을 통하여 존재론을 재조명하고, 퇴장당한 것으로 간주된 ‘진리’를 다시 철학 속으로 끌어들인다.
 
■ 진리의 부활과 철학의 복권
프랑스를 중심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에 대한 비판은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른바 탈근대 철학은 전통 철학이 추구했던 진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허구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진리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모든 비(非)진리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같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비판이었다. 탈근대 철학은 이를 통하여 철학이 더는 진리를 욕망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철학은 이제 진리 없는 상대주의의 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추구했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떤 진리도, 어떤 유토피아도 사유할 수 없다는 우울한 승인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이던 80년대 후반, 바디우는 그에 반대하여 철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야심찬 시도를 감행한다.
 
이는 무척 독특하고 흥미로운 시도이다. 바디우는 철학을 복권시키기 위해 기존의 철학을 넘어선다. 그의 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진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에게 진리는 여러 영역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진리란 복수(複數)의 절차 속에서 생산되는 복수의 진리이다. 그러한 진리는 예술·정치·과학·사랑 같은 철학 외부의 영역에서 생산된다. 철학의 할일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생산된 진리를 ‘사유’하는 것이다.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탈근대 철학에 맞서 바디우는 ‘진리는 있다’고 응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탈근대 철학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진지한 문제제기를 수용하는 가운데 전통 철학의 진리와는 전혀 다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는 복수로 존재하며, 항상 불투명한 성격을 지닌 ‘사건’으로부터 출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는 과거의 철학이 말하고 있는 진리가 아닌 혁신된 진리이다.
 
이렇게 바디우는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완전히 거부하고 진리를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철학을 구원하고자 한다. 이전의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철학은 진리의 생산을 어느 한 영역에 가두었고, 그것을 전능한 것으로 간주하여 다른 진리들을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진리는 폭압적인 형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맹종하는 실증적 철학과 정치적 진리를 특권화하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이렇게 어느 특권적 영역에만 갇혀 있는 철학을 원하지 않는다. 정치를 특권화하는 철학은 예술·과학·사랑 같은 영역을 모두 정치에 종속시키고, 과학을 특권화하는 철학은 다른 영역을 도외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는 철학이다.
 
바디우는 그렇게 혁신된 철학을 통해 진리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진리에 대한 사유는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에 대한 사유이고, 사건 이후에 생산된 ‘진리’에 대한 사유이며, 그 진리에 충실한 ‘주체’들의 실천에 대한 사유이다. 그는 사뮈엘 베케트의 산문과, 파울 첼란, 페소아의 시학에 집중하고, 현대 집합이론의 혁신에 천착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정치에 대한 그의 사유이다.
 
■ 오늘의 현실과 19세기의 유사성
그는 오늘의 현실을 19세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광범위한 빈곤층의 증가, 젊은이들의 허무주의, 불평등의 확대 등은 모두 19세기를 지배했던 현상들이다. 그에 따르면 ‘파리 코뮌’이라는 19세기의 마지막 정치적 사건 이후 혁명의 기운은 쇠퇴하였고, 다시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적 세계질서가 위기를 맞이하기까지 50년에 가까운 휴지기가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확실히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68년 혁명 이후 모든 해방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이 노동을 지배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 아니다. 그 관계는 분명 역전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공산주의는 끝났고, 우리에게 실현해야 할 해방의 가설이 더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당장 무엇인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의 가설을 일신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보편적인 것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다
바디우가 말하는 평등은 결코 객관적인 평등, 실현해야 할 목표로서의 평등이 아니다. 임금이나 기회의 평등, 계약에서의 평등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평등하다’는 선언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지배관계를 실질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평등의 선언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해방을 포기하고 주어진 지배질서에 투항하는 일일 뿐이다. 모든 의미 있는 정치적 선언은 항상 평등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이를 통해 보편적 정치로 나아간다. ‘역전의 정치’의 동력은 항상 이러한 평등의 선언에 있는 것이다.
 
바디우에 따르면 이러한 해방적 정치의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용기’이다. 분명 오늘날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최근 세계를 압도하는 경제 위기의 확산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 공포라는 괴물은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강박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러한 인내를 통해 우리는 용기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해방을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용기인 것이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는 지켜내야 하는 진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무명용사들은 어디에나 있다. 바디우는 말한다. 당신이 두 번 믿지 않을 것을 사랑하라고. 그리하여 진리 속에서 영원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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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민주주의’ 이뤘다는 주장은 반민주적이다 (한겨레, 최원/시카고 로욜라대 박사과정 수료, 2009-02-13 오후 07:02:29)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③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1942년 프랑스 아발롱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를 사사하고, 네덜란드 네이메헌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나, 1981년 당의 보수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축출된다. 현재 파리 10대학 명예교수이자 미국 어바인대 교수다. 이데올로기, 국가, 시민권 문제 등을 이론화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1980년대부터 대중들의 교통양식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를 적극 수용했다. 이를 기반으로 해방과 변혁이라는 근대 정치의 두 가지 상에 동일성들과 경계들의 폭력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인륜(civility)의 정치를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민주주의와 독재> <역사유물론 연구>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대중들의 공포> 등이 있다.
모든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반민주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고,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경계들’을 갖게 된다. ‘국민경계’는 그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유효한 조건이지만, 국민이 아닌 자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고 민주주의를 무효로 만드는 야누스적 성격을 갖는다. 
 

지금 세계 곳곳에는 때아닌 만리장성들이 건설되고 있다. 중동에는 본디 테러리스트를 막을 목적으로 세웠지만,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오는 길을 차단하는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또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주변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려는 이주자들을 막기 위한 감시초소 장벽이 있고, 아메리카 쪽으로 눈을 돌리면 미국-멕시코 국경에 세워진 9척 높이의 일명 ‘죽음의 장벽’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상품들이 자유롭게 유통된다고 해서,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벽을 넘다 죽어갔다. 이렇게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죽음의 장벽’ 멕시코 쪽 벽면에 주민들은 여러 벽화를 그려 놓았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는 경계를 침범하지 않았다. 경계가 우리를 침범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당면한 삶의 필요에 따라 이동한 것뿐인데 이를 막아서는 경계야말로 부당한 것 아니냐는 항의다. 그러나 이 문구는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도처에 경계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경계는 이제 국경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복제되고 증식되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를 침범해 오고 있는 중”이다. 이주자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이 제도화됨에 따라, 사회는 일정한 경계선 안에서 동질성을 누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점점 더 다양한 경계선들에 의해 분할된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외부 식민지들이 공식적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시대에 중심국들의 국경 안에는 새로운 식민지들이 은밀하게 건설되고 있으며, 제국주의 국가의 옛 경계를 방어하던 비민주적 제도와 통치술도 모습을 바꿔 중심 안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도시 내 게토나 도시 외곽 빈민촌의 형식을 취하는 이러한 내부 식민지들은 세계 중심국들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속도로 같은 장애물이 그곳을 에워쌈으로써 분리(segregation)의 장벽을 이루고, 경찰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처럼 이 내적 경계를 방어한다.
  
경계들의 이러한 폭발적 증식 속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것의 소멸이다. 어떤 이가 피부색을 이유로 검문당하고 강제송환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할 때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곳곳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견줄 만한 제도적 인종주의가 출현하고, 과거 민주주의의 상대적 성과들이 소실된다. 이른바 “내국인들”은 초과착취되는 이주자들의 상황에 스스로 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권리의 현저한 후퇴를 감내하거나, 자신의 경제적 곤궁에 대한 불만을 이주자들에 대한 증오로 투사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휩쓸린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반드시 참조해야 할 철학자가 에티엔 발리바르다. 발리바르는 1960년대부터 그의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스피노자의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발본적 개조를 도모해온 철학자다. 특히 80~9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와 그 난점을 분석하는 한편, 이를 근대 국가의 민족형태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연관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경계들”에 대한 독창적인 논의를 생산해왔다.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치체제로 정의하지 못한 채 <정치론>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엄밀한 사고의 결과다. 민주주의란 본디 하나의 정치체제에 주어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정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치체제를 ‘민주화’하는 대중의 실천일 따름이다. 이러한 실천은 원칙적으로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항상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으로 재개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실존하는 모든 정치체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민주화되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 모든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반민주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경계들”을 갖게 된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대적 경계가 바로 국민 경계에 놓여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최대한 달성되었다고 하는 서구의 “복지국가들”조차 국민 경계 안에서 다소간 평등한 사회권을 보장하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곧 국민 경계는 그 안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유효한 조건이었지만, 동시에 국민 성원이 아닌 자들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고 그 너머에서 민주주의를 무효로 만드는 야누스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치 멕시코 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가 미국 쪽에서는 한 점도 발견되지 않듯이 말이다.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민 경계가 가졌던 이러한 전략적 기능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이른바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것도 경계의 위기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자 자본과 국가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역량도 그만큼 위축되었고, 정치는 초국가적 기술관료들이나 국제법 전문가들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경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곧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경계는 복잡성을 더해가면서 인구통제와 민주주의의 제한을 위한 수단으로 그 반민주적 성격을 노골화하고 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경계들의 민주화”를 제안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경계 내에서의 민주주의를 고민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경계들의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는 경계들을 단순히 철거하고 세계공동체의 단일한 시민권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경계들의 제거는 더 많은 폭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문제는 경계들을 이루는 반민주적 제도들을 변혁하고 경계들의 내부와 외부가 민주적으로 교통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과 실천을 정치의 중심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다. 상이한 정치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거주하는 바로 그곳에서 더는 “시민”과 “이방인”(또는 “적”)이 아닌,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서로-시민들(co-citizens)로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정치가 발명되어야 한다.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한 정치는 세계정치이며, 시민권은 국민들을 관통하는 관(貫)국가적(transnational) 수준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주자들은 “우리”와 더불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을 재개할 동료 능동 시민들로 인정되어야 한다.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이 우리에게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민주적 정치의 새로운 지형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1342.html
우리는 ‘과두적 우파국가’에서 살고 있다 (한겨레, 양창렬/파리1대학 박사과정, 2009-02-27 오후 06:51:18)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④ 자크 랑시에르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4044.html
진짜 정치는 결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한겨레, 박준상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 2009-03-13 오후 07:29:46)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⑤ 장뤼크 낭시 Jean-Luc Nancy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6563.html
은행강도 출신 철학자의 소비욕망 탈출전략 (한겨레, 이지훈/한국해양대 강사, 2009-03-27 오후 06:54:31)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⑥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Bernard Stiegler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9176.html
혼돈의 시대 ‘정치생태학’에서 해법을 찾다 (한겨레, 김환석/국민대 교수, 2009-04-10 오후 07:45:18)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⑦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1539.html
“나를, 우리를 인정하라”…투쟁은 계속된다 (한겨레, 문성훈/서울여대 교수, 2009-04-24 오후 07:01:08)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⑧ 악셀 호네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5215.html
창조적 분투로 역사의 진보에 개입하라 (한겨레,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09-05-15 오후 10:38:16)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⑨ 한스 요아스 Hans Joas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7692.html
‘일반’은 없다, 미적으로 타당한 개인이 있을 뿐 (한겨레, 김동규/연세대 강사, 2009-05-29 오후 07:21:17)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⑩ 크리스토프 멩케 Christoph Menke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0164.html
‘연대의 경제’로 위기의 자본주의 넘어서라 (한겨레, 임운택/계명대 교수, 2009-06-12 오후 07:28:17)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⑪ 엘마 알트파터 Elmar Altvater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2600.html
“히스테리…남성언어가 파괴한 여성자아의 흔적” (한겨레, 이현재/서울시립대 연구교수, 2009-06-26 오후 06:56:39)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⑫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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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생명’의 영속화에 던지는 경고 (한겨레, 박진우/연세대 연구교수, 2009-07-10 오후 07:01:19)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⑬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간행된 발터 베냐민의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를 지낸 뒤 베로나대학과 유럽·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현재 베네치아건축대의 철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이후 <아우슈비츠에서 남은 것>(1998), <예외 상태>(2002), <군림과 영광>(2007)을 거치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를 죽여도 어떤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고대 로마법 용어였다. 아감벤은 이 용어를 통해 정치를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현존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 세계 전모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감벤의 저술 활동, 특히 그의 주저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권이 훨씬 넘는 저술들이 이미 세상이 나와 있으며, 한국 독자들도 지난 2년 사이에 두 권의 번역서를 접한 상황에서 그의 사유를 한층 상세히 재검토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호모 사케르>라는 책, 그리고 이 책에 이르는 과정과 이후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동시대의 모든 사유와 고민들을 앞선 세기와는 단절된 형태로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는 아감벤의 문제의식에 비춰 본다면, 또한 이를 통해 20세기가 결코 풀지 못한 과제들(여기에는 정치적 좌우의 대립, 계급과 인종의 대립, 법과 민주주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과 같은 핵심적인 정치적 범주들이 포함된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모색하는 과제와 직접 마주친다면, <호모 사케르>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아감벤은 원래 로마대학 출신의 법학도였다. 학창시절부터 이미 파졸리니, 모라비아 등이 주도한 지식인 서클에 적극 참여하면서 문학과 미학, 철학 분야로 사유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1970년대에 그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 세 명의 사상가와 본격적으로 마주쳤다. 아비 바르부르크와 발터 베냐민, 마르틴 하이데거는 초기 아감벤의 문학적·미학적 사유뿐 아니라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정치철학적 사유의 핵심적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1978년에 이탈리아어로 간행된 <발터 베냐민 전집>의 편집자로서 그의 이름이 유럽 지성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이래, 그가 직접 수집한 청년기 베냐민의 미발굴 서한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루어진 베냐민 사상 전체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그에 따르면 베냐민 사상의 진면목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적 해석과 유대 신비주의적 해석의 자장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성 학계와의 갈등은 그의 명성을 유럽의 좁은 문학 연구자 서클의 범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이후 데리다·들뢰즈·낭시·바디우 등 프랑스 지식계의 지도자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당시 프랑스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사유를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아동기와 역사>에서 <산문의 이념>을 거쳐 <언어의 죽음>에 이르는 저술들은 이런 지적 여정과 편력을 반영한 중간 결과물이자, 동시에 다음 단계의 정치적 성찰을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1995년에 처음 간행된 <호모 사케르>는 같은 이름으로 간행된 연작의 첫째 권에 해당하면서, 그의 사유의 전모를 밝히는 데서 반드시 거쳐야 할 대표작이다. 사회주의권 붕괴가 결코 ‘역사의 종언’일 수 없음을 증명했던 유고 내전의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정치를 본격적인 사유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제기하였다. <호모 사케르>라는 이 낯선 제목은 원래 고대 로마법 전통 속에서 범죄자로 판정받은 자를 뜻하는데, 성스러운 자이자 저주받은 자여서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처벌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저자는 이 용어를 통해 서양 정치철학의 근원적 패러다임을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 이래의 정치이론이 오랫동안 주권자와 신민의 관계, 그리고 주권자와 법의 관계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규정해 왔던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통해 그는 정치를 궁극적으로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니까 주권 권력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주권 속에 포함되는 이 모순적 존재, 즉 ‘벌거벗은 생명’의 존재는 법·주권·시민·인권처럼 오랫동안 서양 정치철학의 핵심 범주로 간주되었던 용어들을 의문에 부치게 만든다. 이 용어들은 결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정치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재구성되어야 할 사유의 재료들인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처음 간행될 당시에는 아감벤의 필생의 사유가 응축된 ‘주저’로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가 새롭게 시도한 정치철학적 사유의 단초들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제기하는 사유 실험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 나아가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이 사회적 이슈로 변모할 때, <호모 사케르>가 제시했던 새로운 사유 모델은 한 차례 대중들의 충분한 시선을 끌 수 있었다.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의미망 속에서 의미가 점차 모호해져 가던 기억·증언·재현 같은 주요 개념들에 대해 우리를 다시금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갔던 <아우슈비츠가 남긴 것 : 호모 사케르 3>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과 <호모 사케르>라는 저자의 패러다임은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다. 아울러 9·11 테러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호모 사케르>가 언급했던 “예외 상태의 영속화”가 눈앞의 현실임을 역설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볼 때 예외 상태란 법의 공백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시대 법질서의 핵심이기도 하다. 법보다 ‘법’의 ‘힘’이 우선하며, 그것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정치사의 양대 열쇳말이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사유의 근본 단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호모 사케르>의 또다른 변용이자, 새로운 영역에서의 이론적 시도다. 2007년에 발표된 <군림과 영광>이라는 또 하나의 <호모 사케르> 연작은 ‘영광’의 스펙터클, 그것이 가리고 있는 경제 우선의 통치 메커니즘의 계보학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경제가 정치를 압도하는 근대 생명정치의 특성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새롭게 발표되는 그의 저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제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우리 앞에는 마지막 질문이 놓여 있다. 과연 이처럼 주권 권력으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는 ‘호모 사케르’들의 사회, 혹은 ‘영속적인 예외 상태’ 속에서의 삶, 그리고 ‘군림과 영광’의 스펙터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는가. 과연 <호모 사케르>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호모 사케르>가 전개한 수많은 논의들을 거치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와 그 주체라는 오랜 패러다임을 오늘의 스펙터클 사회 속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호모 사케르> 연작이 진행되면서, 그가 가장 시달렸던 과제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해답은 모호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저자는 우리에게 최종 답안을 전해 줄 것이라 약속한다. 그것이 바로 <호모 사케르> 연작이 도달할 최후의 종착점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여전히 ‘완성’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종결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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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벌거벗은 삶'을 징벌하다 (머니투데이  | 2009/06/11 12:30)
[MT교양강좌]조르지오 아감벤, 인간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규정
  
"오늘날 국가권력과 대칭되는 위치에 있으면서 절대적인 기본권으로 간주되는 생명의 신함이란 무엇일까?"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적 시각을 지닌 비평가다. 지난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나 파리의 국제철학원과 베로나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아감벤의 저서 '호모 사케르'는 21세기 전 세계 인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대변하는 아감벤의 문제작으로 ‘권력 대(對) 벌거벗은 생명’을 중심축으로 서양 사상사의 맹점을 해체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정치 철학’을 제1철학으로 정립하고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철학적 정의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정치적 정의 모두를 넘어 인간은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새로운 제1원리를 도출한다. 그가 분석하는 역사 인식이나 세계관이 너무나 참신하기 때문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체제의 상관관계를 넓은 지성사적 맥락에 위치시키고 있다. ‘sacer’는 라틴어로 ‘성스럽게 되다’, ‘저주를 받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로마법에서 유래한 단어로, 직역하면 성스러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즉, '호모 사케르'란 벌거벗은 생명,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을 말한다. 아감벤은 신칸트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는 1920년대 독일 사상계의 문제의식을 먼저 소개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 사이에 흐르는 공통의 물음을 되짚어 본 뒤 이들 사상가에 주목하여 정치적 실타래를 추적하고 있다.
 
또한 법의 문제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양자에 대한 비판적인 계승을 시도한다. 아감벤에게 있어서 주권은 아우슈비츠와 핵시대, 그리고 9.11이후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는 상황에서의 정치와 법질서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개념이다. 그가 보기에는 문제는 단지 주권이 비상사태를 근거로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삶으로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극단의 삶을 만들어낸다는데 있다.
 
현대 정치의 위기는 기존의 법과 삶의 관계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새로운 정치철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감벤은 순수한 잠재성의 정치를 통한, 보편과 개별의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의 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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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은 네트워크 투쟁으로 ‘제국’에 맞선다 (한겨레, 윤수종/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2009-07-24 오후 06:58:25)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⑭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
 
안토니오 네그리는 193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독일 역사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68혁명 이전까지 인식론, 철학, 정치학, 국가론 등에 관해 연구하고 책을 썼다. 1959년 이후 자율주의적인 좌파잡지(정치집단)에 참여했다. 1970년대에 일어난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감명을 받으면서 자율주의 사상을 정립해 나갔고,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억압적 상황에서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 와중에 그의 대표 저작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출간됐다. 198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가타리를 비롯한 탈근대이론가들, 이탈리아 망명자들과 함께 연구와 정치 활동을 병행했다. 1997년 마이클 하트와 <제국>의 집필을 끝낸 뒤 이탈리아로 돌아가 수감됐다가 2003년 자유의 몸이 됐다.  
근대적 주권은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 주권’으로 변형되어 간다. 새로 등장하는 ‘다중’은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다.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과제는 다중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절대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마이클 하트와 공동으로 저술한 <제국>(2000)과 <다중>(2004)의 저자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두 저작은 1970년대 이래로 일관된 연속성을 갖고 전개돼온 그의 오랜 작업의 결실이다. 네그리는 또 하나의 지배 장치로 변질된 공산당과 종래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의 지배를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곧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자본주의적 지배체제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성의 측면에서는 노동자를 축으로 한 ‘계급’ 주체성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배치로서의 ‘다중’으로 이행했다고 파악한다.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네그리는 <제국>에서 국민국가에 기반한 근대적 주권이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인 주권으로 변형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측면에서 부연될 수 있다. 근대적 주권에서 제국적 주권으로의 이행은 우선 영토적인 국경 안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기반으로 구성된 근대적인 국민국가들과 그 국가들 사이의 지배와 종속 관계인 제국주의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그 대신 이제는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국적인 자본과 그러한 자본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국제기구들(유엔·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세계무역기구 등)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가 됐다. 따라서 국민국가 시대에는 국경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중요했지만, 제국적 주권하에서는 국경과 외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은 이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며, 모든 전쟁은 제국 안의 시민전쟁, 즉 내전이 된다.
 
제국의 시대에도 위계와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정밀하게 강화된다. 위계와 차별은 생물학적 차이나 가시적 차이에 의존하는 인종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유동적이고 유연한 일상적인 체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고 잔인해지는 일상적인 실행체제 속에서 관철된다. 제국적 주권은 하나의 중심적인 갈등을 둘러싸고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 갈등들의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되는 것이다.
 
제국의 또다른 특징은 생산의 성격 변화다. 네그리에 따르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이전과 달리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거대 공장의 노동력이 차지했던 중심적 역할이 쇠퇴하고, 비물질적이고 소통적인 노동력이 대신하고 있다. 여기서 비물질적 노동이란 “서비스, 문화 상품, 지식, 또는 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왜 이러한 변화가 중요할까? 그것은 이런 노동의 형태 속에는 협동이 노동 자체 속에 완전히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곧 비물질적 노동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이 더 이상 자기 외부의 적대적 타자인 자본에 의해 가치증식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치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네그리는 바로 여기에서 제국의 질서에 이미 내재해 있는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제국 권력의 지배가 결코 완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네그리의 말로 요약하자면, 제국 권력의 효율성은 폭탄에 의한 파괴에, 화폐에 의한 판결에, 소통에 의한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중, 소통하는 자율적 집합주체의 등장
<제국>이 지배에 대한 분석이라면, <다중>은 부제인 ‘제국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의 와중에 등장하는 다중과 그에 따른 사회운동의 방향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multitude)은 무차별적인 무리로서 ‘대중’(mass)이 아니라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주체다.
 
네그리는 이전에도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라는 개념 대신에 주변층이나 실업자, 여성, 학생 등을 포괄하는 사회적 노동자 개념을 사용해 왔다. 다중은 이 개념을 좀더 확장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다중은 군중, 인민, 대중, 국민, 계급 등과 같은 종래의 정치적 주체 개념과 대비되는 새로운 주체 개념이다. 다중은 서로 다른 문화, 인종, 종족, 젠더, 성적 지향 및 상이한 노동형태와 생활방식, 세계관, 욕망 등과 같은 수많은 내적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리고 다중은 계급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특히 직접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주민층을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다중의 등장과 함께 사회운동의 투쟁방식과 방향도 변화한다. 1960년대에 나타난 게릴라 투쟁 모델은 집중제의 마지막 표현이었으며, 네트워크 투쟁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네그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에서 나타난 네트워크 투쟁은 이후 사회운동의 방식으로 널리 확산됐고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대의제를 넘어 절대적 민주주의로
이러한 네그리의 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데 가장 주요한 장애를 대의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대의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다중의 역능구성 과정을 통해 기존 권력을 혁신해 나가는 구성권력 전략을 사고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그리는 대표를 만들어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표화를 막으면서 다중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조직화해 나가는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변혁운동의 중요과제는 바로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대의제를 파괴하고 그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안구성은 대안 제도를 만드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주체들이 아래로부터 욕망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사회관계를 구성해가는 것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했던 절대적 민주주의다.
 
네그리의 이런 주장은 많은 쟁점과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기존의 좌파 운동에 대해 비판점을 형성하고 있다. 네그리는 당 형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네트워크 형식의 운동을 강조하고 대안 세계화 운동, 다양한 소수자 운동과 자율운동의 활성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분석했지만 노동을 구성(노동자 계급을 조직)하려고 했듯이, 네그리는 제국을 분석하지만 대중을 구성(구성권력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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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진실 벗긴 ‘약한 사고’…변혁 추동하는 ‘강한 실천’ (한겨레, 박상진/부산외대 교수, 2009-08-07 오후 10:18:13)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⑮ 잔니 바티모 Gianni Vattimo
 
잔니 바티모는 193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해석학과 미학의 관점에서 종교와 사상의 문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로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탈근대적 사고로 연역하면서 해석학의 기초 위에 이른바 ‘약한 사고’의 이론을 주창했고, 이를 통해 대중문화와 인터넷이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좌파 정치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1964년부터 2008년까지 토리노대에서 철학과 미학을 가르쳤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진실에 대한 예술의 주장>, <기독교 이후>, <허무주의와 해방>, <해석학적 공산주의> 같은 책들을 썼고, 국내에 <투명한 사회>와 <근대성의 종말>이 번역돼 있다.  
바티모는 ‘약한 사고’의 개념을 빌려 형이상학적 진실과 이별하는 우리 시대에서 해석이 지니는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모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실들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해석의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잔니 바티모는 탈근대성이라는 이론적 토대 위에서 ‘약한 사고’라는 사유와 실천 형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우리 시대의 철학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바티모가 말하는 탈근대성은 근대성을 폐기하거나 이어받는다기보다, 심화하고 비틀고 치유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한층 복잡한 사고를 가리킨다. 바티모는 ‘약한 사고’의 개념을 빌려 형이상학적 진실과 이별하는 우리 시대에 해석이 지니는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중문화와 매스컴, 인터넷이 날로 번창하는 현대 세계는 무수한 입장들이 가로지르는 네트워크로 짜인다. 그런 상황은 새로운 좌파의 철학과 정치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모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실들의 허위성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해석의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티모는 탈근대성을 다원주의로 파악한다. 다원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할 때 발생한다. 반면 절대적인 진리는 민주주의를 저지한다. 절대 진리가 있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절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을 반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와 이별하는 시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한껏 높이는 시대다. 바티모에 의하면, 진리가 단단하고 영속적인 객관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존재론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진리를 재해석과 재맥락화, 재서술에 의해 새로 구성되는 어떤 것으로 선별하고 채택해야 하는 해석학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철학은 세계를 묘사하기보다 해석해야 한다. 탈근대적 해체가 통일된 역사서술에 종말을 고한다면, 그를 위한 철학은 ‘차이의 모험’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존재를 사건으로 인식함으로써 진실의 개념에 해석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진실은 없고 해석만이 있으며, 따라서 진실의 가치는 해석들의 차이들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여기서 해석하는 주체의 자리가 중요하게 떠오른다. 진실이나 존재는 주체의 해석 행위에 따라 가변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티칸과 같은 종교 기관이 의도적인 설교를 하고, 미국과 같은 정치적 제국이 자본주의를 선전하며, <엔비시>(NBC)나 <시엔엔>(CNN) 같은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선택된 뉴스를 통해 ‘객관적 사실’을 정의한다면, 철학은 진실이란 단지 해석들의 게임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철학은 논증적인 담론보다는 일종의 교화하는 담론이며, 지식의 발전과 진보보다는 인류의 교화를 향한 담론이다. 철학자의 임무는 영원을 이해하도록 인류를 이끄는 플라톤 식의 어젠다와 상응하지 않는다. 그보다 인류가 역사를 향해, 역사와 함께 나아가도록 만든다. ‘약한 사고’는 결코 사고의 약함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고는 더는 논증적이지 않고 교화적이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약한 사고’에 근거한 철학은 주장이 아니라 호소이며 선언이다. 주장은 응답을 기대하지 않거나 거기에 대처하려 하는 반면, 호소와 선언은 응답을 기대하며 그 응답과 함께 커나간다.
 
바티모는 오늘날 정치와 철학이 이해하고 구성해야 할 진실의 유일한 지평은 사회적·문화적 대화의 인식론적 조건들을 재검토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진실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분배와 참여의 문제로 연결시키고 일반 대중이 가장 잘 이해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진실과의 이별과 그에 따른 ‘약한 사고’는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토대다.
 
이런 식의 ‘약한 사고’를 펼치는 바티모는 ‘좌파에 대한 좌파의 철학자’라고 불릴 만하다. 그것은 여전히 절대적 토대를 전제로 하는 좌파에 비해 바티모는 ‘좌파 철학’을 토대의 붕괴와 재구성을 통해 추구하기 때문이다. 좌파의 정치는 무조건적인 도덕적 의무, 보편타당성의 주장, 초월적인 합리적 전제들을 회의하고 비틀고 재구성함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철학은 좌파 정치에서 부수적이지 않다. 바티모와 같은 좌파에게 철학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사회정치적 주도권을 지닌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약해진 마르크스’를 주창하면서 ‘약한 사고’를 정치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바티모는 68혁명에 참가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수감된 그의 학생들이 보낸 편지에서 바티모는 형이상학적 주체를 주장하는 폭력적 논리를 발견하고, 절대 원칙을 생산하는 철학은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확인했다. 그의 급진성은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회의하고 비판하며 끊임없는 재사고의 대상으로 올리면서 이루어졌다. 그런 입장에서 바티모는 1970년대 이래 좌파 정치에 관여했고, 바티모를 위시한 철학자들이 급진적이지 못하다는 붉은 여단의 압력을 폭력으로 간주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 이탈리아 정치에서 혁명과 같았던 ‘탄젠토폴리’(뇌물도시) 사건에서 정치적 열의를 보였다. 그 뒤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접은 상황에서 바티모는 언론 기고를 통해 논쟁을 지속시켰고, 그와 함께 베를루스코니 체제를 비판했다.
 
바티모는 1999년부터 5년 동안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인권과 문화, 교육, 매체와 같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바티모의 유럽의회 활동은 다원주의의 확립으로 두드러진다. 유럽연합 헌법에 ‘기독교적 가치’라는 용어를 삽입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을 때, 바티모는 유럽은 다원주의적이어야 하며, 단일 종교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유럽의 기독교적 전통과 가치를 부정하고 망각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기독교적 가치는 세속주의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자신을 포기하는 방식의 사랑이라는 가장 기독교적인 개념에 토대를 둔다. 그런 면에서 세속주의는 다양한 종교들이 제한 없이 스스로의 신앙을 추구할 수 있는 다원주의와 통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종교적’ 힘은 세속주의의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토대를 제공해준다. 유럽연합 헌법에 기독교 개념을 넣으려는 바티칸의 압력은 바티모의 눈에 유럽의 다원성을 좀먹는 교조적 형이상학의 발현과 다르지 않다. 종교는 세속주의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종교성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바티모가 유럽에서 본 것은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의 꿈이다. 유럽연합은 초국가적 국가가 점령이나 침공, 전쟁이 아닌,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해 구성된 최초의 경우다. 바티모는 유럽연합을 진지한 정치적 진보의 표상으로 본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자연스러운 기반이 아니라 다양성들의 자발적인 기초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단 하나의 언어와 종교, 인종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종교, 인종에 의해 구성되었기에, 무한하게 뻗어나가고 적용될 수 있을 공동체라고 바티모는 굳게 믿는다.
 
바티모의 좌파적 사고와 정치 실천은 사회주의가 인류의 운명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사회주의는 모든 사회적 가치와 권력의 민주화가 펼쳐지는 우리의 집단적 삶을 국가적으로 조절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는 ‘투명한’ 민주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투명한 민주 사회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공통의 결속된 원칙들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열린 공간을 남기는 사회다. ‘불투명한’ 사회에서 폭력은 형이상학적 구조와 그것이 빚어내는 궁극적 진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반면, 진정한 인간 존엄성은 기존의 자연스러운 형이상학적인 본질이 아니라 그것을 비틀고 재고하는 개인들의 자유에서 나온다.
 
이제 보편적 전통이 와해되고 절대적 진실이 붕괴하는 세속화의 근대 역사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이러하다. 우리에게 형이상학적 구조와 궁극적 진리는 무엇인가. 그들에 맞서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소통을 이루는 공간은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답과 함께 새로운 체제의 구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나름대로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약한 사고’는 그를 위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사유와 실천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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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성’ 메스로 신자유주의를 해부하다 (한겨레, 서동진/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2009-08-21 오후 08:52:56)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16) 니컬러스 로즈 Nikolas Rose
 
니컬러스 로즈(62)는 현재 영국의 런던 정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생명과학, 생명의학, 생명공학과 사회 연구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사회학자다. 유대계 후손으로 대학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줄곧 사회학 분야에서 이론적 작업을 펼치고 있다. ‘영국 통치성 학파’의 좌장으로 ‘현재의 역사’라는 그룹을 조직해 푸코의 통치성 개념에 바탕한 서구 자유주의 권력의 분석에 진력하여 왔다. 최근에는 생정치, 다시 말해 생명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들이 생산하는 효과와 권력에 이론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통치성 개념을 통해 푸코는 권력을 지식과 주체화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근대 자유주의 권력의 분석을 통해 해명하고자 시도했다. 로즈는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이론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동시대 자유주의 권력의 해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정련했다.  

니컬러스 로즈는 흔히 통치성 연구로 알려진 푸코주의적 사회이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미셸 푸코가 1970년대 후반 콜레주 드 프랑스의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강의노트에 등장한 ‘통치성’이란 개념은 일종의 이론적 프로그램처럼 받아들여졌고, 영국을 중심으로 독특한 푸코주의적 사회이론 그룹이 만들어진다. 통치성 학파라고 알려진 이론가들은 실은 ‘현재의 역사’라는 연구자 네트워크에 참여한 이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의 공동작업의 결과는 여러 저작으로 출간됐고, 이는 현재 ‘통치성 연구’라고 불리는 흐름의 바탕을 닦은 작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즈는 이 그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로즈는 영국에서 특히 강력했던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속에서 이론적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병리학과 정신의학에 관한 푸코 초기 저작에 영향을 받으면서 <심리학 복합체>, <영혼을 통치하기>와 같은 초기 주요 저작을 완성한다. 이는 영국의 정신병리학 기관이던 타비스톡 연구소에서 민속지적 방법을 통해 정신병리학 제도의 권력과 작용을 분석했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로즈의 이론적 관심을 전환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푸코의 통치성에 관련된 글과 그의 세미나를 통해 발표된 제자들의 논문들이었다.
 
그는 ‘현재의 역사’라는 그룹을 조직하고 그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저널 <경제와 사회>를 통해 그 성과를 소개했다. 이 시기 그의 이론적 성과를 묶은 것이 피터 밀러와의 공동 저술 논문을 묶은 <현재를 통치하기>와 그의 신조어인 ‘선진자유주의’란 개념을 통해 서구의 새로운 자유주의적 권력을 분석하고자 시도한 <자유의 권력들>이다. 아마 로즈의 이론적 성과를 집약하고 있을 <자유의 권력들>은 신자유주의라 알려진 정치권력을 분석한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는 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통치성 개념을 권력 분석의 이론적 도구로 다듬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이라는 이론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돌출한 개념이다. 그것은 정치철학의 주권론과 국가론 혹은 경제적 결정을 은폐하는 허구적 상부구조로서의 국가권력이라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한 탐색 과정에서 출현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왕의 목을 베기’라는 푸코의 유명한 표현은 점차 ‘국가의 통치화’에 관한 분석으로 다듬어졌고 그는 이를 자신의 작업을 망라하고 조직할 수 있는 개념이라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이론적 개념이라 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통치성을 통해 푸코는 권력을 지식과 주체화라는 개념을 통해 재구성하고 이를 근대 자유주의 권력의 분석을 통해 해명하고자 시도했다. 로즈의 작업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에게서 특기할 점은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이론으로서 체계화하고 이를 동시대 자유주의 권력의 해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정련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는 통치성 혹은 그가 선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적 합리성’을 크게 세 가지의 성분으로 나눈다. 그것은 첫 번째 지식과 언어,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무엇보다 그것이 행사되는 대상을 구성하고 창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디까지가 경제적인 삶의 세계이고 무엇이 사적인 삶의 세계인지는 전연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경제적인 삶이라 할 때, 성장·효율·능률·합리성·진보·성과·이득 같은 것 역시 무엇을 가리키고 그것은 어떻게 판별되고 측정하며 평가해야 할지 전연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무한히 다양한 삶의 세계들은 그것을 읽고 분석하고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빚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권력은 다양한 지식과 언어를 생산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테크놀로지를 들 수 있다. 권력은 단순히 관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특정한 효과를 겨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장치·도구·계산방식 등을 만들어낸다. 이는 성장·진보·안녕·안전·교정·개선 같은 다양한 목표를 충족하고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 지식들을 생산하고 그에 관련된 인물·기관·제도·자격·보상 같은 것들을 끌어들인다. 세 번째로 권력은 윤리 혹은 주체화라고 할 만한 것으로 이뤄진다. 그것은 자유주의 권력의 결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권력은 무엇보다 자유를 동원하면서 작동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행복·안전·건강·성공 등 다양한 포부와 욕구를 가지고 다양한 삶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때 사람들은 그런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하고 타인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련된 다양한 규범과 행위의 코드에 관련을 맺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윤리 혹은 주체화라고 할 수 있다.
 
로즈는 이 세 가지의 성분으로 구성된 권력의 해부학적 도구를 이용하여 근대 자유주의 권력의 역사적 변전을 분석한다. 그는 서구 자유주의의 역사를 크게 자유주의·복지주의·선진자유주의라는 단계로 나눈다. 자유주의란 18세기에 형성된 초기 서구 자유주의 권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된 특징은 권력이 초월적인 원리나 임의적인 의지를 통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즉 그것이 행사되어야 하는 대상에 대한 지식(특히 정치경제학)을 배경으로 신중하고 또한 효과적으로 행사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더불어 권리를 행사하는 법적 주체라는 겉모습에도 실제 삶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개인들을 통치받는 대상 혹은 주체로 만들어낸다.
 
이런 초기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의 등장, 개인주의의 만연과 같은 위험에 직면하면서 혹은 로즈가 강조하는 개념을 빌리자면 숱한 ‘문제화’를 통해 복지주의로 변이하게 된다. 복지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사회를 통한 통치’라고 말할 수 있다. 복지주의는 무엇보다 ‘사회’를 발명하고 그를 통해 권력이 행사하는 대상과 주체를 전연 다른 방식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기술로서 사회보험과 사회복지를 동원한다. ‘연대’란 개념을 통해 권력이 행사하는 대상은 공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의무와 책임을 나눠 가지는 사회적 시민 혹은 국민으로 변형된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혹은 로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진 자유주의’는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사회의 종말’이란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연대라는 이상 속에서 책임과 의무를 나눠 가진 사회적 시민은 이제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개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특정한 친화성과 정서적 유대에 기반한 ‘공동체’로 변신한다. 그리고 이는 위험의 관리를 둘러싼 테크놀로지 역시 감사, 책무성, 성과 측정과 같은 것으로 바꾼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예는 복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복지로부터 노동 연계 복지로 혹은 능동적 복지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런 변화는 자신을 돌보는 개인을 겨냥하고 그들의 책임 부여를 요구한다.
 
신자유주의 분석을 위한 유용한 이론적 틀로 통치성 개념이 각광을 받으며 1990년대에 서구 학계에 일약 통치성의 이론적 붐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일어나고 로즈와 동료들의 작업 역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 작업은 자유주의 권력에 관한 치밀한 분석에도 권력이란 개념을 특권화하면서 현실에 관한 통치를 분석하는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정치의 위상을 제거하고 정치를 사회학화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그것은 로즈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푸코를 경유하여 정치를 사고하려 했던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는 대로 업데이트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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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2 22:21 2009/08/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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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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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여전히 트위터보다는 블로그가 더 익숙하다. 단문식의 짧은 글쓰기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자서비스 제공과 결부지어서 10-20대는 미투데이를 더 많이 쓰고, 30-40대는 트위터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 기사도 있더라만, 나에게는 그 넘이 그 넘이다. 또한 무슨 글을 쓸 때 중언부언하는 버릇(버릇이라고 해야 하나?)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되겠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모 지방의료원 원장으로 가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는 의학박사님이 해준 내 성격 분석이 생각난다. 신경정신과 의사였으면서도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행정대학원에 들어왔던 그 분은 레포트 제출이나 시험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을 고생시켰던 관계로 기피인물이었는데, 아무튼 대학원 수업시간에 몇몇 학생들의 심리내지 성격을 분석해준 바 있다. 그 때 나보고 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한편으로는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도 (주변에서도 대부분 나의 정리벽에 대해서는 알아주는 편이어서) 가끔씩 글을 쓸 때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보면 그게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구두발표를 해도 잘 요약해서 하지 못하고, 주어진 시간을 오바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개운치 않은 뒷마무리로 끝내는 경우도 많았고... 
  
사실 그렇게 장황한 글을 쓰는 이유는 짧게 개조식으로 글을 쓸 경우에는 나중에 그 의미 전달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를 짧게 줄여서 하라고 하면 어쩌라고... 그래서 내가 블로그에 쓰는 글도 관련기사를 달지 않더라도 길어지더라.
 
그런 면에서 트위터에 글을 쓰는 건 너무 불편했다. 핸드폰 문자서비스와 연동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급박하게 트위터에다 뭘 알리는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기발하거나 핵심을 찌르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내 입장에서는 이리저리 훑어보고 정리해놓는 것이 맞지 않나 싶었다. 
 
더욱이 트위터를 메신저처럼 이런저런 일상의 단편적인 얘기들을 쉽게 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는 게 어색했다. 트위터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사람의 경우 며칠이 지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상대방과 어떠한 소통을 했는지도 잘 모르게 될 것 같은데, 문제는 트위터에 남겨놓았던 그 글들을 검색엔진은 귀신같이 알고 있고, 이를 지우더라도 오랫동안 남겨놓는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여기에 주목하는 이가 없지만 나중에 문제삼게 되면 커다란 논의이 될 터이다. 지금이야 아무렇게 트위터에 글을 쓰지만, 휴대폰 문자메시지는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데 비해(물론 이것도 국가에서는 감시할 수 있다) 트위터는 그런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편한 글쓰기가 가능할까.
   
얼마전 연합뉴스에 트위터 메시지의 40%가 ‘허섭쓰레기’라는 기사가 나왔다. BBC걸 받아서 연합뉴스가 보도한 건데, 가만 지켜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조사를 담당했던 쪽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메시지 패턴이 변할 거라고 하였지만, 글쎄다. 어떤 식으로 되든지 문제 아닐까. 지금과 같은 식으로 계속 가든지, 그렇지 않고 신중하게 된다면 그 나름대로 트위터의 장점 중의 하나가 상실되는 것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은 내가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이용한다고 해서 나에게 뭐가 남는 게 있을까 하는 효용성 중심의 사고도 있고... 하긴 그렇게 말하면 블로그에는 왜 글을 쓰는 건지... 뭐가 남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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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인플루엔자가 트위터까지 감염시켰다? (미디어오늘, 2009년 05월 03일 (일) 04:28:58 이정환 기자)
소셜 미디어의 가능성과 부작용… 집단지성은 늘 옳은가
 
아직까지 트위터를 모른다면 당신은 인터넷 문화의 진화 속도에 뒤쳐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트위터(www.twitter.com)는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다. 영문 기준으로 140자를 입력할 수 있는데 이를 친구로 설정된 다른 회원들에게 곧바로 전달할 수 있다. 전자우편은 물론이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인스턴트 메신저로도 포스팅을 입력하거나 친구들의 포스팅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로도 분류된다.
 
트위터는 우리말로 하면 "짹짹",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를 의미한다. 트위터는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좀 더 간소화한 형태라고 이해하면 쉽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처럼 짧고 간단한, 툭 던지는 한 마디가 대부분이고 인터넷 뿐만 아니라 온갖 플랫폼을 넘나든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 댓글 문화의 진화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고 1촌이 충분히 늘어나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한꺼번에 채팅을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최근 트위터의 최대 인기 검색어는 단연 돼지 인플루엔자로 알려진 인플루엔자 A다. 닐슨 온라인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으로 트위터에 올라온 포스팅의 2%가 돼지 인플루엔자에 대한 글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트위터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사실과 다른 근거 없는 추측이 대부분이라는데 있다. 이를테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거나 스페인 독감 때처럼 세계적인 대유행병이 될 거라거나 타미플루를 충분히 사둬야 한다거나 하는 내용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정치외교 전문 월간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인터넷판에서 "트위터가 지나친 공포 심리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린폴리시는 "트위터에서는 너도나도 가장 유행하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되는데 그래야 더 많은 1촌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확인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트위터에 쓸 수 있는 글이 140자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전체 맥락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데 있다. 포린폴리시는 "독자들은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돼지 인플루엔자'라는 단어의 홍수를 보게 되는데 이처럼 사람들이 불쑥 내뱉는 말이 집단적인 공포로 이어지고 심각한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트위터의 '집단지성'이 이번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에 보인 반응은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덧붙였다. 포린폴리시는 트위터에 강력한 불신을 드러냈는데 이는 우리나라 보수성향 신문들이 촛불집회와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보이는 반응과 언뜻 비슷한 측면도 있다. 애초에 인터넷 여론이 정확하지 않고 즉흥적이며 한쪽 방향으로 휩쓸리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포린폴리시는 "보건당국은 공포 심리에 휩싸인 수많은 네티즌들과 여론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 같은 소셜 미디어 영역에서는 입지가 매우 좁다"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사이버 테러의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사람들의 공포 심리를 부추기고 네트워크 시스템을 공격하는 일도 가능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2007년 에스토니아에서는 사이버 테러로 교통과 금융, 통신이 송두리째 마비되기도 했다. 포린폴리시는 "트위터가 어떻게 여론을 흔드는지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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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트위터 가입 고려”에 누리꾼들 “홈피관리나…” (한겨레, 구본권 기자, 2009-06-19 오후 01:34:03)
조지워싱턴 대학 ‘명박’ 수여 소감서 밝혀
“140자 너무 짧아 200자로 늘리려한다” 우스개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트위터(www.twitter.com)’ 가입의사를 밝혀 인터넷에서 화제다.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각)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뒤 강연에서 “새로운 기술과 문명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식들도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아직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트위터 가입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을 140자 이내로 하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200자까지 늘리려고 한다”는 우스개도 덧붙였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에는 김철균 청와대 국민소통담당비서관이 트위터에 가입해, “트위터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한다”는 글을 올린 바 있어, 청와대의 트위터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트위터에는 유명인사들이 많이 가입해 있고, 이들을 친구로 등록해 그의 일상을 자신의 트위터로 확인하는 게 유행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개설한 트위터에는 145만명이 친구로 등록돼 있으며, 한국인으로서는 최근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를 열고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올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연아 선수의 트위터(twitter.com/Yunaaaa)를 친구로 등록한 사람은 1만5900여명으로, 한국인 중 가장 많은 친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쌍방향 소통 도구인 트위터를 활용하겠다는 데 대해 누리꾼 시각은 곱지 않다. 한국정부가 자국 안에서는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통해 가입자의 실명을 요구하는 반면, 대통령이 잇따라 실명 확인이 필요없는 해외 사이트를 ‘애용’함으로써, 인터넷 실명제를 앞장서서 무력화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트위터는 여느 외국 인터넷 서비스처럼 가입에 사용자 이름(필명)과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만이 필요하다.
 
유튜브코리아는 실명제로 인해 한국인 계정에 한해 동영상 업로드를 차단했음에도, 청와대는 “국가 설정을 전세계로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인터넷을 지속적으로 올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누리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운영하고 있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www.cyworld.nate.com/mbtious)는 개설 이후 프로필만 올라온 상태로 방치되고 현실을 지적하며 이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의 진정성을 꼬집고 있다. 싸이월드는 트위터와 달리 실명으로만 댓글을 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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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사저널 [1027호] 2009년 06월 24일 (수) 김회권)
2009년 최고의 히트 상품은 트위터가 될 전망이다. 트위터는 김연아 선수가 시작했다고 해서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고, 이란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는 시시각각 상황 변화를 세계 각국으로 알려주어 주목을 받고 있다.
 
에반 윌리엄스(37)와 비즈 스톤(35)이 창업한 트위터(www.twitter.com)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이었다. 불과 3년 뒤 트위터는 이런 세계적인 경기 불황 중에서도 여러 기업이 인수를 제의할 정도로 성장했다. 직원 수가 30여 명에 불과한 미니 회사에 2009년 5월 애플사에서는 7억 달러에 인수 제의를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불특정한 수많은 사람이 쫓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트위터는 대중과 접촉면이 넓어야 유리한 사람, 즉 유명 인사들에게는 축복의 시스템이다. 트위터가 이슈로 떠올랐을 때 주로 많이 등장하는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트위터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프라 윈프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제이 로한 등 연예계의 거물들도 트위터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지난 5월 ‘연아가 트위터를 한다’라는 기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후 트위터라는 검색어는 각 포털에서 상위권에 자리 잡았다. 가입자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콘텐츠 커뮤니티 서비스를 준비 중인 한 벤처회사의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은 상호소통을 가정하고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아프리카 방송’ 같은 느낌이다. 유명인들은 엄청난 팔로어를 가지겠지만 일반인은 한 명의 팔로어도 얻기 힘들지 않겠나”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런 재잘거림은 강점이다. “심심해~” “으악, 늦었다!! 자야지 ㅋㅋㅋ” 등 일상의 감정은 그만큼 공유하기도 쉽다. 반면,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대화만을 추구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진지한 의견의 교류가 배제되고 한두 마디의 대화들이 배설되는 문화가 계속될 경우를 지적했다. 하씨는 “타인과 소통하는 장점은 있겠지만 생각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터넷 문화가 지금보다 뒤쳐질 개연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대중에게는 그런 사소한 감정이라도 유명 인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트위터는 ‘공유와 참여, 개방을 통한 1인 미디어’로써 기능한다. ‘공유와 참여, 개방’의 가치는 프로그램 개발사만이 소유하던 API(Application Programmer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공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위의 가치들은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도 적용된다. 트위터카운터라는 프로그램 역시 사용자들이 개발한 외부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자신의 트위터를 지지자로 등록한 사람의 숫자를 알려준다. 현재 가장 많은 지지자를 가진 사람은 데미 무어의 남편인 영화배우 애시튼 커처로 2백25만여 명이 그의 웹사이트에 등록했다. 그는 CNN과 트위터에서 100만명 등록 내기를 해 승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트위터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트위터 자체가 떠오른 것도 최근의 일이다. 게다가 국산 트위터라고 불리는 기존의 ‘미투데이(NHN)’나 ‘토씨(SK텔레콤)’에 대한 반향도 없었다. 하지만 이경전 경희대 교수(경영학과)는 “우리나라의 여건상 포털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데 최근 미투데이나 토시의 경우를 봐도 대형 업체들이 SNS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마이크로 블로그 쪽으로 갈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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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세계 바꾼 ‘짧은 글’의 힘 (시사저널 [1027호] 2009년 06월 24일 (수) 김회권)
트위터 열풍의 원동력은 차별화된 소통 방식…‘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변화 주도
 
트위터 선풍 이전에도 비슷한 바람이 분 적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인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이 그 주인공이었다.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은 ‘관계 맺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마이크로 블로그인 트위터는 이들과 성격이 좀 다르다. 트위터의 인기를 논의할 때 ‘짧은 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1백40자 이하의 짧은 글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 없다. 짧은 글 덕분에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경희대 경영학과 이경전 교수는 “블로그나 싸이월드는 일단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싸이월드의 경우는 외양이, 블로그의 경우는 지적 수준이 중요한 데 반해 트위터는 평범한 사람도 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소통의 방식이 변하는 것만으로도 트위터는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여기에 속도성까지 추가되었다. 문자메시지와 비슷한 분량이기 때문에 휴대전화로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문자메시지로 트위터에 글을 적고 답글을 다시 휴대전화로 받아보는 시스템이 구현되었다. 반드시 컴퓨터 앞에 앉아야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루어진다.
 
트위터의 이런 장점은 다른 SNS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이 그렇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의 소통 방법을 자신들의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중이다. 지난 3월4일 페이스북은 자사 웹사이트를 대폭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트위터의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를 가져온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도 이전부터 친구의 동향을 관찰할 수 있는 ‘뉴스 피드’ 기능이 있었지만 업데이트가 10분마다 이루어져 뒤늦은 감이 있었다. 이것을 실시간 상태가 나오도록 개선했다. 
 
트위터 만큼이나 페이스북의 성장세도 무섭다. 페이스북은 마이스페이스를 제치고 미국 내 최대 SNS가 되었다. 최근 1년간 순방문자 수가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증가했다. 미국의 시장 조사·분석 기관인 ‘컴피트닷컴(compete.com)’의 자료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2009년 5월 순방문자 수는 1억1천3백여 만명으로 SNS 사이트 중 단연 1위였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3백54%가 증가했다. 트위터도 2009년 5월의 순방문자 수가 1천9백72만여 명으로 1년 전보다 1천1백43%나 급증했다. 순방문자 수의 성장세도 그렇지만 트위터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6월2일에 발표된 ‘닐슨 온라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SNS와 블로그 이용 시간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3%가 증가했다. 이 중 페이스북의 체류 시간은 1년 동안 약 17억분에서 1백39억분으로 6백99%, 트위터의 경우는 약 3천7백12%가 증가했다.
 
통계에서 보듯이 ‘관계 형성’이 핵심인 페이스북의 소통 방식도 나름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다만, 실시간 교류를 강조하는 트위터 방식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트위터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가깝고 페이스북과는 공존 관계를 구축 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앞으로도 트위터식 소통이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 트위터는 신규 유입으로 유령 회원이 늘어나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회원들끼리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타격을 입을 쪽은 블로그식 소통이다.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바를,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쓰는 것보다 마이크로 블로그에 짧은 코멘트를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경전 교수는 “블로그가 천천히 앉아서 소비하는 행태였다면 트위터는 이동 중에 소비하면서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기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진단은 더욱 근본적이다. 포댐 대학 랜스 스트레이트 교수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텍스트로 상호 작용하는 것보다 인간에게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인 구전 대화의 스타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쓰기보다는 말하기와 함께 발전해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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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도 못한 일 트위터가 하고 있다 (시사저널 [1027호] 2009년 06월 24일 (수) 김회권)
이란 정부의 통제 뚫고 테헤란 상황 ‘생중계’
 
6월12일 이란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테헤란의 시민들은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세계로 쏘았다. ‘부정 선거 의혹으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무사비 전 총리를 이겼다’ ‘테헤란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라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일부 외신에서는 트위터 사용자의 이름을 인용해 이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가 제한되고 정보가 통제되면서 트위터 사용자를 취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단문으로 이루어진 트위터는 중학교 수준의 영어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그 덕분에 비록 통신 속도는 느리지만 아예 끊어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테헤란의 소식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란의 트위터 사용자들은 단지 테헤란의 소식을 발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트위터 내에서 도시별로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통신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고 반(反)정부 시위의 일정을 리트윗(확산)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란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은 문자메시지 계층의 성장을 이끌었다. 대선 당일인 6월12일, 투표 시간 내내 문자메시지는 이유 없이 차단되었다. 무사비 후보측은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활용하려 했지만 이 전략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선거가 끝난 다음 날인 6월13일에도 여전히 통신은 먹통이었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을 막는 데 혈안이다. 반면, 정보는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이란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30세 미만인 젊은 국가이다.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란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블로그를 많이 운영하는 국가이다. 인터넷 환경은 나쁘지만 인터넷 문화만큼은 강국이다. 프록시 서버를 이용해 SNS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이유이다. 이란의 네티즌들은 ‘Gpass’ ‘freegate’ ‘ulteasurf’ 등 정부의 필터링을 우회하는 프록시 서버 프로그램을 이용해 트위터에 접속 중이다. 프록시 서버를 이용하면 PC의 고유 IP를 바꿀 수 있어서 마치 다른 국가의 컴퓨터가 접근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이란 정부가 트위터를 필터링해도 소용이 없자 오히려 트위터를 감시하며 네티즌을 잡아들이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란의 네티즌들은 이 소문을 정설로 믿고 있다. 이란의 한 블로거에 따르면 정보장관의 지시에 따라 정보성과 사법 당국이 협력해 여러 웹사이트를 감시 중이라고 한다. 이란 정부의 이런 조처에 불만을 품은 네티즌 중 일부는 오히려 정부를 먹통으로 만드는 중이다. 현재 이란 정부의 공식 홈페이지는 ‘DDOS 공격’(해킹 공격의 한 방법)을 받아 접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뿐만이 아니다. IRIB(이란이슬람공화국방송)도 해킹 공격을 받아 접근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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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트위터 가입 '당분간 보류' (전자신문, 유형준기자, 2009-07-01)
  
이명박 대통령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트위터’에 당분간 가입하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데다 정부가 시행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 위배 가능성 등을 이유로 참모진이 만류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방문 중에 조지 워싱턴대학 강연에서 트위터를 예로 들며 “새로운 기술과 문명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식들도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가입을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인터넷 공간에서 이 대통령의 트위터 가입에 관심이 증폭돼왔다.
 
이 대통령은 귀국 후 트위터 가입을 하려 했으나, 참모진의 건의를 받고 ‘신중한 검토’로 돌아섰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트위터에 가입하면 ‘이 같은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준비 중인 국내 SNS 서비스 기업들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공무원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만큼 충분히 파급효과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당분간 가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트위터 서비스가 우리나라 정부가 시행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에 위배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트위터 서비스 가입은 유튜브나 구글 등과 마찬가지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최고 정책 책임자가 우리나라 정책을 따르지 않는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최근 유튜브에서 대통령 연설을 동영상 서비스하면서 이 같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트위터 서비스의 유해 상업 광고 범람도 가입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트위터의 인맥형성 요청자(팔로어)의 상당수가 포르노 등 성인 서비스 사업자다.
 
청와대는 이런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당분간 트위터 가입을 하지 않은 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청와대 측은 “트위터라는 새 방식을 통한 소통도 의미가 있지만 청와대 홈페이지, 블로그 등 기존 통로를 이용한 소통확대에 좀 더 주안점을 둔다”며 “국민들의 청와대 홈페이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태의 지난 29일 대통령 라디오·인터넷 연설이 앞으로 기존 인터넷 매체 등을 이용한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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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MB아웃’ ‘날치기 무효’ 공론장으로 뜬다 (한겨레, 구본권 기자, 2009-07-24 오후 07:20:52)
국회 본회의장 대리투표 폭로 동영상 줄이어
실명제 적용 안받아 편해…삭제될 우려 없어

 
지난 22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뒤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는 트위터가 새로운 사이버 공론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22일 이후 자신의 얼굴 사진에 ‘엠비 아웃’ 리본을 단 트위터 이용자는 24일 오후 현재 1100명을 넘어섰다. 트위터는 한번에 140자 안의 짧은 글을 올려 자신과 관계 맺은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단문 블로그다. 휴대전화 등 모바일 단말기에서 사용이 편리해 실시간 여론 형성과 전파 기능이 뛰어나다. 이란 대통령선거 시위 때 정부의 검열을 뚫고 현지 사정을 바로 외부세계에 알렸다.
 
트위터가 새로운 사이버 공론장으로 떠오른 데는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라는 단문 블로그의 특성과 더불어 한국의 특수한 인터넷 환경이 배경으로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트위터에 대해, ‘이용자들간의 사적 네트워크’라는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본인확인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이 운영하는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는 실명으로 등록을 거친 뒤 글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을 트위터에 올릴 경우 실명 확인을 거칠 필요도 없고 사업자에 의해 삭제될 우려도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트위터는 ‘사이버 망명지’와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주목받아 왔다. 결과적으로 트위터는 미디어법 날치기 국면에서 새로운 매체와 여론공간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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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의 5가지 매력 (이정환닷컴, on August 17, 2009 8:47 AM)
  
트위터의 매력 첫 번째는 글자 수 제한이 주는 간결함이다. 트위터는 무엇이든 핵심만 짧게 요약해준다. 군더더기가 없고 명확하다. 멋들어진 문장을 쓸 이유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느라 긴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다.  
 
트위터의 매력 두 번째는 적극적인 관계 맺기와 생각의 공유다. 이미 웬만한 유명인들이 트위터에 합류했거나 합류할 예정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이들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뭔가를 물어보거나 제안하거나 충고할 수도 있다. 굳이 유명인이 아니라도 트위터에서는 누구나 쉽게 말을 걸고 '팔로워'가 되고 서로 공감하거나 반박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트위터의 매력 세 번째는 분산된 영향력이다. 트위터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수많은 '팔로워'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당신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면 당신의 '팔로워'들이 당신의 '트윗'을 다시 '리트윗'하고 몇 단계만 거치면 순식간에 수천수만 명이 이를 읽게 된다.  
 
트위터의 매력 네 번째는 놀라운 속보성과 이슈 필터링 효과다.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터지고 완결된 뉴스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지만 이제는 몇 초만에 트위터에 뜨고 '리트윗'을 거치면서 순식간에 모두가 알게 되는 시대가 됐다. 물론 그만큼 잘못된 정보가 떠돌 위험도 크지만 잘못된 정보 못지않게 이를 뒤집는 정보도 빠른 속도로 떠돌기 때문에 이슈가 필터링 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트위터의 매력 다섯 번째는 집단지성과 현실참여다. 트위터에서는 느슨하면서도 긴밀하게 연계된 거대한 집단지성이 형성된다.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수정·보완되기 때문에 트위터의 가능성은 더욱 크다. 트위터의 집단지성은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방관자로 머물러 있기 보다는 어떻게든 판단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깨우칠 것을 요구한다.
 
트위터는 애초에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깔고 들어가면 차라리 방향을 잡기 쉽다. 이제 막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수천수만 명이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수천수만 명에게 읽힐만한 글을 쓴다는 생각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 독특하고 참신한 생각과 주장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 트위터는 1인 미디어면서 동시에 '소셜' 미디어다. 한발 물러나서 구경만 하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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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메시지 40% ‘허섭스레기’ (연합뉴스, 2009년 08월 18일 01:06:31)
 
최근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인 트위터의 단문 메시지 가운데 40%가 의미없는 잡담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BBC가 17일 보도했다. 미국의 시장 조사회사인 피어 애널리틱스가 하루 30분씩 2주일 동안 트위터를 통해 유통되는 2천여건의 단문 메시지를 6개의 범주로 분류한 결과 8.7%만이 `전파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식'으로 분석됐다.
 
가장 많은 40.5%는 `난 지금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는 등의 의미없는 잡담이었고, 37.5%는 `오늘 밤에 뭐해?' 같은 일상적인 대화였다. 또한 자기 과시가 5.85%, 스팸 광고가 3.75%로 나타났다. `의미없는 잡담'은 매일 오후 3시에 가장 많이 유통되고 `일상적인 대화'는 업무가 끝나가는 오후 4시30분에 집중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사를 실시한 피어 애널리틱스의 대변인은 "당초 일상적인 대화가 이렇게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트위터가 진화를 계속하면서 사용 패턴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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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경제적 글 읽기에는 ‘딱’이네 (한겨레, 구본권 기자, 2009-08-18 오후 04:27:24)
먼저 써봤어요
 
지난 5월 초부터 단문블로그 트위터(twitter.com)를 써오고 있다. 한두 달 전만 해도 1980년대 피시(PC)통신 분위기처럼 오순도순했는데 국내 이용자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정치인이나 영화배우 등 유명인들의 계정도 늘고 있다.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오가는 정보도 다양하고 풍부해지고 있다.
 
직업상 남들보다 빨리 다양한 정보에 접해야 하는데, 트위터는 매우 유용했다. 직접 웹사이트를 방문해 일일이 정보를 찾는 방법은 품이 많이 들어, 아르에스에스(RSS)나 뉴스레터, 메타블로그 등을 통해서 관심 있는 정보를 한곳에서 모아 보는 게 그동안 유용한 정보 취득 방법이었는데 트위터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자신이 보고 들은 최신 정보를 트위터를 통해 경쟁적으로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미래를 바꿀 ‘실시간 웹’이란 평가가 빈말이 아니었다.
 
160여명을 친구로 등록하고, 나를 등록한 사람이 200명인 수준에서 쓰고 있는데 친구를 계속 늘려가다가 고민이 생겼다. 사용자들이 증가하면서 모니터하고 싶은 대상들이 계속 늘고 있지만 현재 160여명의 친구들이 올리는 글을 읽어내기도 벅찬 까닭이다. 트위터에서는 수천명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특성상, 너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관심과 시간의 한계에 도달한다. 트위터를 쓰다 보면, 결국엔 내가 원하는 정보나 그의 상태가 알고픈 사람 위주로 제한된 친구들 위주로 관계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에 따라서 최신 정보 공유, 감정 표현 공간, 대화 등 친교 목적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메신저처럼 일대일 메시지를 즉시 보낼 수 있지만, 바로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 블로그처럼 포스팅을 올려놓으면 다중의 독자에게 전달되고 공개된 영역에 남아 언제든지 그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편리한 점은 사이트를 옮겨다닐 필요없이 내 트위트 화면에서 친구들이 올린 모든 글을 빠르게 일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더라도 140자 안으로 줄여서 소개해야 하는 만큼, 압축적 글쓰기가 경제적 글 읽기로 이어진다. 140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은 링크를 통하면 돼 확장성과 연결성도 좋다.
 
트위터에서는 화제가 되는 정보를 전달(Retweet)하는 기능이 발달해 있어, 부지런한 소식꾼들을 친구로 등록해 놓으면 세상의 화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 수 있다. 모바일로 이용해보니 더 편리했다. 출근 전에 모바일 기기를 통해 집에서 무선랜으로 트위터 내용을 다운로드한 뒤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서 가봤다. 앞으로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 이메일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용할 서비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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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유명인사들 끄는 트위터의 은밀한 매력 (2009 08/25   위클리경향 839호, 정용인 기자)
ㆍ트위터 열풍 빠르게 확산…트위터 vs 미투데이 누가 승자?
 
한국에서 트위터는 언제부터 관심을 끌었을까.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의 ‘가입을 고려 중인데, 140자 제한을 200자로 늘리겠다’는 발언이 직접적인 계기다. 농담이지만 당시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어떤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역사’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IT 칼럼니스트 김중혁씨는 “지난해 8월 중순부터 한국 사용자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개설 초기인 2006년부터 트위터를 주목해 왔다. 한국사용자가 늘어난 것은 미국판 싸이월드 이야기를 듣는 페이스북 한국사용자가 대거 가입하면서부터다. IT 제품의 얼리어댑터나 웹 관련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트위터는 ‘지저귀는(twit) 이’라는 뜻의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이다. 싸이월드와 같은 사회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일종이다. 메신저에 관심이 있던 올해 32살의 청년 잭 도시(Jack Dorsey)의 아이디어였다. 도시는 친구·직장동료들과 메신저와 휴대전화 단문메시지(SMS)를 통해 간단하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2006년 3월이었다. 정식 오픈은 2006년 7월이었다. 한 음악축제 소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트위터는 널리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열성적인 트위터 사용자다. 오바마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시간날 때마다 ‘트윗질’을 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포스트를 하나 올리더라도 가능한 한 체계적인 논리를 갖춰 관련 자료를 준비해 글을 써야 한다. 반면 트위터는 쉽다. 특히 시간이 많이 부족한 유명인사들도 단문메시지로 운영할 수 있으니 부담이 적다. 이를테면 식사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트위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숙련도가 그리 높지 않아도 된다. 휴대전화로 문자 답장을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다.
 
이 대표는 페이지뷰 등의 단순비교가 현 상황에는 별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구글 vs. 네이버’와 ‘트위터 vs. 미투데이’의 결정적 차이는 글로벌 웹 기업 구글이 구글코리아를 설립해 한국에 적극적으로 진출한 반면, 트위터는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다는 점. 한국지사는커녕 한글서비스에 대한 고려도 하고 있지 않는 글로벌 기업을 비교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트위터를 벤치마킹한 한글판 서비스 ‘야그(yagg)’를 준비 중인 신동호 링크나우 대표는 “사실 아직까지 트위터 검색에서 한글 콘텐츠는 완벽하게 잡히지 않는다”라면서 “현재까지 트위터에서 특정 사용자를 찾고 싶으면 유명인 트위터를 거쳐 다시 선택하는 방법 이외에 별 다른 방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트위터 사용자가 겪는 또 하나의 곤란한 점은 휴대전화 문자로 트위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NHN의 미투데이 서비스가 지난 7월15일부터 한 달 간 모든 회원에게 휴대전화에서 미투데이를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을 300개 무료 제공한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트위터와 미투데이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트위터는 상대방의 동의없이 ‘들여다보기’가 가능하다. 반면에 미투데이는 싸이월드 ‘일촌’과 비슷한 ‘미친’ 관계가 돼야 한다. 즉 서로 동의해야 관계가 만들어진다. 트위터에 삽입된 링크는 140자 제한에 포함된다. 그래서 링크단축 축약과 같은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나 미투데이 링크는 150자 내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트위터의 경우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한 답신이 자신의 페이지에 올라간다. 반면에 미투데이의 경우 해당 글의 ‘댓글’로 답변이 등록된다. NHN 측은 “트위터는 이른바 자기 홍보 목적에서 스팸성 답신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IT 칼럼니스트 조중혁씨는 “결국 시장은 양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위터가 주로 ‘정보’ 공유 목적으로 사용되는 반면에 미투데이는 이름에서도 보이듯 ‘동감’, 즉 정서적 동의를 중심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세대 간의 분화도 감지되고 있다. 트위터를 주로 사용하는 층이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30, 40대 위주라면 미투데이의 주 사용층은 이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문자’에 능숙한 10, 20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트위터는 채팅이나 ‘문자질’을 웹을 통해 저장할 수 있는 매체다. 블로그 포스팅과 같은 경우 어느정도 정제된 글을 올리지만 문자나 채팅의 경우 즉홍적으로 글을 날리는 때가 많다. 문제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을 때다. 자신이 포스팅한 글을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어느 검색엔진의 캐시서버에 저장돼 평생을 따라다닐 지도 모른다. 조씨는 “싸이월드에서 사생활 노출과 관련된 몇몇 사건이 있었지만 싸이월드는 적어도 웹에서 검색되진 않았다”라면서 “하지만 트위터는 설령 잘못 이용했을 경우 평생 따라다니는 주홍글씨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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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동네’에 무슨 일이? (시사IN [101호] 2009년 08월 17일 (월) 15:25:13 고재열 기자)
트위터 열풍이 불고 있다. 국회의원도 연예인도 기업인도 언론인도 모두 트위터 만들기에 한창이다. 기자가 직접 트위터를 개설해 구독자 1000명을 모아보며 트위터 세계를 집중 취재했다.  
 
“트위터 열풍이라는데, 트위터가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이 요즘 부쩍 늘었다. 기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불과 12일 전까지는 그랬다. 먼저 트위터(twitter.com)를 시작한 사람들이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설명을 들어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140자밖에 쓰지 못하는 단문 블로그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트위터를 직접 해보기로 했다. 직접 해서 트위터가 얼마나 싱거운 것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미 ‘독설닷컴’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1400만명의 방문자를 모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다소 오만방자한 생각을 품고 트위터 세계에 뛰어들었다.
 
일단 트위터 홈페이지에 가서 등록을 했다.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정도의 간단한 과정으로 트위터(@dogsul)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일과 다른 트위터를 구독(following)하는 일이다. 특히 구독할 만한 트위터를 찾아내는 데 요령이 필요했다.
 
먼저 노회찬(@hcroh) 심상정(@sangjung sim) 등 정치인, 김제동(@keumkangkyung) 박중훈(@moviejhp) 등 연예인, 소설가 이외수(@oisoo), 김주하(@kimjuha) 앵커,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Solarplant) 회장 등 유명인 트위터를 찾아다니며 구독을 해두었다. 트위터를 통해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명인 외에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ohyeonho) 등 기자의 트위터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기자들이 트위터에 올리는 ‘날정보’를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유명인이 구독하는 트위터를 찾아다녔다. 유명인들은 보통 구독하는 트위터가 10명 이내다. 유명인이 구독한다면 나도 구독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따라 했다. 유명인들은 보통 버락 오바마(@ObamaNews)와 같은 외국의 유명 정치 지도자나 오프라 윈프리(@Oprah) 같은 유명 연예인을 구독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외국의 유명한 정치 지도자나 유명 연예인이 구독하는 트위터를 구독하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구독 행렬을 이어갔다. 유명인 구독 리스트가 100명 이상이 되자 왠지 모를 포만감이 느껴졌다. 기자 트위터도 이런 식으로 활용했다. 기자들이 구독하는 트위터라면 정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역시 구독하기로 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트위터 이용자 대부분이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명인 트위터는 구독자가 빠르게 증가한다. 개그맨 김제동씨 트위터의 경우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와 “저 눈 작은 제동이 맞아요.^^”라는 두 편의 글만을 올리고도 구독자를 5000여 명 확보해 ‘1타 2500피’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트위터 세계에서 인기가 좋은 유명인은 솔직하고 말맛을 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다. 패션에 대한 생각을 묻는 패션지 기자의 질문에 그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패션이 이를 수정 보완했다”라고 답했다. 그의 재치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신이 MB를 창조했다. 그리고 이를 수정 보완하기 위해서 노회찬을 보냈다”라고 답글을 보내주었다. 
 
유명인 트위터 중에서는 대체로 정치인 트위터의 행태가 유별났다. 다른 유명인들은 극소수의 트위터만 구독했지만 정치인은 자신의 트위터를 구독하는 사람들의 트위터를 거의 다 구독했다. 그래서 자기가 구독하는 트위터와 자신의 트위터를 구독하는 사람의 비율이 1대1이었다. 노회찬·심상정·정동영(@coreacdy) 등 대다수 정치인이 비슷한 양상이었는데, 유일하게 김형오 국회의장(@hyongo)만 1대6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치인 관련 트위터 중에서는 한나라당과 관련된 트위터(@hannara_centris)가 욕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관련 트위터의 비율은 4대1이었다. 한나라당 트위터를 구독하는 사람 수보다 한나라당 트위터가 구독하는 트위터 수가 4배나 많은 것이다. 트위터를 이용해본 사람은 이것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 더 많이 듣는다’가 아니라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무작위로 구독했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트위터가 정치인·언론인·기업인·연예인 등 여론 주도층 사이에서 급격히 인기를 끌고 있다.
어찌되었건 트위터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할 구독자를 확보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의 트위터를 구독하는 것만큼 자신의 글을 읽어줄 구독자(follower)를 많이 모으는 일 역시 중요하다. 기자는 구독자 목표를 1000명으로 잡았다. 마감 날(8월14일) 자정까지 구독자를 1000명 모으고 그 체험기로 기사를 쓰겠다고 편집국장에게 호언장담했다. 트위터 시작으로부터 열흘하고 한나절이 되는 시점이었다.
 
배우 애시턴 커처가 CNN과 구독자 경쟁을 펼쳤던 것이 생각나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청와대 김철균 국민소통비서관(@sau nakim)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둘은 700명 내외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 구독자 1000명을 달성하는지 겨뤄보자고 제안했다. 오 대표기자는 소통의 ‘양’보다 소통의 ‘질’이 중요하다며 완곡하게 거절했고 김 비서관은 흔쾌히 응했다. 대신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 ‘청와대 비서관과 구독자 모으기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공표하지 않는다는 규칙이었다.
 
트위터에서 구독자를 모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구독을 많이 해서 상대방이 내 트위터도 구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김 비서관은 주로 이 방법을 사용했다. 다른 한 가지는 수다쟁이가 되는 것인데 기자는 이 방법을 택했다. ‘새가 지저귀다’라는 ‘트위터(twitter)’의 원래 뜻처럼 열심히 재잘거렸다. 하루 평균 25건 글을 올렸다.
 
국내 이용자 중에서 최고 수다쟁이 트위터는 ‘@ludens_’다. 이 트위터는 총 1만5000개 글을 올렸는데, Twitoaster에서 집계한 전 세계 트위터 활동지수에서 7위를 기록했다. 국내 이용자 중에서 그보다 활동지수가 높은 사람은 소설가 이외수씨(2위)와 MBC 김주하 앵커(5위)뿐이다. ‘자주 짖는 새가 구독자를 모은다’는 것이 트위터 세계의 법칙이다. 
 
수다를 떠는 데는 요령이 필요하다. ‘일정한 시간에 반드시 나타난다’ ‘일정한 주제를 이야기 한다’ ‘퀴즈를 내는 등 일정한 방식이 있다’ 따위 규칙성을 보여줄 때 고정 독자층이 생긴다. 기자는 여러 가지 설문을 하는 것으로 특화했고 ‘이외수 어록에 토달기’라는 고정란을 개발했다. 이외수씨가 “이별 한 번에 나이 열 살”이라고 올리면 “사랑 한 번에 빼기 열 살”이라고 올리는 식이다.
 
이런 노력으로 꾸준히 구독자가 늘었지만 증가하는 속도가 느렸다. 그때 지원병이 나타났다.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leegian) 등 일군의 진보 성향 트위터가 구독자 확보를 돕는 구독운동을 벌여주었다. 이런 ‘정언유착’을 통해 구독자 100여 명을 새로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트위터가 ‘좌파적 공간’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트위터 열풍의 군불을 지핀 곳은 한나라당으로 이재오(@JaeOhYi) 전 의원과 정두언(@doorun) 진수희(sheechin) 나경원(Nakw) 의원 등이 활동하고 있지만 미디어법 표결 처리 이후에는 거의 활동이 답보 상태다. 
 
트위터를 이용해보면 자신이 구독한 트위터나 자신의 트위터를 구독하는 사람의 성향을 통해 공간의 특성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기자의 경우 관계한 트위터의 3분의 1 정도는 IT 기업 종사자나 CEO 혹은 담당기자의 트위터였고, 3분의 1가량은 ‘MB OUT’이라는 문구를 프로필 사진에 넣을 정도로 사회참여적인 트위터였다. 나머지 3분의 1은 유명인이나 기자 혹은 지인의 트위터였다.
 
취향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기 때문에 트위터 세계는 일반 인터넷 공간보다 거칠지 않고 따뜻한 편이다. 트위터 이용자 ‘@doomok’은 이에 대해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상황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대중문화 평론가 김낙호씨(@capcold)는 “트위터의 특징은 1990대 인터넷이 대중화될 때 주목되었던 요소인 ‘신속하고 거대한 집결 기능’ ‘새로운 활용 가능성의 지속적인 발견’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구독자를 850명 정도 확보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안티’가 생겼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트위터 세계에서 ‘숫자 밝히는 남자’로 찍혀 있었다. 트위터 세계의 감수성은 예민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 조작을 하려는 것에 대해 터줏대감들의 반감이 컸다. 최근 네이버가 트위터와 유사한 단문 블로그 서비스인 ‘미투데이’를 팬덤을 활용해 부양하려는 것에 대해 이용자들이 반발하기도 했는데,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구독자를 모으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단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트위터 특집기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되었다. 동아일보·<위클리경향> 기자는 물론 <대학내일신문>의 대학생 기자도 트위터 특집기사를 취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자협회보> 기자가 기자들이 트위터를 활용해 기사를 쓰는 것을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입수했다. 심지어 트위터 관련 외고를 부탁한 경희사이버대학교의 민경배 교수(@neticus)가 원고를 쓰지 않고 딴전을 피우는 사실도 포착해 원고를 독촉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트위터의 정보력은 놀라웠다. 사실관계에 대해 논란이 생기면 모두가 정보원이 되어 정보를 파악한 뒤 트위터에 올렸다.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의 농성 속보는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올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는 오연호 대표기자 등 기자가 속보를 올렸다. 개그맨 김제동씨가 진짜 트위터를 하느냐는 논쟁이 일었을 때는 소설가 이외수씨가 “전화해봤는데 그가 맞다”라고 확인해주었다.  
 
기자에게 트위터는 특히 유용했다. 트위터 특집기사 작성을 위해 트위터를 활용해보았다. ‘빨리 트위터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유시민 전 장관을 가장 많이 꼽았다)’ 등 열다섯 가지 정도의 질문을 순차적으로 올렸는데, 질문마다 답변이 수십 개 왔다. ‘트위터 할 때 버릇’을 묻는 질문에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뚫어져라 모니터를 쳐다본다’는 답변에 100명 이상의 이용자가 자신도 그렇다며 댓글을 남겼다. 기자가 이 글을 읽을 때도 그랬다.
 
설문 외에도 트위터를 통해 기사 작성에 큰 도움을 받았다. 트위터 기사에 쓰일 일러스트를 만드는 데 트위터 이용자들의 사진이 필요했다. 특히 일반 이용자의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이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사진이 수십 장 이메일로 왔다. 이 외에도 여러 이용자가 ‘신기술 울렁증’이 있는 기자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며 기사 작성을 도왔다.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기간 내 트위터 인맥을 확장시켜놓았기 때문이다. 트위터 인맥의 규모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반기웅 인턴 기자에게 기자의 트위터를 이용해보고 체험하도록 해봤다. 반 기자는 “주변 사람들과 나눈 잡담이 대부분이고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적은 내 트위터와 달리 선배의 트위터에는 볼만한 내용이 속속 올라왔다.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활발해서 취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트위터 특집기사를 쓰기 위해 트위터를 이용한 11일 동안 하루 평균 10시간 내외로 트위터에 빠져 지냈다. 트위터에 ‘몰입’ 혹은 ‘중독’된 덕에 Twitoaster 전 세계 트위터 활동지수 순위 122위에 오를 수 있었다. 구독자 1000명을 모으겠다고 장담한 8월14일 자정을 4시간 앞둔 현재, 기자의 트위터 구독자 수는 967명이다(김철균 비서관은 84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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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스타의 소통 비결 (시사IN [101호] 2009년 08월 17일 (월) 15:28:51 반기웅 인턴 기자)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가 된 말은 ‘소통’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소통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어떻게 국민과 소통해야 할까? 그 답을 찾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될 트위터계 스타 4인을 소개한다. 
 
내 별명은 ‘트위터 박’ - 영화배우 박중훈
트위터는 애인에게 뽀뽀하듯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밤마다 나타나는 퀴즈녀 - MBC 김주하 앵커
나야 용만이 형!! 김용만 말구 박용만 -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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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마법’에 걸리는 이유 (시사IN [101호] 2009년 08월 17일 (월) 15:30:09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NGO학과)
트위터 열기가 거세다. 글로벌 웹 서비스가 한국 시장에서만은 통하지 않는다는 ‘토종불패’ 신화를 위협하고 있다. 트위터가 국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아보았다.  
 
외국의 인터넷 서비스에 냉담했던 국내 누리꾼이 유독 트위터의 매력에 심취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역설적이게도 외국산 서비스인 트위터에서 가장 한국적인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은 인터넷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게시판과 블로그이다. 하지만 트위터 커뮤니케이션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게시글과 댓글이 위계적 구조를 형성하는 게시판이나 블로그와 사뭇 다른 방식을 보인다.
 
트위터는 말 그대로 온갖 수다의 난장이다. 오늘 점심 메뉴 같은 사소한 이야기부터 미디어 악법 철폐를 주장하는 공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병렬로 뒤섞여 펼쳐진다. 누군가는 혼잣말을 주절거리고,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말을 걸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대화에 기웃거린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수다 그룹이 형성되고, 이들이 수시로 이합집산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위터는 국내 누리꾼이 익숙해져 있는 인터넷 이용 습성을 잘 충족시켜준다. 우리 누리꾼은 세계에서 가장 게시판 댓글 문화가 발달되어 있으며,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전송량이 통화량보다 더 많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140자라는 제한된 글자수 내에서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트위터식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익숙하다.
 
게다가 국내 누리꾼은 이메일과 인스턴트 메신저에나 적합할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까지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공개된 게시판에 버젓이 올려 버릇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트위터에 사적인 일상을 공개하는 일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는 트위터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순위를 보여주는 ‘트윗토스터’(http://twitoaster.com/ranking)라는 서비스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트윗토스터’는 트위터에서 “@id” 명령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얼마나 많은 개인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측정해 순위를 매긴다. 그런데 전 세계 상위 50위의 면면을 살펴보면 항상 한국인이 15명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사적 대화의 공유라는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 특성이 그만큼 트위터에서 왕성하게 표출된다는 뜻이다.
 
포털에서처럼 아이디 하나로 다양한 연계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트위터가 한국적이라 할 만한 또 다른 이유이다. 트위터의 오픈API 정책은 수천 개에 이르는 연계 서비스를 출현시켰다. 이용자는 이런 연계 서비스를 통해 트위터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릴 수도 있고, 간단한 여론조사를 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를 연동시킬 수도 있다. 무수한 연계 서비스가 트위터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해놓았다. 물론 트위터 생태계가 국내 포털처럼 폐쇄적인 칸막이를 쳐놓은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이용자로서는 필요한 기능들을 곳곳에서 간편하게 제공받을 수 있기에 포털에서 맛보았던 편리성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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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2 00:27 2009/08/2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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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산당 부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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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산당과 관련한 기사들도 발췌하여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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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산당의 ‘부활’ …지방선거서 대약진 (경향, 도쿄 | 조홍민특파원, 2009-05-01 18:16:55)
 
일본 공산당이 최근 선거에서 약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지방의회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과 민주당의 틈새를 파고들며 지방의회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공산당은 지난달 82개 시초손(市町村, 한국의 시·군·구에 해당)에서 치러진 의회선거에 157명의 후보자를 내보내 142명을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전체 지방의회에서 공산당 소속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도 6.4%에서 7.9%로 크게 늘었다. 의석이 하나도 없던 9개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냈고, 구마모토(熊本)현 가미아마쿠사(上天草)시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가 1위로 당선됐다. 공산당의 선전은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반감, 경기악화로 어수선한 가운데 고용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덕분이다. 이치다 다다요시 당 서기국장은 “고이즈미 내각의 구조개혁으로 지역이 피폐해지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가 날카롭게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공산당은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후 고용과 빈부격차 문제를 국회 대책의 최우선 전략으로 내세워왔다. 최근 오자와 민주당 대표의 불법자금 수수 의혹을 둘러싼 자민·민주당의 이전투구에도 거리를 둔 채 정책 중심의 노선을 견지했다. 대기업과 유착하지 않는 깨끗한 이미지도 공산당 인기상승의 비결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 당원도 늘어 2007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1만8000여명이 새로 입당원서를 냈다. 공산당은 여세를 몰아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도 두 자릿수 의석확보(현재 9석)를 기대하고 있다. 득표도 지난 총선 때보다 30% 높은 650여만표로 목표를 잡았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30일 차기 중의원 선거와 관련, “진전된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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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공산당 바람’ 심상찮네 (한겨레, 도쿄/김도형 특파원, 2009-05-01 오후 09:39:46)
지방선거 9석 늘려…중의원선거 대약진 목표
 
매달 1000명이 넘는 신규 입당자를 확보해 당세가 급신장하고 있는 일본 공산당이 4월 지방선거에서도 의석을 9석이나 늘리고 득표수도 50% 가까이 확대하는 등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공산당은 4월 82개 시·촌 의원선거에서 157명이 입후보해 145명이 당선돼 의석을 9석 늘리고 전체 의회 정원에서 공산당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을 6.4%에서 7.9%로 늘렸다고 1일 밝혔다. 같은 선거구의 득표수도 2007년 7월 참의원선거 때에 비해 48.4%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공산당은 이번 선거에서 의석이 없던 9개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30일 기자회견에서 “전진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고 고무적인 표정을 지었다.
 
우에키 도시오 일본 공산당 홍보부장은 1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국민들은 수입이 줄어들어 힘든 생활을 하는 가운데 국민건강보험 등 공적부담은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공산당이 각 지역에서 공적부담을 줄이는 의정활동을 유일하게 집중적으로 펼친 것이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공산당은 올해 9월까지 치르게 돼 있는 중의원선거에서 이전 중의원선거 때보다 30% 이상 늘어난 650만표이상을 득표해 현재 9석인 의석을 크게 늘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서 소선거구 입후보자 수를 150명 정도만 내고 비례대표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일본 공산당은 지난 2007년 9월 이후 매달 신규 당원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나 현재까지 1만8천명의 입당자를 확보했다. 2007년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각 지역의 2만2천개 각종 공산당 지부조직을 강화해 병구완보험료 인하 등 각 지역 실정에 맞는 풀뿌리 운동을 적극 전개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여기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구조개혁 이후 격차와 빈곤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안전망의 보호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이 급격히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가을 이후 세계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의 한계가 거론되고 있는 점도 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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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공선 그리고 공산당 (레디앙, 2009년 06월 19일 (금) 10:32:05 정창호 / 비정규직 노동자)
[투고] 부활하는 일본의 젊은 노동자들…한국공산당의 재건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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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日공산당의 ‘파격적 변신’ (경향, 조홍민 특파원, 2009-07-13 00:48:24)
 
일본공산당이 변신하고 있는 모습이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서신 교환은 대표적 사례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지향한다”고 한 연설에 감명받은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먼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1922년 공산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공산당 위원장이 주일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 대통령의 연설을 환영한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당신의 열정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답장이 도착했다.
 
지난 2일에는 시이 위원장이 미국대사관이 주최한 독립기념일 리셉션에 처음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위원장은 “독립기념일은 모든 인류에게 중요한 날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인권선언을 발표했다”며 덕담을 건넸다. 기회가 닿으면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미 제국주의는 세계 평화의 최대의 위협”이라면서 반미 노선을 주창해온 일본공산당의 이 같은 파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공산당이 편지 한 통으로 전향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앞서 지난달 27일자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1면에 10년 전 국기(히노마루) 게양과 국가(기미가요) 제창 법제화를 주도해 추진했던 노나카 히로무 전 자민당 간사장의 인터뷰가 실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노나카는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는 전전(戰前) 침략전쟁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공산당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노나카도 인터뷰에서 “52년 정치인생을 보내면서 당신들(공산당)에게 나의 생각을 털어놓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밝혔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전향적인 방향에서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면 함께 노력해 가겠다.” 1990년대 시이 위원장이 당 서기국장으로 일하면서 한때 불편한 사이였던 진보적 지식인 오다 마코토와 화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이는 당위원장이 된 이후 ‘독점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일본 게이단렌과 만나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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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공산당 '때아닌' 문전성시 (한국, 도쿄=김범수 특파원, 2008/08/05 03:09:25)
"아무리 일해도 끼니 걱정뿐… 차라리… "
비정규직 20代·연금 불만 60代 등… 10개월새 당원 1만명 증가 '이례적'
 

 
일본 공산당 기관지 '신분아카하타(赤旗)'는 지난해 9월 제5회 중앙위원회 총회 이후 신규 당원이 1만 명을 넘었다고 최근 보도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나라 못지않게 뿌리 깊은 일본에서 이 같은 당원 증가는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 공산당에 따르면 당원은 버블 경제 붕괴 직전인 1990년께 50만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후 감소일로를 걸어 최근에는 40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 공산당 중앙위 간부회 위원장은 지난달 제6회 중앙위 총회 간부회 보고에서 "일본 공산당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1929년 발표된 일본 프롤레타리아 소설 <가니코센>(蟹工船ㆍ게 가공선)이 올해 들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자본론> 새 번역본이 5만 부 이상 팔리는 등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다루는 언론 기획이 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면서 "해답을 공산당에서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1922년 창당한 일본 공산당은 정당 이름과 조직을 그대로 유지해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정권 탄압을 받아 조직이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고 전후에는 냉전 상황에서 이렇다 할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한때 40명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지만 지금은 중의원 480명중 9명, 참의원 242명중 3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최근 늘어난 신규 당원 중 30세 이하 젊은 층이 20%, 60세 이상 고령자가 20%인 것도 눈에 띈다. 비정규직으로 쉽게 내몰리며 '격차 사회'의 피해를 몸으로 느끼는 젊은이와 고령자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신분아카하타에 따르면 최근 당원이 된 한 청년은 "인간 대접 없이 미래는 없다"며 파견노동자 문제를 거론한 시이 위원장의 국회 질의를 듣고 입당신청서를 냈다. 사회보험제도에 불만을 품은 60, 70대 새 당원도 적지 않다.
 
공산당은 지난 달 일본 정부가 중학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교육을 명기하자 주변국과 대화하지 않는 일방적인 정책이라고 가장 먼저 비판했다. 시이 위원장은 "올해 안에 당원을 2만명 이상 늘리겠다"며 의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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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전 日계급소설 '해공선' 영화로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2008-11-12 11:45)
 
 

일본 계급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ㆍ1903~1933)가 1929년 발표한 '가니코센'(蟹工船ㆍ게 가공 어선)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해공선(蟹工船)에서 벌어지는 자본과 권력의 폭력과 착취,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을 그리고 있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인 '가니코센'은 장기 불황과 경기 침체로 크게 늘어난 일본의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와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저임금의 비정규 젊은이)의 현실과도 맥이 통해 올해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해 재조명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내년 개봉 예정으로 이달말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가니코센'은 '하드 록 히어로(Hard Rock Hero)'를 찍은 바 있는 사부(SABU)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주연은 영화 '나나'로 친숙한 연기파 배우 마쓰다 유헤이(松田龍平ㆍ25)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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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코센’과 일본의 그늘 (서울, 박홍기 도쿄 특파원, 2008-11-15  26면)
 
올해 일본 출판계의 화제는 단연 ‘가니코센(蟹工船·게 가공선)’이다. 지난 1929년 6월 고바야시 다카시가 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이다. 80년이 지난 올해 재조명과 함께 무려 60만권이나 팔렸다. 만화로 그려졌는가 하면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가니코센의 붐이다.
  
일본에서 가니코센의 재출현은 사건이나 다름없다. 과거의 역사에나 머무를 법한 내용인 까닭에서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연구자나 관심있는 독자들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터다.1980년대 ‘1억 총인구=중류층’이라고 자랑하던 경제대국, 일본에서 ‘빈곤’이나 ‘궁핍’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어(死語)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니코센을 찾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가니코센의 내용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51%에 달했다. 열악한 고용의 현실에다 양극화 즉,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일본의 비정규직 실태는 심각하다. 2007년 취업구조 기본조사 통계에 따르면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35.5%다. 1737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젊은 층의 신규 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처지다. 때문에 일하는 빈곤층인 워킹푸어를 비롯,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저임금의 프리터,PC방을 드나드는 젊은 층의 홈리스인 ‘넷카페 난민’ 등 격차 사회를 빗댄 용어들도 범람하고 있다.
 
격차 문제의 진단은 쉽지 않다. 다만 대체로 시장의 역할을 중시한 ‘고이즈미 개혁 ’의 후유증 탓에 가속화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뒤 기업의 실적 회복을 위해 인건비 삭감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도 노동자파견법 등의 규제완화로 호응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저임금과 해고의 유연성에 대한 보장이다.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의 지향속에 고용·사회보험·공적지원 등의 안전망은 느슨해졌다.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자기책임론’에 짓눌려 할 말을 제대로 못하던 젊은 층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자기책임만이 아닌 정치·사회구조의 희생양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니코센에의 자기 투영이다. 지난달 19일 도쿄 시내에서 열린 ‘반(反)빈곤’ 집회에 참가한 비정규직들은 “인간다운 생활과 노동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외쳤다. 중의원 선거에 격차 문제를 쟁점화할 만큼 조직화되고 있다. 최근 1년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한 신규 당원은 1만명을 넘었다. 물론 ‘가니코센 현상’을 일본 사회 전체의 움직임인 양 과대 평가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나 기업도 격차 문제의 해소를 위한 처방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2009/01/13 13:16
작년부터 부쩍 일본 공산당을 언급하는 기사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1929년 6월 고바야시 다카시가 쓴 '게공선'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이 덧붙여진다. 오늘은 경향신문에 경제위기 속에서 석달 사이에 14,000명이 입당하는 등 일본 공산당이 뜨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정도면 작년 촛불정국에서 늘어난 진보신당의 신규 당원수보다는 적지만, 이어져오던 추세와는 다르기에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게공선>은 장기 불황과 경기 침체로 크게 늘어난 일본의 워킹푸어와 비정규직 확산의 현실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서 2008년에 재조명을 받았고, 영화화도 추진되고 있단다. <게공선>은 이런 관심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작년에 문파랑이라는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80년대에 이미 친구라는 출판사에서 다카시가 쓴 다른 작품과 함께 '세계민주문학선-일본편'으로 발간된 <게공선>을 읽었다. 그 때 읽었을 때에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오히려 1920년대 노동운동을 하던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투쟁중에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문받는 이야기를 다루었던 단편이 더 흥미로웠다.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 그렇게 고문을 받으면서 사회주의자들은 '적기가'(인민의 기 붉은 기는 ~)를 부르는 장면이다. 참고로 작가 고바야시 다카시는 노동운동도 열심히 했던 현장활동가였는데, 1929년에 <게공선>을 쓴 후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끝에 1933년 29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데 말이다.
 
일본 공산당과 <게공선>이 뜬다는
한겨레의 기사를 보고 다시 찾아서 읽었는데도 역시 감흥이 오지 않더라. 그런데 뭐가 좋다고 그 책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감성이 다른 건가, 아니면 번역이 이상한 건가.
 
일본 공산당이 뜨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이 새로 입당한 실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아니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인 신규 당원들이 일본 공산당을 바꿀 수 있을까. 잘 되기를 바라지만, 글쎄다. 일본 공산당도 신규 당원들도 192-30년대 파쇼 치하의 일본 공산당,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바에야... 
 
아무튼 <게공선>과 일본 공산당을 지켜보면 문학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명작이 나오지 않으려나. <난쏘공>으로는 조금 약한 것 같고... <전태일 평전>은 소설이 아니고... 일본과는 달리 사회주의자나 노동운동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대중적인 반향을 얻기엔 한국의 현실이 너무 척박한 듯 싶다. 미네르바 체포에서 보이듯 표현의 자유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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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위기 속 공산당은 ‘호황’ (한겨레, 도쿄/김도형 특파원, 2009-01-01 오후 08:15:02  )
월1천명 이상 가입…젊은층 당원 크게 늘어
 
일본 공산당에게 지난 2008년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일본 공산당의 통계를 보면 2007년 9월~2008년 8월 기간 중 입당한 신규 당원은 1만4천여명이다. 월 평균 1천명이 넘게 늘었다. 신규 당원중 20~30%가 18~29살의 젊은이다. 당원의 고령화에 고민하던 공산당으로서는 큰 활력을 얻은 셈이다. 2007년 8월까지 입당자는 월 평균 500여명, 젊은이는 10~20% 수준이었다. 한 공산당 중앙위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날품팔이 파견노동자나 계약직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공산당 활동에 관심을 갖거나, ‘더 알고 싶다’며 찾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적기>의 신규 구독부수도 1만부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 대표인 시이 가즈오 위원장도 인기가 높다.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파견노동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노동파견법 개정을 촉구한 지난해 2월 국회 연설의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수십만건의 접속을 기록하면서, 시이 위원장은 큰 공감을 얻었고 10여곳의 언론에 인터뷰가 실렸다.
 
공산당 붐에는 80년 전 출판된 공산당 작가 고바야시 다키치의 고전적 프롤레타리아 소설 <게공선>의 기록적인 돌풍(2008년 50만권 판매)도 한몫했다. 혹한의 캄차카해에서 게를 잡아 배 위에서 통조림을 만드는 가혹한 노동조건과 이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단결투쟁을 그린 줄거리가 혹독한 고용불안 속에 파편화된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산당은 늦어도 올 10월 안에 실시될 총선에서 민주당과 공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당의 이념 확장보다는 정권교체를 위한 현실 노선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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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뜨는 日공산당…석달새 1만4천명 입당 (경향, 도쿄 | 조홍민특파원, 2009-01-12-18:09:44)
 
일본 공산당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 악화로 실직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고용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공산당에 입당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12일 공산당 홍보부에 따르면 공산당 당원은 1990년 50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94년엔 40만명 안팎까지 당원이 감소했지만 지난해 9~12월 석 달 사이에만 1만4000여명이 새로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또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 구독자도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이 기간 신규 구독자가 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당자가 급증하는 것은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자민당이나 민주당 등 기존 정당과 이들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공산당이 소외계층을 겨냥해 2006년부터 “직업과 관련된 고민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며 홍보에 주력한 것도 당세 확장에 도움이 됐다.
 
고용 문제나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에 힘을 기울인 것도 주효했다. 인터넷에서 고용이나 해고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공산당 홈페이지가 상위에 오를 정도다. 당의 한 고위간부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공산당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람도 요즘엔 ‘도움받을 곳은 공산당밖에 없다’면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2009/02/19 20:51
한겨레가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최근 신규가입 당원의 급증 과정에서 게공선의 영향과 함께 시이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알던 것도 그렇고, 인터뷰에서 나타난 내용도 그렇고, 프랑스에서 새로 창당한 반자본주의 신당과는 다른 느낌이다.사민주의 정당이라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일본공산당에 젊은이들의 관심과 가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서이다. 신좌파로 분류되는 세력들이 지역정치와 생태, 여성운동에 존재하고 있지만, 중핵파 등 변혁을 지향하는 집단이 분파투쟁으로 사라진 상황에서 좌파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의미한 세력이 일본공산당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일본공산당이 1922년에 창당했던 과거의 일본공산당은 아닌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당명이 같아서인지 이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다. 천왕제를 인정하면서, '룰 있는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지금의 일본공산당이, 갖은 탄압 속에서 변혁을 위해 싸워왔던 <게공선>이 쓰여질 당시의 일본공산당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청년 공산당원들이 일본공산당을 급진화시키는 것이 나름의 보완책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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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산당원 급증 비결? 비정규직 문제 파고든 덕” (한겨레, 도쿄/글 김도형 특파원, 2009-02-19 오후 07:45:02)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
 
지역별 상담망 통해 사회 취약층 밀착 활동, 생활보호 신청·채무 해소 도우며 당세 약진
“파견노동 확대로 일회용품 노동자 양산, 최소한 ‘룰 있는 자본주의’ 전환 꾀해야”

 
세계 2위 자본주의 대국 일본에서 요즘 공산당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1만5천명이 당원으로 가입했다. 같은 기간 외국 언론 스물두곳이 일본공산당을 취재해 갔다. 자민당 등 일본 주요 정당들의 당원이 줄고, 무당파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본 공산당만 유독 약진하는 까닭은 뭘까?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식 구조개혁과 규제완화의 부작용으로 비정규직과 ‘워킹 푸어’(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계층)가 늘어난 것이 요인으로 꼽힌다. 또 공산당의 풀뿌리 활동이 호소력을 얻었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다른 두가지 요인도 거론되고 있다. 열악한 노동현실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를 그린 고바야시 다키지의 80년 전 소설 <게공선>이 최근 다시 각광받으며 50만권이나 팔려나가 공산당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나머지 요인은 바로 일본 공산당 최고책임자 시이 가즈오(55) 위원장의 활약이다. 지난해 2월 일본 정기국회에서 시이 위원장이 날품팔이 파견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지적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그는 스타가 됐다. 당시 인터넷 댓글에 올라온 ‘잘했어, 시이’라는 뜻의 시지제이(CGJ, ‘시이 good job’)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시이 위원장은 이달 열린 올 정기국회에서도 막대한 흑자로 돈을 쌓아놓고도 비정규직을 잘라내는 대기업의 행태를 지적하며 ‘룰 있는 자본주의’를 주창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시이 위원장은 도쿄대 물리학과 1학년 때 일본 공산당에 입당해 1990년 35살에 당 중앙위 서기국장에 취임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6년 일본 공산당 당수로는 처음 한국을 방문해 서대문형무소 터를 찾아가 헌화했다. 지난 1월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신년모임에 참석해 재일 외국인에게 선거권·피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다. 13일 도쿄 요요기의 일본공산당 당사에서 만난 시이 위원장은 시종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일본공산당의 당세가 크게 신장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일본의 노동조건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의 40%까지 늘었습니다. 1999년 파견노동 금지를 풀어 2004년 제조업까지 확대하는 등 노동을 완화시킨 결과입니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워킹 푸어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 사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괴로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에 들어왔습니다. 20~30대의 젊은층이 20~30%쯤 됩니다. 20대 커플이 나란히 입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당에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공산당은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에 주력하고 있나요?
“저희는 각 지역에서 생활 노동상담 활동을 펼칩니다. 어떤 노동 상담도 가능합니다. 생활보호 신청에 대한 지식부터 다중채무자를 위한 노하우까지 공산당만큼 생활문제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 곳이 없습니다. 구청이나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면 ‘정말 생활이 곤란하면 공산당과 의논하라’고 할 정도입니다.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우리 당을 창당한 근본 이유입니다. ”
 
일본 공산당은 전국 40만 당원들과 2만여 지부로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한때 ‘1억 총중류’라고 할 정도로 중산층 평등사회였던 일본 사회의 사회안전망이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으로 허술해지면서 공산당이 구축한 전국 조직망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 구실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왜 이렇게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보는지요?
“노동정책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규제 완화를 극단적으로 진행하면서 ‘일회용품 노동’이 급속도로 확대됐죠. 연수입 200만엔(한화 3170만원 정도) 이하 저임금 노동자가 1천만명이 넘는 사태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경비절감을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대기업들이 한때 유례없는 흑자를 올렸는데도 일본 사회 전체를 보면 빈곤화되는 구조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일본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빈곤대국이 되었습니다.”
 
-일본공산당은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을 규제하는 제도가 필요하고, 파견노동은 전문직 말고는 금지해야 합니다. 유럽에선 비정규직도 같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꿔도 기업으로선 비용절감 혜택이 별로 없어요. 비정규직이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휴업수당도 넉넉합니다. 반면 일본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중소기업, 환경을 지키려는 룰이 없어요. 사회보장 제도도 선진국 중 가장 빈약합니다. 일본 실업자의 20%에게만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가 나옵니다. 일본처럼 룰이 없는 자본주의에서는 세계적 불황이 오면 문제점들이 ’노숙자 양산’ 등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대기업이 내부유보금을 조금만 풀어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지난 10년간 제조업 대기업들의 내부유보금은 88조엔에서 120조엔으로 늘었습니다. 그중 1%만 풀어도 비정규직 40만명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경기에는 배당을 동결하고 고용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미국식 경영 방식으로 주주 배당을 중시합니다. 소니의 경우 1만6천명 해고를 발표해놓고 이번 회계연도 주주배당을 늘리고 있어요. 이런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공산당이 주장하는 파견노동 금지 요구에 대해 여당과 경제계는 일본 기업의 국제경제력을 갉아먹는다며 반대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는 것이 경비를 줄여 경쟁력을 높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정말로 우수한 인재를 잃어버리고 기술향상과 새 분야 개척 역량을 기업 스스로 떼어내는 게 될 수 있습니다. 인재,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어디가 잘못됐다고 보십니까?
“저희는 지금 사태를 공황의 표면화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른바 ‘카지노 자본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금융자유화를 극단적으로 진행시켜 1929년 공황의 교훈으로 만든 금융과 증권의 분리를 1999년 폐지했습니다. 그 결과 전세계 자본을 버블처럼 부풀려 각종 금융투기를 확대시켰죠. 가장 심한 예가 신용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서브프라임론입니다. 서브프라임론이 다른 증권과 섞여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어 우후죽순처럼 전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그 도박이 파탄난 것이 리먼 브러더스 파산입니다. 그러나 실물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현상적인 면에 불과합니다.”
 
-더 심각한 이면이 있는 건가요?
“그 근본에는 상품의 과잉생산이란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2002년부터 6년 동안 수출이 1.6배가량 늘어났습니다. 외주 덕분에 기업은 엄청나게 돈을 벌었지만 근로자의 급료는 2조엔이 줄었습니다. 생산은 늘어나도 소비는 점점 줄어든 거죠. 그런 자본주의의 모순이 아래에 깔려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사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특징인 이윤제일주의가 생산을 위한 생산, 곧 과잉생산을 일으켜 노동자의 빈곤와 소비저하가 드러난 게 공황이라는 거죠.”
 
-이런 상황을 분석하고 타파하는 데 공산주의가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요?
“자본주의 안에서는 공황은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룰 없는 자본주의’에서 ‘룰 있는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투기자본이나 공황을 해결하려면 이윤제일주의, 곧 자본 이익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생산으로 사회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부릅니다.”
 
-자민당이 독주하는 일본에서 정권 교체가 가능할까요?
“이번 선거에서 정권 교체 여부를 떠나 공산당의 약진 여부가 최대 초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요타나 소니 같은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파견해고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인가가 중요하죠. 이런 말을 할 수 있고 실제 하는 당이 공산당입니다. 자민당과 민주당은 매년 일본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으로부터 성적표를 받습니다. 이런 정당은 국민의 생계를 지킬 수 없다고 봅니다.”
 
일본공산당은…
지부 2만곳…지방의원 3천여명
“가장 강력한 풀뿌리 정당” 평가

 
“일본 공산당은 전세계에서는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비집권 공산당이다.” “일본 공산당은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풀뿌리 조직을 갖고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2007년 미국 시사잡지 <타임>에 실린 내용이다. 얼핏 ‘정말 그런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한 내용이지만 일본 공산당을 들여다보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1991년 옛 소련 붕괴와 소련 공산당 해체 이후에도 일본 공산당이 허물어지지 않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1922년 창당)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 및 중국 공산당과 일정한 선을 긋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몇 해 전에는 ‘천황제’도 인정했다.
 
여기에 40만명이 넘는 당원, 2만개가 넘는 지부, 3천명 이상의 지방의원 등 하부조직도 튼튼하다. 전성기 때 40명이 넘던 의원 수는 비록 16명(중의원 9명, 참의원 7명)으로 줄었지만 지난 총선거에서 7.25%의 득표율을 과시했다.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실현을 내걸고 있지만 당면 목표로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 대미 종속과 대기업 지배 타파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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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22:17 2009/08/17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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