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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전야, 노동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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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S <독립영화관>에서 '독립영화의 전설' 특집으로 방영되어 오랜만에 본 <파업전야>.

감동은 여전하다. 지금 보면 많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가 구태의연한 것인지...

    

2.

이은, 장윤현 감독의 이름이 나온다. 언젠가 자신의 회사에 노조가 생기려고 했을 때 노조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는 이 은 감독의 이름을 <파업전야>에서 보는 느낌은 조금은 낯설다. <접속>의 장윤현 감독은 요새 무슨 영화를 만드시나.

  

3.

<파업전야>에 나오는 노래, '철의 노동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리고 '노동자의 길' 모두 안치환이 작사, 작곡했다.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노동자의 길'은 지금 봐도 멋있는 노래이다. 영화를 보면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따라불렀다. 이 노래는 예울림의 출정전야 음반에도 실려 있다.

물론 이 노래 말고도 "강제와 감시 속에 우울하고 고통에 찬~"으로 시작하는 '노동해방가', '동지가', 노가바의 대명사인 '늙은 노동자의 노래', 7000만 민중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안치환 - 노동자의 길
    
  

예울림 - 노동자의 길

 

그리운 내고향 내부모 떠난지 언제더냐
그 하세월에 묻혀 살아온 이 몸은 노동자로다
허나 주눅들지 마라 외로워도 마라
그 모든 슬픔 털어버려라
노동자의 길 참세상의 길
그 길을 우린 알잖아
가련다 너도 나도 하나되어
자랑스런 노동자의 길
   
부평초 떠나듯 보잘 것 없는 인생살이냐
이 세상 만물을 일구어내는 떳떳한 노동자더냐
허나 주눅들지 마라 서러워도 마라
눈물따윈 보이지 말자
노동자의 길 주인되는 길
그 길을 우린 알잖아
가련다 이 세상의 주인으로
자랑스런 노동자의 길
  
가련다 너도 나도 하나되어
자랑스런 노동자의 길

4.

파업장과 집회장 묘사에서는 지금은 보기 힘든 4박자춤이나 해방춤을 추는 장면도 나온다. 그 땐 그랬지 하는 생각과 함께 상당히 어색해보인다. 내가 몸치라서 그런가.

나아가 영화 마지막에 '철의 노동자'의 노래소리와 함께 보이는 연세대 정문 앞의 화염병 투척 장면은 무척 낮설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시대가 변하긴 변했나 보다.

  

5.

당시 이 영화 상영을 위해 싸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 운동이 과연 얼마나 성장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이제 노조라고 해도 빨갱이 소리를 하지 않고, 대학생이라는 게 아무런 특권이 아니며, 노조나 시민사회단체의 젊은 상근활동가를 구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좀더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여전히 90년 당시와 같이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잘 나갔던 과거 - 물론 당시에도 시민들의 호응은 거의 없었다. 87년을 제외하고는 여론이 운동에 우호적인 적이 있었던가. '잘 나갔던 과거'란 주체역량의 측면을 의미한다 - 를 회상하며 회고적 운동을 하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  

 

6.  

그렇지만 월간 민족예술 2004년 9월호에 실렸던 이용배 교수의 '<파업전야> 생생기'만은 전하고 싶다. 그 정신만은 잊지 말자.



<파업전야> 생생기

  

영화 <파업전야> 중
▲ 영화 <파업전야> 중
이용배 _ 계원조형예술대학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yblee@kaywon.ac.kr

  

1990년 4월 7일 오후 4시, 민예총 사무실
전화기를 바꿔 든 내 귀로 낮지만 떨리는 목소리(이 은)가 들려온다.
“형, 지금… 놈들이 쳐들어와서… 다 가져가… 영사기랑… (필름)릴까지…”

  

같은 시각,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
드디어 경찰 병력이 밀고 들어와 상영 중이던 <파업전야>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순간이다. <파업전야>(16mm 장편 극영화, 105분, 영화제작소 장산곶매 제작, 1990년) 상영 이틀째이다. 5분경 입구가 술렁이더니, 몇 마디 고성으로 상영장의 긴장된 어둠이 깨진다. 환한 조명 빛 속에서도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영사기마저 사복들에 의해 멈춰 선다. 실루엣 사이로 인계되고 있는 우리의 필름, 필름들.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장산곶매’ 회원 한 명은 한쪽 구석에서 벽에 머리를 박으며 ‘꺼이꺼이’ 통곡하고 만다. 예고된 탄압에도 자리를 지킨 그날의 영화 관객들은 나머지 회원들과 함께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 어깨를 건다. <철의 노동자>(<파업전야> 주제가)를 외쳐 부른다.

                  

같은 시각, 다시 민예총 사무실
(이미 “일부 운동권이 노동자 파업을 부추기는 영화로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불온영화사(?) ‘장산곶매’ 대표로 수배령이 떨어진) 나는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전화를 내려놓고 농성이 시작될 것임을 사무총장님(김용태)에게 알린다. 얼마 후 다행히 연행자 없이 현장에 있었던 장산곶매 회원들과 다른 영화패 동지들이 속속 민예총에 집결한다. 그날로 ‘<파업전야> 탄압분쇄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가 결성되고, 영화운동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조직적 대응들이 신속하게 펼쳐진다. 민예총 민족영화위원회, 인천민중운동협의회, 수원문화운동협의회, 충남문화운동협의회, 충북문화운동연합, 춘천사회문화연구회, 대구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영상분과 ‘새날’, 진주영상패 ‘남녘나리’, 부산민주청년회, 전북민중문예운동연합,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영상매체연구소 등 11개 지역문화예술단체와 한국독립영화협의회, 서울영상집단, 노동자문예운동연합 영화분과 ‘11월 13일’, 영성영화집단 ‘바리터’, 대학영화연합, 한국조감독협의회 등 모두 18단체가 연대하여 전국적인 <파업전야> 상영투쟁이 전개된 것이다.

            

1990년 4월 8, 9일(?), 연세대 캠퍼스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상영투쟁과 “내용이 파업을 선동하고 있으며, 노동쟁의 조정법상 제 3자 개입금지에 해당된다”며 이를 저지하려는 공권력의 공방이 치열해진다. ‘공투위’차원의 전국 상영 첫날. 연세대 100주년 대강당이다. 당국의 엄포와 봉쇄에도 불구하고 <파업전야>를 보려는, 아니 지켜내려는 관객들의 줄은 정문에서 대강당까지 이어진다. 그 줄이 길어진 또 하나의 이유는 험악(?)한 ‘사수대’들의 검문 아닌 검문 때문이다. 대학영화연합이 중심이 되어 짜였던 학생 사수대들은 입장 관객들의 학생증 등을 일일이 검사해서 입장시킨다. 관객들마저 이런 불편은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절차라 여긴다. 강당 안 역시 우리의 전재산이기도 한 16mm 영사기와 필름이 있는 공간을 빙 둘러서 마스크 쓰고 쇠파이프 든 학생들이 지킨다. 비장감마저 흐르는 열기가 가득하다. 상영 도중에 경찰들이 학교 안으로 진입을 해 극장 안에 불이 켜진다. 상영 책임자들이 황급히 학생 사수대들의 보호를 받으며 영사기와 필름을 챙겨 연세대 뒷산으로 빠져나간다. 관객들은 길을 터주며 목청껏 운동가요를 불러 그들을 지원한다.

          

같은 날 밤, 민예총 사무실
‘공투위’ 농성장에는 밤마다 상영팀들의 무사 귀환을 위한 전술들이 개발되고 땀내 난 회원들이 돌아와 탈주의 무용담이 펼쳐진다(그런 가운데 강경한 시위진압에나 쓰일 법한 당국의 대응으로 상영투쟁에 따른 피해도 많아진다는 소식들이 속속 들어온다).

        

1990년 4월 13일 오후 5시 40분, 광주 전남대 캠퍼스
다연발 페퍼포그가 쏟아낸 최루가스 구름을 헤집고 천 여명의 전경(경찰 추산 1, 300여 명)이 쏟아져 들어온다. 순간 하늘에서는 요란한 소리의 헬기 한 대가 해산할 것을 알리며 선회한다. 직격 최루탄은 결국 사수대를 맡던 한 학생(유석)의 턱 뼈를 가격하고 만다.

          

같은 무렵,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몽타주
<파업전야>가 상영되었던 전국에 걸쳐 비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인 탄압과 상영봉쇄조치들이 마구잡이로 진행된다. 관람 중이던 시민을 불법으로 연행(인천, 수원, 춘천 등), 구금(광주, 인천, 서울 등)한다. 필름과 영사기가 무단으로 압수(서울, 수원, 광주 등)된다. 상영이 진행된 공연장의 허가가 취소(서울, 청주 등)된다. 영화를 관람한 이유만으로 노동자가 해고(인천 등)된다. 한 편의 16mm 독립영화에 대한 통제와 규제치고는 영화사적으로도 유례가 없었던 전면적인 폭거들…

           

같은 무렵, 상영장과 농성장
상영장마다 영화를 지키는 데 사용하라는 관객들의 지원성금이 모아진다.
한 모금함을 털자, 동전들, 지폐들 사이로 금반지 하나! 순간 농성장엔 환호성이 터지고…
‘공투위’의 상영투쟁을 넘어 공고한 민중연대로 확장되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1990년 4월말, 몽타주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지도부가 공개 발표를 시작한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주인공… <파업전야>에 전폭적인 지지를… 노동절 101주년 기념영화로 지정합니다.”
전국의 여러 민주노조 사업장들, 이제 대학가에서의 안전한(?) 상영을 넘어 조직적으로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파업전야>를 상영하고 토론한다.
     

KBS 본사. 때마침 방송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인 그 곳에도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뚫고 들어가 <파업전야>가 상영된다. KBS 사원들, 주제가를 함께 따라하며 열광한다.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 변호사들의 요청으로 벽에 작은 사이즈의 스크린을 만들고 같은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가 끝난 후 상기된 한 변호사(김형태), 재판이 벌어질 경우 적극적인 변론을 맞겠다고 나선다.
     

김포 국제공항. 미국 길에 오른 한 소설가(윤정모)가 <파업전야> 비디오를 치마 속에 숨겨 세관을 통과한다. 후일 한 대포집에서 해외 동포와 함께 돌려보았다고 말하는 같은 소설가의 미소 띤 환한 얼굴이 겹쳐진다.

           

과거(1989년 1월), 중앙대 캠퍼스
영화제작소 ‘장산곶매’는 1988년도에 처음 만들어진다. 여러 대학에 흩어져서 단편영화 작업을 하던 친구들이 함께 모여 공동창작으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그때 모두에게 가장 관심이 있던 주제는 광주를 담는 것. 드디어 <오! 꿈의 나라>(16mm, 90분)가 만들어진다. ‘장산곶매’는 광주를 형상화한 이 첫 16mm 장편 독립영화로 최초의 시련을 겪는다. 이 영화의 대중적 공개를 막고 있는 (당시)영화법이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필름을 압수, 수색하고자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된다. 검찰은 대표(홍기선)를 불구속 기소한다. 검찰 쪽의 한바탕 소동과 이어진 재판을 통해 영화법 위헌 조항(8mm, 16mm 필름으로 만든 소형영화에 대한 영화법 적용 시비)이 드러나고 헌법소원이 신청되는 등 <오! 꿈의 나라>는 유명세를 치르며 전국 대학가에서 상영된다. 물론 이 경험이 1년여 후 <파업전야>의 상영을 준비하면서 ‘장산곶매’가 당국의 예상되는 제재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 줄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과거(1989년 12월), 부평의 촬영현장
부평공단에 있는 한독금속이다. 사측의 일방적인 휴업으로 노조가 위장폐업 철폐투쟁을 하는 중인데 노조와 연락이 닿아 촬영 장비를 싸들고 온 것이다. 이번에 찍지 않으면 얼마나 더 기다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오! 꿈의 나라> 이후 지난 수개월에 걸친 현장취재들이 눈앞을 스친다. 이미 세창물산의 깡순이들, 남일금속 등 경인지역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취재하며 다큐멘터리(<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 16mm, 42분)까지 제작을 마친 상태. ‘장산곶매’ 전체 구성원의 집단토론과 줄거리 구성에 이미 9개월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낸 터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집단 합숙하며 농성투쟁 중이던 노조원들은 우리를 반긴다. 그러나 막상 이 현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무로 단역배우, 진보적 연극운동패, 대학연극반원들로 구성된 연기자들의 의상과 분장을 만지는 일이 고작. 한전에서는 전기를 끊어 놓은 상태였고, 프레스 기계는 싸늘하게 멈춰 있은 지 오래다. 자정을 넘기면서도 촬영에 별 진척은 없다. “우덜끼리 함 해보지 뭐” 발빠르게 노조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 이래서 노동의 새벽 아래서는 모두가 동지인가 보다. 촬영용 봉고를 타고 나가 청계천에서 구입한 전신주용 퓨즈가 연결되자 공장 안에 온기가 차 온다. 노동자 한 분이 오랜만이다 싶은 지 팔 걷어 부치고 프레스 레버를 움켜쥔다. 불에 달군 쇠봉이 프레스 아래 놓이고 쾅쾅. 시뻘건 스페너의 외관이 점차 뚜렷해진다. 몇 번의 쑥스러운 시범, 그 성스러움이 그대로 필름에 담긴다. 
       
궁끼 흐르던 식당도 가마솥에 김이 오른다. 밥판엔 국 한 가지지만 제법 먹거리 내음을 날린다. ‘장산곶매’ 회원 중 하나(정성진)는 완전히 프로 주방장이다. 음식점용 쇼팅(덕용 마아가린)을 깡통 채 사와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누가 이걸 다 먹어?’ ‘비싼 거 아냐? 등등) 합숙촬영 기간 내내 왕성한 식욕들과 꼭 맞춤하여 깔끔하게 비워낸다. 일인다역의 엑스트라 역을 마다않던 한독금속의 노동자들도 주방장만 보면 엄지손가락을 높이 세운다. 주간지의 환상이 사라진 (독립)영화의 촬영현장을 체험한 그들도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또 다른 노동의 현실을 이해하고 따듯한 어깨를 내준다. 아마 <파업전야>에 노동의 건강함이 담겨있다면 그건 모두 이런 노동자들과의 신명나는 한판, 그 동지적 관계가 스며든 까닭이다.
     
오랜 시간이 경과한,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사전심의가 위헌임을 판결한다.
“영화법 12조 영화의 사전심의제도는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 제도로…”

     

같은 달 12일 오후 5시, 명동성당
‘영화검열 위헌결정 환영 및 표현의 자유 완전쟁취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독립영화 배급 투쟁에 이골이 난 친구(낭희섭)의 지휘로 천막 스크린이 엉성하지만 굳건하게 세워진다. 16mm 필름(스크레치로 비가 많이 흐르는)으로 <파업전야>가 다시 상영된다.
상영이 끝나고 ‘장산곶매’ 당시 회원들이 군중들 앞에 늘어서 소개된다. “…또 여기 이 친구가 바로 식당 씬을 찍을 수 있게 만든 주방장 이었을 뿐더러 테러 장면 등 액션 씬에서도 거의 무술감독같이 활약한…”

   

* 윗 글은 기억을 되살려 시나리오체로 구성한 것으로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지만, 필자의 주관에 의해 장소, 대사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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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1 04:55 2006/11/11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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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노동 사회의 비젼 ;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김철식, 질라라비 4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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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철식인가. 좀 글을 쉽게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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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노동 사회의 비젼 ;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질라라비 2003년 1월호(통권 4호) :: 2003-02-18   조회: 130

김철식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1. 들어가며 
      

20세기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의 상황에 들어섰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Arrighi, 1994; Brunhoff, 1999; Brenner, 1998; Dum?nil and L?vy, 1999 등).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는 동시에 노동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에도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전세계적인 실업 및 불안정고용의 확산, 전통적인 노동조합 조직률의 쇠퇴, ‘고용없는 성장’에 대한 불안감 등등. 이러한 현상들이 가시화됨에 따라 ‘20대80’사회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우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설득력 있는 담론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동의가 그것의 원인, 극복방법, 대안사회의 상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의 구체적 양상과 원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최근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일단의 논의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현재 사회는 더 이상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노동의 종말(end of work)’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리프킨, 1996).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진 새로운 사회의 비전은 ‘탈노동(post-work)’사회로 개념화되기도 한다(Aronowitz et al., 1998). 또한 이러한 새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동거부’운동이 주장된다(강내희, 1999; 고병권, 1999). 도대체 현재의 위기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하나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대안사회를 그려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모습일 것인가?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여기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쟁점들에 대해서 검토해보고자 한다.  
      

2. 노동의 종말 혹은 탈노동사회? 
      

(1) 현재의 위기의 원인과 특징은 무엇인가 
      

논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소위 ‘탈노동’사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은 ‘기술발전으로 인한 일자리의 축소와 생산성의 증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리프킨(Rifkin)에 의하면 현 시대는 “제조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어서 기계가 인간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 즉 “무노동의 시대”로 규정된다(리프킨, 1996: 31, 373). 이는 주로 두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첫째, 기술대체라고 일컫는 것으로, 정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소프트웨어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블루칼라의 일자리는 지난 몇십년간 엄청난 규모로 줄어들었다. 둘째, 작업장의 ‘리엔지니어링’이다. 즉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의 결과, 생산을 위한 기업조직구조를 새로이 혁신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주로 중간관리층의 일자리를 줄임으로써 일자리의 축소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자리의 축소는 생산의 감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의 감소는 고용의 감소를 낳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 역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재의 경우 생산의 증가가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생산의 증가는 일자리의 축소와 동반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실업이 기술 및 조직의 변화로 인한 것으로 이는 비가역적인 것이다(Lunghini, 1995: 41-2/Bellofiore, 1999: 26에서 재인용). 즉 오늘날은 이윤의 증대와 번영, 그리고 정리해고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Aronowitz et al., 1998:41). 
      

물론 이러한 생산의 증가가 반드시 일자리의 축소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필요노동량의 축소가 반드시 일자리 축소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필요노동의 축소가 "노동시간의 감소, 자유시간의 증가라는 혜택 수여의 기회로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의 희소화를 통한 새로운 지배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즉 필요노동량의 축소는 일자리의 축소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노동을 희소한 것으로 만들게 됨으로서 "노동에 대한 접근권을 갖는 소수 노동자는 핵심적 지위를 갖게 되고, 나머지는 주변부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강내희, 1999: 26). 
      

따라서 문제는 새로운 시대 "생산성 향상분이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놓여있다. 즉 그것이 일부에 의한 전유만으로 귀결될 때, 그것은 "대량실업과 전세계적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을 가져오게 될 것이지만(리프킨, 1996: 31), 반대로 “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이 근로시간 감소와 급료 및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연결”될 때(리프킨, 1996: 31), “지금의 노동을 다양한 생산적 활동, 삶을 위한 활동, 문화적 활동으로 전환(강내희, 1999:26)”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와 관련하여 필자는 두가지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첫째는 현재의 위기의 원인과 관련한 것이다. 그것은 앞의 논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기술혁신으로 인한 것인가? 그것이 오늘날 이야기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둘째는 현재를 노동의 종말로 규정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러한 기술의 혁신이 노동계급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가? 즉 노동은 종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줄어들기보다는 불안정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첫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1970년대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선진자본주의 경제는 공통적으로 경기침체와 높은 인플레이션, 실업률의 급격한 상승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는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되었나(해결하려고 했었나)? 
      

뒤메닐과 레비(Dum?nil and L?vy, 1999)는 1970년대의 위기는 보다 장기적인 자본주의의 진화의 결과로 본다. 그것의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노동 및 생산과 비교한 고정자본의 ‘부담’ 증가, 즉 이윤율의 저하이다. 이윤율의 감소는 기업의 현금흐름을 압박함으로써 유동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조그마한 수요감소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되며, 이에 따라 거시경제가 동요하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경향이 위기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경험적 자료를 이용하여 이 시기 기술 변화는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둔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술변화가 실업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한편 브레너(Brenner, 1998)는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가 자본과 자본사이의 격화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는 자본의 철수에 따른 시장 균형의 재형성을 낳기는커녕 저하된 이윤율을 감내하면서 비용삭감 경쟁을 계속하는 자본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이윤율 저하가 계속된다고 한다. 자본으로 하여금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은, 무디(Moody, 1999)도 지적하고 있듯이, 대규모 고정자본 투자(sunk cost)로 인한 경직성의 증대로 인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본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리기(Arrighi, 1994)의 논의가 유용할 듯하다. 그는 자신의 주저인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에서 자본축적의 역사적 단계를 구별하기 위하여 축적체제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각각의 축적체제는 산업적 팽창과 금융적 팽창의 두 국면을 갖는다고 본다. 생산물 시장에서의 공급과잉은 생산물 시장을 둘러싼 경쟁의 격화를 낳고 이에 따라 생산물의 가치실현은 불확실해지게 된다. 따라서 자본은 이윤확보가 불확실한 생산물 시장에서 철수하여 금융시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적 팽창이 주요한 축적의 국면이 되고 금융자본의 생산자본에 대한 우위가 확보되게 되는 것이다. 아리기는 현재의 미국 헤게모니하의 자본주의 축적구조가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산업적 팽창의 시대를 넘어서서 금융적 팽창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보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브뤼노프(Brunhoff, 1999)는 다양한 자본주의 모델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공통적 특성을 자본축적과정의 ‘금융화’로 본다. 이는 주로 세계적 규모의 자본의 구조조정에 의해 구축된다. 일반적으로 말해, 자본주의적 금융은 생산적 자본의 팽창을 융통·조정한다. 그러나 위기가 심화되고, 더 이상 생산자본을 통한 이윤확보가 불확실할 경우 금융은 생산자본에의 투자가 아니라 주식시장, 통화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를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축적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본의 금융화를 발생시킨다.  
      

이상의 논의에서 볼 때, 오늘날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이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금융적 단계로의 이행으로 볼 수 있다. 즉 오늘날의 위기의 본질은 바로 자본주의의 금융화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자본주의 금융화에 대한 논의는 헤게모니 국가와의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플릭스타인(Fligstein, 1998)의 논의가 유용할 듯하다. 그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화 현상은 미국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일반화시도라고 본다. 이는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미국이 1970년대 이후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미국은 ‘주주가치(shareholder value)’ 개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즉 단지 주주만이 기업활동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주주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유일한 관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금융적 성과는 기업 전략을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주식가격 상승을 통한 단기적 주주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업활동을 탈규제하고, 세금, 특히 부유층의 세금을 인하하고, 노동의 조직화를 보다 어렵게 하며, 미국 복지국가라는 것을 해체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주식가격 상승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노동비용을 절감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리해고, 조직혁신을 통한 하청 외주화, 불안정 고용의 확대가 쉽게 도출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위기해결 방식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구가하여왔다고 인식되었던 독일, 일본, 아시아의 국가주도 모델이 1990년대 들어 위기에 봉착하면서 그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시장은 좋은 것이고, 국가의 개입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주장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담론을 타고 전세계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볼 때, 기술 발전을 현재의 일자리 축소와 연결시키는 것은 오늘날 일반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금융적 팽창국면으로의 이행, 신자유주의적 담론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원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다시 이후의 위기에 대한 처방에 있어서도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두번째로 기술혁신으로 인한 것이든, 자본주의의 위기로 인한 것이든, 실제로 노동 계급은 사라지고 있는가? 더 이상 노동력이 불필요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즉 노동은 종말을 고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벨로피오르(Bellofiore, 1999)의 비판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실제로 노동은 종말한 것이 아니라 실업과 함께 성장하고 있으며, 그것도 불안정하고 배제적인 것이 혼합된 형태로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그는 1996년 발간된 세계은행 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임금노동은 성장하고 있으며, 다만 고소득, 중간소득, 저수입 국가에서의 노동력 비율이 변화하고 있을 뿐임을 밝혀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흥미있는 것은 1974년 이래로 경제성장은 이전보다 더 직무집약적(job-intensive)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Bellofiore, 1999: 25-27). 
      

한편 카르체디(Carchedi, 1999)의 1970년대 이후 다국적기업의 지배력 증가, 경제적 권력의 집중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실제로 다국적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는 전세계 노동력의 단지 5%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이 노동계급이 사라질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그의 답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노동계급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이는 다국적 자본의 지배영역이 증가함에 따라 빈곤이 증가함을 의미하는 것이지 노동계급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Carchedi, 1999: 74). 
      

이러한 논의들을 볼 때, 현재 줄어들고 있는 것은 임금노동 일반, 일자리 일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소득의 일자리,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일자리, 노동조건이 양호한 일자리인 것 같다.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한 일자리, 즉 임시직, 일용직, 파트타임, 파견, 용역, 독립계약 등과 같은 임금도 낮고, 부가급여도 없으며,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일자리는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현상은 노동 일반이 소멸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금융화와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는 자본축적양식의 변화가 노동과정, 노동력재생산,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임노동자의 삶과 노동 생활전반의 수준이 저하되는”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사회진보연대 불안정노동연구팀, 2000: 18). 
      

(2) 대안을 발견하기 
      

그러면 ‘노동의 종말’ 주장이 제기하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면 현실을 그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우선 이들 논의가 전제하고 있는 노동에 대한 기본가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검토하는 이후의 대안사회의 상은 바로 노동에 대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 - 노동은 신성한 것?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노동은 찬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 경멸스러운 것, 심지어 노예적인 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고병권, 1999: 49). 노동이 그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근대 부르조아 사회에서였다. 즉 “근대사회에서 노동은 구원과 자기 인식, 그리고 모든 부의 수단이었고 원천”이 된 것이다(고병권, 1999: 49-50). 근대적 의미의 노동이 등장하면서 “생산적 활동은 그 의미, 동기, 대상과 단절되고 임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해졌다. 생산활동은 삶의 일부가 되기를 그치고 생계를 버는 수단이 되었다. 일을 위한 시간과 삶을 위한 시간은 분리되었다(Gorz, 1989: 21-2/강내희, 1999: 29에서 재인용)”. 물론 이렇게 이해된 노동은 바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수행하는 임금노동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임금노동은 강제적 성격의 노동이며, 따라서 그것이 필요노동의 영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강내희, 1999: 25). 노동시간 단축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즉 노동시간 단축은 자연스럽게 자유시간의 확대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노동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은 곧 ‘삶을 위한 활동’, ‘문화적 활동’에 투자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노동 거부’ 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즉 “기술발전으로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과실이라 할 자유시간을 노동자계급이 획득해야” 하며, “이 자유시간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동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강내희, 1999: 27). 
      
이러한 노동에 대한 거부가 노동 일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노동에 대한 거부는 노동에 대한 재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자본주의적 노동 개념 자체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노동에 대한 거부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고병권, 1999: 55). 이런 점에서 노동의 범위는 확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공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은 반드시 임금노동에 의해서 구축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기본적 필요조건에는 생존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선 생활도 포함되며, 따라서 필요 (노동의) 영역에는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가 포함되어야 한다”.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임금노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익재원과 자발적 활동 등 좁은 의미의 노동 개념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조건과 활동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이 모두 노동의 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강내희, 1999: 24). 
      

이러한 새로운 기획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여전히 임금노동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그럼으로 인해 여가와 노동, 필요와 욕구, 일과 놀이라는 자본주의적 이분법의 논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임금노동은 힘든 것, 어려운 것, 하기 싫은 것,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며 많은 경우 자신의 욕구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남은 최대의 부분들은 여가를 위해, 욕구를 위해, 놀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의 개념 자체가 좀 더 확장되어, 더 많은 부분이 생산적 노동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임노동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즉 최소화되어야 하는 부분, 즉 하기 싫은, 힘든 부분인 임금노동시간은 고통스런 시간으로 용납되어야 하는 것인가?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임금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투자되는 시간은 자신의 생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지금 임금노동을 수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업 상태에서 여전히 생존을 위해 새로운 임금노동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임금노동은 여전히 열악한 작업환경, 높은 노동강도, 권위적인 통제 하에 놓여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경우 그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최소화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이와 더불어 실제로 수행되고 있는 임금노동을 좀 더 민주적이고 쾌적한 것, 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보다 중요한 것은 아닐까? 노동의 인간화, 생활전반의 유의미성이란 바로 이러한 노동의 영역을 개조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단지 여가시간의 확대나 새로운 생산적 노동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②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탈노동’사회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탈노동’의 담론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

노동시간 단축은 ‘탈노동’사회 담론이 현실화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우선적인 요구로서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현대사회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적은 노동시간으로도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이 근로시간의 감소와 급료 및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리프킨, 1996: 291). 또한 여기에는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공유를 통해 작금의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여가시간, 자유시간의 확장을 통해 보다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리프킨은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주로 기술대체에 의한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에 의하면 생산성 혁명은 두가지 방식으로 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쳐왔다. 먼저 노동 및 시간절감 기술의 도입은 기업으로 하여금 대량해고를 가능하게 해 주었고, 그 결과 실업자들로 구성된 산업예비군이 창출되었다. 다른 한편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임금과 부가 급여의 하락을 보상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도록 강요된다(리프킨, 1996: 297).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 및 시간절약기술 도입으로 발생하는 생산성 향상을 수백만 노동자와 함께 나누어야” 하며, 그것의 유력한 방안 중의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공유함으로써 실업을 줄이는 것이다(리프킨, 1996: 291). 
      
여기에서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감소의 문제가 제기된다. 즉 동일한 일감을 두고 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공유하게 되면 그에 따른 임금감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쇼어(Schor)는 현대의 노동자들이 보다 적은 노동을 위해 보다 적은 소비(와 이를 가능케 하는 임금)를 받아들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아로노비츠 등은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 감소나 잔업 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즉 기술 혁명의 결과 노동시간의 단축과 생활수준의 향상이 동시에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Aronowitz et al., 1998: 61). 그는 이러한 임금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전일제 고용(full-time job)이라는 사회적 표준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노동거부’ 테제에서 볼 때,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과 고용불안의 맥락이 아니라 ‘노동거부’와 연결된다. 이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바로 ‘자유시간’의 확대와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자유시간의 확대는 여가의 확대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문화와 사회생활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시간의 확대를 가능케 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병권, 1999: 54). 
      

우선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는 노동시간 단축을 검토해보자. 노동시간단축이 실업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일자리(혹은 일감)을 공유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존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단축됨으로 인해 공백으로 남게 된 시간에 다른 누군가가 노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필연적이다. 즉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창출효과가 있으려면 노동시간 유연화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동반하여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바로 오늘날 노동의 불안정화를 가져오는 자본의 전략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를 인정, 용인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이루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선 그것이 의도했던 일자리 확보효과의 실효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유연성이 확대됨에 따라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축소된다. 여기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의 확대는 지속적인 일자리의 축소 경향으로 인해 상쇄된다. 그것은 “산업의 재편과 노동과정의 합리화 등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새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을 사전에 삼켜버렸기 때문”이다(강수돌, 1997).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단축이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것에 다름아니며, 따라서 그것이 의도했던 성과 자체도 상당히 의문시되는 것이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확보되는 일자리의 성격 문제를 들 수 있다. 즉 새로이 확보되는 일자리가 이전보다 상당히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유연화됨에 따라 시간제 노동이나 기업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임시직 노동이 확산될 수 있게 된다. 결국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동반하는 노동시간의 단축은 이러한 불안정 노동의 확산을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삶의 질 제고’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노동시간단축을 사고할 때에도 동일한 문제가 남는다. 실제로 노동시간단축의 현실화는 노사정간의 협약이든, (파업 등을 동반한) 노사간의 단체협약에 의해서이건 일정한 타협을 통해 관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경우 이러한 타협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유연화 혹은 임금감소를 교환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따라서 앞에서 제기한 문제가 동일하게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가운데 임금감소 (및 노동의 유연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현실에서 전자의 전제조건은 사상된 채 단지 노동시간 단축만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자유로운 여가확대라기보다는 유연한 불안정 노동 확산으로 귀결되기 쉽다. 
      
물론 이는 노사간의 역관계를 배경으로 한다. 다시 말해 노동시간 단축이 어떠한 형태로 관철될 것인가는 특히 노동의 강력한 의지와 집합성을 배경으로 하는 노동의 힘에 좌우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임금감소 없는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이를 물질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에 두어져야 한다. 이러한 고민이 생략된 구호는 기존의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 즉 전반적인 노동대중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소득 개념의 확장: 사회적 소득, 보장 소득

노동이 최소한으로 축소된 속에서도 여유있는 삶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임금이나 수입과는 다른 의미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임금과 소득을 구분하고 임금이 소득을 구성하는 비율을 낮추어야 한다. 즉 소득을 임금으로 환원하지 않는 사회적 자원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소득‘ 개념이 도입된다. 그것은 화폐소득으로 환원되지 않는 소득, 화폐교환과는 다른 교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개념이다. 실제로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은 임금으로 보상되지 못하는 노동으로 채워져있다(이상 강내희, 1999: 39-40). 사회적 소득은 바로 이러한 임금으로 환원되지 않는 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이를 통한 가계의 적정 소득의 보장을 가능케 하며, 이에 따라 임금노동이 아닌 다양한 활동 영역의 개방을 가능케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아로노비츠 등은 ‘보장 소득(guaranteed income)’ 개념을 제시한다(Aronowitz et al., 1998: 64-69, 75-76). 이것 역시 노동과 관계없이 물질적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한다. 보장소득의 핵심적 특징은 더 이상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것의 존재가 노동에의 유인을 제거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기본수준 이상의 소득을 원하기 때문에 기꺼이 (임금)노동을 선택할 것이며, 또한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공재나 사회적 필요노동에 대한 책임을 갖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장소득이 적용되면 민간부문은 보장소득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민간부문에 가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동절약적 기술이 도입, 발전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절약된 노동은 공공서비스나 노동시간 단축의 형태로 공유될 수 있다. 
      

실제로 임금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소득, 노동여부와 관계없이 물질적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소득의 보장은 자본주의적 가치에 긴박되지 않는, 보다 여유있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전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실천과 결부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사회적 공공영역의 구축

이와 관련하여 강내희는 사회적 공공영역의 구축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공공영역은 “시장과 국가로부터 벗어난 독자적 영역으로서 노동의 상품화와 교환가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여기에서 경제는 선물경제에 한발 다가선 비시장 경제이고, 시간은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며, 활동은 자발적인 봉사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이 영역의 규모, 역동성에 의해 사회적 공공성의 확보와 문화적 활동의 확산 여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강내희, 1999: 41). 
      
이와 유사하게 리프킨은 ‘제3부문’의 강화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제3부문이라 “독립적, 자원적 부문”으로써,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서비스를 타인에게 판매하는데 근거한 인위적인 시장관계를 대체하는 영역”이다. 그것은 공동체 활동, 자원봉사, 비영리조직과 같은 “강제성도 없고 금전적인 관계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탈노동사회로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의 보다 많은 부분을 시장으로부터 제3부문으로 이전”시켜야 한다(이상 리프킨, 1996: 316-318, 326-327). 
      
이러한 공공영역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함께 공적 재원의 투여가 필요하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된다. 여기에서 다양한 세금 감면의 유인, 새로운 조세의 창출 및 조세 투입 우선순위의 변경 등이 검토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조세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그것의 변형을 주장해왔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는 실행되기 어려운 강고한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학생운동이든 다양한 사회운동이 어떻게 활성화되는가 여부가 공공영역의 구축의 촉진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오히려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간의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공통의 지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고민들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탈노동사회의 거창한 비전은 단지 미래에 대한 장미빛 환상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 같다. 
      

3. 맺으며 - 노동의 종말인가 노동의 불안정화인가 
      

오늘날 세계는 엄청난 혼란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성장을 구가하던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급격히 둔화되었고, 경제성장률이 침체에 빠졌으며, 높은 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선진 자본주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은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산업의 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명분하에 공세적으로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된다.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조직적 혁신이 단행되고, 노동력 사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유연적 생산방식이 도입되었다. 
      
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국가 및 자본의 적극적인 공세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유연적 생산방식의 도입과 노동의 수량적 유연성의 증대는 고용을 심각한 문제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고용불안의 영향 하에서 노동조건의 악화를 노동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다. 한편으로 국가의 반노조 입법과 노동시장의 규제완화, 사용자의 노동조합 회피 전략 등은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과 정치적 영향력의 약화를 가져오면서 소위 ‘노동조합운동의 쇠퇴(union decline)’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세계경제가 급속히 통합되어감에 따라 제3세계 국가들 또한 이상의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198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외채 및 금융위기, 구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종족 및 민족분쟁, 국가주도의 급속한 산업화가 가져온 정경유착과 권위주의적 통제 등이 더해지면서 제3세계에서 문제의 양상은 보다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양상에서 나타나는 노동의 쇠퇴와 위기를 노동 일반의 소멸, ‘노동의 종말’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필자는 작금의 현실이 노동운동 및 노동자 대중에 미치는 영향을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금융화와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는 자본축적양식의 변화로 인해 임노동자의 삶과 노동, 생활 수준 전반이 심각하게 불안정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듯이 ‘평생직장’ 및 ‘완전고용’ 개념이 사라지고, 장기적인 ‘불안정 고용’, 일상화된 실업이 일반화되는 현상은 이의 단적인 예이다. 물론 여기에서 불안정화란 단지 고용조건상의 불안정화로 국한될 수 없다. 그것은 노동과정, 노동력재생산, 노동시장이라는 임노동관계 전반에 걸쳐서 관철되고 있는 것이며, 또한 각각의 계기들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중첩적이며 상호의존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면서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을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 노동자에게 있어서 불안정성은 하나의 계기로 환원될 수 없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문제가 이와 같이 규정될 때,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검토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금융화, 세계화, 신자유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노동자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 것인가? 이러한 당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 및 사회운동의 전략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또한 변화된 상황에서 어떠한 전망과 요구를 가지고 보편적 이해를 실현해내며 연대를 물질화할 수 있는가? 등등. 대안사회에 대한 비젼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변화의 전략에 기초한 경우에라야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탈노동사회에 관한 논의와 관련하여 제기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를 넘어선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적용가능성의 문제이다. 탈노동사회 담론은 높은 이윤을 실현할 수 있는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에서, 거대한 이윤의 몫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에 중심이 두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이윤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탈노동사회 담론에서 제기하는 급속한 노동대체적 기술혁신, 높은 생산성 향상 등은 제3세계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따라서 그러한 담론들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주는 의미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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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0 15:17 2006/11/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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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을 위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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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91년도에 모대학 학생회 선거를 할 때 좌파선본의 선거로고송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노문연 노래분과였던 새벽에 의뢰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확실하진 않다. 중요하지도 않고... 

그런데 역시나 이 노래의 소스를 찾을 수 없다. 하긴 이런 노래가 소스가 있을리가 없지...

 

노래의 선율은 상당히 좋은데, 가사가 지나치게 개념어 위주로 되어 있어서 추상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후보로 출마했던 상은이나 창근이는 이 노래를 기억할까 몰라. 

가사가 맞나.

 

 

전진을 위한 연대

 

너와 나의 어깨에 빛나는 태양

패배의 폐허 위로 다시 떠오르고

저 찬란한 민중의 진군 속에서

다시 치솟는 우리의 깃발로

그날은 온다

 

보아라 우리의 투쟁 침묵과 정적을 깨고

동뜨는 신새벽에 끝없이 전진한다

보아라 우리의 전진 철의 연대를

아 민중의 눈부신 해방투쟁 세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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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0 03:50 2006/11/10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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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님의 글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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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님의 [당내PD들의 알리바이] 에 관련된 글.

피에로 님께서 말한대로 NL이라고 하더라도 빈정거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당권장악을 위해 자주파가 알아야할 필수 욕지거리 9선] 같은 것을 쓰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제가 담아온 것은 그냥 웃고 넘어갈 일로 보았기 때문이고요. 물론 피에로 님처럼 오히려 이 글을 쓴 사람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덧붙여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NL이라는 개념은 모르겠지만, PD라는 건 역사적 의미를 소멸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NL, PD로 구분하여 정파논의를 하는 것은 편의적일 뿐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하네요.
    
논쟁은 조소나 빈정거림으로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해야합니다. 하지만 동지가 아니라고 할 경우에는 약간 사정이 다르겠지요. 그리고 어차피 논쟁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논쟁의 대상은 바로 그 논쟁을 지켜보는 제3자일 겁니다. 따라서 논쟁에서 말꼬리잡기를 하거나 비논리적 주장, 욕설 등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게 되지요.
   
NL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습니다. 다만 당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회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진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NL과 비 NL 사이의 싸움은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있지만, 특히 당직 선거나 당내 의사결정과정, 그리고 활동방식 등에 있어서 NL에 의해 당하고 나면 그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버리기 어렵게 되는 사정이 많이 작용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으로 입당했던 많은 당원들이 탈당하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야 당내의 사태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의 당원게시판 등에서 NL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비판적이지만, 블로그의 경우는 개인공간의 성격이 강한 만큼 그 표현방식이 용인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표출하는 것과 실제 활동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요.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님의 글에 '전진'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진' 성원이라서 그런지 그런 언급에 오해가 있으면 풀고 싶어지거든요.
'전진' 회원이 되는 것과 대중운동이 무너지는 것과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대중운동 공간에서 한계에 부딪혔을 경우 이를 풀어내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조직에 가입해서 함께 문제를 돌파해나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 전진의 경우 과거 민주노총 내의 '중앙파'라고 통칭되었던 이들이 다수 들어와 있는데, 이들이 하나의 의견그룹의 성원으로서 자신의 활동에 책임을 지고 대중운동(노조운동)과 정치운동(정당)을 연결하려는 모색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진전은 아닐지... 또한 당내 젊은 좌파적 성향의 활동가들에게는 NL에 대한 비판이 자기 활동의 근거가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당권장악이 전진의 목적도 아닐 뿐더러 당권장악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건 '욕찌거리'로 가능하지 않음은 님이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무리 NL이 문제라고 해도 그렇게 함부로 게시판 등에서 욕설을 퍼붓는 성원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블로그에 쓴 글은 예외로 해야겠지요. 이런 경우에도 공개된 글의 경우에는 다들 신중하겠지요. 
   
민주노동당 의원단의 역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만, 넘어가도록 하지요. 저 또한 지금 요구되는 민주노동당 의원의 활동 방점은 대정부질문을 잘하고 우수한 의정활동을 하며, 정책발의를 많이 하는 것보다는 대중운동의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참고로 저 또한 강기갑 의원을 높게 평가합니다. 12월 경에 '전진'에서 의원단 활동에 대한 평가글이 기관지에 올라올 텐데, 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답변이 길어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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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0 02:44 2006/11/10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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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까짓것 반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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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공장 1집에 실렸던 노래 중에 당시 대선에 출마했던 정주영의 발언을 가사의 내용에 포함시켜 만든 노래가 있다. 바로 <그 누구>이다.
92년 노동자대회를 마치고 행진하던 도중에서였던 것 같은데, 행진하는 도중에 여러가지 노래를 불렀다. 그 중에 이 <그 누구>도 들어있었다. 발랄한 학생들이라, 아래와 같은 추임새를 넣어 불러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이 노래는 이후 백기완 민중대통령후보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곧잘 부르곤 하였다.
    
아파트 까짓것 반값(정말!!), 공산당 까짓것 허용(만세!!)
   
그런데 그 아파트 반값이 사실 알고 보면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닐 듯하다. 당시에도 건축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고 있던 정주영이 '아파트 반값' 공약을 했던 것도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홍준표가 다시 아파트 반값을 들고 나왔다.
역시 이런 쪽으로 감은 뛰어난 듯하다. 레디앙의 관련 기사를 담아온다.
   

노래공장 - 그 누구
  
타도 하자던 정권의 손을 마주 잡고
그 그늘 아래서 대통령 후보 된사람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다
그 주범을 얼싸안은 그사람
그 누구 그누구 표긁기 전선에 우뚝선 그 사람
아파트 까짓것 반값 공산당 까짓껏 허용
국민을 속이는 기막힌 거짓말장이
민주투사 흉내내다 본모습 되찾고
온화한 이미지 위해 애쓰는 사람
그 누구 그누구 표긁기 전선에 우뚝선 사람들



아파트 반값? “사회주의 아닙니다” (레디앙, 2006년 11월 09일 (목) 13:32:37 김선희 기자)
홍준표, 입법 공청회… “민노당은 뭐하나”…심상정 "검토 가치"

    

‘아파트 반값’.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하며 서민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아파트 반값’ 정책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 9일 ‘아파트 반값’ 입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통해 그 가능성이 모색된다.

     

아파트 반값 진짜 가능한가
    
홍준표 의원은 9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반값 아파트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과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개최한다. 법안의 공식 명칭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대한토지주택공사법’이다.
   
‘아파트 반값’의 핵심은 토지는 공영 개발해 임대하고, 건물은 국가기관이나 공사 또는 민간업자가 건설, 분양토록 하는 ‘대지임대부 건물분양’ 방식이다. 공공이 토지를 임대하면 시행사는 일반 소비자에게 건물을 판매하고 매입자는 공공기관에 토지 임대료를 물게 된다.

     

   
  ▲  5.31 지방선거 당시 `수도 서울의 꿈' 정책토론회를 발표하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사진=연합뉴스)  
 

홍 의원이 마련한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특별조치법)은 신도시 개발이나 재개발, 재건축 시 이러한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우선 건설하도록 했다.

     

무주택자와 서민을 분양 우선순위로 정하고 1가구 1주택만 공급하도록 했다. 또한 대지 임대료의 경우 대지 소유자와 계약을 통해 임대보증금이나 월 임대료 방법을 선택하거나 혼용할 수 있도록 했다. 최초 분양자로 선정된 날부터 10년간 전매도 금지된다.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법안인 만큼 다양한 특혜를 허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건설 재정과 관련 연금 및 기금의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원활한 공급을 위해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등의 조세를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의 용적률을 400%이상으로 허용했는가 하면 임대기간 만료전이라도 재건축이 가능토록 했다. 더불어 대지의 임대기간을 40년으로 정했으며 계약 갱신 청구도 가능토록 했다.
     
홍 의원은 또한 ‘특별조치법’의 전제조건으로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하는 ‘대한토지주택공사법’을 내놓기도 했다. 집장사, 땅장사로 비난을 사고 있는 두 기관의 중복 업무와 중복 자산을 통합하고 임대주택과 대지임대 분양주택만 짓게 해 공급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평당 5백~6백만원대 이하 공급가능
   
홍 의원은 이날 공청회 발제문을 통해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은 토지 불로소득, 즉 개발이익 때문”이라며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을 통해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고 발생하는 부동산 투기, 가수요가 확실하게 제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아파트 가격 산정 시 토지 가격이 빠져서 평당 500~600만원대 이하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를 기할 수 있고, 주변지역 아파트 가격의 동반 상승 또는 투기적 가수요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헌법 제119조 제2항, 제120조 제2항, 제122조, 제126조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천명하면서 토지에 대한 규제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며 “더더욱 이 시점에 있어 토지불로소득의 제거는 긴요하다”고 강조해 일부에서 제기된 사유재산 침해 등 위헌성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홍 의원은 “급격한 부동산 상승세는 90년대초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우려하게 한다”며 “부동산 거품이 사라진 후 12년간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이했던 일본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정책이 극한치에 다다른 부동산 가격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계, 학계, 시민단체의 공청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토지임대 분양주택’의 취지에 공감을 나타냈으며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헌법적 근거도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부동산 문제 최우선 과제로 지하방, 옥탑방 등 주택극빈층과 무주택자 문제 해소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다주택 소유, 주택 담보 대출, 신규 분양 제한 등을 제안했다.
   
법안과 관련해서는 “원칙적으로 국가, 지자체, 공기업이 직접 공공주택을 지어 환매조건으로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면서 “다만 토지 불로소득의 사유화가 심각한 현실을 감안할 때, 토지는 정부가 소유하되 이를 민간에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여 소유를 인정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제도도 차선책으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심 의원은 “땅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의 사유화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집(아파트)값에 땅값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분양가가 큰 폭으로 낮아진다는 게 장점”이라며 “지역에 따라서는 ‘아파트 반값’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판단되고 일정한 소득 이상의 계층에게 내집 장만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 의원은 “아울러 이같은 제도를 단지 주택공급에만 한정할 게 아니라 기업도시 등 재벌대기업이 막대한 특혜를 받고 토지 불로소득의 폭리를 취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개발 정책 일반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아파트 반값 입법 공청회에서 발제 중인 홍준표 의원

심상정, 복지부 산하에 주택청 신설 바람직
   
또한 토공과 주공의 통합과 관련 “주택정책을 ‘건설’에서 ‘복지’로, 공급중심에서 서민주거안정 중심의 주택정책으로 전환하려면 건교부, 토공, 주공 등 주택조직을 전면개혁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새로운 주택조직(예컨대 주택청)은 복지부 산하 기구로 편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주거복지정책에 초점을 맞춘 체제로 완전히 새롭게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도 공영개발 원칙을 강조하며 “정부가 낮은 가격으로 인한 투기적 수요 우려로 공영개발을 반대하지만 공공택지를 전부 장기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으로 공급해 공공이 주택을 소유하면 투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강남 지역의 그린벨트 지역을 활용해 렌탈 전용 신도시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주공과 토공의 통폐합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김 의원은 건교부, 복지부, 환경부, 주공, 토공 등 주택과 관련되어 각각 분산되어 있는 정부 부처, 공기업을 하나로 통합해 건교부나 복지부 산하에 ‘주택청’ 신설을 주장했다. 그는 “주택청은 수익을 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국내외 주택 사업의 계획과 집행, 운영을 총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지임대 분양주택은 시장친화적 정책
    
충북대 도시공학과 반영운 교수는 토지임대 분양주택은 시의적절하고 공공의 토지 개발과 민간의 주택 건설 방식도 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반 교수는 “자동차나 주택이나 모두 사용함에 따라 그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그런데 그 동안 토지 불로소득의 개인 소유를 보장해 온 한국 사회의 악습 때문에, 사유화된 지대가 주택가격에 반영되어 집값을 상승시킴으로써, 집값은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되고 나날이 올라야만 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우리 사회에 유포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 교수는 홍 의원의 ‘토지임대 분양주택’이 “시장친화적 성격이고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맨하튼이 토지를 임차해 이룩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며 “20세기 들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록펠러 센터, 아스토리아 호텔 등 유명 건물도 임차 토지 위에 건설됐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원주인 인디언으로부터 개발회사가 토지를 임차해 개발한 미국 팜스프링 휴양지 등의 예를 들어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공공이 소유한 채 임대하는 것이 사회주의라는 일부의 주장은 이 미국 사례들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아파트값 내리기 모임’의 신만섭 대표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전면 개혁을 주장하며 “분양가 자율화를 철회하고 분양가 고시를 하든지, 토지임대 건물분양 방식으로 주택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양자 모두를 채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주택 문제 제대로 대응 못하면 사라질 수도
   
신 대표는 “토지임대부 분양의 경우, 싱가포르 사례처럼 주택환매부 분양정책도 병행해서 써야 할 것”이라며 “공공주택을 분양 받은 자는 일정기간 이상 거주해야 하며 이후 매매하는 경우에는 주택개발청이 지정한 가격으로 환매하는 식으로 과도한 프리미엄을 사전에 원천봉쇄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오늘 논의한 정책대안마저 토론에 그치고 실현되지 않는다면 무주택 서민들은 정치권에 다른 주문을 준비하고 있다”며 “국가 차원이든, 지방자치 차원이든 토지를 원가에 제공 또는 매입하게 해준다면 공인된 시민단체와 관계자 등의 협력 하에 공동주택을 지어 원가를 스스로 공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신 대표는 부동산 문제에 무관심한 정치권을 질타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은 주택정책에 관한 대국민 약속을 끊임없이 파기하고 말을 바꾸며 그 위기를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고만 해왔고 한나라당 또한 현재의 부동산 거품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의지를 보여주지 않아 부동산 정책에 관한한, 현 정권의 노선에 거의 거역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특히 민주노동당을 집중 추궁했다. 그는 “진보를 표방한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처럼 ‘토대’의 고민 없는 ‘정치과잉’ 노선 전철을 밟을 것이냐”면서 “민주노동당은 주택문제를 말해도 경제력이 거의 없는 빈민 주거권만 자주 거론하는데 그것은 기초생활 복지차원의 문제로 진짜 고민해야 할 점은 거시 경제적으로 전반적 소비를 옥죄고 있는 주범인 집값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 달라”고 전제하고 “민주노동당이 주택문제 등 국민 기초 생활권이라는 ‘토대’에 대한 성찰과 적극적 해결의지 없다면, 그들이 말하는대로 2012년 집권목표가 아니라 당장 다음 총선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위기를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아파트 반값'으로 대선 후보 도전? (레디앙, 2006년11월08일 20:06:38 김선희 기자)
아파트 반값-주공토공 통합 법제화 공청회…“흥행 위해 나갈 수도" 
   

한나라당 대선레이스의 ‘페이스메이커’ 등장을 예고했던 홍준표 의원의 행보가 눈에 띈다. 한나라당 대선 레이스의 '마이너 리거'들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의원의 아파트 반값 공약 입법 추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9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반값 아파트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과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개최한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 ‘아파트 반값’이란 매력적인 공약을 제시했으나 낙선한 홍의원이 입법화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법안의 공식 명칭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대한토지주택공사법’이다. 홍 의원이 아파트 반값’의 핵심으로 제시한 '토지 임대, 건물만 분양' 방식이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개념화됐다. 구체적으로 토지는 공영 개발해 임대하고, 건물은 국가기관이나 공사 또는 민간업자가 건설, 분양토록 하는 제3의 아파트 공급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주공과 토공을 통합하는 ‘대한토지주택공사법’은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집장사, 땅장사로 비난을 사고 있는 두 기관의 중복 업무와 자산을 통합하고 임대주택과 대지임대 분양주택만 짓게 해 공급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홍 의원은 미리 배포한 공청회 발제문에서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을 통해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고 발생하는 부동산 투기, 가수요가 확실하게 제거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를 기할 수 있고, 주변지역 아파트 가격의 동반 상승 또는 투기적 가수요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의 ‘아파트 반값’ 입법 추진은 우선 낙선에도 불구하고 후보로서 공약했던 내용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빌 공(空)의 공약이 남발되는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대권주자 ‘빅 3’의 본격 행보는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꼬마 후보'들의 움직임도 서서히 포착되고 있는 시점인 만큼 홍 의원의 입법 추진은 약속 이행 이상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나라당 대선레이스에서 빅 3 이외에도 ‘페이스메이커’의 등장을 예고했던 홍 의원인 만큼 그의 화두가 된 ‘아파트 반값’을 구체화하는 것은 페이스메이커든, 뭐든 직접 후보로 나서려는 준비가 아니냐는 시선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적어도 7~8명의 후보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며 “홍준표 의원도 다자구도를 강조해온 만큼 경선 흥행을 위해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홍 의원은 여전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가깝다”며 “후보로 나서더라도 끝까지 가지 않고 결국 이 전 시장을 돕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당사자인 홍준표 의원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페이스메이커는 할 만 하지”라면서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또한 아파트 반값 입법 추진에 대해서도 대선 후보 출마에 따른 공약과 같은 “그런 식으로 고려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의 한 측근도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흥행을 위해서도, 포지티브 정책 대결을 위해서도 다자구도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라며 “물론 개인적인 정치적 욕심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다자구도 형성을 위해 홍 의원이 직접 출마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홍 의원은 국가경영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홍 의원이 결국 ‘페이스메이커’의 역할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아파트 반값 법제화가 그 전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홍 의원이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이 ‘아파트 반값’ 정책이 기치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인정했다. 또한 “‘아파트 반값’ 정책은 단지 부동산 정책이 아니다”며 “주택시장, 주거복지, 공공기관 개혁 등 그 안에 다양한 의미가 담길 수 있다”고 말해 향후 공약으로 발전 가능성도 충분함을 시사했다. 
   
나아가 이 측근은 “‘아파트 반값’이 법제화 과정을 거치며 아파트 값을 반으로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기득권층의 오해를 불식시킨다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도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 말해 홍 의원의 대권레이스 종주 여부를 떠나 ‘아파트 반값’ 정책이 한나라당 대선 공약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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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0 01:57 2006/11/10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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