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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현, 관장사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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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대충 끼적거리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난 단문형 인간은 아닌 모양이다. 정리능력도 부족한 듯 싶고...
 
인터넷한겨레에서는 바로 '[김선주칼럼] 말조심 글조심…어렵네'에 접근할 수 없어서 대략 훑어본 사람 처지에서는 이 글을 그냥 넘겨버렸다. 그런데 다시 보니 많이본 기사에 김선주의 글이 올라와 있어서 이 글을 보았고, 그에 딸린 댓글들을 보고 이 글이 논란이 되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어제 밤에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레디앙에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김선주의 첫책 소개글이 실린 걸 보고 김선주의 글에 주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서평 마지막에 언론인으로서 김선주를 평가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선주의 '매니아적 독자'였으며 언론인에서 정관계로 '존재를 이전'하라는 수많은 권력으로부터의 '유혹'을 뿌리치며, 그가 "마지막까지 언론인으로 남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런 그가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인해 <한겨레신문>에서 일어난 필화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한편으로는 글쟁이로서의 원칙 때문이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무현을 여전히 아끼고 그가 추구한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이 사건의 발단에서 마무리까지가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곡을 찔렀네…제목 잘 뽑았네’ 했던 것이 첫 느낌이었다. … 야권이 지방선거에서 재미보았다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계속 팔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명의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쟁이근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똑 부러지는 제목’이라고 보았다.
 
사실 굳이 글쟁이가 아니라고 해도 노빠들 빼놓고는 대부분이 이런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이를 둘러싸고 유시민과 노사모가 공개적으로 한겨레 절독선언을 한 것을 보고는, 한편으로는 과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전 전라도에서 김대중을 부를 때 반드시 '선생'자를 붙이지 않으면 욕을 한바가지로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무현에 대해 놈현이라고 하지 못한다면 MB 등에 대한 풍자적인 표현은 또 어떻게 할 건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김선주는 후자의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
 
그나마 친노라고 할 수 있는 김선주가 이 정도로 두루뭉실하게 완화된 표현을 쓰는데도 한겨레 평생절독 운운하는 노빠들을 보면서 저 인간들하고 저들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비판하는 MB정권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이들이 상당하겠다 싶었다. 이번 사태는 진보라고 위장해온 노빠들의 본질을 적확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노빠에 대한 나의 편견이 벗겨지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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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8 14:17 2010/06/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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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 Someone Will Be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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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원제는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1994) 엔딩 테마.

다카하타 이사오의 재치와 음악을 담당한 샹샹 타이푼(上上颱風), 그리고 연주를 맡은 일본의 전통음악 연주 집단 핫소가쿠단(八草樂團)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천공의 성 라퓨타를 들을 때처럼 일본어를 빨리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エンド・テーマ「いつでも誰かが」
Endo Teema "Itsudemo Dare ka ga"
[End Theme Always, Someone Will Be...
 

 

이것도 예전에 관련글을 써놓은 것이 있더라. 쩝...

우연히 [출발! 비디오여행]을 보다가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이 4월 28일에 개봉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 초에 불바다님이 주어서 다운은 받아놓은 것 같은데, 결국 아직까지 보지 못한 영화이다. 제목이 여러가지로 나와 있어서 헷갈리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을 담당하고,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한 1994년 제작 애니메이션인데, 나는 이것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알았다. 세밀한 너구리의 묘사가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같은해에 개봉된 디즈니의 <라이온 킹>을 제끼고 흥행1위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너구리가 그리 가깝지 않은데(물론 민지네 사람들은 너굴을 너무너무 친근하게 알고 지낸다), 일본 사람들은 너구리를 친근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애니에서 너구리는 너무 귀엽고 정겹게 느껴진다.

  

약간은 계몽적인 주제인데, 너구리라는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잘 풀어내고 있다고 본다. 둔갑술을 쓰는 너구리들이 인간의 환경 파괴에 대응하는 방법에 있어서 약간은 폭력적이고, 그 결국에는 환경파괴를 막을 수 없고, 인간에게 패한 너구리들이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이렇게 짜기도 쉬운 것은 아니다. 사실 계몽 애니메이션의 진수는 김청기 감독의 <똘이장군>이 아니었던가?

 

이 애니메이션은 영화 자체보다는 주제곡 때문에 기억이 남을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가락에, 흥겨워서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이런 노래를 들을 때면 일본어를 빨리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제목에 나오는 '폼포코'는 너구리가 배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킨다고 한다.

 

5. 8 (일) 추가 

[폼포코 너구리 대전쟁]을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볼만한 영화다. 추천한다.

생활일본어가 귀에 잡힌다. 이빠이, 덴뿌라...

 

너구리들이 굴착기를 밀어버리고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 작업모를 쓴 어린 너구리들의 이미지가 전공투를 떠올리게 했다. 시위 때는 항상 안전모를 썼던 일본 전공투 학생들...

 

 


주인공인 쇼우키치가 키오에게 하는 말이 고전적인 운동권의 프로포즈 같다. "이 싸움에서 이길 때까진 깨끗한 마음으로 있도록 하자!" 이런 활동가의 모습에 뿅갔다가 나중에 후회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지막으로 너구리들이 대작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 "기분전환이야. 노는 기질이 없다면 너구리는 더 이상 너구리가 아니지." 항상 노는 기질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도...


영화의 마지막에 쇼우키치가 너구리들과 어울러 노는 과정이 웬지 서글프다. 그리고 그 노래의 여운이 계속 남고... 아래 요약글에 있는 사진들은 영화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장면인 듯한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무튼 너구리들이 너무 귀엽다.
 
네오님의 댓글: 본인 스스로가 전공투 세대였던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 작품을 '전후 일본내 투쟁을 그린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전공투의 투쟁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지만, 마지막 부분의 투항, 변절, 모험주의적 투쟁, 소시민화를 두고 당시 일본내 좌파진영에서 패배주의적이라는 비판도 거세었다고 하네요. 
  

 

 

 

 

Always Someone Will Be(いつでも誰かが) -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 엔딩

 

언제든지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생각해 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마음이 울적해 아무 것도 안보이는 밤에

꼭 꼭 누군가가 언제나 곁에 있어

 

태어난 마을을 멀리 떠나있어도

잊지 말아 주세요, 그 마을의 바람을

언제든지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그래 꼭 네가 언제든 곁에 있어

 

비오는 아침엔 도대체 어떻게 해

꿈에서 깨어나도 역시 외톨이야

언제든지 네가 꼭 옆에 있어

생각해 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싸움에서 상처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 봐요, 노래가 들려와요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사라져 가

그래 꼭 너의 웃는 얼굴을 원해

 

바람부는 밤엔 누군가를 만나고파

꿈속에서 봤지, 너를 만나고파

언제든지 네가 꼭 옆에 있어

생각해 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우우우우아아아아

 

언제든지 네가 꼭 옆에 있어

생각해 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반복)


<맨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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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4 19:51 2010/06/2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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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기반서비스 활성화에 경찰이 왜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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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기에 한나라당이 통과시키려고 하는 악법들이 엄청나게 많다. 월드컵 광풍도 있고,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등 치열한 논란이 예견되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 쟁점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이대로 넘어갈 수 없는 법안들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법안들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대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최근에는 언론에 나오고 있지 않지만, 위치정보보호법 개정문제에도 눈길을 돌려보자.
 
지난 4월 28일 변재일의원(민주당)이 지난 2008년 9월 8일 대표발의한 `위치정보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최인기 의원안, 신상진 의원안, 정부안 등 3건과 병합심사돼 지난 4월 28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개정법률안이 국회 문방위를 통과했다는 것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 경찰이 휴대전화로 112에 도움을 요청한 시민의 위치정보를 활용해 신속한 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등의 긍정적인 면만이 부각되었을 뿐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된 사항은 간과되었다.
 
방통위가 모든 휴대전화에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한 위치확인 기능 탑재를 의무화하기로 밝혔던 6월 10일에도 일부 인터넷 언론만 주목했을 뿐이었다. 방통위의 'LBS 산업육성 및 사회안전망 고도화를 위한 위치정보 이용 활성화 계획'에는 경찰이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현재의 경찰을 어떻게 믿고 넘겨준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개인정보를 오남용하면서 인권침해를 밥먹듯하고 있는 경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통위의 방안은 이번 본회의에서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너무나 쉽게 현실화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아래 관련기사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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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주체 동의하에 개인위치정보 획득·이용가능해져 (보안뉴스, 김정완 기자, 2010-04-28 18:35)
변재일 의원 대표발의한 ‘위치정보보호·이용 등 관한 법률안’ 통과
 
현행법 상 긴급구조기관이 아닌 경찰관서는 위치정보획득권한이 없어 위급한 상황에서 112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의 위치정보를 파악할 수 없음은 물론 신속한 출동과 구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경찰관서에 개인위치정보의 획득권한을 부여(안 제29조제2항)하되, 경찰관서의 개인위치정보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법원의 사후적인 승인을 얻도록 하였다(안 제30조제2항).
 
특히 이번 개정안은 긴급구조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규정한 변재일 의원안의 취지가 수정·반영됐다. 즉 구조 받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구조를 요청한 경우, 경찰관서는 구조를 요청한 사람(개인위치정보주체)의 의사를 확인하고 위치정보를 획득·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부적인 구조요청 방법과 절차는 하위법령에 위임하였지만, 구조를 요청한 사람의 의사를 휴대폰을 통해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경찰이 위치정보를 이용하도록 하는 방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변재일 의원은 “최근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가 늘고 있는 실정인데, 여전히 경찰서는 법상의 긴급구조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급상황에 처한 국민의 위치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여 신속한 출동과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었다”며 “이번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국민 대다수가 소지한 휴대폰을 이용해 경찰의 신속한 수사 및 구조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어린이, 부녀자들을 강력사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라고 밝혔다. 한편 본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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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GPS 의무화 논란 (한겨레, 김재섭 기자, 2010-06-10 오후 10:13:43)
방통위, 경찰에도 이용 허용
프라이버시 침해 격론 일듯

 
정부가 위치정보 기반 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위치정보 이용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 모두의 휴대전화 위치가 고스란히 추적될 수 있는데다 특히 긴급구조 목적의 휴대전화 위치 활용 권한이 경찰에게도 허용돼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0일 ‘세계 최고의 위치정보 이용 환경 조성’ 목표에 따라 모든 휴대전화에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한 위치확인 기능 탑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상진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브리핑을 통해 “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인만큼, 지피에스 기능이 켜진 상태로 휴대전화가 출고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휴대전화에 지피에스 기능이 켜진 상태로 탑재되면, 해당 휴대전화 사용자의 위치가 반경 10m 오차 범위까지 확인된다. 방통위는 또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경찰에게도 긴급구조 목적의 휴대전화 위치정보 이용을 허용하고, 건물 비상구 유도등에 무선랜(와이파이) 전파발신장치를 달아 휴대전화 화면에서 비상구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통위의 이번 조처는 개인 위치정보 유출 및 오·남용 예방을 막던 안전장치를 대폭 푸는 것이어서 앞으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휴대전화 위치정보는 해당 휴대전화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로 간주된다. 방통위는 지난 2008년 국회에 제출한 ‘정보통신망법’과 ‘위치정보법’ 통합 법률이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논란으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되자 이번에 위치정보법을 개정하는‘변칙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지피에스 기능 의무화는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철회되어야 하고, 경찰이 긴급구조 목적으로 휴대전화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도 조난자 본인과 가족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 과장은 “사후에 법원의 승인을 받게 하고, 인위적 조작이 어려운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하도록 하는 등의 오·남용 예방장치를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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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핸드폰 위치정보 마음대로 본다 (참세상, 윤지연 기자 2010.06.11 12:36)
방통위 위치정보규제 완화, ‘GPS 탑재 의무화 할 것’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기반서비스(LBS) 시장 활성화를 위해 위치정보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어서,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방통위는 지난 10일, ‘LBS 산업육성 및 사회안전망 고도화를 위한 위치정보 이용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내 LBS 시장은 지나친 규제 위주의 법령, 측위 원천기술 부족, 대규보 사업자에 의한 시장지배 지속 등으로 활성화가 지연되고 있다’면서 ‘위치기반서비스가 산업 전후방 효과가 큰 미래 핵심 산업으로 부각됨에 따라 LBS 서비스 고도화를 휴대전화 단말기에 GPS 탑재를 의무화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위치추적은 개인프라이버시 침해 요소가 높아, 지금까지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뿐만아니라 이번 계획은 경찰이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방통위에서는 ‘사회안전망 고도화 차원에서 국민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모든 휴대전화에 GPS 탑재하는 것은 국민들의 인권침해를 낳을 것”이라면서 “경찰의 위치정보 활용 권한역시 오남용의 부작용이 예상돼,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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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위치기반서비스 계획, 사생활 침해논란 (미디어스, 2010년 06월 11일 (금) 13:53:06  도형래 기자)
긴급구조위해 경찰 위치정보 활용 허용…경찰의 남용 우려 커
 
방송통신위원회는 'LBS 산업육성 및 사회안전망 고도화를 위한 위치정보 이용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방통위의 위치기반 서비스(LBS) 계획은 개인의 위치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위치기반서비스는(Local Based Service, LBS)는 위치 정보의 수집 이용 제공과 관련한 모든 유형의 서비스를 지칭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위치기반서비스에 대해 “이동 중에 있는 사용자가 그들의 지리학적 위치 소재나 알려진 존재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기반 서비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방통위는 위치기반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프라이버시 침해 위협이 낮은 사업자에 대하여 허가․신고 의무 및 보호조치 규정을 완화하는 등 법/제도를 개선하며 휴대전화 단말기에 GPS 탑재를 의무화하는 등 위치측정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또 ▲위치측정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T-DMB를 활용한 위치측정 기술 개발 ▲GPS/Wi-Fi 복합측위 칩셋 개발 ▲Wi-Fi, CDMA, T-DMB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 실내외 끊김없는 u-위치서비스 구현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방통위의 계획에는 “사회안전망 고도화 차원에서 국민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프라이버시 침해 위협이 낮은 사업자'에 대해 위치추적의 대상이 된 개인에게 매번 통보해야 하는 의무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위치정보법은 개인위치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경우 매회 개인정보주체에게 제공대상/일시/목적 등을 “즉시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 위치정보법령이 “이용자에게 빈번한 즉시 통보로 서비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고, 사업자에게는 잦은 SMS 발송으로 서비스 비용이 증가한다”며 “즉시통보 예외 조항규정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위치기반서비스가 “올해 모바일 분야 10대 메가 트랜드중 2위(1위는 모바일 금융)로 선정됐다”며 “전세계 LBS 시장은 2012년까지 300% 이상 초고속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방통위는 우리나라 위치기반 산업 육성으로 “긴급구조 기관은 연 3,200여명의 추가 인명구조와 연 152억원의 행정비용 절감을 할 수 있을 것”이며 “2012년까지 위치기반서비스 분야에서 9,360억원의 생산유발과 10,134명의 고용창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의 위치기반서비스 활성화 계획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위치기반서비스를 통해 개인 모바일 단말기의 위치가 노출되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으며 악용될 경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네트워크의 오병일 활동가는 휴대전화 GPS 의무화에 대해 “위치정보 ON/OFF 선택권을 준다고 하지만 디폴트는 ON이 될 것”이라며 “ON/OFF 선택권은 GPS가 포함된 기기에는 당연히 포함돼야 하지만, GPS가 내장되지 않은 기기를 선택할 자유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병일 활동가는 자신의 위치정보가 조회됐을 때, 매회 즉시 통보하는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노동자와 사업주, 자녀와 부모 등의 권력 관계 속에서 위치정보 공개를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며 “매회 통보 규정을 완화하면 언제 자신의 위치정보가 제공되는지 당사자가 전혀 알 수가 없어 감시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병일 활동가는 위치정보이용을 경찰에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현재와 같이 경찰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합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경찰이 위치정보를 남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진보네트워크는 지난 4월 5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경찰의 기지국 수사가 1,257회나 진행되는 동안 수사기관이 이통사로부터 받아간 전화번호나 통신 아이디는 총 1,577만 8,887개”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보네트워크는 “수사기관이 오히려 개인통신정보 오남용과 인권침해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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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기반서비스 활성화에 경찰 왜 끼어드나 (오마이뉴스, 10.06.11 18:59  김시연 (staright))
방통위, 경찰 위치정보 활용-GPS 의무화 논란...시민단체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GPS(위성항법장치)와 증강현실(AR) 기술 등을 활용한 위치기반서비스(LBS)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LBS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오히려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에서 LBS 산업을 육성하고 사회 안전망을 고도화한다며 10일 발표한 '위치정보이용 활성화 계획'이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에 부딪혔다. 이번 방안에 휴대폰 GPS(위성항법장치) 탑재를 의무화하고 경찰에 위치정보 활용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국민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위기 상황에서 피해자가 간편한 방법으로 경찰에게 신고할 수 있도록 긴급 구조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위치정보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휴대폰에 GPS 기능 탑재 의무화를 추진하는 대신,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GPS 온/오프 기능을 넣기로 했다.
 
하지만 진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에선 공권력의 위치 정보 오남용으로 국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방통위는 현재 해당 내용이 담긴 '위치정보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아래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문방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어서, 구체적인 시행령을 마련하는 차원이라고 한발 뺐지만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LBS 산업 육성과 프라이버시 보호는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라며, 위치정보보호법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위치정보보호법은 참여정부 시절 LBS 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만들었지만 프라이버시 보호를 내세워 감시감독 권한만 강화한 강력한 규제법이 됐다"면서 "프라이버시 문제는 통신비밀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법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LBS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면 위치정보보호법 자체가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도 개인정보 무단 수집 행위나 감청 행위 등 프라이버시 침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위치정보보호법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위원은 "LBS는 진입이 쉬운 부가서비스 영역이어서 여러 업체들이 경쟁하며 서비스 품질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면서 "소방방재청이나 경찰 위치정보 활용 문제 역시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다룰 문제임에도 상대적으로 고치기 쉬운 위치정보보호법으로 치고 들어오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경찰은 범죄 수사에 위치 정보 활용이 필요하다며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한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4월 28일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안이 1년여를 끈 끝에 정부안 등과 병합 심사돼 문방위를 통과하긴 했지만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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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3 19:16 2010/06/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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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쳐야 한다, 목숨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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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모임인 '민중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보니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로 시작하는 <지리산>을 소개하는 이가 있더군요. 물론 이 노래도 잘 알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이 곡의 작곡자인 박종화씨가 쓴 다른 곡인 '바쳐야 한다'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지금은 내일까지 성적처리 마감이라 못다한 채점을 하고 있는데, 잘 집중이 안되길래 무슨 딴짓으로 기분전환을 할까 하다가 인터넷 서핑은 집에 있는 노트북의 성능이 좋지 않은 관계로 참기로 하고 대신 이렇게 '바쳐야 한다'에 대한 소개글을 올립니다. 이 노래는 이광웅 샘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니 시에 대한 소개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 자신이 노래를 먼저 알게 되었으니 그쪽으로 분류해야 하겠지요.

 

근데 박종화의 '바쳐야 한다'라는 노래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이광웅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아, 이건 제 티스토리블로그에서 담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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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시기에 어떤 시대였는지를 한겨레의 김의겸 기자는 오송회 사건의 예를 들어 얘기합니다.
단지 물가가 안정되었다, 올림픽을 유치했다 등의 이유만으로 전두환 시대가 미화될 수 없음을 보여주지요.
나중에 사람들은 이명박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이미 평가를 나름대로 하고 있지만, 평가받을 인간들은 이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김의겸 기자의 글을 보면서 이전에 써두었던 '바쳐야 한다, 목숨을 걸고'란 글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오송회 사건이 무죄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렇군' 하면서 그냥 넘어갔었습니다. 그런데 김선주 칼럼을 보면서 제가 썼던 글이 생각났고,
자작나무님이 네이버블로그에 있던 제 글을 퍼가면서 다시 읽어보고 이를 옮겨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바쳐야 한다'의 1절 노래가사마저 다 잊어버린 듯 싶습니다. 갈수록 민중가요로부터 멀어지는 건 아닌지...

  
[편집국에서] 오송회 교사를 ‘고발’한 제자들 (한겨레, 김의겸 정치부문 정치팀장, 2008-11-30 오후 07:39:49)
 
[여적]이한주 판사의 사죄 (경향, 김택근 논설위원, 2008년 11월 26일 18:09:59)
 
오송회 사건이 재심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26년 만이다. 그런데 무죄보다 더 뜻있는 일이 법정에서 벌어졌다. 재판부가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진심으로 반성했던 것이다. “그동안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 고통을 주고,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데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죄드립니다.” 재판장인 이한주 광주고법 부장판사의 판결문은 반듯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떠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에 충실하겠습니다. 앞으로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습니다.” 이 판사는 또 이렇게 약속했다. “법대(法臺) 위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소신으로 판사직에 임하겠습니다.” 공판이 끝난 후 피고인과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법정의 경위들이 이를 제지하려 하자 이 판사는 “말리지 말라”고 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그러나 판결로는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사연, 핏빛 절규가 있다. 이는 판사가 대신 말해야 한다. 이 판사가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었기에 비로소 ‘죄없는 피고인들’은 세상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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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칼럼] 목숨을 걸고 … (한겨레, 김선주 언론인, 2008-11-26 오후 07:28:24)
 
진짜 교사가 되려 했던 이광웅 시인은 지난 25일 전두환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이었던 ‘오송회’ 연루자 9명 전원에게 26년 만에 무죄가 선고된 자리에 없었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갔다가 풀려나 다시 복직했으나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되고 힘든 세월을 보냈던 이광웅 시인이 암으로 세상을 뜬 것은 15년 전이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억울한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그는 맑디맑은 심성의 좋은 시를 남겼다.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한주)는 이날 이례적으로 26년간 어려운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 법원의 이름으로 사과를 했다. ‘검찰의 조서 등은 고문·협박·회유에 의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히고, 경찰에서 전기통닭구이 등의 고문이 행해진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피고인들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적이 없고, 법원에 가면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여러분이 느꼈을 좌절감과 사법부에 대한 원망,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고통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미술교사였던 부인 김문자씨 역시 해직과 복직을 겪으며 신산한 세월을 살아왔다. 법정에서 판사가 원고 없이 억울한 누명을 썼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말을 들으며 한 편의 좋은 시를 읽는 것 같은 감격을 맛보았다고 한다.
 
빨갱이의 자식, 간첩의 가족이라는 누명 아래 자녀를 기르고 밥벌이를 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동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이광웅 시인은 주모자로 몰려서 관련자 가족들의 원망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 시인 부부는 항상 마음에 짐을 진 것 같은 세월을 살았다. 자신의 억울함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동료들과 그 가족들을 걱정하며 이중의 고통을 겪었던 이광웅 시인도 저세상에서 이제야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엔 진짜가 되기 위해, 진짜를 말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커다란 빚을 졌다. 그 값진 노력 덕에 우리는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기도 했고 도덕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그런 노력의 성과를 무로 돌리려는 움직임에 직면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할 역사특강을 위해 꾸려진 강사진의 면면과 이들의 평소 발언을 종합해 보면 이들이 역사를 진짜로 가르치리라 보기 어렵다.
 
가짜를 진짜라고 우긴다고 해서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가르치려면 진짜를 가르쳐야 한다. 26년 만에 ‘오송회’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것처럼, 가짜를 주입해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는 법이니까

 

  
목숨을 걸고
                        이 광 웅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박종화님의 노래에 대해서는 애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래를 노래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노래에 담긴 함의를 생각하면서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약간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불리워질 수 있다고 보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된 데에는 박종화님의 노래 가운데 꽤 있는 시를 바탕으로 한 곡들이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런 노래 가운데 <바쳐야 한다>가 있습니다.  
이 노래를 접하게 된 것도 거의 15년이 다 되어가네요.
 
술을 마실 때 권주가 비슷하게 이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내용의 과도함에 약간 생경해하면서도 "그래.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최선을 다하여, 목숨을 걸고..."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지요. 물론 지금은 "제대로 하지 못하려면 아예 하지 마", 이런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하고 있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사실 목숨을 걸고 할 것이 있다는 것일 뿐, 뭘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사고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이 글을 써놓은 것은 시일이 좀 되었는데, 아무래도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지껏 올리지는 못했거든요. 여전히 박종화님에 대한 생각도 정리되어 있지 않구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목숨을 걸고 뭘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아직까지 목숨을 바쳐 뭘 하겠다라고 하는 건 치기라고 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노래가 박종화님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광웅 시인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이광웅님은 오송회 사건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그를 비롯한 군산제일고에서 재직하던 교사들이 자생적 간첩으로 몰려 파면과 구속을 당하게 된 사건입니다. 국어교사로 재직 하던 그는 월북 시인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 따위를 읽었다는 죄목으로 이에 연루되었고, 이로 인해 갖은 고문을 당하였고, 5년동안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오송회 사건은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무수히 존재했던 간첩단 사건 중의 하나였고, 나중에 잘못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광웅님은 1987년 군산 서흥중에 복직되었으나 1989년 전교조가 결성되자 당연히 이에 가입하였고, 이런 이유로 다시 해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1992년 12월 운명하였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습니다. "그의 잘못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교단에 섰다는 것뿐. 그는 진정한 진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시집으로 『대밭』(1985), 『목숨을 걸고』(1989), 『수선화』(1992)를 남겼는데, <목숨을 걸고>는 그가 해직 중에 발표했던 시입니다. 군산과 장항을 잇는 금강하구둑 입구에 그를 추모하는 제자들과 민족문학작가협의회(지금의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입니다)와 전교조 등이 성금을 모아 만든 시비가 있다고 합니다. 언제 그곳에 가게 되면 이 시비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가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광웅 시인의 시를 애송하는 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대부분 창작과 비평사에서 2002년 나온 것으로 되어 있는 『목숨을 걸고』라는 시집을 인용하지요. 하지만 15년도 넘는 이 시가 사랑받는 걸 보면 시인은 가도 시는 남는 듯 합니다.
 
이 시를 빌어 만든 노래가 <바쳐야 한다>입니다. 아래 박종화님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박종화님이 가사를 외워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자신의 노래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곡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노래단의 1992년 테입 '민중연대 전선으로'에 실려 있는 곡으로 기억하는데, 이는 박종화 창작 2집에 맨처음 실린 것과 같습니다. 같은 곡이 박종화창작골든베스트 앨범 I 격정 속으로(II는 생활 속으로입니다)에 <파랑새>에 이어 두번째로 실려 있습니다.
 

 

노동자노래단 - 바쳐야 한다 
 
하지만 이 버전보다 제가 더 좋아하는 버전은 전대협노래단의 것입니다. <전대협, 우리의 자랑이여>라는 테입에 실려 있는 것인데, 아마 제가 이 버전으로 이 노래를 처음 접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 노래를 자주 부르던 당시에는 비록 넉넉한 술값은 없었지만, 함께 부를 기회도 많았고, 그런 자리도 많았기에 노래 부를 맛이 좋았던 듯 합니다. 술맛도 좋았구요.
 
저도 가사는 2절이 더 와닿습니다. 아무래도 이광웅님의 시가 생각나서일 테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1절밖에 외우지 못했는데, 이 시점에 2절까지 외우려고 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요. <목숨을 걸고>라는 시도 좋은데, 이는 당연히 암송이 안됩니다.
 
박종화님의 누리집 노래창고에 <바쳐야 한다>에 관한 해설이 있는데, 상당히 길긴 하지만 이 또한 읽어볼 만합니다.
 

 

전대협노래단 - 바쳐야 한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 보거라
전선에서 맺어진 동지가 있다면
바쳐야 한다 죽는 날까지 아낌없이 바쳐라
번쩍이는 칼창 움켜쥐고 나서라 전사여
그날을 위해
이 한 목숨 걸고 나서라
 
구차한 목숨으로 사랑을 못해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
두려움에 떨면은 술도 못마셔
그렇게 마신 술에 내가 죽는다
붉은 맹세 붉은 피로 맺어진 동지여
죽어도 온다 그날은 온다 민족의 해방이여
번쩍이는 칼창 움켜쥐고 지켜라 전사여
우리의 깃발
이 한 목숨 걸고 나서라
 

* * * *
 
열정 하나로 느즈막에 들어 선 노래창작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할 때쯤 해서 '바쳐야 한다'는 만들어졌다. 내게 있어서 창작의 시작은 깊은 고민을 던져주지 못했다. 만들어서 실패하더라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 그 뿐이고 좋은 노래가 만들어지면 더없이 좋겠다라는 정도로 출발하였다. 누구 눈치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작곡가가 되어보고 싶어서는 더 더욱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든 노래에 대한 생각도 내가 만들어 내가 부르고, 옆에 있는 한 동지만이라도 불러주면 그 뿐이라는게 전부였다. 물론 창작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자신감과 반드시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런 확신의 이유가 뭐였냐고 물으면 나도 모른다.문예의 길에서 오랜동안 머물렀던 지나온 날이 그런 확신을 갖게 했나보다.
 
애써 의미를 축소하던 뜻과는 달리 첫 작품을 내 놓고 엄청난 홍역을 치뤄야만 했다. 복에 겨운 홍역이었다. 노래는 나의 상상을 초월한 대중의 격려와 사랑을 받게 되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동지들이 시골가서 소 팔아 오고, 납부금을 대신 갖다주고, 월급받아 건네주고 무작정 교정에 나가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닥치는데로 만원씩 강도질(?)해 만든 테이프가, 그 따뜻한 동지들의 무한한 사랑에 다행스럽게도 보답을 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테이프 하나 만드는데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사람과 기술 그리고 돈이 들어 간다는 것도 제작을 해 가면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 제작과정은 한 마디로 배우러 다니는 정도 였으니 제작 순간순간이 위태로웠다. 하나를 채우면 하나가 모자라고, 또 하나를 채우면 모자란 다른 하나를 채우러 뛰어다니고 말이다. 멋모르고 진행하다보니 비용도 일반값에 비해 거의 두배 이상을 들어야 하는 비싼 댓가를 지불했다. 그렇다고 내게 조언을 해 준사람은 없었다. 유일하게 스튜디오 사용을 조건없이 싼 가격으로 사용하게 한 '소리모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형님들만 생각난다.잘 만들어 보라는 말은 많아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었다면 소값하며, 등록금 하며, 강도질 하며 닥치는대로 가져다 쓴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겠는가! 생각을 하면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노래는 퍼지고 창작집은 남다른 사랑을 받게 되었다. 능력있는 작곡가여서도 아니고 경륜있는 활동가여서도 아닌 그런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사람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유별나게 사랑을 해 주었던 것은 실천하는 오늘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대중의 허전한 가슴을 깊게 파고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다.
   
동지들의 사랑이 깊어갈 때 나는 반대로 고민으로 빠져 들었다. 자신의 진로와 책임있는 노래 작업의 뒷처리와 대중들에게 끼친 영향의 재고 등등이 머리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깊은 사색과 연구로 이론울 정립해야 했고, 다음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작품을 내 와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되었다. 그야말로 앞으로의 진로와 직결되는 지점이었다. 계속해서 별다른 능력없는 상태로 노래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전에 결심을 굳힌대로 지금과 상관없이 나갈 것인가! 판단의 갈팡질팡은 생각과는 달리 쉽게 끝나고 말았다.
   
90년 오월은 광주항쟁 10주년이 되었던 해다. 오월제가 예년에 비해 다양하게 치루어졌다. 나도 참가하여 오월 노래발표를 결행했다. 그것이 나로서는 동지들과 함께 해보는 첫 노래공연이었다. 이제 더 이상 고민해야 할 여지가 없었다. 많은 노력을 해 가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공연을 치루어 내고 말았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문예의 길을 책임성 있게 내 와야 했다. 공연내용은 시와 노래가 어울어지는 오월 형상화였다. 사회에 나와서 해 보는 노래공연이 처음인지라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엉성했던 것 같다.
 
어쨓든 공연에 필요한 20곡 정도를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야 했다. 정신없이 날밤을 새고 정해진 시간에 임무를 완수했다. 동지들과 작품평가를 하면서 뺄것은 빼고,고칠 것은 고쳐가며 연습으로 치달렸다. 이 때는 이미 '바쳐야 한다'가 완성된 후였다. 그렇지만 평가하는 곳에 내놓지 않았다. '바쳐야 한다`는 덮여진 오선지 위에 조용히 잠들고 있었다.
   
수 십곡을 만들어 놓고도 한 두곡 정도 밖에 발표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 창작실력의 전부였던 바에 남들은 그것을 미련한 방법이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사실 두루두루 실력을 겸비하지 못한 괴팍하면서도 미련스런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노래를 만든다. 미련한 방법인지는 몰라도 제한없이 생활을 일기 쓰듯이 자유롭게 그릴 수 있어서 좋다.
 
관념적 창작 뭉치에 시도 때도 없이 매달려 스스로를 인내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보다는 서스름 없는 생활 감정을 마음껏 찾아 나서는 것이 즐겁고 좋다. 어떤 주제를 의식적으로 정해 놓고 의무적으로 매달리는 창작은 만들어진 틀에 자신을 짜 맞추는 것과 흡사하다.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깊이있게 다가온 소재거리나 종자로부터 출발하고 그럴 때만이 작가의 진실한 창작열정은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알아주지도 않고 어떤 방법으로든 보상 받는 일이 없어도 미련스런 방법은 많은 작품을 쓰게 했고,덩달아 쌓여 갔지만 대개는 볼품 없는 감자에 불과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내 노래다고 하는 애착이 없는 바에야 볼품없는 감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관심도가 깊은 사람들이 묻는 자신이 자신있게 내놓을만한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더욱 그랬다. 창작방법이나 동기 그리고 애착을 갖는 노래등에 관해 물었을 때마다 느끼곤 했던 것은 절제된 정서로 내 자신을 간결하게 표현해 낸 노래가 없다는 것이다. 노래를 만든 이후 고작 몇곡 정도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고민이 '바쳐야 한다'의 출발점이요 준비운동이었다.
수영을 하러 물에 들어 갈 때 운동을 하지 않고 뛰어든다고 해서 쉽게 죽진 않는다. 하지만 준비운동을 하고 들어간 사람보다 심장마비의 확률은 크다. 창작의 심장마비를 피하기 위한 준비운동은 자신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면서도 이 시대 청년의 애국적 정서의 모범이기를 끝없이 갈구했다.
 
어느 이름없는 축하모임에서다.
한 친구가 축시를 멋들어지게 즉흥시로 대신 했었다. 애석히도 고인이 되신 이광웅 선생님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를 빌어 낭송을 했었는데 야릇하게 나를 사로잡았다.일상 때 같았으면 그저 그러려니하고 지나쳐 버리고 말았겠지만 나를 표현하고 나를 말할 수 있는 노래에 집착을 하고 있었던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가 낭송되는 중에 내가 써 내려가고 있었던 글(지금의 바쳐야 한다의 2절)과 비교하면서 음미를 해 보았다. 짧은 순간이었다.
   
보편적으로 작품을 쓸 때는 가사가 먼저 나오고 먼저 쓴 가사는 당연히 일절이 되는 것이 상례다. 거기다 덧붙이면 이절이 된다. 그렇듯 나도 일절을 먼저 써서 선율을 붙여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때에 한 모임장에서 시낭송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창작의 길목에서 허우적거리고 2절과 끙끙거리던 때를 뒤엎어 버리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싯점이었다.
 
술과 사랑 동지는 삶과 투쟁 삶의 삼위 일체를 표현해 내는 일상의 소잿거리다. 그것을 다 가사안에 집어 넣고 나니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다. 특색있는 소재나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일절의 내용을 이절에서 반복한다는 것은 큰 고역이었다.
 
고역을 뚫고 시 하나가 다가온다. 비록 내가 쓴 노랫말과 낭송된 그 시가 약간 다른 각도지만 술과 사랑이 있다는데 아주 흡족한 것이었다. 그것이 생활적인 소재라는 생각에서였다. 내 노래에 목숨이나 피같은 단어가 두서없이 많다는 사람들의 지적에 가급적 충실하려 했던 당시의 노력들이 일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시 낭송이 가져다 준 특유의 감동은 일이절의 가사반복으로 인한 실패도 감내하겠다는 결의까지 던져 주었던 것이다. 오랜 준비 운동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다.
 
지금도 이 노래의 구체성은 이절에 있다고 생각한다. 역동적이며 생동감이 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절과 이절의 배치를 거꾸로 하고 만 것은 숨기려 하는 관성 탓이 크다. 별로 좋지 않는 창작 태도이다.
 
술과 사랑을 말하면서 확실하고 분명한 제 목소리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나약함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내 목소리는 이절에 감추고 다른 사람의 시를 통한 발설로 앞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작품에 대한 부담을 덜어보고자 하는 간교함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론 생활습성에서 몸에 배긴 나의 관성 탓이다. 웬지 숨기고 픈 그런 관성이다. 어디를 가서라도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넓은 곳보다는 좁은 곳을 찾는 희안한 습성이다. 생활습관이나 사회에 적응하는 방식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나 이렇듯 작품에까지도 깊이있게 관여한다. 사업 작풍에도 스믈스믈 기어든다 조심해야겠다.
 
오월제 공연에서 발표하지 않은 채 덮여진 오선지에 잠을 자고 있어야 할 '바쳐야 한다'는 무슨 이유를 가지고 있었을까 살펴 보기로 하자.
   
어떤 노래이든지 처음부터 완벽한 곡으로 출현하진 않는다. 작가의 오랜 손질을 거치면서 나오게 된다. 듣는 사람들도 처음 들었을 때 한 번으로 좋은 노래를 분간하기란 어려운 문제다. 그 시대가 던져주는 정서도 고려되어야 하고 흐름에 맞는 선율도 고려되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쉽게 판단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처음 들어서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 노래들도 있다. 반면에 자꾸 불러봐야 제 맛이 나는 노래도 있다. 자꾸 가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하는 부류의 노래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좋게 들렸다가 몇 번 더 들으면 금새 식상해지고 마는 노래도 있다.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내려앉는 노래들 중에서 대부분은 그저 노래가 좋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가슴에 젖어들면서 좋은 노래의 대열로 뛰어든다. 때문에 처음 듣는 순간에 일시적으로 부담스럽다고 해서 노래를 뜯어 고친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작품의 손질은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것과 흡사한 보이지 않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수술이 잘되면 건강 하겠지만 잘못되면 죽듯이 두려움은 노래손질에도 있기 마련이다.그래서 주저하기 일쑤지만 동지들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버티는 그런 생각이 기우에 지나지 않게 된다. 노래를 만들어 동지들 앞에 내 놓게 되면 칼질은 바로 시작된다.어쩔 땐 고치기위해 노래 감상을 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고민없이 즉흥적으로 느끼는대로 노래를 고치려 들기도 한다. 조금만 부담스러워도 듬성듬성 가위질 하기를 요청한다. 수술은 듬성듬성 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고치는 것도 다를 바가 없다. 한 곳을 고치려면 그와 연결된 모든 고리 즉 선율에 부담을 주지않게 고쳐 주어야 한다. 선율에도 그 만의 구조와 질서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노래 수정작업을 동지들과 함께하는 것에 적극적인 편이었다. 서스름없이 고치는 편이 많다. 이해 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고치자고 해도 대다수의 의견이라면 주저없이 고쳐간다. 노래의 전체구성이 달라져도 상관없다. 그렇게 해서 노래가 더 좋아지든 나빠지든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함께하는 것에 기쁨을 두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가끔씩 창작에 관한 개성의 차이로 부딛힌 것 같은데 결단코 내가 만들었다는 개인주의적 집착을 손에 쥐고 부딛힌 적은 없다.
    
오월제에 나서는 날에 노래는 동지들 앞에 얼굴을 내 밀고 형편없는 생채기를 들어 내 놓은곳이 다듬질 되어 갔다. 계속 다른 일만 하다가 노래가 쓰여질 목적과 위상이 정해지면 빠르고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많은 노래를 내 놓는 습성때문에, 이것저것 돌볼 겨를도 없이 내놓았고 뒷처리는 동지들이 고생으로 마감이 되었다. 이런과정이 진행되고 있을 때 '바쳐야 한다'는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내놓으면 고쳐 버릴 것만 같은 조바심이 노래를 내놓지 못하게 했다. 일정정도 노래에 대한 사상의지적 신념이 있었던 탓에 고치기를 반대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노래 전개의 어색함을 스스로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바쳐야 한다'는 애초 만들어진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대중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오월제 공연에도 오르지 않았으니 품평의 대상에도 끼어들지 않았고 별 탈없이 오월 고개를 넘는다 공연장에도 신곡으로 내놓지 못할만큼 마음속엔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해 있었다. 노래를 늦게서야 내놓고 말하지 못한 그 때의 오월고개가 나만의 고충이었음을 함께했던 동지들에게 고백한다. 
  
설사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애국적 전형을 찾는 노래가 못되었다 할지라도 '바쳐야 한다'는 나 혼자만일지언정 전형으로 삼는다. 어딜가나 누가 노래를 시키면 이 노래를 부른다. 내가 만든 노래중에서 그나마 가사를 외워서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몇 곡 안되는 노래중의 으뜸이다.
 
출처 : 박종화 누리집 www.jonghw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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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2 02:29 2010/06/22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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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6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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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죽음을 기억하자라는 글은 정말 쓰기 싫은데, 어찌 하다 보니 그런 글들이 많다. 오늘은 김선일씨의 6주기이다. 김선일씨를 사람들이 기억할까. 2004년에만 해도 블로그에 그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글을 올렸는데, 몇년이 지나니 그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김선일,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아부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슬라보예 지젝·도정일 외, 2004)를 소개한 김석 기자의 글을 보지 않았다면 나조차도 며칠 지나고서야 알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치열했을지라도 얼마가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우리의 무관심과 망각은 "문제의 본질을 성찰하는 한 차원 높은 논의를 생산해내지 못"하도록 했고, 그럼으로써 그 수많은 죽음은 그들만의 비극으로 그치고 말았다. 김선일만이 아니라 용산참사가 그랬고, 수많은 노동열사들이 그랬다.  

 

그런데 얼마 전 있었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선이 효순이의 8주기는 그들의 참혹한 죽음를 기리는 많은 글들에 의해 재조명되었다. 아마 그들의 죽음은 미국과 연계가 되어 있었기에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는지 모른다. 누구에 의해 죽었는가, 그 죽음에 누가 책임이 있는가가 죽음의 가치를 좌우하는 걸까.

 

나는 가끔씩 김선일씨나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이들의 영상이 떠오를 때면 온몸에 치가 떨린다. 그 공포, 전율...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죽음, 테러, 전쟁.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테러는 계속되고 있고, 수많은 김선일이 발생하고 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는 이들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들이 이전의 언행에 대해 스스로 반성한다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런 자성도, 변화의 움직임도 없이, '다시 노무현'을 외치는 저들을 간과하면서 그냥 함께하자는 게 말이 될까. 결국은 또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구나.

 

2004년 6월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옮겨오면서 김선일씨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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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즉각 철군하고, 추가파병을 철회하라!  2004/06/21 07:47 
 
연합뉴스 기사이다. 방금 전 MBC에서 소식을 듣고 연합뉴스를 검색하여 찾은 것이다. 알-자르카위 소속 그룹으로 알려진 납치범들은 가나무역의 김선일 씨를 납치하였으며, 24시간 이내에 한국군이 철군할 것과 더 이상 군대를 보내지 말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수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김선일씨는 테입에서 영어로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해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난 살고 싶을 뿐이다. 당신들의 목숨도 소중하지만 내 목숨도 소중하다"고 말하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진상을 신속히 파악하고, 김씨를 구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하면서, 파병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하여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외교부와 국방부의 태도는 "인질구출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지만, 저항세력이 인질석방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한국군의 철군 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희.제마부대는 지난해 4월부터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과 사회기반시설  복구와 의료지원 임무를 수행해 현지인들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고 자이툰부대도 전투가 아니라 평화재건 목적으로 파병되는 만큼 철군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 결의안에 따라 파병하기 때문에 파병안을 철회한다면 결국 테러세력에 굴복하는 꼴이 된다고 보고 있다.
 
지난번 일본인들이 이라크에서 납치되면서 납치범들이 일본 자위대의 철수를 요구했을 때, 일본은 납치된 사람들이 이라크를 위해 활동하는 자원봉사자임을 밝히면서 현지 여론에 호소하여 자위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납치된 사람들을 구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선일 씨는 미군군납업체의 직원이라 입장이 다르며, 한국은 추가파병을 결정한 상황이다. 따라서 협상에 의해 김선일씨를 구출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며, 인질범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테러단체는 이라크 국민이 아닌가? 한국군 추가파병을 반대하는 이라크 현지인들의 여론은 무시되는 건가? 테러범과의 타협없다고 하면서 자국민의 목숨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타당한가? 누구를 위한 파병인지, 무엇을 위한 파병인지 다시한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 1명 이라크서 피랍..한국군 철군 요구(종합)-1 (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2004/06/21 07:13)
= 가나무역 김선일씨로 확인
="24시간 이내 철군안하면 살해"
=자르카위 지휘 조직 추정 "군대 보내지 마라"
 
<軍, `한국인 인질' 충격속 구출방안 모색> (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2004/06/21 06:57)
철군.파병철회 요구는 수용 불가 입장
 
이라크 피랍 한국인은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3보) (2004/06/21 06:36, 바그다드=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한국인 피랍> 알-자지라 TV에 등장한 인질 모습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2004/06/2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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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신이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는 이미 늦다  2004/06/21 11:34
 
"Please get out of here, here, here. I do not want to die; I do not want to die. I want to live. My life is important," he shouts. (aljazeera.net)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방부 등은 김선일 씨에 대한 참수위협에도 불구하고 테러에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국가안정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라크 파병방침을 재확인했다. 자국민이 참수당해도 파병을 강행하겠다는 정부, 제 정신인가?
 
방금 전 인터넷에 올라온 2004년 5월 12일의 미국인 참수 동영상(http://www.nadrk.org/plus/./board/table/pds/upload/ogrish-dot-com-american-nic-berg-beheaded-in-iraq.wmv)을 다시 보았다. 눈을 뜨고는 다시는 보지 못할 장면이다.
 
아마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미국인처럼 목이 베어져서 죽어갈 것이다. 김선일 씨가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을까 궁금하다.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달라고 대통령을 만들어놓았건만, 그 대통령은 미제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지는 몰라도, 자신을 뽑아준 민중의 목숨은 안중에 없다.
 
오늘 6월 21일 광화문에서 한국인 피납자 참수반대와 무사귀환, 그리고 이라크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긴급 촛불집회를 제안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이를 수용하여 약간 늦긴 했지만, 오후 7시 "김선일 씨 무사귀환, 파병철회를 위한 범국민 촛불행사"를 광화문 촛불시위 장소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수도권 당원들은 총집중이다.
 
24시간의 말미를 주었고, 이제 시간은 15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파병은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그게 국익인가? 무엇을 위한 국익인가? 참수당해 시체가 되어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국민적인 분노를 전쟁공범이 되기를 강요한 미국에게 돌리지 않고 '이라크 테러범'에게 돌리려고 하는가? 제2의 베트남전으로 가려고 하는가?
 
이성을 회복하고, 국익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 이것은 노무현 정권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 그 어떤 것보다 김선일 씨의 목숨이 더 귀중하고, 그것이 바로 국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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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2004/06/23 02:23
 
방금 잠에 들려고 하다가 김선일 씨가 처형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잠이 달아났다.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그가 무슨 죄가 있는가? 
 
서울시간 22시 20분경에 그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나는 12시경에 그가 석방될 가능성이 있이고 협상도 희망적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알 자지라(http://english.aljazeera.net/HomePage)에 사망소식이 Breaking News로 S Korean military supplies firm employee taken captive in Iraq has been killed.라는 자막이 뜬다. BBC(http://news.bbc.co.uk/2/hi/middle_east/3830843.stm)에 속보로 김선일씨가 참수되었다는 기사가 뜬다.
 
알 자지라 텔레비젼 기사에 따르면, 이라크의 이슬람 무장단체가 자신들이 인질로 잡고 있던 한국인을 참수했다는 것이다. 아랍위성채널은 김선일씨가 처형되었음을 보여주는 비디오 테입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Breaking news graphicSouth Korean hostage 'beheaded'
Islamic militants in Iraq have beheaded a South Korean man they were holding hostage, al-Jazeera television reports. 
 
The Arabic satellite channel said it had received a video tape saying Kim Sun-il, 33, had been executed.
Kidnappers earlier demanded that South Korea end its military role in Iraq or else they would kill the translator.
Earlier there had been signs of hope after mediators said a deadline for the execution had been extended following talks with the militants. 
 
씨발...
살인자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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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말해야 하지?  2004/06/23 03:05
 
지금 티비에서는 김선일 씨가 참수되기 전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화면이 나오고 있다. 복면을 한 무장세력 5명이 뒤에 서있고, 그 중 한명이 성명서를 읽고 있으며, 오렌지색 옷을 입은채 입을 벌리고 있으면서 눈이 가려져 있는 김선일씨는 그 앞에서 아마 무릎을 꿇고 이를 듣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는 자신을 곧 참수하겠다는 말을 다 알아들었을 것이 아닌가? 살고 싶다던, 나의 목숨도 소중하다던 그의 절규가 귀에 아른거린다.
 
알자지라는 복면을 한 남자가 한국인에게 보내는 성명을 통해 "이것은 당신들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라면서 "당신들의 군대는 이라크인들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위해 왔다"고 주장하는 장면도 보도했다고 한다.
 
한국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을 내걸었다고? 파병을 철회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한 사람의 목숨을 앞에 놓고도 파병원칙을 재천명하는 정부가 과연 제 정신인 정부인가?
김씨를 구출하는데 별 역할을 못했던 촛불을 다시 들기 싫다. 이런 무기력은 어떻게 극복할까?
 
분노의 화살은 이라크 무장단체가 아니라 푸들 노릇을 강요한 미국과 충직한 노무현 정권에 돌려져야 한다. 개 새 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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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2004/06/23 05:27
 
노무현, 당신도 지금 티비를 보고 있습니까? 김선일 씨의 마지막 모습이 보입니까? 티비에서는 김선일 씨가 참수되기 전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화면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새벽 내내 그럴 것 같습니다.
 
복면을 한 무장세력 5명이 뒤에 서있고, 그 중 한명이 성명서를 읽고 있으며, 오렌지색 옷을 입은채 눈이 가려져 있는 김선일씨는 그 앞에서 아마 무릎을 꿇고 이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뒤에 3명의 복면한 사람이 있고, 그 앞에 김선일 씨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먹이는 듯 뭐라 말하고 있습니다.
 
김선일 씨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는 자신을 곧 참수하겠다는 말을 다 알아들었을 텐데요. 제발 한국군을 철수시키라던, 죽고 싶지 않다던, 그의 절규가 귀에 아른거립니다. 
 
노무현, 당신은 김선일 씨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 무장단체는 과연 한국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을 내걸었나요? 파병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 무장단체가 제시한 협상시한 동안만이라도 파병을 재검토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나요?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도 1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추가파병을 재천명하면서 미국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았습니까?  평소에는 감성정치를 한다고 쇼를 했으면서 이럴 때에만 그 지랄같은 원칙입니까?
 
협상단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상대방이 파병을 철회하라는 요구조건만을 내걸었을 뿐인데, 계속 돈을 가지고 해결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작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는 완전히 귀를 막은 채 말이죠.
 
파병이 이라크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요? 보도에 따르면 복면을 한 남자는 한국인에게 보내는 성명을 통해 "이것은 당신들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라면서 "당신들의 군대는 이라크인들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위해 왔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선의라도 상대방이 그렇게 여기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국익입니까? 자국민의 목숨과 안전보다 더 큰 국익이 있나요? 당신은 얼마나 많은,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파병에 반대하는 대다수 민중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겁니까? 
 
저는 노무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촛불을 들면, 정성을 담아 간절히 호소하면 말이 통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촛불을 다시 들기 싫습니다. 이라크 무장단체에도, 노무현 정부에도, 미국의 부시에도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촛불을 들 수 없을 듯 합니다. 대신 파병이 철회될 때까지 끈질기게 싸워나갈 겁니다.
 
저는 촛불로, 눈물로, 메일로 호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철회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을 살해한 이라크 무장단체의 야만적인 방식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라크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테러집단으로 몰면서 당신의 입장을 정당화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민중들의 분노는 이라크 무장단체가 아니라 석유를 위해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과 그의 충직한 푸들 노릇을 자처한 노무현 당신에게 돌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권력 유지를 위해 그 똘만이 역할을 자처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주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살고 싶다. 내 목숨은 소중하다"고 절규하던 김선일 씨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냥 눈물이 나옵니다. 그리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광고에도 나왔던 '노무현의 눈물'과 함께, 외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다가 지쳐 실신한 노부모의 모습이 겹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한 노동자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도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당신은 눈물을 흘렸습니까? 당신은 보고를 받고 "알았다"라고만 말했다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하기에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권력자들,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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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조 김선일  2004/06/24 03:46
 
몇 개의 글과 만평....
 
1. 통곡, 김선일 (오마이뉴스, 손석춘, 2004/06/23 오후 12:07)
[손석춘 칼럼] 조지 부시와 노무현의 차이
 
부시에게 이라크는 국익의 문제이다. 아니, 미국 지배세력의 이익이 또렷하게 걸려 있다. 석유통제가 그것이다. 그래서다. 부시가 이라크를 제멋대로 '야만'이라 불러도, 수많은 미국인이 숨져가도, 미국에서 여론조작이 일어나는 까닭은.
 
하지만 노무현에게 이라크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에게 대체 이라크는 어떤 나라인가. 왜 우리가 이라크와 싸워야 하는가. 왜 우리 젊은이가 참수 당해야 하는가. 왜 이 땅의 언론은 여론을 조작하는가. 공연히 사태를 호도하지 말기 바란다. 마드리드가 피로 물든 뒤, 총선에서 스페인은 사회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갔다. 곧장 철군했다. 묻고 싶다. 그 뒤 스페인 경제가 무너졌는가. 되레 오늘 이라크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어떤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가. 무엇보다 아직 올 것이 다 오지 않았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분명히 말하자. 조지 부시는 미국의 이익이라도 지킨다. 하지만 노무현은 무엇을 지킬까. 대체 어떤 국익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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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선일씨 어머님, 너무 죄송합니다" (프레시안, 윤정은/평화운동가, 2004-06-23 오후 3:08:44)
<바그다드 현지통신> 한 이라크 어머니의 사죄, 그리고 '팔루자의 어머니들'
 
이제 전쟁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후세들이, 아들 딸들이 전쟁에 나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 하도록 부추기는 그 어떤 말에 대해서 우리는 냉정하게 "그것은 위선이다"라고 말해줘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의 죽음을 저들에게도 돌리자. 저들이 먼저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단호히 말해줘야 합니다. "전쟁을 선동하는 거짓말을 그만 두라"고.
 
슬픔과 분노가 우리를 가득채울 때일수록 우리는 뒤돌아 보고, 주위를 둘러봐야 합니다. 함께 슬퍼하고, 똑같은 아픔에 시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내 슬픔과 분노가 커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볼 겨를이 없어 그들에게 총을 겨눠선 안됩니다. 이것이 9.11 테러 후 미국국민이 취한 태도에서 우리에게 남겼다면 남긴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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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진보누리, 우격다짐, 2004-06-23 12:22:00)
 
상처받은 자한테 복수심만큼 잘 듣는 처방은 없어요, 한 번 해봐. 십오 년 동안의 상실감, 처자식을 잃은 고통, 이런 거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거야. 다시 말해서,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하지만... 복수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잊고 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올드보이> 중 이우진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 아주 잔혹하게......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복수를 맹세한다. “군대를 보내라. 다 쓸어버려라.” 그 격한 감정, 이해 못할 것 없다. 한번 시원하게 지르면 정신건강에도 좋다. 자, 지르자. 됐나? 시원하게 질렀으면 이제 곰곰이 생각을 해보자.
 
살인자를 잡으러 특전사를 보내자. 특공대도 보내고 UDT도 보내자. 그럼 잡을 수 있을까? 복수는 할 수 있을까? 없다. 미국이 12만의 병력과 800억불 이상을 처바르며 죽을 쑤고 있는 전쟁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어마나, 당신들이 그 유명한 무적의 대한민국 군바리? 무서워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와요~”라고 빌기라도 할까? 이미 잃을 게 없는 이들이다. 집도 가족도 모든 안락도 포기한 이들이다. 남은 건 복수심과 악다구 뿐. 걔네들을 상대로 복수를 한다고? 엄한 군인들 개고생 시키지 말자. 낮선 사막에서 밥이나 제때 먹고 다니면 다행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경제도 엉망인데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전쟁질이나 하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닌가? 운 좋게 그 놈들을 잡아 죽였다고 치자. 복수가 끝났으니 쉽게 발 뺄 수 있을까?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대테러전이라는 수렁에 몸을 내던질 필요가 없다. 좋아할 놈은 손 안대고 코 푸는 부시뿐이다.
 
그럼 그 나쁜 놈들을 그냥 놔두란 말인가? 그럴 수 없다. 그 놈들이 저지른 짓은 정말 부시스러운 짓이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잡을까? 파병철회를 조건으로 인도요청을 하면 된다. 그리고 국내법정이든 국제사법재판소든 법정에 세우면 된다. 이라크입장에서는 한국군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것 보다 낫고, 테러리스트들에겐 명분 있는 순교고, 우리에겐 적절한 복수다. 모두에게 깔끔한 마무리다. 적어도 그 놈들을 잡기위해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발상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리고 무고한 김선일씨의 죽음에 흥분하는 양반들...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또 다른 무고한 죽음들... 당신들에겐 아주 하찮은 죽음들이겠지만...
 
당신이 그 날 일을 기억 못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말야... 그냥 잊어버린 거야. 왜, 싱거운가요? 하지만 사실이야, 당신은 ‘그냥’ 잊어버렸어, 왜? 남의 일이니까. 너무 하찮으니까. 미안해한다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 ---<올드보이> 중 이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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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신과 대한민국 & 공포와 연민 (씨네 21, 진중권)
 
당신을 구할 유일한 카드는 파병철회뿐.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카드를 접어놓고 엉뚱한 짓이나 하며 당신을 구하려 애쓰고 있다는 '전방우' 인상이나 연출할 게다. 그 콘티에는 각하께서 친히 상황실에 나와 기웃거리는 감동적 장면도 포함된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파병철회를 안 하고도 당신을 구할 신통술이 있는 양 설레방을 떤다. 그래서 당신은 죽는다. 대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정부는 테러를 비난한다. 부시는 이런 노(盧) 정권에 신뢰를 표명한다. 조중동은 파병원칙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사설을 내보낸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파병철회를 얘기하나, 탄핵 당한 대통령 구할 때만큼의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KBS는 국민의 분노를 테러리스트 쪽으로 일원화하고, 기계적 중립성을 싫어하는 MBC는 파병찬반의 기계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곡예를 시작한다. 노란 인터넷 사이트에는 상심에 빠진 대통령을 걱정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당신이 아무리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당신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게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이고, 이게 당신의 동포 대한국민이다. 엽기는 또 있다. 토끼 몰이를 하듯이 조직적으로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자들이  이제 한 목소리로 당신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 얼마나 황당한가. 얼마나 얄미운가. 하지만 당신에게도 위안은 있다. 당신에게 떨어진 불운이 저들의 머리 위에도 공평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러니 편히 가시라.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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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목숨도 중요하지만, 나의 목숨도 중요하다. 한국군은 여기서 나가라." 그 짧은 영어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너희들은 별 생각 없이 여기에 군대를 보낼지 모르나, 너희들도 내 처지가 되어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인들이 '연민'이라 불렀던 그 강렬한 감정이입을 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입장은 신속하고 단호했다. 우선적으로 안심시켜야 할 대상은 이 일로 자칫 낭패를 볼지도 모를 부시 정권. "추가 파병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그 시간에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의원은 만두 먹기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입장을 물었다. "한 사람 잡혀간다고 파병 철회하는 나라도 있나요?" 이 말을 듣고 나는 감정이입의 능력을 잃어버린 그를 대신하여 머릿속으로 역지사지의 사유실험을 하고 있었다. 저기에 잡혀 있는 저 사내가 유시민 의원이라면, 그는 과연 카메라 앞에서 무슨 말을 할까? 국정을 책임진 집권여당의 정치인답게 당당하게 외칠까? "각하, 한 시민 잡혀간다고 파병 철회하는 나라도 있습니까?"
 
황당한 것은, 납치된 이의 부모조차도 처음에는 이라크 파병에 찬성을 했었다는 사실. 제 자식이 잡혀가자 비로소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뒤늦게 파병반대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어디 이게 그 분들만의 일이겠는가? 아마도 대한민국의 상당수가 자기가 직접 당하기 전까지는 '공포와 연민'의 감정이입을 못 할 게다. 파병으로 인해 초래되리라 예상되는 피해는 우리의 머릿속에는 늘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만 상정된다. 왜 그럴까?

군대를 안 보내면 우리 생명이 위협을 받는가? 군대를 보내서 우리 시민들의 안전이 보장되었는가? 이라크에 한국인 얼마나 된다고, 그 중 벌써 두 명이 살해당하고, 두 차례 납치사건이 벌어지고,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처형까지 있었다. 이렇게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나서서 저지르며, 심지어 그것을 '안보'라 부른다. 완전 변태들이다. '안보'라는 말로써 제 나라 시민의 생명보다 남의 나라 정권의 안위를 의미하는 나라. 이런 나라를 '조국'이라 불러야 하는 우리는 팔자 한번 더러운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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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겨레신문 2004년 6월 24일자 그림판 (장봉군)
 
 
6. 내일신문 2004년 6월 24일자 김경수 화백의 내일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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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그가...  2004/06/24 10:09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네티즌들이 많이 모이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파병 찬성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10만 대군론까지 나타나는 등 광기어린 잘못된 복수심으로 여론의 분위기가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속한 여러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도 파병결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포털에서는 그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글을 씁시다. 그냥 여론이 이렇구나 파악만 하지 말고, 약간이라도 자신의 주장을 알려냅시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는 차분하게 설득하는 글을 올립시다. 좋은 글이 있으면 퍼다나릅시다. 물론 무작정 [펌]이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의견도 함께 덧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민지네의 꿀땅콩님이 쓰신 글을 하나 더 퍼왔습니다. 왜 이라크에 파병을 해서는 안되는지, 왜 분노의 화살을 이라크의 테러리스트에게 보다는 미국과 노무현 정부에 두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가지고 온라인에서 대화합시다. 주위 동료들과, 벗들과 오프라인에서 대화합시다.
 
한국인이 이라크 테러범들에게 참수당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화면 가득이 생명의 소중함을 외치던 그와 참수 직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그의 사진이 떠다닌다. 황망하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지만 정말 김선일씨가 죽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까?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만약, 만약에 그가 가난한 아들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뜨겁고 위험한 이라크에 가야하는 가난한 이가 아니었다면 그는 살 수 있었겠지? 17살의 나이에 30억도 넘는 돈을 상속받을 정도는 아니어도, 7억자리 호화 승용차를 몰고다닐 재력가는 아니어도, 하고싶은 공부를 하려면 사지로 가야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만약에 그가 굳이 사지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에 건강한 일자리가 많았으면 어땠을까? 혹자는 그가 위험수당까지 받아가면서 돈을 많이 벌러 제 발로 사지로 갔으니 하는 수 없다고도 한다. 맞다. 그는 사지로 제 발로 갔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실업자의 인구는 늘어만가고, 신용불량자가 거리를 메우는 나라가 아니라 김선일씨처럼 선량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든 정당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나라라면 어땠을까? 우리의 나라가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나라라면? 왜 우리는 돈을 벌기위해 목숨을 걸어야하는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베트남 참전이 그랬고, 뜨거운 중동의 건설붐이 그랬고, 청계천에서의 지독한 노동이 그랬다. 만약 우리가 좀더 다른 나라를 만들었다면?
 
만약, 만약에 그의 대통령이 처음부터 파병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의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침략의 전쟁에 절대로 우리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보낼 수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대통령을 갖고 있었다면?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던 대선 전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을 갖고 있었다면? 왜 우리는 말을 바꾸는 대통령을 추앙하는 것일까?
 
만약, 만약에 언론이 처음부터 이라크의 위험을 널리 알렸으면 어땠을까? 이미 참전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차갑게 등을 돌린 것이 되는 까닭에 의료봉사를 하든 재건 업무를 보든 아랍 세계와는 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알리는 언론을 갖을 수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 안보를 핑계로 파병을 한다지만 우리와 같은 약소국(?) 중에 이처럼 미국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것을 알려냈다면? 이 전쟁의 추악한 진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학을 떼는 이 전쟁의 부당함을 알렸다면? 그랬어도 우리는 오늘 그의 영정을 붙잡고 울고 있을까?
 
만약 그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게 그리고 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믿는 자들에게 철군을 요청했을 때, 이 정권의 단 한 사람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우리에게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을까? 공약으로 내건 내용도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꾸는 이 정권이 국민에게 말을 바꾸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만큼 차라리 일관되게 말 바꾸기를 했더라면, 우리 국민이 죽게 생겨서 추가 파병은 못하겠다고 털어놨더라면 그가 죽었을까? 그가? 이 정부가 파병을 번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살해 위협이 방송된 후 5시간만에 파병은 절대로 해야한다고 선언하는 대담함을 보이지만 않았더라도 과연 그가 죽었을까? 국민의 목숨값 앞에서도 한 없이 대담해지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었다면 그가 과연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지만 너무나 애통하고 황망한 죽음 앞에서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들, 수 많은 상황들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는 제 발로 이라크에 갔고, 재수가 없어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잡혔으며 그 테러리스트들은 너무나 극악무도한 자들이여서 김선일씨의 절규를 외면했다고 말하기에 우리에게는 기회가 너무나 많았다. 그의 죽음은 분명 단순히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의 잔혹한 살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죽음을 피로 보복하자는 이들에게, 테러에는 응징 뿐이라는 사람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정말 우리가 테러리스트에게 그를 빼앗겼는지, 그를 죽인 것이 단순히 테러리스트들 뿐인지 묻고 싶다. 어쩌면 우리안에 이 지독한 가난과 불평등, 우리 안에 이 지독한 인명 경시와 황금 만능주의 그리고 이 정권의 약소국에게는 오만하고 강대국에게는 비굴하기 짝이 없는 외교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닌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혹 당신의 손에 묻은 김선일씨의 피를 씻고자 하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만약, 만약 당신이 김선일씨의 죽음을 복수하고 싶다고 울부짓는다면 당신의 주변에 있는 적들을 공격하라.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이익이 되면 한 사람 쯤은 죽어도 된다는 생각, 이 정권은 어떤 거짓말을 해도 참아줄 수 있다는 충성심, 그리고 미국이 하라는 짓은 뭐든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미국에 대한 경외심들...
 
만약 우리가 진정 복수와 응징을 원한다면 애꿎은 이라크로 또다른 김선일들을 보내자고 해서는 안될 듯 하다. 정말 우리가 응징을 원한다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김선일씨의 죽음의 원인들. 그것들을 응징해야할 것이다. 이라크인들만 탓하기에 우리는 김선일씨를 살릴 너무나 많은 기회를 하릴 없이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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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씨의 마지막 유언  2004/06/24 13:22
 
오늘 2시에 민주노동당 비상중앙위원회가 소집되기에 거기에 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글인 듯하여 아래 글을 퍼나르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모임(민지네) 홈페이지 해우소에서 꿀땅콩님이 쓴 글을 퍼왔습니다. 살해 당하는 장면은 그 동영상이 유포되어선 안되겠지만, 적어도 김선일씨의 마지막 유언은 공개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유가족들은 마지막 가는 모습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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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살해당하는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김선일씨가 남긴 말은 들어두어야겠기에
그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노무현의 이름을 여러번 부르더군요.
프레지던트 노무현이라고 외치면서 절규합니다. 제발 파병하지 말고 철군해서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에게도 자기를 도와달라고.
왜 파병해야하느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제발 제발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쉬었고 크게 흐느끼고 있습니다. 너무나 가엾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살해 하려고 서있는 테러리스트들도 동요하는 듯 합니다.
똑바로 서있지 못하고 서로 계속해서 쳐다봅니다.
 
정말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는 듯 합니다.
알 자지라 측에서 왜 이 긴 김선일씨의 절규를 방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살해당하는 장면은 김선일씨에 대한 예의로 방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중요한 그의 유언은 왜 방영하지 않는 걸까요? 왜 한국에서는 김선일씨가 그의 대통령과 그의 동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못듣게 하는 걸까요?
 
갈수록 의혹은 증폭되어갑니다만 왜 그의 마지막 유언도 우리는 들을 수 없는지 또 묻게 됩니다. 이번 사건은 정말 너무나 추악한 냄새가 납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고인이 고귀한 한 영혼으로 존중 받는 곳에서, 더이상 소외감과 배신감에 흐느끼지 말고 꼭 존중받으면서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다음은 고인이 남긴 마지막 유언을 녹취한 것을 진보누리에서 퍼옵니다. 
 
To President Roh, move *
노무현 대통령에게
I want to live.
나는 살고 싶습니다.
I want to go to Korea.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Please, don't send to Iraq Korean soldiers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Please, this is your mistake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This is your mistake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Many Korean people don't like their to send to Iraq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의 **를 이라크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All Korean soldier must out of Iraq
모든 한국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나가야합니다.
Please, please this is your mistake
제발.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Why do you send why do you send Korean soldiers to Iraq
왜 당신은 왜 당신은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냈나요?
 
To my all people all Korean people please support me.
고국에 계신 한국 동포에게.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please * President please Bush to President Roh move Iraq
제발.
대통령님! 제발 부시! 제발. 노무현 대통령! 제발 이라크에서 나가 주십시오.
please I want to live, I want to go to Korea.
제발. 나는 살고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 은 잘 안들리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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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우리의 '분노'는 노무현정권을 향한다 (2004년 06월 26일 (토) 인권하루소식 제 2602 호, 인권운동사랑방)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온 나라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무고한 한 생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입으로 옮기기조차 고통스럽다. 언론에 비치는 고인의 사진을 보며 또 고인의 부모를 보며 그 누가 가슴이 저미지 않겠는가. '한국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그렇게 절규했던 김선일 씨를 외면하고 "변함없는 파병 원칙"만을 외친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가 김선일 씨를 죽인 것이다.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는 정부의 위선은 이미 벗겨진 지 오래다. 아무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내건 거짓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또 이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보수언론의 격려는 '위선의 절정', '가증스런 본색'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과 보수언론이 서로 '일치단결'해 우리의 "슬픔과 분노"를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보복과 응징"으로 선동하는 이유, 그것은 "파병"을 위한 치졸한 술책에 불과하다. 애초부터 김선일 씨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는 정부를 향한 '우리들의 분노'이지, 김선일 씨가 어찌되든 파병은 해야된다고 주장했던 정부와 보수언론, '너희들의 분노'가 아니다. 슬픔도 분노도 없는 집단들이 '보복과 응징'을 말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보복과 응징"이 얼마나 엄청난 피의 보복을 반복하는 것인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이라크를 보라.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전쟁이 시작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1만명 이상 죽었다. 김선일 씨 피살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으로 또 다시 이라크인들이 죽어갔고, 끝나지 않은 침략으로 이라크 전역에서 오늘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 9.11 이후 '보복'에 쌍심지를 켠 미국과 함께, 침략군의 일원이 되어 이라크로 파병하겠다는 한국에 대해 어떤 이라크인이 '선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고립되어 가는 미국에게 끝까지 동맹군으로 남겠다는 한국에게 이라크인들이 대체 뭘 고마워해야 하는가. 바로 파병이 보복과 응징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의료병이든 공병대든 다 마찬가지다. 게다가 전투병을 보낸다면서 '평화, 재건'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한국이 이라크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외국군 주둔이 이라크에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아랍연맹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전쟁의 종결선언이 '진짜 전쟁의 시작'이라는 아랍인들의 경고를 증명하는 지난 1년 동안 이라크 상황을 상기한다면 당장 미국의 침략 전쟁에서 손을 떼야 한다. 추가파병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서희·제마 부대 역시 철수시켜야 한다. 정부가 진정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면 모든 점령군의 철군을 주장해야 한다. 정부는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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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유감, 저항을 조직화하자  2004/06/29 16:31
 
당이 나서서 왜 이런 말을 하지 못할까? 물론 나도 잃을 것이 있기에 시위를 하다가 연행되는 것이 두렵다. 그렇지만 지금의 촛불집회는 정말 아닌 것 같다. 이대로는 절대 파병을 막을 수 없다.
  
<기고>촛불집회 유감, 저항을 조직화하자 (2004년 06월 29일 (화) 인권하루소식 제 2603 호, 인권운동사랑방)
 
수많은 이라크인의 죽음, 김선일 씨의 죽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질지 모를 죽음의 선동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다. 살육의 먹구름과 살고싶다는 피울음이 보이고 들리는 이 때, 우리는 답답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고, 끝도 방향도 없는 연설을 듣다가 쓰레기를 치우고 가라는 해산 명령과 함께 흩어진다. 답답하다. 정말 답답하다.
 
집회의 성격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당장 집회자원봉사단이라는 사람이 달려온다. 시민들이 보기에 안 좋으니 질서 있게 앉아 있으라고 한다. 경찰도 끼어 들어 대열 안으로 들어가라 한다. 경찰이 마련해준 사각틀 속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 질서인가? 그건 도대체 이 시기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경찰 차량과 전경으로 장막이 쳐진 테두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 확성기 소리, 원래 시민단체들은 파병반대 하는 게 당연하고, 정부는 정부 방침대로 간다는 노무현 식대로 되가는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이 바라는 바대로의 모양이라면, 이런 걸 우리가 예전에 관변집회라 부르지는 않았는지, 기억을 점검해보게 된다.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만 집회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아직 우리 사회라는 걸, 촛불의 안락함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다. 그 초라한 집회․시위 권리의 위상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유모차를 밀며 가족 단위로 나와 평화롭게 참여할 수 있는 집회의 상을 보여줬다는 것,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뤘다는 것 등등 촛불집회가 이룬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보여준 성과가 그 형식성의 유지로 똑같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촛불은 정신이었지, 형식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촛불은 시민의 창조물을 바탕으로 계속 복제품만 찍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많은 생명이 미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의 탐욕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반대를 조직화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희생도 치르려하지 않는다. 전쟁을 벌이겠다는 정부를 상대로 과격해지지 말라니, 그럼 우리는 언제 과격해져야 하는가? 청와대로 진격하겠다는 학생들의 호소를 듣지 않고, 쓰레기 치우고 가라는 시민의 질서의식이 강조되는 집회에는 이미 인권의 처절함이 없다.
 
집회․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은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가난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가난하다. 갇히고 박제화된 우리의 목소리는 저들이 추진하는 전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으니 이토록 가난할 수 있는가?
 
1인 시위, 평화촛불집회, 야간집회가 아닌 문화행사라는 식의 ‘형식’으로 더 이상 비켜가려 하지 말자. 아무런 희생도 치르려 하지 않고, 이 전쟁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꿈이다. 이 전쟁이 도모되는 자리마다 찾아가 점거하자. 이 전쟁에 찬성을 표시하는 정치인들을 쫓아가 멱살을 잡자. 인의 장막을 친 경찰선 바깥에서 파병철회, 전쟁반대를 외치자. 그리고 닭장차안에서 유치장에서 만나자.
 
노무현이 바라는 대로 더 이상 굴지 말자. 우리가 반대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자. [인권운동연구소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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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이 크루즈가 될 수는 없었을까  2004/07/23 14:57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2주간 인질로 억류되었다가
철군을 하겠다는 필리핀 정부의 약속 덕분에 풀려난 안젤로 드 라 크루즈씨.
  
그렇게 살려달라고 했음에도 단호하게 파병 재천명을 한
노무현 정부의 신속한 결단 덕분에 하늘나라로 간 김선일씨.
  
한 사람은 7월 22일 귀국하여 가족들의 환영을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6월 22일 이라크에서 참수당했다.
 
김선일은 정말 크루즈가 될 수 없었을까?
뭘했더라도 살아돌아올 수 없었을까?
  
정부가 말하는 국익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하다.
  
고뇌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신의 머리 속엔
무엇이 들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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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16:03 2010/06/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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