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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위기구조와 노동의 선택(노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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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기 교수의 1999년사회경제학회 원고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관련해서 찾은 것인데, 너무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민주노총의 노사정 참여와 관련하여 살펴보는 의미가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구조와 노동의 선택*

노중기**


Ⅰ. 문제제기: 위기의 노동운동

Ⅱ. 사회적 조합주의 : 운동노선의 위기

Ⅲ. 노동정치체제 변동 : 위기의 구조적 배경

Ⅳ. 결론 : 노동운동의 전략 선택 

           

Ⅰ. 문제제기 : 위기의 노동운동


지난 몇 년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노동정치정세는 역동적으로 변화하였으며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가와 겨울총파업, 노동법개정와 민주노총 합법화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참가와 탈퇴 등의 복잡한 정치과정을 숨가쁘게 헤쳐왔다. 조직 내적으로는 연맹별 조직재편이 계속되어 산별노조 전환이 구체적인 일정에 오르게 되었으며, 정치세력화의 시도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 과정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보다 구체화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1997년 말 IMF경제공황의 도래와 신정부의 출범은 갑자기 위기를 전면화시킨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1998년 한 해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상황에 처했다. IMF경제위기로 촉발된 대규모의 실업사태와 전면적인 양보교섭 상황에 직면하여 노동운동은 올바른 주체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닥친 수세기(守勢期) 상황은 오랫동안 공세적 분배투쟁에 익숙해있던 우리 노동운동에 전혀 낯선 것이었다. 특히 국가가 강요한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과정에서는 원칙없는 참여와 불참을 반복하는 가운데 노조조직 내부에서 상당한 갈등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위기 진단은 지난 10년동안 간간이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1991-1992년 시기에는 노동운동위기론 논쟁이라는 형태로 '위기'가 이론적, 실천적 쟁점으로 부각된 적도 있었다. 당시의 위기론 논쟁은 주로 국가가 노동억압을 강화함으로써 나타난 노동운동의 일시적 위축현상에 관한 것이었고 위기론자들은 이를 확대 해석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정권기에 들어와 민주노총이 결성되는 등 노동운동이 조직적 발전을 이루어내자 위기론은 쉽게 불식될 수 있었다.

 

반면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는 보다 구조적이고 전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임영일, 1998b) 특히 지난 1년동안의 노동정치과정에서는 운동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위기현상이 감지되었다.

 

우선 노동계급의 전 부문에 걸쳐 양보교섭이 일반화되고 노동조건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식적으로 약 12% 정도 임금이 삭감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실제 하락률은 20%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본격화됨으로써 고용은 전반적으로 불안해졌다. 200만 이상의 신규실업자가 생겼고 이미 하락추세에 있던 조직률도 크게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취업자, 여성노동자 등 노동계급 내부의 취약계층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재벌사업장과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 부문에서 이런 위기상황이 발생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위기는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으로 조직 내 민주주의와 집중성의 문제가 갑자기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대중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조직역량 뿐만 아니라 결정된 방침을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는 조직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조직민주주의의 문제는 1기 집행부가 노사정합의과정에서 조합원 대중에 의해 불신임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대중적 지지 위에서 성립한 2기 집행부도 조직방침을 투쟁의 실행으로 실천할 수 없는 무기력상태에서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물론 이런 파행적인 조직과정에는 경제위기국면의 상황조건, 운동노선의 문제, 취약한 리더쉽 등 보다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기업별 노조체제의 한계', 혹은 '취약한 계급역량'으로 일컬어왔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수세기의 상황조건과 결합하여 운동의 위기를 심화시킨 근본 요인이었다.

 

셋째, 변화하는 국가·자본의 대 노동계급전략에 대해 노동운동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김대중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매개로 하여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배제전략이란 점에서는 동일하였지만, 노동계급의 이해를 의제적(擬制的)으로나마 포섭하려는 형식을 갖춰 이전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노동측은 노정(勞政)교섭과 불참선언 혹은 총파업, 총력투쟁 등 다양한 방식의 대응방안을 모색하였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IMF 이후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갑지기 많은 갈등과 혼선, 위기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노동운동노선 상의 혼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노선에 대한 논란은 하반기에 민주노총의 운동노선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 노동조합주의'(social unionism)라는 형태로 정식화되면서 본격화되었다.(김유선, 1998a; 박성인, 1998; 노중기, 1998; 임영일, 1998a) 사회적 조합주의론의 적실성 여부와는 별개로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급한 운동적 과제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운동노선 상의 혼란과 갈등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운동노선의 문제는 항상 국가와 자본의 대 노동전략과의 함수관계, 나아가 노동정치의 구조적 조건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전면화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동정치체제 변동의 맥락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2절에서는 1998년 한 해동안의 노동정치와 운동노선의 문제를 노사정위원회 경험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3절에서는 위기를 '1987년 노동정치체제' 해체라는 구조적 배경과 연관지어 정리하고 4절에서는 체제변동의 전망과 노동운동의 전략선택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Ⅱ. 사회적 조합주의 : 운동노선의 위기


1997년 겨울총파업에서 드러난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객관적 역량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반전되었고 노동운동의 위기상황은 급박하게 다가왔다. 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인 상황요인은 무엇보다 IMF경제위기였다.

 

IMF체제는 1998년 노동정치를 규정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었다. 오랫동안 임금, 노동조건을 둘러싼 공세적 분배투쟁에 익숙해져 있었던 노동운동은 갑자기 수세기의 노동정치상황을 맞이하였다. 전략선택의 구조적 환경은 크게 역전되었으며, 노동은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고용문제와 대규모 실업사태라는 새로운 의제를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전까지의 단사 수준의 단체교섭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또 노동대중은 대규모 실업의 공포 앞에서 양보교섭을 손쉽게 받아들였다.(Zoll and Neumann, 1986)

             

반면에 경제위기는 국가와 자본에 대해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였다. 국가는 '국가파산상태와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를 급속히 전파함으로써 노자 간의 힘의 균형을 손쉽게 역전시킬 수 있었다. 구조조정의 당위성은 노조에 대한 각종 공격을 일방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자원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의 우위 속에서도 국가는 전통적인 물리적 억압과 강제 대신 노사정위원회라는 합의기구를 대 노동전략의 지렛대로 선택하였다.

                 

합의기구를 선택한 국가의 손익계산은 그다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물리적 억압과 노골적인 노동배제전략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 선택은 많은 비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여느 때보다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노동측의 사회적·정치적 저항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 예견되었다. 따라서 억압은 취약한 권력기반을 가진 김대중정권이 집권 초반기에 선택하기 힘든 대안이었다.

             

반면 노사정 합의체제는 성공할 경우 집권세력에 상당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대노동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노동쟁의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지 않고 구조조정과 경제살리기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당성기반을 크게 강화시킬 요인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반대급부가 지불되지 않을 수 없다. 협상과정에서 약간의 양보를 허용해야 하는 것 외에도 협상기구의 존재 자체가 전국적 투쟁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역전된 계급역학관계 위에서 세련된 노동정치 운영이 뒷받침될 경우, 이 점은 크게 우려할 것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전체적으로 노사정체제를 선택한 국가의 전략선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국가는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에서 1월 14일 1기 노사정위원회 구성 합의, 2월 6일 정리해고를 도입한 1기 노사정합의, 6월 5일 1차 노정합의(2기 노사정위원회 구성)와 7월 23일(25일)의 2차 노정합의, 8월 24일의 현대자동차 노사정합의 등 모두 다섯 차례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우선 노사정위원회의 구성이나 유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였다. 그에 비하면 '합의'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두 차례의 노정합의와 같이 국가는 노사정위원회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지킬 수 없는 공약(空約)을 남발하였다. 합의 직후부터 그 이행을 거부함으로써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또 민주노총의 불참 시에는 노동측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타협안을 내놓았으나 노사정위원회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국가는 노동측이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 공권력 중심의 강경대응을 굽히지 않았다. 공권력은 노동측의 선택지를 '장외투쟁'과 '노사정위원회 참가-투쟁포기'로 단순화하고 참가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은 억압기구의 동원이 노사정위의 운용전략과 모순되지 않음을 잘 보여주었다. 요컨대 노사정위원회의 잠재적 효과는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의 저항을 봉쇄하는 것에 있었다.

다음으로 합의내용과 합의이행의 측면에서도 정부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1기 합의에서 쟁점이었던 정리해고와 노동자파견제를 제외하면 정부는 특별히 노동측에 요구할 것이 없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거래에 앞서 이미 이윤을 남긴 유리한 교환이었고, 국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노동의 요구를 처리할 수 있었다. 위원회 내부에서는 노사정 간의 형식적 동등성에도 불구하고 1:2.5 혹은 1:2의 실질적 역관계가 지배하였다. 국가는 자본측 반대에 기대어 노동측의 요구를 희석화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측 요구는 4단계에 걸친 복잡한 노사정위원회의 의사과정을 거치면서 손쉽게 지연되었고 추상적인 약속으로 바뀌었다.(노중기, 1999) 또 정부의 통제밖에 있는 국회심의과정에서는 합의내용이 변질되거나 이행이 무산되었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였다. 쟁의권을 넘겨주고 정리해고를 수용한 대가로 노동이 얻은 것은 그나마 교원노조의 합법화가 유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교환은 심한 부등가교환이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를 통해서 노동운동 내부에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었다.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보아서 상당한 노동통제 효과를 산출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노동측의 손익계산서에는 손실이 심각하였다. 200만을 상회하는 신규실업자, 20% 이상의 실질임금 하락, 노동조건의 악화와 노동강도의 강화, 비정규직 노동과 파견노동의 증가 등 노동시장 여건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조직력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 특히 사용자가 주도한 각종 부당노동행위는 정부의 솜방망이 엄포와 방관 아래 계속 확대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생활고의 가중, 가족의 해체와 노숙자로의 전락, 범죄와 정신질환 및 자살의 증가 등 노동자대중의 고통은 크게 증가하였다. 또 합의체제가 가동되고 있었지만 구속·수배노동자들의 수는 김영삼정권기의 그것을 상회하는 형편이었다. 요컨대 고통분담의 구호는 노동자계급의 고통전담으로 끝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노동의 입장에서는 부등가교환보다 노동운동 내부의 균열과 상처가 더 심각한 손실이었다. 그것은 균열이 노동운동의 조직발전에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2월 9일 민주노총 1기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사태, 노사정합의 이후 현대자동차 노조의 무력화와 내부 갈등은 단지 상징적인 사건들일 뿐이었다. 노사정위원회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균열은 편재적인 것이었고 계속 재생산되었다. 현장조합원과 단위노조 지도부, 현장조직과 상급연맹 중앙지도부, 제조업과 사무직, 각 산업과 업종, 남성과 여성 등의 축을 따라 노조조직 내부의 의견대립은 심화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당면한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 업종 간의 이해대립이 항상적으로 작용하였다. 노조 내부에 있었던 운동노선 상의 차이들도 균열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IMF라는 특수한 상황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손실을 낳은 일차적인 원인은 노동측의 전략적 판단이 실패했다는 점에 있었다. 1998년 초의 시점에서 민주노총에게 주어진 전략적 선택지는 노사정위원회 참가와 불참-대중투쟁이라는 형태로 단순화되어 있었다. 민주노총 1기 집행부는 전자의 입장을 채택하였고 2기 집행부는 두 가지 극단의 전략을 가로지르며 흔들렸던 것이다. 특히 1기 집행부가 정리해고를 합의의 형식으로 손쉽게 받아들인 것은 상황판단 실패였고 이는 심각한 휴유증을 낳았다.

           

1기 집행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서구 코포라티즘의 합의기구와 유사한 것으로 보거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주관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런 평가에는 부분적으로나마 신 정부의 민주성과 개혁성에 대한 기대가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민주노총 내부에 존재하던 운동노선 상의 혼란, 이른바 '사회적 조합주의'의 문제가 깔려있었다.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unionism)노선은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 등의 이름으로 존재해왔던 노동운동 내부의 하나의 유력한 흐름이었다. 이 노선은 위기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저성장-고실업'의 경제구조 변동에 조응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전투적' 운동노선을 지목하였다. 그리고 정책 참가, 기업수준의 경영참가 및 사회개혁투쟁 등을 위기돌파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사회적 조합주의론'에서 볼 때 IMF위기와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조합주의'노선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여 노동운동을 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명분만 외치는 모세조합주의나, 투쟁노선과 협상노선을 우왕좌왕하는 지그재그조합주의, 협소한 이해에만 집착하는 실리적 조합주의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기 노사정합의를 '사회적 조합주의론'이 정당화하기에는 많은 이론적 한계가 있다.

               

먼저 '사회적 조합주의론'은 경제구조결정론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고성장-저실업'과 '저성장-고실업'의 경제구조 변동에 따라 운동노선이 변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과도한 단순 인과도식이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노동정치체제의 구조, 노조조직체제의 특성, 국가정치 및 국가 통제전략의 전개 방향, 운동의 경험과 대중들의 의식수준 등 중요한 정치적 매개변수들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노동정치의 측면들, 즉 IMF체제 하에서 합의의 가능성과 한계, DJ정부와 자본의 전략적 목표와 의도, 그 실행과정이 노동운동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가를 거의 분석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회적 조합주의론'은 서구 사민주의사회의 합의체제를 절대화하거나 이상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포라티즘은 포드주의타협과 복지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이에 대응한 역사적 산물이었다.(Hyman, 1994) 서유럽에서 그것은 1980년대 이후 크게 위축되었고 때로 붕괴하였다. 나아가 정책참가와 코포라티즘제도는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 따라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으며, 가능하다해도 전혀 다른 실천적 함의를 갖게 된다. 그러나 '사회적 조합주의론'에서는 이를 노동운동이 거쳐야 할 필연적이고 단선적인 발전경로의 하나로 설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경제위기를 경험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노사정합의가 시도된 바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및 동유럽 여러 나라들의 합의체제들이 노동운동에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가는 매우 조심스럽게 분석되어야 할 주제이다. 서구의 경험을 기초로 그 결과를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제3세계 국가에서 합의체제는 정책참가의 의미보다 노동계급 통제기구의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셋째 개념적으로 한국판(版) '사회적 조합주의'는 남아공의 '사회운동적 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와 유럽의 사회적 코포라티즘(societal corporatism)의 이종교배(異種交配)로 파악된다. 사회운동적 조합주의에 대해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연대와 계급적·대중적 정치투쟁의 원리를 제거하였다. 또 사민주의에서는 역사구조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합의주의와 정책참가만을 수입하였다. 남아공의 노동운동 경험에 대한 사회적 조합주의의 인식은 물신성(物神性)이 느껴질 정도이다. 코사투의 정책참가에 대해서는 남아공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치우친 인식은 그 합리적 핵심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을 어렵게 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남아공의 미래는 사민주의의 계급타협체제로 투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전투적 노조주의의 실리주의를 비판하지만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는 다른 의미의 실리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사회개혁, 제도개선의 실익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회전체의 이해를 '계급'의 이해와 대립시킴으로써 자본주의경제의 '생산성', '경제성장'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재영, 1999)

             

결국 '사회적 조합주의'의 현실적인 의미는 그 이론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 객관적 조건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책참여는 '협조'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았다. 현장노동자들의 비판은 근거없는 비난이나 무책임한 선동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략적 실패는 단순히 운동노선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위기를 극대화한 촉발요인이었을 뿐이다. 1기 집행부를 비판하고 노사정위원회 불참입장을 명료히 표명했던 2기 집행부도 국가 주도의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의 위기는 한층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연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동정치체제 변동의 문제였다.

 

Ⅲ. 노동정치체제 변동 : 위기의 구조적 배경


1987년 노동정치체제는 기업별 노조조직과 단체교섭, 노동에 대한 국가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적 저항이 맞물려 재생산되었던 노동체제였다. 이 체제 하에서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의 기본구조는 국가의 노동계급에 대한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적 대중동원전략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모순은 전 사회적 수준의 자유화,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정치에서의 반민주성의 강고한 유지로부터 연원하였다. 동시에 이 체제는 국가·자본에게 상당한 정치·경제적 비용을 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계급적 발전도 가로막는 것이었다. 각 주체들은 이 체제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으며, 결국 1987년체제는 과도기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체제를 변형시키기 위한 노사정 주체들의 오랜 각축은 1997년 겨울총파업과 노동법개정으로 정점에 달했고 체제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복수노조금지조항과 제3자개입금지조항의 삭제, 개정은 민주노총을 실질적으로 합법화함으로써 정치체제와 노동체제의 탈구현상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었다. 또 같은 해 말 시작된 IMF체제와 김대중정권의 성립은 체제 해체의 속도를 크게 높여준 요인이었다.(임영일, 1998b; 노중기, 1997; 장홍근, 1998)

            

노사정위 노동정치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났던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런 체제 변형의 구조적 지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1987년체제에 내재해 있던 노동운동 내부의 한계들이 한꺼번에 표출한 것을 의미하였다. 국가의 통제전략이 완화되고 민주노조운동이 시민권을 얻음으로써 전혀 새로운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고 전투적 대중동원전략의 효능은 노동운동 내부로부터 의심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초유의 전면적 수세기, 혹은 경제공황기라는 상황적 조건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문제제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요컨대 구조적 지형의 변화들은 노동운동의 노선에 대한 고민과 문제제기를 전면화시키는 계기였다.

              

체제변동은 필연적으로 각 주체들의 전략적 태도의 변화와 내적 갈등을 수반하였다. 먼저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은 구조적으로 변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별 노조조직의 강제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완전한 배제를 기조로 하였던 1987년체제 하의 국가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시민권을 획득하였고 법적으로 기업별 체제를 더 이상 강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기존 전략을 부분적으로 변형시켜 최대한 유지하는 방안과 방임전략이나 포섭전략 등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도입하는 방안 두 가지였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국가가 선택한 것은 전자였다. 그것은 기존의 물리적·법적 통제수단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바꾸고 이데올로기나 조직적 통제를 보다 강화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을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노동측은 전략 수준의 변화를 주관적으로 기대하였으나 주도권을 쥔 국가가 후자를 선택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1987년체제 하에서 국가 노동통제의 가장 큰 결함은 민주노조운동의 불법화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와 민주노총의 불법화라는 모순이 해소됨에 따라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의 통제효력은 크게 높아질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우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단체협약 체결권에 대한 인준 금지, 파업기간 중 임금지급 금지, 대체노동의 허용 등 개정노동법에서 새로 도입된 통제조항들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반적인 사회민주화가 확장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의 실질적 합법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론을 동원한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효과도 더 커지게 되었다. 정권의 정당성 기반이 점차 확대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결국 헤게모니적 배제전략, 즉 체계적으로 조작된 여론과 쟁의에 대한 다양한 법적, 행정적 통제를 세련된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더불어 양대노총체제를 이용한 조직적 통제도 더욱 용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사정위원회는 무엇보다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통제기구였다. IMF경제위기로 말미암은 유리한 이데올로기지형은 국가가 노동대중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노동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더욱이 노동측이 먼저 3자합의기구를 요구하고 나섰으므로 상황은 국가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국가는 노사정위를 매개로 해서 수세에 몰린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탈퇴-전투적 투쟁'과 '참가-노사협력'의 획일적 선택 구도를 강제할 수 있었다. 경제공황이라는 이데올로기지형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존재 그자체가 전자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노사정위원회는 무엇보다 '경제위기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압박'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노자 간의 권력균형의 산물이 아니었다.(신광영, 1998; 김수진, 1999; 조효래, 1999)

           

다음으로 체제변동에 따라 노동운동의 내부구조와 운동조건도 크게 변화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민주노총의 시민권 획득이었다.(임영일, 1997; 노중기, 1997) 민주노조운동 자체가 불법화되었던 1987년체제 하에서 위기는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없었다. 조직 내부에 잠재했던 이해관계의 차이나 운동노선의 차이들은 국가와의 전면적 대치전선 속에서 크게 부각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조직 내의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비민주적 의사결정이나 취약한 조직집중성의 문제도 쉽게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불법화라는 껍질이 깨지자 비로소 이 모든 조직 내적 문제들이 '현안'으로 불거질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불안과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정치는 조직 내부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고용문제는 이전의 경제적 분배투쟁과는 질(質)을 달리하는 과제였다. 1987년체제에서 일차적인 수혜자였던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이 처음으로 위협받게 되었던 것이다. 또 이전에 균열을 감싸주던 경제적 실리획득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개별 노조와 연맹,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의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 조직의 이해에 관계된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민주성이나 정책결정의 내용에 대한 각 조직의 몰입 정도는 커졌고, 이해대립은 훨씬 첨예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노사정위원회는 갈등을 현재화하는 효과를 산출하였다. 우선 노사정위 참가문제로 각 조직의 노선 상의 차이는 표면화되었다. 예컨대 연맹 별 조합원의식의 편차는 곧바로 조직 간의 갈등으로 발전하였다. 국가는 구조조정의 시기를 연맹별, 기업별로 조정함으로써 각 조직의 이익대립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운용하였다. 노사정위에 참가하라는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각 연맹들의 요구는 노사정위원회를 1년이나 유지시킨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기업별체제의 한계가 전면화한 것도 체제변동이 가져다 준 중요한 변화였다. 민주노총의 합법화는 동시에 복수노조와 산별노조로의 조직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조직구조는 여전히 기업별체제의 기본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더욱이 경제위기 상황은 기업 간 격차를 확대시켜 1987년체제를 지탱한 기본틀인 기업단위의 단체교섭과 노동자 동원기제의 원활한 작동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임영일, 1998b: 105-113) 그 결과 민주노조운동 내부에는 조직의 집중성과 조직민주주의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조직집중성과 조직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결합되어 있는 문제이다.(임영일, 1999a) 노사정위 노동정치에서는 한편에서 하부 조직이나 현장조직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조직민주주의의 문제와 의사결정이 중앙조직으로 체계적으로 집중되지 않는 집중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났다. 다시 말해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지 못함으로써 효과적인 의사결집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따라서 통일적인 정책실행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크게 보아 기업단위의 작업장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이 상급연맹이나 중앙조직으로 그 활동영역을 확대, 이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는 민주노조운동에서 초기업단위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갑자기 부각시킨 하나의 계기였다.

            

결국 그것은 기업별체제의 '민주성'이 확대된 조직구조에서 어떻게 변형, 재생산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되어 있고, 곧 의사결정의 민주적 집중성에 관한 문제였다. 현재와 같이 기업단위의 조직운영방식이 그대로 중앙조직에 복제되어 되풀이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료제적 대의제기구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제어하고 현장조합원의 의사참가를 제도화하는 새로운 조직민주주의의 모델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Ⅳ. 결론 : 노동운동의 전략 선택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Hyman and Ferner, 1994) 전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와 신자유주의의 자본공세는 서구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제3세계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Moody, 1997) 노동운동은 축적체제의 변동과 자본공세에 따라 자기정체성을 위협받고 있으나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도 이런 세계사적 위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IMF충격은 이미 진행되어 오던 위기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전면적으로 확대시킨 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위기는 한국사회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체제 변동의 독특한 구조 위에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위기탈출의 전망은 세계사적 변동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특수한 구조적 토양 위에서 사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해체되고 있는 1987년체제가 어떤 새로운 노동정치체제로 발전할 것인가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선 확인되어야 할 것은 새로운 체제가 서구나 제3세계의 어떤 기존 모델과도 유사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운동주체와 국가·자본의 주관적 의도가 어떠하건 간에 현재의 조건에서 그 가능성은 없다.

             

예컨대 최근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법제화하고 그 위상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곧바로 코포라티즘의 제도화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노동배제를 위한 단기적 통제수단으로 매우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는다. 사회적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이든 국가코포라티즘(state corporatism)이든 우리 사회에 코포라티즘체제가 형성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임영일, 1998b: 114-116) 그보다는 일본식의 기업단위 노사협조체제가 아직도 훨씬 가까이 있다.

                

노사정위원회 노동정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국가와 자본, 노동 3자 모두는 새로운 체제의 상을 갖고 있지 않다. 독점대재벌 헤게모니의 자본은 이미 해체되고 있는 1987년체제로의 회귀나 자본의 일방적 지배를 원하고 있으며, 국가는 대안적 노동체제에 대한 뚜렷한 장기적 플랜을 갖고 있지 않다. 또 노동측의 경우에는 '사회적 조합주의'와 '계급적 대중투쟁' 또는 '대중적 정치투쟁'의 두 가지 길을 놓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노동측의 두 가지 길은 모두 내용적으로 모호한 상태이며 추상적 논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1987년체제'는 아니지만 전체 노동계급을 배제하는 새로운 과도적인 노동체제의 형성이다. 이 체제의 기본요소에는 국가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과 양대 노총에 대한 분할지배, 기업별 노조조직체제의 온존과 산별조직으로의 부분 전환, 자본의 적대와 기업단위의 대립적 노사관계 등이 포함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올바른 전략 선택은 국가·자본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에 변형을 가할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변인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전략 선택은 위기국면, 체제전환의 국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선 조직 외적으로는 국가와 자본의 형식적 포섭전략이 상당 정도 유지될 것이므로 자주성 확보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와 재벌 구조조정과정에서 제기되는 정책참가, 경영참가 문제는 그 시금석이었다. '경제살기'와 '기업살리기'의 이데올로기적, 조직적 도전 앞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상당 정도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배제적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대중의 반대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 결정으로 끊임없이 환류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직의 민주성은 유지되고 있다. 이런 조직적 자주성은 1999년 상반기 투쟁과정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투쟁전선'으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위기국면에서 제 일차적 과제는 조직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국가의 배제전략에 대해서 전투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동원의 전략, 대중적 정치투쟁전략이 계속 확대·발전되어야 한다. 사실 1987년체제 10년동안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큰 권력자원은 작업장수준의 조직과 '파업'투쟁역량,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경제적 권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당성이 취약한 정치권력, 불안정한 정치지형에 개입하여 정치적 불안정성을 배가하고 민중적 요구를 제시하는 전국적 수준의 정치적 권력자원이었다. 이런 면에서 민주노조는 전사회적 이해를 대표하는 사회적 권력으로써 전민중적 요구의 대리전달자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조운동은 조직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전민중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공세에 대해서 정치적 전선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런 외부 정치적 과제는 내부정치의 강화로 진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외부로부터 촉발된 것이라 하더라도 위기의 극복은 내부의 균열을 치유하는 내부정치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내부정치는 산별노조 건설을 매개로 해서 연대의 질을 심화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위기의 구성하고 있는 핵심문제들인 조직 내 민주주의와 조직 집중성의 딜레마는 산별노조로의 구체적인 전환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길이 없을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계급역량의 강화라는 보다 장기적인 과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된다. 현재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이미 거의 모든 조직 주체들이 당면한 과제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환은 몇몇 연맹을 중심으로 이미 상당 정도로 진행 중에 있다.

               

그러므로 현재 노동운동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부분은 산별노조와 현장조직, 또는 정책·제도와 이념·운동노선의 대립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문제는 산별 전환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합리적 핵심을 보존, 계승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서구모델이나 제3세계 조직모델의 적용과정일 수 없다. 그것은 건설과정 자체의 역동성에서 새로운 독창성이 만들어져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일이다.

                 

우선 1987년체제 이래 계속되어온 현장수준의 대중동력을 변형·유지하는 것은 그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결성 이후 급격히 약화되어 온 대기업의 현장조직들을 복원하고 이를 전 조직에서 재생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산별조직의 활동중심인 지역조직과 현장조직을 여하히 연결하여 조직민주주의를 실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정책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른바 '민주성'은 체제 전환의 과정에서 그 이념적 기치가 새로운 수준에서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집중성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한 것이다.

             

둘째로 내셔날센터기구로서의 '민주노총'의 위상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개별 사업장의 쟁의가 곧바로 전국적 연대투쟁의 전선이 되는 우리 노동정치의 독특한 조건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이런 독특성이 제도정치의 불안정성과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부재, 자본권력의 취약한 헤게모니, 노조조직 구조의 기형성, 전반적인 이데올로기 지형 등 구조적인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들은 체제 전환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정책기구, 협의기구를 넘어서서 상당한 정치적 역할은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자유주의적 노동정치의 환경에 놓인 서구의 내셔날센터와는 달리 민주노총은 전 민중적 대중투쟁의 연대기구적 성격을 상당 기간동안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산별노조 건설은 그 과정과 내용, 결과적 조직모델에 있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연대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직전환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노동자 및 기타 민중부문과 조직적 연대를 이루어내는 문제는 서구 산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관건이다. 자본의 전지구화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노동계급의 재구조화를 야기하고 있고 자본운동의 모순은 노동계급 내·외부의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김동춘, 1997) 조직적 연대를 위해서는 조직 형식 상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조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노동자들이 자신의 협소한 경제적 이해를 양보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조직전환의 전체 구도를 기획, 추진하는 데에는 민주노총의 주도가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서 시민운동과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조직적 준비도 시급하다. 이 점과 관련해서 IMF시기의 경험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대의 장은 넓었지만 연대보다 갈등을 야기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간의 바람직한 연대고리 모델의 창출은 노동운동 위기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다. 계급적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유연한 연대를 이루어내는 구체적인 실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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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01:23 2005/02/1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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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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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영수,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의 자살", 민중의 소리 2005-01-17.

- 사회진보연대 노동국, "사회적 합의주의 비판(1)-사회적 합의주의 10문 10답",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0월 (49호).

- 사회진보연대 노동국, "사회적 합의주의 비판(2)-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라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으로",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 (50호).

나름대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정리를 잘하였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의 자살" 

원영수 / <노동자의힘> 편집위원장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일국적 차원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주도될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도 국제금융기구와 초국적자본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노동자자계급에게 강제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역시 개별 사업장은 물론, 산업과 전국적 차원에서도 특히 노동유연화 공세에 의해 초토화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등 노동자계급 내부의 차이와 차별, 산업별, 업종별 불균등성과 차이 등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분절화는 노동자계급의 기본적 생존만이 아니라,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서 작년부터 추진되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노선은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에 심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비정규직 개악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직접적으로 노동자계급을 겨낭하는 상황에서 노동과 자본, 국가 3주체간의 사회적 교섭은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자주성과 민주성, 계급성을 기치 아래 투쟁으로 지켜온 민주노조운동을 체제내로 포섭하여,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을 거세하려는 기만적 정치공작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교섭노선은 민주노조운동의 무장해제와 정치적 자살로 다가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파산한 서구모델의 수입은 정치적 기만
  
  최근 이른바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계기로 소개되는 서구의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미 사실상 파산한 모델이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면서, 더욱 더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임금과 노동시간을 포함한 노동조건, 연금과 의료보장 등 사회보장에 대한 자본의 공세 자체가 이미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사실상 무의미한 기만적 합의구조를 만들었으며,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들의 이해를 전혀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차대전 후, 이른바 외부로부터 공산주의의 위협, 파시즘에 포섭되어 정당성을 상실한 자본의 양보, 전후 자본주의의 부흥을 통해 가능해진 축적 등의 요인이 사민주의 계열 정당의을 매개로 국가와 자본, 노동간의 대타협을 가능하게 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러한 사회적 타협의 물질적 기초를 붕괴시켰으며, 이 시기 이후의 사회적 협약은 자본측의 양보 대신 임금동결, 노동조건 하락 등 노동측의 일방적인 양보에 근거한 기만적 타협으로 변질되었다.
  
  1968년 혁명의 후폭풍으로 전개된 1970년대 서구 노동운동의 부활은 자본의 공세에 맞선 투쟁임과 동시에, 기만적 사회적 협약을 거부하는 투쟁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공세 앞에서 노동자투쟁이 각개 격파당하면서, 서구의 노동운동은 그 이후 20년간 지리한 퇴조국면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서구 노동운동의 몰락은 한편에서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대한 대응실패 때문이지만, 동시에 기만적 사회적 합의주의에 포섭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서구 노동운동은 민주노조운동의 반면교사이지, 뭔가 배워야 할 모범이 결코 아니다.
  
  대중적 투쟁으로 거부한 사회적 합의주의
  
  김대중정권에 의해 도입된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조운동에 의해 거부당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를 주장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면서, 국가의 압박 하에서 자본과의 타협을 강제하는 노사정위원회는 대중적으로 거부당했다. 자본측의 양보는 전혀 없이, 노동자의 저항할 권리를 반납하는 정치적 교섭을 받아들일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
   
  현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전방위적 공작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동조합운동 외곽에서 인위적으로 수입되는 노동운동 위기논쟁 역시 이런 맥락과 닿아 있으며, 정권과 자본, 언론의 '집단이기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호응하는 정파들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교섭을 통해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노동자 대중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조건상 국가나 자본 모두, 방향선회하는 노동운동에 선사할 물질적 양보는 사실상 전무하다.
  
  그러나 그런 합의의 댓가로 노동자들에게 돌아올 것은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일반화, 고용 및 노동유연화, 고용불안과 실업의 증대, 임금동결과 노동조건 악화 등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지도부와 국가 및 자본과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부당한 침해에 대한 정당한 최소한의 투쟁조차 국가와 자본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부에 투쟁까지 포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막강한 권한과 자금을 장악한 중앙지도부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현장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
  
  1970년대의 1세대 민주노조운동과 1987년 이후의 2세대 민주노조운동은 우리 노동자계급이 자랑스럽게 간직해야 할 자산이다. 현재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자본과 국가의 공세에 대한 대응의 실패로 인한 것이며, 사회적 합의주의 또는 사회적 대타협으로의 방향전환을 통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자체가 국가와 자본의 포섭공세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지난 한 투쟁의 과정이었고, 바로 그 대중적 투쟁 자체가 기만적 타협주의와 협조주의를 거부해온 민주노조운동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것이다.
  
  자본의 공세는 일국적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이 세계 도처에서 폭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중적 투쟁의 폭발로 WTO와 G8 등 제국주의 국제기구들은 대중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바로 이런 반전-반세계화투쟁을 통해, 전세계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다. 이들과의 타협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땅의 민주노조운동은 새로운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국제적 노동자-민중운동의 한 부분이며, 선도적으로 투쟁하는 대오였다. 사회적 협약을 통해, 투쟁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가? 일부 상층지도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적-제도적 개선과 형식적 권리를 위해, 지난 수십년간 투쟁의 성과를 쟁취한 현재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포기하라, 집단이기주의에서 해방되라, 이것은 노동운동의 노선이 아니라, 정권과 자본의 집요한 주문사항이었다. 이를 정당하게 거부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을 내부의 적으로 만드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2005년01월17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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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0월 (49호)

사회적 합의주의 비판(1)- 사회적 합의주의 10문10답 

사회진보연대 노동국

기획 사회적 합의주의 비판

* 민주노총 집행부에서는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 안팎에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우려가 높고 논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사회진보연대에서는 기획을 통해 이를 보다 자세히 분석하고 비판하고자 합니다.
10월 - 사회적 합의주의 10문 10답
11월 -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목소리
12월 - 좌담회
1,2월 - 종합 : 평가와 과제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전략과
사회적 교섭 기구 참여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10문10답

 

1. 현재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등을 중요시하며 2004년 사업계획에서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하게 내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새로운 사회적 교섭 기구 참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사회적 교섭, 사회적 대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현재 민주노총에서 주장하는 사회적 교섭구조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총연합단체로서 민주노총은 자신의 정책제도 개선과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대정부, 대사용자단체를 상대로 하는 사회적 교섭구조가 필요하다.
- 따라서 민주노총은 ‘중층적, 총체적 교섭 구조’를 쟁취하기 위해서 산별교섭, 대정부 교섭과 함께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올바르게 개편하고 새로운 노사정 교섭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민주노총은 요구를 천명하고 관철시키는 경로로서의 사회적 교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교섭, 사회적 대화의 논의는 주로 유럽식 사회적 합의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요.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책협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공공정책에 대해서 정부와 기업을 대표하는 최상위 고용자 연맹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최상위 노조 연맹 사이의 공개적 협상을 통해 공식적, 비공식적 협약으로 결정하는 노사정 공동결정의 형태를 일컫습니다. 국가는 정책을 작동시키기 위해 다른 경제 행위자들의 협력과 동의를 필요로 하게 되고 정부는 노조와 기업이 협력하도록 설득하려 하고 이러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에게 정책결정의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유럽에서 이러한 내용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가능했던 조건은 자본주의 호황기의 정책이었던 셈입니다. 강력한 노조(높은 가입률)의 존재와 함께 노조의 지지를 받는 사민주의 정당의 존재가 정책협의를 더욱 활성화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변화의 국면, 그리고 만연한 경제위기와 불안한 요소(산업자본, 노동)가 혼재해있는 현 시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도입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가집니다. 애초에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추구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 불안정노동이라는 현실에 직면해있는 대다수 노동자들(특히 비정규직)의 요구를 오히려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군다나 현재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사회적 대화는 이러한 정책결정의 일주체로서 노동자의 위치규정을 하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요구를 노사정간의 합의의 틀로 관철시키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2. 예전부터 정권은 노사협조주의, 신노사관계,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등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것이 현재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기구 추진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90년대 초반부터 구조조정은 한국자본주의의 화두였습니다. 당시는 신발 섬유 등 쇠퇴 산업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자본과 인력을 배분하려고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무리한 중화학 공업 투자 등으로 과잉축적이 더 심화하였고 이윤율은 더욱 하락하였습니다. IMF 위기가 발생한 이후 구조조정은 더욱 격렬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과잉자본과 과잉인력의 처리,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을 심화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국가와 자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해고의 경직성이 한국경제를 발목잡고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공격, 폭동을 야기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 조직화된 노동자들 및 그 지도자들의 포섭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가와 자본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신 노사관계 구축',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등입니다.

              
그래서 신 노사관계,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등이 노리는 것은 노동의 신축화, 노조 무력화이지요. 이를 통해서만 구조조정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자본의 이런 시도는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고 부분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확산되어 있는 불안정노동, 조직률 감소, 전투적인 노조운동의 실리주의 보신주의로의 경도 등이 그 증거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국가와 자본은 이런 것들을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총의 일부 세력도 이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상대적 진보성에 기대면서 불안정노동 문제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세계화 과정 중에 파생된 다양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사회적 교섭기구에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면 나오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은 몇 차례의 사회적 합의주의 및 타협체제 구축(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도 이것의 일종) 시도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이 내놓는 안이 언제나 우리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은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구조적 경제위기 또는 이를 극복하겠다고 나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세계화로의 편입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묵인하는 경향을 띕니다.

           
국가와 자본은 신 노사관계 구축,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사회적 교섭기구를 이야기하면서 불안정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제고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이 불안정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시키겠다는 약속은 번번이 사기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이제 신 노사관계 구축,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사회적 교섭기구 등에 더 이상 솔깃해하지 맙시다.


3. 민주노총은 ‘새로운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를 위한 논의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의 추진’을 주요 사업 계획으로 설정하고 올해 초부터 논의를 진행해왔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2004년 3월 3일 1차 중앙위, 4월 1일 3차 중앙집행위에서 노사정 교섭기구 추진을 위한 내부 토론 지침을 확정하고, 5월말 토론 지침을 각 연맹과 지역본부로 보내 7월말까지 조직토론을 끝내고 8월경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계획 속에서 지난 5월 31일 청와대에서의 노사정 토론회와 6월 4일과 7월 5일 2차례의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3차 회의는 8월 6일 민주노총 주관으로 개최하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7월 18일 정부가 엘지정유를 직권중재에 회부한데 이어, 20일 엘지정유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서울·인천지하철과 도시철도를 직권중재에 회부하는 일련의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노사정 대화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은 "탄압을 계속하면 한국의 노사정관계는 어떠한 발전적 논의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고, 7월 27일 상임집행위 논의를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3차 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총 집행부의 사회적 교섭에 대한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교섭안을 공식적으로 확정하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 25일 열린 9차 중앙집행위에서 "올바른 사회적 교섭기구를 만들어 민주노총의 주요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교섭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사회적 교섭 대책안'을 심의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노동탄압에 항의해 그 동안 유보해왔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다시 가동해 합의를 추진한 뒤 9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안건은 격론 끝에 8월 31일 2차 중앙위로 넘겨지고, 다수 중앙위원들의 반대로 내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로 안건상정이 미뤄진 상태입니다. 총연맹은 이후 중앙집행위에서 사회적 교섭과 관련한 일정과 계획 등을 논의할 방침이며, 노사정대표자회의도 당분간 열리긴 어려울 듯합니다.

                           
4. 사회적 교섭기구 혹은 노사정위 참가문제를 전략적, 혹은 전술적 판단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것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전략과 전술은 그 격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전략이란 운동의 기본적 방향과 목표, 혹은 그 실현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술은 이를테면 그 하위격으로 기존의 전략 하에 해당 시기 정세나 주체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구체적 투쟁의 방향이나 그 방법 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교섭기구, 혹은 노사정위 참가문제에 대한 전략적, 전술적 판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노사정위 참가의 문제를 전략적 차원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교섭전략 쪽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우리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교섭기구의 문제를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를 전술적으로 판단하자는 말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 정부, 기업과 협상을 해야 할 시기”라며 사회적 교섭기구에 참가했던 일들이 대부분 이런 전술적 판단 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전술적 판단에 있어서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술적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노무현 정권은 참여민주주의 등을 주장하며 노동조합을 대화 혹은 교섭의 파트너로 보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지만, 이는 궤도연대 파업이나 그 이전의 각종 투쟁의 경험을 통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둘째, 전술적 판단의 외피를 쓴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민주노총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우리 노동운동 내에는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 문제를 전략적 차원에서 판단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노동운동의 커다란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에 대한 논쟁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방향전환이 어떤 좋지 않은 후과를 낳을지에 대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한국 노동운동의 커다란 퇴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5. 노사정위,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 문제에 대해 ‘실익이 있을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전술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떤 실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회적 교섭기구에 전술적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득이 된다고 합니다. ‘투쟁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교섭과 투쟁을 결합해나가는 게 유리하다’, ‘고립된 투쟁에 집착하지 말고 교섭을 통해 모색해야 한다’, ‘제도개선을 위한 협상의 유일한 장이다’ 등의 말을 합니다. 일단 사회적 교섭기구에 참가하고 교섭을 하다가 안되겠다고 판단되면 그때 틀을 깨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실익’, ‘참가’의 관점은 그야말로 (앞 질문들에서 말한)노사협조주의와 실리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섭기구의 참가문제는 단순한 ‘실익’의 크기 문제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그들의 주장대로 실익이 논의된다 하더라도, 복잡한 방정식으로나 계산될 것이며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교환되는 이익의 내용이 다르므로 이를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참여론자들은 교섭기구 참여가 노동법 개정, 사회개혁 등 정책 및 제도개선의 실현을 위한 정책참가의 일환이라고 말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생산적 복지와 간헐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보완물 역할을 할 뿐입니다.

             
때로는 ‘조합원들이 더 원하고 있다’는 근거로 교섭기구 참가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이 노동자 내부를 분할해낸 결과로서, “저들은 나와 ‘다른’ 노동자”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나아가, 이 선을 따라 분할된 노동자집단 간의 ‘이기주의적’ 행위를 조장했던 영향입니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나의 노동조건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다른’ 노동자집단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한 노동자내부의 위계화, 분절화가 지속되는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특정노동자들의 이익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2001년도 노사정위의 ‘복수노조 5년 유예와 노조전임자 임금연장의 합의’는 결국 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를 보장하고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제약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는 노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동의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은 노조운동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총연맹 몇몇의 대표자가 참가하는 노사정체제는 조합원들을 구경꾼으로 만들고, 대표자들에게는 관료주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교섭기구의 참가 문제는 ‘참가하는 만큼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어도 무방한’ 문제도 아니란 것이 분명합니다.

         

6.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하며 국민통합,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강조해왔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노사정위를 추진하는 것도 이와 연결되어 있을 텐데 이것이 갖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노무현정권이 내세운 ‘참여민주주의’란 흔히 ‘제3의길’이라고 불리는 유럽식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변종이며, 그 양 축은 ‘참여-분권’과 ‘국민통합(사회적 합의주의)’입니다. 참여민주주의의 핵심키워드는 참여, 분권화, 국민통합, 빈곤개선과 여성의 통합입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 모델은 그 진원지인 유럽에서조차 말만 번지르르할 뿐 일관성과 실내용이 없고 이렇다하게 실현된 것도 찾기 힘듭니다. 다만, 나름대로 일관되고 독특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살인적인 구조조정의 실행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능력입니다. 이른바 ‘온정주의적 구조조정’과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은 국정 12대과제의 하나였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상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른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핵심으로 노사정위원회의 기능 강화를 통하여 사회적 합의체로 기능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유연화정책의 정당성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정권에 협조하는 세력을 포섭하고, 그와 반대로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손배가압류 및 구속과 탄압을 일삼아 왔습니다. 여기서 본질이 드러납니다. 즉, 참여민주주의란 극히 제한된 영역에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그를 명분으로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노동자민중의 의지와는 반대로 추진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난 2003년, 출범 100일 만에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허구성을 잘 보아왔습니다. 노동법 개악으로 노동유연화를 촉진하고, 포섭과 배제를 통해 노동자대중운동을 관리하고 있는 노무현정권의 노사정위에 참가한다면, 그것은 바로 관리된 사회적 합의주의가 양산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7. 노무현 정권을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정권이라 하는데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이 현재의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과 연결되는 지점은 무엇입니까?

         

포퓰리즘이란 흔히 ‘민중주의’로 번역되는 정치용어입니다. 주로 한 나라의 지배체제를 분류할 때 사용하는 개념으로 대중적 인기와 지지를 지배체제 유지 및 발전의 기반으로 삼는 국가 혹은 정부를 지칭하죠.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포퓰리즘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적 인기와 지지에 영합’하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성은 지배체제가 추구하는 사회의 발전 방향과 대중적 인기와 지지의 방향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배계급과 대중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전략을 봅시다. 이 전략은 실업이 만연한 지금, 고용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라는 것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서 불안정노동을 강화하기 때문에 전혀 대중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거의 환상에 가까운 정책으로서, 대중의 지지를 끌어들이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지배계급이 자신만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을 왜 포퓰리즘 정권이라 할까요?
노무현 정권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가만히 살펴봅시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화두는 ‘참여’였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핵심정책이었죠. 이런 노무현 정권은 과거의 군사독재 등의 억압적 국가체제와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군사독재는 경찰, 군대 등의 폭력적 국가기구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국가에 대한 개입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쓰지는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국가참여를 보장한다고 선전합니다. 실제로 386세대의 정치개입, 시민단체의 정책개입, 노사정 합의체제 구축 등으로 참여를 보장하는 듯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많은 대중이 국가 운영에 참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국가를 이끌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란 지배계급이 추진하고자 하는 핵심 정책이 신자유주의인 포퓰리즘을 뜻입니다. 노동법 개악을 놓고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 혹은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노동법 개악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노동유연성 강화라는 신자유주의 핵심 전략임에도 말입니다.

            

8. 최근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 스웨덴 모델 등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데요, 이것이 사회적 교섭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일단 정부와 자본 측의 논의들은 대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제도와 관행이 꼭 필요하며, 일정한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사정위원회의 긍정성과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직면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제약 - 주로, 특히 노동운동의 전투적 성격 - 을 제기합니다. 이들이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도전도 허용하지 않는 대전제하에서 이론적 버팀목으로 삼는 것이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이며 이것이 한국사회에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은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이에 기반한 중앙단체교섭, 사민주의정당,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강력한 복지제도와 높은 수준의 노동 보호제도와 기본권, 이에 기반한 생산성 증가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특히 네덜란드 모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로 제기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유럽 사민주의 국가 특히, 영국과 스웨덴에서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를 공격하거나 약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양자는 조화될 수 없고 모순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네덜란드는 신자유주의 유연화를 합의의 방식으로 갈등 없이 추진하는 동시에 낮은 실업률, 최소한의 사회적 노동기준을 유지한 특이한 사례였습니다.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에게 네덜란드 사례는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하고자 했던 일, 즉 노동의 협력 하에 이루어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능함을 입증한 사례였던 것이죠. 네덜란드의 모델이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합의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한국은 역사적 구조적 조건이 매우 다릅니다. 네덜란드는 사민주의체제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오랜 경험과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취약하다고 하나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사민주의정당이 있었습니다. 또 강력한 복지제도와 높은 수준의 노동 보호제도와 기본권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에는 이와 비교할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들은 정책입안/집행자의 의지나 각성과는 무관하게 두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 또 합의기구나 개별 합의의 실질적 의미가 크게 달라지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대체로 무시되거나 간과됩니다. 사회통합적 방식의 구조조정 사례, 즉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합의의 틀 속에서 수행한 사례들을 찾아내서 이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는 한국사회에서 동일한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일한 방식의 합의기구와 합의의 내용이 필요하다는 식의 결론이 있을 뿐입니다. 동일한 제도가 다른 사회에 이식될 수 있으며 동일한 결과를 산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현실의 구조적, 상황적 한계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이는 지난 10여년의 경험 속에서 노사정위는 합의기구라기보다는 통제기구란 점이 계속 확인되어왔습니다. 불평등의 확대와 극단적인 고용불안, 기본권 제약, 폭력적 억압과 법적 통제의 강화, 자본과 국가의 노동에 대한 일관된 배제전략 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이른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보다는 ‘파멸적 구조조정’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적용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유럽/네덜란드 모델 자체도 빌려다 쓰기에는 매우 낡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 서구유럽의 합의주의 모델은 1980년대 전지구적 수준의 경쟁 격화, 경기후퇴와 만성적 실업, 사용자의 노동유연화 요구와 적대, 노동계급 내부의 이질화와 계층화, 단체교섭의 분권화 등으로 인해 1990년대에 전반적인 변형 과정을 거칩니다. 서구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바뀌는 것입니다. 즉, 1990년대의 사회적 합의주의는 임금 억제, 노동시장의 유연화, 복지의 축소와 합리화 등 국가와 자본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이나 노동운동 일각에서의 제기하는 스웨덴 모델론 또한 근거가 희박한 낙관이라 할 것입니다. 스웨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도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노동유연성의 증가, 임금교섭의 탈집중화, 탈규제와 공공자산 매각, 사회민주주의적 재정정책과 공공지출의 포기, 실업과 임금격차의 끊임없는 증가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모든 조건들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의 대규모 해외유출은 국내 계급간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던 스웨덴 모델을 지탱한 물질적 토대를 잠식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스웨덴 모델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국가와 자본 그 누구도 한국의 노동운동이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산별 조직체제나 중앙 집중적 권위를 갖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사정위원회의 존재와 구조조정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자신의 지위가 강화되고 있는 자본은 그럴 필요조차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한국사회는 유럽의 국가들에 비하여 사회적 합의주의가 성립가능한 사회적 역사적 기반이 부족할 뿐만아니라 유럽의 경우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그것이 실질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능력이나 의지가 국가와 자본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부에서 생각하듯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보호’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배제’에 불과합니다. ‘합의’와 ‘보호’라는 국가-자본과 노동의 동상이몽 속에서, 노동운동의 조직적 자율성과 운동적 자주성이 크게 손상될 것이며 노동운동은 자본의 원활한 축적과 위기관리에 적합한 조건을 창출하는 일방적 약속을 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9.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사회적 교섭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계급성과 투쟁성을 해치고 무력화와 위기로 귀결된다는 이유로 참가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교섭기구 불참으로 현재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습니까?

             

물론 사회적 교섭기구에 대한 불참하는 것만으로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노동자운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에 의한 노동의 불안정화 공세와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비정규직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성별과 인종, 계층적 분할이 심각해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계급 자체가 이리저리 해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신자유주의 경제위기 아래에서 노동자 대중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실리적 접근을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기에 사회적 교섭기구가 지금과는 다른 실익을 줄 수 있겠지 하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적이냐 비전투적이냐 혹은 급진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누어서 운동을 갈라치기 하거나, 과거의 정파적 정체성에 기대어 좌파냐 우파냐 하는 식으로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은 문제의 본질에서 빗겨난 대응입니다. 이는 정작 필요한 ‘발본적인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막아내는 것은 최소한의 대응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안을 계기로 더욱 논의를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진정 노동운동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 속에서 ‘노동자가 계급으로서 형성되기 위해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흐름 만들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과 사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10. 그렇다면 향후 사회적 합의주의를 넘어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까?

          

노동자간 분열이 심화되고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의식이 많아지고 더 열악한 노동자들과의 연대의식은 얕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과 대결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계급타협의 기반도 없어 그 자체로도 실현 불가능하고 자본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세련된 탈을 쓴 공세인 사회적 합의를 넘어 노동자가 새로이 계급으로 형성되기 위한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노동자간 분할을 막고 연대의식과 헌신성을 강화하는 계급 형성의 관점이 당장의 실리적인 영향력 행사보다 오히려 더 긴급한 시점이라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은 노동운동의 연대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이 투쟁을 자기과제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노동운동이 보다 보편적인 사회운동으로 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연대 지향적인 노동운동,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을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운동으로 주체를 발굴하고 계급 형성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위해 노력을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면해서는 비정규직을 양산시키고자 하는 노동법 개악에 대해 전체 노동운동의 단결된 투쟁으로 저지하고 그 과정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2004년10월19일 15: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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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 (50호) 
사회적 합의주의 비판(2)-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라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으로
 

사회진보연대 노동국


2004년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 내에서 최대의 화두는 이른바 '사회적 교섭'이었다.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정 협의기구에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적 교섭구조 확보' 문제를 지난 9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안건상정은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다수 중앙위원들의 반대로 내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로 미뤄진 상태다. 공식적인 노사정 협의기구 복귀 결정은 유보된 상태지만, 민주노총은 이미 2차례에 걸친 (LG칼텍스 직권중재로부터 투쟁사업장 공권력 투입까지 일련의 사태로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서 노사정 협의기구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 집행부의 당선과 함께,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노사정 협의기구로의 복귀 과정은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적 제도화를 가속화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회적 합의주의 문제는 노조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경향성 문제일 수 있고 그것이 특정 세력으로 표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보다 본질적으로는 노동조합 운동이 항상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위험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1. 유럽식 사회적 합의 주의 모델

 

지금의 사회적 교섭, 사회적 대화의 논의는 주로 유럽식 사회적 합의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책협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공공정책을 정부와 기업을 대표하는 최상위 사용자 단체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최상위 노조 연맹 사이의 공개적 협상을 통한 공식적, 비공식적 협약으로 결정하는 노사정 공동결정의 형태를 일컫는다.

                 
유럽의 경우 코포라티즘 체제의 성립과정에서 노조의 계급타협 노선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철되었다. 각국의 사민당을 경유하면서 정책협의 제도가 발전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된다. 노사정협약의 안정화 과정에서 공공정책이 노조와 사용자단체의 타협에 의해서 결정되고, 의회의 결정이 사후적이거나 상대화된다는 점에서, 사회세력들 간의 합의로 국가를 운영하는 코포라티즘 국가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노조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충실하게 기능하게 되는데, 노조의 노사정 합의참가는 결정된 국가 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에 기여하게된다. 또한 노조는 각종 국가기구의 위원회에 결합하면서 국가기구의 일부로 직접적으로 포섭되는 과정을 겪었다.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은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이에 기반한 중앙단체교섭, 강력한 사민주의정당,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제도와 높은 수준의 노동 보호제도와 기본권, 이에 기반한 생산성 증가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유럽 사민주의사회 특히, 영국과 스웨덴에서 신자유주의는 코포라티즘 타협 체제를 공격하거나 약화시켰다. 그로 인해 양자는 조화될 수 없고 모순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의 폴더모델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코포라티즘 모델로 평가되며, 각광을 받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합의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데, 네덜란드는 신자유주의 유연화를 합의의 방식으로 갈등 없이 추진하는 동시에 낮은 실업률, 최소한의 사회적 노동기준을 유지한 특이한 사례였다. 코포라티즘론자들에게 네덜란드 사례는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하고자 했던 일, 노동의 협력 하에 이루어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능함을 입증한 사례가 되었다. 결국 노사정협의 체계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운동을 제어하고 노동자 대중을 동원하는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2. 한국에서 코포라티즘이 가능한가

                

유럽(특히 네덜란드)과 한국은 역사적 구조적 조건이 매우 다르다. 네덜란드의 경우 취약하다고 하나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사민주의정당이 있으며 복지제도, 노동보호 제도와 기본권을 구비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따라가려고 하는 유럽의 산별노조 체제는 코포라티즘 체제의 유기적 일부이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유럽모델을 참고한다는 것은 조직 형식적인 측면에 대한 참고를 넘어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유럽식의 코포라티즘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 하다. 남한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노사정 합의 체계의 성공 가능성은 유럽식 산별노조 모델의 성공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또한 산별노조 없이는 노사정 합의기구가 발전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쉽지 않은 것이 남한 노조운동의 조건이다.

                  
여기에 계급대표성의 문제도 존재한다. 현재 민주노총이 계급대표성을 갖는 것은 전노협 이후 전투적으로 전체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투쟁을 진행하지 않을 때, 대표성을 상실한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해 가뜩이나 대표성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합의주의는 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현재 노무현 정권은 노동배제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식 합의주의와 산별협약 추진을 병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취약한 정권의 정치역량과 함께 반주변 국가로서 안정적인 계급 타협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점,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의 유효성 상실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한 폐기라는 상황에서 그것은 성공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이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이다.


3. 시대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어떤 정파나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노동조합운동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속적인 위험이다. 이를 극복기 위해서는 우리는 남한사회에서 코포라티즘이 불가능하며 만에 하나 추진될 지라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노동자운동이 코포라티즘을 추종하면서 국가의 정책들을 정당화 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남한의 노동자 운동이 코포라티즘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조직 내부의 균열을 심화키고 조직적 역량을 후퇴시키는 시대착오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특히 코포라티즘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노동자 집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내국인/이주민 등 노동자의 분열이 심화될 것이다.

               
사회적 교섭기구 복귀에 대한 결정이 내년 1월 대의원대회로 넘겨져 있다. 당면 시기 노사정위 참가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노사정위 참가와 코포라티즘 체계 형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경고하고 반대의 경향성과 실물적 흐름을 창출하고 조직화하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한다. 노사정위로 대표되는 사회적 교섭 기구 복귀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코포라티즘의 불가능성과 불안정성 폭로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 저지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투쟁을 조직함으로서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과제와 별도로 분리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의 과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코포라티즘적 합의를 추구하는 입장이 가지는 한계의 정세적인 핵심이 신자유주의라는 상황에 있다면, 이를 저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분쇄투쟁 속에서 가능해 질 것이다.

                 
노동자간 분열이 심화되고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의식이 많아지고 더 열악한 노동자들과의 연대의식은 얕아지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과 대결해야 한다. 이에 노동자간 분할을 막고 연대의식과 헌신성을 강화하는 계급 형성의 관점이 당장의 영향력 행사보다 오히려 더 긴급한 시점이라고 강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은 노동운동의 연대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불안정노동 반대투쟁은 코포라티즘의 효과이자 작동 방식으로 노동자 대중의 분할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따라서 불안정노동 반대투쟁을 노조 운동 안에서 전면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전면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급소가 될 것이다.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이 투쟁을 자기과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연대 지향적인 노동운동,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을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운동으로 주체를 발굴하고 계급 형성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위해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2004년12월13일 1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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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9 23:30 2005/02/0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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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 본질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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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안이든지 조금은 거리를 두고 보면 본질이 보일 때가 많다. 민주노총 임시대대회에서의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에 대해 살펴보면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논란이 되었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주의와 관련된 몇 개의 글을 읽고 정리하기로 했다.

아래 글은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명의로 2004년 7월 27일에 올라왔던 글이다. 아마 삭제되었는지 원글을 찾을 수 없다. 

 

끝까지 읽어본 결과 약간은 실망이다. 모든 것이 비판꺼리이다. 전혀 책임질 것이 없는 자들의 태도이다. 이에 따르면 노힘, 한노정연, 사회진보연대 등의 좌파와 전국회의 등의 현장파들의 활동은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며, 사회적 합의주의에 본질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들이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관철시키려 한다고 하면서 더 위험한 기회주의라고 비판한다. 확실히 누구의, 무슨 잣대로 비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때그때 달라요. ㅋㅋㅋ

 

여기서 사회적 합의주의내지 코포라티즘(coporatism)이란 바로 노사협력체제로서, 파업과 쟁의, 투쟁을 자제하는 것, 현장의 조합원들의 불만을 설득하는 것 등의 역할을 노조 지도부가 수행하는 대신에 자본가들은 노조 지도부들을 위한 매우 사소한 양보와 협력을 제공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결국 사회적 합의주의는 결국 노사협조주의 이데올로기와 활동으로부터 비롯되는 사회 제도, 현상으로서 노사협력체제를 뒷받침하는 모든 기구와 제도, 활동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상설적인 협의기구들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노사협조주의적인 활동을 통해서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주의가 구현되고 있다고 보게 된다. "노사정위 참여에 반대하지만 계급적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회피하면서 자본가들과의 협상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태도도 사회적 합의주의에 협력하는 것"이며, 좌파들이 벌이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운동은 실제로는 단지 노사정위 참여 반대운동일 뿐이지 업종별 사회적협의체, 사업장에서 노사협력체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아닌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현자의 이상욱 집행부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일체의 노사협조주의 이데올로기와 활동에 반대하는 것, 계급적 연대와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활동이 된다.

 

노중기 교수의 주장은 국민파와 똑같은 것으로 치부된다. 서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참여가 가능하고 필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체 역량 강화, 산별노조의 중앙집중성 강화, 정책 역량의 강화 등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면서,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들로 간주된다. 이러한 주장이 도대체 실천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상만 흔들리고...

 



노사정위원회 반대인가,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인가?
―사회적 합의주의 본질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 ―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들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가?


  이수호 위원장이 청와대 노사정지도자회의에 참석하여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뒤에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논란이 노동조합운동의 최대의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노힘, 한노정연, 사회진보연대 등의 좌파와 전국회의 등의 현장파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노선을 계승하는 이수호 지도부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참여 기도 중단"을 외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또는 "노사정 사회적 담합 분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 3일 열렸던 18개 단체 토론회는 "노무현정권과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합의 추진을 저지해야"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노사정합의주의 대응 기획회의'를 두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전국회의도 기획회의 등과 함께 이후의 실천까지 함께한다는 계획으로 전국토론회를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좌파, 현장파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는 이러한 운동은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사회적 합의주의에 본질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가? 노동자들이 어떤 특별한 사회적 현상, 제도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계급적인 관점에서(따라서 과학적인 관점에서) 사회 현상 또는 제도의 본질을 규정해야 한다. 이것은 화해할 수 없는 두 적대적 계급(즉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투쟁에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부르든,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고 부르든, '사회적 담합'이라고 부르든, '사회적 대화체제'라고 부르든 그것은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이며, 핵심적인 것은 그러한 현상 또는 제도의 계급적 본질과 기능이다.


  1996년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 자문기구로 설치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 1998년 구성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는 현재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사회적 합의기구이다. 그리고 업종별/지역별 협의체 역시도 사회적 합의기구이다. 대표적으로 지역 노사정협의회, 금속연맹 자동차분과와 완성차노조들이 자동차공업협회와 구성하기로 합의한 '자동차산업 노사공동협의체' 역시도 사회적 합의기구인 것이다. 과학적 기회주의자인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은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노사중앙단체의 리더십과 대표성, 집권화된 통제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름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나아가 국가수준 - 업종/지역수준 - 사업장수준으로 연결되는 노사관계의 3층 구조에서 그 "중간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업종이나 지역수준의 노사관계는 아직 그 틀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중략)… 현재의 분권화된 노사관계구조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업종/지역단위로 고용을 비롯해 근로자 삶의 질과 관련된 현안 및 중장기적 과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갈 수 있는 중간수준의 노사협력체제(mesocorporatism) 구축이 요구된다. [김금수, 업종/지역 단위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KAMA 저널, 2004년 4월호,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런 점에서 볼 때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국가 수준의 사회적 합의기구는 업종/지역수준, 사업장 수준으로 연결되는 사회적 합의구조, 또는 사회적 합의체제의 연결고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국가 수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합의체제 전체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본질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다시 확인된다.


  또한 김금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실천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김금수의 지적처럼 “노사중앙단체의 리더십과 대표성, 집권화된 통제력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국가 수준의 사회적 합의기구가 구성되더라도 충분히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이것은 지난 98년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노동자들도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중앙의 합의가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반발 때문에 부결되었던 것, 그리고 현장으로부터 반발 때문에 결국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게 된 것은 “노사정위원회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중앙의 현장에 대한 통제력, 중층적으로 확고한 합의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현장의 대중적 반발에 의해 무력화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김금수가 내린 결론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합의주의, 현장으로부터 조직되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중간 허리 역할을 하는 업종별(지역별)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당면한 주요 과제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올해 임단투에서 완성차 4사 노조가 금속연맹과 함께 공동으로 제시한 사회적 공헌기금 요구는 이러한 업종별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정확히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김금수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의 목적은 바로 노사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주의란, 또는 코포라티즘(coporatism)이란 바로 노사협력체제를 뜻한다. 파업과 쟁의, 투쟁을 자제하는 것, 현장의 조합원들의 불만을 설득하는 것 등의 역할을 노조 지도부가 수행하는 대신에 자본가들은 노조 지도부들을 위한 매우 사소한 양보와 협력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적 합의주의는 결국 노사협조주의 이데올로기와 활동으로부터 비롯되는 사회 제도, 현상으로서 노사협력체제를 뒷받침하는 모든 기구와 제도, 활동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상설적인 협의기구들에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노사협조주의적인 그들의 활동을 통해서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에 대한 참여는 그것을 보다 더 공공연하게 하고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검토할 때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조관료들과 자본가들이 협력하는 것에 그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노조관료들이 노사협조주의 활동을 펼치는 한 자본가들과 노사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공공연한 국가수준의 협력체제 형태로 드러나든, 또는 업종별 협의체와 같은 보다 중층적인 기구로 드러나든, 아니면 사업장에서 무쟁의와 노사협력체제로 드러나든 그것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다. 김금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사업장 단위에서 진행되는 단체교섭도 노사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 역시 사회적 합의주의를 구성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사정위 참여에 반대하지만 계급적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회피하면서 자본가들과의 협상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태도 역시도 사회적 합의주의에 협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기회주의적 반대론들

 

  지난 7월 3일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합의 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 토론회에서 주발제자로 나선 노중기 교수는 “‘사회적 대화전략’은 노조에게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원론적으로 노조의 참가전략은 전략/전술 수준,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과도한 일이 된다. 논란이 있겠으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입장도 동일하였다.”고 하면서 “문제는 참가의 수준과 내용, 그리고 방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그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문제는 이 결론이 ‘신자유주의시대에도 코포라티즘은 가능하다’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라는 단순 도식으로 확대, 해석된 것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노중기 교수에 따르면, “요컨대 노무현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국에 ‘합의의 구조적 조건’은 부재하다.” 결국 노중기 교수의 주장은 “한국적 토양”에서는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가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서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참여가 가능하고 필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적인 것이다. 또한 그는 민주노총 일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술적 참가론에 대해서도 몇 가지 전제조건들을 달기는 했지만 문을 열어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된 서유럽에서도 사회적 합의주의는 언제나 파업과 쟁의, 투쟁을 자제하고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을 설득하는 역할을 노조 지도부가 수행하는 대신에 자본가들은 노조 지도부들을 위한 매우 사소한 양보와 협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거의 모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들 나라에서 사회적 합의체제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정부와 사용자단체들은 임금가이드라인 설정과 임금억제정책, 파업과 쟁의 행위에 대한 자제, 생산성향상에 대한 협조 등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노조 지도부와 동맹을 맺은 사민주의 정당의 연립정부 참여나 지방 정부, 의회, 공공기관에서 주요한 자리를 제공하는 것 등에 대한 교환물이었다.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사회보장제도, 직업훈련의 확대와 같은 조치들이 뒤따랐지만 이것은 사회적 합의기구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직후 노동자운동의 강력한 조직화에 대한 자본가들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서유럽의 사회적 합의기구들 역시도 공황기에는 우리나라의 노사정위가 그러했던 것처럼 임금동결, 사회보장 축소, 해고 요건의 완화 등과 같은 것들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적 토양에서 서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 여건이 없다는 근거로 노동자계급 조직역량의 취약함, 수구-냉전적 분단국가/종속적 신자유주의, 시민사회의 적대적 구조 지형, 역사적 경험의 부족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난 시기 노사정위원회 참가는 “강제된 참가”였으며 아무런 이익이 없으며 그나마 합의사항 조차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사이비 사회적 합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우선 중요한 사실들에 의해서 부정될 수밖에 없다.


  우선 무엇보다 노중기 교수가 왜곡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96년 노개위, 98년 제1기, 제2기 노사정위 참여는 국가에 의해서 강요된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민주노총 지도부가 자주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민주노총 제1기 지도부인 권영길-배석범 지도부는 정부로부터 거의 어떠한 탄압도 받지 않았다. 1995년부터 1998년에 이르는 기간에 민주노총의 활동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참여 결정을 내린 것은 탄압 위협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와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것은 노사정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97년 ‘기아자동차 살리기운동’ 등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노동자들을 살인적인 회사살리기 운동으로 내몰았던 당시 기아자동차노조의 활동을 자동차총연맹, 민주노총 지도부는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이것은 사업장과 업종 수준에서 노사협력체제라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목적을 구현한 것이다.


  노사정위 참여는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것이며, 자본가계급과의 협력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노조관료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총의 지위와 과거 전노협의 지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왜곡하고 있다. 단병호 위원장에 대한 구속, 부르주아 언론의 반동적 공세가 있었지만, 이것은 전노협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전노협의 해체를 목표로 폭압적 탄압과 강제탈퇴 공작을 벌였던 것과는 그 목표와 범위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1995년 이래로 정부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해체를 목표로 탄압을 전개한 적이 없다.


  노중기 교수가 “종속적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표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독점대기업에는 수백명의 노조 상근 전임자를 부양하고, 대의원들에 대한 일상적 매수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독점적 초과이윤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남한 자본주의는 수만명의 당원을 보유한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에서 보는 것처럼 노조 지도자들이 협력에 대한 대가로 적당한 관직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물적 토대를 이미 갖추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자발적으로 노사협조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두 조직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문제는 그나마 취약한 조직역량을 보완”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왕따전략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상생(相生)의 대상이 민주노동당일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등의 주장은 민주노동당의 기회주의적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따라서 노중기 교수는 한국적 토양에서도 서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가능하며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한국적 토양과 마찬가지로 서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도 노조관료들이 노동자 대중을 배신하고 자본가계급과 협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은페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중기 교수가 내놓는 결론은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합의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들, 한국적 토양을 서구적 토양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 즉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체 역량 강화, 산별노조의 중앙집중성 강화, 정책 역량의 강화 등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기회주의적 본질, 노사협조적 본질을 은폐하면서 서유럽의 진정한 사회적 합의주의가 가능한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즉 노조관료들의 출세가 보다 확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대중투쟁을 민노당 지지의 수단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중기 교수는 노사정위 참여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기회주의적 활동들에 대해서 침묵하며 더 나아가 노사정위조차 “전술적 참가”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계급적으로 올바른 실천적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처럼 노힘이나 한노정연 등 좌파들이 벌이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운동은 실제로는 단지 노사정위 참여 반대운동일 뿐이지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단지 이수호 위원장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노사정위원회 참여만을 문제삼고 있을 뿐 업종별 사회적협의체, 사업장에서 노사협력체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무현정권과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합의 추진”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 정몽구(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이상욱 집행부(금속연맹 자동차분과 및 완성차노조들)의 사회적 합의에 대해서는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임원 선거부터 노사정 교섭틀을 만들겠다고 적극적으로 밝혀왔다는 것은 노동운동에 조금이라고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현재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강승규 부위원장이 98년 2월 노사정위 정리해고제 합의안에 찬성했던 것처럼 현재의 민주노총 지도부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 시절, 즉 1995년~1998년의 권영길, 배석범 지도부 시절의 노선을 거의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의 대변자들이다. 이들이 노개위, 노사정위와 같은 종류의 기구에 참여하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노사정 지도자 회의를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구성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에서 단지 국민파만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노사정위 참여, 노사정 교섭틀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이른바 중앙파와 현장파(또는 좌파), 즉 범좌파들은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노사정위 참여에 현재 반대하고 있는 범좌파(중앙파와 현장파)들이 민주노총 제2기와 제3기 시절, 단병호 지도부, 금속연맹, 공공연맹, 그리고 대공장 노조 현장파(즉 전국회의 현장조직) 집행부들이 벌였던 활동들은 본질적으로 국민파 지도부의 공공연한 사회적 합의주의와 다를 바 없는 기회주의적 활동이었다. 98년 2월 노사정합의안 부결 이후 비대위원장을 맡은 단병호가 김금수와 함께 총파업을 철회한 것, 2002년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정합의 같은 항복문서에 서명한 것, 1999년 기아차 고종환 집행부가 무쟁의노사화합선언을 한 것, 2001년 현자 이상욱 위원장이 연대총파업을 철회한 것은 본질에서 배석범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직권조인하는 공공연한 사회적 합의주의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본질은 올해 현자 임투에서 이상욱 집행부가 보인 활동, 자동차산업 노사공동협의체 구성, 비정규직 공동투쟁 거부(비정규직 직가입 저지, 비정규직 파업 예정일에 잠정합의) 등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확인되는 것이다. 즉 그들은 단지 현재의 노사정위에 대한 참여를 거부할 뿐이지 사회적 합의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단체교섭이나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공식/비공식 교섭을 모두 거부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 노동위원회와 같은 교섭 기구, 준사법적 기구들에 대한 참여도 원칙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산별교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기구들을 모두 해체하고 노동자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본가들에게 도움이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선진노동자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사협력체제를 지향하는 노조관료들과 자본가들의 이익이 된다. 매우 특별한 혁명적 위기 상황이 아닌 한 선진노동자들은 이러한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교섭과 기구들을 통해서도 자본가들은 노동자 대표들을 체제내로 포섭하기 위해서, 즉 기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활동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노동조합운동을 관료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을 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노사정위원회, 업종별 노사공동협의체 등은 포괄적이며 무제한적인 상설적 협의기구로서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자본가들의 협력을 추구하는 것과 비교해서 최저임금심의위, 노동위원회, 단체교섭 등은 한정적이며 제한적인 협의만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단체교섭에서는 쟁의권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작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후자에 대한 참여 역시도 계급적으로 엄격한 책임의식과 규율이 조직되지 않을 때에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문제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일체의 노사협조주의 이데올로기와 활동에 반대하는 것, 계급적 연대와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활동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금속연맹과 현자 이상욱 집행부의 ‘자동차산업 공동협의체’ 구성도 이수호 위원장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와 마찬가지로 비판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좌파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지도부 비판도 해야 되겠지만 지도부가 누가 들어서더라도 부딪히는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왔다. 몇 주 전 현대자동차노조 집행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사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좌파가 하나 우파가 하나 현자노조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똑같다고 하더라”(노중기)라는 것이다. 노중기의 7월 3일 토론회에서 노중기의 이러한 발언에 대한 비판은 들을 수 없었다.


  이것은 이른바 좌파가 국민파와 마찬가지로 노조관료주의와 노사협조주의에 얼마나 찌들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인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국민파를 비난할 목적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라는 슬로건으로 요란을 떨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좌파의 기회주의는 국민파와 같은 공공연한 사회적 합의주의 옹호자들보다 더 위험한 기회주의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실천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선진노동자들을 기만하고 그들을 심각하게 타락시킨다. 이런 점에서 좌파의 반성, 좌파의 혁신이 아니라 좌파에 대한 폭로와 단절이 필요하다. 좌파는 기회주의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부르주아적 조류, 경향을 대표한다. 한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역사를 갖는 사회 조류, 경향으로서 좌파가 반성을 통해 계급적으로 쇄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전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에 대한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을 맹렬하게 전개해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역시도 현자 민투위, 기아차 현힘 등 주요 현장조직들의 기회주의 활동에 대해서 비판받아야 한다. 이것은 전국회의의 반성과 혁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사상적.정치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모호한 활동가조직으로서 현장조직운동은 선진노동자들의 기회주의에 대한 단절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조직의 선진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죽쒀서 개주는 전투적조합주의, 혼란과 동요를 지속시키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통일됨으로써 현장조직운동의 시대를 끝내고 혁명적 조직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노동해방은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상비군, 관료제와 같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통해서는 권력을 장악할 수 없으며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무장한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대중조직, 언제나 소환가능한 대표자들의 조직을 통해서가 장악할 수 있다. 이것은 파리 꼬뮌, 러시아 소비에트의 경험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노사협조주의에 반대하여 계급적 연대와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재,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철폐할 것을 목적으로 삼는 혁명정당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조합운동에서 관료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도, 대중투쟁에 대한 계급의식적인 지도를 수행하는 것도, 엄격한 규율을 통해 노동조합운동 내에 혁명적 조류를 만들어내는 것도 이와 같은 혁명적 사상, 강령으로 통일된 조직을 통해서만 그 과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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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5 02:19 2005/02/05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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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 현황과 문제점(노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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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노무현정권의 ‘사회적 합의’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2004년 7월 3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중기 한신대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으로, 울산노동자신문 자료실에서 다시 퍼온 것입니다( http://www.ulnews.net/pds_read.asp?num=2817&sec=자료 ).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동당에서 정책자문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아래 글에 대부분 동감하며, 사회적 합의주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한번 숙독했으면 합니다. 단지 노사정위 참여나 이수호 집행부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왜 단호해야 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글은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합의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IMF 위기 이후 최근까지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노사관계)’, ‘사회통합’의 이데올로기가 노사정위 참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노중기 교수의 글에도 나오지만, 사회과학에서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이란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보수적 함의를 갖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것인데,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것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죠. 사회과학의 대립되는 두 패러다임을 얘기하라고 하면 '통합, 조화, 합의'의 관점과 '갈등, 대립, 모순'의 관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동의할 때만 ‘사회적 합의’는 가능하다”는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노힘이나 노중기 교수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대동맹 아래에서는 진정하게 “합의할 내용(지점)이 없다”고 봅니다. 아래 글의 뒷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구조적 여건의 척박함으로 인해 민주적 조합주의체제의 구축은 현실적으로 난망’하고, 전략적 참가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회적 합의주의가 고려될 수 없으며, 분쇄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이를 노힘의 논리와 같다고 해서 배척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 아닐까요?


전략적 참가가 아니면 전술적 참여를 검토해봐야 하는데, 이 또한 "전체 노동자(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세력화라는 전략적 관점 하에 배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참가 여부는 참가의 형식이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예상되는)참가의 ‘내용과 결과’를 중심에 놓고 그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민주노총은 우선 참여하고 보자는 식으로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참가가 조합원의 대중적 요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고, 그 과정이 충실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의 문제는 그 같은 절차적 정당성으로 모든 일이 정당화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 참가가 거의 불가능한 제반 조건 속에서, 또 ‘노사화합과 경쟁력’을 앞세운 상대와 함께 하는 노사정위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세기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역사성의 문제가 걸려있다. 목숨으로 방어한 민주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 그 계급적 연대성이 시험받는 문제인 것이다. 또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 있는 노동대중의 미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원칙의 문제입니다. 2월 1일의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다음날 폭력사태의 주범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조성웅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위원장은 레이버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교섭틀에 들어가자고 주장하는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민주노조 운동을 배신하고 있으며 이것(사회적 교섭)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비겁한 협박을 하고 있으며, 이런 노사협력주의에 물든 집행부와 절충이나 대화를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자본과 기업이 민주노조 운동 내에 파견한 세력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소 과장이 있을지언정 비정규직 노동자나 현장활동가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을 겁니다. 



사회적 합의주의 현황과 문제점 - ‘사회적 합의’와 노동운동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1. 문제제기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로 줄임) 참가문제가 지금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6년의 경험을 고려하면 이것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고 신중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이 ‘참가’에 대해 지나친 ‘피해의식’은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이 갖는 장기적 효과, 결과가 중대한 것이라면 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총선 이후 더욱 두드러지는 정부의 ‘대화의지’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참가의 가능 요건이 되는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 참여할 경우 그것이 과연 ‘자발적(전략적) 선택’인지, ‘강요된 선택’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먼저 이 문제의 중차대함을 고려해 볼 때 참가문제에 대한 관점 정립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노사정위 참가문제는 단순한 ‘실익’의 크기 문제로 이해해선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참가를 둘러싸고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단순히 양적인 지표로 환원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익을 논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장ㆍ단기 실익, 그리고 정치적ㆍ경제적 실익 등의 복잡한 방정식으로 계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노ㆍ자 간) 교환되는 이익(interest)의 내용이 서로 다르므로 이를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거의 합의(1998년 2월 합의 등)에서 경험했듯이 그 형평성에 대한 판단은 더욱 곤란하다. 노동운동의 자주성, 민주성에 훼손이 올 경우 ‘실익 계산’은 더욱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참가하는 만큼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어도 무방한’ 문제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노사정위 참가는 단순한 ‘정책참가’로 협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여러 정책참가 영역 중 하나의 영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회 노동체제의 총체성과 연관해서 여타 전략적ㆍ전술적 과제와 결합된 문제인 탓이다. 예컨대 그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파업권의 보장 문제 등 국가 노동정책 일반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이다. 참가는 반드시 일정한 책임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계급적 관계 일반의 흐름을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노동 측의 계급세력화나 계급적 정치세력화의 과제와도 맞물려있다고 파악된다. 특히 노조운동의 기본 원칙인 ‘자주성’과 ‘민주성’ 곧, ‘노동운동의 계급성’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란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셋째,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노사정위 참가문제와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 함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참가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전략주의’, ‘생산성연대’, ‘사회적 합의-협의주의’, ‘타협주의(노사협조주의)’, ‘실리주의-경제주의’ 등 반 계급적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실정이다. 참가의 논의나 결정과정에서 자칫하면 이 같은 반 계급적 이데올로기를 묵인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IMF 위기 이후 최근까지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노사관계)’, ‘사회통합’의 이데올로기가 노사정위 참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사회과학에서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이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보수적 함의를 갖고 있다는 너무나 단순한 사실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사정위의 문제는 단순한 선호나 손익계산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사회분절성 고착구조’, ‘사회해체’를 ‘지양하는 사회통합의 기구’인지, ‘신자유주의 수단, 실행 기구’인지는 이론ㆍ실천적으로 엄격히 따져 볼 문제라는 것이다.

2. ‘사회적 대화전략’은 노조에게 필요한 것인가?’

원론적으로 노조의 참가전략은 전략ㆍ전술 수준,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과도한 일이 된다. (주1. 주지하듯이 노동조합은 모순적 조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재생산에 기능적인 동시에 변혁적인 단초를 포함하고 있다.) 논란이 있겠으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입장도 동일하였다. 문제는 참가의 수준과 내용, 그리고 방식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그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두환 정권에서 3자 합의기구 참가는 불가한 일이 된다. 1980년대 우리사회에서는 참가를 위한 조건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사회의 맥락에 따라 노동조합의 참가에 대한 다양한 입장, 즉 전략과 전술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참가 사례, 과거의 경험을 중요한 준거로 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사정위 실험을 둘러싼 비교연구는 서구의 사례에 집중되어 왔다. 특히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태리 등이 주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이 같은 비교연구는 정부기관인 노동연구원이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 이후 주도해 왔으며 최근 일부 진보적 노동연구자들도 서구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서구사회 코포라티즘에 대한 연구는 연구실을 떠나 정치적 장에서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주2. 2003년 7월 청와대 수석의 네덜란드모델 발언과 이후의 소동은 하나의 지표가 된다. 이는 과거 민주노조운동에 참여했던 이른바 다수의 ‘친 노동계’인사들이 노무현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이들 연구의 정책적 함의는 서구의 실험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단순한 논리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연구들은 서구모델의 ‘전략적(정책적) 이식’(strategic transplantation) 가능성이라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심지어 이태리는 우리의 미래상으로 서술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네덜란드는 바람직하며, 나아가서 우리의 경우에도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연구는 잘못된 비교연구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수많은 연구결과에 대한 의도적인, 혹은 의도치 않은 왜곡을 포함하고 있다. (주3.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노중기(2002, 2004a, 2004b)를 참고할 것.) 서구에서 연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서구 노동체제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서구 노동체제의 ‘수렴-분산’(convergence/divergence) 논쟁의 형태를 띠었고 압도적 다수의 결론은 분산이었다. 즉 1970년대까지의 전통적 노동체제는 해체되기보다 각 국가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경로를 밟아 변화하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대개의 연구들은 코포라티즘은(주4.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 사회적 합의-협의(social concertation), 삼자주의(tripartism), 각종 코포라티즘(corporatism) 등을 둘러싼 복잡한 개념 논쟁은 생략한다. 이 글은 ‘코포라티즘’이론의 유용성이 여전하다고 본다.) 변형, 유지되었으며 신자유주의의 영향은 분명했으나, 제한적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서구 연구의 결론 및 함의는 노동체제 변동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에 있었다. 즉 대체로 동일한 외적 압력(신자유주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각 사회는 그 사회가 가진 사회구조적, 역사적, 문화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변동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모델의 이식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명한 인식이었다.

문제는 이 결론이 ‘신자유주의시대에도 코포라티즘은 가능하다’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라는 단순 도식으로 확대, 해석된 것에 있었다. 서구 코포라티즘은 그 성격, 요건 및 결과에 상관없이 한국의 노사정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노동연구원 주도의 국내 비교연구는 서구의 연구결과를 ‘합의체제의 (이식)가능성’, ‘노사정위의 가능성’으로 비약시켰다.

특히 최근 국내 비교연구에서 두드러진 오류는 이른바 ‘전략적 선택’의 문제였다. 일부 국내연구는 ‘조건은 부재하지만 그래도 전략 선택이 중요하다’는 일종의 ‘전략선택 만능론’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전략적 형성론’ 혹은 ‘구성론’(strategic constructivism, configurational theory)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적인 여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위기의 존재, 주체들의 해결 의지-공감대, 이행능력’만 있으면 코포라티즘(사회적 대화)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곧 ‘전략선택’이 유일한 요건이며, 민주노총의 ‘참가전략’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마법의 약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연구원이나 노사정위는 각종 국제세미나에서 ILO 소속 연구자들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주5. 민주노총도 최근 이 대열에 끼기 시작하였다. ILO-KCTU, ‘유럽 각국과 비교한 한국의 노사관계 현황과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전략’, 2004. 6. 21 참고.)

이런 주장은 사회과학 일반의 상식에도 반하는 심각한 자원론(voluntarism)이자 관념론이다. (주6. 관변의 학자들이 예찬하는 네덜란드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나마 산별노조와 중앙 집중적 사용자조직, 사민주의정당, 시민사회의 그물 연줄망,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기반이 되고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모델을 ‘기적’으로 보는 것은 매우 편향된 인식이다. 장점과 함께 여성노동-비정규직의 증가, 고용의 양극화, 임금의 상대적 하락, 기술 수준의 하락 등 여러 가지 한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자세한 것은 노중기(2002, 2004a, 2004b) 참고.) 그리고 서구사회 다수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 나아가 이른바 구성론, 형성론자들의 연구결과와도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서구 연구자들은 중앙 집중적 조직구조와 교섭체제, 좌파정당과 타협적 제도정치구조, 계급 간 힘 관계의 균형, 타협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 등 구조적 요건이 신자유주의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전략만이 중요하다면 사회과학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더욱 문제인 것은 최근 논의가 서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 많은 사회의 역사적 경험, 구체적 사례를 완전히 무시한 점이다. 예컨대 이들은 결코 ‘사회적 대화체제’로 분류될 수 없는 멕시코를 사회적 합의 체제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비교연구가 무지를 넘어 의도적 왜곡,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관변 연구들이 거의 소개하지 않는 3세계 사례들에서 이른바 ‘사회적 대화기구’는 대개 ‘노조 통제기구’였다. 멕시코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서 그것은 신자유주의 통제기구이자, 노동 포섭기구였다. 멕시코에서는 그것은 IMF와 미국이 주도하는 가혹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침묵(‘sound of silence’)이 계속되도록 만든 핵심장치였다. 그리고 동유럽(체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러시아 등)에서도 그것은 구조조정과 자본주의이행, 민주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위기를 관리하고, 비용을 노동 측에 전가하는 핵심 통제장치였다.

그나마 유의미한 시도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또 남아공에는 강력한 집권 좌파정당, 중앙 집중적 노조조직과 높은 조직화, 곧 강한 계급역량, 인종차별(Apartheit) 철폐투쟁의 역사적 경험과 민중적 연대의 전통이 존재한다. 이 구조적 조건은 여타의 3세계 국가와 크게 다르며, 한국사회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자본주의의 세계체제 내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구보다 제3세계에 훨씬 가깝다.(<표> 참고) 그것은 한국 노동체제의 전근대성, 그리고 한국 노동운동의 취약한 역량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한다면 서구와의 비교 이전에, 제3세계 사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가 긴요하다.
체제특성 동유럽 멕시코 한국 린코포라티즘
(실험) 주도권 국가 주도국가 주도국가 주도국가-이익조직
쌍방
이익조직 특성분산, 역량 취약분산, 중간 역량극도 분산, 취약조직된 분권화,
중간
노조-국가관계일부 종속국가에 종속일부 종속/대립자율성
정당-노조관계조직적 관계부재 지배정당에 종속조직적 관계부재유기적 연관
정부 성격우파(신자유주의)우파(신자유주의)우파(신자유주의)다양한 가능성
계급 힘 관계국가 우위국가 우위국가 우위약한 국가우위
단체교섭분권화.
기업단위
중간정도
분권화
분권화.
기업단위
중간정도.
부문별
지배의 기제 시장, 위계 위계, 폭력 폭력, 시장 네트워크
역사적 배경 사회주의.
단원주의
국가코포라티즘 국가 억압체제 사회코포라티즘
<표> 3자 합의실험의 사례 비교 (주7. 린코포라티즘은 네덜란드사례를 중심으로(Traxler, Blaschke and Kittel, 2001), 그리고 멕시코는 임영일(1998), 이성형(1998, 1999), 노중기(2004a), 동유럽은 노중기(2004b)를 참고하여 정리함.)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시대에 수많은 제3세계 사회에서 대동소이한 ‘사회적 합의’실험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설명해야 할 일이다. 더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크게 세 가지 구조적 상황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부분의 제3세계 사회는 1990년대 초반까지 민주화이행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노동사회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는 이른바 ‘통제의 위기’를 발생시켰다. 사이비 합의체제는 무엇보다 통제의 위기에 대응한 국가-자본의 이데올로기공세였다. 또 이 과정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압박, 자본축적의 위기와 중첩되었다. (주8. 우리의 경우 1997년 연초와 연말의 두 커다란 사건이 이런 조건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수세기 국면을 맞이한 제3세계 노동운동 일반의 취약한 역량은 또 다른 조건이었다. 사이비 합의나 강제된 합의가 노동대중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일정한 통제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들 중 하나는 노동계급 역량의 취약성이란 것이다.

3. ‘한국적 토양 위에서 사회적 대화전략은 유효한가?’

이 질문은 노사정위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물음이 된다. 서구 비교연구가 ‘이식의 관점’보다 ‘개별 사례에 적합한 정책 개발’을 강조하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합의의 여건이 존재하는가라는 결정적인 문제이다. 또 그것은 소위 ‘전략적 형성론’의 입장에 선다 하더라도 국가ㆍ자본에 의지가 있는가를 판별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점이 된다.

먼저 우리사회에 합의를 위한 구조적 조건은 존재하는가를 살펴보자. 국가ㆍ자본의 선한 의지, 전략적 선택이 있다면 합의가 가능한 그런 구조적 상황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 구조적 제약요건이 고찰될 수 있다.

먼저 우리의 경우 노동계급의 역량이 매우 취약하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기업별 노조 조직체제가 결정적이다. 기업노조체제에서는 높은 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이익(interest)의 결집, 민주적ㆍ집중적 의사 결정이 매우 어렵다. 이는 낮은 조직율의 효과를 더욱 반감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11-12% 대의 낮은 조직율과 대기업중심의 조직적 편중성도 문제가 된다. 노사정위 문제에서는 한국 노총을 제외하고 5% 수준의 조직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관련된 물적, 정책적 역량의 취약성은 재론이 불필요하다.
한편 최근의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문제는 그나마 취약한 조직역량을 보완하는 정치적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사적 의의와 가능성을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3% 의석’을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이를 사회민주주의의 ‘양 날개론’으로 띄우는 것은 그자체가 개량주의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과장하는 관념론이다. 결국 이제 제도화의 첫 단추를 끼운 민주노동당이 노사정위 참가의 ‘새로운 근거’가 될 수 없다.

둘째, 국가, 정치구조의 틀이다. 15년 이상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는 여전히 수구-냉전국가, 분단국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단국가의 억압적 관료체제가 여전히 경제부처, 공안부처를 중심으로 주도권 장악하고 있으며 노동배제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한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종속적 신자유주의(‘경쟁력주의’와 ‘법치주의’, ‘대미 종속성’)라는 국가 내부의 전략적 헤게모니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대통령 중심의 노동억압, 줄 이은 노동열사, 각종 파업진압, 손배소송, 소위 로드맵과 파견노동자제도의 확대 시도 등 지금까지의 경험은 현재의 정치구조 틀의 반영이었다. 노무현(정부)의 ‘변신 선언’은 그 상징이었다. 그것은 향후에도 노동 배제, 신자유주의 경제ㆍ노동정책이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정치사회는 보수ㆍ수구의 압도적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진출에 대한 경계로 양당의 정책연대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이는 곧 민주노동당에 대한 왕따전략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상생(相生)의 대상이 민주노동당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열우당의 정책적 가능성에 대한 과대평가는 금물이다. 오히려 열우당은 ‘신자유주의 대 동맹’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주9. ‘정권 내 개혁 블럭과의 정책연대’ 주장은 각색한 비판적 지지론에 불과하다. 선거 이후 경제부처 각료들의 선긋기나 이른바 개혁분파의 대표 ‘유시민’을 보면 그 한계와 가능성이 보다 분명해진다. ‘신자유주의 대동맹’이란 열우와 한나라, 전경련과 보수 언론이 주도하며, 신자유주의를 엄호하는 동맹전선을 말한다.(조돈문,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개원토론회’ 발표문 참고)) 요컨대 노사정위가 ‘경쟁력주의’, ‘노사화합주의’를 벗어나서 노동개혁을 논의할 수 있게 해주는 정치적 환경은 여전히 없는 것이다.

셋째, 시민사회 구조적 지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 담론을 전파하는 이데올로기기구, 적대적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공세는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위 언론개혁도 이 문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언론개혁은 자유주의적 개혁으로 계급의 문 앞에서 그 선이 분명히 그어져 있는 것이다. 계급적 대안 매체, 즉 노사화합-국가 경쟁력 제고의 담론을 넘어설 언론은 현재 없다.
그리고 1998년 이후 지속된 시민운동의 보수화 경향도 강화될 전망이다. 형식적 민주화에 따라 시민단체들이 국가에 의해 동원되고 조직되는 경향은 우려할 만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노동자 적대는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동계급의 역량이 시민사회 조직, 시민운동에 미치지 않은 조건에서 반노동자 정서, 낮은 시민의식의 장벽은 지속될 전망이다.

넷째, 역사적 경험의 차원에서도 노사정위 합의의 기반은 일천할 뿐만 아니라 더 약화되어 왔다. 반세기 노동배제의 정치ㆍ사회체제에서 이제 겨우 이루어진 민주노조, 민주노동당 합법화를 과장할 순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노조조직을 동원하여 국가가 조직노동을 배제하고 지배해온 오랜 역사적 유산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예컨대 1970년대 한국노총이 산업평화를 앞세우며 유신정권의 노동탄압에 ‘합의’했던 경험은 한국사회에 고유한 역사적 조건인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노사정위와 이른바 각종 ‘합의’의 경험들이 이제는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3년과 1994년의 노경총 임금합의, 1996년의 노개위 합의와 날치기 법개정, 1998년 정리해고 합의와 현대자동차 합의, 2001년 한국노총의 복수노조합의 등 노동대중에게 각인된 ‘배신’의 경험들은 이제 하나의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합의 실험은 내외의 독점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정리해고, 노동시장 유연화정책, 비정규직 확대정책이 ‘참여와 협력’의 이데올로기 아래서 진행되는 모순이다. 한편에서 인력 감축, 비용 삭감 위주의 경쟁력 강화방안이 실행될 때 다른 쪽에서 실업자 생계대책,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모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노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동의할 때만 ‘사회적 합의’는 가능하다”는 딜레마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동맹 아래에서는 진정하게 “합의할 내용(지점)이 없다”. (주10. 노동자의 힘(2004), 노중기(2002) 참고.)

요컨대 노무현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국에 ‘합의의 구조적 조건’은 부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자본의 전략선택, 특히 노동의 전략선택이 문제가 된다면 노사정위의 지난 6년 경험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 6년 경험에서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노사정위 참가’는 ‘강제된 참가’였다는 점이다. 1기 노사정위로부터 국가는 일관되게 노동의 참가를 강요하였다. 1998년 1월의 참가, 6월 2기 노사정위의 참가는 물론 한국노총의 참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2000년 하반기 이래 불참에 대한 대가로 민주노총은 가혹한 탄압을 경험하였다. 자주적 참가를 봉쇄하는 ‘비자주성의 전략적 지형’이 튼튼하게 작동하였던 것이다. 이 기간동안 국가는 노동정치의 모든 쟁점, 문제들을 노사정위로 떠넘기는 전략을 고수하였다. 노사정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조직이 되었다. 불참조직에 대해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여론 공세의 압력이 가하였다. 또 동시에 불참은 ‘법과 원칙’을 정당화하는 근거였고 민주노조에는 무차별적 폭력이 계속 가해졌다. 현재 민주노조 조직 내부에서 노사정위 참가의 대중적 요구가 존재하는 객관적 기반은 바로 이 같은 ‘비자주성의 전략적 지형’이다.

둘째로 살펴봐야 할 것은 한국노총의 참가 경험이다. 먼저 노동은 불참한 것이 아니라 ‘참여한 것’이라는 점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이 기간동안 불참-참가를 되풀이하였으나 전략수준에서 참가방침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은행파업 등 산하 노조에 대한 구조조정과정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지도부의 실추된 위상은 왜곡된 형태로 보상받고 유지되었으나 소속 노동대중의 거부로 인한 조직력 약화-민주노조운동 강화의 역설적 결과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때로 2001년 2월 합의(전임자임금지급금지 유예, 단위사업장 복수노조금지 존속)처럼 소위 ‘실익’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노사정위 관련자들도 인정하는 잘못된 합의였을 뿐이다.

셋째, 합의 건수, 합의사항 이행여부 문제이다. 우선 정부와 노사정위가 자랑하는 ‘합의 이행 숫자 나열’은 무의미한 일이다. 불이행 사례는 ‘실업자의 초 기업단위 노조가입’ 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합의 이행으로 분류되는 ‘노동참가 방식의 구조조정’, ‘부당한 정리해고 등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근절’, ‘재벌 개혁과 조세 개혁’ 등 핵심 사안의 실제는 노동대중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다.
한편 노사정위의 대표적인 업적인 교원노조는 1998년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한 대가였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 민주노총 위원장의 한겨울 길거리 단식농성을 거쳐 겨우 이루어진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1997년 겨울총파업의 성과였다. 또 공무원노조의 합법화의 경우에는 당사자를 배제한 일방적 합법화 시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법정 노동시간단축은 ‘임금저하-노동조건 후퇴’의 개악으로 끝났을 뿐이다. 노사정위가 주도한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합의는 그 직후부터 지켜지지 않았고, 현재에도 해고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지난 6년의 합의 실험은 국가폭력으로 뒷받침된 ‘참여와 협력’이었을 뿐이다. ‘참여와 협력’의 구호 뒤에서는 ‘손배 청구’, ‘이른바 공권력 투입이라는 파업파괴’, ‘불법쟁의 이데올로기 공세’, ‘구속, 수배 등 형사처벌’, ‘적나라한 폭력배-경찰 동원’이 계속되었다. 노사정위는 애써 이를 무시하였으나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네덜란드 린코포라티즘의 ‘국가 협박’('shadow of hierarchy')은 한국적 토양에서 항상적인 법적, 제도적 폭력 행사로 나타난 셈이다. 이른바 ‘참여정부’의 국가 폭력도 2003년 경험했듯이 만만치 않았다.

다섯째, 노사정위의 구성과 의사 진행도 합의의 정치에는 걸맞지 않았다.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민주노조의 지분은 1/3-1/6에 불과하였다. 정부위원과 ‘친 자본 공익위원’이 수적으로 압도하였으며 이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노총의 존재로 말미암아 분할 지배의 가능성이 상존한 것도 지분을 더욱 축소시켰다. 또 노사정위에서 자료나 정책적 지원은 국가기구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전담하였다. 그리고 실무구성원의 인적 배경, 예산 배정과 집행도 완벽하게 정부가 주도하였다. 결국 운영 전반의 자율성은 없었다. 그 결과 의사진행과정에서 국가ㆍ자본의 요구는 쉽고 빠르게 관철된 반면, 노동의 요구는 흔히 지체되었고 초점이 흐려지거나 무시되었다. 국가의 정치적 판단, 경제상황 관리에 노사정위 운영은 항상 종속되었다.

여섯째, 참가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6년간의 사회경제적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관철이었다. (주11. 김유선, ‘민주노총정책연구원 개원기념 토론회’ 발표문, 2004. 4. 30 참고.) 정리해고, 구조조정-매각, 노동시장 유연화-비정규직 확대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노사정위 존재 여부와 무관히 관철되어 왔다. 그것은 노사정위의 존속이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을 가져다준다는 가설의 실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1년 봄 민주노총의 조직적 투쟁의 결과였던 ‘노동시간 단축’은 참가한 한국노총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로 귀결되었다. 민주노총이 참가조직이었으면 더 나은 합의안이 가능했다는 주장은 과거의 합의 경험을 낭만적으로 해석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동안 민주노조운동의 경험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기와 2기 참가과정에서 민주노조가 얻은 것은 정리해고 만이 아니었다.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이념적ㆍ조직적 혼란이 계속되었던 것은 주요한 결과 중 하나였다. 1998년 2월 합의, 2기 노사정위 참가, 사회적 조합주의논쟁, 발전파업의 파행, 선거 과정에서의 대립 심화 등 노사정위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영향은 뚜렷하였다. 자주성의 훼손 문제는 특히 심각하게 나타났다. 발전합의에서 나타나듯이 ‘한국노총과의 (무차별)통합론’, ‘경쟁력-생산성주의 담론’, ‘노사협조주의’, ‘이른바 국민적 관점과 국민경제론’, ‘전투성-파업투쟁에 대한 과도한 비판’ 등 이데올로기적 폐해가 조직 내에서 속출하였던 것이다. 노조운동의 모든 것을 노사정위로 환원시켜 설명할 순 없다. 그러나 노사정위 참가문제가 조직 내 균열을 심화시켜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결국 ‘한국적 토양’의 함의는 그 토양이 (참가)전략 선택의 선택지를 매우 협소하게 하였다는 점에 있었다. 또 참가하더라도 장외의 ‘(전투적) 대중투쟁’이 참가전술과 체계적으로 결합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불참 결과, 개입의 여지가 없어 실익에서 손해를 봤다’는 주장에서 ‘실익’, ‘참가’의 관점은 그야말로 노사 협조주의와 경제주의, 실리주의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이는 불참 상황에서도 노동정책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실익의 정도를 결정하는 등 정책적 영향력 행사의 주체는 민주노총이었던 현실을 전혀 도외시하는 사고이다. 모두가 알듯이 교원노조ㆍ공무원노조ㆍ교수노조 합법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노동자 대책 마련, 이주노동자 대책 등 모든 핵심 주제에 관해 정부는 물론, 한국노총조차도 장외의 민주노총의 요구가 기준선이었다. 최근 총선과정에서 공무원노조가 전투적 투쟁을 수행한 함의도 바로 이것이었다. 더 나아가 4대 악법 철폐, 민주노조운동 합법화라는 ‘제도개선’은 전투적 대중투쟁의 결과였다. 장외 투쟁은 제도개선과 무관하다는 인식은 합법주의, 제도주의, 개량주의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세계의 노동운동이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을 주목했던 것도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 또 우리 사회에서 이미 그 맥락이 왜곡되었으나, 이런 특성을 서구의 학자들은 ‘사회 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라고 불렀다.

국가가 노사정위원회를 고집하는 이유는 과거의 경험에서, 또 구조적 조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배제적 노동체제’와 정부의 ‘노동정책’에 심대한 변화를 야기했던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동력’을 거세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의 담론에서 노사정위가 노사화합과 협조, 산업평화, 국가 경쟁력 제고, 신인도 개선과 동의어로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구체적인 기제는 민주노조운동의 특성인 ‘자주성’과 ‘민주성(현장성)’을 제어함으로써 그 계급적 성격을 탈색시키는 데에 있다. 더불어 노동의 저항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시대의 노동통제기제를 새로 구축하려는 국가-자본의 시도이다. 이른바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신자유주의’를 하자는 것이다.

4. 사이비 합의주의와 노사정위 참가 : 노동운동의 위기

여러 가지 단서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이미 ‘참가’를 결정하였고 ‘참가’하고 있다. (주12. 모두가 알고 있듯이 노사정대표자회의와 노사정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려했던 바와 같이 현재의 참가는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것은 물론 실리주의적 관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막무가내 식의 참가인 것처럼 보인다. 민주노총 주최의 두 차례 토론회는 가식적인 수순 밟기에 불과하였다. 정책기획실의 검토의견으로 제출된 ‘참가의 전제조건이나 의제’는 내용이 거의 없다. 이런 정도라면 그냥 노사정위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상학(2004) 참고.) 별로 일관되지 않는 여러 근거들과 논리들 보다 참가를 가능케 했던 가장 중요한 힘은 민주노총 조직 내부의 요구였다. 조직 내외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중적 참가 압력, 그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부정적 효과를 예견하면서도, 또 별로 대책도 없이 참가하는 민주노총을 설명하는 것은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진단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된다. (주13. 자세한 내용은 이상학(2004)을 볼 것. 참고로 필자는 이전에 ‘전술적 참가론’을 제시한 바 있었다. ‘전술적 참가론’의 내용은 말미의 보론에 정리해 둔다.)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보조적 통제기구로써 사이비 노동포섭전략, 사회적 합의정책이 힘을 발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국가와 자본의 새로운 통제전략의 구사이다. 기존의 1987년 노동체제의 해체가 시작된 이후 국가는 높은 절차적 정당성 위에서 일관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강화되어온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급속한 확산도 중요한 배경요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노동운동 내부의 구조적 한계도 사이비 합의전략의 효과를 배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기업단위 노조, 특히 대기업노조에 기반을 둔 전투적 대중투쟁은 더 이상 ‘계급적 단결’의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중요한 대기업의 조직 기반은 계급적 단결-연대의 확장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협소한 경제적 이해의 실현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여성/이주/특수고용노동자 등 제반 의제들은 해결의 실마리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요컨대 민주노총의 합법화 이후 계급적 단결의 새로운 전망은 열리지 않았던 반면 노동계급 내부의 분절화, 상태의 악화는 크게 진전되었다. 수세기 국면에서 계급적 단결의 전망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노동계급 대중이 사이비 개량주의적 포섭전략에 견인되는 것은 어쩌면 이해할 만한 일일 것이다. 사이비합의주의 공세의 이면에는 체제 변동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노동운동의 위기, 전략적 대응 부재의 위기가 가로 놓여 있다.

물론 1987년체제 하의 노동운동 전략, 전투적 대중투쟁전략의 합리적 핵심은 보존,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된 노동체제의 구조적 조건에 부응하고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계급적 연대전략, 계급적 단결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 보다 새로운 발상, 열린 토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보론 : 전술적 참가론】

참가여부는 물론, 참가할 경우 무엇을 조건으로 어떻게 참가하며 그 결과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는 중요한 고민거리이다. 이 논의를 위해 먼저 고민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노사정위 참가의 폭과 수준을 미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참가한다면 그것이 전략적 참가가 될 것인가, 전술적 참가에 국한될 것인가.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우선 앞서 보았듯이 ‘구조적 여건의 척박함으로 인해 민주적 조합주의체제의 구축은 현실적으로 난망’하고, 전략적 참가의 여지는 없다.
그러므로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남은 것은 전술적 차원의 참가일 뿐이다. 이 때 전술은 전략적 요소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즉 전체 노동자(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세력화라는 전략적 관점 하에 ‘전술적 참가’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 참가 여부는 참가의 형식이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예상되는)참가의 ‘내용과 결과’를 중심에 놓고 그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컨대 ‘자주성’을 뺏기고, 혹은 ‘신자유주의 경쟁력주의’나 ‘노사협조주의’를 용인하고 실익을 얻는 방식의 참가는 불가하다는 점이다.
특히 전략적 차원에서 ‘계급적 대중투쟁’(전투적 대중동원) 전술과 ‘참가’ 전술의 연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전술적 참가라면 양자의 체계적 결합이 전제될 것이다. 즉 전투적 동원은 참가처럼 여전히 중요한 전술적 수단이 된다.
그리고 너무 자명한 일이나 전술적 참가라면 참가의 전제조건을 확인하고 내부에서 민주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등 분명한 수순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참가 이후 의사과정을 모니터할 수 있는 내부의 조직적 장치, 또 상황 전개에 따라 전술적 불참과 탈퇴의 수순을 밟을 수 있는 기준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참가의 전제가 되는 조건들에 대한 문제이다. 이미 민주노총은 참가의 전제 조건을 제시한 상태이다. 다만 그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불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크게 서너 가지의 조건을 걸 필요가 있다.
먼저 이미 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노사정위 조직의 개편문제가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준의 조직의 형식적 재편이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제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노사정위의 정부로부터의 재정적, 조직적 독립성ㆍ자율성 확보, 위원(회) 구성ㆍ선발의 중립성 제고 및 노동의 대표성 확대, 실무자의 충원과 관련 연구자ㆍ연구기관 선정에서의 중립성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 과거 투쟁-참가의 결과이자 현안인 사항들에 대한 분명한 해결이 요구해야 할 것이다. 로드맵, 공무원ㆍ교수 합법화 방안(주체 참가와 기본권 범위), 파견제 확대-이주노동자 단속의 노동부 정책방침과 공공부문 노동시간 단축 방안, 특히 노동정책 중 ‘불법파업 엄단방침’, ‘법 만능주의’ 문제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현안이 있다.
이들 중 몇 가지는 난제이나 포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의 ‘실질적 참가’를 보장한다는 국가-자본의 최소한의 약속의 의미가 담겨있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참가할 순 없는 일이겠으나 분명한 문제제기는 꼭 필요하며, 최소한의 관철 수준은 미리 결정해두어야 한다. 지불의지가 있는 상대와 값 싼 거래를 해선 안 될 것이다.

셋째, 참가 이후 의제 설정도 미리 준비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참가 이후의 논의 의제는 노사정위가 ‘구조조정 보조기구’, ‘사회통합기구’로 전락치 않도록 제어할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는 민주노동당과의 정책적 협조, 공동의 요구 방안에 대한 고민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선 산별노조-산별교섭의 문제를 어떻게 의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기존의 연구와 경험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만큼 의제 설정방식과 민주노총의 정책 대안을 상대적으로 쉽게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산별노조 건설 노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핵심 논의주제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와 관련된 정책적 요구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논제로 되어 온 비정규직-파견노동자-특수노동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산업재해문제, 빈곤과 복지제도 개혁 및 예산 확대의 문제, 세제의 전면적 개편, 이주노동자의 문제, 기타 여러 가지 산업-통상정책의 요구들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이미 상당히 진척되거나 마무리된 자유무역협정(FTA)문제를 재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폐기가 불가하다면 재협상이나, 그 과정에서의 노동참가는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 될 것이다.
또 노동기본권의 문제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교원ㆍ공무원ㆍ교수의 기본권 보장 확대문제, 집시법 개정, 노동조합의 정치참가(정치자금법),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문제, ‘최저임금제’의 전면적 개편 문제, ‘노동시간단축’법안 재개정 문제, 노동쟁의의 불법 규정문제 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한편 지금까지 의제가 되지 않았던 사안도 새로이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간 국가 기구가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노동행정, 관련 기관에 대한 개입이 시작되어야 한다. 근로감독제도 개편, 노동위원회 개편문제(노동법원), 근로복지공단 등 제반 산하기구에 대한 노동자 경영참가와 통제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연구원-노동교육원의 운영에 대한 개입과 통제는 중요하다. 기타 일반적인 여러 가지 정책 기획 과정에서의 개입과 모니터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잊혀진 재벌개혁, 언론개혁의 의제를 다시 제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개혁방안을 제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2003년에 또다시 경험했던 언론의 노동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물론 노사정위가 이 문제들을 모두, 동시에 해결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주체 역량 상으로도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내부적으로는 우선과제, 핵심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매개로 전국적ㆍ계급적 전선을 만드는 수단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넷째, 참가 이후의 전략적 행동의 경로도 미리 전략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먼저 혹시 합의가 된 부분이 있다면(과거 합의를 포함해서) 합의 이행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으나 약속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 자본의 노골적인 약속 위반/이행 거부 등 참가의 전제가 소멸할 경우, 불참-탈퇴는 언제라도 가능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 수순 혹은 그 근거를 둘러싼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다. ‘전술적 참가’는 ‘이런 조건이 안 되면’ 언제라도 탈퇴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8년과 2002년에 보았듯이 탈퇴의 시기와 수순을 놓치면 그 반대급부는 노조 조직에 대한 심각한 타격으로 귀결할 것이다. 다만 참가 그 자체에 따르는 대중조직으로서의 책임이 있으므로 그 수순과 결정은 신중하게, 그리고 사전에 고민될 필요가 있다.

< 느리지만 바르게 빨리 가는 길 >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지만 현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위 문제와 관련해서 새로운 입장을 천명하고 당선된 지도부이다. 또 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천명해왔다. 노사정위 문제는 조직 내부의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쳐 대의원대회의 의결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한다. 후자가 충분히 진행될 경우 노사정위 참가 문제에 관한 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두 차례에 걸쳐 절차적 정당성을 구비하게 된다. 일종의 알리바이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참가가 조합원의 대중적 요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고, 그 과정이 충실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의 문제는 그 같은 절차적 정당성으로 모든 일이 정당화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참가가 거의 불가능한 제반 조건 속에서, 또 ‘노사화합과 경쟁력’을 앞세운 상대와 함께 하는 노사정위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세기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역사성의 문제가 걸려있다. 목숨으로 방어한 민주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 그 계급적 연대성이 시험받는 문제인 것이다. 또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 있는 노동대중의 미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무게만큼의 깊은 고민, 체계적인 준비, 신중한 결정과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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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xler, Franz, Sabine Blaschke and Bernhard Kittel eds.(2001), National Labour Relations in Internationalized Markets: A Comparative Study of Institutions, Change, and Performance,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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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22:15 2005/02/0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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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3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대응' 토론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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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련단련모임에서 이번 당직선거 출마시 출마의 변에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넣은 것에 대해 몇몇 동지들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는 물론 내가 전진에서 올해 정책사업기조를 퍼오면서 내 주관적인 입장을 집어넣어 출마의 변에 정치적 입장을 추가하여 통일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에 호응하여 한 동지가 쓴 출마의 변 예시문이 문제가 되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정리된 글을 퍼와서 나름의 입장정리를 하기로 하였다. 사실 전진에서 1월 24일에 나왔던 것은 약간 밋밋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래 글은 미디어참세상에 실린 것으로, 지난 2004년 7월 3일 '"사회적 합의"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체로 노중기 교수가 잘 정리하고 있고, 내 의견도 이와 비슷하다. 현장 좌파의 경우 의욕과 구호만 앞설 뿐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특별한 대안은 없는 듯하다.

 

노중기 교수가 말한 바와 같이 "98년 이후 이갑용, 단병호 집행부의 태도나 최근 노동자의힘 중앙위원회의 결정문은 큰 차이가 없다. 합의냐 투쟁이냐 두 가지 길로 나눈다면 이수호 집행부 이전까지는 후자의 길을 택해왔다. 이제 이것의 합리적 핵심은 살려나가되, 전투적 조합주의는 뛰어넘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 반대를 넘어서는 계급적 확장에 대한 연대 전략이 있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대기업 실리주의 극복, 산별 논쟁 등 5년 동안 많은 얘기를 해왔지만, 구체적 대안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당원들의 참여 유도, 질적 성장 등을 강조해왔지만, 창당 당시와 비슷하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민주노총 현집행부가 말하듯이 투쟁과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든지, 일부러 대화의 창구를 닫을 필요는 없다든지 하는 주장으로 가서는 안된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이나 전투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관행의 투쟁이 대기업 경제주의 이기주의로 귀착되는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지도부 비판도 해야 되겠지만 지도부가 누가 들어서더라도 부딪히는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왔다. 몇 주 전 현대자동차노조 집행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사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좌파가 하나 우파가 하나 현자노조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똑같다". 금속연맹을 예로 든다면, 지금과 같이 현장이 무너진 조건에서 지도부를 전국금속모임(중앙파의 확대개편세력)이 장악하든, 국민파가 장악하든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서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는 내부적인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좌파든 우파든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투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정규직노조가 주도권을 갖고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중심에 놓고 사회적 합의 공세에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이지수 불완전노동철폐연대 교육부장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서로 비난ㆍ무시ㆍ비판하는 관계가 계속되어 왔는데, 지금은 노조운동이 시민사회운동 의제 속에 직접 들어가서 연대하고, 의제로 만들고 시민사회운동을 급진화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과제"라는 노중기 교수의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물론 그것이 국보법완전철폐 국민연대나 전국민중연대와 같은 단체에 가서 몸대주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문익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본부장의 얘기도 설득력이 있다. 최임위도 있고, 고용훈련대책위, 민간실업대책위, 물가심의위 등 이미 민관 공동기구가 수두룩하며, 지역 노사정위 하면 보통 1시간 정도 형식적인 회의하고, 어쩌다 기자회견 하는 게 고작인 지역 노사정위의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주장할 수는 없다. 게다가 대기업노조 중심의 민주노총이 노동자 계급의 대표성을 가지는 것 또한 문제가 있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주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합의하느냐가 아니라 합의 내용에 대해 현장에서 어떻게 투쟁해내느냐가 문제"이며, 현장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어떻게 독이 되는지 경험한 바 없기 때문에 뭔지조차도 제대로 모른다는 의견에도 공감이 간다. 물론 탄력적 근로시간제, 노동강도 강화, 6시그마 등을 뭉뚱그린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덧붙여, 최근에 배규식 등의 한국노동연구원 사람들이 언론에 많이 나와서 노동쪽의 타당한 의견인 것처럼 위장하고 나서는데, 이에 대해 지적한 노중기 교수의 의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적 조건, 토양의 문제로 제시해놓은 것은 제 발제의 한계다. 이유는 현재 이데올로기 전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노동교육원의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지배되고 있고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정부 쪽 이데올로기를 민주노총이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전선을 노동연구원 노동교육원 노사정위원회 쪽으로 쳐야 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정권과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합의 추진 저지해야"

18개 노동사회단체,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대응' 토론회 개최

후속 간담회 갖고 '노사정 합의주의 대응 기획회의' 구성

김해숙 기자

 

사회적 합의주의를 비판하는 노동사회단체들이 올해 처음으로 공동토론회를 가졌다. 경기현장연대, 일하는사람들, 한노정연, 문화연대 등 18개 단체가 주최한 '노무현정권의 사회적 합의 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 토론회에는 230여 명의 활동가가 참석, 열띤 토론을 전개함으로써 사안의 중요성을 시사하였다. 토론회는 7월 3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약 세 시간동안 서울대보건대학원 4층 강당에서 열렸으며,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사회를, 노중기 한신대 교수와 조문익 민주노총전북본부 부본부장이 각각 발제를 맡았다.

 

노중기 교수는 '사회적 합의주의 현황과 문제점' 발제를 통해 '사회적 대화전략'이 노조에게 필요한 지, 한국적 토양 위에서 사회적 대화전략은 유효한 지 등을 짚고, 보론으로 전술적 참가론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노중기 교수는 발제 과정에서 "98년 이후 이갑용, 단병호 집행부의 태도나 최근 노동자의힘 중앙위원회의 결정문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합의냐 투쟁이냐 두 가지 길로 나눈다면 이수호 집행부 이전까지는 후자의 길을 택해왔다. 이제 이것의 합리적 핵심은 살려나가되, 전투적 조합주의는 뛰어넘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대기업 투쟁 동력을 기초로 한 전국 전선의 설치가 안 되고 있으며, 전투력은 대기업노동조합의 경제적 이해를 확대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대기업노조의 투쟁에 기초한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또 "최근 한노정연 100호 기념글에서 서관모 교수가 좌파들은 '상대방을 너무 인정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연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지적에 공감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조문익 민주노총전북본부 부본부장은 '노무현정권의 노사정체제의 문제점과 대응방향' 발제를 통해 지역 노사정위의 실태를 고발하였으며, 민주노조운동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할 것을 요청하였다. "민주노조운동이 해체 위기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새로운 정체성 모색을 해야 할 시기다. 한국사회 자유주의자의 진보성은 없다"고 말하고, "노무현정권이 들어선 후 현장에서도 많은 혼란을 겪었다. 정권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상반기 투쟁은 배치 안하고 하반기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배신당했다"며 노무현정권에 대한 현장의 고민과 상황을 피력했다.

또 사회적 합의와 관련해서 "이수호 집행부가 너무 빨리 나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자리잡아서라고 판단한다면 상황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강남의 귤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되는 것과 같이 전북의 노사정위는 탱자나 마찬가지다. 최임위도 있고, 고용훈련대책위, 민간실업대책위, 물가심의위 등 이미 민관 공동기구가 수두룩하다. 지역 노사정위 하면 보통 1시간 정도 형식적인 회의하고, 어쩌다 기자회견 하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나서 식사를 2시간 정도 한다. 지역 노사정위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라"며 지역 노사정위의 상태를 설명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안재원 노동자의힘 노동위원장은 "정부는 민주노총 상층을 포섭해서 조합원과 상층 지도부를 분리시키려고 한다. 노동자 대중은 자본의 생산성 이데올로기에 포섭되고, 조합원은 보수화되고, 노동조합은 자판기 노조가 되고, 상급단체는 현장과 더욱 멀어진다"며 민주노조운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사회적 합의를 가져가는 것은 급속한 쇠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또 "이수호 위원장이 경총 강연에서 CEO는 3D 업종이라고 치켜세우는 발언을 한 데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위해 모든 동지들이 모두 모여 공동의 대응을 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정권에게 퇴진 투쟁을 불사할 것을 경고하고 파병 철회 정치총파업을 조직하자. 총파업 성사 여부를 떠나 노동자계급이 반제 반전 투쟁의 주체로 나서자"고 주장했다.

 

이지수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교육부장은 "이수호 위원장은 대기업노동자 임금 인상을 자제시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적 있다. 이는 정부의 이데올로기와 같아 우려된다"고 말하고, 최근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 "최저임금 13.1% 합의는 액수와 인상율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임금이 최소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숫자 놀음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내년에 64만원 가지고 투쟁할 수 있겠느냐"며 합의에 의한 최저임금 결정에 불만을 토했다. 또 사회연대기금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확대 양산이라는 제도적 절차를 밟고 있는 정부와 그 책임이 사와 정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이 함께 돈내고 운영하면서 실업, 비정규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은 비정규 문제를 왜곡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훈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은 "기층 조합원의 실리주의 태도가 지도부의 합의주의를 부추긴다"고 지적하고, "자본의 의도에 따른 노동자 내부 분할의 세분화는 노동자들의 의식과 행위에 영향을 미쳐 계급의식의 형성을 가로막는데, 이러한 분할선을 따라 저들은 나와 다른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본은 일견 사소해 보이는 차별들을 이용하여 이러한 분할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 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제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또 자기중심적 실리주의가 공고화되는 때에 "선택은 불가능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망상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전진을 위한 대안을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계급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노중기 교수는 조문익 부본부장의 토론에 대해 "대동소이한 의견으로 조문익의 지역 노사정위의 문제는 좋은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답하고, 안재원 노동위원장의 토론에 대해 "사회적 합의 반대투쟁 조직과 그것을 매개로 연대를 확보하자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낙관한다. 사회적 합의 반대를 넘어서는 계급적 확장에 대한 연대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지수 교육부장의 토론에 대해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합의가 아니라 결국은 비정규 문제에서 파열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대기업 실리주의 극복, 산별 논쟁 등 5년 동안 이야기해왔지만 구체적 대안이 쉽지 않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돌파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이종훈 노동국장의 토론에 대해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서구에는 합의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사회운동적 과제를 받아 안는 데 집중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에서 노동자정치운동으로 확장, 시민운동으로 연대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토론자의 토론과 답변에 이어 토론회 참가자들의 질문과 토론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이일재 선생은 "현재 노사정 결정 없이도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병원파업이 그렇듯 국가권력이 강제적으로 합의라는 이름으로 가져가고 있다. 지역 차원의 노사정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합의 결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가져가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의 행보, 이것도 이미 합의되어서 강제로 가져가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두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노중기 교수에게 "전투적 조합주의로는 더 이상 부족하고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에 몰려서 문제라고 말했는데, 오히려 전투적 조합주의가 억압되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타협적 노동조합운동이 활발해지게 된 것 아닌가? 대중투쟁이 잘못된 것이거나 전투성의 한계라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며, 전투적 조합주의가 무너져서 더 문제라는 생각이다. 전투적 대중투쟁이 한계가 왔다는 식의 주장은 결국 국민파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라며 비판했다. 또 "사회적 합의주의가 깨질 것이라는 낙관은 너무 안일하다고 본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인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평등노조의 한 활동가는 토론 주제를 문제 삼았다. "노무현정권의 사회적 합의 공세라고 했는데, 이는 잘못되었다. 사회적 합의로 민주노조운동을 망가뜨리고 있는 노무현과 이수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로 정정해야 하지 않는가"라며 토론회 주제가 바뀌어야 함을 제기했다. 또 이번 현자 노조의 파업 투쟁과 관련, "현자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총파업을 무시한 채 사측과 협상을 마치고 파업을 풀면서, 비정규직 문제까지 합의해 버린 것은 일종의 대리주의이자, 비정규직노조의 자주성을 망가뜨리는 행위"라고 언급하고, "대기업노조 중심의 민주노총이 노동자 계급의 대표성을 가지는 것에 문제가 있으며, 현장의 실정이 그러한데 무슨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는데 2차 하청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해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비정규노조가 최초로 총파업에 들어갔는데 그에 대한 성명서 하나 없다. 정규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파업 현장에 정규직 노조 상근활동가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며 정규직노조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했다.

남병준 일하는사람들 활동가는 "정말 무서운 것은 이상학 정책국장의 발언이다. 첫 말이 노동자투쟁은 항상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교환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아주 무서운 논리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갖고 싸울 때 진정한 대표성을 가지게 되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민주노총이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통제하는 데 합의한다면 그것은 파시즘이다"고 지적했다.

 

노중기 교수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해 꼼꼼히 짚어가며 답변했다. 우선 포퓰리즘으로 갈 가능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포퓰리즘은 복잡한 이야기가 있고 상황과 맥락이 다르지만 포퓰리즘보다는 자본의 독재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될 수도 있겠고 멕시코 등 제3세계형 자본독재도 가능할 것이고, 일본의 자본독재로 갈 수도 있을 텐데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종속형 자본독재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총자본의 전략적 목표는 일본식 합의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물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좀 다르긴 하겠으나 그렇게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전투적 조합주의와 관련한 김두한 연구원의 강한 비판에 대해서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내가 부정할 사람은 아니고 역사적 의미와 계급적 성격을 부인한 적도 없다. 문제는 89-91년 당시 골리앗 투쟁이나 케이비에스투쟁 등 대기업 노조운동의 전투성이 계급세력화에 기여했던 방식의 운동이 지금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노동운동 지도부, 이수호 노선 이야기 많이 나왔지만 우파 지도부 때문에 노조운동의 위기가 왔느냐 문제라면 다시 짚어봐야 한다, 전술적 참가에 관한 글을 보론에 달았는데 고육지책으로 쓴 거다. 본문에 기초한다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이나 전투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관행의 투쟁이 대기업 경제주의 이기주의로 귀착되는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부 비판도 해야 되겠지만 지도부가 누가 들어서더라도 부딪히는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왔다. 몇 주 전 현대자동차노조 집행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사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좌파가 하나 우파가 하나 현자노조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똑같다고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주체의 혁신과 연대에 대한 고민을 던졌다.

조문익 부본부장도 주어진 질문에 대해 "노사정위 구조는 그 사람들이 전체 노동자를 대표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중 삼중 사중의 간선제로 된 대표이고 불가능하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내부에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 한다. 조직이 제대로 되려면 65만 명이 토론에 참가해야 한다, 옳지 않은 결정을 하더라도. 우리 운동이 안 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변혁적 노조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누구 책임인가. 우리가 반성해야 그 사람들에게 문제제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재원 노동위원장은 사회적 합의 공세 대응과 관련 "공동의 위기를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것이고 중요한 건 총노동이란 안과 밖의 결집, 지역과 전국을 모아내는 것, 공동의 실천을 이루어내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전국적 투쟁전선 구축은 여전히 중요하다. 전투적 조합주의와 기업별 노조는 다른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산별노조 건설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이것이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의 문제인 것처럼 둔갑시킨다. 전통적 투쟁 성과를 계승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라며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훈 노동국장은 "노동운동도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노동운동이 사회운동과 일정 분리되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핵심은 사회적 조합주의냐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냐가 아니고 변혁적 노동운동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진단이 내부로부터 되어야 한다. 노사정 합의가 한국에서 시행된다면 신자유주의 관리체계로 기능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비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출발은 변혁적 관점을 유지하고 공동의 실천이 필요하다"며 공동 실천의 의의를 환기했다.

이지수 교육부장은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서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는 내부적인 반성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좌파든 우파든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원칙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중요하다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투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정규직노조가 주도권을 갖고 가는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중심에 놓고 사회적 합의 공세에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광 전국노동자연대 사무처장은 "사회적 합의주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합의하느냐가 아니라 합의 내용에 대해 현장에서 어떻게 투쟁해내느냐가 문제다. 현장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뭔지조차도 제대로 모른다. 어떻게 독이 되는지 경험한 바 없기 때문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노동강도 강화, 6시그마 등의 폐해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것들 뭉뚱그린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지역투쟁의 복원 없이 전국 투쟁이 없다. 지지난해 이 자리에서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이란 걸 만들었다. 그런데 지역에 내려가니 바뀌는 게 없었다. 오늘 토론회 끝나고 지역 내려가서 단위에서 이런 토론회나 시위나 피켓팅이나 선전선동 같은 게 없으면, 훗날 전국의 얼마 안 되는 좌파들이 모여서 토론회 한 번 했더라 라는 말만 남을 것이다" 라고 말해 토론회 이후 지역과 현장에서의 실천을 강조했다.


김태정 노동자의힘 조직국장은 "김선일 씨 피살 사건 이후 합의주의 투쟁을 모든 계급운동진영이 싸워야 하는 긴박함에도 불구하고 정국이 그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금 노무현이 제기하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민주노조운동 진영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통, 환경 등 사회적 의제들이 합의주의와 함께 빈곤이 심화되는 문제를 같이 다루어야 한다, 8월 파병을 정권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전선 자체가 쉽지 않다. 학살 주범 살인 주범인 노무현정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안 된다고 하는 논리가 많다. 탄핵정국과 달리 노동자계급이 대중이 전면에서 퇴진투쟁 전개하지 않으면 파병은 강행될 것"이라며 파병 철회 투쟁과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대응을 함께 해나가야 할 것을 역설했다.

포항제철 해고자라고 밝힌 한 활동가는 "민주노총은 현재 전해투를 해체하려고 한다, 상집에서 전해투 해체 문제를 다루었고, 중집에서도 압도적으로 해체를 결정했다. 중앙위에서만 결정나면 전해투는 해체된다. 합의주의 공세에 대해 우리 역시 앞장서서 투쟁해왔다. 비정규직 문제도 투쟁해왔다"며 민주노총이 전해투를 해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은 "한국에서 지금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의 중요한 얘기들이 거의 다 나왔지만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중기 교수의 발제처럼 구조 문제가 아니고, 사실은 자본주의 경제, 생산체제 전반적 위기의 문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서구 네덜란드 합의주의는 그래도 유효한데 한국은 특수상황 때문에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자본의 이기주의 속에서 독점자본 관리, 노동자 포섭, 상층노동자와의 야합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이론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노중기 교수는 "김태정 동지가 말한 사회적 빈곤이나 이라크 파병 등의 의제들이 있는데 노조운동이 그 문제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동의한다. 핵심은 그런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고,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서로 비난하거나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하는 관계가 계속되어 왔는데, 지금은 노조운동이 시민사회운동 의제 속에 직접 들어가야 하고 연대하고, 의제로 만들고 시민사회운동을 급진화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과제이다"라고 언급했다. 또 채만수 소장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복잡한 이야기가 걸려있지만 큰 틀에서는 제기하신 문제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한국적 조건, 토양의 문제로 제시해놓은 것은 제 발제의 한계다. 이유는 현재 이데올로기 전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노동교육원의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지배되고 있고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쪽 이데올로기를 민주노총이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전선을 노동연구원 노동교육원 노사정위원회 쪽으로 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사회를 맡은 김세균 교수는 "오늘 토론회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신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많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흐름을 만들어내는 발판이 되길 바라고, 노사정위원회에서 '정'이 실제로 총자본을 대표하는데, 이를 깨뜨리려면 우선 내부적으로 민주노조운동에서 흐름을 만들고 우경화 노선을 바꿔내야 하는 과제가 있고, 합의주의 반대 세력과 굳건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새로운 흐름 만들어내기를 바라면서 토론회를 마치겠다"고 말하고, 토론회 이후 대응을 주문하며 마무리했다.

토론회 이후 참가자들은 후속 간담회를 가졌다. 토론회 공동 주최 단위와 현장 조직 및 개인들이 참가한 후속 간담회에서는 주요 연맹, 지역, 단사별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상황을 공유하고, 이후 대응과 모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참가자들은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에 동의하는 세력을 최대한 모아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7월 중하순, 현장조직 토론회와 7월 16일 공활모 토론회 등 이미 각 영역에서 준비중인 사업에 힘을 싣기로 하였다. 참가자들은 완결된 모임의 형태를 갖기보다는 현장을 조직하고, 합의주의 분쇄를 지역과 단위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신속한 대응과 현장과 지역을 조직하고, 전국화 하기 위해 '노사정합의주의 대응 기획회의'를 두고 향후 구체적인 사업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공동토론회 주최는 경기현장연대, 노동의미래를여는현장연대, 노동자의힘,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문화연대, 민중의료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반대평등을향한대구민중행동, 역사학연구소, 이윤보다인간을, 일하는사람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국노동안전보건부산연구소,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등 18개 단위였다.

2004년07월05일 13:38:43

 

 

출처: http://cast.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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