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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운동, 위기는 위기인 갑다 - 엽기토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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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말 있었던 제3회 맑스 코뮤날레에서 김 원 교수는 "신자유주의 시기 '노동운동 위기론': 지속 혹은 변주?"라는 발표문을 통해 노동운동 위기론의 논쟁을 소개하고, 그 논쟁지점에 대해 박승옥류의 정당성과 존폐의 위기론 주장과 최장집 교수의 사회협약론, 급진적 노동운동론의 위기론, 임영일 교수의 위기의 노동정치론, 그리고 노중기 교수의 구조적 위기로서의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해 각각의 내용을 분석하고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발표내용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정리였으며, 그에 대한 이광일 교수의 토론도 이에 공감을 표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오늘 있었던 100분 토론에서 바로 이 주제를 다루더라. 무엇을 다루는가 했더니 제목이 "한국의 노동운동, 위기인가"였다. 바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7월 3일 한 강연회에서 "한국사회 노동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한 것이 파문을 일으켜 이 때문에 기획되었던 것이다. '오호, 주제는 그럴싸한데'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토론자로 양대노총 위원장이 참여한단다. 그래서 '이걸 봐야돼' 하다가 다른 걸 딱히 볼 게 없어서 틀어놨더니 가관이다.
  
계속해서 깐죽거리면서 헛소리를 해대는 이용득에 대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어버버한다. 얼마나 답답했던지 광주에서 밤 늦게 이를 지켜보고 계셨던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을 정도였다.
   
다른 부분에서도 답답했지만, 특히 비정규직법을 다룬 부분은 하도 열받아서 다른 채널로 잠시 돌려버리기까지 했다. 둘다 똑같이 핵심에서 벗어난 얘기를 해댔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비정규직의 아픔을 알고 있을까. 이걸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과연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생각하면...
  
사실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조직 노동조합운동을 대변하는 양대노총 위원장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변할 수 있는 이가 나와야 하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조장하고 이를 떠들어온 정부와 보수언론의 하수인이 나와야 했던 것 아니던가.
 
이석행과 이용득의 평소 소신을 잘 알고 있기에 화기애매하게 서로를 추켜주면서 얘기할 줄 알았는데, 민주노총의 이석행 위원장이 굉장히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것처럼 보여지기까지 한 것은 아마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만 나와서 토론했고, 사회자인 손석희가 이석행을 계속 부추겨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용득이나 이석행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넘들이 아니던가. 이석행은 시종일관 한국노총에게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하였지만, 나에게는 전혀 투쟁성을 찾아볼 수 없는 한국노총과 잘해볼 기회를 찾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석행은 어쩌자고 위원장으로 당선되어서 저렇게밖에 하지 못한단 말인가. 한미 FTA 저지를 위한 금속노조의 정치파업과 지난한 민주노총의 투쟁들을 옹호하였지만, 이석행 집행부는 오히려 거침없이 내달리는 투쟁의 불길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하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우같은 이용득이 다 해버리니 자신이 할 말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용득에 의해 자신의 말이 짤려도 번번히 제대로 대처도 못하고, 이건 이용득의 개인기를 보여주는 장으로 전락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횡설수설하였다. 토론자로 나온 양대노총 위원장 뿐만 아니라 방청객 중의 발언자, 전화연결된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그마나 말을 제대로 하는 이는 방청석에 앉았다가 발언기회를 얻은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해고자 뿐이었다. 어제 밤 홈에버 상암점에 연대방문을 했을 때 본 적이 있는 듯한 조합원이었는데, 그는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하나 전혀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얘기하였다. 자신의 경우에는 21개월 일했는데 부당해고 당했고, 3년, 5년씩 일한 비정규직노동자들 750명이 해고를 당했는데,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이용득 위원장의 답변이 가관이다. 그는 홈에버가 한국노총의 사업장이 아니라서 잘 모른다는 말과 함께 이랜드 사용자가 악질이라서 그렇다고 하면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파악하였다. 그런 예외적인 경우 말고 인간성 좋은 사용자들은 다 법대로 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이 합의해서 만들어진 비정규법은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그에 대해 이석행 위원장은 설득력 있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석행은 현재의 비정규법의 문제에 대해 수정법안을 6월 15일에 냈다고 하면서 또 여기에 함께 하자고 하고, 이용득은 법은 별 문제가 없으니 운영과정에서 잘 하면 되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하고... 이석행이 마지막에 상근자 문제, 복수노조 허용문제 등과 함께 한국노총의 야합을 지적하긴 하였으나, 이미 자신이 말할 기회는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좀 하다 보면 이용득이 말꼬리를 나꿔 채서 변명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오죽하면 사회자가 끼어들지 말라고까지 했겠는가. 그래도 넉살좋은 이용득은 자기 하고픈 말은 다했다. 방송이 끝나는 시점에는 야합 운운하는 이석행더러 자신의 재임기간인 3년동안 민주노총의 파트너가 4명이나 바뀌었다면서, 작년에 8월에 조준호 집행부와 만나서 노사관계로드맵을 다 합의했고, 수고했다고 얘기까지 했는데, 왠 야합이냐고 반박하기까지 하였다. 나아가 이제 큰 그림을 그리며 같이 잘해보잔다. 설마 투쟁을 잘하자는 것은 아닐 테고... 어휴, 정말 짜증 지대로였다.
  
특수고용직, 공무원, 교수 등의 노동기본권 확보의 문제는 다루지조차 못했다. 하긴 이런 문제에 대해 이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용득과 이석행은 한국 노동운동이 '위기는 위기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한숨만이 나온다. 이런 토론을 왜 하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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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03:43 2007/07/06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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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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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2007.
 
벌써 김진숙 님의 책을 읽은지 십여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김진숙 님의 책을 들고 다니면서 다 봤다.
책에 있는 내용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웹 등을 통해서 읽은 것이지만, 새롭게 접한 것도 있고, 또한 활자로 인쇄된 게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숙 님의 글은 가슴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울림은 육성으로 들었을 때 훨씬 더 생생하다.
하지만 이젠 이런 글이, 이런 감동적인 연설과 추도사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러한 감동은 그 추구하는 방향은 다를지언정 ‘노무현의 눈물’에서, 서프에서, 노사모에서 재생산되었던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대중들에 대한 호소력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저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감동과 설득력보다 논리와 대안이 필요하다. 김진숙 님의 글이 그 마지막을 태우는 불꽃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 어머니가 광주에 내려가시면서 글자크기가 켜서 보기에 좋다고 『소금꽃 나무』를 가방에 넣어가셨다. 그 전에 그의 추도사 동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사실 6일날 있는 ‘그날이오면’ 초청 강연시에 그 책을 가지고 가서 싸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한평생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온 어머니 같은 이들에게 이 시대의 화두인 비정규 노동의 문제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이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임을 어떻게 쉽고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래에 책의 내용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옮긴다. 책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 여유가 되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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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500년 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바다 위를 달리고, 길 위를 달리고, 하늘을 가르는 것도 그들이다. 아픈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그들이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도 그들이다. (4쪽)
  
노무현 정권의 필살기는 투쟁이나 구속이나 수색 같은 특수하고도 전문적인 분야들을 좀 더 대중화해 일반인들도 누구나 향유할 수 있게 한 점과 음지에서 했던 일들을 양지에서 내놓고 하게 한 게 아닐까. 이게 절차적 민주주의다. 저 시절엔 기가 질려 “동네 사람들아!”를 못했다면, 이 시절엔 절차대로 한 일이니 아무리 불러도 동네 사람들이 안 오는 거다. (26쪽)
 
→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어느 날 소나기가 내려 오후 작업을 못 하고 명휴를 했는데, 비는 철철 오고 빨래하기도 그렇고 갈 데도 없고 해서 노느니 장독 깬다고 그 책(『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을 들척거렸다. 그 책을 끝내 들추지 말았어야 했을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다.
가슴에 큰 산 하나가 들어앉아 그 산에서 돌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양심에 돌팔매질을 해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산 사람. 그러나 그 삶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끌어안고 뒹굴었던 사람.
난 뭘까. 그의 삶에 비한다면 내 삶은 뭘까. (47쪽)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내가 곧 그들이라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도 치욕스럽지도 않았다. 같이 살아야 된다는 생각. 내가 달라져야 그들이 달라진다는 생각.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변화되어야 내가 딛고 선 땅도 변화된다는 생각.
눈물은 곧 다짐이 되었고 가슴 벅찬 환희가 되었다.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 평화시장의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며 나를 더 깊은 자책과 질퍽한 공감의 늪으로 빠뜨렸던 건 평화시장과 똑같은 자갈치에서의 경험이 더해져서였을 게다. (48쪽)
  
어딜 가 봐도 비슷한 조건이란 사실을 나는 일찌감치 체념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그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갈 뿐이었다. 한번도 그런 조건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아니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벌레처럼 징그럽고 싫었다. 벌레가 뭘 할 수 있으며 벌레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전태일은 너는 벌레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인간이 당연히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해서 절규하고 있었다. 희망. 세상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지금까지 나를 버터 왔던 건 그때의 자책과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는 그 약속을 얼마나 지키면서 사는지는 솔직히 되물을 시간도 없고 자신도 없다. 그러나 삐삐 차고 핸드폰 들고 아반떼를 살까 레간자를 살까 고민하면서 당구장을 들락거리고 호텔에서 수련회를 하면서 박찬호나 차범근을 떠들어대며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간부들에게 전태일은 그저 11월쯤이면 한 번씩 회자되는 옛날 위인쯤인 게 여전히 안타깝다.
전태일의 삶을 심장으로 느끼지 못하고는 노동자 정신을 말할 수 없고, 전태일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노동자의 계급성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가용이 점점 커지고 컴퓨터 용량이 커질수록 더 분명해져야 하는 사실임에도……. (49-50쪽)
    
→ 나 또한 새내기 때 처음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별로 질도 좋지 않았던 그 책에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김진숙도 그랬구나.
다만 내가 전태일보다 글쓴이인 조영래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진정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에서도 콤플렉스를 느낀다면 이상한 걸까.
나는 지금 버티고 있기나 한 걸까.

 
운동하는 게 청교도처럼 사는 게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고, 넘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끊임없이 성찰되고, 업그레이드되어야 하고...
  
싸워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은 위험해 보인다. 싸워서 얻은 해방감을 단 하루도 누려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을 지키겠다고 목숨까지 거는 이들이 무모해 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북선은 우리가 만들었다. (57쪽)
 
강석용 씨 같은 어쩌면 동화 속에 사는 소년 같은 그분의 맑은 심성이 ‘실존’하므로 난 노동 해방을 믿는다.
노동자. 그들의 깨끗한 양심과 건강한 의지가 일구어 갈 새 세상. 아, 노동 해방! 그러나 필요한 건 조직이다. (74쪽)
  
→ 지역에 뿌리박은 계급적 산별노조는 언제나 건설될 수 있을까. 산별노조가 제대로 되었다면 한미FTA 반대 총파업에 나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여론의 압박과 내부의 반발에 떠밀려 부분파업을 철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울산에서 그 신화 같은 투쟁의 역사가 있기까지 수천수만의 강석용이 있었으리라는 확인은 참으로 기쁘고 뿌듯하다. 소련이 망하고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졌던 그날도 변함없이 용접 가스를 마시고, 쇳가루에 밥을 섞어 먹으며 신나 냄새를 공기보다 더 많이 마시면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사람들. 절박한 생존권의 벼랑 끝에서 나무뿌리를 부여잡듯 그렇게 노동조합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버텨 온 사람들.
그들이 붙잡고 있던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가 제법 그늘까지 드리운 산별노조라는 고목나무가 되도록 피를 섞어 물을 주고 살을 깎아 비료를 주며 알뜰살뜰 가꾸어 갈 사람들. 투쟁의 시기가 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집행부의 실천 지침을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지금도 한반도 구석구석 곳곳에서 무딘 쇠를 벼려 칼을 만들고 묵은 땅을 갈아엎을 쟁깃날을 담금질하고 있을 보석 같은 사람들. 소련이나 동구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우리의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77쪽)
 
→ 그들에게서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런 것조차 없어 흔들리는 이들이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전망이 필요하진 않을까.
 
죽어서 천당 보내 준다는 하느님은 안 믿어도 살아서 천당 만들고야 말 조합원들은 믿는다는 분. TV도 뉴스만 잠깐 보고는, 11시 전에 잠이 와서 못 견딜 때는 “동기야, 니가 지끔 잠들어 불먼 사장 발가락에 때나 뽈고 살 수밖에 더 있겄냐” 하며 이를 갈며 책을 보고 각종 유인물을 읽고, 노보에 투고할 글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쓰신다는 분.
울산 모 동지에게서 노동자의 양심과 진실을 만났다면 이분에게선 노동자 특유의 낙관과 희망을 본다. 우리의 희망.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런 분들이 모여 노동자라는 이름을 빛나게 하고 세상을 윤택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정치가 아무리 썩고, 관료가 아무리 타락하고, 자본가․경찰․군대․학교 등 온 세상 구석구석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해도 끊임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곰팡이를 쓸어 내는 이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세상은 그래도 조금씩 맑아져 마침내는 정말 살아 볼 만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90쪽)
 
LNG 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 했습니까?
21년 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 원, 세금 떼면 80만 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 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가 88일을 애원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120쪽)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체감온도 영하 수십도 한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 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그냥 살 걸 그랬습니다. 변소에 버글거리던 구더기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120쪽)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121쪽)
  
→ 책에는 단지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한 연설이라고만 나와 있지만, 이는 ‘김주익노동해방열사 추모 및 악질자본 한진과 노무현 노동탄압규탄 전국대회’라는 다소 긴 명칭의 집회에서 한 김진숙동지가 한 추도사이다. 다시 봐도 절절한 글이다. 당시 이 추모사를 퍼오면서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추모사”라고 하였다. (동영상은 http://blog.naver.com/gimche/140006677674 참조)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라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122-123쪽)
  
굳이 초청하지 않아도 오고, 요청하지 않아도 부르니까 존재의 귀함을 종종 까먹게 되는 사람. 흔한 것들은 종종 짓밟히고, 늘 곁에 있으리라 믿는 것들에게 우리는 때때로 얼마나 가혹한가. 그런 것들이 귀하다는 걸 깨닫는 건 대부분, 그 꽃이 진 뒤거나, 그가 떠나 버린 다음이다. (138쪽)
   
→ 이 대목에서 나는 낮별지기 님을 떠올렸다. 그렇게 여기저기 투쟁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연대의 노래를 부르기도 쉽지 않을텐데...
 
죽어서도 웃는 자를 보는 일은 곤혹스럽고 살아서 우는 자를 보는 일은 무력하다. (141쪽)
 
→ 허세욱 동지는 왜 그렇게 웃고만 있는지... 죽은 후에마져도... 이번에 광주에 내려가서 함께하였던 윤한봉 선생 장례식에서 접한 윤한봉 선생도 웃고 있었다.
  
정작 참으로 견디기 힘든 건, 사람에게 받게 되는 상처일 겁니다.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받아야 했던 상처. 고스란히 듣기만 할 뿐 한마디도 되돌려 줄 수 없는 상처들.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은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154쪽)
 
→ 김진숙은 비정규직을 민들레에 비유한다. 해방의 봄을 부르는 민들레...
 
현대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에서, 만도기계에서, 한진중공업에서, 병원에서, 은행에서, 공공 기관에서, 수백만의 노동자가 잘렸지만 단 한 명도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리라는 걸 상상하지 않았듯이, 무심한 냉대와 비수 같은 말 한마디가 언젠가 고스란히 내 심장에 꽂히게 되리라는 걸 상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155쪽)
   
이제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을 때
온몸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우리가 단지 역사를 추억할 때 스스로 역사가 되어 가는 사람들.
서러움이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을 보라.
우리가 잃은 게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의 눈빛을 보라.
연대를 말하려거든 100일째 펄럭이는 천막엘 가 보라.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거들랑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그들을 보라. (160-161쪽)
   
저는 우리가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제는 노예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우리가 벗어던졌다고 믿었던 사슬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돼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자리에서마저 쫓겨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낮은 곳에 피었다고 꽃이 아니기야 하겠습니까. 발길에 채인다고 꽃이 아닐 수야 있겠습니까. 소나무는 선 채로 늙어 가지만 민들레는 봄마다 새롭게 피어납니다. 부드러운 땅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길게 자랄 수 있지만 꽁꽁 언 땅을 저 혼자 힘으로 헤집고 나와야 하는 민들레는 그만큼만 자라는 데도 힘에 겹습니다. 발길에 채이지만 소나무보다 더 높은 곳을 날아 더 멀리 씨앗을 흩날리는 꽃. 그래서 민들레는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꽃입니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162-163쪽) 
  
→ 김진숙 동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마 그가 했던 여러 특강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된 것이리라.
그는 “그분들을 만나면 죄스러움에 견딜 수가 없”고, “그냥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자꾸 울게 된다”고 얘기한다.
  
일요일도 없고, 재고 조사하는 날은 밤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조카 앞에서 나는 이모가 열심히 싸워서 민주노총 사업장은 대부분 주40시간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다. 상여금도 없고 체력단련비도 없고 효도수당도 없고 하다못해 월차도 없는 제 조카의 1,000만 원도 안 되는 연봉 앞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심히 싸워서 그들의 성과금이 너의 1년 연봉을 넘는다는 자랑도 할 수가 없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건 산하노조의 투쟁이건 비난이 난무할 때, 조중동만 탓하기엔 참 옹색해져 버렸다. (192쪽)
 
→ 그의 반성이 우리 모두의 반성이 되어야 할 텐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밀어내는 것도 자본이고, 이제 와서 아빠 힘내시라고 노래 불러 주는 것도 자본이고, 집도 사고 차도 사야 하는데 당신이 아프면 큰일이라고 걱정해 주는 것도 자본이고, 사고가 나면 남편보다 먼저 달려와 주는 것도 자본이고,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자본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자본은 이제 안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220쪽)
 
학번을 앞세워 소개하는 게 별 뜻 없이 그저 익숙한 방식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학번이 단순히 학교 안에서 학년을 구분 짓는 효율적인 숫자가 아니라 신분의 높낮이를 규정하고 나아가 차별의 근거가 된다면 그건 또 다른 권력의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225쪽)
 
어머니 기억나시는지요. 오락가락하던 비가 개이고 혈구산에 걸린 무지개를 잡을 거라고 따라가다 길을 잃어 울며 돌아 온 제게, 무지개는 사람 손으로 못 잡는 거라고 말씀 하셨더랬죠. 아버지처럼 땅 두더지는 되기 싫다고, 고깃국에 하얀 쌀밥만 배터지게 먹고 살 거라고 사립문을 박차고 나와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은 지 십 수 년이 지났건만, 무지개 같은 건 사람 손으로 못 잡는다는 그 말씀만큼은 차마 잊혀지질 않습니다. (229쪽)
  
계란으로 바위치기래도 할 수 없고 대답 없는 메아리래도 어쩌겠습니까. 힘이 약해 만날 당하고 깨지기만 하는 약자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그렇게라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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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3 15:07 2007/07/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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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대선 국면에서 전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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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서울회원인 한 동지가 쓴 글이다. 여기에 90% 정도 동의할 수 있을 듯...

마지막에 붙인 진담대로 지금 시기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총장에 대해 당원소환을 벌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각 캠프로 쏠린 전진의 역량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게 전진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미래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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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국면에서 전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대선 방침의 한계
  

- 지난 총회에서 결정된 전진 대선방침은 대선강령을 통하여 선거의 의미를 좌익적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회원들도 이에 준하는 실천을 벌인다는 것이었음.
- 그러나 사실 이 방침은 당내경선 때까지는 후보 당선을 위한 활동 말고는 할 것이 없고, 당내경선 이후 12월까지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방침이었음.
- 실제로 세 캠프로의 원심력이 강화되고 있는 반면, 전진 자체의 기획과 지침에 의한 실천은 거의 마비 상태임. 캠프가 활발할수록 조직이 죽는 역설적인 현상.
- 대선강령은 지지후보 선택을 위한 기준으로 위상이 상승했으나, 실제로는 각 캠프 결합의 알리바이로 전락했고 강령 자체의 위상도 빛이 바랬음.
- 이는 대선 방침이 양대 선거를 거쳐 한국사회와 운동진영이 경과하는 정세에 대한 판단과 조직의 상황에 대한 진단에 근거한 기획을 결여한 필연적인 결과임. 요컨대 대선-총선을 통해 ‘한국사회’와 ‘당’과 ‘전진’이 어떻게 바뀌고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와 프로그램이 전혀 부재한 가운데 회원은 개별 캠프 활동가와 현장 일꾼으로 각자 뛰고 있음.

  
2. 후보를 통해 실현한다?
  

- 총체적 기획이 없는 가운데, 관심과 활동은 캠프와 후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 다수 동지들의 이야기는 당과 조직이 처한 위기의 심각성은 잘 알고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 우리의 헤게모니가 중요하고 후보를 잘 세워서 이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임.
- 이는 연합과의 세 대결에서 객관적 열세인 상황 -- 그리고 그것이 심화되는 상황, 당 지도부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 총선에서의 승리(혹은 현상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믿을 것은 후보와 후보가 가져올 파급력이라는 판단이 함축된 것임.
- 그러나 이는 사람에게 기대는 대리주의라는 문제 말고도, 여전히 전반적인 비전은 없는 가운데 기다려보자는 대기주의적 태도임. 원칙적으로 잘못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폐해를 낳고 있음. 좌파 진보대중은 당에서 속속 이탈하고 있고 전진 자체의 기획이 사라지고 회원들은 수동화되고 있으며, 진보대연합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조직적인 대응을 못하게 하기 때문.
- 설령 조직과 상황이 좋지 않아서 사람에게 기대를 한다면, 적어도 어느 후보가 이러한 문제들을 풀고 향후 판을 짜는 데 있어서 확연히 우월하다는 것이 동의되어야 함. 그러나 세 후보 중 누구도 탁월하지도 미흡하지도 않은 가운데 캠프끼리 전력을 소진하고 있음.
- 원하는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총선까지 잘 치르면, 당과 운동은 위기를 벗어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구상대로 짜는 판에 따라가면 될 것인가? 아니면, 대선 총선이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리고 좌파는 떠나가고 연합이 더욱 득세를 한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가?
  

3. 대선을 넘어서 바라보아야
  

- 결국 대선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며, 후보가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님. 대선을 넘어서 중장기적 비전을, 예컨대 10년의 구상을 가질 수 있을 때 후보와 대선투쟁도 방향이 나오고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음(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결국 선거주의와 의회주의일 뿐임). 또한, 전진의 회원과 전진을 지켜보는 좌파 대중도 동력을 갖고 따라올 수 있을 것임.
- 전진이 대선에서, 더 넓게 2007년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까지 사업을 한다고 볼 때 그 핵심은 대단한 것이 아님. 우선 내부적으로는 조직 정비와 세 확장이고, 외부적으로는 당을 둘러싼 정치지형의 재편일 것임. 전진을 바라보는 대중들이 기대하는 것도 다름아닌 그것임.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진은 이러한 과제를 회피하거나 공백으로 두고 있으며, 진공 상태에서 전진만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음.
- 당내 좌파 중 최대 주주일지 모르지만, 전진의 지분은 당운동과 민주노조 운동이 가져온 역사적 결과 절반에 더하여 한국 운동진영의 세력균형이 가져온 결과 절반으로 이루어진 것임. 말하자면 이 밑천은 하루 아침에 날아갈 수도 있고, 이러한 밑천 구성으로 10년 20년을 버틸 수도 버티는 게 옳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함.
- 다시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져야 함. 첫째, 한국 정치지형의 경과하는 지점은 무엇이고 그에 따른 과제는 무엇인가? 둘째, 현 정세와 주체의 상태 또는 특징은 어떠한가? 특히 당과 운동진영의 요소와 상황은 어떠한가? 셋째, 전진의 상태는 어떠한가? 당위론이 아닌 철저한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그러나 의지적인 논의를 벌이지 않으면 흐르는 시간 속에 기회는 상실되고 말 것임.
  

4. 정계개편(좌파대연합)의 긴박성
  

- 첫째, 한국 정치지형의 경과지점은 87년 체제와 50년 체제가 동시에 변화를 요구받고 있음. 이는 일반민주주의 과제와 분단모순의 일정 해소되면서 사회경제적 민주화, 인권의 정치, 정상적 (이념/계급)정당정치, 세계사적 시간의 운동 동참 등으로 표현 가능할 것임.
- 둘째, 운동진영의 경우 특히 당 운동의 경우 97년 체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음. 이는 민독정 운동의 좌절 이후 국승21로 진보정당운동이 부활한 한편, 정치연대가 이탈하고 연합과의 동거를 이루어 정치세력화 과제를 달성한 지난 10년의 평가와 전환이 필요함을 의미함.
- 셋째, 전진은 이 과정을 주도한 범좌파의 결합세력으로서, 그 자체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지만 새로운 체제(포스트2007 체제)를 이끌어갈 자원과 프로그램은 다만 잠재적으로만 갖고 있음. 그 긍정성과 부정성이 모두 존재하며 실제로 드러나고 있음.
- 조직(당 조직과 전진)은 객관적 구조와 상황적 요소의 결합인 정세에 대한 개입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과제를 해결해갈 수밖에 없음. 때문에 우리가 주목하고 논의해야 할 것은 단연 둘째의 문제임.
- 이는 최근 소위 ‘진보대연합’ 논의로 진행중인 바, 전진을 비롯한 다수의 좌파 동지들은 이를 당 정체성의 훼손이나 반보수대연합의 아류 정도로 치부하여 경시하거나 거부감을 보이고 있음. 그러나 어떠한 명칭을 붙이든 이는 곧 양대 선거를 경과하면서 이루어질 정계개편의 문제이며, 그것을 넋 놓고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좌파대연합’으로 유도할 것인가의 문제임.
- 여기서 다른 세력들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음. 민중참여경선제 건에서 보이듯 연합(특히 울산, 인천)은 당이 흔들리지 않을까 오히려 우려하고 있음. 다함께는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변죽을 울렸지만 구체적인 세력의 결합 국면에서는 궁색해질 것임. 노힘과 사회당은 나름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고 함부로 행보를 할 리가 없으나 적어도 97년 체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음.
- 전진을 포함한 당내 범좌파 역시 당의 구성과 상태에 대해서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움을 알고 있음. 모두들 변화를 필요로 하거나 적어도 이대로 가다가는 몰락하겠다는 의식, 이것이 정계개편의 객관적인 지반이며, 향후 6개월 여 동안 많은 예기치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임.
- 다시 한번, 우리의 밑천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향후 10년을 끌고 갈 밑천은 어떻게 짜여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필요할 때임.
  

5. 의미와 실현 방안
  

- 좌파대연합은 97년에 잘못 꿰어진 단추를 바로잡는 것임. 물론 정치연대 그룹까지의 합류가 유일한 정답이거나 미래를 담보한 진보정당의 최적 구성은 아님. 그러나 적어도 이들까지의 바운더리로 합법대중정당을 밀고 나가고, 다른 축으로 비합이든 대안적 조직 프로그램이든 강구하는 것이 올바름.
- 진보대연합 대신 ‘좌파대연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명칭은 아무래도 좋으나 그것이 우리의 기득권을 일정 포기해서라도 왼쪽으로 당 운동을 흔들고 가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임. 연합의 경우 자신의 외연 확대에 일정한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왼쪽으로의 문호 개방은 거부하기는 어렵지만 달갑지 않은 처지임. 결국 대상은 노힘과 사회당, 초록정치연대 플러스 정도임.
- 많은 동지들은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함. 즉 상대가 미온적이거나 냉소적인데 연대의 대상이 없지 않느냐, 구두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임. 이는 첫째 지극히 현상적이고 정태적인 판단이며, 둘째 대선 후보만을 보고 하는 판단임.
- 사회당은 청년진보당으로 분립한 이후 자폐적 노선으로 인해 스스로 소진하고 지도력이 대부분 교체된 가운데 생존 방식을 고민하고 있음. 달리 말하면 필연적이지 않은 분립으로 인해 고통받아왔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감내하고 있음.
- 노힘은 계급정당 천명에도 불구하고 실행 가능성과 동력은 매우 낮은 상황이며, 비합 노선이 확실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진로를 모색하고 있음. 민주노동당과의 관계에서 조직 내 이견이 상존하는 바, 노힘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함께 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음.
- 초록정치연대는 구성원들의 현실정치 감각이 매우 낮거나, 적어도 우리와 다른 것으로 여겨짐. 반/비 민주노동당 노선은 아니지만 실제로 연대의 파트너는 되기 어려우며 길게 보면 녹색세력으로 노동중심 진보정당과 병존하는 것이 긍정적일 수 있음.
- 대선 후보만을 놓고 보면 당연히 현실성이 떨어지며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함. 그러나 이 점은 다른 세력들도 충분히 아는 사실임. 여기서 관건은 총선과 그 이후임. 예컨대 대선후보 단일화를 놓고 오픈 테이블에서 협상을 하되 민주노동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확대재창당을 통해 총선을 함께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음. 과정에서 강령이나 정책, 총선후보 조정, 지도부 구성 같은 사안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함.
- 이는 정략적, 상층위주 협상인가? 당의 정체성 훼손인가? 연합은 물론 범좌파 내부, 총연맹, 평당원 등에서 많은 반발과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음. 그러나 우리의 답은 97년 단추의 제자리 꿰기, 87년 체제의 전환을 위한 바탕 만들기, 그리고 그것을 위한 좌파대연합과 재창당으로 돌려져야 함. 그리고 전진이 이를 역설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야 함.
- 단추가 제자리를 찾고 당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분당이 필요할 수도 있고, 지분을 다 내놓을 수도 있다는 태도야말로 이러한 방안의 전제님. 전진의 전술은 ‘벼랑끝 전술’이어야 하며, 그래야 당내 좌파 대중과 당외 좌파 세력도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 것임. 그리고 이 정계개편의 격랑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함.
- 가장 좋은, 궁극적인 좌파대연합이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수 있음. 그러나 그러한 주장과 노력, 작업을 진행하고 실패한 것과 아무 것도 안하고 만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 97년 체제의 모순은 언제나 해소를 기다릴 것이며, 지금의 당 구성과 운동지형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는 지속될 것이기 때문임. 전진의 지위와 포지션은 무엇인가, 좌파대연합이 성공 혹은 실패한 이후 전진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까지를 생각해야 함.
  

6. 향후 과제
  

- 대선/총선의 정책과 실무가 잘 이루어지게 하는 것 또는 좋은 후보를 선출하는 것보다 좌파대연합의 비전을 던지고 실질적 진전을 이루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며, 한 만큼 향후의 행보를 보장할 수 있음.
- 전진의 대선강령은 그 폄하와 수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으로 여전히 유효함. 즉 대선후보의 당내경선과 이후 선거투쟁에 있어서 강령의 핵심 테제들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대중에게 설득하도록 노력해야 함.
- 각 캠프로 분산된 역량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당내 경선 이후에는 가급적 빨리 좌파대연합 추진과 내부 관리, 현장 및 지역 조직으로 회원들을 배치해야 함. 대선 선대본의 운영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을 필요는 없음.
- 전진 내부로는 조직의 통일성을 높이는 것이 무조건 중요함. 그러나 그것은 조직의 내외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진단 속에서 과제와 지침을 통해 회원들에게 존재감을 심어주고 활동을 풀어나가는 방식이어야 함. 회원들의 상태와 조건은 매우 다양함을 인정해야 하며, 향후에도 한 동안은 지도부의 움직임이 전진을 끌고가야 함. 그만큼 지도부의 입장과 행동에 대한 조직 내 소통과 책임성이 필요함.
- 사족 아닌 진담을 붙이자면, 대선을 잘 치르려면 후보를 잘 뽑는 것보다 총장을 교체하는 것이 10배 정도 중요한 일임. 최고위와 당 안팎에서도 공공연한 벼량끝 전술을 펼쳐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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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3 00:38 2007/07/0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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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민주노동당 세후보 정책담당자 초청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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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에 있었던 전진의 <대선후보 정책 담당자 초청 '전진' 대선강령 토론회>는 예상했던대로 진행되었다. 세 후보의 정책담당자들은 다들 전진의 대선강령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 기본적인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이 잘 정리해서 올려주었다.  
   
초라한 토론회가 된 것도 예상되었던 바이다. 전진 내의 다수 활동가들이 대선강령을 면피용으로만 생각했을 뿐 그에 대해 별로 힘을 실지 않았고, 대선강령 TFT 성원들만이 몇 개월간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기에 6월 28일의 토론회에도 그리 힘이 실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던 것이다. 결국 대부분 전진회원들로 구성된 20여명의 동지들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게다가 세 후보의 정책담당자들이 얼마만큼의 대표성을 가지고 나왔는지도 의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그게 세 후보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고 본다.   
  
손낙구 동지가 지적한 내용은 부분적으로 타당한 말이지만, 그게 그 자리에서 제기될 얘기는 아니었다. 또한 전진 회원으로서 아무리 캠프 활동으로 바빴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마련한 대선강령에 대해 미리 의견을 표명할 수 없었을까. 하지만 손낙구 선배와 심상정 캠프에 속한 이들은 몇 개월간의 대선강령 작성 과정에서 거의 개입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의 활동 중점은 심상정 캠프일까, 아니면 전진이라는 정치조직일까.   
  
토론회 진행으로 봐서는 노회찬 캠프의 이중협 동지가 '전진' 대선강령의 의미를 잘 짚어내고 그에 맞는 얘기를 하였다고 본다. 이중협 동지는 노회찬 캠프가 선전선동의 차원에서 사회주의의 가치와 방식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캠프에 결합되어 있는 이들이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이고, 평소 노회찬 의원의 행태처럼, 순간순간의 재치와 언변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최병천 동지의 의견에 대해서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어차피 권영길 후보가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레디앙에 대해 몇 마디. 레디앙은 설립시 전진 중앙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다. 제대로 된 좌파노동언론이 필요하다는 의견하에 여기에 힘을 보탰던 것이다. 하지만 현장기자들이 활약하면서 가끔 노동쪽의 기사가 실릴 뿐 그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기사를 보기 어렵다. 있더라도 각 노조의 보도자료를 가져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를 테면 공무원노조의 갈등상과 관련해서는 전혀 기사가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혁신네트워크 성향의 활동가들이 레디앙에 결합하면서(현장활동가들이 다수인 전진의 경우 여기에 조직적으로 결합하거나 글을 기고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가끔씩 그 기사에 반'전진'언론으로서 위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소위 혁신네트워크의 나팔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사와 댓글 등에 나타나는 질시, 냉소, 정제되지 않은 비난 등은 결코 좌파언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지금의 대선정국에서 레디앙이 노회찬 후보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 또한 정론지임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를 바꾸기 위해선 이에 대한 개입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직적인 철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69 동지의 의견처럼 현재 우리에게 '제2의 진보정치', '제2의 민중의 소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진 대선강령? 동의는 되지만, 쓸모는... (레디앙, 2007년 06월 30일 (토) 10:43:17 편집국)
[전진, 세후보 정책담당자 초청 토론회] "공약을 꿰뚫는 기본 얼개" 
  

좋게 말하면 조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초라했다. 민주노동당 내 좌파 최대 정파로 인정되고 있는 ‘전진’이 주최한 <대선후보 정책 담당자 초청 ‘전진’ 대선강령 토론회>의 모습이 그랬었다. 조희만 의장이 토론자와 참석자들에게 ‘미안함’을 전달하는 인사를 했으며, 사회를 보던 최백순 전진 기관지 위원장도 틈만 생기면 조촐한 참석자 수를 미안해했다. 
  
하지만 26일 늦은 오후에서 밤까지, 그 자리에서 오고 간 얘기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선풍기로는 식혀지지 않는 문래동 민주노동당사 6층 회의실의 장마철 여름 더위에, 토론자들과 ‘극소수’ 방청객들의 진지한 열기가 더해졌다.

▲ ‘전진’이 주최한 <대선후보 정책 담당자 초청 ‘전진’ 대선강령 토론회>가 26일 저녁 문래동 당사에서 열렸다.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의 발제가 시작된 건 오후 7시 30분. 발제문은 A4 31쪽으로 양이 제법 됐다. 제목은 ‘2007년 전진 대선 강령’, 내용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의 선거 강령은 2007년의 한국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가장 첨예한 모순과 고통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명확히 해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그 현상은 ‘양극화’로 통칭되는 사회의 분할과 가장 취약한 집단에 가중되는 고통이며, 그 본질은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우리 시대의 자본 축적 구조다.”
  
발제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본다.
  
21세기형 보편적 복지를 함의하는 ‘연대의 사회’라는 이상을 제시한다. 노동권의 완전한 보장과 노동시장 참여 여부에 종속되지 않는 기본소득의 보장 방안이 기본 축이다.
 
이러한 민중의 보편적 생활과 권리 보장을 위한 핵심 조치에 ‘소유’ 문제에 대한 입장이 분명히 표현돼야 한다. 선거 강령에는 주요 생산-재생산 영역의 국가 통제와 공공성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핵심적인 사회주의적 정책수단이 명시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기간산업의 공적 소유 확대, 경제기획위원회 설치와 대기업의 사회적 기업화, 금융통제기구의 민주적 재편이 필요하며, 이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세력의 요구라기보다, 당면한 한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정책이다.
  
우리는 노동자, 민중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해야 하며 경제운영의 대원칙에 이를 포함시켜 나갈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민중들의 삶을 보장하고 평등 해방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한반도에서 ‘반자본주의적 공동체’를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남북의 대외 군사동맹 체제를 폐기하는 ‘탈 동맹’과 궁극적으로 영세중립국을 지향해야 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이를 촉진하고 보장할 과도기적 조치로서 적극 추진돼야 한다.
  
이 같은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안은 정치시스템을 통해 실현된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 권력과 자본의 배후 결탁을 묵인하는 3권 분립과 대의제라는 낡은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 제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차기 국회는 제헌의회(제헌에 준하는 대폭적인 개헌)를 내세우고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면 곧바로 사회경제체제 및 정치체제 재구성을 위한 전면적 헌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
  
노동자 민중이 사회적 생산과 분배를 지배하고, 관료를 통제해야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국가와 지방단체 수준의 의회를 실질적인 민중의 대표기관이며 최고 권력기관인 ‘민중대표자회의’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전진의 대선 강령은 모두 6개장으로 돼 있다. 민주노동당 내 최대 좌파 정파가 그리는 세상에 대한 설계도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8시가 조금 넘으면서 김종철 집행위원장의 발제가 끝났다. 이제 세 후보 캠프에서 나온 정책담당자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권영길 캠프에서 나온 최병천의 이야기.

“큰 방향성과 기조에 차이가 없는 듯하다. 강령 내용의 80% 이상에 동의한다. 서로 무엇이 다른가를 찾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우리 쪽에서 말하는 사람경제론과도 비슷하다. 다른 후보가 7공화국을 얘기하기 전에 우리도 새로운 공화국이라는 개념을 고민했다. 토지공개념 도입과 영토조항 개정 그리고 국민투표법을 대폭 강화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예상보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를 마쳤다.
  
노회찬 캠프에서 나온 이준협의 이야기.

“17대 대선이 진보진영에 요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하는데 그건 딱 하나다. 사회주의적 가치와 방식을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예전보다 토대도 넓어졌다. 예컨대 부동산 원가공개 찬성이 90%에 이를 정도로 탈 시장 마인드가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따라서 이를 하나의 계기로 잡아서 돌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 부동산 같은 이슈를 세게 밀어붙이고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서 멋지게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요즘 사회주의적 방식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정치권력과 관련된 논의가 많이 있었다. 4월부터 캠프 내부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지지고 볶았다.

제7공화국은 이런 논의의 산물이다. 논의 당시에는 이를 보류시켰다. 반신자유주의 전선과 노대통령의 개헌 움직임 등에 따른 당시의 정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강력하게 제7공화국을 내세울 것이다. 도라산 토론회 이전부터 7공화국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는 87년부터 2007년까지 전반 10년을 6공화국, 후반 10년을 양극화 세력의 집권시기로 본다. 이를 묶어서 6공화국으로 본다. 이제 이들 세력을 반전시켜야 한다. 사회주의적 가치를 높여내야 한다. 7공화국 운동이 본격화돼야 한다. 문제는 국민들의 언어로 이를 전달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평등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대부분의 나라에는 없는 영토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이를 막고 있는 전경련, 삼성, 한나라당 등 '센 놈'들을 잡아서 공격해야 한다. 한나라당과의 전면전을 정세를 이끌어가야 된다. 이것으로 7~8월을 돌파해나갈 것이다.” 사회주의적 방식과 제7공화국의 배경과 의의를 강조함으로써 ‘전진’ 강령의 큰 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됐다.
  
마지막 선수는 심상정 캠프의 손낙구.
그는 노동운동 19년 이후 정치활동 3년을 해오면서 느낀 소회를 먼저 얘기했다. “이번 선거운동을 하면서 주변의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이 이념과 노선 그리고 정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과 자신이 소속한 집단의 미래와 연관시켜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19년 동안 소수 저항 집단으로 주장과 비판을 펴왔다면 최근 3년은 색다른 경험의 기회였다. 비판과 주장을 넘어서는 대안 정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녹녹치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전진' 강령에 대한 손낙구의 이야기다.

“몇 가지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평가와 제안을 하겠다. 첫째, 이 강령이 무엇에 쓸 물건인가 하는 점이다. 2002년도 아니고 2012년도 아닌 바로 2007년 정세와 주체적 역량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분석에서 나와야 되는데, 그게 부족하다. 예컨대, 2002년에는 한미FTA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정치적 판세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인데 빠져 있다. 
  
둘째, 사회주의적 수단과 방법을 강조했는데 개별 내용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연대 사회건설 내용이 산별노조 건설 같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언급 정도다. 대기업의 사회적 기업화 경우 공익이사가 이사회 과반수를 의무적으로 지배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서구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셋째, 강령에서는 ‘이쪽으로 가야 한다.’와 '왜냐하면'은 풍부한데 ‘어떻게’가 많이 빠져 있다. 예컨대 부동산의 경우 택지 국유화에 대한 이론과 방향은 이미 깔끔하게 발표된 바 있는데, 이를 요약해서 옮겨놓은 수준이다. 
정책도 전투다. 이건 전투 현장에서 써먹을 수가 없다. 수구 보수세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제 관료들과 벌여야 하는 치열한 전투도 만만치 않다. 성능 좋고, 빈틈없고 구체적인 것들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넷째, 강령에서 말한 내용들이 실현되려면 실천 주체인 민중이 우뚝 서야 가능하다. 강령의 직접적 요구가 서민 대중을 호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각도를 정확하게 조준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부족한 점이 많다. 예컨대 제헌의회에 대해 구태여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주체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공허한 얘기에 불과하다. 주택 정책의 경우 지하에 사는 50여만 가구 140여만 명의 무주택 서민을 어떻게 불러낼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면,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으나, 현존하는 당의 강령과 당 활동에서 몇 발자국 나간 거 말고, 2007년 대선 강령으로는 매우 부족하다고 본다. 당의 강령개정안이라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선 강령으로는 아닌 것 같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강령의 구체화라는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만든 내용들이다. 전진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내 다른 정파들도 우리 캠프의 정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민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야기 시간도 가장 길었고, 내용도 가장 신랄했다. ‘전진’ 회원이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보 캠프의 참석자 발언이 가장 구체적이고 비판적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극소수 참석자들의 토론이 있었다. 해방연대 김광수는 손낙구를 겨냥했다.(그는 늦게 도착해서 손낙구 얘기밖에 못 들었다고 한다.) 그는 ‘과격한’ 표현까지 동원해서 손낙구를 비판했다. 
  
여러 개 그럴싸한 정책을 나열하고, 그걸 가지고 적군과 맞상대한다고 될 게 뭐가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다. “쓸 만한 정책? 웃기지 말라. 그런 거 있으면 뭐 하냐.”는 식의 문제 의식이었다. 대중의 분노와 결핍을 조직해서, 예컨대 “땅 부자 놈들의 땅을 다 빼앗아버리자”는 슬로건으로 민중들을 불러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철학의 문제라는 지적을 했다. 
  
이에 대해 손낙구는 그것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맞받아쳤다. 예전에는 국회에 한명이라도 들어갔으면 했는데, 이제 적은 수지만 의원들이 열심히 활동하면서 현실에 발을 딛고 손이 닿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왜 중요치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주택문제도 ‘국유화, 사회주의적’이라는 얘기보다 더 나아가 지하실 사는 사람들을 지상으로 탈출시킬 수 있는 사다리를 내놓은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준협이 손낙구 의견에 대해 ‘No'라고 발언하고 나섰다. 대선에서는 정체성과 가치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구체성을 강조하고, 구체적 정책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국회의원 활동과 달리 선을 굵게 가지고 가야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논의를 보면 이준협의 의견이 주최측인 ‘전진’의 입장과 가장 친화적이고 가까이 근접해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20년 전 CA그룹 활동을 했던 신언직(단병호 의원 보좌관)이 발언한다. “20년 만에 제헌의회 노선이 다시 부활해 ‘승리감’을 느낀다.”고 말해 진지하던 토론회에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그의 말은 제헌의회는 근본적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의 로드맵이며 혁명 이행기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적 정세에서나 가능한 기획이라며, 지금은 그런 정세가 아니라며, 전진 강령이 ‘제헌의회’ 부분을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서 신언직과 김종철, 최병천이 서로 베네수엘라 사례를 인용하면서 약간의 논박을 했다. 
  
‘극소수’ 가운데 한명이 세 캠프에서 나온 사람들한테 질문을 던졌다. “전진 강령에서 나오는 (사실상의)제헌의회, 민중대표자회의, 영세중립국 이 세 가지를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약으로 가져갈 것인가.” 
  
손낙구의 답변.

“기본 방향은 반대할 생각이 없으나, 주체 역량을 키우는 걸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걸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현실에서 더 후퇴한 헌법이 되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경제조항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개정하려 하고 있다. 구체적 힘의 관계도 따져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싸움을 벌여야 한다.

영세중립국의 경우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서 검토 가치가 있는 대안이라고 본다. 하지만 구체적 단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준협의 답변.

“제헌의회는 전술이다. 정세 돌파에 도움이 되면 무조건 쓰는 전술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세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제헌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구체적 슬로건을 내놓을 수 있다. 7공화국이 그것이다. 헌법은 경제민주화, 영토조항 등 전반적인 문제를 가지고 보수와 싸우는 것이다. 노동자 서민의 용어로 말해야 한다. 
  
7공화국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민중대표자회의도 마찬가지다. 민중이 이건 내꺼야 할 때 타당한 슬로건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아니라고 본다.

영세중립국은 정세를 이끌어갈 수 있는 슬로건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한반도 안보협력체와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부에서 영세중립국 논의가 있었지만, 공약제시로 맞는 건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최병천의 이야기.
“영세중립국은 이준협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우리도 논의는 있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제헌의회와 민중대표자회의의 경우 명칭을 구태여 그렇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전진’ 대선 강령 작업의 주요 멤버 가운데 한명인 김현우(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가 일어나서 발언한다.

“대선강령의 위상은 선거정책이나 공약과 다르다. 대선강령은 대선이라는 계기와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와 당 조직이 관철해야 할 핵심 주의주장과 선전선동의 얼개다. 그냥 유권자들에게 호불호를 물어 득표를 구하는 상품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지난 6년 대선 1번, 총선 2번, 지방선거 2번을 치렀지만 핵심 주의주장과 선동의 내용들은 언제나 임기응변적이고 편의적이었다. 진보정당이 할 만한 이야기들을 죽 나열하고 그 중 어필할만한 것을 후보의 입과 홍보 전략을 통해 내세운 것이다. 부유세나 사회공공성,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것들이 모두 그러했다. 이런 것들이 어떤 변혁적 맥락을 갖는지는 해명돼야 한다. 대선강령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도이자 나침반이다.”
  
2시간 가량 진행된 토론회가 끝났다. 의도와 시도 그리고 그 결과물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전진’ 자체에서도 충분한 공유가 없었던 것 같다. 밖으로 공감대를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조촐함이나 초라함으로 표현된 토론 현장의 묘사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과는 무관한 것으로, 이날 토론회는 조희만 의장의 말대로 '끝을 창대하게 만들어야 할' 시작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앞으로 각 후보 진영의 핵심 참모들을 불러낸 힘이 있는 정파의 핵심 브레인들이 만든 2007년 대선 강령이 그저 그런 자료로서 아무도 꺼내보지 않은 창고의 먼지에 묻혀버릴지, 세 명의 후보와 주요 참모들이 수시로 들춰보고, 향후 각급 선거에서도 후보와 참모들이 참고로 삼을, 말 그대로 ‘나침반’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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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2 15:51 2007/07/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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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포럼 2007 - 전환시대, 새로운 희망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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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사회포럼에 가볼까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다 지켜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덕성여대에서 7월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는데, 만약에 간다면 덕성여대에 처음 가보는 셈이다.

솔직히 작년보다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그 이유가 뭘까.

한국노총마저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에 대해 발표를 하는 판이니...

준비된 프로그램 중에서 내가 관심 있는 것만 나열해본다. 많이 겹친다. 

  

ㅇ 7. 6(금) 10:00-13:00 87년 항쟁 20년, 민주화의 역설: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운동

- 총론: 87년 항쟁과 정치민주화의 역사적 위상, 그리고 사회운동(김상곤), 사회문화영역: 87년 항쟁과 사회문화적 생활양식, 담론의 변화(신광영), 시민운동: 87년 항쟁과 시민운동의 정치공간: 진보적 사회운동의 관점(김정훈)

 

ㅇ 7. 6(금) 14:00-16:00 투기자본과 한국사회

- 투기자본의 일반적 폐해(허영구), 투기자본, 김앤장, 정부관료집단의 삼각동맹을 해부한다(장화식) - 토론: 강승균, 윤세홍, 배태수

  

ㅇ 7. 6(금) 14:00-16:00 백가쟁명식의 부동산 정책 평가와 차기정부의 바람직한 부동산 정책 방향 & 토지를 중심으로 본 새로운 대안체제: 지공주의

- 토지정의 시민연대(이태경, 남기업) - 토론: 손낙구, 임동근

 

ㅇ 7. 6(금) 14:00-16:00 '진보논쟁 이후'의 진보논쟁: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 기조발제: 구갑우, 장석준 - 토론: 강병익, 김정훈

 

ㅇ 7. 6(금) 16:30-18:30 유럽의 사회적 경제현장을 찾아서

- 주제발표: 민양운

 

ㅇ 7. 6(금) 16:30-18:30 선진화담론과 신 중도담론, 그 허와 실을 논한다

- 발표: 하승우, 강병익 - 토론: 오현철, 고 원

 

ㅇ 7. 6(금) 16:30-18:30 주민소환제를 말한다

- 발표: 최인욱 - 토론: 이재근, 이상석, 강찬호, 황규식

 

ㅇ 7. 7(토) 09:30-12:30 외환위기 10년, 그 야만의 시대

- 총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10년의 귀결: IMF에서 한미FTA까지(유철규), 국내경제정책: 관료에 포획된 경제정책 결정 과정: 공공성 훼손(김상조), 빈곤&사회복지: 20대80의 사회? 그것도 끝이 아니다(윤홍식)

  

ㅇ 7. 7(토) 14:00-16:00 공공성 담론과 에너지산업

- 김윤자, 전국교수공공부문연구회 

 

ㅇ 7. 7(토) 14:00-16:00 21세기 시장의 지배에 맞서는 대안담론들

- 발표: 창조적 노동중심경제론(김병권), 사회연대국가론(조진한), 생태평화사회민주주의(조희연), 사회투자국가론(김연명) - 토론: 이재영, 정영태

 

ㅇ 7. 7(토) 14:00-16:00 남미 대안사회운동의 흐름들

- 멕시코 Barson(이남섭), 아르헨티나 Piquetoros(최윤국), 브라질(오삼교, 김항섭)

   

ㅇ 7. 7(토) 14:00-16:00 양극화 시대, 국가란 무엇인가

- 민주화 이후 소득분배와 국가의 역할(장상환), 장하준 교수의 발전국가론 비판(김창근), 기본소득과 사회연대소득(곽노완)

 

ㅇ 7. 7(토) 16:30-18:30 베네수엘라의 개혁과 혁명

- 김병권, 임승수, 이수현 --> 이건 토론이 아닌가 보다. 발제가 아니라 연사네.

  

ㅇ 7. 7(토) 16:30-18:30 '적녹동맹',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가?

- 발표: 박승옥, 한재각 토론: 노중기, 홍성태

 

ㅇ 7. 7(토) 16:30-18:30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 한국사회 적용이 가능한가?

- 발표: 정승일, 최기춘 또는 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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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9 10:27 2007/06/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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